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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주 치밀하지만, 허약한 덫 - 김영훈 노동부 장관 후보자 지명사진: 뉴시스 아주 치밀하지만, 허약한 덫 - 김영훈 노동부 장관 후보자 지명 노동부 장관 후보자로 지명된 전 민주노총 위원장 김영훈은 첫 출근길에서 가장 시급한 과제는 “노동시장 분절화”라고 얘기했다. 그러면서 비임금 노동자의 확산과 법 밖의 노동자 보호를 강조했다. 근로감독관들을 만나서는 “가짜 3.3 계약, 5인 미만 사업장 쪼개기 관행을 살펴야 한다”라고 얘기했다. 특수고용노동자들을 비롯해 수많은 노동자가 오래전부터 외쳐 왔던 것이기에, 당연히 수긍할 수 있는 말이다. 이런 말들과 더불어 ‘민주노총 전 위원장’, ‘철도 노동자’란 김영훈의 타이틀은 다른 노동문제도 해결해 줄 수 있지 않느냐는 기대를 하게 만들기도 한다. 노동운동 지도자가 정부가 내준 자리를 꿰찬 건 이번이 처음은 아니다. 예를 들어 70년대 원풍모방 노조위원장으로 이름을 날렸던 방용석은 김대중 정부 때 노동부 장관을 지냈는데 고졸에 노동운동가 출신으로 주목을 받았다. 하지만, 철도·발전·가스 등 공공부문 노조 파업과 공무원노조 투쟁을 탄압했다. 공무원노조와 대화하기는커녕 무조건적인 설립 불허방침을 내세웠고 경찰 투입과 간부 체포를 밀어붙였다. 김영훈은 얼마나 다를 수 있을까? 김영훈은 “민주노총 위원장 시절과 현재 생각이 달라진 것이 있느냐”라는 질문에 “서 있는 자리가 달라지면 풍경이 달라진다”라는 말로 앞으로의 실제 행보가 어떨지 가늠케 했다. 저들도 느낀다 ‘가짜 3.3 계약’은 4대 보험 가입이나 퇴직금 지급 의무를 피하려고, 근로소득자인 ‘노동자’를 ‘사업소득자’로 위장해 사업소득세(3.3%)를 원천 징수하는 계약 형태인데, 이런 계약을 맺고 일하는 노동자들이 800만 명이나 된다는 통계가 있다. 최소한 수백만 명이다. 이들의 문제를 뺀 노동자 권리 보호는 어불성설이다. 이재명이 특고·플랫폼·프리랜서 등 ‘비임금 노동자’ 가운데 사용자의 지휘·감독을 받는 경우, ‘근로자 추정제도’로 근로자 오분류를 개선해 근로자성을 부여하고, 최저임금을 적용받을 수 있도록 추진할 계획이라고 밝힌 이유도 이 문제를 비껴갈 수 없는 상황이기 때문이다. 근로자 추정 원칙이란 특고, 플랫폼, 프리랜서 등에게 근로자성 분쟁이 발생할 때, 일단 이들을 근로자로 추정해 문제를 해결하자는 것인데, 불 보듯 뻔한 자본가들의 반발을 제어할 계획은 아무것도 없다. 무엇보다 근로자성 추정을 하려면 기존 근로자 정의나 범위를 새로 만들어야 하는데 그럴 계획도 없다. 기존 대법원 판례 바탕으로 판정하겠다는 뜻인데, 이렇다면 근로자성을 아무리 추정해 봐야 특고, 플랫폼, 프리랜서 노동자 등은 아무도 근로자성을 인정받지 못한다. 하지만 이재명 정부가 이들의 분노를 컨트롤해야 한다고 느끼고 있는 것은 분명하다. 당분간 한국의 계급투쟁은 기존 미조직 상태에 있던 비정규 불안정노동자층이 투쟁과 함께 자기 조직화에 나서고, 여기에 조직 노동자 운동이 영향을 받아 움직이는 양상을 보일 가능성이 크다. 열악한 미조직 노동자, 청년노동자들의 분노에 조응하기 위해, 민주노총은 조직 전반에서 관료주의와 조합주의를 청산해야 한다. 신자유주의 양극화를 거치며 극심해진 정규직과 비정규직의 분열 상태를 계급 단결투쟁으로 극복하며, 새롭게 투쟁에 나서는 노동자들의 목소리와 요구를 중심으로 민주노조운동을 재구축해야 한다. 세계 자본주의의 전반적인 위기 심화에 따라 이재명 정부가 조직된 노동자들에 대한 전면적 공세를 펼칠 시점은 다가올 수밖에 없다. 그러나 당분간 이재명 정부는 노조 관료층이 수용하는 범위 내에서 노동개악을 밀어붙이고, 노동자들의 역동적 투쟁을 봉쇄하는 전략을 쓰려고 할 것이다. 정치적으로는 조직된 노동운동을 극우 보수정당에 대한 견제 도구 정도로 활용하려 할 것이다. 이러한 전략이 체제 유지를 위해 더 효과적이라고 생각할 것이기 때문이다. 그런데, 노동운동 통제의 핵심은 바로 수많은 미조직 노동자, 불안정 노동자, 청년 노동자의 응축된 분노가 폭발하는 것을 막을 수 있느냐, 없느냐다. 윤석열 퇴진 국면에서도 이 노동자들이 지치지 않고 투쟁을 밀어붙였다. 억눌린 용수철이 크게 튀어 오르듯 아무런 권리도 없고, 아무런 보호도 받지 못하는 수많은 가난한 노동자의 저항은 적절한 때를 만나면 아주 높게 솟구칠 수 있다. 윤석열 퇴진 투쟁 때 등장해 지금도 싸우고 있는 ‘말벌’들은 몇십 배, 몇백 배 규모로 확장될 수 있다. 그렇다면 저들은 어떻게 대응할 것인가? 꼼수, 기만, 탄압 문재인 정부도 수많은 미조직 노동자의 열악한 처지를 거론하며 “노동기본권을 국제기준 수준으로 보장하겠다”라고 여러 차례 얘기했다. 하지만, 어떤 것도 바뀐 것은 없었다. 특수고용노동자들의 온전한 노동3권은 기약 없이 미뤄지기만 했다. 문재인은 최저임금 1만원을 공약으로 내걸었다. 최저임금을 올리지 않으면 가난한 노동자들이 저항할 수 있고, 대폭 올리면 자본가들이 난리 칠 것 같으니 최저임금 산입범위를 개악해서 가난한 노동자들의 뒤통수를 후려쳤다. 재벌과 원청사가 하청 노동자 적정임금 지급을 책임지도록 원청 사용자 책임을 법제화하는 대신 꼼수를 부렸다. ‘공공부문 비정규직 제로’정책은 기껏해야 자회사나 무기계약직으로 비정규직의 형태만 바뀌는 기만적인 결과를 낳았다. 광주형 일자리 같은 부스러기를 가난한 노동자들과 청년층에 던져 주었을 뿐이었고, 톨게이트 투쟁 사례에서 볼 수 있듯 노동탄압은 멈추지 않았다. 조선산업 구조조정으로 수많은 노동자가 가차 없이 일터에서 쫓겨났다. 이 모든 일이 진행되는 동안 자본가들의 이윤은 철저히 보호됐다. 만약 민주노조운동이 문재인 정부에 의존하지 않고 박근혜 퇴진 촛불로 움터 나왔던 광장의 에너지를 믿고 독자적으로 치고 나갔다면 볼품없는 것만을 움켜쥐지는 않았을 것이다. 다시 말하지만, 꼼수, 기만, 탄압이 문재인 정부가 가난한 노동자들, 불안정 노동자들을 통제했던 방식이다. 이재명 정부는 다르겠는가? 그렇다면, 노동운동이 가야 할 길도 명확하다. 꼼수에 속지 않고, 기만에 빠지지 않으며, 탄압에 멈추지 말아야 한다. 특히 저들이 대안을 내놓겠다고 하는 부분에서, 서로가 피할 수 없는 첫 번째 승부처에서, 즉 특수고용, 플랫폼, 5인 미만 사업장 부문에서 진짜 대안을 제시하며 대대적인 조직화와 투쟁에 나서는 것이다. 노동자성 인정, 근로기준법 완전 적용, 노조할 권리 보장, 사회보험 보장 등 노동자들이 모든 노동권을 누리면서 조직화와 투쟁에 나설 수 있도록 뒷받침해야 한다. 양의 탈 이러한 피할 수 없는 대결 앞에 놓인 김영훈의 역할은 무엇인가? 역대 민주당 정부는 노동자에게 한 약속을 헌신짝처럼 버리고 탄압하면서도 자신을 ‘노동자의 친구’로 위장하려 했다. 그래야 노동자 투쟁으로부터 자본주의 체제를 효과적으로 보호할 수 있기 때문이다. 그 위장 수단이 바로 일부 노동운동 지도자들을 포섭해, 양의 탈을 쓰도록 만드는 것이다. ‘민주노총 전 위원장까지 했던 사람이 참여한 정부는 결코 노동자의 적이 아니’라는 포장지는 얼마나 그럴싸한가? 노동운동 상층 지도자들이 자본가 정부와 자본가 정당에 포섭되면 어떤 일이 일어나는가? 포섭된 지도자들은 단호한 투쟁을 포기한 채 자본가 정부의 시혜에 의지하고, 자본가 정당의 중재와 협조에 기대는 노동운동을 요구할 것이다. 발톱 빠진 호랑이를 무서워할 늑대는 없다. 정부와 자본가들은 투쟁의 힘을 잃어버린 노동운동에 탄압의 몽둥이를 마음대로 휘두를 것이다. 양의 탈 뒤 늑대의 얼굴이 드러나는 시간은 그리 오래 걸리지 않을 것이다. 국민의힘은 벌써 김영훈에게 화물연대가 파업하면 어떻게 할지를 묻고 있다. 김영훈의 대답은 예정되어 있다. 자본가들의 반발을 최소화하고 노동자들의 저항도 억눌러야 하는 김영훈이 ‘국가 경제를 생각해 무리한 요구를 하지 말라’는 것 외에 어떤 대답을 할 수 있겠는가? 이재명은 민주노조운동의 정치적 독자성이 그 어느 때보다 약해져 있는 지금, 민주노총 전 위원장이란 타이틀을 가지고 있고, 이미 오랫동안 민주당과 손발을 맞춰 온 김영훈을 투쟁에 나서는 노동자들을 달래고 압박할 최적의 인물이라고 생각했을 것이다. 정리해고제, 근로자파견제를 도입한 노사정위원회에서 알 수 있듯, 사회적 대화기구는 노동자의 이름으로 노동개악을 관철하는 수단이었는데, 김영훈을 노동부 장관에 앉히는 것이 민주노총을 사회적 대화 기구로 끌어들일 가장 효과적인 수단이라는 계산도 했을 것이다. 하지만 타이틀만 빼면, 김영훈은 허약한 덫일 뿐이다. 아직 김영훈을 잘 모르는 노동자들도 많지만, 김영훈의 관료적 행태와 출세주의적 행동은 여러 번 드러난 적이 있다. 철도노조 위원장 시절, 그는 철도청의 공사 전환 과정에서 대대적인 구조조정 계획을 용인하면서 2004년 12월 3일 파업 돌입 1시간을 앞두고 사측과 일방적으로 합의한 전력이 있다. 전기분야에는 자회사가 설립되고 운수분야엔 대규모의 비정규직이 채용되었으며, 인력 충원 없는 3조 2교대 전환으로 노동자들은 고통 속에 내몰렸다. 철도 해고자들이 철도공사 출범일인 2005년 1월 5일 대전청사 앞에서 격렬한 투쟁을 벌이고 있던 그 시간에, 김영훈은 신광순 공사 사장과 출범식장에서 화합의 케이크를 잘랐다. 정의당 노동본부장을 지내고 국회의원 선거에서 정의당 비례대표로 출마까지 하고 나서, 아무런 사과조차 없이 2021년 민주당에 기어들어가 작년 국회의원 선거에서 민주당 비례대표 20번을 맡는 등, 무책임하고 기회주의적인 모습을 보여왔다. 투쟁하는 노동자들에게 김영훈에 대한 환상은 거의 없다. 사진: 경남도의회 김영훈 같은 관료들이 자본가 세력으로부터의 정치적 독자성이라는 노동자운동의 근본 대의마저 손바닥 뒤집듯 뒤집고 버젓이 활동할 수 있는 이유는 정의당에 스며들어있던 정치노선 때문이다. 민주당의 왼쪽 날개 정도로 역할하며 기반을 마련하고, 노조 관료들과 출세주의자들을 마구잡이로 끌어들여 세를 부풀리는 야권연대 노선, 선거주의 노선의 반영이다. 아닌 것을 아니라고 말하는 것부터 시작하자! 민주노조운동은 광장의 에너지가 살아 있고, 이재명 정부가 자신의 말을 행동으로 옮겨야 한다는 압력을 거세게 받을 수밖에 없는 지금, 최대한 능동적 자세로 투쟁을 조직해야 한다. 이 열린 국면에서 수많은 미조직·불안정 노동자, 청년·여성 노동자들의 자기 조직화와 대대적인 분출을 끌어내야 한다. 이재명 정부에 대한 지지와 의존은 이 소중한 과제에 다가서는 것조차 가로막는다. 자본가 정부의 공허한 약속, 화려한 말 잔치, 수백 번의 거짓말이 노동자의 현실을 바꾼 사례는 단 한 번도 없다. 아닌 것을 아니라고 말해야 한다. 우리는 ‘민주당 밀어주기 정치’의 결과를 수없이 봐왔다. ‘윤석열 정부로 돌아갈 수 없다’며 이재명 정부에 의존하고 그들을 밀어주는 한, 노동자운동은 거듭 민주당 정부의 디딤돌 역할로 남아 있을 것이고, 민주당 정부는 김영훈 같은 인물을 방패 삼아 노동자들을 저항을 억누를 것이다. 다른 길이 있다. 이재명 정부에 어떠한 신뢰도 주지 않으며 독립적인 투쟁에 나서는 길이다. 정부에 맞선 투쟁을 확대하며 모든 자본가 정당으로부터 단절해야 한다. 치밀하지만, 허약한 덫을 걷어내고 세상을 바꿀 수 있는 유일한 힘은 노동자계급의 집단적인 투쟁을 조직하는 길이다. 자본주의를 고쳐 쓰려다 자본주의에 흡수되는 개량주의 정당이 아니라 노동해방을 열어가는 노동자 투쟁정당 건설을 위해 한 발 한 발 앞으로 나아가는 길이다. 진실한 희망은 이 길에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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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0년이 흘렀지만, 그날의 정신은 언제나 노동자를 깨운다!농성인원을 점검하고, 전열을 가다듬고, 다시 투쟁결의를 모았다. 우리는 스스로를 보호하기 위해 미싱에서 기름을 빼서, 재단 반에서 찾은 솜에 묻혀 횃불을 밝히고, 방을 뒤져다가 화염병을 만들었다. 모두 자신을 보호할 무기를 하나씩 찾아들고, “최후의 일인까지 최후의 일각까지 두려움 없이 싸울 것”을 결의했다. 조합원들이 힘들어할 때 간부들과 지도부는 몇 곱절 목소리를 높여 사기를 북돋우기 위해 노력했다. 그러나 갈수록 허기져서 버틸 힘이 없었다. 모두들 태어나 처음으로 며칠씩 배를 곯고 속옷도 못 갈아입고 씻지도 못했다. (···) 물도 먹을 수 없고 화장실 물을 받아다가 사무실에서 쓰는 가스렌지에 물을 끓였다. 그 때 누군가 물을 끓이기 위해 넣은 옥수수가 퉁퉁 불어 먹어보니 먹을 만하다고 말했다. 많이 힘든 사람부터 먹기로 했다. 자신도 배고파 힘들면서도 동지를 먼저 챙기는 모습은 투쟁에서 만나는 소중한 동지애다. 쓰러지는 친구들이 나타나자 설탕물을 조금씩 타서 먹였다. (김준희, 대우어패럴 전 사무장, “같은 시대, 다른 이야기, 구로동맹파업의 주역들, 삶을 말하다”, 유경순 엮음, 메이데이, 86쪽) 40년 전인 1985년 6월, 구로동맹파업의 한 장면이다. 1985년 6월 24일, 서울 구로공단에서 한국전쟁 이후 최초의 연대파업이 시작됐다. 구로동맹파업은 노동자계급이 반독재 민주화 투쟁의 중심, 변혁운동의 주체임을 각인시켰다. 수많은 선진노동자를 배출시키며 노동자 정치적 발전을 추동했고, 87년 노동자대투쟁의 밑거름이 되었다. 구로공단은 1960년대 말 박정희 정권이 조성한 수출산업 공단 제1호 지역이었다. 노동자들은 주로 섬유, 봉제, 전자제품 공장에서 일했다. 1970년대 한국의 전체 수출액에서 구로공단의 생산품이 약 10%나 차지했다. 저임금, 장시간 노동, 관리직과의 차별 대우, 성희롱, 성폭력이 극심했다. 구로지역 사업장들의 임금 수준은 1인당 국민소득이 1,988달러, 즉 5인 가족 기준 1가구 평균이 70만 원이었던 그 당시에 월 10만 원 정도였다. 대우어패럴 노동자들은 기본 근무 10시간에 항상 2∼8시간의 잔업, 철야까지 월평균 80여 시간, 심지어 110시간의 초과근무를 해야 했다. 노동자들은 ‘공순이’, ‘공돌이’로 불리는 일하는 기계였을 뿐이었다. 비인간적인 노동조건을 강요받았다. 노동자가 200명이 훨씬 넘었는데 화장실은 남녀 한 칸씩만 있고, 그것도 붙어있는 데다가 문은 판자쪼가리로 안이 다 보이고, 잠그는 고리도 없고, 변은 넘쳐서 발 디딜 곳도 없어서 화장실 가는 게 공포스러울 정도였다. (김현옥, 선일섬유 전 위원장, “같은 시대, 다른 이야기, 구로동맹파업의 주역들, 삶을 말하다”, 유경순 엮음, 메이데이, 18쪽) 하루아침에 만들어진 투쟁이 아니다 폭압을 이어가던 전두환 정권은 1983년 2월부터 12월까지 구속자 석방, 사면·복권, 제적생 복교, 대학 상주 경찰의 철수, 해직교수 복직 등의 정치적 유화조치를 단계적으로 실행했다. 집권 안정기에 들어섰다는 자신감, 탄압의 효력 감소, 1983년 11월 미국 대통령 레이건 방한을 대비한 분위기 조성 등이 그 이유였다. 군사정권의 유화조치는 민주화 투쟁이 다시 활성화하는 계기로 작용했다. 일시적으로 활동공간이 열리자, 저임금과 높은 노동강도에 고통받던 노동자들이 노동조합을 결성하고 최저생계비 확보와 노동악법 철폐 투쟁에 나섰다. 1983년 ‘민주노동운동자 블랙리스트철폐대책위원회’를 만들어 블랙리스트 철폐투쟁을 벌였고 1984년에는 ‘청계피복노조 합법성 쟁취’를 위한 격렬한 투쟁을 벌였다. 1984년 구로공단에도 민주노조가 연이어 결성됐다. 1984년 가리봉전자, 대우어패럴에 이어 효성물산에서도 7월 14일 여성노동자들이 모여 민주노조를 결성했다. 대우어패럴에 이어 대한마이크로, 가리봉전자, 선일섬유, 효성물산, 협진, 유니전 등에서 속속 민주노조가 결성됐다. 1970년대 민주노조운동에서 배출된 노동자출신 활동가들과 학생출신 활동가들이 각 사업장에 들어가서 끈질기게 활동한 결과였다. 이 시기 구로공단 민주노조운동의 특징은 다양한 방식의 연대와 의식적 조직화에 있다. 연대 활동은 신생 노조로서 노조 운영을 위한 정보 교환과 자문이 필요하다는 요구에서 노조 간부들 간의 가벼운 교류로 시작됐으나 점차 노조 운동의 방향을 공유하는 것으로 발전했다. 노조 탄압 사례 발표를 통해 여러 노조의 조합원들이 비슷하게 탄압받은 경험을 공유하고 분노하면서 노동자로서의 동질감을 느끼기도 했다. 탄압이 한 기업 차원의 단순한 문제가 아니라는 점을 인식하면서 공동 대처 방안을 찾았다. 노조 현판식 같은 기념행사나 문화 행사에 서로 번갈아 참여했다. 탈춤, 꽃꽂이, 연극 등 다양한 공동체 프로그램이 있었다. 숙박 교육에 참여한 조합원들은 공식적인 교육 일정이 끝나면 서로 간에 각자의 회사 이야기나 살아온 이야기를 하면서 밤을 지새우기도 했으며 이 과정에서 ‘너희 회사, 우리 회사’를 구분하지 않고 하나로 어울리게 됨으로써 노동자들의 일체감은 더욱 높아졌다. 다른 한편으로는 비공개로 여러 노조의 간부들이 참여하는 지역 소모임을 만들어 학습하면서 사회를 보는 눈을 넓혀가는 지역 활동도 전개했다. 이런 활동이 공동으로 싸울 수 있는 기초이자 토대였다. 소모임과 비공개조직에서 단련된 투사들, 노동자의 대의, 투쟁, 연대를 끊임없이 실어 나르며 선두에서 투쟁하는 선진 투사들이 있었기에 조합원들은 굴종이 아니라 투쟁을 선택할 수 있었다. 