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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런 ‘먹튀기업’은 또 없었다! - 한국옵티칼 서울 지역 간담회 후기연말이 다가오면 무언가 마무리를 지어야 한다는 생각에 조바심이 일어 더 바쁘다. 한국옵티칼하이테크지회(이하 한국옵티칼지회) 조합원들은 재판부의 가처분 결정을 앞두고 있어 그에 대한 대책을 마련하느라 실제로 몸과 마음이 더욱 바쁘고 속이 타들어 가고 있다. 지난 12월 28일 서울 영등포에 위치한 비정규직노동자 쉼터 꿀잠에서 한국옵티칼지회 조합원들과 20여 명의 활동가들이 모여 간담회 자리를 가졌다. 함께 자리한 배태선 민주노총 경북본부 교육국장은 “투쟁이 막히고 답답할 때는 이야기를 함께 나눴으면 좋겠다고 늘 생각했다”라며 간담회 취지를 설명했다. 이어서 최현환 한국옵티칼지회 지회장은 “승리를 향한 투쟁의 방향을 토론하고 의견을 모으면 좋겠다”고 이야기했다. 2022년 10월, 구미에 있는 한국옵티칼하이테크(이하 한국옵티칼) 공장에 불이 나자, 닛토덴코는 공장 청산 수순을 밟기 시작했다. 지회는 화재 상황에 대해 이야기하자고 사측에 요구했지만, 사측은 이에 응하지 않고 한 달 만에 문자로 청산을 통보해 왔다. 닛토덴코는 한국옵티칼 지분 100%를 갖고 있는 일본 기업이다. 한국옵티칼은 LG디스플레이에 편광필름을 납품해 왔으며, 총 220억 원을 투자해 2004년 문을 연 이후 18년이 지난 2021년까지 총 7조 7,102억 원의 매출을 올렸다. 화재가 발생하자 한국옵티칼은 1,300억 원의 화재보험금도 챙겼다. 이 금액은 불탄 공장을 다시 세우고도 남는 액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사측은 노동자들의 일터를 하루아침에 빼앗으며 노동자의 삶을 짓밟았다. 지회는 이를 받아들일 수 없어 철거를 반대하며 공장을 지키고 있다. 공장 재건이 어렵다면 평택 공장으로의 고용 승계를 요구하지만 이조차도 받아들여지지 않고 있다. 그러자 사측은 공장철거방해금지가처분 신청을 냈고 12월 말 또는 1월 중에 재판부가 이에 대해 결정할 예정이다. 재판부가 사측의 가처분 신청을 승인할 경우 공장 철거, 경매와 같은 강제집행이 빠르게 진행될 수 있다. 그 과정에서 이행강제금이 부과될 수 있으며 이는 손배가압류처럼 노동자는 물론이고 그 가족들까지도 극단으로 모는 탄압이 될 수 있다. 차곡차곡 준비된 먹튀 닛토덴코는 구미의 한국옵티칼 외에 평택에도 공장을 두고 있다. 평택 공장의 이름은 한국니토옵티칼(이하 니토옵티칼)이다. 한국옵티칼이 LG디스플레이에 납품해왔다면 니토옵티칼은 삼성에 납품해왔다. 현재 니토옵티칼은 구미에서 생산했던 LG디스플레이의 물량까지 생산하고 있으며 이를 위해 2023년 9월에 30명을 신규로 채용했다. 그러면서 고용 승계를 요구하는 한국옵티칼 조합원 11명의 목소리는 듣지 않고 있다. 닛토덴코 입장에서는 한국옵티칼의 화재가 호재나 다름없었다. 2019년부터 LG디스플레이가 생산 거점의 상당 부분을 중국으로 옮기기 시작하자 한국옵티칼의 활용도가 떨어졌기 때문이다. 실제로 2019년, 한국옵티칼은 처음으로 당기순손실을 기록했다. 그런데 닛토덴코는 영업실적이 나빠지는 데도 불구하고 현금배당금을 늘렸다. 그러는 동안 이익잉여금은 줄었다. 1,000억 원대를 유지하던 이익잉여금은 2019년 이후 10억 원 밑으로 떨어졌다. 이는 한국 정부와 구미시의 지원으로 그동안 이익을 챙길 만큼 챙긴 닛토덴코가 한국옵티칼을 언제든지 쉽게 청산할 수 있도록 몸집을 최대한 줄여놓은 것이라 볼 수 있다. 또한 닛토덴코는 한국옵티칼의 물량을 니토옵티칼로 이전할 수 있어서 더욱 쉽게 청산을 결정할 수 있었다. 이 과정에는 LG디스플레이의 개입이 전혀 없었다고 볼 수 없다. 납품업체의 생산 과정은 고객사(원청사)의 양해 없이는 불가능하기 때문이다. 특히 코로나19로 인해 부품 공급망이 크게 불안정하게 변화된 상황에서 원청사의 공급망 관리는 중요한 과제가 아닐 수 없다. 이에 대해 배태선 민주노총 경북본부 교육국장은 “한국옵티칼 청산은 닛토덴코의 명백한 위장 폐업”이라고 지적했다. 조합원의 투쟁을 천 명의 투쟁, 만 명의 투쟁으로 간담회에서는 현재 한국옵티칼지회의 상황을 공유하며 앞으로의 방안에 대한 여러 이야기가 오갔다. 사회주의를향한전진 정은희 동지는 "한국옵티칼 투쟁이 조합원들뿐 아니라 천 명의 투쟁, 만 명의 투쟁으로 나아가야 한다"며 "사측이 한국옵티칼 노동자들을 공격하며 고발하고 있는데, 옵티칼 노동자만의 투쟁이 되지 않도록 나를 고발하라, 우리를 고발하라는 사회적 선언"을 만들자고 제안했다. 명숙 인권운동 네트워크 바람 상임활동가는 “많은 사람이 한국옵티칼이 화재를 핑계로 한국에서 철수하겠다고 하며 먹튀하는데 대안이 없다고 생각하는 경우가 많다”고 지적했다. 더불어 “한국옵티칼의 경우 니토옵티칼이 있고 실제로 그곳에서 기존 물량을 생산하고 있다는 점이 다른 먹튀기업과 다르다. 이를 널리 알려야 한다”고 말했다. 소현숙 한국옵티칼지회 조합원은 “예전 같으면 벌써 포기했을지도 모르는데 여러 동지들 덕분에 힘을 얻는다”고 했다. 박정혜 조합원은 “머릿속으로만 생각하는 방향이 말하고 나면 다듬어야 할 부분이 있는 것을 느낀다. 여러 이야기를 듣고 말할 수 있어 좋다”고 말했다. 투쟁의 길은 정해진 것이 아무것도 없으며 정답이랄 것도 있을 수 없다. 그래서 때로 그 길을 걷는 것이 더 고단하기도 하다. 하지만 함께 길을 걷는 사람들의 소리가 있다면 힘을 낼 수 있지 않을까? 한국옵티칼지회의 발걸음에 발걸음을 얹어 주고 그 소리를 널리 알려주길 부탁드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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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의 여성파업 2] 스페인 - 2018년과 2019년, 여성파업이 스페인을 뒤흔들었다[편집자 주] 지난 12월 6일 열린 “여성파업 첫발떼기 토론회”를 비롯해, 2024년 3월 8일 여성파업을 조직하기 위한 활동이 여성파업 조직위원회 주도 아래 진행되고 있다. 사회주의를향한전진은 노동자계급의 여성해방 운동을 건설하기 위한 여성파업 시도에 전폭적인 지지를 보내며, 이 운동의 현황과 과제, 전망을 짚어 보기 위해 세계 여러 나라의 여성파업 사례를 돌아보고자 한다. 1975년 아이슬란드 여성파업에서 시작해 지난 십수 년 사이에 폴란드, 스페인, 아일랜드, 스위스, 아르헨티나 등 곳곳에서 여성파업이 일어났다. 각각의 사례는 그 자체로 세계 여성 노동자의 현실과 투쟁에 대한 우리의 시각을 넓혀 주기에 충분하다. 또한 여성파업의 양상과 결과, 다양한 쟁점을 훑어보면 우리의 과제에 대한 인식도 더 풍부하게 채워 갈 수 있을 것이다. 거리를 가득 메운 2018년 여성파업 참가자들(사진_Lluis Gene) 누군가 주먹을 치켜들고 소리 높여 외친다. “우리가 멈추면 세상이 멈춘다!” 이 함성을 들은 사람들은 어떤 생각을 떠올릴까? “허무맹랑한 소리!”, “농담이 심하군, 당신들이 그런다고 세상이 어떻게 될 것 같아?” 그러나 여기, 그 농담 같은 얘기를 현실로 일궈 낸 사람들이 있다. 그들을 만나기 위해 우리는 2018년 3월 8일 스페인으로 간다. 스페인을 뒤흔든 2018년 3월 8일 여성파업 우리가 멈추면 세상이 멈춘다! 2018년 3월 8일 스페인 여성파업은 이 구호가 무엇을 의미하는지 명실상부하게 증명했다. 전국 120여 개 도시에서 무려 530만 명이 파업에 참여했다. 다수 노동조합이 2시간 파업으로 여성파업에 동참했고, 조직 규모는 작지만 더 활력 있는 일부 노동조합은 24시간 파업을 벌였다. 이 파업으로 300여 편의 열차 운행이 취소됐다. 바르셀로나에서는 이날 출퇴근 피크타임에 교통 부문 전체 운행의 절반가량이 중단됐다. 교육 현장에서도 파업 참여가 두드러졌다. 카탈루냐에서는 사실상 모든 고등학교와 대학교 노동자들이 2시간 파업을 벌였고, 중학교 교사들의 20%가 24시간 파업을 했다. 발렌시아에서는 모든 교사 노동조합의 50%가 파업에 참여했다. 학생들도 동맹휴업에 나섰다. 안달루시아 대학생의 90%, 수도인 마드리드에서는 고등학교 여학생의 90%, 대학교 여학생의 65%가 파업에 동조하며 시위에 합류했다(이 글에서 소개한 스페인 여성파업 참가 규모와 양상은 주로 이 기사를 참조했다). 의료 부문의 경우, 카탈루냐와 발렌시아에서는 80%, 안달루시아에서는 대략 70%의 병원 노동자들이 여성파업에 함께했다. 언론사 노동자, 공장 노동자, 마트 노동자, 청소 노동자, 콜센터 노동자들도 거리로 나왔다. 여성파업 참가자들은 얌전하게 행사를 치르고 귀가하는 식으로 이날을 보내지 않았다. 평화적이고 쾌활하며 힘이 넘치는 분위기 속에서도, 카탈루냐에서는 주요 고속도로를 중심으로 도로봉쇄 시위가 벌어졌다. 전국 곳곳에서 벌어진 시위는 거리와 광장을 점거하는 방식으로 자연스럽게 연결됐다. 철도를 막아선 노동자들(사진_Left Voice) 곳곳에서 도로도 봉쇄됐다.(사진_X_Endavant València) 정부와 자본가들의 여성혐오, 노조혐오 공세가 판을 치는 지금 이곳 한국의 분위기와는 달리, 스페인 일간지 《엘파이스(El Pais)》의 여론 조사에 따르면 응답자의 82%가 여성 차별을 깨부수기 위한 여성파업이 정당하다고 답변했다. 2018년 3월 8일 스페인 여성파업은 성별 임금 격차, 직장 내 성차별, 가정과 거리에서 일어나는 성폭력을 규탄했다. 여성파업을 조직하는 데 앞장선 3.8위원회가 발표한 여성파업 선언문에는 다음과 같은 내용이 담겼다. “우리의 목표는 고전적인 노동자 파업을 조직하는 게 아니라 그걸 넘어서는 것이다. 우리는 여성이 수행하지만 눈에 보이지 않는 다양한 모든 업무와 활동을 다양한 모든 장소에서 다양한 방식으로 중단하려 한다. (중략) 오늘 우리는 성차별적 억압, 착취, 폭력이 없는 사회를 요구한다. (중략) 우리에게 순종적이고 고분고분하며 침묵할 것을 요구하는 가부장제와 자본주의의 동맹에 맞서 반란을 일으키고 투쟁하자고 호소한다. 우리는 열악한 노동조건에 순응하지 않을 것이고, 남성과 똑같이 일하고 더 적게 받지도 않을 것이다.” 이렇게 530만 명이 일궈 낸 압도적인 여성파업 행진은 2018년으로 끝나지 않았다. 2019년, 더 넓게 퍼진 물결 1년 뒤인 2019년 3월 8일에도 여성파업이 대규모로 조직됐다. 전국 수많은 도시에 걸쳐 조직된 시위가 1,400여 건에 이르렀다. 여성단체, 노동조합, 좌파 정당 등을 널리 아우르며, 2시간 파업에서 24시간 파업에 이르는 형태로 600만 명이 여성파업에 참여했다. 스페인 여성파업은 두말할 나위 없이 여성 노동자들이 직접 주도한 운동이었을 뿐만 아니라, 더 나아가 전체 노동자계급을 이끌고 전진하는 운동으로서 자기 모습을 드러냈다. 시위대는 “우리는 멈출 수 없다”, “거리는 두려운 곳이어서는 안 된다”, “나는 페미니스트다. 나는 남성이 아니라 복스(Vox: 스페인 극우정당) 패거리를 증오한다”는 플래카드를 들고 거리를 행진했다. 위력적으로 전개된 2018년 여성파업 이후 스페인에서는 안티페미니즘을 내세운 복스 같은 극우세력이 힘을 키워 갔다. 이들은 성폭력을 금지하는 법안이 남성에 대한 역차별이라는 식으로 반대 목소리를 내는 세력이다. 그래서 자연스럽게 여성파업 시위대의 표적이 될 수밖에 없었다. 마드리드에서 여성파업에 참가한 사람들은 이런 구호를 외쳤다. “마드리드는 마초 근성의 무덤이 될 것이다!” 투쟁의 기본 목표는 2018년과 같았다. 3.8위원회는 “세계 질서와 도처에 만연한 이성애 중심적, 가부장적, 인종차별적, 신자유주의적 헛소리(rhetoric)를 뒤집어엎는 것”이 여성파업의 궁극적인 목표라고 밝혔다. 이러한 목표를 이해하고 표현하는 방식에는 일정한 스펙트럼이 있다. 한편에서는 여성파업을 ‘소비 총파업’ 같은 것으로 해석할 정도로 자본주의에 대한 느슨한 시각이 묻어나기도 한다. 이와 달리 전국노동자연합(CNT)의 경우 “자본주의를 폐지하고자 한다면, 우리 투쟁을 세계로 확산해야 한다”며 반자본주의 계급투쟁 관점을 표출한다. 그들은 이렇게 말한다. “페미니즘이 여성들만의 투쟁을 넘어 확대되면서 혁명이 일어나고 있다.” “이것은 차별받는 여성과 트랜스젠더를 엄호하고 가부장제와 모든 노동자의 불안정한 삶을 끝장내기 위한 계급투쟁이다.” 이런 색조 차이에도 불구하고, 노동조합들이 대규모 파업과 시위의 중심에 서서 이 운동의 전체적인 성격을 결정하는 역할을 했다는 점이야말로 스페인 여성파업이 다른 나라 여성파업과 구별되는 가장 큰 특징이다. 하지만 노동조합 운동 내에서도 역시 색조 차이가 감출 수 없이 드러났다. 노조 관료들의 수동성과 기층 분위기 스페인 양대 노총(CCOO, UGT)은 3.8 여성파업 당일 오전과 오후 근무조가 각각 2시간 파업을 벌이는 것으로 방침을 세웠다. 스페인 노동조합 중 이들의 규모가 가장 크기 때문에, 마치 2시간 파업이 스페인 여성파업의 기본 방침인 것처럼 보이기도 했는데, 이는 여성파업을 오랫동안 준비하고 주도해 온 활동가들의 입장에서는 경멸할 만한 일이라고 한다. 노동조합 운동의 역사가 깊은 스페인에서는 노동조합 관료집단도 두텁게 자리를 잡고 있다. 노동자계급 상층부에 주요 관심사와 기반을 두면서, 상대적으로 취약하고 불안정한 처지에 있는 여성과 청년이 겪는 차별과 고통에 무관심한 게 노조 관료들의 전형적인 모습이다.1) 이런 특성은 여성파업을 조직하는 과정에서도 그대로 드러났다. 노동조합 지도부들은 기본적으로 여성파업이 성공적이지 못할 거라는 분위기에 젖은 채 시큰둥한 태도를 취했다. 심지어 이들 지도부 안에 오랜 운동 경력을 지닌 페미니스트 활동가들이 있었는데도 그 모양이었다. 1) 트로츠키, “이행강령”, 1938. 여기서 트로츠키는 쇠퇴하는 자본주의가 임금 노동자이자 주부인 여성에게 가장 큰 타격을 가한다고 말한다. 2018~2019년의 경험이 명백하게 보여 주듯이, 노조 관료들의 태도는 완전히 틀렸다. 그들은 단지 아래로부터 조직된 여성파업 운동의 열기에 떠밀려 수동적으로 2시간 파업이라는 면피용 방침을 내놨을 뿐이다. 2018년에 여성파업에 참가한 한 마드리드 노동자는 이런 평가를 내렸다. “노동총동맹(CGT), 전국노동자연합(CNT), 평조합원위원회(Co.Bas) 등이 쟁의권을 얻어 줘서 우리가 24시간 파업에 참여할 수 있게 해 줬다. 양대 노총(UGT, CCOO)의 2시간 파업은 우리가 원한 게 아니었지만, 그래도 작년보다는 나은 거라고 본다. 작년엔 아무것도 안 했으니까.” 이 발언은 노조 관료들의 수동성과 대조되는 기층의 분위기를 어느 정도 잘 보여 준다. 스페인 노동조합 운동 내의 전투적인 소수파 노조들은 적극적으로 24시간 파업을 제기했다. 24시간 파업 주장은 노동자계급 내의 다른 부위보다 여성이 다수인 사업장들에서 빠르게 확산됐다. 정부의 긴축 정책으로 예산 삭감이 이뤄지는 상황에서 희생을 감내하며 공공의료와 교육을 지탱해 온 여성 노동자들이 투쟁에 적극적으로 나섰다. 카탈루냐 교사 노조가 대표적이다. 경제위기와 함께 임시직이 늘어나면서 고용이 불안정해졌고, 이는 가장 열악한 임금을 받는 민간 부문 여성 노동자들도 마찬가지였다. 이주 여성 노동자가 다수인 호텔 청소 노동자들이 그 대표 사례다. 달리 말하면, 이 시기 스페인에서 여성파업이 대대적인 운동으로 분출할 수 있었던 것은 그럴 만한 경제적, 사회적 배경이 있다는 것이다. 이제 그 점을 살펴보도록 하자. 1,000유로 세대에서 700유로 세대로 2008년 세계 경제위기 이전까지 스페인의 국내총생산(GDP) 성장률은 당시 유럽 평균인 1~1.5%를 웃돌았다. 하지만 2007년에 3.6%였던 스페인의 성장률은 2008년에 0.8%로 추락했고, 2009년에는 –3.6%로 걷잡을 수 없이 무너져 내렸다. 이와 나란히 실업률은 2008년 11%, 2009년 18%, 이후 20~25% 이상으로 치솟았다. 어느 나라에서나 그렇듯이 스페인에서도 청년실업률은 훨씬 높게 나타난다. 2008년 이전의 호황은 껍데기에 지나지 않았다. 건설 산업을 중심으로 부동산 붐을 일으키면서 부동산 거품이 부풀어 올랐다. 그 이면에서 무역수지 적자는 누적되고 외채 의존도가 늘어났는데, 이는 2008년 세계 경제 위기 같은 외부 충격 앞에 스페인 경제를 취약하게 만들었다. 더욱이 위기 이전의 표면적인 호황기에도 젊은 세대는 주로 비정규직 일자리로 내몰렸고, 이미 전체 일자리의 3분의 1이 비정규직으로 채워졌다. 이들은 생활 조건의 하락을 피할 수 없었다. 2005년경부터 스페인, 이탈리아, 그리스 등 남유럽 나라를 중심으로 ‘1,000유로 세대’라는 표현이 사용되기 시작했다. 1,000유로는 원화로 환율에 따라 120~150만 원가량 되는데, 이는 그 정도의 저임금으로 한 달을 살아 내야 하는 젊은 세대 노동자의 열악한 처지를 적나라하게 묘사하는 것이었다. 2008년 무렵이 되자 이를 대신해 ‘700유로 세대’라는 표현까지 등장했다. 이들로서는 부동산 거품으로 조성된 감당할 수 없는 수준의 주택 가격을 보며 절망감을 느끼지 않을 도리가 없다. 경제위기가 가시화하는 국면이 닥치자 비정규직부터 해고되기 시작했다. 정부는 경제위기에 대처한다는 명분으로 노동개악을 추진했고, 한층 더 불안정한 단시간 시간제 근무를 늘렸다. 이제 부동산 거품이 터지며 집값은 폭락하고, 대출 이자는 폭증하며, 해고는 더 늘어나고, 회사는 해고 비용마저 절감하기 위해 퇴직금을 삭감하면서 지옥도가 펼쳐졌다. 그리고 질문이 이어진다. 이렇게 경제위기라는 바윗덩어리가 노동자계급 전체를 짓누를 때, 그 하중과 고통이 누구에게 더 크게 전가될까? 