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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종호텔 로비농성장에서 미국 셧다운 연대 구호를 외치다1월 30일, 현지 시각으로 지금 미국에서는 미네소타 주 미니애폴리스의 반ICE(이민세관단속국), 반 트럼프 투쟁에 연대하는 전국적 셧다운이 진행되고 있습니다. 세종호텔 저녁집회에서 미니애폴리스 투쟁과 전미 셧다운에 연대하는 구호를 함께 외쳤습니다. 미니애폴리스를 포함한 미국 전역에서는 ICE와 미국 트럼프 정부의 국가폭력에 맞서 자치공동체를 꾸려 방한물품과 식량을 구비하고, ICE의 탄압으로 인해 바깥에 나오지 못하는 이주민들에게 물품을 전달하고, ICE 요원에 폭력에 맞서 거리에서 퇴거에 맞서 싸우는 등의 연대가 이루어지고 있습니다. 지난 세종호텔 9차 교섭 집회에서 경찰의 간섭과 채증을 물리치며 함께 외쳤던 '경찰 빠져' 구호는 시위대의 'ICE OUT!' 를 떠올리게 합니다. 수많은 연대물품이 시시각각 도착하는 로비농성 풍경은 미니애폴리스 투쟁과 우리의 투쟁이 비슷하다는 인상을 줍니다. NO ICE! NO KKK! NO fascist USA! (ICE, KKK, 파시스트 미국은 꺼져라!) Minnesota make us proud! General strike shut it down! (우리는 미네소타의 투쟁이 자랑스럽다! 총파업으로 세상을 멈추자!) The people united will never be defeated! (단결한 민중은 패배하지 않는다!) Instagram에서 이 게시물 보기 사회주의를 향한 전진(@marchtosocialism)님의 공유 게시물 ----- [English] [January 30 Sejong Hotel Lobby Sit-in: Solidarity with the U.S. Shutdown] On January 30, in US there is a nationwide shutdown against Trump and ICE. Same day in Seoul, South Korea, international solidarity for shutdown echoed as well. The Sejong Hotel Labor Union, affiliated with the Korean Confederation of Trade Unions (KCTU), has been fighting for reinstatement since 2021, when it faced targeted layoffs to union. This struggle continues to this day in 2026. Union Branch Chief Go Jin-su conducted an extreme struggle, occupying a tower in front of the hotel for over 300 days until January this year. After ending the tower occupation, union members and protesters have occupied the hotel lobby, continuing their occupation and protest for over two weeks. At a rally held ahead of negotiations between the union and hotel, the union and protesters chanted 'Police, get out!' together, repelling police intervention and evidence collection after officers stormed the hotel, ultimately driving them away. This echoes the US protesters' chant of ‘ICE OUT!’ Solidarity supplies continue to arrive at the lobby protest site by the hour, reminiscent of the mobilization of communities across the nation organized to confront state violence. On January 30th, at the daily evening rally at the Sejong Hotel, participants chanted slogans in solidarity with the Minneapolis struggle and the nationwide shutdown. NO ICE! NO KKK! NO fascist USA! Minnesota make us proud! General strike shut it down! The people united will never be defeated! -
[정세집담회] 미국의 베네수엘라 침공과 미중 패권대결미국의 베네수엘라 침공과 미중 패권대결 ※첨부파일에서 자료를 다운받으실 수 있습니다. - 일시: 2026년 1월 30일(금) 19시 - 장소: 강북노동자복지관 205호 (서울 마포구 환일길 13, 충정로역 인근) ※온라인 Zoom 참가 병행 - 발제: 양준석 국제연대위원장 - 사회: 정은희 정책선전위원 미국이 1월 3일 베네수엘라를 침공하고 마두로 대통령을 납치했습니다. 명백한 제국주의 침략행위입니다. 마두로가 '마약 카르텔의 수장'이라고 증거도 없이 주장하는 트럼프의 실제 목적은, 베네수엘라의 석유를 마음껏 수탈하는 것입니다. 이미 작년부터 미국은 카리브해 군사배치, 민간선박 폭파, 유조선 나포 등 베네수엘라 침공을 준비해왔습니다. '돈로 독트린'을 언급하며 미주대륙 전체에 대한 제국주의 수탈 야욕을 숨기지 않았습니다. 이제는 콜롬비아를 공격하고 그린란드도 병합하겠다고 합니다. 그런데 미국의 미주대륙에 대한 식민주의 행보는 중국과의 전면전을 준비하는 걸음입니다. 미중 패권대결의 맥락에서 베네수엘라 침공을 둘러싼 배경과 의미를 살펴보고, 노동자계급의 반제국주의 투쟁의 전망을 모색합니다. -
[번역] 미니애폴리스의 분노와 조직화: 역사적 봉기의 연대기Left Voice는 ICE(이민세관단속국)가 지역사회를 휩쓴 잔혹한 공격에 맞선 시위가 벌어진 이틀간 미니애폴리스 현장에 있었다. 도시에서 벌어지고 있는 일은 미국 노동자들을 위한 계급투쟁의 새로운 장을 예고할 수 있다. 글쓴이: Lila Walters 2026년 1월 26일 Left Voice에 게재된 기사를 번역 미네소타 주민들은 한 달 넘게 트윈 시티에서 ICE(이민세관단속국)를 몰아내기 위해 싸워왔다. 트럼프 행정부가 "메트로 서지 작전(Operation Metro Surge)"을 승인하고 수천 명의 연방 요원을 거리에 풀어 이민자와 그 지역사회를 무차별적으로 공격하기 시작한 때부터다. 미니애폴리스와 세인트폴 사람들은 즉시 행동에 나섰다. 로스앤젤레스와 시카고의 경험을 참고해 동네 안에서 조직을 꾸려 순찰대를 만들고 ICE 요원을 식별해 미행했다. 또한 자신들의 권리와 이민자 이웃의 권리를 외우고, 등굣길이나 교회 가는 길에 ICE의 납치를 두려워해 집 밖으로 나오지 못하는 사람들에게 식료품을 배달했다. 