노동자 소모임 프로그램의 기본 틀은 다음과 같다. “[1단계 프로그램] 노동자의 현장과 생활에서 출발하는 토론 → 의식화에 초점 (예) ‘근로자를 가족처럼’, ‘공장 일을 내 일처럼’ 등의 가부장적 이데올로기와 충효적 이데올로기에 대한 토론과 교양 + 각 사업장 근로조건을 비교하고 토론 [2단계 프로그램] 우리 사회는 어떤 사회인가 등의 사회문제를 둘러싼 토론 [3단계 프로그램] 노동운동사 및 정치경제학적 기초교양” 이런 소모임은 4~6명을 기본 단위로 하여 6~7개 정도가 비공개로 추진되었다. 대우어패럴 교선부장 김준희는 가리봉전자, 남성전기, 협진양행 노동자 5명으로 구성된 한 소모임에 참여했다. 소모임에서는 각 공장의 실태와 운동 상황이 토론되고 노동의 역사, 일하는 사람을 위한 경제지식, 어머니 등을 읽고 학습을 했으며 다른 사업장의 노동자들과의 만남을 통해 노동자로서의 동질감을 형성해 갔다. 지역소모임을 통한 조직과 의식화는 새로운 노동운동가를 양성하는 과정이기도 했다. 또한 이들은 노조에서도 조합활동을 활성화시키는 데 역할을 했으며 나아가 노조 간의 지역연대 활동에 기초가 됐다. (유경순, 2007, 아름다운 연대 - 들불처럼 타오른 1985년 구로동맹파업, 메이데이) 지난 6월 15일 사회주의를향한전진, 스튜디오R, 학생사회주의자연대가 함께 개최한 <구로동맹파업 40주년, 역사기행>에 강사로 참여한 대우어패를 전 사무장 강명자 동지는 기숙사가 일찍 소등해서 가로등 불빛에 의지해 책을 읽었던 경험, 사업장을 뛰어넘어 연대했던 경험을 얘기하며 노동자들이 열심히 배우려 했고, 일상적으로 연대하려 했기 때문에 동맹파업이 가능했다고 얘기했다. 하루아침에 일어난 파업이 아니라고 강조했다. 문재훈 서울남부노동센터 소장도 강사로 참여했는데, 대우어패럴에 골방파(학습 중심)와 고고장파(조직화 중심)가 있었는데 이 둘이 하나로 힘을 모았기에 노동자들의 힘이 세졌다고 했다. 이론과 실천의 결합이 중요하다는 얘기였다. 파업의 도화선 동맹파업의 직접적 계기는 구로지역 민주노조 운동의 중심이었던 대우어패럴노조 간부 3인의 구속이었다. 6월 22일 오전 11시에 대우어패럴노조 김준용 위원장, 강명자 사무국장, 추재숙 여성부장이 연행·구속되고, 간부 8명이 불구속으로 입건됐다. 소식을 듣고 분노한 조합원들은 즉각 작업을 중단했다. 100여 명이 회사 총무과에 몰려가 고발 취소를 요구하며 오후 5시까지 농성을 벌였다. 이후 간부들은 밤을 새워 대책회의를 하고, 이튿날(23일) 대의원 전체가 모여 총파업을 결의했다. 대우어패럴 간부들이 구속되던 날인 토요일 안양에 있는 기독교 원로원에서는 구로공단의 효성물산노조, 선일섬유노조, 가리봉전자노조 간부와 조합원, 구로지역의 활동가와 해고노동자 150여 명이 합동교육을 받고 있었다. 대우어패럴노조 간부들이 구속되었다는 소식을 듣고 노동자들은 대응책을 찾았다. 대우어패럴노조에 대한 탄압은 대우어패럴만의 문제가 아니라 민주노조탄압의 첫 신호이기 때문에 자신들 모두에게 닥쳐올 문제라고 인식했다. 노동자들은 “70년대 선배 노동자들이 치열하게 잘 싸웠지만, 그러나 단위노동조합이 작업장별로 따로따로 싸우다가 1981년, 1982년 전두환 정권의 노조 탄압으로 모두 깨지는 결과를 가져왔다”라는 생각을 공유했다. 함께 연대투쟁으로 대우어패럴노동조합 탄압에 대응할 것을 모색하였다. 동맹파업의 시작 효성물산, 선일섬유, 가리봉전자 등 3개 노조는 6월 24일 오후 2시에 연대파업에 들어가기로 결정했다. 효성물산·가리봉전자·세진전자·청계피복·선일섬유 노조가 공동으로 발표한 ‘노동조합 탄압저지 결사투쟁선언’은 그 이유를 이렇게 밝히고 있다. “대우 노동조합 탄압은 80년의 저 무시무시한 노동조합 탄압을 되새기게 한다. 현 정권은 70년대의 민주노조들을 하나씩 차례로 깨부숴버렸다. …80년 이후 5년간 우리는 노동자의 기본 권리를 한 치도 허용하지 않는 암담한 현실을 뚫고 일어섰다. 갖은 탄압과 역경 속에서도 굴하지 않고 민주노조의 전통을 이어온 우리가 물러설 수 있겠는가? …우리는 이번 대우 노조 파괴음모가 모든 민주노조에 대한 사형선고와 같다는 것을 알고 있다. 이런 마당에 우리가 무엇을 두려워할 것인가? 임금인상조차도 못하는 노동조합으로 비굴하게 살아남을 건가? 가만히 앉아서 민주노조가 차례로 깨져나가길 기다리고 있을 건가? 우리는 그러한 어리석음을 두번 다시 되풀이하지 않는다. …민주노조 선진노동자들이여! 함께 일어나 싸우자! 천만 노동자의 동지애로서 최후의 일인까지! 최후의 일각까지!” 6월 24일 오전 7시 반, 대우어패럴 조합원 350여 명이 관리자들의 방해를 뚫고 1공장 2층 생산과 작업실에 집결해 ‘우리의 결의문’을 낭독하고 파업농성에 돌입했다. 조합원들은 “노조간부 석방하라, 민주노조 탄압마라, 노동악법 개정하라, 집시법·언론기본법 폐지하라, 노동부장관 물러나라”를 소리 높여 외쳤다. 회사에서는 파업을 미리 예상한 듯 현장출입구에 관리자들이 모두 나와 서 있었고 평소 7시 30분에 열리는 현장 문이 7시 45분이 지나서야 열렸다. 50분에 각 현장별로 실시되는 국민체조가 끝나기를 기다려 각과 부위원장들은 작업대 위로 올라가 위원장이 부당하게 구속되었다는 것을 알리고 같이 싸우기를 호소했다. 각과 조합원들이 1과 현장으로 속속 모여들었고 노조사무실에서 대기하던 2공장 조합원들도 합세했다. 밀고 들어오는 도중에 저지하던 관리자와 격돌하여 조합원 전재선이 쇠파이프를 맞고 코를 병원에서 세 바늘 꿰매고 돌아오는 사태도 벌어졌다. 관리자들의 저지를 받아 미처 들어오지 못하고 쫓겨난 조합원도 수십 명이었다. 1과 현장에 모인 인원은 285명이었다. 조합원들은 먼저 미싱과 원단을 쌓아 출입구를 차단하고 대열을 정비한 후에 소리 높여 ‘결단가’를 불러 사기를 올렸다. (유경순, 2007, "아름다운 연대 - 들불처럼 타오른 1985년 구로동맹파업", 메이데이) 오후 2시가 되자 마주보는 건물에 있는 효성물산노조 조합원 400여 명이 대우어패럴 노동자들에게 손을 흔들며 파업에 동참했다. 같은 시각, 가리봉전자 구로공장과 독산공장 500여 명과 선일섬유 노동자들까지 농성을 시작했다. 동맹파업 첫날 4개 노조 조합원 1,300여 명이 파업에 참여했다. 3개 사업장 사측은 곧바로 물과 전기를 차단해버렸다. 경찰 150여 명은 신일섬유 농성장을 봉쇄했다. 효성물산과 대우어패럴은 서로 마주보는 곳에 위치하고 있어 효성물산의 조합원들이 2층 건물 베란다로 나가 “대우, 힘내라”고 외치기도 했고, 그 소리에 건너편 대우어패럴에서는 “효성 힘내라”고 외치며 투쟁을 전개했다. 효성물산의 조합원들은 취침 시간에도 대우어패럴에서 이상한 분위기가 느껴지면 모두 난간으로 나가 꽹과리 치면서 안부를 확인하였다. 가리봉전자에서는 사무장 윤혜련이 조합원들을 현장에 다 모이게 한 후 임시총회를 열고 대우어패럴의 노조 탄압을 알리는 선전물을 배포하고 같이 투쟁해야 할 이유를 설명했다. 이에 조합원들이 공동 투쟁을 결의하고 바로 파업에 들어가면서 현장 곳곳에 바리케이드를 쳤다. 1985년 6월 25일 동아일보 6월 25일 남성전기노조 조합원 300여 명이 오후부터 농성을 시작했다. 세진전자노조 조합원 250여 명도 오후 5시 30분부터 11시까지 회사 운동장에서 지지농성을 했다. 롬코리아도 2층 식당에서 100여 명이 철야농성을 전개했다. 이렇게 연대투쟁은 하루 만에 7개 사업장으로 확산했다. 이날 구로공단과 주변 주택가 곳곳에는 ‘구로지역 20만 노동자여! 다함께 일어나 싸워나가자!’라는 제목의 유인물이 살포됐다. 구로지역노조민주화추진위원회연합·노동운동탄압저지투쟁위원회·청계피복노조 명의의 유인물의 주요 내용은 “6월 26일 오후 8시 30분 가리봉오거리에 총집결해 ‘전두환 정권의 노동자 탄압을 규탄하는 궐기대회를 벌이자”라는 것이었다. 노동자들은 동맹파업을 하면서 다음과 같은 요구사항을 내세웠다. 개별 사업장의 요구를 뛰어넘는 전체 노동자의 요구, 경제적인 요구를 뛰어넘는 정치적인 요구를 제기했다. 1. 정부당국은 대우어패럴노동조합 위원장 김준용 동지를 비롯한 구속자 전원을 즉각 석방하라! 2. 정부당국은 민주노조운동을 짓밟는 모든 악법(집회시위법, 언론기본법, 노동악법 등)을 즉각 철폐하라! 3. 정부당국은 부당해고자 전원을 즉각 복직시켜라! 4. 정부당국은 정책적인 어용노조 설립을 즉각 중단하라! 5. 정부당국은 임금동결정책을 포기하고 최저생계비를 보장하라! 6. 민주노동조합 파괴에 앞장서 온 조철권 노동부장관은 즉각 물러가라! 악랄한 탄압 속에서도 굴하지 않은 투쟁의지 정부와 회사의 탄압은 악랄했다. 정부는 경찰을 동원해 사업장 주위와 구로공단 요소요소에 배치해 지원 연대를 차단하려 했고 회사 측은 농성장에 대한 단전 단수와 함께 음식물을 일절 들여보내지 않아 노동자들은 주린 배를 움켜잡고 투쟁해야 했다. 효성물산의 경우, 파업 시작 첫날 밖에서 빵과 음료 등을 넣어주었으나 그다음 날부터 경찰이 이를 막은 데 이어 전기와 수돗물까지 차단했으며 물이 안 나오니 화장실까지 막혀 농성 노동자들은 이중으로 고통을 겪어야 했다. 대우어패럴에서도 회사 측이 단전 단수와 함께 음식물 반입을 막았다. 3일째 되는 날에는 배가 고파 쓰린 배를 움켜쥔 조합원들 사이에 “지나가는 쥐라도 있으면 잡아먹고 싶다”는 말이 나돌 정도였다. 그러나 이러한 고통에도 노동자들이 계속 파업을 벌일 수 있었던 이유는 같이 싸우는 동료들에 대한 믿음 때문이었다. 그 통탄할만한 농성반대 집회가 있고 나서 밖에 있는 조합원들을 퇴근시키더니 다시는 출근을 시키지 않았다. 그 일로 쟁의부장 박신자 동지가 온몸이 돌아가며 쓰러졌다. 병원에 가야 한다며 밖에 내보내려 했는데 쟁의부장은 “죽어도 여기서 죽겠다. 손을 따 달라”고 해서 모든 동료들이 달려들어 따고 주무르고, 농성장이 한바탕 울음바다가 되었다. 그렇지만 쟁의부장이 보여준 투쟁의지는 다른 동지들에게 큰 힘이 되었다. (김현옥, 선일섬유 전 위원장, “같은 시대, 다른 이야기, 구로동맹파업의 주역들, 삶을 말하다”, 유경순 엮음, 메이데이, 35쪽) 구로공단 노동자들의 투쟁은 다른 지역으로 계속 번져갔다. 삼성제약 조합원들도 농성과 점심 식사 거부로 지지를 표명했고, 저 멀리 경남 창원에 있는 (주)통일노조도 지지를 표명했고 연대투쟁을 조직했다. 농민운동 단체들도 성명을 발표하여 정권의 노조 탄압을 규탄하고 동맹파업 노동자들에게 지지를 표명하였다. 6월 27일, 대우어패럴에서는 회사에서 동원한 노동자 300여 명이 노조반대 농성을 했고, 가리봉전자에서는 새벽에 회사 관리자와 구사대들이 식당 문을 두드리고 욕을 하고 각목을 휘두르며 폭력적으로 파업을 방해했다. 6월 28일, 부흥사 조합원도 노동운동 탄압에 항의하여 동맹파업을 시작했다. 120여 명이 출근과 동시에 3층 작업장에서 구속노동자 석방을 요구하며 연대투쟁에 동참했다. 그러나 관리직 남성들이 쇠파이프와 몽둥이를 휘두르며 난입해 오후 4시 30분경 해산당하고 말았다. 회사는 해산 이후 공갈, 협박, 폭행으로 80여 명에게 사직서를 쓰게 하고 29일부터 무기한 휴업에 들어갔다. 남성전자, 세진전자, 롬코리아 등의 지지 농성 투쟁도 이어졌다. 롬코리아는 대우어패럴의 파업을 알게 된 대의원들이 “우리가 이렇게 가만히 있으면 되겠냐”라며 위원장에게 따져서 지지 투쟁을 시작했으며 조합원들은 근무시간이 끝나고 이틀 밤을 새우면서 지지 농성을 벌였다. 한편, 효성물산노조가 회사로부터 보복하지 않겠다는 약속을 받고 26일 밤 11시에 농성을 해산했으나 회사는 7월 3일까지 휴업공고를 냈다. 효성물산과 청계피복 조합원 100여 명은 27일 오후에 노동부장관 면담을 요구하며 노동부 중부지방사무소에서 농성을 벌였다. 그러나 강제해산을 당했고 물론 청계피복노조 사무장과 효성물산노조위원장 등 7명이 구속되고 말았다. 27일에 농성을 해산한 가리봉전자, 선일섬유 등에서도 농성을 주도했던 노동자들에 대한 보복 폭력이 난무했다. 6월 27일 음식 반입까지 가로막힌 가운데 탈진한 노동자들이 실려 나가고 남은 대우어패럴 농성자는 100명 남짓으로 줄었다. 그런데도 회사는 비조합원 300여 명을 강제 동원해 농성장 앞 운동장에서 4시간 동안 노조를 비방하는 구호를 외쳐대는 등 방해 책동에 열을 올렸다. 6월 29일 오전 8시경 대학생 18명이 빵과 우유, 의약품을 짊어지고 지붕을 타고 넘어 합류했다. 농성장에서는 환호성이 터져 나왔다. 다급해진 회사는 깡패 500여 명과 사복경찰을 동원해 벽을 뚫고 진입했다. 해산 과정에서 구사대가 각목과 쇠파이프로 농성 노동자들을 폭행했으나 경찰은 이를 묵인하고 방관했다. 6월 29일 7시 즈음. 기상해서 출근 시간에 맞추어 창틀에 매달려 있는데 한일은행 담을 타고 학생들이 창문으로 들어왔다. 노동자들이 반가워서 몰려가 환호, 박수로 환영하고 학생대표의 인사말을 들었다. 그러나 채 인사말이 끝나기도 전에 갑자기 현장 벽이 부서지면서 관리자, 경비, 반대파들이 돌과 각목을 던지고 소화기를 뿜어대며 급습, 관리자 200여 명이 각목과 쇠파이프, 의자, 발길질 등으로 가릴 것 없이 농성자들을 구타하면서 머리채, 손발 아무데나 휘어잡고 기숙사 쪽으로 끌고 갔다. 회사 측의 폭력을 피해 20여 명이 창문으로 뛰어내리다 모두 잡혀 남부서로 연행, 회사로 다시 끌려와 기숙사에 갇혔다. 기숙사로 끌려간 농성자들은 한방에 5명씩 갇혀서 1인당 비조합원 3명에게 감시당하면서 갖은 모욕을 당했다. 11시 즈음 의사들이 들어와 진정제를 억지로 먹여서 농성자들은 잠이 들었다. 오후 2시 30분 즈음 이들은 깨어나 죽 한 그릇씩을 먹었다. 관리자들은 수시로 드나들며 “경찰서로 직행시켜야 한다”, “입에다 똥을 처넣어야 한다”는 등의 폭언과 협박을 함부로 했다. 그 이후 회사 측은 농성자들을 한 명씩 총무과에 끌고 가 부모까지 동원하여 강제로 사표를 쓰게 했다. (유경순, 2007, 아름다운 연대 - 들불처럼 타오른 1985년 구로동맹파업, 메이데이) 이처럼 6월 24일부터 4개 사업장으로 시작된 동맹파업은 6일 동안 굶주리면서 싸운 대우어패럴 노동자 80여 명이 강제 해산됨으로써 막을 내렸다. 농성을 풀었다가 신민당사에서 다시 농성을 벌이던 효성물산노조 조합원 36명도 30일 “신민당이 노동운동 탄압과 폭력 사태를 막기 위해 노력하겠다”라는 약속(성명 발표)을 받고 농성을 풀었다. 구로공단에 있는 5개 사업장에서 약 1,400명의 노동자가 동맹파업을 벌였고, 또 다른 5개 사업장에서 연대투쟁을 벌이는 등, 2,500여 명의 노동자가 투쟁에 참여했다. 투쟁 과정에서 구속 43명, 불구속 입건 38명, 구류 47명, 그리고 2,000여 명이 해고 및 강제사직으로 공장에서 쫓겨났다. 빛나는 의의와 함께 1950년 한국전쟁 이후 최초의 동맹파업인 구로동맹파업은 경제적 요구를 넘어 국가권력을 상대로 정치적 요구를 제기했다는 점에서 정치투쟁의 성격을 지니고 있었다. 구로동맹파업은 이후 사회변혁을 지향하는 정치투쟁 조직이 출범하는 근거가 되었다. 빛나는 의의와 더불어 우리는 노동자들이 겪었던 고통, 지금도 겪고 있는 거대한 고통도 잊지 말아야 하고, 그 당시 활동가들의 반성도 눈여겨 돌아봐야 한다. "예전엔 블랙리스트에 걸려서 이 거리를 못 움직였는데, 지금은 돈이 없어서 이 거리를 못 움직여요. 이렇게 투어를 할 때 한번씩 와서 여러분들한테 인사를 하게 되네요. 역사적인 장소 산업민주화와 혁명의 장소임에도 불구하고 여기만 오면 저는 슬퍼요. 제가 아직까지도 우리 대우어패럴 동지들 모임 회장을 맡고 있는데, 친구들과 동생들이 지금까지도 울면서 저한테 전화를 해요. 그때 열여덟 열아홉 되었을 때, 성폭력 당해서 결혼 해가지고도 말 못하고 고통스러워서 하는 동생들이 있어요. 지금까지도 노동조합 했다는 소리를 남편이고 아이들한테 못 한 사람들도 있고요. 실신하고 들쳐 엎는 상황에서도 자기의 소중한 부위를 만지는 걸 느낌으로 알 수 있잖아요. 성추행이잖아요. 지금 같으면 언론이나 연대싸움을 해서라도 떠들 수가 있는데, 그렇게 못한 게 너무도 한이 돼서 지금도 말 못하고 언니한테만 얘기한다고 울어요. 저도 그 얘기를 들으면 슬퍼서 울어요. 사람이 사람답고자 했던 행위가 하나의 인간으로 대접 못 받는 수치를 많이 남긴 거잖아요." (강명자 대우어패럴노조 전 사무장 발언, "지금도 노조했단 말 못한단 얘기 들으면, 슬퍼서 울어요", 연정, 오마이뉴스) 나를 포함해 노동운동에 뛰어든 학출 활동가들이 갖고 있던 지적인 허영과 오만, 가장 옳은 입장이라고 자처했던 독선, 노동자들을 대상화했던 순간들, 비민주성, 패권주의, 자신조차 추스르지 못하고 상처받은 노동자 동지들의 손을 놓아버린 약하고 무책임한 뒷모습···· 모든 것이 한꺼번에 떠오르며 부끄러움과 고통으로 죽고 싶은 심정이었다. (서혜경, 전 가리봉전자 부위원장, “같은 시대, 다른 이야기, 구로동맹파업의 주역들, 삶을 말하다”, 유경순 엮음, 메이데이, 229쪽) 당시는 노동운동의 초기 단계였기 때문에 선진 투사들이 노동해방사회의 건설이라는 분명한 목표를 가지고 활동한 것은 아니었고, 여러 정치적, 실천적 약점을 가지고 있었다. 우리는 구로동맹파업을 신화적으로 기억해선 안 된다. 의의만이 아니라 한계까지도 곱씹어 전진해 왔고, 앞으로도 그래야 한다. 그럼에도 구로동맹파업의 의의는 조금도 약해지지 않는다. 당장의 실리에 집착하면서 노동자의 대의를 내팽개치는 조합주의, 관료주의에 맞서 구로동맹파업이 보여주었던 계급적 단결과 연대의 정신을 기억하고, 또 기억해야 한다. 동맹파업에 나선 노동자들은 ’내 사업장만 살자‘는 조합주의를 넘어, ’옆 사업장이 깨지면 다음은 우리 차례‘라는 절박함으로 ’함께 싸워야 이긴다‘는 계급적 연대를 선택했다. 물과 전기가 끊긴 공장 안에서도, 밥 한 끼 없이 쓰러져 가는 와중에도 서로를 부축하며 “최후의 일인까지, 최후의 일각까지” 싸웠다. 나의 투쟁과 당신의 투쟁이 따로 있는 것이 아니라는 것, 끝까지 함께 나아가야 한다는 것! 