여성 노동자의 상태 노동자계급 내에서 여성의 상대적 저임금은 하나의 보편적 법칙처럼 자리 잡았다. 스페인에서도 이 점은 예외가 아니다. 스페인의 성별 임금 격차는 한국은 물론 OECD 평균보다도 현저히 작은 편인데(여성파업 당시인 2018년 기준 한국 34.1%, OECD 평균 13%, 스페인 8.6%), 그럼에도 전 연령대에서 여성이 남성보다 낮은 임금을 받는다. 연간 성별 임금 격차가 3,000유로에서 10,000유로까지 발생한다. 이는 한화로 대략 400~1,400만 원에 이른다. 성별 임금 격차는 연금 격차로 이어진다. 남성은 은퇴 후 월평균 1,200유로의 연금을 받지만, 여성은 760유로를 받는 데 그친다. 가사와 돌봄 노동에도 남성보다 여성이 더 많이 종사한다. 육아, 요리, 청소, 그 밖의 집안일과 돌봄 등 무급 가사노동에 여성은 주당 평균 26.5시간을 사용하고, 남성은 14시간을 투여한다. 스페인국립통계청(INE)은 하루평균 남성은 2시간, 여성은 4시간을 무급 가사 노동에 사용한다는 통계를 내놨다. 2008년 세계 경제위기 이래 임금 삭감, 해고 등의 타격이 비정규직 노동자에게 집중됐다. 그 비정규직의 다수가 여성이다. 임금을 비롯한 노동조건 격차가 뻔히 보이지만, 생계를 해결하려면 불이익을 감수하며 비정규직으로라도 일을 해야만 하는 상황이었다. 여성이 겪는 성폭력과 그에 따른 사망 사건도 끊이지 않았다. 스페인 정부는 2018년 통계를 발표하면서, 2003년 이래 972명의 여성이 배우자 또는 전 배우자에게 살해됐다고 밝혔다. 2021년에 그 수치는 1,125명으로 늘어났다. 정부는 2022년 1월부터 모든 유형의 여성 살해 사건을 공식적으로 집계하겠다고 발표했다. 2015년 여성 살해 반대 시위에 나선 스페인 여성들(사진_AFP) 이와 같은 여성 살해뿐만 아니라 가정에서 일어나는 폭력, 길거리에서 마주치는 성적 괴롭힘, 여성의 빈곤화와 노동의 불안정화가 스페인 여성 노동자의 삶을 옥죄고 있었다. 이 현실에 더 이상 순응하지 않기로 마음먹은 여성 노동자들이 성별 임금 격차와 여성을 겨냥한 폭력에 맞서 파업을 준비하기 시작했다. 준비 과정 40년 가까이 장기집권하며 독재체제를 유지해 온 프랑코가 사망한 뒤, 민주화를 거치면서 1978년 전국페미니스트단체연합이 결성됐다. 이 연합은 ‘페미니스트조정위원회’라는 이름으로 더 많이 불린다고 한다. 이 연합이 스페인에서 3.8 여성파업을 주도적으로 조직했다. 지역마다 공동 활동을 위한 조정그룹들이 만들어져 함께 토론하며 여성파업 선언에 포함할 요구를 결정하고, 파업 참가자들을 조직했다. 3월 8일이 되기 전부터 다양한 전국 집회와 지역 집회, 총회, 실행위원회 구성, 집담회, 시위, 여러 시설, 현장, 지역에서 여성파업 계획을 알리는 피켓팅 등의 활동이 이어졌다. 아래로부터 자주적인 조직화 활동이 폭넓게 펼쳐지고 공감대를 넓혀가자, 마침내 노동조합들이 동참하기로 결정했다. 이로써 스페인 여성파업은 상징적으로 파업이라는 이름을 내건 시위나 ‘소비 총파업’을 넘어 생산에 직접 타격을 가하는, 다시 말해 착취 구조를 마비시키는 실질적인 파업으로 나아가게 됐다. 여성 노동자들을 옭아매는 ‘이중의 굴레’ 중 어느 한쪽만이 아니라 그 전체에 대항하는 운동으로 발돋움하는 순간이었다. 스페인 여성파업은 가부장적 자본주의를 규탄하는 구호로 가득 채워졌다. “페미니즘 없이 혁명은 없다”, “가부장제와 자본에 맞서 다양성을 인정하며 단결하자”, “우리는 세상을 바꾸기 위해 파업한다”, “가부장제와 자본주의의 범죄 동맹”, “우리는 너희가 불태우지 못한 마녀의 후손이다!” 2011년 광장점거 운동이 남긴 경험 스페인 여성파업이 대대적인 규모로 등장할 수 있었던 경제적, 사회적 배경과 나란히, 대중운동 차원에서 축적된 정치적 경험도 여성파업의 폭발적 진출에 영향을 미쳤다. 2008년 세계 경제위기가 미국을 비롯한 세계 곳곳에서 다양한 형태로 투쟁을 낳았다. 스페인에서는 2011년에 인디그나도스(Indignados), 즉 ‘분노한 사람들’이라고 불린 광장점거 운동이 일어났다. 수도 마드리드의 푸에르테델솔 광장에 수만 명이 모여 천막을 치고, 경제위기의 대가를 노동자 민중에게 떠넘기는 긴축 정책에 대항하는 농성을 시작했다. 이 투쟁은 곧 수백만 명의 시위로 번져 나갔다. 경제가 호황이든 위기 상황이든 언제나 상대적인 차별과 박탈감과 폭력에 노출돼 온 여성들도 이 거대한 대중운동 속에서 자기 목소리를 내고 싶어 했다. 하지만 이때 수많은 여성의 뇌리에 각인될 수밖에 없는 불미스러운 사건이 일어난다. 광장점거 운동에 참여한 일군의 여성들이 긴축 정책에 맞선 투쟁과 여성의 권리를 위한 투쟁이 연결되기를 바라며 플래카드를 내걸었다. “페미니즘과 함께하지 않는다면 혁명은 아무것도 아닐 것이다!” 그런데 일부 농성 참가자들이 이 여성들을 비난하며 “나가라, 나가라!” 하고 야유했다. 급기야 수천 명이 지켜보는 앞에서 누군가 플래카드를 뜯어내 버렸다. 광장점거 운동에 등장한 페미니스트 플래카드(사진_IN THESE TIMES) 이 운동은 부패한 정치를 규탄하며 아래로부터의 민주주의를 요구하는 운동이기도 했지만, 때로는 이 운동 자체가 민주적이지 않은 방식으로 이뤄지기도 한 셈이다. 광장점거 운동 참가자들의 민주적 권리를 보장하는 핵심 장치인 대중총회에서는 페미니스트의 질문이나 제안을 거부하는 사례도 생겨났다. 예를 들어 “유럽의 신자유주의 정책이 어떤 성차별 효과를 낳는지” 토론하자는 제안이 있었는데, 이는 “그런 사소한 문제를 토론하고 있을 때가 아니”라는 반응과 함께 기각됐다. 천막농성이 이뤄지고 있는 광장 안에서는 남성 우월주의적이거나 동성애 혐오적인 분위기도 간혹 보였다. 그래서 일부 여성들이 “밤에는 광장에 머무르기 어렵다”며 떠나는 사례도 있었다. 이런 모습 때문에 2011년 스페인 광장점거 운동이 지니는 중대한 진보적 의미가 사라지지는 않을 것이다. 그러나 대중적인 규모의 운동, 이후 포데모스로 수렴되는 ‘좌파’적 흐름이 폭넓게 형성됐지만, 그런 흐름이 만들어졌다고 해서 자동으로 차별받는 여성의 목소리가 온전하게 운동에 반영되지는 않는다는 사실 또한 냉혹하게 드러났다. 세상을 바꾸고자 하는 강렬한 열망을 지닌 여성들은 기존 운동에 안주하지 않으며 스스로를 조직하고 직접 목소리를 내기 위한 전망을 갈구했다. 여성파업이 그 열망에 길을 터줬다. 길을 발견한 여성들이 봇물 터지듯 쏟아져 나왔다. 이처럼 새롭게 생명력을 얻고 성장하는 운동은 새로운 쟁점과 토론 과제를 던져 준다. 2018년과 2019년에 스페인 사회를 뒤흔든 여성파업 역시 운동의 전진을 위해 해결해야 할 쟁점을 동반하며 추진됐다. 아래에서는 스페인 여성파업이 마주친 몇 가지 쟁점을 살펴보도록 하겠다. 쟁점: 계급을 넘어선 모든 여성의 단결? 첫 번째로, 계급 경계선을 넘어 모든 여성의 단결을 추구해야 하는가라는 쟁점이 있다. 생물학적 여성만의 결집과 운동을 지향하는 일부 페미니즘 운동가들은 여성파업에서도 노동자계급의 단결이라는 관점 대신 여성의 단결이라는 관점을 채택하려 했다. 이런 관점은 이미 적대적인 계급 대립으로 갈라진 냉혹한 현실을 자의적으로 외면한다는 점에서 가망 없는 태도였다. 현장에서 조직된 여성파업으로 이윤에 타격을 입게 될 자본자계급 여성들, 그리고 이들과 친화적인 부유한 중간계급 여성들이 노동자계급 여성과 동맹을 맺는 것은 불가능하다. 다행히 이 쟁점은 빠르게 정리됐다. 인민당(Popular Party), 시민당(Ciudadanos), 복스(Vox) 같은 부르주아 우익 집단의 여성들이 여성파업을 맹비난하는 모습을 보여 줬기 때문이다. 현실은 계급 이해관계의 충돌을 등한시하는 느슨한 태도를 용납하지 않았다. 자본 친화적이거나 지배계급 정당에 기대려는 경향이 여성운동 내에 여전히 남아 있는 상황에서, 이 사안은 거듭 곱씹어 볼 필요가 있다. 쟁점: 남성 노동자는 무엇을 할 것인가? 여성파업 운동에 남성 노동자들이 어떻게 기여할 것인가 하는 문제는 여전히 완전히 해소되지 않은 쟁점으로 남았다. 남성 노동자도 전면적으로 함께 파업에 참여해야 한다는 주장, 여성이 파업하는 동안 필수적인 최소한의 업무를 남성 노동자가 담당해야 한다는 주장, 여성의 사회적 역할을 드러내 보일 수 있도록 남성은 나서지 않아야 한다는 주장, 이날만큼은 그간 여성이 가정과 직장에서 해 왔던 업무를 전적으로 남성이 책임져야 한다는 주장 등 다양한 의견이 제시됐다. 여성파업 운동 일각에서는 여성파업의 목적이 “사회의 작동에 여성이 얼마나 기여하는지 가시적으로 보여 주는 것”이기 때문에 남성이 같이 파업하면 안 된다는 주장이 튀어나왔다. 가사, 돌봄 등 여성이 손을 놓은 일을 남성이 대신할 필요가 있으며, 현장에서 여성이 파업할 때 남성이 그 업무를 대신하라는 요구도 제기됐다. 여성의 기여를 가시적으로 보여 줘야 한다는 긍정적인 취지에도 불구하고, 남성이 같이 파업하면 안 되며 여성의 일을 남성이 대신 해야 한다는 주장은 위태롭기 짝이 없다. 사실상 남성에게 파업파괴자 역할을 하라는 것이기 때문이다. 파업을 깨는 행위에 적대감을 느끼는 노동자들은 이런 주장을 받아들일 수 없었다. 전투적으로 24시간 파업을 제기했던 노동조합들은 명시적으로 이런 요청을 거부했으며, 남성 노동자에게 여성파업을 지지하며 동참하자고 호소했다. 실제로 파업 집회와 시위가 벌어지는 곳에는 여성과 더불어 수많은 남성 노동자들이 어깨를 나란히 했다. 2019년 6월 14일 여성파업이 조직된 스위스에서도 비슷한 모습을 볼 수 있었다. 여성 노동자들이 성별 임금 격차 해소, 노동시간 단축과 직장 내 성차별 폐지 등을 내걸고 여성파업에 돌입했다. “이날 여성들은 남성들에게 집에서 아이를 돌보고 음식을 준비하라고 했지만 남성들도 시위에 동참했다. ‘우리가 서로 지지하지 않으면 미래에 누가 남겠는가?’라고 시위에 참여한 한 남성이 BBC와 인터뷰를 했다.” 쟁점: 체제를 유지하는 운동과 그것을 넘어서는 운동 여성파업이 대규모 운동으로 조직되면서 여성해방을 위한 투쟁과 자본주의에 맞선 투쟁의 결합이라는 과제가 전면화됐다. 하지만 그 결합이 어떤 정치 전망으로 나아가야 하는가라는 질문에 대해서는 여러 주장이 엇갈리고 있다. 가사 노동 임금제나 소비 총파업 같은 무력한 주장이 다시 모습을 내비치는가 하면, 좀 더 좌파적인 입장으로는 “새로운 여성운동은 99%를 위한 페미니즘이어야 한다”, “99%를 위한 기층의 반자본주의적 여성주의를 건설하자”는 주장이 제기됐다. 하지만 그 ‘99% 페미니즘’이 내건 반자본주의는 실체가 모호했다. 전면적인 여성해방 정책을 실행할 노동자 정부 수립과 사회주의라는 전망을 명시적으로 제출하는 흐름은 소수에 그쳤다. 최근 몇 년간 크게 확산한 기후정의 운동에서 ‘체제 전환’ 같은 구호가 두드러졌지만, 아직 노동자계급에 기반한 혁명적 사회주의 지향으로 발돋움하지는 못하는 상황과 유사하다고 볼 수 있다. 혁명적, 계급투쟁적 페미니즘을 지향하는 스페인 빵과장미 시위대(사진_Izquierda Diario.es) 혁명적이고 사회주의적이며 계급투쟁적인 페미니즘을 주장하는 스페인 활동가들은 모든 억압을 끝장내기 위해 가부장제에 맞선 투쟁과 자본주의에 맞선 투쟁을 분리하지 않고 그 둘 모두에 도전해야 한다고 말한다. 여성파업 전망은 자본주의 체제 안에서 여성들의 개인적인 라이프 스타일 변화, 문화의 변화에 머물러서는 안 되며, 이 체제를 뒤흔들기 위해 자본가들의 이윤을 직접 침해하는 투쟁으로 나아가야 한다. 그러므로 남성 전체를 적으로 돌리고 다투는 게 아니라 남성 노동자 다수를 여성파업 지지 세력으로 끌어당겨야 한다. 여성파업이 남긴 결과와 과제 2018년 3월 8일 열광적인 여성파업을 경험한 뒤, 산체스 총리는 성평등 문제에 관한 스페인의 역사는 2018년 여성파업 이전과 이후로 구분되며, 자신이 이끄는 사회당 정부는 이 운동을 충실하게 반영한다고 말했다. 물론 이는 위선에 불과하다. 사회당 정부는 경제위기 앞에 긴축 정책을 강행하며 노동자 민중에게 고통을 전가한 장본인이기 때문이다. 산체스 총리의 발언은 여성파업으로 표출된 계급투쟁의 압력을 어떤 세력도 함부로 거스를 수 없다는 현실을 보여 준다. 여성파업은 실제로 위력을 발휘했다. 이후 몇 년간 다양한 ‘개혁’ 조치들이 추진됐다. 여성의 임신중지권을 강화하는 성 및 생식 건강과 자발적 임신 중지에 관한 법안, 성전환자 성별 정정 간소화 법안, 월 최대 3일의 유급 생리휴가 법안 등이 통과됐다. 2018년에 정부는 ‘페미니스트 내각’을 선포하며 17명의 장관 중 11명을 여성으로 채웠다. 2020년 초 사회당과 포데모스가 함께 구성한 연립정부 내각에서는 5명 더 늘어난 22명의 장관 중 11명이 여성이었다. 하지만 스페인 정부는 무엇보다도 다시 여성파업을 매개해 계급투쟁이 올라오는 것을 막으려 했다. 세계적으로 코로나19가 확산하자, 이를 빌미로 집회와 시위를 금지했다. 스페인 일간지 《엘파이스(El Pais)》에는 “수많은 사람이 오가는 시장과 다수의 관중이 몰린 축구 경기장, 지하철 인파는 내버려 둔 채 오직 여성 집회만 통제했다”는 기사가 실렸다. 2020년에는 3.8 여성의 날 집회 때문에 코로나19 감염자가 폭증했다며 비난을 쏟아 낸 반면, 그보다 앞서 열린 우익 집회에 대해서는 입을 다물었다. 당시 한국의 문재인 정부가 ‘노동 존중 정부’를 자처하면서도 코로나19를 핑계로 노동자 투쟁만 콕 집어 억압했던 것을 빼닮았다. 내각에 다수의 여성이 기용된 것도 ‘페미니스트 정부’라는 포장지를 두르기 위한 수단일 뿐이지, 기층 노동자 민중 여성의 삶을 직접 개선하는 것과는 거리가 멀었다. CEO의 얼굴이 남성에서 여성으로 바뀌더라도 착취는 사라지지 않는 것과 마찬가지다. 이와 같은 한계에도, 수백만 대중이 참가한 여성파업이 스페인 사회에 심대한 영향을 미쳤고, 여전히 미치고 있다는 사실은 달라지지 않는다. 스페인 여성파업은 성차별을 깨기 위해 성별을 넘어 단결한 노동자계급의 힘과 가능성을 입증했다. 이제 스페인 여성 노동자들은 지난 여성파업의 성과를 지키고 더 많은 권리를 쟁취하기 위해, 더 나아가 ‘가부장제와 자본주의의 범죄 동맹’을 타도하기 위해 또다시 힘을 모으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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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간 여성뉴스 브리핑] 튀르키예 리바이스 공장 여성노동자 한 달째 파업 중1. “단 한 명도 포기할 수 없는” 건보고객센터 노동자들의 투쟁은 여성 노동자 모두의 투쟁 21일 2024년 3.8여성파업조직위원회는 건강보험 고객센터 노동자들의 파업을 지지하는 ‘여성 노동자 선언’ 기자회견을 진행했다. 건강보험 고객센터 노동자들의 소속기관 전원 전환은 2년 전 80여 일의 파업 투쟁을 통해 쟁취한 합의사항이다. 하지만 공단은 합의 이행을 차일피일 미루다 노조가 파업을 준비하자 오히려 ‘제한경쟁 채용, 공개경쟁 채용’이라는 구조조정안을 꺼내 들었다. 노동자들은 사측의 기만적인 안을 거부하고 파업 투쟁을 진행하고 있다. 건강보험 고객센터 노동자들의 투쟁을 엄호하는 여성 노동자들의 선언에 참가한 이들은 콜센터가 대표적인 여성 다수 일자리라는 점에서 이들의 투쟁은 전체 여성 노동자들의 구호이기도 하다고 외쳤다. 선언에는 298명의 개인과 56개 단체가 참여했다. <참조 기사> https://socialism.jinbo.net/bbs/board.php?bo_table=news&wr_id=672 2. 리바이스 청바지를 만드는 노동자들, 여성 노동자 억압에 맞서 한 달째 파업 리바이스 청바지를 만드는 노동자들이 한 달째 파업을 벌이고 있다. 튀르키예 최대 의류업체 중 하나인 리바이스(Levi’s) 하청업체 ‘오자크섬유(Özak Tekstil)’ 공장 노동자들이 여성 노동자 1명이 해고되자 파업을 시작해 4주째 싸우고 있다. 자본가들은 이제껏 어용노조와 손잡고 노동자에게 저임금과 20시간 장시간 노동 등 열악한 노동조건을 강요하면서 특히 여성 노동자에게는 새벽 3시까지 강제로 일을 시키고, 한두 시간 자고 돌아와서 다시 일할 것을 명령하기 일쑤였다. 여성 노동자에 대한 괴롭힘과 억압에 분노한 노동자들이 몇 달 전 어용노조 대신 BİR-TEK SEN(섬유-직물-가죽 노동조합연맹) 민주노조를 선택했고, 한 달 전 여성 노동자 1명이 해고당하자 일제히 생산을 멈추고 파업에 돌입한 것이다. 노동자의 파업시위에 자본과 정부, 경찰, 헌병대는 한통속이 되어 산업지구(OSB)에 집회를 금지하고 물대포, 후추가스, 곤봉과 방패 등을 동원해 폭력적으로 진압했으며, 체포하고 구금했다. 해고예고장도 날아왔다. 하지만 오자크섬유 노동자들은 정부와 자본에 분노하며 오직 노동자 단결에 의지해 ‘해고자 복직, 민주노조로 노조할 권리 보장, 파업기간 임금 전액 보장’을 요구하고 있다. 파업 중인 여성 노동자 푼다 바키스는 “우리는 삶을 이어갈 수 있는 생존권을 찾고자 한다. 저들은 노조가 권리를 포기하길 바라지만, 우리는 여성으로서 최전선에서 계속 투쟁할 것이다. 우리는 노동조합의 권리를 원한다. 위협과 협박을 받지 않는 인간다운 삶을 원한다”고 말했다. 