이는 2020년 'BLM(Black Lives Matter)' 운동 당시 국가 탄압의 잔혹함을 직접 겪었던 활동가들부터, 제2기 트럼프 행정부의 이민자 및 소위 "피난처 도시”를 향한 공격으로 처음 정치화된 사람들에 이르기까지, 도시 전역 수백 명의 일상이 되었다. 한편, ICE의 전술은 더 고조되었다. 체류 신분에 상관없이 유색인종을 표적으로 삼고, 사복을 입고, 아이들을 미끼로 부모를 납치하며, 항의하거나 만행을 기록하려는 사람들에게 치명적인 무력을 사용했다. ICE와 연방 요원들이 트럼프 행정부의 명시적인 승인 아래 점점 더 잔인하게 도시를 휩쓸고 다니는 와중에도, 각계각층의 미네소타 사람들은 이웃, 동료, 학우, 사랑하는 사람들을 보호하고 이미 ICE에 끌려간 사람들을 위한 정의를 요구하기 위해 거듭 적응해 왔다. 교사들은 학생들이 ICE 요원들의 미행을 막기 위해 등하교를 함께 하고, 사람들은 매일 요원들이 배치된 건물 앞에 모여 시위하였다. 사람들은 ICE요원들이 묵고 있는 호텔 밖에서 소음 발생기와 심지어 밴드까지 동원해 요원들이 잠들지 못하도록 몇 시간씩 피켓 시위를 벌였다. 지역 상점의 노동자들은 일터를 보급품 분배 센터로 바꾸었고, ICE 목격 정보를 알리는 네트워크는 더 조직화되고 확장되어, ICE 요원이 등장한 현장에 몇 분 안에 사람들을 조직해 보낼 준비를 갖췄다. 참여하는 시민들은 이 모든 활동이 목숨을 건 일임을 잘 알고 있다. 그러나 ICE는 거리를 떠나지 않았고, 요원들은 더욱 대담해지기만 했다. 르네 니콜 굿(Renee Nicole Good)이 대낮에 살해당한 것에 항의하는 시위에 대해, 트럼프 행정부는 상황을 진정시키려 하지 않았다. 대신 수백 명의 연방 요원을 추가로 모집해 도시에 배치하고 시위대를 "내부 테러리스트"라고 불렀다. 행정부는 굿을 살해한 요원을 포함해 ICE 요원들에게 완전한 면책특권을 부여하는 것을 옹호했다. 트럼프 관리들은 중환자실 간호사 알렉스 프레티(Alex Pretti)가 살해된 후에도 거짓말을 퍼뜨리며 연방 요원들을 "피해자"라고 불렀다. 이에 따라 미니애폴리스의 시민들은 투쟁 수위를 높이기 시작했다. 지역 종교 지도자, NGO, 영향력 있는 노조들이 평소와 같은 업무를 중단하는 도시 전역 경제의 정지를 호소했다. 불과 일주일 만에 수십 개의 노조와 사회·정치 단체들이 이 호소에 지지를 보냈으며 미네소타 사람들은 응답했다. 일도, 학교도, 쇼핑도 멈추다 1월 23일, 이 지역 전역에서 700개가 넘는 사업장이 문을 닫았다. 도시 곳곳의 상점 창문에는 표지판이 걸렸다. - 우리는 이웃과 연대하여 문을 닫습니다. - 우리는 ICE를 제외한 모두를 환영합니다. - ICE는 미니애폴리스를 떠나라. - 1월 23일 — 일도, 학교도, 쇼핑도 없음. 한편, 홀푸드(Whole Foods market)와 타겟(Target) 같은 대형 체인의 네온사인만이 텅 빈 거리와 닫힌 상점을 비추며 그들이 누구 편인지 명백하게 보여주었다. 영하의 기온 속에서도 5만 명이 넘는 사람들이 도시 중심부를 행진하며, 단순히 도시 내 ICE의 공격을 끝내는 것을 넘어 ICE 자체의 폐지를 요구했다. 이민자 자녀들은 그들의 부모와 가족을 보호하기 위해 행진했다. 원주민 공동체도 함께 행진했다. 날씨 탓에 휴교령이 내려져 파업 계획이 연기된 학생과 교사들은 제자와 학우를 지키기 위해 거리로 쏟아져 나왔다. 지난 몇 달간 이어진 대규모 노 킹스(No Kings) 행진의 정서를 반영하듯, 시위대는 트럼프, 공화당, 기성 정치권을 맹비난했다. 그들은 엡스타인 스캔들, 의료 서비스에 대한 공격, 행정부의 민주적 권리 유린을 규탄했다. 미국 노동계급에는 낯선 경험이지만, 다양한 부문의 수만 명이 금요일 출근을 거부했다. 일부는 병가를 냈고, 일부는 동료들과 직접 조직해 작업을 중단하고 결집했다. 한 미국통신노조(CWA, Communications Workers of America) 지부에서는 노동자의 86%가 금요일 근무를 거부했다. 스타벅스 노동자들은 6개 매장(노조가 있는 4개 지점과 없는 2개 지점)에서 일손을 놓고 매장을 폐쇄시켰다. 운수 노동자, 교사, 공항 노동자, 간호사, 서비스 노동자 등 다른 노조원들도 겨울 점퍼에 노조 배지를 달고 추위를 막는 스카프에 노조 로고를 새긴 채 군중 속에 섞여 있었다. 노조와 함께 왔든 아니든, 노동자들은 동료와 지역사회를 지키기 위해 나타났다. 이 역사적인 행동은 노동자들을 새로운 방식으로 연결하며 "한 명에 대한 공격은 우리 모두에 대한 공격이다"라는 말에 생명을 불어넣었다. 우리가 인터뷰한 많은 사람은 금요일 셧다운의 중요성에 대해 발언하면서, "돈이 모든 걸 좌우한다 (money talks)"라고 했다. 하지만 더 중요한 것은 평소와 같은 업무를 멈춰 세운 노동계급의 단결이다. 왜냐하면 모든 것을 돌아가게 만드는 것은 바로 우리이기 때문이다. 1월 23일 셧다운을 조직하고 참여한 노동자들은 미국 노동계급 사이에서 커지는 정서를 상징한다. 노동자라는 우리의 위치가 조직하고, 단결하고, 계획하고, 노동을 거부함으로써 반격할 수 있는 강력한 위치라는 정서 말이다. 민주당 정치인들의 공허한 약속으로 끝나는 시위들에 실망해 사기 저하의 악순환에 빠지는 대신, 미네소타 사람들은 버티기에 들어갔다. 바로 그 때문에 미니애폴리스의 호소는 뉴욕에서 로스앤젤레스에 이르기까지 전국 여러 도시에서 받아들여졌다. 분노에서 조직화로 수만 명이 거리로 나와 경제 셧다운에 참여한 지 채 하루도 지나지 않아, 연방 이민 경찰은 미니애폴리스에서 자신들의 존재가 거부당한 것에 대한 대답으로 또 다른 지역 주민을 총으로 쏘았다. ICE가 차 안에 있던 르네 굿을 쏜 지 불과 17일 만이었다. (2026년 1월 24일, 미니애폴리스에서 37세 미국인 중환자실 간호사 알렉스 제프리 프레티(Alex Jeffrey Pretti)가 거주지 인근에서 ICE 요원들에게 여러 차례 총격을 받고 사망했다. 그는 한 여성에 대한 단속 집행을 막기 위해 휴대폰으로 ICE 요원들을 촬영하고 있었고, ICE요원이 여성을 밀어 넘어뜨리자 이를 막아섰다. 6명의 ICE 요원들이 후추 스프레이를 뿌리고 그를 넘어뜨렸고, 곧 이어 10발의 총을 쏘아 살해했다. - 편집자 주) 프레티가 살해당하는 잔혹한 영상이 소셜 미디어 피드와 단체 대화방에 돌기 시작한 지 30분도 안 되어 지역 주민들이 현장에 나타났다. 영하의 날씨에 ICE에 맞서 몇 주간 조직하며 얻은 지식으로 무장한 시위대는 추위를 막을 손난로와 비상 담요, 최루탄과 섬광탄을 막을 마스크와 고글, ICE 활동을 동료 시위대에게 알릴 호루라기를 차 트렁크에 가득 싣고 나타났다. 이웃들은 연방 지원 병력을 태운 장갑차가 거리를 질주할 때 집 밖으로 나와 시위대를 안으로 불러들여 몸을 녹이게 하거나 최루가스를 씻어낼 물을 주었다. We’re on the ground in Minneapolis where CBP just killed a man, following a massive day of action against ICE. Protesters and militarized police are both flocking to the scene. Follow here for live updates: pic.twitter.com/GXJ7VvDeqK — Left Voice (@left_voice) January 24, 2026 국토안보부(DHS)가 프레티에 대해 퍼뜨린 거짓말이 여전히 귓가에 맴도는 가운데, 수백 명의 사람이 총격 현장 주변 블록을 봉쇄하려는 연방 요원들과 대치했다. 