그것이야말로 40년 전 구로동맹파업이 남긴 가장 빛나는 유산이자, 오늘의 비정규·미조직·청년·여성 노동자들의 불안하고 고통스러운 삶을 바꿀 수 있는 무기다. 구로동맹파업 40주년, 그 정신은 영원히 살아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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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주당에는 성평등 DNA가 아니라 안희정, 오거돈, 박원순이 있다민주당에는 성평등 DNA가 있다고 한다. 지난 대선 공약에서 성평등이나 여성정책이 사라지자 간담회를 요청해 비공개로 만난 한국여성단체연합 등 10개 여성단체 대표단에 민주당은 “부족해도 성평등 DNA가 있는 정당이니 기대를 접지 말아달라”라고 부탁했다. 현장에 있던 여성단체도 “민주당은 김대중 대통령 때부터 문재인 대통령 때까지 여성 정책을 활발하게 추진해 왔고, 지금도 중심에 있기 때문에 기대를 할 수밖에 없다”고 했다. 이렇게 보면 민주당에 있다는 성평등 DNA는 자타의 공인을 받은 셈이다. 그런데 과연 그럴까? 우리는 결코 그렇지 않다고 본다. 오히려 초대 민주당 대통령인 김대중 정부 때부터 민주당의 DNA에 있던 것은 불안정 노동이었으며, 성차별과 성폭력이다. 그리고 그 희생자의 선두에 안희정, 오거돈, 박원순 성폭력 사건의 피해자가 있고, 그 대열에 혐오와 차별과 빈곤과 폭력에 고통당해온 수많은 노동자계급 여성이 있다. 사실 민주당은 신자유주의 구조조정을 강행한 자본가 정당이며 이의 최대 희생자는 여성이었다. 초대 민주당 대통령인 김대중 정권은 정권교체를 이루며 자신의 정당성과 기반을 다지기 위해 이른바 ‘시민사회와의 협치’를 강조하는 ‘거버넌스’라는 이름으로 민주화운동 인사들을 대거 흡수했고, 여기에는 여성계 인사도 빠지지 않았다. 이 같은 조건에서 김대중 정권은 여성부를 설치하고 여성공천제도를 도입하는 한편, 남녀차별금지및구제에관한법 등을 제정하여 그동안 여성운동이 주장해 온 요구 일부를 수용했다. 그러나 김대중 정권은 이와 동시에 신자유주의적 구조개악을 밀어붙이며 전 노동자계급의 생존권을 후퇴시켰고, 이는 특히 노동자계급 여성에게 심대한 영향을 미쳤다. 김대중 정부가 노동자계급 여성에게 미친 주요 영향은 다음과 같다. 첫째, 김대중 정권이 강행한 공공부문 매각과 정리해고 및 파견제 도입 등 신자유주의 구조조정은 노동자계급 여성을 저임금 비정규직 일자리로 대거 밀어냈다. 대표적으로, 1998년 본격적으로 기업들이 구조조정을 시작하면서 여성 임시/일용직 노동자는 57%에서 68.9%까지 증가*했을 만큼 여성 노동자에 대한 악영향은 강력했다. *정성미, <비정규직 여성근로자의 고용특징>, 한국노동연구원, 2005 둘째, 김대중 정권 시절 남녀고용평등법 전부 개정, 모자보건법 개정 등으로 도입된 일·가정 양립 정책은 신자유주의적 여성정책으로 임신·출산, 가사돌봄에 대한 사회적 책임은 방기한 채 여성 노동력을 시장화하기 위해 필요한 기반을 조성하기 위한 조치였다. 이에 따라 여성 노동자들은 불안정한 고용조건 속에서 임신·출산, 가사돌봄이란 이중의 부담을 떠맡으며 저임금 일자리로 밀려나야 했다. 마지막으로 김대중 정권 시절 수립된 신자유주의적 여성노동·인구정책 기조는 이후 전 노동자계급에 대한 노동유연화를 촉진하는 기조로 활용됐다. 노무현 정부 시기인 2006년 8월 수립된 1차 저출산고령사회기본계획을 시작으로 ‘근로형태 유연화’가 출산장려정책의 주요 과제로 자리 잡았으며, 주요 정책 과제 중 하나인 ‘가족친화적 기업 지원’에서도 기준 항목에 불안정 노동을 심화하는 탄력적 근무제가 포함됐다. 이명박 정부는 저출산 정책으로 유연근무제를 추진했는데, 이는 사실 단시간노동제로서 신규채용을 단시간 일자리로 전환하고 직무를 단시간화하여 비정규직을 확대하는 조치로 작용했다. 문재인 정권도 노동유연화 조치인 직무급제를 추진하며 내세운 명분 중 하나로 성별임금격차 해소를 들었다. 즉, 민주당은 ‘여성’의 이름으로 노동유연화를 강행한 장본인이다. 민주당은 ‘여성’의 이름으로 노동유연화 강행한 장본인 최근 집권한 민주당 이재명 대통령의 공약에도 유연근무제가 포함됐다. 이 대통령은 주4.5일제를 대표 공약으로 말하며, 40시간 법정 근로시간을 유지하되, 유연근무제를 통해 실질적 4.5일제를 도입하겠다고 한다. 그러나 유연근무제가 노동자의 근무시간, 장소, 방식 등을 탄력적으로 조정할 수 있게 한다는 장점을 지닌 것으로 선전되지만, 재택근로를 심화하며, 근로시간을 모호하게 하고, 여성에게는 일과 육아를 병행해야 한다는 압박을 강화한다는 비판을 받아 왔다. 더구나 여성 2명 중 1명이 사실상 비정규직인 상황에서 수많은 여성 노동자들의 고용조건을 더욱 불안정하게 하게 할 것이라는 우려도 제기된다. 반면 이재명의 공약에서 임신중지 건강보험 적용을 포함해, 지난 대선에서 약속했던 성·재생산 건강권 보장은 자취를 감췄다. 민주당은 윤석열 정부 기간 국민의힘이 강행한 서울시사회서비스원 해체에 반대했지만, 이에 대해서도 아무런 말이 없었다. 여성가족부가 성평등가족부로 전환한다고 하지만, 주요 여성정책은 일부 교제폭력 처벌 강화와 낮은 수준의 저출산 지원 정책일 뿐이다. 여성가족부를 부총리급 성평등부로 격상 및 강화, 포괄적 차별금지법과 비동의강간죄 제정, 민법상 ‘부성 우선주의’ 원칙 폐기 등 여성단체가 요구했던 주요 성평등 정책도 찾아볼 수 없다. 그런데도 민주당은 “성평등 DNA가 있는 정당이니 기대를 접지 말아달라”라고 한다. 또 “앞으로 여성단체들과 정책 논의 자리를 만들겠다”고 한다. 그러나 이 같은 입장은 여성운동을 기층운동으로부터 갈라치기 하고 포섭하려는 허구적인 거버넌스적 수사일 뿐 다수 노동자계급 여성의 이해와는 대립할 수밖에 없다. 이미 이재명 정부는 노동계에 사회적 대화를 강요하고 있으며, 노동계의 거간꾼 김영훈을 고용노동부 장관으로 지명하여 자본의 위기를 노동자에게 전가하고자 한다. 신자유주의적 성주류화 정책 이 점에서 우리는 주류 여성운동이 추구해 온 성주류화 정책*을 되돌아봐야 한다. 성주류화 정책은 1995년 북경에서 열린 제4차 세계여성대회에서 채택된 정책으로, 모든 정책과 제도, 프로그램에 성평등 관점을 통합하는 전략을 말한다. 국내 여성운동도 90년대 중반 이후 주요 전략으로 채택하고 김대중 정부 시기 거버넌스 노선과 맞물려 본격적인 제도화의 길을 밟기 시작했다.** 그러나 이는 결국 주류 여성운동을 제도화시키고 관료화하여 전체 노동자계급의 이해가 아닌 자본에 포섭되게 했다. 2001년 1월 당시 한국여성단체연합 스스로 “김대중 정부의 여성정책 3년에 대한 평가에서 우리는 이율배반적인 감정을 가지게 된다”며 “여성들의 정리해고, 비정규직화, 시간제 노동이 가속적으로 증가하여, 대표적으로 9개 은행의 명예퇴직 여성의 비율이 74.5~95.5%를 차지했다”고 평가했다는 점을 우리는 새삼 기억할 필요가 있다. 민주당에 있는 여성단체 출신 여성 정치인들이 여성의 이름으로 개혁을 말하면서도 기껏해야 형식적인 역할만 한 채, 노동개악 법안에는 방관하며, 결과적으로는 다수의 여성과 적대하는 자기모순으로부터 우리는 이제 결별해야 한다. 가령 박원순 사건 때 성추행 피소 사실이 여성단체 인사를 거쳐 남인순 민주당 의원(전 한국여성단체연합 상임대표)을 통해 결국 박원순에게 전달됐다는 사실은 그들이 말하는 ‘거버넌스’의 민낯이다. *1995년 베이징 세계여성대회가 주창. 강남식, <한국 여성운동의 흐름과 쟁점>, <<기억과 전망>>, 민주화운동기념사업회, 2004 **대표적으로 김대중 대통령 취임에 앞서 평민당에 합류한 이우정, 박영숙은 1세대 여성운동가로 각각 한국여성단체연합(여연) 대표, 부대표를 지냈으며, 초대 여성부장관으로 임명된 한명숙 의원도 여연 상임대표 출신이었다. 사실 성주류화 정책은 냉전 이후 유엔이 인권과 개발 의제를 중심으로 새로운 글로벌 어젠다를 구축하며 등장했지만, 동시에 불어닥친 신자유주의 세계화의 광풍에 자유롭지 못하거나 오히려 그 부속물로 작용했다. 중국 내적으로도 당시 장쩌민이 덩샤오핑 사후 국제사회에서 중국의 개혁/개방 이미지를 확대하기 위해 세계여성대회를 유치했지만, 내부적으로는 개혁개방 정책에 따른 시장화에 가장 먼저 타격을 받은 집단은 여성이었으며, 이에 따라 성평등 수준은 계획경제 시기와 비교해 지체되거나 고용이나 임금 등 특정 분야에서는 오히려 후퇴됐다.* *권정임, <제5장 중국의 여성해방과 성 평등: 개혁개방 이전과 이후의 비교 연구>, <<동아시아 마르크스주의: 과거, 현재, 미래>>, 진인진, 2023 페미니즘 운동과 노동자운동의 동맹 가부장제와 결탁한 자본주의를 떠받치고 있는 자본가 정당, 민주당은 결코 여성의 권리를 보장할 수 없다. 이제까지 민주당 정부가 해 왔던 것처럼 이재명 정부도 성평등DNA는커녕 고용불안정과 구조적 성차별을 심화할 것이다. 여성의 권리가 보장되려면, 포괄적 차별금지법이 제정돼야 하고, 비동의강간죄가 도입되어야 하며, 임신중지에 건강보험이 적용돼야 하지만, 자본가계급은 이를 결코 원치 않는다. 자본가계급의 관심은 노동자계급의 단결이 아닌 분열이며, 안정적인 노동력 수급에 있다. 때문에 여성의 권리는 이러한 자본가계급에 맞선 노동자계급의 단결 투쟁을 통해서만 쟁취할 수 있다. 노동자로서 여성의 권리 역시 비정규직 철폐와 노동시간 단축과 최저임금 대폭 인상 없이 보장되지 않으며, 이 또한 자본가계급과의 싸움을 우회할 수 없다. 때문에 페미니스트는 민주당이 아닌 노동자운동과 어깨를 걸어야 한다. 여성의 다수는 노동자계급이며, 노동자계급 여성은 일찍이 클라라 체트킨이 지적했듯이 자본주의 고유의 생산양식에 의해 차별받는다. 오늘도 여성의 허리끈을 죄고 있는 자본주의 체제에 맞서, 성평등한 사회를 위해, 노동자계급의 단결과 투쟁을 위해, 이재명 정부와의 대결을 시작할 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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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애인을 상습 폭행·학대한 태연재활원에 ‘개선처분’, 구조적 폭력의 자백인가!지난겨울 사회에 큰 충격을 안긴 울산 최대 장애인거주시설 태연재활원의 장애인 집단폭행과 학대 사건. 10월부터 11월까지 1달간, CCTV에만 29명의 장애인이 20명의 생활지도원으로부터 890건의 폭행을 당한 이 사건에 대해, 최근 울산시가 북구청을 통해 가장 낮은 수준의 행정처분인 ‘개선명령’을 내린 사실이 알려졌다. ‘울산태연재활원 상습학대사건 공동대책위원회(이하 공대위)’는 6월 25일 긴급 기자회견을 열어 울산시의 무책임한 솜방망이 처벌을 규탄하고 특별감사 실시와 엄중한 행정처분, 그리고 사회서비스원으로의 운영법인 교체 등을 촉구했다. 태연재활원에서 한 달간 CCTV로 확인된 장애인 폭행만 890건이다. 가해자 4명은 구속되었다. 울산시는 7개월의 조사 끝에 이 사태가 단 한 건이라며 ‘시설장 교체’나 ‘시설 폐쇄’가 아닌 ‘개선명령’ 처분을 내리고 마무리했다. 장애인이 단 한 차례라도 폭행당하는 일이 용납될 수 있는가? 울산시 관계자는 “시설폐쇄가 필요하다면 시설폐쇄도 내릴 수 있는 부분이지만, (시설이) 정상화를 위해 노력하고 있고 거주인들도 남아계시고 해서 시설폐쇄는 무리가 있었다고 판단해 1차 행정처분으로 ‘개선명령’이 내려졌다”고 설명했다. 울산시는 이 사태의 진상과 원인을 철저히 파악하지 않았음은 물론, 지금껏 공대위의 면담 요구에 단 차례도 응하지 않았다. 이번 사태를 계기로 시설이 아닌 자립 지원으로 장애인 인권을 보장하자는 요구도 외면했다. 심지어 5월 8일 또 한 명의 장애인이 사망하고 의료진이 사인을 ‘의료적 방임으로 인한 학대’라고 판정하는 일이 벌어졌는데도 울산시는 연간 70억 세금 지원 등 오랜 관계를 유지해온 태연재활원에 관용을 베풀며 장애인 인권을 보장해야 할 지방정부의 책무를 져버렸다. 장애인이 인권을 유린당하는 구조는 그대로 둔 채 가해자만 처벌하고 시설은 ‘노력한다’, 정부는 ‘개선하라’면서 정작 이러한 사태를 만든 장본인인 스스로에게는 면죄부를 발급한 것이다. 성현정 울산뇌병변장애인인권협회 대표는 “울산시는 인간을 위한 행정을 하는 것이 아니라 행정을 위한 행정을 하고 있다”고 규탄했다. 피해자 가족 한 분은 “폭행당한 아이들의 마음을 들여다보기조차 힘들다”며 “똑바로, 똑바로! 울산시가 책임지라!”고 꾸짖었다. 김종훈 울산장애인자립생활센터장은 “김두겸 울산시장은 기업이 조금 어렵다고만 하면 모든 걸 다해 지원하면서 장애인 상습폭행 사건은 철저히 외면한다. 장애인은 시민이 아니란 말이냐”고 목소리를 높였다. 울산시의 이번 행정처분은 장애인 폭행·학대가 단순한 '개별 사건'이 아니라 구조적 문제임을 자백하는 처사다. 장애인이 동등한 인간으로서 신체적, 정신적 장애에 따라 차별받지 않도록 지원하는 사회시스템 부재가 문제다. 자본은 마음껏 착취할 수 있는 신체적·정신적으로 ‘정상적인’ 노동력을 원하고, 이러한 강요에 부응하지 못해보이는 장애인을 고립과 차별, 혐오의 대상으로 내몬다. 그 결과가 바로 태연재활원 사태와 같은 폭력과 학대다. 태연재활원 사태가 사회적 문제로 부상했음에도, 정부·지자체와 시설 자본은 아무것도 책임지지 않고 있다. 지금부터라도, 울산 노동자운동이 싸우는 장애인운동 주체들과 함께 나서보자. 장애인은 같은 노동자 민중으로서, 지역에서 이동하고 노동하며 함께 권리를 누려야 한다. 시설에서 장애인이 맞고 죽어가는 참상을 끝내기 위해, 노동자 민중 모두가 함께 목소리를 내야 할 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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죽어야 할 것들이 살아남아 현실을 짓누른다 - 21대 대선이 드러낸 노동자계급의 과제이준석 약진은 무엇을 말하는가 이번 대선에서 가장 특징적인 점 중 하나는 총 득표율 8.34%를 기록한 이준석이 청년층으로부터 얻은 높은 지지다. 대선 지상파 3사 출구조사에 따르면 이준석은 20대 남성으로부터 37.2%로 가장 높은 지지율을 기록했다. 그 다음이 36.9%를 얻은 김문수로 이준석과 비등하고, 이재명은 24.0%에 불과했다. 비상계엄 내란을 노동자 민중의 투쟁으로 진압한 후 벌어진 선거였다는 점에서, 또한 여성과 소수자들이 광장의 중요 주체였다는 점에서, 남성 청년층의 정치적 정서는 노동자 민중에게 고민을 던진다. 20대 남성 청년층은 불안정한 집단이다. 고용불안으로 비정규·플랫폼노동 진입이 일상화된 와중에, 병역의무라는 짐도 감당해야 한다. 이런 조건에서, 20대 청년 남성 다수는 청년 여성을 취업시장 경쟁자로 여기게 된다. 이런 청년층을 대상으로, 이준석은 '특정 집단'이 혜택을 독점한다는 선동으로 부상했다. ‘이 힘들고 불공정한 세상에서 자신만의 이익을 취하는 집단이 있다. 당신들이 힘든 이유는 바로 그들 때문이다!’ 해당 기득권 집단은 다음과 같다. 모두 힘든데 자신만의 권리를 주장하며 반문명적인 시위를 벌이는 장애인들, 이기적이게도 정년연장을 요구하며 좋은 일자리를 독점하려는 대기업 정규직 노동자들, 자신들에게만 유리한 국민연금 개악으로 젊은이들을 수탈하며 사회보장제도의 혜택을 독점하는 중장년층, 그렇지 않아도 좁은 취업시장에서 남성에 대한 역차별로 불공정한 이익을 취하는 것도 모자라 이제는 학교에서 테러에 가까운 난동을 부리는 페미니스트 집단 등등. 이번 대선에서 ‘여성가족부 폐지’를 1호 공약으로 내건 이준석의 전략은 효과적이었다. 이준석의 선동은 ‘자신을 대변할 유일한 인물’을 찾았다는 20대 청년 남성들의 환호로 이어졌다. 보다 긴 국면에서 보자면, 이준석의 정치적 부상은 '조국 사태'로 상징되는 민주당 정권의 위선과 이중성에 대한 청년층의 분노가 누적된 결과였다. 물론 조국 사태 이후 곧바로 민주당에 대한 청년층의 지지가 급감한 것은 아니었다. 2020년 총선 당시 20대 남성의 47.7%가 여전히 민주당을 지지했다. 당시는 코로나19 유행이 본격화하던 국면으로, 문재인 정부는 초기 방역 성과를 앞세워 높은 지지율을 유지하고 있었고, 야당인 미래통합당은 황교안 대표 체제로 청년층에게 매력적인 대안이 되지 못했다. 다시 말해, 2020년 총선은 조국 사태 이후 부상하는 ‘공정성’ 담론을 정치적 대안으로까지 밀어올려 결집할 인물이 가시화되기 전 단계였던 셈이다. 사진: 뉴스1 이런 상황에서 2021년 국민의힘 당대표 경선은 공정성 담론이 그 정치적 표현을 획득하며 확장되는 계기였다. 이준석은 ‘여성할당제 폐지’와 ‘공천 자격시험제’ 등 공정경쟁 이데올로기, 능력주의 이데올로기를 전면에 내세워 등장했다. 이런 흐름은 문재인 정부의 검찰총장, 윤석열이 대선후보로 부상하는 과정과도 궤를 같이 했다. 이준석은 민주당 정권의 위선과 부패를 토대로 급부상했고, 2022년 윤석열 집권 후에는 ‘기득권층과 싸우다 부당하게 쫓겨난 젊고 유능한 정치인’이라는 후광도 얻었다. ‘민주당의 실체를 드러낸 조국 사태의 이면으로서의 이준석’이라는 맥락은 1년 전 치러진 2024년 총선에서도 일관되게 드러난다. 2024년 총선의 특징 중 하나는, 윤석열 정권의 거듭된 패악질에 대한 대중의 분노가 결과한 조국혁신당 약진이었다. 2024년 총선에서 조국혁신당 비례대표 득표는 24.25%로 이준석의 개혁신당 3.61%의 근 7배에 달한다. 