튀르기예의 많은 노동자는 오자크섬유 노동자 투쟁은 모두의 투쟁이라며, 노동자계급의 단결과 연대로 승리하자고 결의하고 있다. 12월 23일에는 오자크섬유공장 노동자 연대 캠페인(#LevisTakeAction, #Voice to ÖzakResistance)이 튀르키예를 비롯해 여러 나라에 위치한 리바이스 매장에서 펼쳐졌으며, 국제적 연대성명도 이어지고 있다. <참조 기사> https://www.gazeteduvar.com.tr/ozakta-direnen-kadin-isci-erkeklere-diyemediklerini-bana-diyorlar-haber-1654334 https://www.labournet.de/interventionen/solidaritaet/arbeiterinnen-von-oezak-tekstil-in-urfa-wehren-sich-gegen-gelbe-gewerkschaft-eine-davon-deshalb-entlassen-auf-proteste-folgen-verbote-gendarmerie-und-festnahme/ https://twitter.com/birlesiktekstil 3. 6개월간 문 닫은 여성가족위원회, 국회는 뭘 했나? 지난 20일 열린 국회 본회의에서는 130여 개의 밀린 법안이 한꺼번에 처리됐다. 그런데 처리된 법률안 목록 중 여성가족부를 맡는 여성가족위원회 소관 법률안은 단 한 건도 없었다. 21대 국회가 출범한 2020년 5월부터 현재까지 여가위 소관의 법률 개정안은 총 295건이 발의됐고 처리된 건은 55건(18.6%)에 불과하다. 이는 잼버리 파행에 대한 책임론, 김행 전 여가부장관 후보자 사퇴를 둘러싼 공방이 계속되면서 6월 이후 여성가족위원회 회의가 열리지 않았기 때문이다. “드라마틱한 엑시트”를 호언장담했던 김행 후보자는 정작 본인이 먼저 물러났고, 잼버리 사태 추궁을 피해 국회에서 모습을 감췄던 김현숙 여성가족부장관은 “책임을 지겠다”며 사의를 표했지만, 아직 자리를 지키고 있다. 게다가 대통령실은 2차 개각을 통해 열 명 가까운 장관을 교체했지만 여성가족부장관에 대해서는 어떠한 조치도 없었다. 이처럼 21대 국회 여성가족위원회는 지난 6개월간 개점휴업 상태나 다름없는 상황이었다. 이는 여가부 폐지를 내걸고 구조적 성차별을 부정하는 현 정부의 모습이자 이를 견제해야 할 국회마저 제 역할을 다하지 못한 결과다. <참조 기사> https://www.newspim.com/news/view/20231219001033 4. 4배나 증가한 스토킹 범죄...개정법은 피해자 보호 미흡 25일 경찰대 치안정책연구소가 ‘스토킹 범죄 처벌법상 피해자 보호를 위한 경찰의 실효적 대응’이라는 이름의 보고서를 발간하고 현행 스토킹처벌법이 추가 스토킹 범죄를 실제 막지 못할 가능성이 크다는 연구 결과를 냈다. ‘긴급응급조치’의 강제력이 부족하고 가해자를 유치장 또는 구치소에 가둘 수 있는 ‘잠정조치’ 기간이 너무 짧다는 이유였다. 긴급응급조치는 스토킹 가해자가 피해자 100m 이내에 접근하지 못하도록 하거나 전기통신 수단을 이용한 접근을 금지하는 조치를 말한다. 그러나 응급조치를 어길 경우 1,000만 원 이하의 과태료를 부과하지만, 이를 내지 않더라도 강제할 수단이 부족해 실효성이 떨어진다. 또한 접근금지 조항에 대한 잠정조치 기간은 2개월, 유치장 또는 구치소에 유치하는 잠정조치 기간은 1개월로 한정해 이 역시 효과가 떨어진다는 비판을 받았다. 신당역에서 일하다 살해당한 여성 노동자 사건 이후 정부는 스토킹처벌법을 개정하고 마치 모든 여성폭력이 해결될 듯이 호들갑을 떨었다. 그러나 위 보고서의 연구 결과에서처럼 제대로 된 피해자 보호를 위해서는 갈 길이 멀다. 실제 지난해 6월 한 달간 스토킹 신고 건수는 1만4,272건으로, 스토킹 처벌법 시행 전인 전년 동월대비 약 4배나 증가했다. <참조 기사> https://khan.co.kr/national/national-general/article/202312250827001 5. 한국 노인 빈곤율 OECD 중 가장 높다…여성 노인 더 가난 OECD가 최근 공개한 보고서 ‘한눈에 보는 연금 2023’에 따르면 2020년 기준으로 한국의 66세 이상 노인의 소득 빈곤율은 40.4%로, OECD 회원국 평균(14.2%)보다 3배 가까이 높았다. 소득 빈곤율은 평균 소득이 ‘중위가구 가처분소득의 50% 미만’인 인구의 비율이다. OECD 가입국 중 노인의 소득 빈곤율이 40%대에 달할 정도로 높은 국가는 한국밖에 없다. 성별로 보면 66세 이상 여성 노인의 소득 빈곤율은 45.3%로 남성(34.0%)보다 11.3%포인트 높았다. OECD는 “여성 노인은 소득 관련 연금 급여가 적고, 기대수명이 길어 남성 노인보다 빈곤율이 높다”며 “한국은 남성과 여성 노인의 빈곤율 차이가 11%포인트가 넘어 비교적 격차가 크다”고 분석했다. 반면, 노인 고용률은 높았다. 작년 기준 한국의 65∼69세 고용률은 50.4%로, OECD 회원국 중 일본(50.9%)에 이어 두 번째로 높았다. 한편, 한국의 연금 소득대체율(연금 가입기간 평균소득 대비 받게 될 연금액의 비율)은 31.6%로, OECD 평균(50.7%)에 못 미쳤다. 이는 국민연금 등 공적연금과 강제적 사적연금을 합쳐서 계산한 결과다. 부실한 사회보장제도가 노후소득을 제대로 보장하지 못하니 노인의 소득 빈곤율과 고용률도 치솟게 된 것이다. 그로 인해 한국은 고령일수록, 특히 여성일수록 가난에 허덕이는 사람이 많은 사회가 되었다. <참조 기사> https://www.khan.co.kr/national/health-welfare/article/202312191507001 6. 일본 ‘부부 성씨 통일 의무법’ 때문에 사실혼 많아 일본은 배우자들이 성을 하나만 선택하게 법으로 강제하는 세계에서 유일한 나라다. 혼인신고를 하면 무조건 한쪽의 성씨가 바뀌는데, 1898년부터 남편의 성씨로 통일하라는 규정이 없어도 가부장적 사회압력에 의해 아내가 남편 성씨로 개명하는 경우가 95% 이상으로 압도적이다. 일본은 이름 호칭이 성씨(예, 홍길동씨가 아니라 홍씨)이기 때문에 이 제도의 영향은 매우 크다. 이혼하게 되면 성을 바꿨던 대부분 여성이 원래 이름으로 되돌리는 온갖 절차를 떠안고 개인 의사와 무관하게 이혼이라는 사생활이 공개되는 일을 겪어야 한다. 이러한 탓에 사실혼 관계가 늘고 여성의 결혼 기피 경향이 커지고 있다. 여성들의 오랜 소망은 ‘부부 별성’ 제도다. 사실혼 부부를 대상으로 한 조사에서 혼인신고를 하지 않기로 선택한 이유 중 '별도의 성을 가지기 위해서'가 여성은 89.3%였고, 남성도 64.0%나 됐다. 일본에서도 여성의 일방적인 양보와 희생을 강요하는 이 법을 개선해야 한다는 사회적 공감대가 크다. 스탠포드대학교 월터 H.쇼렌스타인 아시아태평양 연구센터(APARC)의 스탠포드 재팬 바로미터의 설문조사 결과에 따르면 일본 국민의 70%가 부부 별성을 찬성했다. 그러나 이는 30년 가까이 국회의 벽을 넘지 못했다. 반대파의 명분은 “가족이 동일한 성씨를 써야 가족이라는 일체감이 생기고, 결과적으로 자녀에게도 이득”이므로 이것이 바뀌면 가족에 관한 사회적 비용도 높아진다는 주장이다. 설득력은 없다. 일본의 여성들은 지난 3월 8일 국제여성의날, 부부 별성 도입 요구를 내걸고 행진했고 여전히 이를 요구하고 있다. <참고 기사> https://m.hankookilbo.com/News/Read/A2023122105420001412 https://inews.co.uk/news/international-women-day-protests-japanese-surnames-2195971 https://aparc.fsi.stanford.edu/news/japanese-public-broadly-supports-legalizing-dual-surname-option-married-couple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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석유자본에 백기투항한 COP28, 파국에 맞서는 노동자 기후정의운동을 조직하자바이든도, 시진핑도 COP28에 참여하지 않았다. 사진: DPA 제28차 유엔기후변화협약 당사국총회(COP28)가 화석연료의 단계적 퇴출(phase out)을 거부했다. 지난 13일 두바이에서 채택한 최종 합의문에는 ‘10년 안에 화석연료에서 멀어지는 전환을 시작한다’고 적혀있다. 2년 전 COP26에서 합의한 석탄의 ‘단계적 감축(phase down)’보다 더 후퇴한 표현이다. 덕분에 당장 화석연료 자본이 생산을 늘려도 합의 위반이 아니다. 실제로 COP28 의장국인 아랍에미리트(UAE)부터 화석연료 투자 확대를 선언했다. 그것도 COP28 폐막 이틀 만에 말이다. 기후위기를 해결할 의지도, 능력도 없는 자본주의의 맨얼굴이다. COP28 의장 “화석연료에 더 많은 투자를” COP 회의장에는 언제나 석유자본과 핵자본 로비스트가 득실거렸다. 심지어 이번 COP28에는 대놓고 UAE 석유회사(ADNOC)의 최고경영자가 의장으로 선출됐다. 술탄 알 자베르(Sultan Al Jaber) COP28 의장은 개회 전 한 행사에서 “(1.5도 제한을 지키기 위해) 화석연료를 퇴출해야 한다는 과학적 근거는 없다”고 발언했다. 기후위기 부정론자들이나 할 법한 얘기를 할 정도로 그는 석유자본의 이해에 충실하다. 의장을 배출한 석유자본가들은 합의문에도 자신들의 이해를 관철했다. COP26에서 석탄의 단계적 감축에 합의한 이후, COP27은 화석연료에 대해서도 단계적 퇴출을 논의하기 시작했다. 그러자 회의장에 화석연료 자본을 대변하는 총 636명의 로비스트가 참석했고, 화석연료에 대한 합의는 불발됐다(전진 기사 “COP27에서 확인된 것 : 자본가들은 기후위기를 해결할 수 없다” 참고). 논의는 COP28로 넘어왔고, 세계 2위 산유국 사우디아라비아를 비롯한 OPEC 국가들이 화석연료 퇴출을 반대하고 나섰다. 그 결과 합의문 초안에는 ‘퇴출’ 대신 ‘소비와 생산의 감소’라는 표현이 등장했다. 얼마나, 언제까지 감소하겠다는 목표조차 없는 무기력한 문구다. 당장 수몰 위기에 놓인 태평양 국가들이 반발하고 나서자, 산유국들은 10년 내로 화석연료로부터 ‘멀어진다’는 문구를 최종 합의문에 넣었다. 화석연료로부터 ‘어떻게’ 멀어질 것인지는 여전히 모호하다. 이미 기후파국에 접어들었음에도 ‘10년’이나 더 기다리라고 하는 화석연료 자본에 COP28이 굴복한 것이다. 아니나 다를까. 자베르 COP28 의장은 “화석연료에 계속 투자할 것”이라고 밝혔다. 향후 7년간 1,500억 달러(한화 약 200조) 규모의 투자 계획을 COP28 폐막 불과 이틀 뒤에 발표한 것이다. COP28 의장국이 행동에 나섰으니 다른 산유국도 마음 편히 석유생산을 확대할 수 있다. COP28은 실상 기후위기 해결이 아닌, 석유자본 이윤 확대를 위해 모인 회의였던 셈이다. 기후파국으로 질주하는 COP, 이것이 자본주의의 실체다 이렇듯 COP28은 석유자본의 요구 앞에 무기력하다. 이는 비단 올해에만 일어나는 특수한 일이 아니다. 이것은 오히려 자본주의의 실체다. 자본주의에서 제국주의 전쟁, 에너지 위기, 석유자본의 이윤 앞에 ‘기후위기’는 후순위로 밀려난다. 당장 이번 COP28에도 세계에서 가장 많은 탄소를 배출하는 미국과 중국 정상, 바이든과 시진핑이 불참했다. COP는 강제력이 없고, 불참 국가에 대한 제재나 처벌도 없다. 특히 미국은 지난해에는 우크라이나, 올해는 이스라엘에 무기를 지원하며 더 많은 탄소를 배출하고 있다. 다른 국가도 마찬가지다. 지난해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으로 에너지 위기를 경험한 이후, 주요 선진국들은 일제히 화석연료로의 회귀를 외치기 시작했다. “에너지 공급을 외국에 의존하지 마라. 자국 내에 에너지원을 확보해야 한다.” 러우 전쟁과 공급망 위기가 가져다준 교훈이다. 그런데 재생에너지만으로는 자국 내에서 충분한 에너지를 확보할 수 없다. 그렇다면 답은 화석연료뿐이다. 영국 정부는 지난 10월 한 달간 북해에 27곳의 신규 유전 개발을 허가했다. 독일의 화석연료 발전량은 2020년 302TWh에서 2022년 332TWh로 10% 이상 늘었고, 영국도 164TWh에서 176TWh로 7% 이상 늘었으며, 프랑스도 56TWh에서 69TWh로 20% 이상 증가했다. COP28에서 ‘화석연료 퇴출’이 거부된 것은 예견된 일이었다. 심지어 손실과 피해기금(Loss and damage fund) 조차 난도질당했다. 지난해 COP27에서 기후위기 피해국을 지원하기 위해 선진국들이 기금을 마련하자는 내용이 진통 끝에 합의되었다. 물론 구체적인 보상 범위와 규모는 논의되지 않았다. 개발도상국들은 기후위기 피해복구를 위해 연간 1천억 달러의 기금을 요구했다. 그러나 COP28에서 확인된 기금은 약 8억 달러(0.8%)에 그쳤다. 특히 미국은 겨우 1,750만 달러를 출연하겠다고 밝혔다. 전쟁과 학살 지원에는 아낌이 없지만, 기후위기 피해국을 지원할 돈은 없다. 자본주의 국가에 기후위기 해결을 맡기는 것은 이렇듯 허망하다. 지구를 구할 유일한 희망, 노동자 기후정의운동에 나서자 한편 COP28 회의가 열린 두바이에서는 화석연료 퇴출을 요구하는 시위가 열렸다. 그런데 그 규모는 최근 수년간 COP 앞에서 열린 시위보다 눈에 띄게 줄어들었다. 이에 대해 UAE가 집회와 시위의 자유를 억압하는 국가인 탓이라는 분석이 제기된다. 그러나 이는 또한 세계 기후정의운동의 정체를 반영하고 있다. 주지하다시피 세계 기후정의운동은 그레타 툰베리 등장에 이은 '미래를 위한 금요일' 시위와 함께 단시간에 폭발적으로 성장했다. 그런데 초기 몇 차례의 대규모 거리시위나 직접행동 외에, 자본을 힘으로 강제하거나 실제 변화를 이룬 사례는 많지 않다. 지금, 자본이 기후정의운동을 두려워한다고 보기는 어렵다. 운동의 동력은 정체하고 있다. 그런데 독일에서 반전의 실마리가 나타났다. 노동자가 참여하는 대규모 기후파업이 성사된 것이다. 독일의 기후정의 활동가들은 노동자계급의 참여가 기후정의운동에 새로운 동력을 제공할 것이라고 판단했다. 당시 대중교통 노동자들은 저임금과 장시간 노동에 시달리고 있었으며, 퇴사율이 높았다. 또한 도서 지역에는 대중교통 체계가 매우 열악했다. 독일의 미래를 위한 금요일 활동가들은 2020년부터 대중교통 노동자의 생활임금이 기후정의라며 연대하기 시작했다. 그 결과 2023년 3월 3일, 세계 기후파업에 맞추어 독일 최소 30개 도시, 대중교통 노동자들을 비롯해 20만 명 이상이 파업에 나섰다. 독일 고용주 연맹(BDA)의 CEO 슈테펜 캄페터는 파업에 대해 “노조가 정치파업의 영역으로 진입하고 있다”며 비난했다. 자본이 두려워할 만한 기후파업을 조직해 낸 것이다. 같은 달 27일에는 대중교통 노동자만이 아니라 전체 운송노동자의 파업인 메가스트라이크(Mega strike)로 확대됐다. 이는 노동자계급의 참여가 기후정의운동을 반등시킬 수 있는 경로임을 보여준다. 노동자계급은 자본의 이윤을 중단시킬 수 있는 유일한 존재다. 기후정의운동에 가장 절실한 ‘자본에 대한 강제력’을 만들어낼 수 있는 집단이라는 뜻이다. 물론, 한국에서 노동자계급에게 기후정의운동은 여전히 어색하다. 그러나 발전노동자를 중심으로 노동자 기후정의운동은 분명 확산하고 있다. 2022년 924 기후정의행진 이후 에너지 산업 국유화와 해고 없는 에너지 전환을 요구하는 발전노동자들이 등장했다. 발전뿐만 아니라 산업 전반에서 자본의 책임을 묻고 해고 없는 산업전환을 쟁취해야 한다는 문제의식을 던져야 한다. 내년 봄, 석탄화력발전소 폐쇄를 앞둔 충남 지역에서 ‘정의로운 전환을 위한 충남노동자행진’이 열린다. 한국에서도 본격적인 노동자 기후정의운동이 시작된다. 이것만으로도 연대할 이유는 충분하다. 자본주의가 가속하는 기후위기, 노동자계급이 앞장서서 막아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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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의 투쟁] 울산 팔레스타인 3차 긴급행동: 한국군 군사적 개입·홍해 파병 반대한다!Instagram에서 이 게시물 보기 사회주의를 향한 전진(@marchtosocialism)님의 공유 게시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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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의 투쟁] 한국군 군사적 개입·홍해 파병 반대한다! 가자지구 집단학살 중단하라!Instagram에서 이 게시물 보기 사회주의를 향한 전진(@marchtosocialism)님의 공유 게시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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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 한 명도 포기할 수 없는” 건보고객센터 노동자들의 투쟁은 여성 노동자 모두의 투쟁“건보고객센터지부의 투쟁은 지난 2019년 톨게이트 수납원들의 직접고용 투쟁과 너무나도 닮아 있어 할 말을 잃게 만듭니다. 2015년 이후 입사자 버리면 지금 당장 받아주겠다고 했습니다. 그러나 우리는 동지들의 손을 더 꼭 붙잡았고 더 가열 차게 싸웠습니다. 물론 그 길은 더 힘들고 춥고 질긴 싸움이었습니다. 하지만 끝내 모두 함께 복직할 수 있었습니다.” 용산 대통령 집무실 앞 박순향 민주연합노조 톨게이트지부장의 음성은 쩌렁쩌렁했다. 직접고용을 요구하며 2019년 6월부터 서울영업소 캐노피 고공농성과 함께 한국도로공사 김천 본사 점거 농성을 비롯해 수백 번의 집회와 문화제, 행진 시위 끝에 승리했던 그날의 결기 그대로였다. 그는 건보 고객센터지부 동지들에게 그 결기를 남김없이 전하려는 듯 영하 20도의 칼바람이 무섭게 할퀴고 가도 뜨거운 연대의 메시지를 계속 눌러 말했다. “우리는 약하지 않습니다. 