요원들은 사람들이 모여 이웃을 애도하는 것을 막으려 했다. 시위대는 프레티가 살해된 현장에서 연방 요원들을 몰아내기 위해 니콜렛 애비뉴(Nicollet Avenue)와 26번가로 모여들었다. 한편, 미니애폴리스 경찰(MPD)은 연방 요원들이 시위대를 구타하는 동안 교통정리만 하고 있었다. 시위 현장에서 수 마일 떨어진 곳에서 평화와 질서를 호소하며 브라이언 오하라(Brian O’Hara) 경찰서장은 MPD가 연방 요원을 위한 지원 병력으로 파견되지 않을 것이라고 말했다. 그러나 그는 트윈 시티 내 ICE의 존재를 비난하기는커녕, 미니애폴리스와 전 세계를 뒤흔든 경찰 폭력 반대 봉기(2020년 조지 플로이드의 죽음에 맞서 일어났던 시위 – 편집자 주)가 있은 지 거의 5년이 지난 지금 MPD가 무엇보다 두려워하는 것은 그 운동의 부활임을 분명히 했다. 2020년 이후 미니애폴리스 지역사회와 경찰 사이에는 불안한 평화가 있었지만, 불과 몇 년 전 사람들의 얼굴에 최루탄을 쏘아댄 것이 경찰과 주 방위군이었다는 사실을 잊은 사람은 아무도 없다. 시위대는 무장 요원들과 몇 시간 동안 대치하며 수백 개의 최루탄과 섬광탄을 피했고, 쓰레기 수거함과 쓰레기로 바리케이드를 쌓았지만 고무탄을 군중에게 직접 쏘는 요원들에 의해 즉시 무너졌다. 지역의 한 식당은 문을 열어 최루탄과 고무탄에 맞은 사람들을 치료하는 자발적인 의료소 역할을 했다. ICE가 블록을 따라 전진했지만, 가스가 걷히자 시위대는 결국 요원들을 물러서게 했다. 곧 장갑차 한 대가 최전선을 뚫으려 시도했고, 군중을 향해 한 목소리가 울려 퍼졌다. "여기는 FBI다. 즉시 해산할 것을 요구한다." 그러나 시위대는 대열을 지켰고 결국 차량은 방향을 돌려 떠났다. 다른 요원들도 곧 뒤따랐다. 시위대는 프레티가 살해된 블록을 되찾기 위해 달려갔다. 그들은 몇 주 전 불과 몇 블록 떨어진 곳에서 르네 굿을 위해 그랬던 것처럼, 그가 총에 맞은 자리에 추모 공간을 만들었다. 지역 주민들은 그들 중 다수가 매일 건너다니는 거리를 되찾기 위해 살인적인 ICE 요원들과 맞섰다. 토요일, 그들은 전 세계 수백만 명이 스마트폰으로 목격한 것을 은폐하려는 트럼프 행정부의 시도에 맞서 저항의 행위로서 이웃을 애도할 권리를 위해 싸웠다. 미니애폴리스 사람들은 ICE에 진저리가 났다. 2020년 봉기 이후, 그들은 무장 병력이 도시를 통제하고 지역사회를 마음대로 테러하는 것을 용납하지 않을 것이다. 사람들은 다음에는 어느 이웃이 납치되거나 거리에서 살해될지 걱정하는 것에 지쳤다. 지난 이틀 동안 거리에 있었던 누구에게 물어보더라도, 미네소타 사람들은 다른 누가 그들을 구원해주지 않음을 알고 있다. 이것은 그들의 싸움이며, 그들은 ICE를 영원히 몰아내고 폐지하기 위해 필요한 일이라면 무엇이든 할 의지가 있다. 그러한 깨달음과 함께 새로운 조직화 방식이 등장했고, 또 등장해야만 한다. ICE가 영원히 사라질 때까지 도시를 정지시키자 금요일의 경제 셧다운은 미네소타 사람들이 ICE와 트럼프의 이민 정책을 전면 거부하고 국가에 의해 살해된 모든 이를 위한 정의를 실현하기 위해, 평소와 같은 업무를 중단하고 도시 전역, 각자의 자리에서 단결한다면 무엇을 성취할 수 있는지 보여준 맛보기였다. 그리고 금요일이 가능성을 보여주었다면, 토요일의 총격은 더 많은 사람을 투쟁으로 끌어들이는 데 지체할 시간이 없음을 보여준다. 트럼프는 물러서지 않고 있다. 여론조사 지지율이 떨어지고 ICE 폐지 요구가 미니애폴리스에서 전국으로 퍼져나가 미국인의 절반 이상이 그 요구를 지지한다고 답하는 상황에서, 트럼프 행정부의 운신 폭은 좁다. 한편 크리스티 놈(Kristi Noem)부터 그렉 보비노(Greg Bovino)에 이르기까지 행정부와 국토안보부는 지지 기반 사이에서 ICE(와 트럼프)의 정당성을 조금이라도 붙들기 위해 미니애폴리스에서 벌어지는 일에 대해 계속 거짓말을 퍼뜨리고 있다. 그런 의미에서 미니애폴리스는 트럼프에 맞선 싸움의 최전선이다. 그곳에서 후퇴를 강제한다는 것은 미국과 해외에서 트럼프의 권위주의 정책에 맞선 전체 운동을 강화한다는 것을 의미한다. "총파업"이라는 말이 모두의 입에 오르내리고 있다. 미네소타 대학교 학생회는 이미 1월 30일 2차 셧다운을 호소했다. 총파업은 도시 전체의 기능을 멈추는 것이다. 학교도, 대중교통도, 생산도 멈추고 지배계급을 위한 이윤도 없는 것이다. 이를 위해서는 지난 몇 주간의 모든 노력을 이 단일한 목표로 통합하는 도시 전체의 주도성과 참여가 필요하다. 집 밖으로 나오기 두려워하는 가족들에게 식료품을 배달하고 ICE 활동을 알리기 위해 순찰을 해온 동네 네트워크들(Neighborhood networks)은 놀라운 수준의 조직력을 보여주었다. 이러한 노력은 금요일에 대거 결집했던 노동자 조직, 사회단체, 정치 조직들과 결합해야 한다. 이러한 네트워크는 투쟁의 새로운 단계를 구축하기 위해 가동될 수 있다. 지역사회 총회를 열어 다음 단계를 조직하고, 주민, 노동자, 학생들이 함께 앞으로 나아갈 길을 토론하며 도시를 마비시키는 진정한 총파업을 어떻게 조직할지 논의하는 장을 마련할 수 있다. 노조와 노조 지도자들이 단순히 호소문에 지지 서명만 하는 것이 아니라, 조합원들이 파업할 수 있도록 전력을 다했다면 무엇이 가능했을지 상상해 보라. 파업을 파업이라 부르고, 요구가 받아들여질 때까지 일손을 놓고 조업을 중단하며, 대규모 대열을 지어 행진해 ICE에 맞서고 단 한 명의 지역 주민도 끌려가지 않도록 막아내는 것 말이다. 이는 수천 명의 미조직 노동자들에게도 파업에 동참해 거리에서 계급의 자매형제들과 단결할 힘을 줄 것이며, 지금까지 문을 열어둘 수 있었던 거대 기업들조차 문을 닫게 할 것이다. 우리의 요구가 관철될 때까지 무기한 싸울 수 있는 노동계급의 힘을 해방하려면, 조직된 노동자든 아니든 "파업 금지" 조항과 노동악법(anti-labor laws)에 정면으로 맞서야 한다. ICE를 몰아낸다는 것은 성명서와 비판만으로 미네소타 사람들의 분노를 이러한 억압 세력과 행정부에 정면으로 맞서지 않는 시위로 돌릴 수 있다고 기대하는 노조 지도자들과 민주당 정치인들의 수동성을 깨뜨리는 것을 의미한다. 직장, 학교, 동네에서, 민주당도 주 방위군도 아닌 미네소타 사람들이 줄곧 그래왔듯이 투쟁의 다음 단계를 결정하는 주체가 될 것이다. 이 투쟁은 미네소타주만의 싸움이 되어서는 안 된다. 금요일은 트윈 시티만의 시위 날이 아니었다. 전국의 사람들이 미니애폴리스와 연대하여 결집했다. ICE에 의해 살해된 사람들에 대한 분노 때문만이 아니라, 지금 ICE를 막지 않으면 그들이 전국의 다른 도시들로 와서 똑같은 짓을 할 것이라는 사실을, 그리고 이미 하고 있다는 사실을 알기 때문이다. 미니애폴리스의 노력은 전국의 적극적인 연대로 뒷받침되어야 한다. 가맹 노조들은 중서부 노동자들의 노력을 지지하기 위해 자체적인 작업 거부, 파업, 피켓 시위를 조직해야 한다. 전국 산별노조총연맹(AFL-CIO)은 미니애폴리스 사태를 규탄하고 1월 23일 행동을 지지했다. 이제는 말을 실제 행동으로 옮겨, 모든 지부의 조합원들을 조직해 미니애폴리스를 지지하고, 향후 노동계급을 공격하는 데 쓰일 트럼프 행정부의 공격에 맞설 권리를 옹호해야 할 때다. 미니애폴리스에서 다음에 일어날 일은 전국과 전 세계로 울려 퍼질 것이다. 도시에서 ICE를 영원히 몰아내는 것이 곧 이민자 및 전체 노동계급에 대해 전쟁을 벌이는 트럼프 행정부를 후퇴시키는 것이다. -