그런데도 총선출구조사 결과 20대 남성의 개혁신당 지지율은 16.7%로 조국혁신당의 17.9%1)와 비등할 정도로 이준석은 청년 남성들의 대안으로 떠오르고 있었다.2) 1) 창당 초기, 조국혁신당은 ‘20대 지지율 0%’ 여론조사 결과에서 보이듯 청년층에게는 전혀 지지받지 못했다. ‘조국’은 청년들에게 불공정과 ‘내로남불’의 역겨운 상징일 뿐이었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출구조사 결과로 드러나듯, 정권 심판론의 확대에 따라 20~30대 일부도 결국 조국혁신당을 지지했다. “2~30대 청년층이 최우선시하는 ‘공정 경쟁’의 원칙(이것은 비인간적 경쟁으로 고통받는 청년층이 가장 일그러진 형태로 자신의 고통을 표현한ᅠ것이다)을ᅠ훼손한 조국에게도 18~23%의 지지를 보낸 것은 놀랍기까지 하다. 오늘날 자본주의 체제에서 청년층이 경험하는 고통의 객관적 크기를 실감하게 한다.” 2) 조국혁신당의 독자 창당은 여러모로 민주당에 유리하게 작용했을 가능성이 크다. 불공정과 이중성의 상징과도 같은 ‘조국’이 별도의 정당으로 등장한 상황은 민주당에 대한 청년층의 반감을 희석시켰고, 민주당의 ‘정권심판’ 호소력을 강화했을 공산이 높다. 21대 대선 출구조사 결과, 20대 남성 이준석 지지율 37.2%라는 결과를 어떻게 보아야 할까? 거칠게 분류하자면, 20대 남성 37.2%의 정서는 다음과 같을 것이다. 이들은 비상계엄에 반대하고, 탄핵에도 찬성하나, 겉으로는 정의를 외치면서도 실제로는 불공정한 민주당도 대안이 아니라고 생각한다. 이들 중 상당수는 압도적 지지와 함께 출발한 문재인 정부와 민주당을 기대에 차 바라보았으나, 이제는 바로 그 민주당이 자신에게 고통을 안긴 주범이라고 여긴다. 계급투쟁의 정치, 그 부재가 낳은 우익포퓰리즘의 부상 특히, 여성 의제와 국민연금 의제의 경우 이준석이 지지자를 결집하는 주된 매개였다는 점을 기억해야 한다. 먼저, 여성의제를 보자. 이준석의 극우 선동처럼 문재인 정부가 여성을 위해 남성을 역차별했는가? 물론 아니다. 문재인은 후보 시절 성별임금격차를 OECD 평균인 15% 수준으로 줄이겠다고 약속했으나, 여전히 한국은 29.3%(2023년)로 OECD 성별임금격차 1위를 기록하고 있다. 문재인 정부 연평균 최저임금인상률은 7.2%로 역대 정부 중 뒤에서 두 번째였고, 심지어 박근혜 정부의 7.4%보다 낮았다. 일자리위원회를 설치하고, ‘일자리 상황판’을 요란하게 전시했지만, 자본 편에 선 문재인 정부는 여성에게건 남성에게건 양질의 일자리를 늘릴 수도 없었다. 문재인 정부 하에서 늘어난 것은 여성 고위공무원, 공기업 여성 임원들뿐이다. 문재인 정부는 2022년까지 여성 고위공무원 비율 10%, 여성 공공기관 임원 비율 20%를 달성한다는 ‘공공부문 여성 대표자 확대’를 내세웠고, 실제로 여성 대표자는 늘어났다. 그러나 더 많은 여성착취자와 여성억압자를 만드는 것이 어떤 평등을 담보할 수 있단 말인가? 심지어 ‘페미니즘’을 앞세워 집권하고서도 박원순 등 성폭력 가해자를 감싸고 추모하며, 피해자에게 집단적 린치를 가하는 민주당의 위선은, ‘민주당식 페미니즘’에 대한 젊은 남성의 냉소를 확대했을 뿐이다. 이렇듯 민주당 정부는 남녀노동자 모두의 삶을 더 안정적이고 평등하게 만들기는커녕, 보수세력의 반페미니즘 혐오선동에 촉매를 제공했을 뿐이다. 즉, 계급투쟁으로 실질적 성평등을 쟁취해내지 못하는 한, ‘여성주의=고위직 할당제=불공정’ 선동은 지속될 수밖에 없다. 이준석이 지지층을 결집하는 또 하나의 매개가 국민연금 개악이었다. 이준석은 ‘기득권 세대가 젊은 세대의 몫을 빼앗고 있다’는 프레임을 전면에 내세웠다. 3월 말 여론조사에 따르면, 3월 20일 국회를 통과한 ‘국민연금법 일부개정안’에 대한 청년층의 여론은 ‘반대’가 압도적이다. 18~29세에서는 반대가 63%, 30대에서는 반대가 58%를 기록했고 이준석은 대선에서 '구연금'과 '신연금' 분리운용 공약을 내세우며 청년세대를 결집했다. 국민연금을 매개로 한 이준석의 청년세대 결집, 이는 계급정치 부재가 낳은 우익포퓰리즘의 승리다. ‘더 내고 더 받는’ 연금을 지향하는 사민주의적 연금개혁론자들은 청년층의 반대 여론을 ‘연대의식 부재’로 해석하는 경향이 있으나, 청년층이 3월 20일 국민연금법 일부개정안에 반대하는 이유는 그것이 실제로 개악이기 때문이다. 노동자 민중, 특히 청년노동자들은 더 많은 보험료를 부담할 여력이 없다. 2024년 하반기 국정감사에 따르면, 국민연금에 가입되어 있지 않거나 가입했어도 형편이 어려워 보험료를 못 내는 사람이 1,034만명에 달한다. 특히 청년층 사각지대 비중이 높다. 2020년 기준 18~34살 인구 중 연금 사각지대 비중은 55.7%에 이른다. 대안은 국민연금에 대한 자본의 부담을 늘리는 계급투쟁뿐이다. 압도적 저출생은 객관적 현실이며, 국민연금 문제는 저출생에서 파생된다. 국가와 자본은 연금제도 유지의 부담을 노동자계급에게 지우고자 한다. 자유주의 시민사회와 사민주의자들 역시 정도의 차이만 있을 뿐 노동자의 보험료율 인상에 동의하며 '더 많이 내고, 더 많이 받는' 국민연금으로의 재편을 지향한다. 민주노총도 마찬가지다. 그러나 노동자계급이 왜 보험료를 더 내야 하는가? 저출생과 저성장이 집약하는 체제의 위기도, 그 위기에서 파생하는 국민연금의 문제도 노동자 민중이 만든 것이 아니다. ‘더 내고 더 받는’ 국민연금 재편론은 그 의도가 무엇이건 한국 사회를 파탄시킨 자본의 책임을 면죄함은 물론, 보험료를 추가 부담할 여력조차 없는 노동자계급의 현실에 눈감는다. 국민연금 소득대체율은 인상되어야 하고, 지급개시연령은 낮추어져야 하며, 그 부담은 자본이 져야한다. 여성 의제와 국민연금 의제에서 드러나듯, 심화하는 자본주의의 위기 속에서도 계급투쟁의 정치라는 대안은 드러나지 않았고, 청년층의 불안과 위기감은 공정을 기치로 내건 우익포퓰리즘이라는 깃발 아래 결집했다. 그러나 공정성 담론과 능력주의 이데올로기는 현 위기에 대한 대안적 전망을 내놓을 수 없다. 그저 민주당의 정치, 계급협조주의 정치의 허점을 공략하는 반명제로 기능할 수 있을 뿐이다. 극우 선동에 대한 가장 효과적인 치료제는 계급투쟁의 정치다. 2017년 정의당의 몫은 어디로 갔는가 민주노동당-사회대전환연대회의 권영국 후보는 0.93%를 득표했다. 진보당 김재연 후보가 사퇴하고 이재명 지지 운동을 하는 상황에서 유일한 진보정당 후보로 완주했으나 예상보다 낮은 득표였다. 민주노동당, 과거의 정의당은 왜 위축되었을까? 잠시 2017년 대선 상황을 돌아보자. “동성애는 찬성이나 반대를 할 수 있는 얘기가 아니라고 봅니다. 성정체성은 말 그대로 정체성입니다. 저는 이성애자지만 성소수자의 인권과 자유가 존중되어야 한다고 봅니다. 그것이 민주주의 국가입니다.” 2017년 대선 TV토론에서 심상정의 ‘마지막 1분’은 상당한 화제를 낳았다. 당시 민중당(현 진보당)은 통합진보당 해산 여파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었고, 심상정을 내세운 정의당은 6.17%를 득표하며 존재감을 드러냈다. 2017년 대선에서, 정의당은 민주당 왼편에서 대안을 찾는 노동자 민중에게 분명 일정한 호소력을 가지고 있었다. 이런 점에서 일각이 주장하는 ‘성평등과 소수자 권리를 강조해 정의당이 지지기반을 잃었다’는 주장은 오류다. 성소수자의 권리를 지지하는 심상정의 발언이 2017년 대선에서 반향을 얻었듯, 이는 오히려 정의당의 지지를 확장하는 기제였다. 문제는 민주당 종속성이다. 2017년 대선 이후 정의당은 문재인 정부와의 관계에서 종속적 역할을 자처했다. 민주당의 위선을 여실히 드러낸 2019년 조국사태에서 정의당은 조국 법무부 장관 임명을 지지하며 민주당과 한배에 탔다. 당시 지형상 정의당은 조국 임명 여부에 관한 정치적 캐스팅보트를 쥐고 있었고, 정의당의 동의는 청와대의 조국 법무부장관 임명 강행으로 이어졌다. 조국사태에 대한 민주당의 분풀이에 지나지 않았던 2022년 ‘검수완박’에 대한 입장에서도, 정의당은 민주당을 지지했다. 이 과정 속에서 윤석열이 대선후보로 부상했고, ‘공정성’ 담론이 청년층을 휩쓸었다. 정의당은 민주당에 의존적인 행보 속에서도 '다당제 민주주의'와 ‘제3당’으로서의 가치를 호소했으나, 정작 정의당을 ‘좀 더 매운맛 민주당’으로 보는 대중에게는 설득력이 없었다. 2016년 돌풍을 일으킨 안철수의 ‘국민의당’, 2024년 ‘조국혁신당’ 등 이념과 조직 구성에서 민주당과 보다 유사한 제3세력이 등장할 때마다 정의당이 고전한 이유다. 결국 정의당은 2022년 대선 2.37% 득표에 이어 2024년 총선에서도 의석 확보 실패라는 참패를 겪었다. 특히 총선을 앞두고서는 이준석, 금태섭과 손잡고 제3지대 정당을 만들자는 황당한 주장까지 난무했고, 비례대표 의원 류호정과 조성주 등은 실제로 이들과 당을 만들어 개혁신당으로까지 흘러 들어갔다. 또한 민주당과 적극적인 연대를 주장하던 세력은 탈당하여 사회민주당을 결성하고 총선에서 민주당과 연합했다. 당 주요 인사들이 전혀 통제받지 않고 ‘진보정치’와 하등 관계없이 행보할 수 있었다는 상황 자체가, 정의당의 이념과 조직 구성이 얼마나 노동자계급과 괴리되어 있었는지를, 그리고 당내 민주주의가 얼마나 심각하게 훼손되어 있었는지를 드러낸다. 사진: 뉴스1 이런 점에서 정의당의 거듭되는 위축과 이준석의 약진은, 민주당으로부터 독립적인 노동자계급 정치운동 부재라는 하나의 원인에서 나온 두 결과라고 할 수 있다. 권영국 후보의 의미와 한계 이번 대선에서 민주노동당 권영국 후보는 정의당보다 왼편의 세력, 즉 사회대전환연대회의 소속으로 출마해 완주했고, 34만 4,150표를 얻었다. 사회대전환연대회의가 민주당으로부터 독립적인 정치세력화를 표방했다는 점, 노동권 확대와 포괄적 차별금지법 제정 등 권영국 후보가 제시한 공약이 큰 틀에서 진보적이라는 점, 권영국 후보가 투쟁현장을 찾으며 노동자계급과의 연대 의지를 드러낸 점은 노동자 계급정치 확대의 측면에서도 분명 의미있는 일이었다. 사진: 민주노동당 그러나 권영국 후보의 한계 또한 분명했다. 과거 정의당의 민주당 종속성과 함께, 사회대전환연대회의 내 일부 세력의 민주당 종속성 역시 문제였다. 노동자의 희생을 통한 기업살리기에 민주노총을 동원하려는 시도였던 '코로나19 위기극복을 위한 노사정 합의안'을 문재인 정부와 손잡고 민주노총에 관철하고자 했던 세력이 버젓이 사회대전환연대회의에 포함된 상황은, ‘민주당과 독립적인 정치세력화’라는 후보의 의미를 퇴색시키기도 했다. 관련해서 살펴보자면, 4월 27일부터 30일까지 진행된 사회대전환연대회의 대선후보 경선에서 한상균 노동자계급정당건설추진준비위원회(노정추) 대표가 권영국 후보에게 큰 표차로 패배한 이유는, 그가 ‘노동자계급의 단결과 투쟁의 상징’으로서 자신을 설득력 있게 제시하지 못했기 때문이다. 노정추에 속한 사회적 합의주의 세력의 존재는 한상균의 상징성과 대표성을 크게 약화시켰고, 이는 한상균의 경선 패배로 이어졌다. 사회대전환연대회의가 ‘계급투쟁을 통한 정치세력화’를 지향하는 전투적 노동자들을 광범하게 결집하지 못한 이유도 이와 무관하지 않다. 사회대전환연대회의 권영국 후보가 제시하는 공약 전반은 자본주의 안에서의 개혁, 그것도 불충분한 개혁에 머무르고 있으며 심화하는 자본주의 위기에 대한 인식 또한 결여하고 있었다. 그 결과, 최저 출생률과 최대 자살률이 상징하는 삶의 위기 앞에서도 자본주의 그 자체에 맞선 투쟁이 아니라 증세와 제도개혁을 통한 분배 확대를 요구하고 있을 뿐이다. “불평등을 넘어 함께 사는 경제구조”라는 이름이 붙은 경제공약은 △지역공공은행 설립 △지역공공은행의 경영악화 중소기업에 대한 지분투자 △노동자의 부도위기 기업인수 지원 등을 명시하고 있다. 기간산업과 재벌을 국유화하고, 자본가의 경영권을 박탈하며, 노동자 민중이 산업을 통제하자는 투쟁 선동 대신 철저히 법체계 안의 주변적 조치를 나열하고 있을 뿐이다. ‘경영악화 기업 지분투자, 부도기업 인수’ 등 공약에는 자본을 위한 경제체제 전반을 재편하겠다는 의지도, 이를 위해 노동자계급을 권력의 주체로 형성하겠다는 전략도 없다. 자본이 틀어쥔 기간산업은 그대로 두고, 파산기업 인수로 불평등을 완화할 수 있는가? 권영국 후보의 경제 공약은 사민주의 경제정책의 기준으로 보아도 그 한계가 분명하다. ᅠ 마찬가지로, 권영국 후보가 제시하는 '전국민 일자리보장제' 역시 의회주의-개량주의 정치세력화의 한계를 여실히 드러낸다. '시장에서 만들어지지는 않지만 사회적으로 필요한 일자리 창출'을 지향하는 권영국 후보의 일자리보장제는 자본주의적 생산과 대자본이라는 몸통은 그대로 두고, 대자본이 장악한 영역 밖에서 공공근로를 확대하자는 주장에 머물고 있을 뿐이다. 아래 그림에서 드러나듯, 일자리보장제가 제시하는 일자리는 호황과 불황에 따라 이곳저곳을 떠도는 임시 비정규직 일자리일 뿐이다. 이런 제안에 해방적, 이행적 요소는 눈 씻고 찾아보아도 없다. 출처: http://www.redian.org/archive/153972 권영국 후보가 내건 일자리보장제도는 한때 유행하던 현대화폐이론가들의 논의를 차용한 것이다. 그 주요 이론가인 파블리나 체르네바(Pavlina R. Tcherneva)의 논의3)에 따르면, 일자리보장제도는 민간부문을 흡수하거나 침해하지 않는다. 즉, 현대화폐이론가들이 제안하는 일자리보장제도는 공공부문 확대 구상을 명시적으로 배제함은 물론, 일자리보장제도가 자본의 이윤을 침해하지 않음을 곳곳에서 장점으로 내세운다. 권영국 후보의 공약은 이 틀을 그대로 차용했는데, 생산과 산업에 대한 자본가의 권력을 하등 건드리지 않은 채 정부가 임시적 일자리를 제공한다는 공약은 ‘그냥 자본주의 안에서 이대로 살자’는 이야기다. 3) 파블리나 R. 체르네바, 2021, 『일자리보장-지속가능한 사회를 위한 제안』 자본주의 자체에 문제제기 하지 않는 권영국 후보의 한계는, 노골적인 민족주의와 반생태적 내용으로 채워진 국방·통일·외교통상 공약에서도 고스란히 드러난다. 대중에게 무엇인가를 분배하기 위해서는 자본의 지불능력이 존재해야 한다는 사민주의의 본질적 한계가 반동적으로까지 드러난 대목이다. 석유·가스·희토류 등 러시아 극동 자원개발에 참여한다는 공약은 노골적 추출주의(extractivism)의 표현이라는 점에서 기후정의와 정면으로 충돌한다. 특히 '러시아 북극항로 개척'으로 조선·물류산업을 확대하겠다는 공약은, 북극항로 자체가 기후위기로 인한 해빙으로 열렸다는 점에서 기후재난을 이윤축적의 기회로 삼겠다는 반생태적 발상이다. 나아가 북극항로는 미·중·러 열강이 격돌하는 지정학적 투쟁 공간이라는 점에서, 제국주의 열강투쟁 격화라는 시대인식 자체를 결여하고 있다. 이런 시대인식의 부재는 ‘한국형 모병제 도입으로 30만 정예 강군 달성’이라는 공약에서도 그대로 드러난다. 모병제는 전쟁의 시장화다. 필요한 것은 대대적 군축이지 모병제 도입이 아니며, 그 목적 또한 ‘정예 강군’ 육성이 아니다. 이것도 모자라 박근혜 정부의 '유라시아 이니셔티브'와 문재인 정부의 '한반도 신경제구상'을 계승하겠다는 공약은 황당하기까지 하다. 민주당으로부터의 독립성은 노동자계급 정치세력화의 출발이나, 노동자계급 정치세력화의 충분조건이 될 수는 없다. 계급투쟁의 정치를 향하여 “4월 29일 민주노총 중앙집행위원회에는 이재명을 지지하자는 대선방침안이 제출되었고, 5월 15일과 5월 20일 중집에서도 마찬가지로 민주당을 지지하자는 주장과 진보정당 후보를 지지하자는 주장의 논쟁 끝에 대선방침 없이 대선을 치르기로 결정했다. 민주노총 중앙집행위원회에서 민주당을 지지하자는 주장이 거리낌 없이 나오는 상황이 말이나 되는가! … 민주노총의 민주당 지지가 처음은 아니다. 민주노총의 2010년 6·27 지방선거 방침은 민주당을 포함한 '반MB 단일후보 지지'였고, 2011년에는 민주노총의 '배타적 지지'로 성장한 민주노동당이 민주당계 정치세력과 함께 ‘통합진보당’을 창당했다. 2012년 총선에서도 민주노총의 선거방침은 민주당을 포함한 '반MB 단일후보 지지'였다. 민주노총의 이런 방침에 따라, 노동자계급은 민주당 정부의 노동탄압 주범들에게 투표해야 하는 신세로 내몰렸다. 당시 민주노총 위원장 김영훈은 지금도 민주당 노동본부장 신분으로 민주노총을 기웃거리며 이런저런 협약의 도구로 쓰이고 있다.” 5월 27일, 사회주의를향한전진이 발표한 성명이다. 대선 시기에도, 대선이 끝난 지금에도, 민주당과의 연대를 민주노총의 공식 노선으로 관철하려는 양경수 집행부의 파행적 시도가 이어지고 있다. 최근에는 최소한의 절차적 정당성조차 갖추지 못한 채 ‘국회 사회적 대화’ 관철을 위한 민주노총 중앙위원회 소집을 시도하기도 했다. 이재명 정부 역시 이에 조응해 노동운동 출신 거간꾼들을 정부 전면에 배치하고 있다. 6월 23일, 정부는 전 민주노총 위원장 김영훈을 고용노동부 장관으로 임명했다. 위 성명에서도 언급했듯, 민주노총 조합원들을 “민주당 정부의 노동탄압 주범들에게 투표해야 하는 신세”로 내몬 핵심 인물이자, “민주당 노동본부장 신분으로 민주노총을 기웃거리며 이런저런 협약의 도구로 쓰이”는 인물이다. 김영훈이 고용노동부 장관으로 임명된 상황에 대해, 민주노총은 다음 입장을 냈다. “민주노총 위원장과 철도노조 위원장을 역임하며 한국 사회 노동현장의 현실과 과제를 잘 이해하고 있을 것이라 본다. … 시대적 과제를 깊이 인식하고, 노동자의 권리를 보장하는 노동부 장관으로서의 소임을 충실히 이행할 것을 기대한다.” 사실상 환영 입장이다. 진작 민주노총에서 제명되었어야 했을 인물이 고용노동부 장관으로서 노동정책을 총괄하게 된 일이 정녕 환영할 일인가? 