약하지 않다는 걸 보여줍시다. 우리가 무너지기를 기다리는 저들에게 제대로 착각하고 있다는 걸 보여주었으면 좋겠습니다.” 21일 오전 건보고객센터 노동자들의 파업을 지지하는 여성 노동자들의 선언 기자회견 참가자들은 모두 비슷한 말을 가슴에 품고 있었다. 바로 “이 투쟁이 반드시 승리해야 한다”는 기도와 같은 마음이었다. 철석같이 한 약속을 헌신짝처럼 내버린 공단에 또다시 거리에 선 건보고객센터 노동자들의 투쟁은 누구에게나 정당한 싸움이었다. 더구나 건보고객센터가 대표적인 여성 일자리이기에 여성 노동자라면, 공단의 배신과 노동자들의 투쟁은 누구에게나 다 자기 얘기였다. 1년 전 약속을 저버린 강원도교육감 때문에 여전히 학교로 돌아가지 못하고 있는 유천초분회 부당징계자 남정아 교사 역시 그랬다. 그는 “2년 전, 온 세상에 공공연히 알리고 다짐한 사회적 합의, 약속이 아직 지켜지지 않고 있는데 어찌 그대로 두고만 볼 수 있겠습니까”라며 ‘단 한 명도 포기할 수 없다’는 건보고객센터 노동자들의 요구를 자기 일처럼 이해할 수 있다며 지지했다. 시험은 볼 만큼 봤다 사실 소속기관 전원 전환은 건보고객센터 노동자들이 2년 전 80여 일의 파업 투쟁을 통해 쟁취한 약속이다. 노조는 세 번의 파업 투쟁과 수많은 거리 시위 끝에 공단으로부터 소속기관 전환 약속을 받아냈다. 하지만 공단은 합의 이행을 차일피일 미루다 노조가 파업을 준비하자 그제야 안을 꺼내 들었지만, 그것은 오히려 ‘제한경쟁 채용, 공개경쟁 채용’이라는 구조조정안이었다. 이경화 건보고객센터지부 경인지회장에 따르면, 공단의 구조조정안은 크게 3가지로 나뉜다. 첫째는 2017년 5월 12일 이전 입사자에 대한 것이다. 이 안은 서류전형으로 자격요건 일치 여부를 확인하고 면접과 인성검사를 통해 제한경쟁 채용한다는 내용이다. 이에 따르면, 17년이나 근무한 상담사도 자격검증이 필요하다. 둘째는 2017년 5월 13일부터 2019년 2월 27일 입사자를 대상으로 서류전형, 건강보험상담 기초지식평가, 인성검사, 면접을 보고 채용 경로와 친인척 여부 등을 확인해 부정입사 여부를 점검하고 제한경쟁 채용하겠다는 안이다. 이 시기에 입사한 사무직은 건강보험 상담기초평가가 아닌 직업기초능력 평가를 본다고 한다. 마지막으로 2019년 2월 28일 이후 입사자에 대해선 서류전형, 직업기초능력평가, 인성검사 면접을 진행하겠다고 한다. 더구나 이들은 신규입사자와 함께 공개경쟁 채용되며, 그동안의 근속을 경력으로 보고 가점을 준다고 할 뿐이다. 이러한 공단의 구조조정안에 이경화 경인지회장은 “우리 건강보험 상담사는 고용노동부에서 직업양성과정으로 진행하는 건강보험 상담사 양성과정의 교육을 마치고 시험 보고 보고 또 보고, 공단사번 받고, 상담사로 일하는 사람들”이라며 “이미 시험은 볼 만큼 봤다”라고 잘라 말했다. 또 “지금도 알바몬과 잡코리아 등 구인 사이트에 건강보험 상담사 구인광고가 올라가고 있다”라며 “단순상담, 협력사 정규직(이라고 구인하는데) 취업사기 아닙니까?”라고 제기했다. 2년 전 소속기관 전환을 약속하고도 이를 저버린 채 또 다른 상담사를 채용하겠다는 것은 현재의 불안정 고용형태를 유지하겠다는 말과 다르지 않은데도 ‘협력사 정규직’이라는 말을 버젓이 쓰고 있기 때문이다. 천여 가지를 외워야 상담할 수 있는 업무를 생각하면 ‘단순상담’이라는 말도 도저히 나올 수 없는 말이다. 그러니까 공단은 2년 전에 어떤 약속을 했든, 현대의 ‘화이트칼라 공장’이라는 콜센터 산업의 구조적인 본질, 그러니까 주로는 여성 노동자를 대상으로 한 저임금 불안정한 노동조건을 어떻게든 유지하고자 하는 것이다. 은수 한국여성민우회 여성노동팀 활동가가 지적했듯, “콜센터 노동자의 대부분은 여성이며, 성희롱·성차별에 취약한 노동환경, 노동권 사각지대에 놓인 고용의 이중구조화, 고강도 노동 대비 저임금, 사회적으로 전문성을 인정받지 못하는 점 등 젠더화된 직군에서 나타나는 특징이 고스란히 담겨 있다.” 더구나 “이러한 노동환경을 개선하기 위해 2019년 감정노동자보호법이 도입됐지만, 콜센터 노동자의 노동권과 건강권을 지키기에는 법의 실효성이 발휘하기 어려운 상황이다. 간접고용된 이들은 원청에도 하청에도 그 책임을 묻기 어렵기 때문이다.” 단 한 명도 포기할 수 없다 공단은 노동자들을 세 종류로 분류해 등급을 찍고 구조조정을 할 계획이지만, 건보고객센터 노동자들의 입장은 전혀 다르다. 이들은 '단 한 명도 포기할 수 없다'고 말한다. 2017년 5월 12일 이전 입사자도, 2017년 5월 13일부터 2019년 2월 27일 입사자도, 2019년 2월 28일 이후 입사자도 단 한 명도 포기할 수 없다는 게 노동자들의 입장이다. 사실 이 구호는 2015년 이후 여성살해에 맞서 아르헨티나를 뒤흔든 수백만 규모의 '니 우나 메노스 운동(Ni Una Menos, 단 한 명도 잃을 수 없다)'의 구호였다. 건보 고객센터는 전형적인 여성 일자리라는 점에서 니 우나 메노스 투쟁과 연결되어 있다. '해고는 살인'이라는 점에서도 그렇다. 사실 여성을 직장에서도 가정에서도 쥐어짜고 박해하며 살해하는 신자유주의 아래 여성 노동자들의 절규가 닮은 것은 이상한 일이 아니다. 그런 의미에서 건보고객센터 노동자들의 투쟁을 엄호하는 여성 노동자들의 선언은 중요한 의미가 있다. 콜센터는 대표적인 여성 다수 일자리라는 점에서 이들의 투쟁은 전체 여성 노동자들의 이해와 직결된다. 그래서 “단 한 명도 포기할 수 없다”는 외침은 여성 노동자 모두의 구호이기도 하다. 그리고 그것이 건보고객센터 노동자들의 파업을 지지한 298명의 개인과 56개 단체의 외침이었다. 건보고객센터지부는 이제 용산 대통령 집무실에서 원주 건강보험공단 본부까지 500리를 도보로 행진하고 있다. 최악의 혹한 속에서 물집 잡힌 발을 한 발 한 발 떼며 이미 절반 이상을 걸었다. 21일을 기준으로 전 조합원 전면 총파업 51일에, 이미 이은영 지부장은 35일 단식 끝에 쓰러지고, 조합원들은 릴레이 동조단식으로 16일째 곡기를 끊고 있다. “우리는 법과 제도를, 그에 따른 처리지침을 국민들에게 설명하고 설득하는 건강보험의 첫인상이고 얼굴입니다. 그에 합당한 노동처우와 임금을 요구합니다”라는 이경화 경인지회장의 요구가 실현돼야 할 때다. 이날 선언은 2024년 3.8여성파업조직위원회가 제안했다. 조직위는 내년 3월 8일 국제 여성의 날, 여성파업을 준비하며 최근 ‘여성파업 첫발떼기’ 토론회를 비롯해 설문조사 사업, 오픈 마이크 등의 활동을 진행하고 있다. 조직위에는 링크(https://bit.ly/2024womenstrike)를 통해 가입할 수 있다. [파업지지 여성노동자 선언문] 건강보험공단 고객센터 노동자들의 파업을 지지한다! 그대들의 승리가 우리 모두의 승리다! 지난 11월 1일 건강보험공단 고객센터(이하 건보고객센터) 비정규직 여성노동자들이 소속 기관 전환 합의 이행을 촉구하며, 파업에 들어갔다. 건보고객센터 상담노동자는 2021년 10월 소속기관 전환을 사회적으로 합의했음에도 2년이 지난 지금까지도 민간위탁 그대로이기에 파업에 돌입한 것이다. 파업한 지 벌써 50일째(선언발표일인 12/21일 기준)지만, 아직까지 건강보험공단(이하 공단)은 합의이행에 대한 뚜렷한 입장을 보이고 있지 않다. 상담노동자들이 하는 상담업무는 건강보험에 가입된 모든 사람과 연관된 일상적이고 중요한 정보가 담긴 공공성이 있는 업무일 뿐 아니라 상시지속업무임에도 여전히 비정규직으로 남아 있다. 건보고객센터 상담노동자들이 처음부터 비정규직이었던 것은 아니다. 1998년 외환위기 이후 파견법이 제정되고 여성노동자들이 일하는 분야 대부분이 간접고용 비정규직으로 바뀌었다. 건강보험공단은 2006년 고객센터를 외주화해 전화ᄋ인터넷 민원 상담업무를 위탁받은 민간업체와 노동자들은 개별적으로 근로계약을 체결했다. 건보고객센터는 전국 7개 지역에 12개 민간 용역업체로 위탁 운영되고 있다. 2년에 한 번씩 12개의 민간업체와 번갈아 가며 근로계약을 맺으며 고용불안과 열악한 노동조건에서 일해야 했다. 업체 변경으로 인해 근속연수가 반영되지 않고, 업체별로 서로 다른 복지정책과 노동조건이었으며 임금과 노동조건은 운에 맡기는 거나 다름없었다. 문재인 정부 하에서 국민연금공단ᄋ근로복지공단이 콜센터를 정규직 전환했지만 건보고객센터 상담노동자는 여전히 비정규직이었다. 건보고객센터ᅠ노동자들이ᅠ수행해ᅠ온ᅠ콜센터ᅠ상담노동은ᅠ대표적인ᅠ여성ᅠ저임금ᅠ불안정ᅠ노동이다. 10년을ᅠ일해도ᅠ언제나 ᅠ최저임금 수준인 220만 원이었으며, 인력 부족으로ᅠ화장실도 가지 못할ᅠ정도로ᅠ격무에ᅠ시달리고 있다. 공단은 2021년 90일이 넘는 노동자들의 파업 끝에 직접고용은 아니나, 소속기관 전환에 합의했다. 민간 용역업체에 떠맡겨온 왜곡된 구조를 개선하기로 한 것이다. 그러나 2년이 지나도록 공단은 어떤 합의 이행도 하지 않고 있다. 오히려 소속기관으로 전환할 시 고객센터 인원의 41.3%에 해당하는 700명을 정리하고 경쟁 채용을 하겠다고 한 것이다. 공단은 합의사항 이행은커녕 해고계획을 세운 것이나 다름없다. 2021년 합의한 고객센터의 소속기관 전환은 사회적 약속이다. 원주ᅠ건강보험공단ᅠ본부 앞에서는 목숨을 건 지부장의 단식농성이 있었고, 현재ᅠ릴레이 단식농성을 비롯해ᅠ치열한 싸움을 이어가고ᅠ있다. 전국의 고객센터 노동자들은 공단이 있는ᅠ원주로 와서 투쟁을 하고 매서운 겨울 바람과 빗속에서도 매일ᅠ집회를 하고ᅠ있다. 그러나 공단은 이은영 지부장이 35일간의 단식으로 쓰러질 때까지도 아무런 관심도 보이지 않는 비상식적 태도를 유지하고 있다. 언제까지 여성노동자들에게 고용불안과 열악한 노동조건을 강요할 것인가! 우리는 여성노동자에 대한 일상적이고 노골적인 착취와 차별에 반대하며 공단에 요구한다. 단 한 명도 포기할 수 없다! 합의대로 건보고객센터 상담노동자 전원을 소속기관에 전환 채용하라! 생활임금 쟁취하고, 노동조건 개선하자! 여성 노동자 단결해 여성억압, 성별임금 격차, 불안정노동 철폐하자! 2023년 12월 21일 298명의 개인과 56개 단체 등 선언 참가자 일동 단체: 2024 3.8여성파업조직위원회, 고양여성민우회, 금속노조 kec지회, 고 이동우 동국제강 비정규직 노동자 산재사망 해결촉구 지원모임, 공공운수 대전지역일반지부, 공공운수노조 21센츄리시티지회, 공공운수노조 서울시사회서비스원지부, 공공운수노조 한국마사회지부, 공공운수노조 환경부 국가하천관리지부, 교육노동자현장실천, 구속노동자후원회, 극단고래, 노동인권실현을위한 노무사모임 여성노동인권분과, 녹색당, 대구여성노동자회, 대한불교조계종 사회노동위원회, 디엘이앤씨 중대재해근절 및 고 강보경건설일용직하청노동자사망시민대책위원회, 민주노총 공공운수노조, 민주노총 공공운수노조 충북지역평등지부, 민주한전MCS지부, 변혁적여성운동네트워크 빵과장미, 부산경남울산열사정신계승사업회, 비정규노동자의집 꿀잠, 비정규직이제그만공동투쟁, 사무금융노조 보험설계사지부, 사회주의를향한전진, 생명안전 시민넷, 서울교통공사노동조합 책읽는여성노동자모임, 서울여성노동자회, 성서공단지역지회, 영등포산업선교회, 예장 언약교회(한익스프레스물류창고화재참사 고 김형주님 유가족일동), 우리동네노동권찾기, 인권교육센터 들, 인권운동네트워크 바람, 인권운동사랑방, 인천사람연대, 인천여성노동자회, 장애해방열사_단, 전국대리운전노동조합, 위풍당당 여성대리기사모임,전국민주연합노동조합 톨게이트지부, 전국여성농민회총연합, 전국학습지산업노동조합, 정태수열사추모사업회, 진보 3.0,진보당 여성-엄마당, 천주교예수회JPIC, 철도고객센터지부, 파리바게뜨노동자힘내라공동행동,플랫폼C,한국노동안전보건연구소,한국여성노동자회,한국여성정치네트워크, 한국옵티칼하이테크지회, (사)제주여민회 (총 56개 단체) 개인 : 강남남,강미진,강수정,강한아,강호원,경원,고광완,고지연,고태은,구본경,권민경,권수정,권영국,권지수,권지은,권태성,권혜진,김가은,김경남,김경미,김그루,김금희,김기웅,김나연,김나은,김나혜,김다빈,김미경,김미랑,김미성,김미이,김미자,김민숙,김민정,김민준,김병수,김선철,김선호,김설,김성숙,김성애,김소라,김소현,김수연,김수원,김수현,김수현,김승화,김연순,김연희,김영태,김예린,김우주,김유리,김유주,김윤수,김윤영,김은희,김자아,김정남,김정대,김정대,김정심,김정우,김정우,김정희,김정희,김종련,김종환,김주영,김지혜,김현주,김혜란,김혜명,김혜선,김혜윤,김혜은,김혜진,깅순임,나경화,남영란,남정아,남지윤,남춘미,뎡야핑,도명화,레나,류남미,마미자,명숙,몽,문소홍,미류,밍갱,박광미,박근태,박금순,박내현,박단,박미경,박선미,박선영,박성혜,박세중,박소희,박수정,박순남,박신영,박완식,박은경,박은주,박은화,박조은,박주분,박창근,박현미,박현서,박현숙,박현주,박혜란,반효정,방경희,방미옥,방민서,방진,배서영,배소희,배예주,배우리,배진경,배태선,배현주,백선영,백승호,백종성,범현숙,새라,서경숙,서명숙,서범주,서재은,서정은,서지원,서춘미,서희경,선미선,설애정,설재환,성희령,손소희,손정미,송재연,송제경,송제경,송지영,숨,신경순,신상아,신용희,신유정,신효진,심청,심상호,안나,안소정,안종호,안지현,양동민,양수복,양희주,엔틸드,예진,오승희,오종연,오춘상,유경이,유경화,유설인,유영기,유효빈,유흥희,윤용숙,윤지영,은사자,이강규,이도한,이란화,이명실,이명환,이미선,이민아,이민자,이민주,이복음,이복주,이상림,이소연,이수미,이수빈,이수정,이수현,이숙견,이승주,이시영,이애진,이연화,이영진,이온,이원우,이윤주,이윤주,이인영,이재준,이지연,이지영,이지윤,이진이,이진희,이채은,이청우,이하나,이해성,이향춘,이현숙,이혜정,임병택,임영빈,임정순,임청미,장경희,장남희,장동준,장미정,장미화,장수지,장은희,장종수,장준호,전경희,전다정,전진,전희영,정경애,정고운,정난숙,정다빈,정명선,정명숙,정보라,정보영,정서영,정은숙,정은희,정이슬,정인아,정자현,정종순,정진수,정진희,정창수,정태연,정해경,정혜진,조귀제,조선영,조성애,조애진,조영은,조혜원,주성민,주현이,지수,지혜복,진다인,차미애,최명식,최민,최보근,최새봄,최수빈,최수정,최양예,최은아,최정숙,최정학,최종춘,하지연,한미경,한아람,함인희,허지희,혜원,홍은영,홍지원,홍희자,황서현,황세연,황태령 (총 298명의 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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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의 여성파업 1] 아이슬란드 - 여성이 멈추면 세상이 멈춘다![편집자 주] 지난 12월 6일 열린 “여성파업 첫발떼기 토론회”를 비롯해, 2024년 3월 8일 여성파업을 조직하기 위한 활동이 여성파업조직위원회 주도로 진행되고 있다. 사회주의를향한전진은 노동자계급의 여성해방 운동을 건설하기 위한 여성파업 시도에 전폭적인 지지를 보내며, 이 운동의 현황과 과제, 전망을 짚어 보기 위해 세계 여러 나라 여성파업 사례를 돌아보고자 한다. 1975년 아이슬란드 여성파업에서 시작해 지난 십수 년 사이에 폴란드, 스페인, 아일랜드, 스위스, 아르헨티나 등 곳곳에서 여성파업이 일어났다. 각각의 사례는 그 자체로 세계 여성 노동자의 현실과 투쟁에 대한 우리의 시각을 넓혀 주기에 충분하다. 또한 여성파업의 양상과 결과, 다양한 쟁점을 훑어보면 우리의 과제에 대한 인식도 더 풍부하게 채워 갈 수 있을 것이다. 오로라와 화산, 빙하의 나라 아이슬란드. 아이슬란드에 여행을 간 사람들은 ‘마치 다른 행성에 온 듯한 기분’을 느낀다고 한다. 한국과 비슷한 면적의 아이슬란드는 천혜의 자연이 있고 1인당 GDP가 세계 8위인 부유한 나라다. 이보다 더 유명한 점은 ‘세계에서 가장 평등한 나라’라는 것이다. 2006년부터 세계경제포럼(WEF)이 발표한 ‘글로벌 젠더 격차 보고서’를 보면 아이슬란드는 2023년까지 14년 연속 성평등 국가 세계 1위1)를 차지했다. 그런가 하면 여성과 관련해 아이슬란드에 붙는 ‘세계 최초’의 수식어가 한둘이 아니다. ‘세계 최초로 민주적으로 선출된 여성 대통령(1980년)’, ‘세계 최초로 의석을 얻은 여성정당(1983년)’, ‘세계 최초로 커밍아웃한 레즈비언 대통령(2009년)’ 등이 있다. 한국이 OECD 국가 중 27년째 여성의 저임금으로 성별 임금 격차 1위를 차지하고 있는 현실과 견주어 보면 아이슬란드는 마치 다른 행성인 듯하다. 1) Global Gender Gap Report. 남성과 여성의 권익을 비교하는 통계로 임금, 교육, 의료 등 분야를 기준으로 남성의 권익을 1로 두고 여성의 권익을 계산한 지수. 조사대상 146개국 중 0.9를 넘는 나라는 0.912를 기록한 아이슬란드 하나뿐이었다. 한국은 105위로 0.680. 이러한 나라에서 최근 국제적으로 떠들썩한 사건이 있었다. 2023년 10월 24일, 성인 여성의 90%가 온종일 ‘여성파업’을 벌인 일이다. 성평등 모범 국가로 국제적 부러움을 사는 아이슬란드에서 거의 모든 여성이 파업했다니 놀라운 뉴스다. 무엇 때문일까? 아이슬란드는 여성의 파라다이스라 불리지 않는가? 파업 참가 여성들은 1975년으로 거슬러 올라가 여성파업의 역사를 이야기했다. 아이슬란드 여성의 차별과 억압, 저항의 역사를 살펴보자. 사회를 뒤흔든 1975년 10월 24일 여성이 멈추면, 세상이 멈춘다 2023년 현재 인구 약 39만 명인 섬나라 아이슬란드는 무인도였던 시기를 지나 870년경 바이킹이 세운 나라다. 과거부터 남성이 바다에 한참 동안 나가 고기를 잡고 여성은 사냥부터 농사일, 모든 집안 살림과 육아를 도맡아 하는 삶을 살았다고 한다. 오늘날 정치적으로는 의원내각제를 채택하고 있으며 다른 북유럽 국가들과 달리 보수 우파(우파 연정)가 정권을 잡아 왔다. 경제는 척박한 환경 탓에 비교적 더디게 성장했다. 