[기고] 서울여대 노학연대, 잿더미에서 투쟁의 불꽃을 피워내자서울여자대학교의 민주노총 공공운수노조 서울여대분회 (이하 서울여대분회)는 지난 여름부터 이어졌던 청소용역업체 태가BM 퇴출 (재계약 반대) 투쟁을 16일간의 천막농성까지 감행하며 승리를 거두었다. 태가BM은 연세 세브란스병원 등에서 의도적인 노조파괴 등으로 유죄 판결을 받고, 서울여대 내에서도 청소노동자들에게 폭언을 하는 등의 ‘악덕’ 용역업체였다. 투쟁 과정에서 대학본부 측의 갈등 조장 (갈라치기 등), 타 노조 (서울여대는 복수노조 상황이다) 의 논점 흐리기 등 많은 방해 시도가 있었지만, 2천여 명이 넘는 학생들이 서명으로 증명했듯 태가BM을 반대하는 학내 구성원들에 의해 용역 재계약은 결렬될 수 있었다. 필자는 이번 2025년 태가BM 퇴출투쟁에 ‘노학연대준비위원회 청소노동자와 연대하는 슈니들 (이하 청연슈)’를 만들고 대표를 맡았다. 또한 학생들을 모아 서울여대분회와 연대하고, 행동하였다. 흐릿한 9년 전의 자취를 재구성하는 투쟁 서울여대분회는 9년 전, 타 업체의 재계약 반대 투쟁을 승리를 마지막으로, 이후에는 다른 본격적인 활동을 펼치지 않았다. 교섭대표노조 권한을 잃어버린 탓도 있었지만 가장 큰 것은 아마도 학내 구성원, 특히 학생들의 무관심 때문일 것이다. 투쟁을 하면서 느꼈지만, 많은 학생들은 캠퍼스 내 노동 문제에 큰 관심을 두지 않는다. 일시적 연대로 큰 것을 이루어내기는 어렵다. 적극적으로 행동하지 않으면 이리저리 치이고 마땅히 가져야 할 권리를 잃어버리기 십상이다. 그렇기에 이번 태가BM 퇴출 투쟁은 타인에게 도움을 청하는 것으로 시작하지 않았다. 내부에서 서로를 의지하는 것이 중요했다. 9년 전의 이야기를 다시 소환해서 우리의 이야기로 바꿔내는 작업은 그렇게 시작되었다. 처음 가보는 노학연대의 길. 어떻게 연대해야 할까? 대응을 위해 생각해낸 것은 노학연대였다. 그동안 타 대학의 노학연대를 보면서 자세히 알지는 못하지만, ‘나도 저렇게 연대활동을 적극적으로 해보고 싶다’고 생각했었다. 그렇지만 어디서부터 시작해야 할 지, 누구와 이야기해야 할 지 등 아무것도 아는 것이 없었다. 여름방학이 한창인 어느 날, 학교를 잠시 들렸더니 곳곳에 ‘태가BM 퇴출 투쟁’을 외치는 현수막이 붙어있었다. 학교 지인들에게 연락을 돌려 수소문해보니 청소 용역업체 태가BM의 재계약 문제가 있고, 태가BM 재계약이 노동자에게 부당한 상황임을 알 수 있었다. 학생들이 무언가 할 수 있는 건 없을까? 라고 고민하다가 두 가지 안을 생각했다. 우선 TF팀을 만들어서 이번 투쟁이 마무리될 때 까지만 어떻게든 (정말 말 그대로 어떻게라도) 연대하는 것, 그리고 노학연대 운동기구를 만들어서 이번 투쟁 뿐만 아니라 학내/외 다양한 노동/사회의제에 연대하는 것이었다. 필자는 직감적으로 이번이 노학연대 운동을 만들어야만 하는 때임을 느꼈다. 현재의 운동에서 출발해 더 넓은 범위를 포괄하는 운동을 추동하자고 판단했고, 그렇게 청연슈가 만들어졌다. 처음이다 보니 어떻게 해야 할 지 모르는 것이 많아서 행동하고 연대하는 것에 주안점을 두었다. 매주 화, 목요일에 있는 서울여대분회 주최의 피켓팅과 오프라인 연서명 요청 활동에 내가 아니더라도, 학생 단 한 명이라도 나갈 수 있도록 했다. 기자회견이나 행정관 내 시위, 집회에도 늦더라도 되도록 참석했다. 돌이켜 생각해보면 투쟁 현장에 의제의 당사자(노동자)가 아닌 연대하는 다른 누군가(학생)가 있다는 것 자체로 힘이 되었을 것이라 짐작한다. 개인적인 경험에서, 우리가 혼자가 아니라는 감각이 투쟁을 지속할 수 있는 힘이 된다고 느꼈기 때문이다. 이 싸움이 외롭지 않다는 것, ‘우리’가 ‘우리’이기에 결국 해낼 수 있을 것이라는 다짐이 현실이 되려면 연대가 필요하다. 청연슈는 그 연대를 하고 싶었고, 어느정도 성공적으로 해냈다고 생각한다. 이미 타오른 불은 쉽게 꺼지지 않는다, 재가 되더라도 2025년 12월 16일, 천막농성 16일차는 청소용역업체 입찰 결정이 있는 날이었다. 아침부터 선전전을 진행하고 회의실 앞에서 우리의 투쟁이 승리로 끝나기를, 모두가 간절히 바랐다. 그리고 마침내 승리할 수 있었다. 다사다난했지만 그랬기에 더 소중했던 승리였다. 투쟁으로부터 한 달이 조금 넘게 지난 지금은 겨울방학을 이용하여 ‘노학연대준비위원회’였던 청연슈를 <노학연대 청새치>로 정식 출범할 수 있도록 준비 중에 있다. 느리더라도 우리가 우리의 언어로 하고싶은 말을 할 수 있는 공간을 열어내는 작업은 필자가 이 대학을 다니며 계속 시도할 목표이자 가치이다. 서울여대분회는 대학 집단교섭을 진행 중이다. 또한 다시 교섭대표노조로서 활동하게 될 것이다. 현재 청새치 회원들과의 인연도 일회성 만남이 되지 않도록 고민 중에 있기도 하다. 필자는 9년 전의 투쟁을 청소노동자분들을 통해 어렴풋이 들었을 뿐이다. 그리고 지금의 이 투쟁도 필자의 졸업 이후에 한참이 지나서라도 또 다시 우리가 들고 일어서야 할 때 안내 책자가 되어줄 것이다. 이번 투쟁에서,는 영상을 전공하는 서울여자대학교 학생들이 싸움의 과정을 다큐멘터리로 남기기도 했다. 우리가 여기에 있었다는 외침은 더 이상 사라지는 메아리가 아니다. 목소리는 쌓아지며 커지고 있다. 이 투쟁의 불씨는 아직 꺼지지 않았다. 하지만 언젠가, 모두 재가 되어버렸다고 생각되더라도 재 위에 남은 발자국을 통해 새로운 길을 걸어볼 수 있을 것이다. 우리의 운동은 그렇게 진보해왔다. 필자 또한 잿더미 위에서 불꽃을, 불꽃 이후에 발자국을 남길 수 있도록 계속 걸어갈 것이다, 노학연대 청새치(준)와 함께. -
[그래, 다시 마르크스주의 연재#2] 세계를 해석하는 유물론과 변증법자본가 계급은 노동자들을 향해서는 관념론을 설파하면서, 스스로를 향해서는 철저히 유물론적으로 사고하고 행동한다. 이윤이 문제가 되는 상황에서 모든 자본가들은 한 치의 관념도 허용하지 않는다. 그들은 계산기를 두드리면서, 가장 많은 이윤이 보장되는 길을 유물론적으로 추적하고, 즉각 행동에 옮긴다. 노동자들을 정리해고하고, 임금을 최소화하며, 노동 강도를 최대치로 끌어올릴 길을 모든 뇌세포를 총동원해 찾아 나간다. 사랑, 용서, 협조 등 자본가들이 노동자들 속에 심어 놓고자 하는 관념은 정작 그들의 두뇌 속에서는 절대 찾을 수 없다. 노동자들이 자본가들에게 사랑, 배려를 외칠 때 그들은 냉혹한 현실을 모르는 몽상가들이라고 윽박지른다. 2부. 세계를 해석하는 두 가지 키워드: 유물론과 변증법 1. 관념론에서 유물론으로 누군가에겐 ‘고작’ 빵, 누군가에겐 생명줄, 이게 그저 생각의 차이일 뿐일까? 1789년 프랑스 대혁명에 나섰던 민중은 “빵을 달라!”고 외쳤다. 왕비 마리 앙투아네트가 “빵이 없으면 케이크를 먹으면 되지. 고작 빵 때문에 혁명을 일으킨단 말인가.”라고 탄식했다는 소문이 돌았다. 이것은 혁명에 기름을 부었다. (실제 이 말을 마리 앙투아네트가 했다는 기록은 없다. 