이재명은 광장의 눈치도 보지 않고 ‘중도보수’를 선언했고, 강경보수 인사들을 줄줄이 끌어들이며 선거를 치렀다. 당선 후 6월 13일에는 5대 재벌총수 및 6개 경제단체와 만나 자본가들의 민원을 들으며 “경제의 핵심은 바로 기업”이라고 강조하며, “정부와 기업이 함께 뛰는 원팀 정신”을 언급했다. “불필요한 규제들은 과감하게 정리”하겠다고 약속했으며, 재벌들에게 인사 추천을 요청하기도 했다. 또한, 최근 민주당은 연일 국민의힘과의 ‘협치’를 강조하고 있다. 송미령 농식품부 장관 유임이 보여주듯 내란세력 청산 지체는 물론, 노조법 2·3조 개정을 비롯한 노동권 확대 입법이 미루어진다는 이야기다. 이러던 와중에 김영훈을 고용노동부 장관으로 임명한 민주당의 행보는, 친자본 반노동 정책에 민주노총을 붙들어매겠다는 의도를 반영한다. 사진: 고용노동부 국정기획위원회 업무보고 (25.06.19.) 중 5월 29일, 한국은행은 2025년 경제성장률을 기존 전망치 1.5%(2월)에서 거의 반토막인 0.8%로 하향했다. 자본주의 위기 심화와 열강투쟁 격화에 따라, 한국 경제는 직격탄을 맞고 있다. 1분기 성장률은 2월 전망치(0.2%)보다 크게 밑돈 –0.2%에 불과했다. 관세전쟁 여파가 반영되지 않은 통계임에도, 침체 경향이 분명하다. 자본은 더 강한 노동개악을 주문할 수밖에 없고, 이재명 정부는 그 집행자가 될 수밖에 없다. 이런 조건에서 대선을 관통해 추진되는 민주당과의 연대는 노동개악을 노동자의 이름으로 승인하는 절차에 불과하다. 이미 6월 5일 국무회의에서 이재명은 ‘고용유연성’을 의제로 사회적 대타협 방안을 모색하라고 지시하기도 했다. 민주당과의 연대는 자본가 정치세력에 노동자계급의 정치적 독립성을 팔아넘기는 행위이자, 자본주의 체제의 위기를 타고 발호하는 극우세력의 선동에 노동자 민중을 노출시키는 길이다. 민주당과 노동자계급의 ‘연대’, 죽어야 할 그것이 여전히 살아남아 현실을 짓누르고 있다. 사진: 한겨레 민주노총이 민주당에 대한 압력단체로 전락할 위기 앞에, 노동자계급의 정치적 독립은 유예할 수 없는 과제다. 그리고 이는 자본주의 체제가 강요하는 경계를 넘어 해방적 전망을 제시하고 이를 대중적으로 조직할 정치세력의 형성과 직결된 문제다. 격화하는 열강투쟁과 제국주의 전쟁위기, 기후재앙과 저출생, 자본주의의 총체적 위기가 현실화하는 지금, 노동자계급이 정치세력이 되는 길은 계급투쟁으로 대안을 만드는 정치세력화뿐이다. 김대중 정부, 노무현 정부, 문재인 정부에 노동자계급은 당하고 또 당했다. 이재명 정부에 대한 모든 환상과 결별하자. 국가와 자본에 맞선 계급투쟁 속에서 노동자계급의 정치세력화, 그 새로운 순환을 시작하자. 민주노조운동의 재구축과 새로운 정치세력화의 순환, 그 단초는 이미 우리 앞에 있다. ‘광장식 소개’에서 드러나듯 자신의 정체성을 밝히는 행위에서 시작해, 투쟁하는 노동자계급의 우군으로, 나아가 투쟁하는 노동자계급 자체로 발전해온 말벌 동지들, 다수가 미조직·불안정 노동자계급인 이 동지들과, 고통 속에서도 현장을 지켜온 조직노동자들의 유기적 결합을 추동하자. 그 결합이야 말로 새로운 순환을 개시할 열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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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간 여성뉴스 브리핑] “차별금지법 제정 외면 말라” 1만 인의 목소리 새 정부에 전달1. “차별금지법 제정 외면 말라” 1만 인의 목소리 새 정부에 전달 한국에서는 여전히 성별, 장애, 출신지역, 성적지향 등에 따른 차별을 전반적으로 금지하는 ‘포괄적 차별금지법’이 제정되지 않았다. 2007년부터 여러 차례 법안이 발의됐지만, 정부와 국회는 일부 보수단체와 종교계의 반발을 이유로 법 제정 요구를 외면했다. 그런데 새 정부가 출범하면서, 장기간 계류 중인 포괄적 차별금지법을 국정과제로 삼고 입법 로드맵을 마련하라는 목소리가 높아지고 있다. 차별금지법제정연대(이하 제정연대)는 지난 17일 서울 용산 대통령실 인근에서 ‘이재명 정부, 차별금지법 제정으로 시작합시다’라는 제목으로 기자회견을 열어 새 정부가 차별금지법 제정을 통해 차별과 혐오와 선을 긋고 평등을 실현하겠다는 적극적인 의지를 표명해야 한다고 밝혔다. 제정연대 측은 이날 차별금지법 제정을 촉구하는 시민 1만여 명의 서명을 대통령실에 전달했다. 앞서 제정연대는 지난달 23일부터 ‘새 정부 국정과제 요구 1만인 서명-새로운 민주주의는 차별금지법과 함께!’ 서명운동을 진행했다. 이날 회견에서는 김민석 국무총리 후보자의 차별금지법 반대 발언 전력을 비판하는 목소리도 나왔다. 박한희 성소수자차별반대 무지개행동 활동가는 “김 후보자가 ‘모든 인간이 동성애를 택했을 때 인류가 지속 가능하지 못하다’라며 차별금지법을 반대하는 발언을 했다는 보도가 나왔다”며 “우리 사회의 지속을 위해서는 이성애가 보편이 되는 것이 아니라 이러한 혐오가 없어야 하는 것 아니냐. 언제까지 성소수자들은 영향력 있는 이들의 입에서 자신을 부정당하는 경험을 해야 하냐”라고 되물었다. 한편, A학교 성폭력사안・교과운영부조리 공익제보교사 부당전보철회를 위한 공동대책위원회는 25일(수) 오후 5시 반에 서울시교육청 앞에서 “차별금지법, 입법에서 변혁으로”라는 주제로 5회차 무지개학교 수업을 진행한다. 수업에서는 지오 차별금지법제정연대 공동집행위원장이 포괄적 차별금지법의 정신과 세부 내용을 입법을 넘어 변혁적 성소수자 운동의 관점에서 살펴볼 계획이다. <참조 기사> https://www.khan.co.kr/article/202506171433001 2. 인천여성노동자회, 고용평등상담실 복원 등 성평등 실행 체계 구축 촉구 민간고용평등상담실은 지난 24년 동안 고용차별과 직장 내 성희롱 피해자들의 신속한 권리구제, 사건지원, 실질적 피해 회복을 지원해 왔다. 그러나 윤석열 정부가 이를 폐쇄한 뒤 고용노동부 지청으로 넘긴 심층상담은 사실상 기능을 상실했다. 고용평등상담실 폐쇄에 맞서 여성 노동자들은 지난겨울 내내 4개월간 광화문 광장에서 부스를 설치하고 복원을 요구하며 16주 동안 서명을 받았고, 1만여 명의 시민이 이 싸움에 서명과 후원으로 응답했다. 임금차별타파주간을 맞아 5월 27일 열렸던 기자회견에서 박명숙 인천여성노동자회 회장은 새 정부를 향해 이렇게 외쳤다. “성평등 노동 실현은 선언이 아니라, 실행 체계를 만드는 일이다. 성평등 노동 추진체계를 법제화하고, 고용평등상담실 복원과 성인지적 산업안전 체계 구축을 새 정부는 더 이상 외면하지 말아야 한다.” 성평등 노동을 위한 정책 집행력 확보, 고용평등상담실 복원, 성인지 산업안전 강화는 더 이상 미룰 수 없는 국가적 책무다. <참조 기사> https://www.ohmynews.com/NWS_Web/View/at_pg.aspx?CNTN_CD=A0003140920 3. 고령자 성별 임금 격차 더 높아…여성이 남성의 59% 수준 고령자 사이에서는 남녀의 임금 격차가 더 높은 것으로 나타났다. 지난 22일, 한국고용정보원이 보고서 ‘고용보험DB를 활용한 연령계층별 노동이동 분석 기본연구’를 발표했다. 발표에 따르면, 1963년 이전 출생자 중 2024년 6월 기준 임금노동자로 일하는 고령자는 272만 9,000명이었다. 이 중 75%는 60세 이후 취업했고, 75%는 중소규모 사업체를 다니고 있었으며, 53.%는 시간제로 일하고 있었다. 이들의 취업 분야는 생산자서비스업과 사회서비스업에 집중해 분포됐고, 현재 일자리 취득 당시 임금수준은 월 실질임금 184만 원 수준이었다. 그런데 남성 고령자는 226만 원, 여성 고령자는 133만 원으로, 여성의 임금은 남성의 59%에 불과했다. 전체적으로 고령자의 일자리는 연령이 높을수록 불안정하며 임금수준이 낮고, 고령자 내 성별 임금격차가 매우 크게 나타났다. 또한 현재 임금노동자인 1963년 이전 출생자 중 원래 직장에서 정년퇴직한 노동자는 9.5%가량인 26만 명에 불과했다. 정년퇴직 후 같은 직장에서 다시 일하기 시작한 비율, 즉 재고용 비율은 전체 정년퇴직자 중 37.5%로, 9만 4,000명에 그쳤다. 그런가 하면, 출산 이후 남녀 노동자의 소득 패턴에도 차이가 나타났다. 출산 남성의 연 보수총액은 해가 갈수록 매끈하게 증가했다. 반면 출산 여성의 연 보수총액은 원래 남성과 비교해도 평균적으로 낮았지만 출산한 해와 그다음 해까지 매우 낮게 유지되다가 3년 후에야 회복 국면에 들어섰다. <참조 기사> https://www.yna.co.kr/view/AKR20250620128200530?input=1195m 4. 인도 마드라스 고등법원, 동성 커플 ‘가족’으로 인정 인도 타밀나두 주의 마드라스 고등법원이 동성결혼 합법화가 되지 않은 상태에서 동성커플을 가족으로 인정하는 획기적 판결을 내렸다. 이번 판결은 성별이분법에 근거한 정상 결혼제도 밖에서도 성소수자가 ‘가족’을 구성할 수 있다는 ‘선택된 가족’ 개념의 진일보한 판결로 주목받고 있다. 이번 판결은 한 여성이 자신의 여성 파트너가 부모로부터 폭행과 불법 구금을 당하면서 법원에 낸 인신보호청원(HCP)의 승인 과정에서 나왔다. 고등법원 판사인 L. 빅라마난은 “결혼이라는 법적 장치가 없더라도, 두 사람 사이에 진실하고 안정된 유대가 있다면 이는 가족으로 간주될 수 있다”며 “가족이라는 개념은 시대와 함께 진화하며, 더 이상 출산이나 전통적 결혼에만 한정되지 않는다. 헌법 제21조에 명시된 ‘삶의 권리’는 사랑하고, 선택한 사람과 함께 살 권리를 포함한다. 이제는 결혼을 넘어선 파트너십, 동거, 그리고 다른 형태의 공동체적 삶도 국가의 보호를 받을 수 있는 시대가 되었다”라고 판시했다. 첸나이의 인권 활동가인 라메쉬 쿠마르는 “이런 판결은 ‘법이 현실을 따라가야 한다’는 메시지를 준다”며, “법정 밖의 가족도 존엄하게 살아갈 권리가 있다”라고 말했다. 성소수자이자 인도의 주요 인권단체인 피플포체인지(People for Change)에서 활동하는 소비크 사하는 “‘선택된 가족’ 개념은 가족으로부터 거부와 혐오·폭력을 당해온 성소수자에게는 새로운 것이 아니라 생존과 치유를 위한 삶의 방식이었다”라고 주장했다. 그는 덧붙여 “이 판결은 진전이지만, 솔직해지자”라면서 “체계적 구조 개혁이 뒤따르지 않는 한, 법적 판결만으로는 경찰의 행동을 바꿀 수 없다”라고 강조했다. 또한 “인도의 행정과 공권력은 여전히 가부장적이고, 계급 차별적이며, 이성애 중심적이다. 2018년 형법 377조(동성애 처벌)가 폐지된 후에도 많은 경찰이 LGBTQ 정체성을 범죄나 부도덕한 것으로 간주한다. 이번 판결이 사법부의 강력한 메시지이지만, 내무부와 경찰이 이를 제도화하고 실행하지 않는다면 변화는 느리고 고르지 못할 것”이라고 말했다. <참조 기사> https://www.newindianexpress.com/states/tamil-nadu/2025/Jun/04/same-sex-marriage-not-legalised-but-couples-could-form-a-family-madras-high-court https://www.washingtonblade.com/2025/06/17/madras-high-court-says-families-are-possible-outside-marriage/ 5. 영국 트랜스여성 수영 선수, 상의를 탈의하고 남성과 경기 영국의 한 수영 경기에서 여성으로 법적 성별을 정정한 트랜스젠더 여성 수영 선수가 대회 주최 측의 강압으로 “남성 부문” 출전을 통보받았다. 심지어 그가 상의를 탈의한 채 남성들과 수영해야 하는 사태까지 벌어졌다. 그러자 경기 규칙 적용이 아니라, 성소수자의 정체성과 권리를 무시하는 명백한 차별한 사태라는 비판이 영국뿐 아니라 국제적으로 일고 있다. 애초에 트랜스 여성 선수는 여성 부문에서 출전하길 원했다. 그러나 주최 측은 그가 법적으로 여성이더라도 “생물학적 남성”이라는 이유로 여성 부문 출전을 불허하고, 남성 부문에서 경쟁하도록 강요했다. 더 큰 충격을 준 내용은 그 과정에서 그가 여성의 정체성을 지키기 위해 탑을 입고 경기에 나서려 했으나, 경기 규정상 남성 부문에서는 상의를 착용할 수 없다는 규정으로 인해 탑을 벗고 수영하게 된 점이다. 그는 “나는 여자다. 그런데 왜 남자들과 수영해야 하나? 모두 앞에서 상의를 벗고 수영해야 했던 건 굴욕적이었고, 내 정체성이 무시당한 기분이었다”라고 언론과의 인터뷰에서 말했다. 그러나 대회 주최 측은 선수의 호소와 사회적 비판에도 불구하고 “선수가 불편하거나 굴욕감을 느끼더라도 규칙은 지켜져야 한다는 것이 주최 측의 입장이다”라고 말했다. 이는 규칙이 인권 위에 서 있음을 적나라하게 보여준다. 스포츠계는 ‘생물학적 성별’을 중심으로 통제하는 구조로 여성인 선수를 강제로 ‘남성화’시키며 개인의 신체적 자율성과 성정체성을 심각하게 침해하고 있다. 많은 트랜스젠더 운동선수들이 스포츠계에서 배제당하거나 불합리한 대우를 받고 있다. 트랜스 여성 선수는 “나는 그저 나답게 수영하고 싶었을 뿐이다. 그게 전부다”라고 말했다. 저들이 명분으로 내미는 공정성은 이분법적인 성별 규범, 배제와 혐오, 비과학적 기준일 뿐이다. <참조 기사> https://www.thepinknews.com/2025/06/17/trans-woman-swims-topless-male-category/ https://www.out.com/gay-athletes/trans-woman-swims-topless-england 6. 미국 연방대법원, 테네시주 트랜스젠더 의료 금지법 지지 … 헌법적 쟁점은 외면 지난 6월 18일, 미국 연방대법원이 테네시 주의 트랜스 미성년자 성별 확정 치료 금지법을 지지하는 판결을 내렸다. 해당 법은 트랜스젠더 청소년이 의료적 전환 치료를 받는 것을 금지하는 내용을 담고 있다. 판결에 참여한 보수 성향 판사들은 해당 법이 성차별과는 무관하다고 주장했다. 그러나 전문가들은 법률이 트랜스젠더를 특정해 차별하고 있음에도 이를 부정한 것이라고 비판했다. 트랜스젠더 관련 법률 전문 기자 에린 리드는 이번 판결이 평등권 침해 여부, 트랜스젠더의 법적 보호 지위 등 핵심 헌법적 문제를 회피했다고 지적했다. 테네시 법은 성별 불쾌감을 트랜스젠더에게만 해당하는 증상으로 정의한다. 이 법률은 시스젠더 청소년에게는 허용된 의료 서비스를 트랜스젠더에게는 금지하는 방식으로 차별을 제도화하고 있다. 따라서 이는 단순한 제한이 아닌, 트랜스젠더의 존재 자체를 부정하려는 정치적 목적이 담긴 조치라는 비판이 나오고 있다. 이번 판결은 2019년부터 본격화된 우익 정치 세력의 전국적 반(anti)트랜스젠더 입법 흐름의 일환으로 해석된다. 2025년 한 해에만 115건의 반트랜스 법안이 통과됐다. 법안 대부분은 트랜스젠더 청소년의 성전환 치료, 공적 공간에서의 권리 제한 등을 목적으로 한다. 반면, 연방대법원 판결이 있던 날, 하급심에서는 트럼프 행정부의, 성정체성에 따른 여권 성별 표시 금지 조치를 위헌으로 판단하는 등 판결이 엇갈리고 있다. 앞으로 대법원 재심 가능성도 제기된다. 이처럼 트랜스젠더 권리 보장을 위한 법적 대응은 정치적 환경에 크게 좌우되며, 장기적인 법정 투쟁으로 이어지는 한계를 지닌다. 활동가들은 프라이드 먼스(pride month, 6월)을 맞아 스톤월 항쟁(Stonewall Riots)과 ACT-UP 등 과거 직접행동의 전통에서 교훈을 얻어야 한다고 강조한다. 진보적 운동 진영은 직장과 학교, 거리에서 트랜스젠더 권리를 위한 대중적·노동계급 중심의 실천을 강화해야 한다. 민주당과 같은 제도 정당에 의존해서는 근본적 변화를 기대할 수 없다는 목소리가 커지고 있다. https://www.leftvoice.org/scotus-ruling-against-gender-affirming-care-is-an-attack-on-democratic-rights/ 7. 미국 댈러스 카우보이스 치어리더의 임금 인상으로 드러난 여성 운동선수의 낮은 급여 수준 미국에서는 치어리더를 단순한 공연자가 아닌 ‘프로 운동선수’로 인식하는 경우가 많다. 미식축구단 리어리더들 가운데 대부분은 무용 스튜디오에서 훈련을 받고, 혹독한 트레이닝 프로그램을 소화하고 있다. 대표 동작인 킥라인과 점프-스플릿은 관절 부상을 초래해 수술까지 받는 경우도 있다. 또한 이들은 7월부터 시즌 종료까지 주 3~4회, 한 번에 2~3시간씩 연습하며, 모든 홈경기에서 공연한다. 연습만 주당 40시간씩 해야 하며, 여기에 각종 홍보 활동도 별도로 수행해야 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들의 임금수준은 너무 낮아 다수가 두세 개의 부업을 병행하고 있다. 이같은 사실은 최근 잡지 <피플(People)>과 OTT플랫폼인 넷플릭스에서 방영된 <아메리카스 스윗하츠(America’s Sweethearts)> 등을 통해 드러났다. 특히 <아메리카스 스윗하츠> 시즌 2 공개와 함께 나온 발표에 따르면 댈러스 카우보이스(Dallas Cowboys) 치어리더의 임금이 최근 400% 인상됐다. 이는 그동안 이들의 급여 수준이 얼마나 낮았는지를 반증한다. 전 치어리더 자다 맥클레인(Jada McLean)은 <뉴욕타임스(NYT)>와의 인터뷰에서 자신이 5년 차일 때 시간당 15달러(약 2만 8,000원)를 받았다고 밝혔다. 이번 임금 인상은 치어리더들 스스로가 수년간 함께 싸워온 성과다. 이에 대해 토론토 메트로폴리탄대 스포츠미래연구소 셰리 브래디시 소장은 “(치어리더들의 사례는) 여성 스포츠 전반에 걸친 성별 임금 격차의 일부라고 지적했다. 