여성들이 다닐 수 있는 일터는 생선 공장 정도였다. 아이슬란드에서는 1915년부터 여성의 참정권이 보장되었고, 1931년에는 강간, 근친상간, 산모의 건강에 위협이 되는 경우에 임신중지가 합법화됐다. 국제노동기구(ILO)의 8대 기본협약 중 하나인 ‘동일 가치 노동에 대한 남녀근로자의 동일보수에 관한 협약(1951년)’을 비교적 빠른 시기인 1958년에 비준했다. 1961년에는 평등임금법(Equal Pay Act)을 제정했다. 겉으로 보면 여성의 권리가 점진적으로 확대되었고 그만큼 차별이 없어 보인다. 그러나 현실은 달랐다. 1915년부터 여성 참정권이 보장되었지만 60년간 의회에 진출한 여성은 단 9명에 불과했다2). 무엇보다 생산과 재생산 노동영역에서 여성에 대한 차별이 심했다. 1960년대 여성 노동자의 임금은 남성 노동자 대비 60% 미만으로 많은 여성들이 저임금에 시달렸다. 특히 여성이 많은 직종의 임금이 낮고 고용이 불안정했다. 가사와 돌봄 노동은 순전히 여성의 몫이었다. 여성의 노동시장 참여율은 34%에 수준에 그쳤다. 여성은 집 안에서 온갖 무급 재생산 노동을 하느라 직장에서 일할 수 없었고, 일해도 남성보다 적은 임금과 나쁜 노동조건에서 차별당하며 일하다 퇴근해서 다시 가사돌봄 노동에 시달리는 게 대부분 여성의 일상이었다. 여성은 법과 다른 현실에서 살아갔다. 2) 1975년 기준 여성 하원의원은 전체 의석의 5%인 3명이었다. 그러다 68혁명으로 대표되는 1960년대 국제적 저항 운동의 물결이 아이슬란드의 여성운동에 영향을 미쳤다. 여성들은 다른 나라에서 벌어진 거대한 노동자 투쟁, 학생운동, 사회운동과 더불어 여성운동의 성장과 여성해방 사상 등에 영향을 받으며 여성운동을 성장시켜 갔다. 여성 차별과 억압의 현실로 인해 점점 더 많은 여성이 문제의식을 갖고 저항을 통한 변화를 꾀했다. 1970년대가 되자 5대 여성단체의 회원 수가 전체 여성의 3분의 1에 이르렀다. ‘레드스타킹스(Redstockings)’는 여성단체 중 하나였다. 레드스타킹스는 1970년에 결성된 페미니스트 단체로 노동절인 5월 1일 빨간 스타킹을 신고 ‘인간이다! 상품이 아니다!’라는 슬로건으로 행진하며 대중 앞에 등장했다. 레드스타킹스는 20~30대 여성 사회주의자들이 주축이었으며 자본주의에 맞서는 계급투쟁과 여성해방의 과제가 연결되어 있다는 정치적 입장을 채택하고 있었다. 이들은 성별 임금 격차 해소, 직장 내 젠더평등 등 노동의 권리와 임신중지권, 유치원 돌봄의 확장 등 재생산권을 위해 투쟁했다. 1970년 첫 총회에서부터 ‘아이슬란드 여성 총파업’을 안건으로 제출했는데 이는 자본주의에서 벌어지는 여성에 대한 차별과 억압을 여성의 주체적 파업투쟁으로 깨뜨리자는 정치적 표현이었다. 그리고 5년 후 그 목표는 현실이 되었다. UN은 1975년을 세계 여성의 해(International Women’s Year)3)로 지정했다. 이를 준비하는 1974년 6월 여성단체 간담회에 초대받은 레드스타킹스는 그 자리에서 ‘여성파업’을 제안했다. 하지만 이 제안은 거절당했고 그 후 이들은 노동자에게 다가갔다. 1975년 1월에 최저임금을 받는 여성 노동자들이 가입한 노동조합을 찾았다. “여성이 일터에서의 노동력과 가정에서의 재생산 노동의 힘을 세상에 보여 주기 위해 1년에 하루, 모든 여성이 파업을 벌이자!” 레드스타킹스의 제안에 여성 노동자들이 열광했다. 3) 유엔은 1975년 '세계 여성의 해' 기간의 3월 8일을 세계 여성의 날(International Women's Day)로 기념하기 시작했다. 레드스타킹스와 노동조합은 더 많은 여성 노동자를 만나며 여성파업을 조직했고 아래로부터 긍정적이고 상당한 여론과 지지를 만들어 갔다. 5월 총리실 주관으로 열린 세계 여성의 해 운영위원회는 그 구성에 노동조합과 레드스타킹스를 포함시켰다. 이 기구는 다양한 계급과 계층, 정치적 입장의 참여와 합의를 우선해 여성파업 제안을 수용하면서 그룹별 대표자, 교사 노동자, 미혼모 등 8명의 이름으로 여성파업을 정식 상정했다. 노동자는 일터에서 일손을 놓거나 휴가를 쓰고, 자영업자는 문을 닫거나 가게에서 나서고, 전업주부는 집안일에 손을 떼기로 했다. 그러자 일부 우파 여성과 여성단체가 반발했다. 이들은 여성 노동자들이 파업 행동으로 사업주에게 해고될까 봐 걱정된다는 핑계를 대며 ‘파업’의 급진성에 반대했고 결국 위원회는 ‘파업(Strike)’ 대신 ‘휴일(Day Off)’로 변경해 합의에 이르렀다. 모든 노동조합이 협력해 날짜를 10월 24일로 정했다. 6월 20일과 21일 레이캬비크(Reykjavik)에서 열린 여성회의에서 아이슬란드 말로 '크베나프리(Kvennafri)'라고 부르는 10월 24일의 선언문4)을 채택하며 아이슬란드의 첫 여성파업이 결정됐다. 이날을 주도한 세력이 모두 페미니스트도 아니고 급진적이지도 않았지만, 모든 세력이 결집하면서 더 많은 여성이 이날을 기다렸다. 사람들은 홍보물에 실린 ‘여성 휴일(Women's Day Off)’을 ‘여성파업(Women's Strike)’이라고 불렀다. 4) [전문] 1975년 10월 24일 선언문 1975년 6월 20일과 21일 레이캬비크에서 열린 여성 회의(Women's Congress)는 여성이 해온 일의 중요함을 보여주기 위해, 다가오는 유엔의 날인 10월 24일 하루 '데이 오프'를 실시할 것을 촉구하는 바입니다. 왜 이러한 제안이 모든 연령의 여성들과 정당들이 모인 의회에서 발의되고 가결되었을까요. 그 이유는 많지만 여기에 먼저 몇 가지를 말하겠습니다. · 누군가가 형편없을 정도로 보수가 적은 직업을 필요로 할 때, 그 구직 광고는 여성을 대상으로 하기 때문입니다. · 왜냐하면 통상과 무역에서 여성의 평균 임금은 같은 직종의 일을 하는 남성의 평균 임금의 75%에 불과하기 때문입니다. · 왜냐하면 아이슬란드 노총(Icelandic Trades Union Congress) 산하의 주요 노동조합에는 여성 대표가 없기 때문입니다. · 왜냐하면 여성 노동자와 남성 노동자의 월평균 소득 차이가 아이슬란드 크로나로 30,000(한화 약 270,000원) 정도이기 때문입니다. · 왜냐하면 농부의 아내들은 농부 노조의 정식 회원으로 받아들여지지 않기 때문입니다. · 왜냐하면 주부인 여성들에게 흔히 "가사노동은 일이 아니라 그저 하우스키핑(가사유지)에 불과"라고 말하기 때문입니다. · 왜냐하면 보육원이 현대사회에서 필수적인 부분이라는 것을 이해할 수 없거나 이해하지 않으려는 권위 있는 남성들이 존재하기 때문입니다. · 왜냐하면 농장에서 농부 부인의 노동 기여도는 아이슬란드 크로나로 1년에 175,000(한화 약 1,600,000원) 이상으로는 인정되지 않기 때문입니다. · 왜냐하면 취업지원자가 남성인지 여성인지가 개인의 교육 수준이나 역량보다 더 중요하다고 여겨지기 때문입니다. · 왜냐하면 주부의 가사노동 경력은 노동 시장에서 그 어떠한 가치로도 고려되지 않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내린 결론은, 지역사회에 대한 여성의 기여도가 과소평가되고 있다는 것입니다. 다가오는 10월 24일에 '데이 오프'함으로써 여성들과 다른 사람들에게 사회에서 우리의 역할이 얼마나 중요한지를 보여주자는 것입니다. 국제 여성의 해에 이 '데이 오프'의 날을 기념할 만한 날로 만들기 위해 함께 연대합시다. 평등, 발전, 평화 1975년 10월 24일, 직장에서 집에서 여성들이 일제히 일손을 놓았다. 여성의 90%가 파업에 참여했다. 여성이 멈추자 사회가 멈췄다. 거의 모든 교사가 여성인 보육원이 문을 닫았다. 마찬가지로 교사의 65%가 여성인 초등학교, 중학교, 고등학교가 휴교했다. 주로 아이들이 이용하는 기관도 문을 닫았다. 각종 상점과 가게가 문을 닫았다. 생산가공 공장이 멈췄다. 전화 서비스가 중단됐다. 우체국 업무가 멈췄다. 남성 항공기 조종사는 있었지만, 승무원이 없어 항공사 여객기 운항이 중단됐다. 은행원이 없어 임원들이 커피를 직접 끓이고 창구업무를 봤다. 조판공이 대부분 여성이라 신문이 발행되지 않았다. 방송국에서는 남성 아나운서와 스태프가 남아 여성파업을 보도했다. 남성 디제이가 진행하는 라디오에서는 여성이 작곡했거나 여성을 위한 음악 사이로 어린아이가 노는 소리가 흘러나왔다. 농촌의 여성파업 상황을 묻기 위해 디제이가 시골 마을 청취자의 집에 전화를 걸자 아이를 돌보던 남성들이 전화를 받았다. 여성 공연자가 없어 공연도 줄줄이 취소됐다. 여성이 멈추자 세상이 멈췄다. [사진: 1975년 아이슬란드 여성파업] 집에서도 여성이 일을 멈추니 남성들이 집안일과 육아, 가족 돌보기를 해야 했다. 남성 노동자들은 아이를 데리고 출근하거나 아예 직장에 나가지 못했다. 고용주들은 아이들에게 제공할 과자와 사탕, 연필과 종이를 사다 날랐다. 끼니를 해결하기 위해 남성들은 문을 연 가게를 찾아다녔다. 마트에는 조리가 편리한 소시지와 과자가 일찌감치 품절됐다. 저녁이 되자 주택가 거리마다 연기와 타는 냄새가 진동했다. 남성들이 식사를 준비하며 음식을 태운 경우가 많았기 때문이다. 첫 여성파업 집회는 오후 2시 5분에 시작됐다. 2시 5분은 당시 일터에서 남성과의 임금 격차를 비교해 여성 노동자의 유급노동이 끝나는 시간을 계산한 것이었다. 여성들은 광장으로 뛰쳐나왔다. 수도 레이캬비크에 있는 렉자르토르그 광장은 발 디딜 틈도 없이 여성 인파로 가득 찼다. 광장 인근 거리와 골목까지 여성들이 가득 메웠다. 처음 열린 여성파업 집회에 참여한 인원은 2만 5,000명에서 3만 명으로 당시 인구의 무려 10%가 넘는 규모였다. 다른 주요 도시에서도 많은 여성이 같은 시간에 여성파업 집회를 열었다. “여성이 멈추면 세상이 멈춘다”, “유치원을 늘려라”, “임금을 평등하게 지급하라”, “성폭력을 멈춰라” 등 여성들은 사회를 향해 누구보다도 힘차게 구호를 외치고 피켓을 들어 올렸다. 여성단체 활동가, 여성 노동자, 전업주부 등이 마이크를 잡고 그동안 억눌려 온 현실과 권리를 주장했다. 마지막 연사는 54세의 비정규직 가사 노동자 아달헤이두르 비얀프레드스도티르(Aðalheiður Bjarnfreðsdóttir)였다. 그는“여성들이 깨어나고 있다. 여성은 먼 옛날부터 남성이 세상을 지배해 왔다는 것을 알고 있다. 그 세상은 어땠을까?”라고 말문을 열었다. “우리는 여성과 남성이 긴밀하게 협력해 여성 차별 문제를 해결해야 한다는 걸 명확히 알고 있다. 여성이 남성과 동등한 권리를 요구할 때 세상은 바뀔 것이다5)”라는 연설에 수많은 사람이 감명받았다. 참가자들은 여성 노동의 거대한 힘을 공감하며 여성 차별과 억압을 없애기 위한 평등과 권리를 당당히 외쳤다. 파업은 자정까지 이어졌다. 남성들은 이날이 하도 길게 느껴져 ‘긴 금요일’이라고 불렀다. 5) https://kvennasogusafn.is/ 아이슬란드 여성파업 역사기록보관소 여성파업이 일으킨 물결 단 하루였지만 여성파업은 여성 노동이 얼마나 크고 강력한 것인지를 사회에 선명히 각인시켰다. 남성의 눈을 뜨게 했다. 특히 여성파업의 조직 과정에서부터 여성 노동자가 중심 역할을 하며 힘을 그대로 드러냈기 때문에 기업의 자본가들이 휴가나 파업을 이유로 여성 노동자를 해고하거나, 임금을 삭감할 수 없었다. 사회 구성원의 절반인 여성이 노동을 멈추자 사회가 덜커덕 멈추는 장면을 보면서 아이슬란드 여성들이 느꼈을 감격과 자신감은 실로 엄청났을 것이다. 여성들은 파업을 통해 자신이 수행하는 노동의 가치와 힘을 스스로 발견했고 여성이 직접 나서서 차별과 억압에 맞서 저항해야 한다는 것을 인식했다. 여성파업의 대오를 함께 이룬 세력들은 정치적 성향이 달라도 연대를 바탕으로 앞으로도 같이 싸워 갈 힘을 얻었다. 사회는 여성파업에 응답해야만 했다. 여성파업이 있기 전 정치인들은 여성 노동자가 요구하는 하루 8시간 공공보육 시스템에 대해 ‘어리석은 일’이라고 비웃었다. 하지만 여성파업의 힘을 경험한 후 정부는 2세부터 미취학 아동의 보육을 8시간 담당하는 유치원법을 제정했다. 1976년에는 직장과 학교에서 성차별을 금지하는 최초의 성평등법(Gender Equality Act)6)이 제정됐고 성평등위원회가 구성됐다. 법 조항 중 하나에는 남성과 여성이 동일 가치의 노동에 대해 동일 임금을 받는다고 명시되어 있었다. 유급 출산휴가가 보장되고, 제한적이던 임신중지권이 확대됐다. 6) 아이슬란드정부 자료 https://www.government.is/ 8시간 공공보육이 시작되자 육아를 떠맡던 여성이 유치원에 아이를 맡길 수 있었고 가사도 남성과 함께하는 분위기가 조성되기 시작했다. 여성이 집안에서 벗어나 노동자로 일하는 경우가 조금씩 늘어났고 다양한 사회진출이 가능했다. 단 하루 파업으로 여성 차별과 억압으로 가득 찬 사회를 한꺼번에 바꿀 수는 없었지만, 젠더평등으로 나아가는 ‘분수령’이 된 것임은 틀림없었다. 여성파업의 파장은 아이슬란드 국경 밖으로도 퍼져 나갔다. 북미와 유럽의 언론들은 스포츠 중계를 하듯 10월 24일 여성파업을 보도했는데 수많은 여성이 이 소식에 감격했다. 아이슬란드 여성파업은 여성이 겪는 억압과 차별의 문제를 파업이라는 방식으로 폭로하고 저항한 운동이라는 점에서 국제 여성운동에 큰 영감을 주었다. 미국에서 1975년 10월 29일, 전미여성기구가 주도한 미국 여성파업이 벌어졌다. 일본에서도 1975년 11월 3일, 여성들이 파업위원회를 조직했다. 1991년 6월 14일, 스위스에서는 여성들이 불평등에 항의하며 첫 여성파업을 벌였다. 폴란드에서 2016년 10월 3일, 여성들이 임신중지를 전면 금지하는 법안을 막기 위해 ‘검은 월요일’이란 이름으로 파업에 나섰고 노동조합과 남성들도 파업에 동참했다. 아르헨티나에서 10월 19일 임신중지권 보장과 페미사이드에 맞서는 여성파업이 벌어졌다. 2017년 3월 8일 세계 여성의 날에는 한국을 포함한 세계 약 50개 국가 여성들이 아이슬란드 여성 총파업에 영감을 얻은 국제 여성파업을 개최했다. 1970년대까지만 해도 아이슬란드는 가부장적이고 보수적 분위기가 강했던 탓에 성소수자에 대한 혐오도 심했다. 유명한 가수가 커밍아웃한 후에 이민을 떠나야 했을 정도다. 하지만 여성파업 운동 이후 변화한 젠더평등 인식을 따라 성소수자 운동도 성장했다. 사회적으로 점차 성소수자에 대한 혐오와 차별 대신 인권과 평등의 가치가 더 크게 여겨졌다. 사회 제도적 변화도 가져왔다. 1996년 동성 간 결혼과 권리에 대한 법이 제정되어 동성 파트너의 제반 권리가 인정됐고 2006년 자녀양육 등에 이성결혼과 동일한 권리를 부여했다. 2010년 6월 27일에는 동성결혼을 합법화하며 모든 결혼법에 성 중립성을 확대했다. 2009년에는 커밍아웃한 레즈비언 요한나 시귀르다르도티르를 총리로 선출하기도 했으며 아이슬란드 도시 곳곳에 성소수자의 인권 존중과 평등을 의미하는 무지개 거리가 조성됐다. 2019년에는 ‘성적자율성법’을 제정해 제3의 성으로 ‘간성’을 인정했고, 트랜스젠더의 성별 정정 절차를 간소화했다. 하나씩 오르는 ‘젠더평등’의 계단과 정체된 일터 여성파업은 여성의 시선을 정치로 이끌었다. 여성 차별을 없애기 위한 여성의 발언권이 높아지고 여성이 정치 참여의 평등한 주체로 나서야 한다는 인식이 강화되면서 1980년에는 비그디스 핀보가도티르(Vigdís Finnbogadóttir)가 대통령에 당선됐다. 그는 여성으로서는 세계 최초로 직접 선거로 선출된 대통령이었다. 1981년 창당한 우먼스리스트당(여성의당)은 1983년 선거에서 지지율 5.5%를 기록하고 국회의원 의석 3석을 차지하며 여성정당으로 의회에 처음 진출할 수 있게 했다. 1980년대 여성의 노동시장 참여율은 65.2%로 1960년대 34.3%이었던 것에 비해 2배 가까이 늘어났다. 돌봄 노동 사회화의 일부로서 공공 유치원이 확대하면서 만들어진 급진적 효과였다. 그러나 노동 현장에서 여성의 임금 차별은 나아진 게 없었다. 오일쇼크 영향으로 발생한 심각한 인플레이션7)으로 노동자의 실질임금도 하락한 상태여서 아이슬란드 여성들은 첫 여성파업이 10년째를 맞았던 1985년 10월 24일, 다시 파업을 벌여야 했다. 7) 오일쇼크 등의 영향으로 주요 소비재와 산업재를 수입에 의존하는 아이슬란드의 인플레이션이 심화됨. 1983년 84%를 기록 성별 임금 격차를 나타내는 파업 돌입 시간은 2시 5분으로 10년 전과 같았다. 1983년 기준으로 여성의 연간 평균임금은 전체 평균 임금의 65%에 그쳤다. 다시 광장을 가득 메운 여성들은 성별 임금 격차와 성차별 해소를 강력히 요구했다. 정부는 10년 만에 다시 거대한 여성파업에 직면하면서 1985년부터 5년 단위의 ‘젠더평등실행계획’을 세워 집행했다. 정부는 아이슬란드 자본주의를 안정적으로 관리, 성장시키기 위한 수단으로 ‘젠더평등’노선을 실행해 갔다. [이미지: 여성파업 연도별 임금 격차] 1990년대로 접어들면서 육아휴직 사용이 여전히 여성 노동자에게 편중된 문제를 개선하기 위한 고민이 일었다. 여성의 노동시장 참여율이 75%대로 높아진 가운데 여성 노동자들은 일터에서 일하고 집에 돌아와 다시 가사·돌봄 노동을 해야 했다. 특히 0세부터 1세의 자녀를 돌보는 육아휴직은 대부분 여성이 사용하고 있었다. 1997년부터 남성에게 유급 육아휴직 2주간의 사용 권리가 생겼지만 2000년대 초까지 남성의 실제 육아휴직 사용은 3%대에 불과했다. 1999년 국회의원의 3분의 1 이상이 여성이었는데, 이들이 여성 대중의 요구를 대변했다. 그로 인해 2000년에는 아이 돌봄 노동의 성별 편중을 해결하기 위해 양육자 남성에 대해서도 육아휴직 사용을 의무화하는 유급 육아휴직 할당제가 도입됐다. 단계적으로 범위를 늘리다 2003년에는 전면화됐다. 총 9개월의 육아휴직 기간 중 남녀가 3개월씩을 의무적으로 사용하고 남은 3개월은 서로가 자유롭게 나눠서 사용하는 방식이었다. 