장 자크 루소가 자서전 '고백록'에서 쓴 구절이 이 이야기의 기원이다. - 편집자 주) 이 일화는 인간의 의식이 무엇으로부터 자라 나오는지 설명해 준다. 오스트리아 왕족 출신으로 프랑스 왕비가 된 마리 앙투아네트의 의식에서 빵은 ‘고작’ 빵에 불과했다. 마치 우리가 들이마시는 공기처럼, 그녀는 평생 빵을 언제든 손에 쥐고 배부르게 먹을 수 있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노동자 민중이 처한 상황은 전혀 달랐다. 굶주리고 있는 가난한 사람들에게 빵은 ‘생명처럼 소중한 것’이었다. 가난한 사람들은 기꺼이 이 빵을 위해, 그리고 이 빵을 얻게 하는 일자리를 위해 혁명으로 들고 일어났다. 빵에 대한 이 상이한 두 관념, 의식의 뿌리는 무엇인가? 바로 이들이 놓여 있는 물질적 삶, 즉 존재 기반의 상이함이었다. 이것은 마리 앙투아네트의 의식에 혁명에 대한 적대감을 심은 반면, 노동자 민중의 의식에는 혁명에 대한 간절함을 심었다. 이처럼 인간의 의식은 바로 인간이 발 딛고 있는 존재 기반 즉, 물질적 토대로부터 자라 나온다. 이런 관점을 칭하는 개념이 바로 유물론이다. 유물론 vs 관념론 위 일화에 빗대서, 관념론을 쉽게 설명하면 이런 것이다. 관념론은 모든 것이 우리가 마음먹기에 달려 있다고 생각한다. ‘고작 빵’, ‘고작 일자리’라고 단단히 마음먹으면, 우리는 빵과 일자리의 문제로부터 자유로울 수 있다는 것이다. 반면 유물론은 모든 인간은 먹고사는 문제로부터 자유로울 수 없으며, 그러한 물질적 토대로부터 의식이 자라난다고 주장한다. 마리 앙투아네트에게서 빵을 박탈해 보라! 물론 케이크도 함께! 그러면 마리 앙투아네트의 머릿속에 ‘고작 빵’이라는 관념, 의식이 여전히 남아 있을까? 아니면 ‘제발 한 조각의 빵이라도!’라는 새로운 관념, 의식이 자리 잡게 될까? 유물론과 관념론을 이렇게 대비하면, 누구나 유물론이 옳다고 말할 것이다. 그러나 지배자들은 유물론을 두려워한다. 사회의 물질적 토대에 유물론적으로 접근하면 지배 계급과 피지배 계급, 한 줌 소유자들과 다수 일하는 사람들 사이의 계급 분열이 너무도 선명하게 드러나기 때문이다. 또한 오늘날 일하는 사람들이 짊어지고 있는 고통이 자본주의로부터 생겨나고 있음이 대낮처럼 밝게 밝혀지기 때문이다. 그래서 지배자들은 항상 노동자 민중에게 관념론을 불어넣으려 애써 왔다. 모든 고통의 원인이 ‘착취 제도’라는 물질적 토대가 아니라 ‘마음가짐’ 때문이며, 따라서 분노와 저항의식을 억제하고 주어진 삶에 순응하라고 요구했다. 그러나 노동자 민중은 인간이기에 스스로 생각하고, 착취 제도의 부당함에 맞서곤 했다. 지배자들은 더 고도한 관념론을 만들어 보급했다. 그들은 인간의 모든 고통은 인간이 도저히 이해할 수 없는 ‘초월자’, ‘신’의 섭리에서 비롯되므로, ‘생각’하지 말고 무조건 순응하라고 주문했다. 심지어 ‘현세의 고통’은 ‘천국에 들어가는 입장권’이므로, 기쁘게 행운으로 받아들이라고 주문했다. 자본주의의 태동과 함께 등장했던 ‘직업소명설’은 노동자들은 죽어라 일하고, 자본가들은 죽어라 이윤을 축적하는 게 신의 소명을 다하는 길이라고 설교했다. 마르크스는 이러한 관념론을 퍼트리는 종교를 두고 ‘종교는 인민의 아편’이라고 통렬히 폭로했다. ‘소확행’ 의식으로 들여다본 오늘날의 관념론 오늘날 종교만이 아니라 갖가지 아편이 노동자들과 젊은이들을 세뇌하고 있다. 몇 년 전 일본과 한국의 젊은이들 사이에 유행했던 ‘소확행’ 현상을 살펴보자. ‘소확행’은 무라카미 하루키의 수필집에서 처음 등장한 말로, 작고(小) 확실하게(確) 실현 가능한 행복(幸)을 뜻한다. 가령 그는 갓 구운 빵을 손으로 찢을 때, 서랍 안에 잘 정리된 속옷이 가득 쌓여 있을 때 행복하다고 말한다. 그는 불확실한 큰 행복을 추구하면서 불행하게 사는 대신, 작지만 확실한 행복에 만족하면서 즐겁게 살 것을 제안했다. 욕망을 키우기보다, 욕망을 최소화하면서 작은 일상에서 행복하게 보내자는 제안이다. 이런 ‘소확행’ 현상은 한국의 젊은이들 속에서도 흔하게 발견할 수 있다. 아침에 마시는 커피 한 잔, 동료와 함께 맛집 방문하기, 인스타그램에 사진 올리기 등이다. 이는 큰돈이 들지 않는 것에서 소소한 만족감을 느끼며 살자는 생각, 배우자와 아이가 생기면 삶이 더욱 불확실해지기 쉬워서 결혼을 기피하고 혼자만의 삶에 만족하며 살자는 생각, 당장 살아가기도 벅찬데 미래에 대한 희망은 버리고, 저녁에 맥주 한잔하며 TV 드라마를 보는 것에 만족하자는 생각, 친한 친구와 동네에서 고기 구워 먹을 때의 행복에 만족하자는 생각, 따뜻한 햇볕 속 낮잠의 행복에 만족하자는 생각 등에서 비롯한다. 이러한 ‘소확행’ 사고는 분명 관념론이다. 행복과 불행은 오직 우리가 어떻게 마음먹느냐에 달려 있다는 생각이기 때문이다. 그런데 과연 그럴까? 인간의 욕망은 개개인이 마음먹기에 달려 있는 것이 아니다. 유물론은 인간의 욕망은 개인이 놓여 있는 사회적 환경 즉, 물질적 토대에 좌우된다고 설명한다. 수백, 수천 년 전, 최소한의 먹고 입는 것조차 힘든 사회였다면, 그 사회에 사는 개인은 약간의 빵과 몇 벌의 옷가지만으로도 행복을 느낄 수 있었을 것이다. 그러나 오늘날 사회는 노동자 계급이 매우 많은 것을 효율적으로 생산한 덕분에 그 정도의 물질적 삶은 대다수가 누릴 수 있는 단계에 도달했다. 대신 인간의 욕망은 크게 성장했다. 이제 최소한의 문화생활, 자동차, 집, 의료혜택과 교육 기회 등이 대다수 인간이 욕구하는 기본적인 것이 됐다. 이와 같은 물질적 환경 앞에서 약간의 빵과 옷에 만족하라는 얘기를 듣고, 자신의 욕망을 통제할 사람들은 많지 않다. 오히려 소수의 가진 자들이 누리는 엄청난 사치와 쌓이는 부를 보며 상대적 박탈감만 느끼게 된다. 게다가 자본주의 시장경제는 가뜩이나 좁아지는 시장을 조금이라도 넓히기 위해, 인간의 소비 욕망을 무한대로 확장하는 사회 체제가 아닌가? 이런 소소한 것들로부터 지속적인 행복감을 느낄 사람들이 과연 몇 명이나 될까? 더구나 이와 같은 소소한 행복조차 결코 쉽게 주어지는 게 아니다. 일자리를 얻지 못해 실업 상태인 청년들은 저녁에 친구와 맥주 한잔 마실 여유도 없고, 당장 메워야 할 카드 빚 앞에서 펑펑 울지도 모른다. 소확행의 한 사례로서 ‘따뜻한 햇볕 속 낮잠’의 행복감에 대해 필자가 만난 한 젊은이의 외침은 의미심장하다. “‘따뜻한 햇볕 속 낮잠’요? 저는 살기 위해 자요. 데이 근무(새벽∼오후)가 끝나고 집에 오면 밥도 못 먹고 침대에 쓰러집니다. 3교대 근무라 약속 잡기도 어려워요. 하루를 버텨 내느라 진이 빠지죠. 이 일을 계속할 건지 고민할 시간조차 없어요.” 유물론은 이런 소확행 관념이 최근 왜 탄생했고, 젊은이들 속으로 영향력을 확대했는지 명쾌하게 설명해 준다. 요즘 한국 사회를 표현하는 방식 중 ‘1 대 9 대 65 대 25 사회’가 있다. 최상층 1%와 중산층 9%, 평균 이하의 삶을 누리는 65%와 최하층 25%로 구성된 사회가 바로 지금의 한국 사회다. 최근 25년 사이에 절반 이하로 뚝 떨어진 중산층이 앞으로는 거의 붕괴로 내몰릴 것으로 예견되는 상황에서 이런 양극화 추세는 더욱 확대될 것으로 보인다. 이는 오늘날 젊은이들이 더 나은 처지로 오르는 것이 거의 불가능하다는 점, 오히려 최하층으로 떨어질 두려움에 신음해야 한다는 것을 보여 준다. 