그러면서 ”치어리더뿐만 아니라 스포츠 전반에서 여성들이 다양한 역할에서 임금 차별을 겪고 있다. 이들의 여정은 다른 리그와 팀들과 유사하며, 더 공정하고 존중받는 보수를 받기 위한 투쟁을 보여준다"라고 말했다. <참고 기사> https://www.cbc.ca/news/world/dallas-cowboys-cheerleaders-pay-1.7565340 [여성 뉴스 브리핑 X] http://x.com/Wo_newsbriefin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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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outh Korea's Presidential Election: Repeat of the Past or Progress Toward the Future?South Korea held its presidential election on June 3, only three years after the previous election, despite the five-year presidential term. The election was prompted by the Constitutional Court's decision on April 4 to remove former president Yoon Suk-yeol from office, following his attempted imposition of martial law on December 3. The moment the Constitutional Court handed down its ruling on April 4, the outcome of the June 3 presidential election was effectively decided. The four months between December 3 and April 4 were far more significant than the two months leading up to the election. Right after Yoon's declaration of martial law on December 3, massive protests by workers and people erupted. People who gathered at the National Assembly blocked the military from taking control of the building, and within two and a half hours, the National Assembly passed a resolution demanding the lifting of martial law. Within six hours, the martial law was lifted. As the protests by workers and people grew explosively, the impeachment motion against Yoon was passed by the National Assembly just 11 days after the martial law was declared. Many people recalled the impeachment of Park Geun-hye eight years ago and believed that Yoon was now over. However, the situation was very different from eight years ago. Above all, far-right forces had grown significantly. Yoon, who declared he would “fight to the end” against the National Assembly's impeachment motion, emerged as a hero of the far-right. Centered on Christian fundamentalists, the far-right launched a massive counterattack in January and February. On January 15, Yoon was arrested, and on the 19th, a warrant for his detention was issued. In response, the far-right forces instigated violent riots at the Western District Court in Seoul, which had issued the warrant. The mass rallies organized by the far-right forces grew increasingly larger, and by early March, they surpassed the scale of the pro-impeachment rallies. Public opposition to Yoon's impeachment also grew from 20-25% to around 35%. On March 8, a judge succumbed to pressure from far-right forces and released Yoon on absurd grounds. Meanwhile, the Constitutional Court's ruling, which was expected to be issued by mid-March at the latest, was indefinitely postponed. For impeachment to be upheld, at least six out of eight Constitutional Court justices (i.e., a two-thirds majority) must vote in favor. However, it appeared that three conservative justices were avoiding to decide their positions due to pressure from far-right forces. The scenario in which the impeachment is rejected, Yoon returns to power, and he imposes stricter emergency measures with the support of far-right forces was no longer unthinkable. From the outset of the impeachment motion against Yoon, the March to Socialism (MtS) has argued for overthrowing the Yoon administration through the power of mass struggle. The core method was to combine a powerful general strike led by the Korean Confederation of Trade Unions (KCTU) with explosive street protests. However, the MtS's call for a powerful general strike was ignored within the KCTU until early March. Yet, by mid-March, the situation suddenly changed. This was because the Constitutional Court's ruling was repeatedly postponed, leading optimism to turn into pessimism. As the atmosphere quickly spread that the outcome of the Constitutional Court's ruling could not be guaranteed, the KCTU leadership was forced to declare a general strike, albeit belatedly. However, the general strike carried out by the KCTU on March 27 was very weak due to inadequate preparation. Nevertheless, there was no other option. The KCTU decided to organize a stronger general strike on April 10 and developed preparations. In this atmosphere, the scale of workers' and people's rallies in late March once again surpassed those of far-right forces. In these circumstances, the Constitutional Court announced on April 1 that it would issue its ruling on April 4. The KCTU held a Representative Conference on April 3 and unanimously resolved to launch a full-scale general strike if the Constitutional Court rejected the impeachment. If the Constitutional Court had rejected the impeachment, there would have been a real possibility of a militant general strike involving hundreds of thousands of participants. On April 4, the Constitutional Court unanimously decided to remove Yoon from office. It looked obvious that the mass struggle of workers and people forced the Constitutional Court to make this unanimous decision. The presidential election held on June 3 ended as expected with the victory of Lee Jae-myung of the Democratic Party, who secured 49.4% of the vote. This brought the severe political crisis that began on December 3 with Yoon's declaration of martial law to a close. However, this is merely the starting point for an even greater political crisis. The emergence of Yoon's People Power Party regime three years ago was due to the disappointment and disillusionment of workers and people with the previous Moon Jae-in Democratic Party regime. The Moon regime claimed to be the successor to the candlelight protests that impeached the Park regime. However, under the Moon administration, which had promised a significant increase in the minimum wage, the minimum wage ended up in disarray due to the second-lowest increase rate in history and institutional reforms that worsened the system. Despite pledges to regularize irregular workers in the public sector, the majority were converted into regular employees of subsidiaries with little change in wages or working conditions. Despite boasting about curbing skyrocketing real estate prices, the administration's double-standard approach of avoiding effective regulations led to explosive increases in housing prices. While proclaiming fairness and justice, it shielded high-ranking public official involved in his children’s college admissions scandals. Despite claiming to be a feminist government, it shielded major figures involved in sexual violence and avoided amending the law to legalize abortion following the ruling that the abortion ban was unconstitutional. In this presidential election, Lee Jae-myung defined the Democratic Party as a center-right party and recruited a large number of right-wing politicians, further clarifying his class character. Lee Jae-myung, who advocates pro-business policies, has promised drastic deregulation and corporate tax cuts. He has pledged to push for the Semiconductor Special Act, which will inject massive state funds to support semiconductor conglomerates. He has proposed doubling the stock market as a solution to the housing price surge. Although he emphasized his background as a child laborer, he barely mentioned worker-related issues such as the minimum wage and irregular employment during the presidential campaign. He rejected the enactment of an anti-discrimination law prohibiting discrimination based on gender, race, nationality, and disability, saying it was “something to be done later.” Despite the Democratic Party clearly revealing its nature as a capitalist party, the Progressive Party, one of the reformist progressive parties, supported Lee Jae-myung of the Democratic Party in this presidential election. The Progressive Party also formed an electoral alliance with the Democratic Party in the April 2024 general election. The Progressive Party, which has a pro-North Korea stance, is repeating the popular front strategy adopted by Stalinism in the 1930s in the face of the rise of fascism, in today's South Korea, which is facing the rise of far-right forces. Several labor unions led by the Progressive Party within the KCTU declared their support for Lee Jae-myung. The current KCTU leadership, which leans toward the Progressive Party, attempted to endorse Lee Jae-myung at the KCTU level but abandoned it after fierce debate. Ultimately, the KCTU did not endorse any candidate in this presidential election. Other reformist progressive parties, such as the Justice Party, the Labor Party, and the Green Party, formed an electoral