임금은 80%의 평균임금이 보장됐다. 이 제도가 도입되면서 큰 변화가 생겼다. 남성의 90%가 육아휴직을 사용하기에 이르렀고 전체 육아휴직자 중 남성의 비율이 약 45%까지 높아졌다. 남성의 가사 분담률도 동반 상승했다. 남성의 가사·돌봄 노동에 대한 참여와 책임감이 커지면서 아이와의 유대감도 전보다 커졌다. 기업에서의 자본의 통제와 가부장적 문화로 인해 남성의 육아휴직이 쉽지 않았던 현실에 맞서, 투쟁으로 사회적 압력을 조성하고 제도 변화를 강제함으로써 바꿔 낸 결과였다. 여성의 독박육아 해소는 기업 자본가들에게 결코 손해가 아니었다. 노동시장에서 여성 노동의 착취량이 증가하고 경력단절 없이 높아진 여성 노동의 생산성 또한 자본이 착취할 수 있었기 때문이다. 당시 아이슬란드 경제는 자본의 성장과 거품, 노동조합의 양보로 표현할 수 있다. 1980년대 후반과 1990년 초반, 신자유주의와 세계화 물결 속에서 아이슬란드 정부와 자본은 시장 자유화 정책과 각종 규제 완화, 민영화, 구조조정, 부유층 감세 등을 빠르게 시행했다. 금융업이 크게 활성화됐고 2006년 1인당 GDP가 세계 5위를 차지할 정도로 호황을 누렸다. 금융 부문을 포함해 자본가들은 1990년대 후반부터 10년간 전례 없는 성장과 이윤 축적을 누렸다. 여기에 노동조합은 1990년대 초부터 인플레이션을 낮추는 전제로 낮은 임금인상을 수용했다. 생활비보다 높은 임금이 유지되면 기꺼이 만족한다는 분위기가 형성됐다. 예를 들면 전기기술 노동자의 임금은 실질임금 수준이 물가상승에 비례해 충분하다는 이유로 1990년부터 2000년까지 연간 1.4%씩만 증가했다. 하지만 상대적으로 더 차별받는 여성 노동자의 입장은 달랐다. 최초의 여성파업에서 30년이 지난 2005년 10월 24일, 여성들은 세 번째 여성파업에 나서야 했다. 신자유주의 공세가 강화되면서 여성파업을 시작한 시간은 2시 8분. 30년간 임금 차별은 단 3분밖에 단축되지 않았다. 2시 8분 이후 여성 노동자가 일하는 시간은 여전히 공짜였다. 여성들은 임금 격차 폐지를 강력히 요구했다. 이후 인플레이션이 점차 상승하며 노동조합은 물가를 따라잡기 위해 더 높은 임금인상을 요구해야 했다. [사진: 2005년 아이슬란드 여성파업] 2008년 금융위기에 따른 항쟁, 사회를 바꾼 두 번째 계기 신자유주의 정책을 펼치며 금융과 부동산 거품으로 아이슬란드 경제가 일시 호황을 누렸지만, 2008년 미국발 금융위기의 영향으로 해외투자자들이 자본금을 회수하면서 금융거품이 붕괴하고 말았다. 아이슬란드는 2008년 10월 6일 국가 부도를 선언하고 IMF 구제금융 시기를 맞이했다. 70%에 이르는 기업이 법적 파산 상태에 처하고 실업률이 10%로 껑충 뛰어올랐다. 국민 1인당 갚아야 할 채무가 약 5억 원 규모나 됐다. 정부와 자본은 경제위기 책임을 스스럼없이 노동자에게 전가했고, 성난 노동자 민중은 가만있지 않았다. 16주간의 ‘프라이팬혁명’이라고도 불리는 항쟁이 일어났다. 항쟁은 매주 토요일 국회 앞에서 연속 16주간 최대규모의 시위를 벌이는 방식이었다. 노동자의 90%가 노동조합에 가입해 있었는데, 이들은 적극적으로 항쟁에 참여했다. 남녀노소 할 것 없이 성난 노동자 민중은 국회를 포위하고 요구르트 통과 돌을 던졌으며 냄비와 프라이팬을 들고 나와 큰 소리로 두들겼다. 경찰은 처음으로 시위 진압용 최루탄과 최루액을 사용하며 사람들을 폭력적으로 연행했다. 하지만 사람들은 연행자가 속출해도 계속 싸웠다. 노동자 민중은 자본가들이 자신의 탐욕을 위해 투기를 벌여서 만든 부채를 우리가 대신 갚을 수 없다는 입장을 명확히 했다. “미래세대를 제물로 삼지 마라”고 외쳤다. 이들은 파산 기업에 대한 공적 자금 투여 금지, 정부 총리 사임과 새로운 총선, 모든 책임자 처벌 등을 요구하며 타협하지 않고 싸웠다. 그리고 마침내 승리했다. 아이슬란드 사회는 투기 자본가들이 스스로 위기의 책임을 지도록 결정했고 대중 투쟁으로 정부를 몰아내고 자본가들을 구속시켰다. 철저한 수사를 통해 구속된 자본가와 총리 등 경제위기 책임자는 총 90명에 이르렀다. 이후 출범한 중도좌파 연정은 항쟁의 압력에 밀려 대중의 요구를 이행하는 역할을 맡았다. 정부는 저소득층 복지와 사회안전망 강화에 예산을 전년 대비 36%를 더 사용하고 청년 일자리 제공과 직장 내 성평등 정책을 강화했다. 민영화했던 모든 은행과 공기업을 다시 국유화했다. 주택 가격의 110%가 넘는 가계부채는 모두 탕감했다. 부유세가 인상됐다. 국회 특별조사위원회를 가동해 금융위기의 원인 진단과 해법을 도출했다. “당시 금융위기의 주체는 남성이었고 이 기간 동안 특정 성에 기반한 사회문화적 담론과 고정관념이 지배적이었다는 것을 보여 준다. 당시 금융위기를 초래했던 큰 규모의 경제 관련 프로젝트 중에서 산업 프로젝트, 감세 정책, 그리고 주택 단지 개발 등은 여성보다 남성에게 고용 기회를 제공했다. 여기서 중요한 점은 애초에 금융 부문이 소수의 남성에 의해 운영됐고, 성 고정관념과 남성들의 문화에 기반한 사업 계획과 운영이 진행됐다는 것이다. 정부는 소수 집단이 너무 많은 권력을 갖지 못하도록 주요 기업들을 체계적으로 감시해야 하고, 성인지 예산과 성인지 조세정책(여성에게 미치는 영향을 평가하고 반영하여 국가 예산을 배분하는 정책)을 수립하고 시행해야 한다. 노동 및 지역 정책을 개발할 때 성 주류화8) 원칙을 사용해야 한다.(2012년 국회 특별조사위원회)” 8) 성주류화는 정책을 수립하고 시행함에 있어 성인지 관점을 통합하여 정책을 재구조화하는 일련의 과정을 의미 아이슬란드 정부는 경제위기 원인 중 하나로 ‘남성 중심 경영’을 지목했다. 소수 상층 남성들의 이윤 추구와 그들 사이의 부정부패, 정경유착이라는 권력자 남성의 카르텔이 문제라 지적하고 이를 깨뜨리기 위한 경제, 노동시장 분야의 ‘젠더평등’을 해법으로 제출했다. 1975년 여성파업이 정치 분야에서 여성을 평등한 참여자로 만들었다면, 2008년 금융위기에 따른 항쟁은 경제 분야에서 여성 참여를 강화하는 발판을 만들었다. 50인 이상 기업임원 40% 여성할당제(2013년 시행)와 같이 여성이 유리천장을 깨고 경제, 정치적 측면에서 지도력을 발휘하도록 하는 전환을 주되게 시행했다. 이렇게 2008년 항쟁은 1975년 여성파업 이후 아이슬란드 사회를 다시 한 번 뒤흔든 두 번째 계기가 됐다. 이 계기를 거치며 ‘젠더평등’이 더욱 강력한 국가 정책으로 등장했는데, 사실 이는 아이슬란드 자본주의의 위기를 해소하기 위한 방안에 불과했다. 2010년대 이후 여성파업 2시 25분, 38분, 55분 2009년부터 아이슬란드는 세계경제포럼의 글로벌 젠더 격차 지수(Global Gender Gap Index) 순위에서 젠더평등 수준 1위를 차지했다. 금융위기에 맞선 항쟁 이후 복지와 조세제도가 노동자에게 좀 더 나은 방식으로 바뀌면서 성별 임금 격차의 완충 역할도 했다. 의회가 2008년 통과시킨 법에는 남성과 여성이 동일 노동에 대하여 동일 임금을 받는다는 조항이 포함됐다. 항쟁 이후 첫 선거에서는 여성 국회의원 비율이 42.9%로 급증했다. 하지만 여전히 남성이 여성보다 더 많은 임금을 받고 있었고 사회의 불평등은 해소되지 않았다. 2010년 10월 24일, 여성의 절반이 모여 공짜 노동이 시작되는 2시 25분 여성파업에 참여해야 했다. 2010년을 기준으로 공식 노동자의 45.5%가 여성이었고, 동일 수준의 남녀 노동자를 비교한 성별 임금 격차는 17.5%였다. 그러나 노동시간, 고용형태, 산업과 학력 등의 요인을 고려하지 않은 남성과 여성의 임금을 비교해 보면 그 격차는 32.9%9)나 됐다. 2008년을 기준으로 정규직 일자리에서 일하는 남성은 90%인데 반해 여성은 65%에 그쳤다. 여성 노동자는 더 유연하고, 더 불안정하고, 더 임금이 낮은 노동조건에 처해 있었다. 9) 아이슬란드 통계청 https://www.statice.is/ [사진: 2010년 아이슬란드 여성파업] 2015년은 계급투쟁의 해라고 불릴 만큼 수많은 노동조합이 임금인상과 인력 충원 등을 위한 투쟁에 나서 곳곳에서 파업이 벌어졌다. 금융위기 이후에도 커다란 빈부격차, 그리고 낮은 임금인상률로 노동자의 삶이 제대로 나아지지 않은 채 노동조합 지도부는 낮은 임금인상률 합의서에 도장을 찍어 왔다. 아래로부터 분노가 커지면서 공공 부문과 민간 부분 노동조합은 실질최저임금 50% 인상을 요구하는 총파업을 준비했다. 4월 말에 실시된 갤럽 여론조사에 따르면 아이슬란드 국민의 90% 이상이 노동조합의 요구를 지지했다. 당시 아이슬란드에서는 여성 인구의 73%가 노동자로 일했는데, 여성 노동자가 많은 의료, 교육, 청소 등 직종이 속한 노동조합이나 여러 산업 부문의 여성 노동자도 주요한 파업 대오였다. 총파업을 거치며 여성운동 진영과 노동운동 진영이 함께 다시 여성파업을 준비했다. 2016년 의무할당제를 적용받는 상장기업 이사회의 거의 절반이 여성이고, 국회의원 41%가 여성이었는데 일부 여성이 유리천장을 깨고 정치와 경제의 상층 요직에 올라가는 것으로 줄인 성별 임금 격차는 시간으로 계산할 때 6년간 단 13분이었다. 성별 임금 격차 27.5%, 자본의 통치가 강력한 기업 안에서 여성 노동자에 대한 상대적 차별은 굳건했다. 2016년 10월 24일 2시 38분, 여성들은 다섯 번째 여성파업을 힘차게 펼쳤다. 정부는 앞으로 2022년까지 성별 임금 격차를 해소하겠다고 약속했다. 이듬해 2017년 6월 1일 임금 차별을 금지하는 동일임금인증제를 세계 최초로 도입하는 새로운 법을 제정했다. 1961년 처음으로 제정한 평등임금법이 남녀 임금 차별 금지를 ‘권고’하는 내용이었고, 1976년 성평등법 도입, 2008년 남녀평등지위권익법은 노동자가 성별로 인한 부당한 대우를 받았음을 ‘스스로 입증’해야 하는 것이었다면 이번에 도입한 법은 기업이 성별 임금 격차가 없음을 입증해야 하고 이를 정부가 관리하는 내용이었다. 이유 없는 임금 차별이 있을 경우에는 약 50만 원씩 시정될 때까지 누적되는 벌금을 부과하기로 했다. 사실 이러한 내용의 임금평등법 개정안이 제출된 것은 2010년이었는데 사회적 합의에 이르고 적용 기준을 정해 2018년 본격적 시행에 이르기까지 무려 8년이 넘게 소요됐다. 이제까지 자본가들은 줄곧 여성의 저임금에 대하여 법 위반이나 초과 착취를 반성하기는커녕 ‘노동자들이 임금협상을 제대로 하지 못한 탓’이라면서 노동자에게 책임을 돌려 왔다. 그런 상황에서 동일임금제가 시행되면 ‘남성들의 임금이 깎일 것’이라는 가짜뉴스가 돌며 백래시 분위기가 생기기도 했다. 자본가연합단체와 노동조합연합단체가 합의에 이르기 위해 긴 시간이 필요했다. 그리고 유럽 전반에서는 노동자들이 ‘임금삭감 없는 노동시간 단축’을 요구하며 관철해 왔는데 아이슬란드의 경우 2018년 기준 정규직 노동자의 평균 노동시간은 주 44.4시간으로 유럽에서는 긴 편이었다. 노동조합은 오랜 요구인 노동시간 단축을 전면에 내세우며 2015년부터 주4일제 도입 실험을 시작했다. 변화된 상황에서 2018년 10월 24일 여성들은 여섯 번째 여성파업에 나섰다. 불평등을 양산하는 자본주의 체제를 그대로 둔 채 법과 제도의 변화만으로 노동 착취, 여성 노동에 가중된 초과 착취가 사라질 리 없었기 때문이다. 특히 여성들은 상대적 고용불안, 성별 직종 분리, 여성 노동자의 저임금, 가사돌봄 노동의 차별에 분노했다. 여성 노동자가 남성 노동자보다 28% 낮은 임금을 받고 있었다. 그에 따라 2시 55분에 다시 파업의 광장에 모인 여성들은 “여성을 바꾸려 하지 말고 세상을 바꿔라”, “모든 여성이 직장에서의 정의와 평등한 권리를 위해 함께 싸워야 한다”고 외쳤다. 2023년까지 여성파업이 만들어 낸 성과 2023년 국제 사회의 시선이 다시 아이슬란드의 여성에게 향했다. 글로벌 젠더 격차 지수가 91.2%인 아이슬란드에서 다시 48년 만에 여성의 90%가 참여하는 24시간 여성파업이 일어난 것이다. 성별이분법에 따른 여성만이 아니라 성소수자(non-binary)가 함께 참여했다. 여성파업이 진행된 하루 동안 사람들은 남성들만 보도하는 뉴스를 들으면서 잠을 깼고 대중교통이 지연되는 하루를 맞았다. 유치원과 학교가 문을 닫았다. 공공시설과 많은 상점, 식당이 문을 닫았다. 은행은 한 곳만 문을 열었고, 병원은 응급실만 열렸다. 방송사들은 프로그램을 줄였다. 국영항공사는 항공편을 취소했다. 사무실과 호텔 객실 등은 청소되지 않았다. 총리인 카트린 야콥스도티르도 여성 공무원 노동자들과 함께 파업에 참여했다. [사진: 2023년 아이슬란드 여성파업] 이날 여성파업은 성별 임금 격차와 여성 직종 저임금, 성에 기반한 젠더폭력의 현실을 규탄하며 평등을 요구했다. 역사상 최대 규모인 10만 명이 수도 레이캬비크에서 열린 집회에 모였다. 후사비크, 아쿠레이리, 사우다르크로쿠르 등 10개의 도시에서 파업 집회가 개최됐다. 친구, 가족, 동료들과 함께 참석한 여성과 성소수자들은 ‘여성의 임금은 여전히 남성보다 21%나 낮다! 이게 평등이라고?’, ‘1975년부터 2023년 여성의 투쟁’ 등이 쓰인 피켓, 플래카드 등을 들고 파업의 요구를 힘껏 소리쳤다. 레드스타킹스가 불러 1975년부터 여성파업의 노래가 된 ‘여성이여, 앞으로!(Onward Girls, 아이슬란드어로 Áfram Stelpur)’, 칠레의 여성투쟁가 ‘강간범은 바로 너다! (A Rapist in your Path, Un Violador en Tu Camino)’ 등을 힘차게 불렀다. 발언자들은 경제적 불평등과 젠더폭력의 현실을 규탄하며 물었다. “이것을 평등이라고 부를 것인가?” 참가자들은 “아니다”라고 외치며 집회를 마무리했다. 이번 파업은 노동조합이 최대의 조직자였는데 공공노조의 프레야 스테인그림스도티르(Freyja Steingrimsdottir)는 “우리는 평등의 파라다이스라 불리는 아이슬란드에 여전히 성별 격차가 존재하고 시급한 조치가 필요하다는 사실에 주목한다. 의료 서비스나 보육과 같이 여성이 주도하는 직업은 여전히 저평가되어 있고 임금도 훨씬 낮다”고 말했다. 파업에 참여한 유치원 노동자 스타눈 시구르게르스도티르는 “아이슬란드에는 여성에게 여성이 최고라는 속담이 있다”며 “여성이 함께 뭉치는 것이 중요하다. 유치원 노동자의 임금은 낮아서 이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도 싸우고 있다”고 했다. 여성파업집회에 참가한 호피(Hófí)는“ 나는 아이슬란드 여성이기 때문에 여기에 있다. 아이슬란드는 천국처럼 이야기되지만 아직은 그렇지 않다. 노동시장에는 여성만 일하고, 임금이 낮은 일자리가 많이 있다. 이 나라는 충분히 부유한 나라이고, 더 낫게 분배할 수 있다”고 말했다. 파업 참가자들은 여성이 주로 하는 무급 재생산 노동도 강조했다. 주최 측은 캠페인을 통해 미리 남성들에게 ‘하루 동안 남편, 아버지, 형제, 삼촌들이 아침과 점심 도시락 준비, 친척 생일 기억하기, 시어머니 선물 사드리기, 자녀 치과 예약하기 등 가족과 가정에 관련된 일을 책임감을 갖고 맡아달라’고 전했다. 수많은 여성이 유급 휴가를 얻으며 파업에 참여했지만, 응급 구조와 의료 업무 그리고 이주노동자가 많은 직종, 저임금 직종의 여성 노동자는 이번에도 참여할 수 없었다. 자본가들은 빼먹지 않고 2023년 여성파업에 특별한 메시지를 보냈다. 아이슬란드기업연합(SA)을 이끄는 최초의 여성인 시그리두르 마그레트 오드스도티르는 말로는 여성파업의 대의를 지지한다면서 여성파업에 대한 반대 의사를 명확히 밝혔다. “여성들이 사용자와 합의 없이 모든 일터에서 파업하면 아이슬란드 사회에 큰 악영향을 미친다.” 그는 여성CEO로서 여성파업 대신 사용자와 대화로 해결하라고 주문했다. 그리고 파업 이후 11월에 열린 ‘레이캬비크 글로벌 포럼’에서 외교부 장관 비야르니 베네딕손은 “의사 결정 위치에 있는 남성들이 젠더평등을 실현하는 게 아주 중요하다”고 말했다. 1975년부터 2023년까지 무려 48년간의 오랜 여성파업의 역사는 여성 차별과 억압을 거대한 대중적 운동으로 돌파하며 큰 변화를 만들어 냈다. 첫째, 사회 전체와 모든 이들에게 세상의 절반을 떠받치는 여성 노동의 힘을 보여주는 계기를 거듭 제공함으로써 남성 중심의 가부장적 인식에 경종을 울리고 변화의 필요성을 제기했다. 동시에 여성 노동자 민중 사이에서 페미니즘운동을 부상시켰고 성별 임금 격차에 대한 인식을 높였다. 둘째, 1975년 여성파업에서부터 유치원을 늘리라는 공공 돌봄 요구를 이뤄냈다. 돌봄 비용의 85% 정부 지원, 교사 1명당 아동 5명 보육 등으로 안전한 공공 돌봄을 강화시키며 여성이 무급 재생산 노동에서 점차 벗어나 사회적 생산 노동의 주체로 정체성을 확립하게 했다. 남성이 돈 버는 일을 하고 여성이 집안일을 한다는 근본적 성별 역할 구분을 깨뜨리며 여성이 과거보다 사회를 향해 더 목소리를 낼 수 있게 만들었다. 셋째, 노동자의 대부분이 노동조합에 가입10)하는 분위기 속에서 여성의 사회진출, 노동인구 증가가 여성 노동자의 노동조합 가입 증가로 이어졌다. 여성 노동자도 노동조합의 당당한 구성원으로 활동함으로써 사용자와 정부를 상대로 저항하고, 노동조합의 경제적 요구와 젠더적 요구를 결합하면서 노동조건을 향상해 나가게 됐다. 국제노총(ITUC)이 평가하는 글로벌 권리 지수(Global Right Index)에서 아이슬란드는 1등급인데 여성 노동자의 노동권에 대한 확장된 보장이 없다면 최고 등급은 가능하지 않았을 것이다. 10) 1938년 노동법이 발효된 이래 노동조합 가입은 공식적으로는 아니지만 사실상 의무화됐다. 1980년 제정된 근로기준법에 따라 모든 단체협약은 조합원 여부와 관계없이 모든 사람에게 일반적으로 적용되도록 하는 '에르고 옴니스 원칙(모든 사람을 향하여, 모든 사람에게 적용 원칙)'이 적용되어 노동시장에서 모든 사람에게 최소한의 권리를 보장하게 됐다. 