이런 상황에서 어떻게 행복할 수 있을까? 이때 소확행 의식은 일종의 아편과도 같은 효과를 발휘한다. 하위 계층의 처지에서 벗어날 기회의 사다리가 부러진 상황에서, 가난에 만족하면서 소소한 행복을 추구함으로써 불행과 고통을 조금이라도 완화하려는 필사적인 시도가 바로 소확행 의식이 오늘날 확대되는 객관적 배경이다. 거꾸로 소확행 의식 확대는 오늘날 젊은이들에게 더 나은 삶의 전망이 닫혀 가고 있다는 현실, 계급 양극화가 더욱 고착화될 뿐만 아니라 더 많은 노동자들이 바닥으로 추락하고 있다는 현실을 가리는 그림자가 아닐 수 없다. 2. 공정과 유물론 경쟁주의 이데올로기는 오늘날 젊은이들을 마취시키는 아편 중 하나다. 개인이 하층, 최하층으로 떨어지는 것은 ‘공정한 경쟁 무대’에서 경쟁력을 상실했음을 뜻한다. 그리고 이 경쟁력 상실은 개인이 노력하지 않은 결과이므로, 공정한 결과로 받아들여지며, 가난과 불평등에 분노하고 저항하는 대신, 오히려 자신을 탓하게 한다. 이 논리는 노골적인 관념론에 비할 때 더 세련된 형식을 취하지만, 근본적으로 관념론이다. 진짜 현실을 감추고, 가짜 현실로 대체하는 것, 이 또한 명백한 현실로부터 비껴나 허구적인 관념적 환상을 유포한다는 점에서 관념론의 변종이기 때문이다. 객관적인 현실은 어떤 것인가? 우선 앞에서 살펴봤듯이, 아무리 공정한 경쟁을 하더라도 중산층 이상으로 도약할 수 있는 사다리가 거의 없어지고 있다. 100명이 경쟁해서 3~4명이 승자가 되고, 나머지 모두가 패자가 되는 경쟁 체제라면, 그것이 아무리 그 과정이 공정하더라도 96~97%의 젊은이들은 이미 패자가 되도록 정해져 있는 게임이기 때문이다. 96~97%의 확률로 패자가 되도록 룰이 정해져 있는 이 게임을 공정하다 할 수 있을까? 단지 공정한 룰로 3%의 승자가 될 수 있는 기회를 제공한다는 이유로 정당한 게임이라 부를 것인가? 게다가 ‘공정한 경쟁’이라는 것도 자본가 계급의 관념 속에서만 존재하는 허상이다. 윤석열 현 대통령은 사법고시에 10번 낙방했다고 한다. 다시 말해 10년 동안 고시 공부에 매달린 것이다. 그의 집안은 그 10년을 뒷받침하기 충분하게 여유로운 집안이었다. 하지만 흙수저 보통 집안에서 태어난 사람이라면 집안의 신세를 지면서 10년간 고시공부하는 건 너무나 버거운 일이고, 어떤 사람에게는 상상할 수도 없는 일이다. 4년의 대학생활조차 아르바이트를 하지 않고는 지탱할 수 없는 학생들이 부지기수이지 않은가? 경쟁의 결과는 사실 불평등한 출발선에서부터 대부분 판가름 나 있는 게 현실이다. 반대로 유물론은 진실을 알려 준다. 현재 젊은이 개개인이 느끼는 고통과 불안은 노력을 하지 않아 찾아오는 것도 아니고, 능력이 없어서도 아니다. 현재의 젊은이들이 행하는 생존을 위한 노력은 조부모나 부모 세대가 과거에 했던 노력보다 훨씬 더 크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지금의 젊은이들이 비참한 상태로 내몰리는 것은 낡고 노쇠해 너덜해지고 있는 자본주의 체제가 사회구성원들에게 줄 수 있는 안정된 일자리들이 거의 사라지고 있기 때문이다. 갈수록 경쟁은 격화되고, 그 경쟁에서 살아남을 가능성은 점점 더 사라지고 있다. 그런 와중에 재벌의 자식들은 경쟁에 참여하지 않아도 날 때부터 재벌의 삶이 보장돼 있지 않은가? 그런데 경쟁주의 이데올로기를 목청껏 외치는 자본가 계급은 경쟁으로부터 완전히 자유로운 재벌 회장들에 대해서는 결코 아무 말도 하지 않는다. 인류 역사상 아편이 창궐한 시기의 공통 특징이 있다. 소위 세기말적 현상으로 불리는 ‘앞이 안 보이는 절망적인 상태’가 보인다는 점이다. 이런 상황은 현존 사회 체제가 생명력을 다했지만 아직 새로운 사회 체제가 등장하지 않은 불안정한 사회 상태를 반영한다. 종교와 함께 소확행 의식과 경쟁주의 이데올로기는 오늘날의 아편이다. 이 아편의 등장 배경은 바로 반동화돼 갈수록 불안정해지고 있는 자본주의 체제다. 자본가 계급의 위선적인 이중 철학 노동자 계급을 향해서, 자본가 계급은 관념론을 설파한다. 행복과 불행은 마음먹기에 달려 있다고 한다. 그러니 임금과 일자리, 평등을 위해 저항하고 투쟁하는 대신, 현재의 가난한 삶에 만족하면서 행복하게 살라고 한다. 성난 민중에게 붙들려 단두대의 이슬로 사라졌던 프랑스 왕비 마리 앙투아네트가 민중에게 했던 말과 똑같은 얘기를 하는 것이다. 또한 자본가 계급은 노동조합에게 ‘협조주의와 사랑의 감정’을 설파한다. 자본에 대한 적대적 생각을 거두고, 평화로운 협조주의적 생각을 발전시키면 노사 모두 행복하게 공존할 수 있다는 것이다. 나아가서 자본가들은 저항하고 투쟁하는 노동자들을 향해 ‘폭력적이고 적대적으로 삐뚤어진 의식’에 물든 불순분자라고 고함친다. 과연 그럴까? 노동자들의 의식이 폭력적이고 불순하고 저항적이라서 투쟁과 전투가 등장하는 것일까? 아니면 자본가들이 만들고 운영하는 이 자본주의 체제가 그런 의식을 낳고 있는 것일까? 상황은 1789년 프랑스 대혁명 때와 같다. 젊은이들에게는 일자리가 터무니없이 부족하다. 노동자들은 높아지는 실업률과 상시적으로 덮쳐 오는 구조조정 때문에 엄청난 고통을 느낀다. 노동의 결과물 가운데 더 많은 부분이 갈수록 소수 자본가들의 수중으로 집중돼 불평등이 확대된다. 물가마저 폭등하면 노동자들의 삶은 더욱 어려워진다. 노동자들은 갈수록 절대적, 상대적으로 더 가난해지고 있음을 느낀다. 이런 객관적, 물질적 상황이 노동자들의 의식을 저항적으로 만들고, 분노를 확산한다. 그런데 자본가 계급은 노동자들을 향해서는 관념론을 설파하면서, 스스로를 향해서는 철저히 유물론적으로 사고하고 행동한다. 이윤이 문제가 되는 상황에서 모든 자본가들은 한 치의 관념도 허용하지 않는다. 그들은 계산기를 두드리면서, 가장 많은 이윤이 보장되는 길을 유물론적으로 추적하고, 즉각 행동에 옮긴다. 노동자들을 정리해고하고, 임금을 최소화하며, 노동 강도를 최대치로 끌어올릴 길을 모든 뇌세포를 총동원해 찾아 나간다. 사랑, 용서, 협조 등 자본가들이 노동자들 속에 심어 놓고자 하는 관념은 정작 그들의 두뇌 속에서는 절대 찾을 수 없다. 노동자들이 자본가들에게 사랑, 배려를 외칠 때 그들은 냉혹한 현실을 모르는 몽상가들이라고 윽박지른다. 이러한 계급적 이해관계로부터 자본가 계급의 진정한 의식이 거꾸로 자라난다. 마르크스의 말처럼, “금전 문제에서 인정은 금물이다!”가 자본가 계급의 진짜 의식이다. 자본가 계급은 ‘노동조합에 대한 비타협적 투쟁의식, 투쟁하는 노동자에 대한 무한한 적개심’으로 무장한다. 자본가 계급의 거짓말이나 외교적 수사가 아니라 그들의 행동을 보라! 그들은 단호한 유물론자다! 3. 마르크스는 어떻게 유물론을 발견했는가? 마르크스가 처음부터 유물론자였던 것은 아니다. 대학 시절 마르크스는 당시 관념론 철학을 대표했던 헤겔철학에 경도돼 있었다. 마르크스는 헤겔철학에서 급진적 측면을 끌어내 절대왕정 체제에 맞서고자 했던 청년 헤겔파에 속해 있었다. 청년 헤겔주의자들과 함께 마르크스는 민주주의 운동에 나섰는데, 그 가운데 여러 정치적 문제와 씨름해야 했다. 1842년 마르크스는 당시 독일에서 가장 급진적인 민주주의 사상을 대변했던 〈라인신문〉에서 기자로 일하기 시작했다. 