alliance called the “Social Transformation Alliance” with some labor and social groups and nominated their own presidential candidate under the name Democratic Labor Party. Their candidate, Kwon Young-gook, was a lawyer who had long fought alongside workers. At the center of this movement was the Justice Party. Pursuing social democracy, the Justice Party had emerged as the leading progressive party, securing 6.2% of the vote in the 2017 presidential election. The Justice Party's strategy was to maintain good relations with the Democratic Party while attracting progressive voters who supported the Democratic Party, thereby growing its base. However, this strategy collapsed after two major incidents. First, during the 2019 scandal involving the college admissions scandal of the children of the Justice Minister under the Moon administration, the Justice Party sided with the Democratic Party. This incident caused the Justice Party to lose significant support from its core base of young voters. Second, in the 2022 presidential election, the Justice Party secured 2.4% of the vote, a margin larger than the 0.7% difference between Yoon and Lee Jae-myung. This led Democratic Party supporters to declare that they would never vote for the Justice Party again, claiming it had enabled Yoon's victory. Facing a crisis, the Justice Party was engulfed in severe chaos and division ahead of the 2024 general election and ultimately lost all six of its seats. Following last year's general election, the Justice Party shifted its political direction to the left in an effort to address the crisis. In this presidential election, the Justice Party formed an electoral alliance with other groups that more clearly advocate for the independent political empowerment of the working class. The Democratic Labor Party candidate Kwon Young-gook, a member of the Justice Party, made clear statements on issues such as expanding workers' and people's rights and enacting an anti-discrimination law. Additionally, he demonstrated his commitment to solidarity with the working class by visiting workers engaged in high-altitude sit-in protests and the families of victims of workplace accidents. Therefore, the MtS called for votes for Kwon Young-gook, under the conditions it could not field a revolutionary socialist candidate. This was because it believed that the independent political empowerment of the working class against all capitalist parties including the Democratic Party is the most important task at this juncture. The 1.0% of the vote Kwon Young-gook received will serve as a very valuable starting point for building an independent political force of the working class. However, the MtS did not give unconditional support to Kwon Young-gook but rather offered critical support. First, the platform of Kwon Young-gook remained confined to reforms within capitalism, and even those were timid. Kwon Young-gook avoided direct struggle against capitalism itself and only demanded expanded distribution through tax increases and institutional reforms. It completely excluded struggles for the nationalization of key industries and conglomerates, the deprivation of capitalists' management rights, and workers' and people's control over industries. Although the party put forward a “universal job guarantee system,” its proposal merely called for expanding public works on the periphery while leaving the capitalist mode of production and big capital intact. The defense and foreign policy pledge to “develop Arctic shipping route” revealed an anti-ecological mindset that seeks to exploit the climate crisis for profit accumulation, as well as a lack of geopolitical awareness that the Arctic shipping route is emerging as a core arena of confrontation among the US, China, and Russia. The second reason for the MtS's critical support for Kwon Young-gook was that the Democratic Labor Party included a significant number of individuals who had previously sought alliance with the Democratic Party. Although the People Power Party lost power in this presidential election, its candidate Kim Moon-soo's 41.2% of the vote demonstrated that it remains a powerful force. In addition, Lee Jun-seok, a candidate for the Reform Party, won 8.3% of the vote. This means that two candidates with far-right tendencies received support from nearly half of the voters. Of course, it would be inaccurate to label all voters who supported these two candidates as far-right. Many voters likely cast their ballots for far-right candidates due to their rejection of the Democratic Party and Lee Jae-myung, as well as the weakness of working-class political forces. However, it appears that approximately half of the voters who supported these two candidates—or one-quarter of the total population—can be considered a solid far-right bloc. Kim Moon-soo, in his mid-70s, represents Korea's traditional far right, rooted in anti-communism and anti-North Korea sentiment. This group, which has succeeded through pro-Japanese forces during the Japanese occupation, pro-US forces during the US military government, and ardent supporters of the military regime that led industrialization, now has its core support base among the elderly over 60 and Christian fundamentalists. Lee Jun-seok, 40, symbolizes the emerging far-right, rooted in hatred toward women and social minorities. This can be seen as the Korean version of a global phenomenon, where a backlash against the feminist movement that swept the world in the 2010s has spread among young men. His core support base is also men in their 20s and 30s, who just eight years ago overwhelmingly supported the Democratic Party candidate. There are tensions and differences between the two far-right forces. Unlike the faction represented by Kim Moon-soo, which opposed the impeachment of Yoon, the faction represented by Lee Jun-seok supported it. However, the two factions share an extreme right-wing worldview in many more ways. Opposition to anti-discrimination law and hatred of China are the core issues that bind the two factions together. Yoon's December 3 martial law was an attempt by the far-right, which had grown powerful enough to seize control of the highest authority in South Korea, a country with a history of military dictatorship, to hastily evolve into military fascism. Their attempt failed, and the path to military fascism has been blocked for now. However, the capitalist crisis that initially fueled the rise of the far-right remains unchanged. The far-right, whose essence lies in defending the capitalist system, paradoxically emerges where hope for a better life through sustained capitalist growth has vanished. Characterized by hatred, discrimination, and exclusion of workers and oppressed people, the far-right grows by attacking the hypocrisy and incompetence of bourgeois democracy, which once promised freedom and equality. When workers and people drift between bourgeois parties without a genuine alternative in the form of revolutionary workers' politics and mass struggle, far-right forces gain the opportunity to establish themselves as an alternative to bourgeois democracy. Today's global capitalist crisis is bringing even South Korean capitalism, which has been known for its dynamic development over the past few decades, to a standstill. The Lee Jae-myung administration's grandiose promises to resolve the suffering of workers and people through growth will soon lead to disastrous results. Regardless of the growth rate figures, big capital will reap huge benefits while workers and people will suffer bitterly. Disappointment and disillusionment with the Democratic Party administration will once again sweep through workers and people. At that moment, who will lead the workers and people to confront the Democratic Party regime will determine the future. If the initiative once again falls into the hands of the far-right forces, the past will repeat itself in an even worse form. However, if the working class seizes the initiative, a hopeful future different from the past will finally begin. The independent political empowerment of the working class, the strengthening of resolute mass struggles of workers and the oppressed, and the spread of revolutionary politics that directly challenge capitalism are the key factors for opening such a future, and therefore, are written in the banner that the MtS is raisin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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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명] 미국의 이란 핵시설 폭격은 팔레스타인 집단학살에 이은 인류적 범죄다. 