넷째, 여성파업은 사회의 다양한 차별을 걷어 내야 한다는 정치의식을 성장시켰다. 여성 총리와 여성 의원의 등장, 여성의 높은 투표율 등이 그 자체로 자본주의 사회 작동 원리에서 벗어난 게 아니지만 그러한 표현의 하나다. 여성의 90%가 파업으로 사회를 멈추며 주체적 정치 행동을 한다는 것만으로 높이 발전한 정치 인식을 보여 준다. 다섯째, 여성파업은 사회의 정세 변화에 조응하며 노동권을 중심으로 여성의 생존권과 다양한 삶의 권리를 위한 요구와 저항력을 확장했다. 이는 여성의 권리뿐만 아니라 동성결혼 합법화, 개인이 결정할 수 있는 성별 정정 등 성소수자의 권리를 포함해 소수자 인권을 신장시켰다. 여섯째, 여성에게 맡겨진 독박 가사·돌봄 역할에 순응하지 않고 투쟁함으로써 돌봄을 중심으로 사회 재생산 노동의 사회화 정도를 증가시켰다. 보육, 의료 서비스 등 공적 돌봄이 강화됐다. 2000년부터 시행한 육아휴직 의무할당제와 같이 보육 돌봄에 관한 기업의 휴가나 휴직제도의 변화를 촉진하면서 정부와 자본이 책임져야 할 몫을 명확히 했으며, 가정 내의 무급 재생산 노동을 배분할 필요성을 제기했다. 일곱째, 성과 재생산 영역에서 여성의 자기 결정권이 강화됐다. 여성과 연인들에게 결혼, 임신, 출산이 사회적 통제와 압력에 따른 결과가 아니라 자신이 선택할 수 있는 권리로 변모했다. 전체 출산 아동 10명 중 약 7명(69.4%)이 비혼 출산 아동일 정도로 여성은 자신의 선택에 따라 아이를 낳지 않거나 낳을 수 있게 됐다. 여덟째, 국제 여성운동에 큰 영향을 미쳤다. 노동자계급의 파업과 같이 사회적 생산과 재생산 영역을 마비시키는 여성 노동의 파업이 여성의 요구와 투쟁의 힘을 드러내는 효과적이고 높은 수준의 저항 방법임을 각인시켰다. 이 밖에도 여성파업은 사회에 많은 영향을 미쳤다. 그러나 아이슬란드 여성에게는 여전히 여성 차별과 억압을 없애기 위해 싸워야 할 과제가 남아 있다. 여성의 눈물 저항이 만든 사회적 변화에도 자본이 통제하는 기업에서는 여성 차별이 쉽게 사라지지 않고 있다. 대표적 문제가 바로 임금이다. 자본주의 사회가 굴러가는 기본 동력인 임노동관계에서 성별 임금 차별이 발생한다는 것은 일터는 물론 사회 곳곳에서 여성 차별과 억압이 존재한다는 가장 확실한 증거가 된다. 아이슬란드 남성과 여성의 노동소득에서 노동시간, 고용형태, 산업과 교육 수준 등 요인을 고려하지 않고 비교해 보면 그 격차는 2010년 32.9%, 2019년에는 25.5%로 여성이 더 낮다. 그 이유는 시간제 노동, 비정규직 노동에 여성의 비중이 높고, 여성이 다수인 직종의 임금이 남성 노동자에 비해 낮기 때문이다. 실제로 임금이 낮은 직종의 75%는 여성의 비중이 월등히 높은 교육, 보건, 돌봄, 청소와 식당, 마트 등 서비스와 관광 분야 등이다. 여성 노동자는 보건의료와 사회복지사의 75%, 교육 분야의 73%, 서비스와 판매의 57%를 차지한다. 여성의 노동이 상대적으로 저평가되면서 소득과 연동되는 노후 연금도 여성이 더 낮을 수밖에 없어 여성의 상대적 빈곤은 일생에 영향을 미친다. 그뿐 아니라 집에서 이뤄지는 무급 재생산 노동 역시도 아직은 여성이 더 많이 부담해 더 나은 일자리로 진입할 수 있는 물리적 조건에 장해물로 작용한다. 여성이 절반의 노동력을 제공하고 있지만, 불안정한 노동조건을 강요당하며 생산 영역에서의 착취와 재생산 영역에서 무급 가사노동이라는 이중 굴레에 고통받는 현실은 다른 자본주의 사회와 다르지 않다. 그런데 여성의 저임금에 ‘이주노동자’라는 이름이 하나 더 붙으면 임금이 더 하락해 버린다. 이주노동자는 사실상 이중임금제를 적용받고, 노동권을 침해받는 경우11)도 많다. 2008년 금융위기 이후 관광업 등에 이주노동자 취업이 증가했고 정부가 노동력 부족을 적극적 이주노동자 수용으로 보완하면서 2023년에는 이주노동자가 전체 노동자의 16.2% 규모가 될 만큼 증가했다. 전체 여성 노동인구의 약 22%가 이주노동자다. 그런데 이주노동자에 대한 노동권 보장은 그 수를 따라가지 못한다. 2018년 아쿠레이리대학교 연구에 따르면 정규직 노동자의 월 평균 임금은 72만 1,000ISK(크로나)였는데 이주노동자의 60%는 40만 ISK 이하였다. 이주 여성 노동자의 임금은 아이슬란드 여성 노동자보다 훨씬 더 낮고 이주 남성 노동자보다 낮았다. 한부모 이주노동자는 노동시장에서 더 취약한 처지에 있다. 아이슬란드에서도 ‘정주 남성 노동자 > 정주 여성 노동자 > 이주 남성 노동자 > 이주 여성 노동자’의 서열화된 임금 차별을 확인하기가 어렵지 않다. 11) 에플링노동조합(Efling union)은 2017년에 발생한 부당노동행위의 60%가 이주노동자를 상대로 벌어졌다고 보고했다. 2023년 여성파업이 제기한 중요 사항 중 하나는 여성에게 가하는 성에 기반한 폭력이었다. 아이슬란드에서는 살인 사건이 적은 편이지만 젠더폭력 사건만큼은 그렇지 않다. 전체 여성의 40%가 신체적 또는 성적 폭력을 당한 적이 있고, 전체 여성의 4분의 1은 강간 또는 강간 미수 등의 심각한 젠더폭력을 경험했다.12) 2022년에는 여성 노동자의 3분의 1이 직장 내 성희롱이나 성에 기반한 폭력13)을 당했다고 보고했다. 젠더폭력은 공연예술이나 언론 등에서 알려진 여성인 경우나 관광, 법조, 보안, 제조, 수리업에서 일하는 여성 노동자에게 가장 높았고, 교대근무나 불규칙적이고 장시간 일하는 직종에서 흔하게 발생했다. 12) 2018년 아이슬란드대학교의 연구, 공중보건전문가이자 역학자인 우누르 안나 발디마르스도티르와 아르나 훅스도티르의 연구팀 13) Risk factors for workplace sexual harassment and violence among a national cohort of women in Iceland: a cross-sectional study, The Lancet Public Health, volume7, september 2022. 2022년 다른 통계는 젠더폭력 피해자의 62% 이상이 18세 미만이고, 92% 이상이 여성이라고 보고했다. 수도 레이캬비크의 여성 쉼터는 정원이 꽉 찬 경우가 많고 코로나19 팬데믹 이후 가정폭력 범죄도 급증했다. 이주민 여성은 젠더와 인종문제가 겹치며 젠더폭력의 위험에 더 많이 노출되고 있으며 트랜스젠더 여성을 포함한 성소수자에 대한 혐오에서 비롯된 젠더폭력 사건도 끊이지 않는다. 디지털 젠더폭력의 피해자도 늘고 있다. 이러한 폭력 가해자의 절대적 다수는 남성이며, 95.6%가 18세부터 29세 사이의 청년 남성이다. 아이슬란드는 여성파업에 힘입은 젠더평등의 문화가 있고, 2011년부터 유치원, 초등학교, 중학교, 고등학교에 이르는 모든 교육기관에서 젠더평등 수업을 시행하는 나라다. 여성에게 동등한 정치적, 경제적 권리가 있고 국회의원과 기업 이사회 임원의 절반이 여성인 나라에서 여성과 소수자에게 가해지는 젠더폭력이 매우 심각한 실상은 ‘북유럽(노르딕)의 역설’이라고 불릴 정도다. 젠더폭력의 참상 앞에서 여성들은 2017년 10월부터 #미투(#MeToo)운동에 나서기도 했다. 정치권, 온갖 산업의 재계 고위직, 미디어와 스포츠, 예술계 등 여러 사회 분야에서 일어난 추악한 폭력이 끊임없이 폭로됐다. 미투운동이 확산하며 장애 여성, 이주노동자, 돌봄 노동자, 가사 노동자와 노동조합 조합원이 아닌 저임금 불안정 고용상태에서 일하는 여성 노동자의 증언도 페이스북 등 온라인 공간에서 잇따랐다. 서비스 분야 일터에서의 젠더폭력 가해자는 사업장 내 남성이나 남성 고객이었는데 노동조합 간부인 드리파 스내달은 “남성 고객은 여성 노동자에게 젠더폭력을 행사할 비용도 지불했다고 여긴다. 젊은 여성이 위계적 계층구조의 맨 아래 있다”는 현실을 전하기도 했다. 미투운동은 2022년까지도 이어졌다. 미투운동이 가시화되면서 피해생존자와 페미니스트에 대한 혐오와 백래시14)가 심각하게 벌어지기도 했다. 이전에도 백래시는 젠더 차별을 줄이는 진보한 정책이 생길 때마다 퍼져나간 바 있다. 젠더폭력 사건의 미투운동에서는 페미니스트들에게 살해 협박이 가해지는 경우마저 종종 일어났다. 피해생존자를 향한 그나마 낮은 수준의 혐오인 ‘그걸 왜 지금 와서 말하냐’는 광범위한 백래시는 오히려 여성들이 꾸준히 비판해 온 경찰과 사법부의 문제점을 가시화하기도 했다. 2021년 조사에 따르면 성폭력을 당한 여성의 10%만이 경찰에 사건을 신고했는데 그 이유는 사법부와 경찰을 신뢰할 수 없기 때문이었다. 아이슬란드 역시 경찰에 신고된 성폭력 사건 대다수가 재판에 넘겨지지 않았고 재판에서 유죄판결도 드물었다.15) 2018년부터 3년간 성폭행 사건 항소심 중에서 형량을 줄이거나 무죄를 선고한 경우는 40%나 됐다. 14) '세계 최고의 남성 페미니스트' 중 1명으로 뽑힌 적이 있는 시그뮌 뒤르 다비드 귄로이그손 전 총리가 술집에서 정치인들과 함께 미투운동을 비난하고 여성 혐오를 쏟아낸 일도 있었다. 15) 2022년 랜싯 공중보건(The Lancet Public Health)에 실린 연구 전문가들은 사법 시스템에서 남성 중심적 사고가 지배적16)이라 지적하며, 성별 격차 해소만으로 젠더폭력 범죄를 줄일 수 없어 사법 체계를 개혁17)해야 한다고 했다. 어떤 연구자들은 젠더평등으로의 발전이 남성의 분노를 자극하는 기제가 되어 남성이 여성을 향한 폭력으로 자신의 우월성을 증명하려고 한다며 원인을 분석하기도 했다. 젠더 교육이 열악한 탓에 권력 구조를 함께 가르치는 젠더 교육이 대안18)으로 제시되기도 했다. 16) 미 외교전문지 ‘포린폴리시’ 17) 성폭행 생존자들과 함께 일해 온 변호사이자 사회민주당 의원인 헬가 발라 헬가도티르(Helga Vala Helgadóttir) 18) 아이슬란드대학교 교육대학의 역사학자이자 조교수인 이리스 엘렌버거 여성들은 사회가 젠더폭력으로부터 자신을 보호해 주지 못한다고 생각하고, 인권법원에 아이슬란드 정부를 집단 제소하기도 했다. 그러나 지금도 크게 달라진 게 없다. 2023년 여성파업의 광장에서 여성들은 “사법부도 공범이다”라고 외치고 ‘강간범은 바로 너!(A Rapist in your Path, 원제 Un Violador en Tu Camino)’라는 노래를 불러야 했다. 여성에게 파라다이스는 없다 가부장적 자본주의 세상을 바꾸기 전까지 브루클린대학 정치학과 교수 재닛 존슨은 아이슬란드 사회가 여성운동이 강하고 표면상으로 훌륭한 변화와 공식적 평등의 수준이 높지만, 비공식 석상에서 결정을 내리는 것은 여전히 남성이라며 그것이 공식적 젠더평등을 상쇄한다고 비판했다. 가부장적 자본주의가 존재하는 한 여성에게 파라다이스인 사회가 가능할까? 2021년 9월 아이슬란드 총리실 산하 성별 임금 격차 TF는 2년여에 걸친 조사를 통해 ‘여성의 일 가치 재평가(Verðmætamat kvennastarfa)’ 권고안을 낸 바 있다. 정부는 성별 고정관념에 따라 ‘남성적 직업’과 ‘여성적 직업’을 나누는 것은 ‘과학적이지 않’다고 전제하며 지난 10년 동안 관련 교육을 진행했지만 의미 있는 변화가 없다고 평가했다. 결론으로는 법과 제도로 차이를 좁혀야 한다고 제시했다. 2023년 여성파업에 참여한 총리는 우리가 아무것도 하지 않는다면 젠더평등에 도달하는 데 300년이 걸린다고 말했다. 정부는 법과 제도가 있다면 성에 기반한 차별과 억압을 모두 없앨 수 있다고 기대한다. 마치 그동안 법과 제도가 없었던 것처럼 말이다. 하지만 아이슬란드 정부가 누누이 강조하는 ‘젠더평등이 경제 발전에 이롭다’는 입장은 분명한 자본주의 논리다. 페미니즘으로 표현하면 매우 익숙한 자유주의 페미니즘 논리에 지나지 않는다. 하지만 누가 뭐라 해도 아이슬란드 사회가 젠더평등 가치를 추구하게 만든 것은 정치인이나 기업가가 아니라 여성운동과 노동조합운동이다. 여성운동 세력들은 1975년 최저임금을 받는 노동자계급 여성에게 달려가 파업의 전망을 제시한 레드스타킹스와 가장 열악한 처지에서 일하는 여성 노동자 운동에 힘입어 여성파업을 성사함으로써 주요한 사회세력으로 자리를 잡았고 꾸준히 여성의 차별을 없애기 위한 활동을 해 나갔다. 지금도 수많은 여성과 함께한다. 노동조합운동 역시 여성파업의 주요한 주체로 역할을 해 왔다. 1975년부터 여성파업을 현실로 만들어 냈다. 이후 2023년까지 노동조합은 여성파업의 준비부터 참가자 대다수를 조직하는 일까지 꾸준히 활동해 왔다. 사업장과 각 산업 부문에서 여성 노동자의 권리를 위해 투쟁해 오고 있다. 그런데 이 두 운동은 아이슬란드 정부와 지배계급을 향해 가부장적 자본주의를 그대로 둔 채 성별 역할 분리, 성별 임금 격차, 성에 기반한 차별과 억압을 없앨 수 있는지에 대한 의문을 던지지 않는다. 최소한 지금까지는 말이다. 북유럽식 자본주의 이데올로기가 강한 가운데 이들 운동 역시 자본주의 경제성장을 목표로 평등하고 공정한 분배를 추구한다. 사회에 큰 영향력을 행사하는 세력 중 하나인 노동조합운동은 노사 윈윈(win-win)을 우선하는 조합주의, 노사협조주의 노선을 취한다. 청년-중년층 여성은 ‘선택에 자유가 있고, 원하는 사람이 될 수 있다’는 신자유주의 이데올로기가 스며든 신념으로 젠더평등을 요구한다. 최근 10월 24일 여성파업 기념 시위들과 2023년 여성파업에 참여한 여성들의 인터뷰에서도 정부를 신뢰한다는 표현이나 분배의 평등을 제기하는 목소리를 쉽게 들을 수 있다. 반면 여성 노동자 민중의 눈물은 마르지 않았다. 앞에서 살펴본 바와 같이 직장 내를 포함한 심각한 젠더폭력 수치는 가부장적 여성 혐오 정서의 민낯을 보여 주고 있다. 동일 임금인증제가 시행된 후에도 성별 임금 격차는 2019년 25.5%에서 2022년 21%로 4.5%를 좁혔을 뿐이다. 첫 여성파업 이후 거의 반세기가 지났어도 전통적 여성 노동은 여전히 저평가되고 있다. 또 이전에는 모든 계급 여성이 무급으로 수행하던 많은 일이 이제 중산층 이상의 고소득 가정에서는 가난한 노동자계급 여성과 이주 여성 노동자에게 아웃소싱되고 있다. 게다가 이주 여성 노동자들은 모든 일자리에서 가장 낮은 위치에 있다. 무엇보다 요동치는 국제정세와 경제위기가 있다. 2023년 2월 인플레이션은 10.2%로 2008년 금융위기 당시 고점을 찍은 2009년 9월 인플레이션 10.8% 이후 최고점을 기록했다. 이후 낮아지긴 했지만 세계 경제의 대불황과 기후위기, 전쟁 속에서 언제든 경제위기가 닥칠 위험성이 높다. 가부장적 자본주의가 여성과 노동자가 일군 지금의 권리를 언제 걷어찰지 모른다. 그래도 아이슬란드 여성 노동자 민중에게는 1975년부터 여성파업으로 저항해 온 소중한 역사와 저력이 있지 않은가. 저임금 일자리의 여성 노동자와 이주노동자, 모든 성을 넘어서 단결한 노동자 투쟁이 국제적 차원에서 벌어지는 변혁적 여성운동과 노동자계급 운동을 만난다면 아마도 1975년보다 훨씬 큰 힘을 발휘할 수 있을 것이다. 여성이 멈추면, 세상이 멈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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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간 여성뉴스 브리핑] 합계출산율 0.6명대로 내려앉는다는데 … 정부 정책효과는 미미1. 합계출산율 0.6명대로 내려앉는다는데 … 정부 정책효과는 미미 내년 합계출산율이 0.6명대로 내려앉을 것이라는 정부 전망이 나왔다. 통계청이 14일 내놓은 ‘장래인구추계: 2022∼2072년’을 보면 여성 1명이 평생 낳을 것으로 예상되는 평균 출생아 수를 뜻하는 합계출산율은 올해 0.72명에서 내년 0.68명으로 떨어진다. 현 정부가 내놓은 대표적인 저출생 대응 정책으로는 부모급여가 있다. 부모급여는 직업이나 소득, 재산과 무관하게 자녀를 낳으면 매월 현금을 지급하는 제도를 말한다. 올해 만 0세를 둔 부모는 월 70만 원, 만 1세는 35만 원을 받는다. 내년에는 급여액이 각각 100만 원과 50만 원으로 인상된다. 이 밖에도 정부는 내년부터 돌봄과 교육 지원 1조3,000억 원, 일·육아 병행 지원 2조2,000억 원, 주거지원 9조 원, 양육비용 부담 경감 2조9,000억 원, 임신·출산 지원 504억 원을 편성하는 등 저출생 대응을 최우선 과제로 삼고 정책역량을 집중할 계획이다. 그러나 특단의 조치라 평가할 만한 정책도, 체감되는 변화는 보이지 않고 있다. 육아휴직·육아기 단축근무 제도 등 ‘일·육아 병행 지원제도’는 그나마 정책효과가 클 것으로 기대되는 제도이지만, 기업 규모, 노동자의 지위, 조직 문화 등 현실적인 걸림돌이 많아 이용률이 낮다. 이에 임신·출산·양육 지원 등 개별 정책을 추진하는 것과 더불어 사회·경제적 제반 환경에 대한 근본적인 변화가 필요하다는 지적이 계속해서 제기되고 있다. <참조 기사> https://www.khan.co.kr/national/health-welfare/article/202312141550001 2. 육아휴직자 불이익 줘도 기소율은 9%에 불과 최근 5년간 육아휴직자에게 불이익을 주는 등 모성보호제도 위반 행위가 2,000건 가까이 신고됐지만, 기소율은 9%에 불과했다. 13일 용혜인 기본소득당 의원실이 고용노동부로부터 받은 ‘최근 5년 모·부성 보호제도 위반 사건 처리현황’을 보면, 2019년부터 지난 8월까지 모성보호 관련 사건 1,857건 가운데 노동청이 기소 의견으로 검찰에 송치한 사건은 168건(9.0%)에 그쳤다. 이 중 시정조치는 146건(7.9%), 과태료 부과는 8건(0.4%), 기타 종결이 532건(28.7%)으로 가장 많았다. 취하 등으로 종결한 사건은 486건(26.2%), 법 위반 없음 등으로 끝난 사건은 481건(25.9%)으로 나타났다. 