그러면서 현실의 정치적 문제와 마주치자, 마르크스는 여러 중요한 정치적 대립 배후에 물질적 이해관계가 놓여 있다는 점을 발견했다. 토지 문제나 채취권 등의 쟁점들을 파고들자, 정치적 견해가 계급적 이해관계에 좌우되고 있다는 사실이 선명하게 드러났던 것이다. 방직공들의 봉기를 둘러싼 정치적 대립에서는 자본가와 노동자의 계급적 이해의 대립이, 숲에서 땔감을 얻는 것을 금지하는 법을 둘러싼 정치적 대립에서는 지주와 가난한 농민 사이의 계급적 이해 대립이 놓여 있었다. 대다수 헤겔 좌파들은 이러한 물질적 대립 즉, 계급 대립 앞에서 관념의 세계로 도망쳤다. 그들은 추상적인 우애, 인간애 뒤로 숨어 계급 투쟁에 대해 기권했다. 하지만 마르크스는 이 진실 앞에서 도망치지 않고 투쟁을 선택했다. 그리고 투쟁은 그를 유물론으로 이끌었다. 그 결정적 계기는 1844년 6월에 일어난 독일 슐레지엔 방직공들의 봉기였다. 노동자들을 진압하기 위해 군대가 투입됐고, 수십 명이 죽거나 중상을 입었다. 마르크스는 당시 독일 지배자들의 악선동 가령, 노동자들이 무자비한 폭력을 행사했기에 질서유지를 위해서는 어쩔 수 없었다는 얘기를 받아들이지 않았다. 마르크스는 노동자들의 봉기는 자본가들의 착취에 맞선 저항이었고, 따라서 폭력을 유발한 자들은 자본가들과 정부였음을 폭로했다. 그의 두뇌는 현실에 더욱 충실했다. 그는 이 노동자 봉기라는 현실을 경험하면서, ‘혁명적 의식’으로 전진했다. 부르주아들이나 지식인들이 중심이었던 민주주의 투쟁이 보인 소심함과 달리, 노동자들의 투쟁은 철저히 전투적이었고 혁명적이었다. 이러한 현실을 경험한 마르크스의 의식에 중요한 변화가 일어났다. 그는 이 현실을 반영해, “오직 노동자 계급 속에서만 해방(혁명)의 진정한 요소를 발견할 수 있다”는 의식으로 전진했다. 그의 의식에서 이제 노동자 계급은 고통받는 불쌍한 존재가 아니라, 세계를 혁명으로 이끌 수 있는 역사의 주인공으로 자리 잡았다. 이렇게 마르크스는 관념론에서 유물론으로 전진했는데, 이 유물론적 인식은 노동자 계급을 혁명의 중심에 놓는 혁명적 사회주의로 안내했다. 다시 빵의 문제로 확고한 유물론자로 재탄생한 마르크스는 인류의 역사를 유물론적 관점에서 체계적으로 검토하기 시작했다. 그 결론은 무엇이었는가? 이제까지 인류의 삶의 기초는 먹고사는 문제 즉, 경제적 생산에 있다는 사실이었다. 인류는 이 경제적 생산능력(생산력)을 발전시키는 데 가장 적합한 생산관계를 채택해 왔는데, 이 생산관계의 핵심은 ‘생산수단을 어떤 계급이 소유하는가’였다. 그에 따라 생산물의 분배관계가 결정됐다. 어떤 사회의 의식은 바로 이 경제적 생산양식(생산력과 생산관계의 통일)에 의해 근본적으로 좌우되는 것이었다. 문화, 의식, 윤리 등의 상부구조는 인간에게 필요한 경제적 요소들, 가령 의식주를 생산하는 경제적 하부구조가 그 우선 조건이었다. 바로 이 경제 구조를 밝히는 것, 특히 자본주의 사회의 경제 구조를 밝히는 것이 마르크스가 평생에 걸쳐 수행한 유물론적 과업이었다. 그 결과물이 바로 《자본론》이었다. 결국 핵심은 ‘빵의 문제’였다. 1789년 프랑스 대혁명에 나섰던 민중의 “빵을 달라!”는 외침은 사회의 진정한 핵심을 여과 없이 투명하게 드러냈다. 하지만 유물론은 더 근본적인 질문을 던졌다. 노동자들과 민중은 왜 가난하고 굶주려 빵을 갈망하는가? 어떤 현실이 그것을 강요하는가? 현실을 분석한 마르크스는 작업장과 기계, 토지 같은 생산수단을 어떤 계급이 소유하는지가 결정적으로 중요함을 간파했다. 이 생산수단을 소유하고 있는 유산자 계급은 소유자라는 이유로 작업장과 기계, 토지 등 경제적 핵심 요소들을 제 마음대로 운영하고 통제한다. 그 결과 노동 과정은 단순히 생산 과정인 것이 아니라, 착취자들이 생산자들의 노동으로부터 잉여노동을 뽑아내는 착취 과정이 되고 만다. 생산하는 노동자들이 계속 일할 수 있게 하는 최소한의 대가(가령 임금)를 뺀 나머지(가령 이윤)를 유산자들이 독점하게 된다. 일하는 사람들은 노동 과정에 대한 통제권을 잃게 되며, 자신이 만들어 낸 생산물인데도 최소한만 분배받는다. 그에 따라 착취 계급과 일하는 피착취 계급 사이의 계급 투쟁이 원시 공산제 이후 인류 사회를 규정해 온 역사라고 마르크스는 결론을 내렸다. 결국 “빵을 달라!”는 1789년의 노동자 민중의 외침은 모든 생산수단을 노동자 민중의 공동 소유로 전환시키는 사회주의로 뻗어 나갈 수밖에 없다는 최종 결론에 도달했다. 단지 ‘빵’이라는 구호가 지금은 ‘정당한 노동의 대가를 달라! 일자리를 달라!’라는 구호로 표현만 바뀌었을 뿐이다. 이처럼 자본주의의 현실이 근본적으로 바뀐 것이 없고, 바뀔 수도 없다면, 이 자본주의의 현실 비판을 반영하고 있는 의식 즉, 마르크스주의 또한 근본적으로 바뀔 수 없고, 바뀔 이유도 없다. 왜 지배 계급은 유물론을 두려워하는가? 지배 계급은 “유물론은 물질적 가치를 중시하고, 관념론은 정신적 가치를 중시한다”면서 유물론을 저급한 것으로 매도한다. 그러나 유물론이 의식의 가치를 무시한다는 것은 전혀 진실이 아니다. 유물론은 단지 ‘존재(물질)가 의식에 선행한다는 점’, 따라서 ‘인간의 의식을 해명하기 위해서는 그 의식이 발 딛고 있는 현실(물질과 물질의 운동)을 주의 깊게 살펴야 한다’는 점을 말할 뿐이다. 가령 우리가 컵이라는 의식을 갖게 되는 것은 우리 눈앞에 컵이라는 물질적 실체가 먼저 존재하고 있기 때문이지, 우리가 컵이라는 의식을 갖고 있기에 컵이 앞에 존재하게 되는 것은 아니다. 노동자들이 계급 투쟁 사상과 착취에 대한 의식을 갖게 되는 것도 바로 현실에 ‘계급 대립’과 ‘잔인한 착취’가 존재하기 때문이다. 유물론은 딱 거기까지만 주장한다. 그 뒤 유물론은 의식과 정신의 가치를 인정한다. 이러한 객관적 현실을 옳게 반영하는 의식이라면, 그 의식은 옳다. 그리고 이 올바른 의식이 현실을 변혁하고 세계를 전진시키는 것일 때, 이 의식은 ‘물질적 힘’으로 전화한다. 오히려 마르크스주의는 이러한 혁명적 의식(혁명적 사회주의 의식)에 결정적 의미를 부여한다. 지배 계급이 유물론을 제 맘대로 왜곡시키면서 유물론의 확산을 가로막는 이유는 무엇인가? 자본주의 사회를 규정하는 노동자 계급과 자본가 계급으로의 분열, 그리고 이 분열에서 자라나는 계급 대립을 감추기 위해서다. 그래서 수많은 노동자들, 젊은이들이 자본주의 착취 제도에서 자신을 짓누르는 고통의 진정한 근원을 발견하고 단결해 투쟁에 나서는 것을 차단하기 위해서다. 하지만 더 중요한 이유가 있다. 마르크스는 자본주의가 치명적인 한계에 도달할 수밖에 없으며, 나아가서 자본주의 체제를 극복할 물질적 토대를 자본주의 스스로 창조하고 있음을 밝혔다. 나날이 긴밀하게 서로 연결되고 있는 사회적 생산력, 이 사회적 생산력이 토해 내는 혁명적 노동자 계급이 바로 그 물질적 토대다. 그 점 때문에 자본가 계급은 유물론을 저주할 뿐만 아니라 이 유물론이 토해 낸 혁명적 사회주의 앞에서 벌벌 떨게 된다. 자신을 휘감고 있는 이 부조리하고 고통스러운 현실을 근원적으로 탐구하고, 그로부터 진정 해방될 수 있는 길을 찾고자 하는 사람들이라면, 유물론을 두려워할 이유가 없다. 마르크스주의를 향한 길을 떠나야 하는 이유 중 하나다. 4. 변증법: 세계는 변화한다 지배 계급이 지배를 유지하는 결정적인 수단 중 하나는 기존 체제를 결코 바꿀 수 없는 영원한 체제로 사람들이 여기게 하는 것이다. 