미국과 이스라엘은 전쟁행위를 즉각 중단하라!6월 22일 미국이 이란의 핵시설을 폭격했다. 6월 13일 이스라엘 전투기 200여 대가 테헤란과 핵 시설 등에 330기 이상의 미사일을 퍼부으며 집중 공격한 것에 이어, 지하 시설을 관통할 수 있는 3만 파운드(약 13,000kg)급 ‘벙커버스터’ 폭탄을 탑재한 미국의 B-2 폭격기가 이란의 3개 핵시설(포르도, 나탄즈, 이스파한)을 폭격한 것이다. 이란에 대한 미국과 이스라엘의 공격은 지난 20개월 동안 가자의 집단학살을 막아내지 못한 결과이다. 이스라엘은 지난 20개월 동안 가자에서 집단학살을 지속하며, 서안지구를 더욱 빠르게 병합하고, 예멘을 폭격하고, 레바논과 시리아의 일부를 점령했다. 이미 수차례 이스라엘은 이란 주요인물을 암살하고, 영사관을 공습하기도 했다. 미국, 영국, 독일 등 제국주의 국가의 지원을 받는 이스라엘의 폭주가 더 큰 전쟁으로 이어지는 것은 시간문제였다. 오늘의 폭격이 있기 며칠 전, 영국, 독일, 프랑스, 캐나다, 이탈리아, 미국, 일본은 G7 정상 성명을 통해 이스라엘의 이란 공격이 ‘자위권의 행사’이며, “중동지역의 평화와 안정에 대한 우리의 의지를 확인한다”고 밝혔다. 그러나 지난 수십년 간 중동의 평화를 파괴하고 노동자민중을 학살해온 자들은 바로 이들이다. 이스라엘은 아직 존재하지도 않는 이란의 핵무기를 들먹이며 ‘존재론적 위협에 대응하는 선제적 타격’이라 말했다. 자기 손에는 가공할 핵무기를 쥐고서 말이다. 이스라엘은 중동지역에서 핵을 보유하고 국제원자력기구(IAEA)의 사찰도 거부하는 유일한 국가다. 미국은 세계에서 가장 많은 핵무기를 보유하고서, ‘핵위협을 중단시키기 위해서’라며 핵시설에 수십톤의 폭탄을 투하했다. 이스라엘과 미국은 20개월 간 이어온 팔레스타인 집단학살에 이어, 이란을 향한 침략행위를 본격적으로 시작함으로써 중동의 노동자민중을 더 큰 전쟁의 참화로 몰아넣고 있다. 이 전쟁을 막아내는 것은, 중동과 전세계에서 이스라엘과 제국주의 국가들의 인류적 범죄를 막기 위한 세계 노동자민중의 단결된 행동을 얼마나 조직하는가에 달려있다. 얼마 전 가자에 구호품을 전달하기 위해 가자로 향했던 '플로틸라 자유선단'과 이집트 행진단의 용기있는 정신을 따라, 이스라엘로 향하는 무기 선적을 거부한 항만노동자들의 결의를 따라, 노동자계급의 국제연대를 확대하여 전쟁을 중단시키자! 2025년 6월 23일 사회주의를향한전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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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2회 대전퀴어문화축제, 윤석열 퇴진 광장 이후 퀴어가 다시 연 무지개 광장출처: 대전퀴어문화축제 조직위원회 지난 6월 대전 도심에서 제2회 대전퀴어문화축제(이하 ‘대전퀴퍼’)가 열렸다. ‘사랑이쥬 – 광장에 나와 너’라는 부제로 열린 이번 행사는 작년보다 많은 43개의 단체와 퀴어당사자와 엘라이들의 참여 속에 치러졌으며, 축제 당일에는 약 2,000명의 참가자가 도심을 행진했다. 오전 11시부터 부스 행사가 시작됐고, 오후 1시 개막식, 오후 4시 행진까지 일정이 이어졌다. 올해 퀴퍼는 기존 단체 중심의 참여를 넘어서 개인 조직위원들의 기획과 참여가 돋보였다. 또한 기업이나 대사관 등의 자본과 제국주의 침략에 책임이 있는 외부 후원을 받지 않고 독립적으로 운영됐다. 조직위원회 성원들은 “내가 사는 도시에서 퀴퍼가 열린다는 사실 자체가 중요”하기 때문에 대전퀴퍼를 또 다시 준비하게 되었다고 입을 모았다. 도심을 따라 이어진 행진 대오에는 무지개 현수막과 함께 “퀴어는 여기 있다”, “차별에 저항하자”, “차별금지법 제정하라”는 구호가 울려 퍼졌다. 참가자들은 단순한 문화행사를 넘어 스스로의 정체성과 성적 지향을 드러내며 자신이 살아가는 공간의 광장에 나온 것에 기쁨을 표현했다. 누가 그들을 숨기라 했던가? 누가 살아도 되는 몸과 그렇지 못한 몸을 나눴던가? 광장은 우리의 것이자 모두의 공간이다. 오래도록 감춰져 왔던 퀴어들은 이제 광장에서 서로를 만나 함께 투쟁한다. 퀴어가 광장으로 나오는 것은 단지 개인의 용기가 아니라, 집단적 존재의 선언이다. 출처: 대전퀴어문화축제 조직위원회 시 낭독과 함께 울려퍼진 팔레스타인 해방 축제에서 무엇보다 빛났던 것은 자본주의 체제에 의해 억압당하고 차별받는 존재들의 연결이었다. 연대발언 중 팔레스타인평화연대의 주드 활동가는 이스라엘의 폭격으로 사망한 팔레스타인 시인 레파트 알리라르의 시를 낭독하며 발언을 시작했다. “내가 죽어야 한다면 당신은 살아남아서 내 이야기를 전해다오. 내가 죽어야 한다면 내 이야기가 희망을 가져다 줄 수 있기를 그 이야기가 잊혀지지 않기를.” 주드는 이 시를 통해 “팔레스타인과 성소수자의 현실은 외면당한 존재들의 이야기”라고 강조했다. 그는 팔레스타인의 학살은 단기간의 문제가 아니라 1948년 나크바 이후 수십 년간 이어져 온 구조적 폭력이라고 지적하며, 이스라엘의 전쟁 범죄에 동조하고 있는 한국 정부의 방위산업 수출과 정치권의 침묵을 비판했다. 또한 그는 성소수자이자 트랜스젠더로서, “이 사회에서 성소수자가 죽음을 선택해야 하는 현실은 끝나야 한다”고 발언을 이어갔다. 차별금지법이 여전히 제정되지 못한 현실, 그리고 최근 정보통신법에서 ‘성적 지향’이 삭제된 상황을 지적하며 “얼마나 더 죽어야 우리의 인권이 보장되느냐”고 물었다. 발언 마지막에는 “퀴어로 산다는 것, 팔레스타인 사람으로 산다는 것, 누군가에겐 죽어도 되는 존재로 분류된다는 것—모두 같은 구조의 문제”라고 말하며 다음 구호로 마무리했다. “우리의 해방은 연결되어 있다! 함께 싸우고 함께 승리하자!” 출처: 대전퀴어문화축제 조직위원회 고 변희수 하사를 추모하며 행사 하루 전인 6월 6일, 대전퀴퍼조직위는 대전현충원 앞에서 고 변희수 하사를 추모하는 기자회견을 열었다. 변 하사의 순직이 공식 인정된 지 1년이 되는 시점이었다. 퀴어 당사자이자 개인 조직위원으로 참여한 상이는 대전퀴퍼 현장에서 다음과 같은 발언을 전했다. “우리는 땅에 존재하며 결코 사라지지 않을 것을 믿습니다. 하지만 동시에, 자연스럽게 삶을 마무리할 수 있기를 바랍니다. 살아갈 권리를 부정당해 죽음을 선택해야 하는 사회가 하루빨리 사라지길 간절히 바랍니다. 제가 오늘 이 자리에 올라 이야기하게 된 가장 큰 이유도 바로 이 메시지를 전하고 싶었기 때문입니다. 우리 모두 끝내 웃으며 사라지지 맙시다. 혐오와 차별 대신 사랑과 연대로 새로운 혁명의 시대에 함께 존재하자고 약속합시다.” 올해로 두 번째를 맞은 대전퀴어문화축제는 무지갯빛 춤과 웃음이 가득한 축제였지만, 동시에 퀴어의 존재를 지우려는 사회, 팔레스타인의 죽음을 ‘뉴스 한 줄’로 흘려보내는 사회, 존재할 권리를 선별하는 사회에 맞선 투쟁이기도 했다. 또한 고공농성중인 옵티칼지회 노동자들의 청문회 서명운동, 외압을 견딘 국가인권위원회 대전사무소 노동자들의 자발적 부스운영, 윤석열 퇴진 광장에서 활동한 기수들의 참여 등은 이번 대전퀴퍼가 여러 사회운동의 교차점이었음을 보여주기도 했다. 그러나 조직된 노동자들의 참여는 저조했다. 퀴어 존재를 억압하고 차별하는 자본주의 체제를 갈아엎기 위해선 노동자운동이 퀴어운동과 어깨를 걸고 싸워야 한다. 그런 점에서 대전퀴퍼의 외침을 현실로 만들기 위해, 더 많은 노동자들이 함께 퀴어 해방의 깃발을 들고 거리로 나아가야 한다. 제2회 대전퀴어문화축제의 광장은 마무리되었으나 우리는 계속해서 광장에 나올 것이다. 우리의 존재로, 우리의 목소리로, 그리고 더는 외면하지 않겠다는 결심으로 우리는 계속 연결될 것이다. 출처: 대전퀴어문화축제 조직위원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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잘 나가는 기아, 탄압받는 청소 노동자김경숙 조합원(첫 번째 사진에서 가장 왼쪽)이 동료들과 함께 피켓 시위를 하고 있다 기아자동차 화성공장 청소 노동자들이 부당한 업무 지시를 거부하며 투쟁하고 있다. 친환경을 말하며 전기차를 생산하는 기아차의 청소 노동자들 앞에 별안간 산업폐기물이 쏟아졌기 때문이다. 기아차 화성공장 하청업체 보광산업에 소속되어 있는 김경숙 씨, 김은희(가명) 씨와 그의 동료들은 지난 5월 초부터 피켓을 들었다. 회사는 지난 3월 말 새로 생긴 글로벌 품질센터 현장을 청소하라고 지시했다. 그동안 청소 노동자들이 하지 않았던 업무였다. 품질센터 안, 품질센터의 통행로 안은 자동차 부품 등 중량물이 많아 안전 문제를 고려해야 한다. 다른 건물에서도 현장 안 청소는 전문 장비를 갖춘 다른 노동자들이 담당해 왔다. 청소 노동자들은 현장 안이 아니라 화장실과 사무실, 복도를 청소했다. 그런데 회사는 노동조합 및 해당 청소 노동자들과 어떤 협의도 없이 막무가내로 업무를 지시했다. 담당구역 업무변경 시 조합원과 협의해야 한다는 노사협의 조항은 휴지 조각이나 다름없었다. 4월 초 노동자들이 작업 지시를 거부하자 사측은 노무사를 동반해 현장 실사(맨아워 측정)를 하겠다고 했다. 업무량 과다, 노동강도 심화, 작업의 위험성이란 이유로 정당하게 작업을 거부했는데도 감시와 탄압, 협박의 수단으로 현장 실사를 강요했다. 노동자들은 감시성 현장 실사를 거부하고 회사의 사과를 요구했다. 회사는 5월 7일 조합원 간담회 때 노동조합이 현장 실사에 동의했다는 허위 정보를 유포했다. 관리소장은 조합원 각각에게 전화를 걸어 “힘들다, 투쟁하는 노동자가 이상한 행동을 하고 있다, 도와 달라”라고 얘기했다. 조합원들을 분열시키려는 행동이었다. 업체관리소장은 회사 편을 드는 대의원을 앞세워 노동자들에게 “회사를 괴롭히면 죽을 만큼 힘들게 해주겠다”라고 위협했다. 투쟁하는 노동자에게 고소, 고발 협박도 서슴지 않았다. 노동자들은 회사의 온갖 탄압을 이겨내며 싸우고 있다. 회사는 해고 얘기까지 꺼내고 있다. 거대 글로벌 자동차 회사 안에서 일하는 청소 노동자들의 운명은 풍전등화 상태다. 하지만 노동자들은 꿋꿋하다. 불법파견 대상에서 제외된 식당, 청소 비정규직 노동자들은 인원 부족, 과도한 업무, 저임금, 성희롱과 괴롭힘에 시달려 왔다. 불법파견 소송과 정규직화 투쟁으로 많은 비정규직 노동자가 정규직화된 후, 남은 비정규직 노동자들의 열악한 현실은 은폐됐다. 10년을 일한 김경숙 씨의 기본급은 최저임금이 안 된다. 수당이 붙어야 겨우 최저임금을 맞춘다. 4년을 일한 김은희 씨의 기본급도 최저임금이 안 된다. 이런 저임금 아래 고된 업무를 강요받아 왔다. 업무 범위는 갈수록 늘어났다. 김은희 씨는 쓰레기통만 37개를 비워야 한다. 그런데도 사측은 더 많은 쓰레기통을 비우라고 한다. 그것도 산업폐기물이 담긴 쓰레기통 청소를 강요하고 있다. 더구나 노동자들은 단지 쓰레기통을 비우는 일만 하는 게 아니다. 수많은 대형 건물이 즐비한 기아자동차 화성공장의 청소 노동자 수는 대략 150명뿐이다. 빵과장미는 부당한 업무지시에 맞서 싸우고 있는 여성 조합원 김경숙 씨와 그의 투쟁을 지지하고 있는 조합원 이삭 씨를 만났다. 조합원들이 피켓시위 중이다 노동자 한 명이 하루에 처리해야 하는 쓰레기의 일부 어떤 대의원은 해당 업무가 10년 이상 동일한 조건으로 수행되어 온 일상적인 업무라고 주장한다. 그렇지 않다. 23년 8월 공장이 개축되면서 처음 업무 지시가 내려왔는데, 기존 업무에서 추가된 것이다. 신축 공장 전체를 다 청소하라고 했다. 모두 6열인데 1열에만 최대 90대의 차량이 들어간다. 너무나 부당한 지시여서 거부했다. 그랬더니 시키면 시키는 대로 해야지 왜 안 하냐라며 해고하겠다고 했다. 어떤 대의원은 조합원들과의 협의를 거쳐 업무 수행에 합의한 것인데, 기초적인 업무조차 이행되지 않아 민망하다고 주장한다. 사실이 아니다. 협의라는 말을 가장해 부당하게 업무를 지시하려고 했다. 단체협상에는 회사와 대의원이 협의한 뒤 노조에 통보해야 한다고 규정한다. 하지만 회사는 이를 제대로 지키지 않았다. 협의를 해놓고는 아무것도 지키지 않아 현장 소장에게 항의했더니 ‘내가 노력한다고 했지, 언제 지킨다고 했냐’고 그랬다. 어떤 대의원은 한 분은 쓰레기통 3개, 다른 한 분은 쓰레기통 4개만을 담당하는데도 이를 과중하다고 주장한다고 비난한다. 어떻게 봐도 3~4개라는 근거는 없다. 김은희 조합원이 청소하는 쓰레기통만 37개다. 사무실도 어마어마하게 크다. 출근해서 퇴근할 때까지 쉬지도 못하고 계속 봐야 한다. 쓰레기 봉지에 담으면 산더미처럼 쌓인다. 그래서 이의를 제기한 것이다. 또 회사는 처음에는 신공장을 ‘현장’이라고 말했는데 이후에는 현장이 아니라고 말을 바꿨다. 현장이라고 하면 불법파견 문제가 생기기 때문이다. 현대기아차는 친환경을 말하며 전기차를 생산한다. 노동자들에게는 어떤가? 회사는 친환경을 말하지만, 노동자의 안전이나 권리에는 아무런 관심이 없다. 이번 논란도 전기차 생산공장 신축을 계기로 발생했다. 회사는 주종을 전기차로 바꾸면서 공장을 새로 지었다. 그러면서 청소 구역이 늘어나자 나(김경숙)를 본보기로 삼았다. 그래서 회사로서는 내가 꼭 그들이 요구하는 청소를 해야 하는 것이다. 회사는 다른 하청 업체에서는 다 하고 있다고 주장한다. 그러나 내가 알아본 바로는 아무데도 하고 있지 않다. 쓰레기도 일반쓰레기만 하기로 했는데, 산업폐기물이 다 들어왔다. 휴지통에 잔뜩 쌓여 있었다. 깨진 유리나 금속, 플라스틱 등 험한 게 많다. 회사가 아무런 설명이나 보호 장비도 없이 산업폐기물 청소를 시킨 것이다. 이런 쓰레기통이 한두 개가 아니다. 사측이 조합원 개인정보를 남용하고 있다는 말이 있다. 회사에 비협조적인 조합원을 괴롭히기 위해 가족이나 지인에게 전화해 그 조합원이 너무 힘들게 한다고 비방하고 있다. 개인정보를 남용해 조합원을 통제하려 하는 것이다. 사장의 개인 비리라는 것은 무슨 내용인가? 사장이 자기 친동생을 채용해 정규직화하겠다고 했다. 몇 해 전 원청 직원들의 요구 사항을 수행하는 계약직 형태의 긴급대응팀이 만들어졌는데, 여기에 배치했다. 우리는 퇴직자들을 채용하라고 했지만, 긴급대응팀은 원청 총무과 소속이어서 안 된다고 했다. 그런데도 지난 5월 초 말을 바꿔서 사장의 친동생은 정규직화하겠다고 했다. 채용조건이 바뀌면 단협에 따라 알려야 하지만, 이것도 지키지 않았다. 그리고 원래 우리가 휴가를 내면 대체인력을 쓴다. 우리 임금을 대체인력에 주는 방식이다. 그런데 최근에는 긴급대응팀을 쓰기 시작했다. 우리에게 주지 않은 임금이 어디로 가는지 아무도 모른다. 도급비가 착복되는 것은 아닌가 하는 의혹이 있다. 화장실 가는 것까지 통제받고 있다는 게 맞는가? 현대차든 기아차든 다 비슷한 게 노동자에게 악독하다. 표적이 되는 노동자가 있다고 하면 극심하게 사찰한다. 우리 역시 그렇다. 화장실 몇 번 가는지까지 점검한다, 화장실도 그렇고 근무지를 이탈하면, 그 현황을 분 단위로 기록한다. 근무자 이동 동선에 따라 회사 차량이 항상 대기하며 투쟁 노동자를 관찰하는 방식이다. 여성 노동자의 노동조건은 어떤가? 환경업체는 남녀 비율이 2 대 8 정도지만, 여성 노동자를 위한 휴게실이나 화장실은 매우 부족하다. 전기차 때문에 건물을 하나 지어도 배려가 없다. 여자 화장실이 생긴 게 7~8년 전이다. 그때도 여자 화장실이 너무 멀어서 노동자들이 엄청나게 힘들어했다. 건물 한 동 규모가 거대한데, 화장실을 가기 위해 옆 건물까지 가야 했다. 비정규직 남성 노동자도 휴게실이 다 불편한 곳에 떨어져 있다. 화장실에 가려면 5분은 걸어가야 한다. 성희롱이나 성차별은 비일비재하다. 나(김경숙) 자신이 그 사례다. 성희롱 피해를 보았는데 오히려 해고된 적이 있다. 당시 투쟁을 통해 복직했는데, 원청 남성 직원을 위해 밥과 설거지를 시키더라. 원청 직원이 지나가다 중년 여성 노동자의 엉덩이를 때리고 가는 경우도 있었다. 비정규직 남성 노동자가 피해를 본 사례들도 있다. 가령 한 원청 직원은 차에서 비정규직 남성 노동자의 귓불을 만진 사례가 있다. 그래도 공론화해 봤자 제대로 처리되지 않는다. 소문만 무성해지고 가십을 계속 생산한다. 또 샤워장 청소 지시를 무표정하게 수행했다는 이유로 계속해서 민원을 제기한 원청 직원도 있었다. 괴롭히기 위해 매일 배수구에 컵라면을 버리거나 화장실 휴지통에 변을 발라 놓은 원청 직원도 있었다. 하지만 원청 직원 눈 밖에 나면 힘드니까 다들 참는다. 노동자 안전은 어떤가? 노동자의 안전과 건강은 뒷전이다. 가령 바닥을 기계식으로 청소하는 습진차에 쓰는 세제 약품들은 매우 독하다. 자동차 공장에선 기름때를 닦아야 하기 때문이다. 하지만 산업안전보건법에 따라 교육도 하고, 피복도 하고, 약품을 사용하게 해야 하는데 그런 건 전혀 이뤄지고 있지 않다. 주의하라는 스티커는 붙여 놓는다. 약품에 대한 설명은 그냥 유인물을 읽어주는 정도다. 카카오톡으로 안내문을 배포하는 경우도 있는데 대부분 중고령 노동자이어서 못 열어보는 경우가 많다. 이 투쟁이 왜 중요한지 말해 달라. 원청에서 나를 성희롱했던 직원이 작전을 짜 부당한 업무 지시를 밀어붙인 것을 최근 확인했다. 고분고분하지 않으니 찍어내려는 것이다. 그래서 우리는 여성 노동자의 권리를 위해 꼭 버텨야 한다. 또 내가 무너지면, 이 부당한 업무는 전체 조합원으로 확장될 것이다. 그래서 전체 조합원을 위해서라도 꼭 승리해야 한다. 이미 투쟁에 함께하는 조합원들의 수도 적지 않다. 우리는 함께 단결하여 우리 노동자의 권리를 반드시 쟁취할 것이다. (이 기사는 빵과장미에도 게재되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