취하의 경우 사업주가 취하를 종용하거나 압박하는 사례가 많다는 것을 고려하면, 법을 위반하고도 처벌받지 않는 사업장이 상당한 것으로 보인다. 유형별로 보면 육아휴직을 허가하지 않거나, 육아휴직을 이유로 해고와 같은 불리한 처우를 하는 등 육아휴직 제도 위반이 965건(52.0%)으로 가장 많았다. 이어 임신부·여성에 대한 야간·휴일·시간외노동·유해 위험작업 금지 관련 위반이 359건(19.3%)으로 나타났다. 출산 전후 휴가 제도 위반 183건, 육아기 근로시간 단축제도 위반 158건, 배우자출산휴가제도 위반 70건, 생리휴가제도 위반 56건 순이었다. 이러한 결과는 지난 3월 직장갑질119가 직장인 1,000명을 대상으로 한 설문조사에서 직장인 45.2%가 육아휴직을 자유롭게 쓸 수 없다고 답한 부분과 일치한다. 노동부는 "모성보호제도 사용에 따른 피해자를 신속히 구제할 수 있도록 노동위원회와 계속 협의하고, 모성보호제도를 실질적으로 활용할 수 있는 환경 조성을 위해 근로감독을 강화하겠다"라고 밝히고 있지만 현실적 개선은 이뤄지지 않고 있다. <참조 기사> https://www.khan.co.kr/national/national-general/article/202312130730001 3. 저임금과 고용불안에 출산을 미루는 이탈리아 여성들 이탈리아에서는 여성 노동자들이 저임금, 고용불안, 열악한 공공 보육 여건으로 부득이하게 출산을 미루고 있다. 무급 인턴십을 거쳐 올해 겨우 1년짜리 시간제 일자리를 구한 30세 과학 작가 지아다는 월 800유로를 번다. 고용계약 갱신 예정이라지만 정해진 건 없어 출산을 미루고 있다. 그는 “우리는 아이를 갖고 싶지만 불안정한 상황 때문에 부모가 될 수 없다. 우리는 간신히 생계를 유지하고 있는데 아이가 있다고 상상해 보라”라고 말했다. 남자친구와 사는 26세 소셜미디어 전략가인 키아라는 직장에서 월 약 1,200유로의 수습 노동자 계약을 맺고 일하는데 앞으로도 임금이 많이 오를 것이라 예상하지 않는다. 그는 “식료품비, 집세, 공과금은 오르는데 임금은 그대로다. 우리의 재정 상황은 앞으로도 아이를 가질 수 있는 날이 오지 않을 수도 있다는 생각에 두려워하고 있다.” 최근 이탈리아 정부 보고서에 따르면 여성의 첫 출산 나이는 평균 31세, 여성 1인당 평균 자녀 수는 1.24명으로 유럽에서 가장 낮았다. 정부는 저출생 원인 중 하나로 ‘자녀를 낳으려는 성향의 감소’를 지적했는데 출산에 가장 큰 걸림돌은 경제적 문제다. 그리고 2021년 사직한 노동자의 72%는 여성이었는데 이들은 그 이유를 일과 돌봄을 병행하기 어렵기 때문이라고 했다. 토리노대학교 프로자토 교수는 “맞벌이라도 돌봄노동은 여전히 여성의 몫”이라고 말하며, 양질의 저렴한 공공 보육이 부족한 문제를 함께 지적했다. <참조 기사> https://www.aljazeera.com/features/2023/12/15/127 4. 노동유연화가 성별 격차 해법? 석연찮은 답 내놓은 IMF 총재 한국을 처음 방문한 IMF 총재가 한국의 경제적 성별 격차를 줄이기 위해서는 정부의 직접적인 지원, 유연한 노동시장, 성별 고정관념의 혁신이 필요하다고 제언했다. 크리스탈리나 게오르기에바 총재는 14일 열린 세계여성이사협회 특별포럼에 참석해 “한국이 근로시간 성별 격차를 주요국 평균 수준으로 줄이면 1인당 소득이 18% 늘어날 것”이라고 발언했다. 그는 한국과 같은 나라가 한 단계 나아가기 위해서는 “여성의 일과 가정의 양립을 돕기 위한 직접적인 지원이 필요하다”라고 밝혔다. 구체적으로 “보육 지원 확대, 1년 유급 육아휴직, 경력단절 여성 직업 전환 지원이 여성의 일로 간주하는 비정규직, 자영업자에게도 확대돼야 한다”라고 덧붙였다. 그는 유연근무제 도입 등 노동유연화도 성별 격차 해소를 위한 방안으로 제시했다. 그러면서 “IMF 연구에 따르면 퇴직금을 30% 줄이면 여성 고용이 1% 늘어난다”라고도 말했다. 과연 초국적 자본의 이해를 대변하는 국제기구의 수장다운 발언이다. 고용 경직성을 완화해 정규직 일자리는 없애는 대신 저임금의 단시간 일자리를 대폭 늘리자는 것이다. 이는 앞서 인용한 IMF 총재 발언에서 남녀 ‘임금 격차’가 아니라 ‘근로시간 격차’에 주목한 것을 보더라도 알 수 있다. 여성의 경제활동 참여가 확대되려면 노동유연화가 아닌 질 좋은 일자리의 보장이 이뤄져야 한다. <참조 기사> https://www.hankookilbo.com/News/Read/A2023121415080002661?did=NA 5. 인도 13세 가사노동자, 고용주로부터 학대당하다가 구출돼 최근 인도에서 13세 미성년자를 가사노동자로 고용한 고용주가 잔혹하게 감금·학대한 사건이 드러나 인도가 충격에 휩싸였다. 일해도 가난한 부모는 “선택의 여지가 없어서” 어린 딸에게 일자리를 수소문해 주었다. 지난 6월 델리 시내의 고급주택에 가사노동자로 고용된 딸은 하루 24시간 주 7일을 일하는 조건으로 첫 2개월만 9,000루피의 월급을 받았다. 그리고 5개월간 고용주는 48시간에 1번씩만 음식을 주면서 매일 쇠막대, 망치, 칼, 둔기 등을 이용해 구타하고, 염산 테러, 성폭력, 불법 촬영, 학대, 감시와 고문, 부모살해 협박, 노동착취 등 이루 말할 수 없는 폭력을 가했다. 소녀의 어머니가 이전 고용주의 도움으로 집을 찾아가 12월 8일 극적으로 구조하면서 사건이 알려졌다. 그런데 가사노동자가 고용주로부터 착취와 학대를 당하는 사건이 발생한 것은 지난 1년간 델리-NCR에서만 벌써 여덟 번째다. 고용주가 경찰에 체포된 사례는 아직 없다. 구르가온에서만 가사노동자의 60%가 정부의 시스템에 신고되지 않은 상태다. 가사노동자의 노동조합인 가렐루캄가르노동조합(GKU)은 구조적 문제를 지적하며 정부에 가사노동자 권리 보장에 나설 것을 강력히 촉구했다. “고용주의 명령에 따라 일해야 하고 개인 주택에 묶여 있는 전일제 가사노동은 높은 수준의 착취를 낳는다. 정부는 24×7(하루 24시간, 주7일 노동) 연중무휴 불법 계약의 가사노동을 규제하지 않는다.” 또한 이러한 계약이 만연하기 때문에 “고용주로부터 폭력, 성 착취를 겪는 노동자가 매우 많을 것이다”라며 이런 계약은 “빈곤한 여성과 아동을 고용주의 신체적 통제에 놓이는 노예 상태로 내몰기에 반드시 금지해야 한다”라고 밝혔다. 노동조합은 가사노동자의 실질적 권리 보장을 위한 24시간 연중무휴 가사노동 계약 금지를 포함해 실노동시간, 최저임금, 식사, 휴무일, 의료비 등 노동조건에 대한 지침, 가사노동자 실태조사, 경찰의 불만 사항 등록 의무화 등을 정부에 촉구했다. 정부는 이제야 노동조합과 대화에 나서며 ‘가사노동자 권리 헌장’을 마련하기로 약속했다. 자신도 가사노동자로 일하는 피해노동자의 어머니는 “지금 우리가 겪고 있는 고통을 다시는 그 누구도 겪지 않기를 바란다”라고 말했다. <참조 기사> https://www.tribuneindia.com/news/haryana/over-60-domestic-help-in-gurugram-not-registered-570743 https://indianexpress.com/article/cities/delhi/ban-work-agreements-domestic-workers-union-gurgaon-dc-9066770/ 6. 여성이 남성보다 노동시간, 성평등, 산재, 4대 보험 상담 높아…. 민주노총 23년도 상담통계 분석 발표 민주노총이 2023년도 노동 상담통계 분석 결과를 담은 보고서를 발표했다. 보고서는 올해 1월 1일부터 10월 31일까지 6천여 건의 상담내용 분석 결과를 담았고, 이는 복수 응답이 가능한 유형별 상담 건수로 보면 9,700여 건에 달한다. 전체 상담 중 가장 높은 비율은 임금(29.2%) 상담이었고, 그 뒤를 이어 해고‧징계‧인사이동(11.7%), 노동3권(11.6%), 산업재해‧노동안전(10%) 순으로 나타났다. 특히 올해는 산업재해 및 노동안전 상담이 눈에 띄게 상승했다. 30인 미만 사업장의 산안‧산재 상담 건수가 지속적인 증가 추세인데 상담 비중도 절반 가까이나 된다. 이렇게 소규모 사업장의 산안‧산재 상담이 증가하고 있고 노동부의 연도별 산재 현황도 중대재해의 80%가 50인 미만 사업장에서 발생한다는 것을 보여준다. 이에 정부는 50인 미만 사업장 중대재해처벌법 적용을 유예하려 하고 있다. 노동상담 유형을 성별로 비교해보면 여성은 남성보다 노동시간, 성평등, 산재, 4대 보험 관련 상담 비중이 높고 노동3권에 대한 상담비중이 낮았다. 보고서는 이를 토대로 여성은 남성보다 상대적으로 열악한 노동조건에 처해있을 뿐 아니라 불안전한 직장에서 일하고 있으며, 불안정한 고용상태에 놓여 있다는 것을 알 수 있다고 분석하고 있다. <참조 기사> https://nodong.org/statement/784429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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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본주의가 강요한 정신질환, 각자도생 대신 집단적 변혁을!얼마 전 넷플릭스 드라마 <정신병동에도 아침이 와요>가 상당한 인기를 끌었다. 종합병원 정신병동에서 일하는 의료인들의 이야기인데, 사람들의 공감을 자아냈던 것은 정신질환으로 입원한 환자들의 사연이다. 한때는 우리 주변의 평범한 누군가였을 그들을 아프게 한 것은 비인간적 자본주의 체제다. 장시간 노동과 과중한 업무 부담으로 공황장애를 앓는 청년 노동자, 직장 상사의 폭언‧갑질에 불안장애가 생긴 중년 노동자, 취업난에 수년간 공무원 시험을 준비하다 실패하고 망상 증세를 보이는 청년, 평생 주변의 시선을 의식하며 강요된 삶을 버티다 조울증에 빠진 중년 여성 등의 이야기는 그렇게 낯설지 않은 소재다. 드라마는 각자도생의 자본주의로 극심히 고통받는 사람들을 섬세히 묘사하고, 이를 극복하는 인간의 따뜻한 연대를 낭만적으로 그려낸다. 그러나 공허하다. 남의 처지를 헤아리고 도움의 손길을 보낼 여유가 있는 사람들 자체가 드문 것이 오늘날 우리의 현실이기 때문이다. 드라마에서도 통장 잔고가 아홉 자리이고 당연하듯 수입차를 끌고 다니는 의사들이나 그런 모습을 보여줄 뿐이다. 노동자 대중투쟁의 퇴조는 가장 억압받고 고통받는 사람들이 한데 뭉쳐 비인간적 경쟁체제라는 거악(巨惡)을 뒤엎을 수 있다는 낙관적 열망까지도 함께 앗아가 버렸다. 오늘보다는 내일이 더 나을 것이라는 소박한 희망조차 사라진 시대, 그것이 오늘날의 자본주의다. 집단적 자살, 저출산 11월 30일 한국은행이 발표한 경제전망보고서에는 <초저출산 및 초고령사회: 극단적 인구구조의 원인, 영향, 대책>이라는 제목의 중장기 심층연구 결과가 수록돼 있다. 한국은행에 따르면, 초저출생의 원인은 “청년들이 느끼는 ‘경쟁압력’과 고용·주거·양육 측면의 ‘불안’” 때문으로 분석되었다. 양질의 일자리가 부족하고 취업 경쟁이 심화된 상태에서, 경쟁압력 체감도가 높은 청년들일수록 희망 자녀수가 유의하게 낮게 나타났다는 것이다. 구체적으로 취업을 못하거나 취업을 했더라도 비정규직 노동자인 청년들은 결혼 의향이 낮았지만, 공공기관에 취업하거나 공무원인 경우에는 결혼 의향이 높았다. 미혼 사유, 무자녀인 사유를 당사자에게 물어본 결과, ‘취업, 생활안정, 집 문제’ 등 “결혼하고 싶지만 상황이 여의치 않아서”라고 응답한 비율이 가장 높았다. 전국 20~39세 청년 2천 명을 상대로 온라인 설문을 실시한 결과는 미래에 대한 희망이 사라진 청년 세대의 인식을 그대로 드러낸다. 설문 응답자의 84.9%는 지난 10년간 우리 사회의 불평등이 더욱 심각해졌다고 평가했으며, 87.4%는 향후 10년간 불평등이 더욱 심화될 것이라 전망했다. 개인 노력에 의한 계층 이동의 가능성이 낮다고 응답한 비율은 67.8%, 자신의 세대보다 자녀 세대의 사회경제적 지위가 높아질 가능성이 낮다고 응답한 비율은 61.6%에 이르렀다. 국제 금융자본의 두목 가운데 하나인 라가르드 유럽중앙은행 총재가 몇 년 전 한국의 재앙적 저출생을 두고 “한국은 마치 집단적 자살사회와 같다”고 표현한 건 잘 알려진 일이다. 그나마 출산율이 1명을 넘었던 때의 발언이니, 합계출산율이 0.7명(2023년 3분기)까지 떨어진 지금에는 그 표현의 적절성을 더욱 부정할 수 없게 되었다. 자본주의에서 희망을 잃어버린 사람들 한국의 저출생이 미래의 희망을 잃은 사람들의 소극적 자살이라는 점은, 실제 자살자 수 통계를 통해서도 다시 확인된다. 2022년 한국의 자살 사망자 수는 12,906명으로, 인구 10만 명당 자살사망률은 25.2명에 이른다. 10대부터 30대까지의 사망 원인 1위가 자살이라는 점, 한국의 자살률이 OECD에서 단연 1위라는 점은 주지의 사실이다. (국제 비교를 위해 OECD 기준인구로 연령 구조 차이를 제거한 표준화 사망률을 따졌을 때, OECD 평균은 10.6명, 한국은 22.6명이다.) 인간은 공동체 속에서 협력하고 연대하며 자신의 장점을 발휘할 때 행복감을 느끼기 마련이다. 비인간적 줄 세우기가 유일한 사회 구성 원리로 받아들여지는 시대, 경쟁의 승자에게는 넘치는 보상이 주어지지만 경쟁의 패자에게는 기초적 권리조차 박탈하는 것이 ‘공정과 정의’로 옹호되는 시대에, 제정신을 부여잡고 살라는 것 자체가 너무도 가혹한 요구일지 모른다. 보건복지부의 ‘2023 고립·은둔 청년 실태조사’에 따르면 전국에 1만 2,105명의 고립·은둔 청년(19세~39세)이 확인된다고 한다. 이 중 504명은 아예 방 밖으로 나오지 않는 고위험군이다. 고립·은둔 청년의 81%는 대학 이상의 고등교육을 받은 사람들이다. 이들이 고립·은둔을 선택하는 첫 번째 이유는 취업 등 직업 관련 어려움(24.1%)이었다. 임금 노동자의 54.7%(2023년 상반기 기준)가 300만 원 미만의 임금을 받는데도 ‘삼백충’이란 비하 표현이 버젓이 통용되는 시대에 청년들이 아프지 않을 도리가 없다. 윤석열 정부의 구역질 나는 ‘정신건강정책’ 심각성은 자본가 정부조차 외면할 수 없는 지경이다. 윤석열은 지난 12월 5일 ‘정신건강정책 비전선포대회’라는 것을 주재했다. 윤석열은 “급속한 산업 발전, 1인 가구의 증가, 가족을 비롯한 공동체의 붕괴, 과도한 경쟁 등으로 정신건강 문제가 심각해졌지만 국가 차원의 본격적인 투자가 거의 없었다”며, “정신건강 문제를 중요한 국가 아젠다로 삼고 적극 해결책을 강구”하겠다고 떠벌렸다. 구역질 나는 수작이다. 저들이 저출생의 심각성이나 정신건강 대책의 시급성을 떠드는 것은 어디까지나 자본 축적의 전제가 되는 노동력 인구의 양적·질적 저하를 걱정하는 것에 불과하기 때문이다. ‘정신건강정책 비전선포대회’에서 한 참석자가 “직장생활 스트레스가 정신건강을 넘어 생산성에도 문제를 야기하며, 개인의 정신건강은 기업의 경쟁력을 넘어 국가의 경쟁력에도 영향을 미친다”고 발언한 것, 윤석열이 “정신건강 문제는 ‘사회안보’에 해당하는 문제”라고 지껄인 것은 이런 맥락이다. 자본의 이윤을 철두철미하게 수호하는 자본가 정부는 정작 수많은 사람을 병들게 하는 자본의 이윤 질서에 대해서는 털끝만큼도 건드릴 생각이 없다. 오히려 무한경쟁과 부당한 차별을 ‘정의와 공정’으로 포장하며, 성평등의 절박한 요구는 ‘더 이상 구조적 성차별은 없다’는 말로 뭉개버리고, 노동시간 단축과 일자리 나누기 대신 장시간 유연 노동시스템을 강제하는 것이 현 자본가 정부다. 그런 자들이 “일상적 마음돌봄 체계”를 구축해 “예방부터 치료, 회복에 걸친 전 과정의 지원체계를 획기적으로 전환”하겠다고 떠드는 것은 꼴불견이다. 죽지 말고 함께 살자 누군가 아직 이 세상이 살만하다고 느낀다면, 그것은 자신의 계급적 지위 또는 계급 ‘내’에서의 위치를 객관화하지 못한 탓이라 해야 옳다. 경쟁에서 살아남은 소수의 승자를 제외한 나머지 패배자들에게, 한국의 자본주의는 이미 지옥이다. 불안정 고용과 저임금으로 고통받음에도 경쟁의 승자들이 자랑스레 내뿜는 성공 논리 앞에 무력하게 침묵해야 하는 사회에서 불행과 우울은 피할 수 없는 숙명이다. 모두의 ‘정신건강’은 잃어버린 인간다움을 회복하는 것을 통해서만 실현될 것이다. 경쟁에서 살아남은 소수가 사회적 특권을 독점하고 경쟁에서 패배한 절대 다수는 일체의 권리에서 배제된다면, 잘못은 경쟁에서 패배한 사람들에게 있는 것이 아니라 경쟁 질서 그 자체에 있다. 내가 느끼는 고통이 혼자만의 것이 아니라 자기 노동력을 판매해야 생존 가능한 노동자계급 다수의 보편적 고통이라는 것, 노동자계급의 빈곤과 박탈 맞은 편에는 노동자계급으로부터 거대한 부를 앗아간 한 줌의 자본가계급이 있다는 것, 저들 자본가계급이 누리는 무제한적 권력에는 어떠한 정당성도 없다는 것, 노동자계급이 사소한 차이를 넘어 거대한 단결을 실현하면 자본가 세상을 뒤엎고 새로운 사회를 건설할 수 있다는 것, 이것을 인식하고 실천하는 과정에서 우리는 상실한 인간성을 다시 되찾을 수 있다. 한마디로 노동자 계급투쟁의 복구를 통해서만 한국 사회의 각종 병리 현상은 비로소 치유 가능하다. 미조직 노동자들에게, 그리고 청년 노동자들에게 집단적 노동자투쟁이 하나의 ‘선택지’조차 아닌 시대에 막연한 얘기처럼 들릴지도 모른다. 그러나 다른 길도 없다. 세계 곳곳에서 오랜 침묵을 깨뜨리고 노동자 계급투쟁이 진전하고 있는 지금, 한국에서도 그러한 길이 반드시 열릴 것이다. 자본주의에 더 이상 활로가 없다는 점은 명명백백(明明白白)하기 때문이다. 사회주의자들과 전투적 조직노동자 운동이 앞장서 전체 노동자들과 가난한 청년들, 차별과 억압에 고통받는 민중을 대변해 싸워나갈 때 거대한 노동자투쟁의 물결은 기필코 우리 앞에 다시 모습을 드러낼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