즉, 세상을 고정불변한 것으로 보게 한다. 이를 위해 모든 지배 계급은 다양한 세뇌, 교육 장치를 가동했고, 그런 생각을 정당화하는 다양한 이론과 사상을 발전시켜 왔다. 동양의 봉건 체제는 유교와 같은 사상을 보급함으로써, ‘충’의 사상 즉, 임금과 백성으로 신분이 나뉘는 것을 영원히 정당하고 윤리적인 것으로 만들고자 했다. 동서고금을 막론하고, 종교는 ‘변하지 않는 신의 섭리’를 앞세우면서, 대중이 능동적 의지를 갖고 무언가를 바꿀 수 있다는 희망을 차단해 왔다. 자본가 계급도 마찬가지다. 오히려 자본가 계급은 노동자 계급의 혁명적 활력을 거세하기 위해 자본주의 체제는 영원불멸하다는 관념을 대중 속에 불어넣는 작업에 집요하게 매달려 왔다. 모든 인간은 이기적이고, 이것은 변하지 않는 본성이므로, 자본주의는 절대 없어지지 않는다고 교육해 왔다. 시장 상품경제 속에서 힘없고 고립된 개인들은 경쟁에서 벗어날 수 없는 무기력한 소모품에 불과하다고 믿게 만들어 왔다. 그렇지만 자본가 계급이 아무리 발버둥 쳐도 부정할 수 없는 사실들이 있다. 가령 과학과 기술의 변화 발전이다. 이에 대해서는 자본가 계급도 인정하며, 오히려 앞으로의 변화 발전 속도는 더욱 가속할 것이라고 주장한다. 과학과 기술의 발전 자체는 자본주의 체제를 직접적으로 위협하지는 않기 때문이다. 그러나 사회 발전에 대해서는 얘기가 달라진다. 사회가 근본적으로 변화할 수 있음을 인정하는 것은 자본주의 또한 영원불멸하지 않고 혁명적으로 타도될 수 있음을 인정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물론 자본가 계급도 어느 정도의 사회 변화는 인정할 수밖에 없다. 노예제에서 봉건제로, 봉건제에서 자본주의로의 변화는 부정할 수 없는 인류의 역사이기 때문이다. 자본주의 사회는 더 이상 임금과 백성으로, 영주와 봉건 농노로, 노예주와 노예로의 분할을 인정하지 않는다. 그러나 딱 거기까지다. 자본가 계급은 자본주의에 도달하는 역사적 과정에 대해서만, 혁명적 변화를 인정한다. 자본주의에 이르면, 영원불변한 고정성이 작동한다는 것이다. 자본가 계급의 이런 위선과 사기에 맞서, 마르크스는 “모든 사물은 변화하며, 고정된 것은 아무것도 없다”는 변증법 사상을 대변했다. 그리고 이 변증법 사상을 유물론과 결합해, 변증법적 유물론을 정식화했다. 나아가서 이 변증법적 유물론을 사회에 적용해, 자본주의의 붕괴 불가피성과 새로운 사회주의 사회 탄생의 역사적 필연성을 증명했다. ‘인간의 변하지 않는 이기적 본성’ ─ 완전한 허구 부르주아 경제학자들은 노예제와 봉건제는 이기적인 인간의 본성과 위배되는 경제 체제였다고 말했다. 반면 자본주의 시장경제는 이기적 본성에 조응하면서, 이 본성을 활용해 경쟁의 활력을 높여 사회적 자원을 효과적으로 사용함으로써 경제 발전을 이룩할 수 있는 체제이므로 영원하다고 주장해 왔다. 하지만 인류의 역사를 과학적으로 추적해 보면, 인간의 본성이 이기적이라는 주장은 완전히 거짓말이다. 자본주의 사회보다 비교할 수 없을 만큼 오랜 기간 지속됐던 원시 공산제 사회에서는 이기심 자체가 존재하지 않았다. 가령 지금까지도 극소수 부족으로 남아서 원시 공산제 사회의 흔적을 유지해 오고 있는, 아메리카 대륙의 원주민인 모히칸족의 사전에는 원래 ‘나’라는 단어가 존재하지 않았다. 오직 ‘우리’라는 단어만 존재했다. 공동체적 소속감이 개인을 압도했고, 사적 소유권이 성립하지 않았던 상황을 반영한 결과였다. 물론 이처럼 ‘개인’이라는 의식 자체가 없었던 모히칸족의 모습은 자본주의보다 낙후한 과거 사회의 모습을 보여 준다. ‘우리’와 함께, ‘나’라는 의식이 탄생한 것은 분명 인류의 거대한 역사적 진보의 결과물이었다. 그러나 어쨌든 지금의 논의에서 분명한 사실이 있다. 인간이 변하지 않는 이기성이라는 본성을 갖고 있다는 주장은 역사적 사실에 전혀 들어맞지 않는다. 인간의 속성 안에 이기성이 들어오게 된 것은 사회의 오랜 역사적 변화 발전의 결과물이었다. 생산수단에 대한 사적 소유가 생겨나면서, 특히 자본주의가 확대되면서 나타났다. 게다가 오늘날 사회에 존재하는 인간의 속성에 이기성만이 있는 건 아니다. 홍수나 화재 같은 재난 상태에서 발휘되는, 자신의 목숨을 내놓으면서까지 타인을 구하려는 숭고한 연대성도 우리는 자주 접한다. 인간의 속성은 끊임없이 변한다. 이 속성은 일차적으로 주어진 사회 체제에 의해 좌우된다. 이 사회 체제 속에서 새로운 변화의 요소가 성장하면 그에 발맞춰 인간의 속성에도 혁명적 변화가 시작된다. 이미 그 변화는 자본주의 심장부에서 시작되고 있다. 노동자 계급의 단결 속에서 말이다. 길어지는 불황과 수시로 위협을 가하는 공황 앞에서, 무한대의 이기적 경쟁을 찬미하는 자본주의 체제가 과연 인류에게 더 이상 유용한 선택인지에 대한 질문이 커져 가는 상황에서 말이다. 헤겔 넘어서기 변화 발전을 자본주의에 한해서만 인정하는 자본가 계급의 모습은 철학에서도 모습을 드러냈다. 바로 헤겔철학이다. 헤겔은 법을 포함해 인류의 정신적, 사상적 발자취를 탐구했다. 당연히 인류 사회의 변화는 이 정신적 영역에도 각인돼 있었다. 헤겔은 이 변화의 원리를 과학적으로 탐구했고, 그 결과 변증법을 정식화할 수 있었다. 사물의 변화 발전의 법칙을 일반화해서 정식화한 양질 전화의 법칙, 부정의 부정의 법칙, 대립물의 통일과 투쟁의 법칙은 헤겔에 의해 정식화됐다. 이런 정식화가 가능했던 것은 헤겔이 살았던 시대가 급격한 변화를 맞은 시기였기 때문이었다. 봉건제가 저물고 자본주의가 시작되고 있는 급격한 전환의 초입부였고, 프랑스 혁명 시대였으며, 과학과 기술의 발전이 철학에도 영향을 미치는 시기였다. 이처럼 변화를 도외시할 수 없는 격변기 상황이 헤겔철학을 잉태했다. 하지만 헤겔철학은 대단히 모순적이었다. 한편으로 헤겔철학은 세계의 끊임없는 혁명적 변화에 대한 인정을 핵심으로 하는 변증법에 내재한 혁명적 측면을 반영했다. 그러나 다른 한편으로 헤겔철학은 이러한 혁명적 변화를 오직 헤겔철학에 도달하는 역사적 과정에서만 적용하고 인정했다. 헤겔철학 그리고 이 철학에 근거한 당시 독일 절대왕정의 법률에 도달하면, 변화 발전은 끝나고 이제 ‘완성’ 즉, 변하지 않는 고정성이 작동한다는 것이다. 이것은 완전히 보수적인 입장이었다. 청년 헤겔학파에 속했던 마르크스는 헤겔철학의 이중성 가운데 전자의 혁명적 측면에 주목했고, 후자의 보수성에 맞서 싸웠다. 마르크스는 헤겔 변증법의 혁명적 결론을 일관되게 밀고 나갔다. 도착지는 어디였는가? 마르크스는 《헤겔 법철학 비판》에서 헤겔 이전의 사상, 법과 마찬가지로, 헤겔의 사상과 그에 기초한 당시 독일의 절대왕정 체제의 법도 ‘일시적’이며, 영원한 변화의 물결 속에서 ‘넘어서야 하는’ 대상임을 밝혀냈다. 마르크스는 당시 독일의 법, 즉 절대왕정 체제에 맞선 투사가 됐다. 그뿐만 아니라 마르크스는 이제 막 역사의 무대에 올라오고 있던 신흥 자본주의 체제에 맞선 투쟁으로까지 변증법을 확장했다. 마르크스는 자본주의 사회가 잉태한 모순 즉, 변화의 씨앗을 과학적으로 탐구했다. 그는 《자본론》에서 자본주의 사회가 진보적인 신흥 체제에서 낡은 반동적 체제로 전환하고 있으며, 이런 전환은 자본주의를 철폐하고 사회주의가 수립되는 방향으로 지속적으로 이어질 것임을 과학적으로 논증했다. 5. 마르크스주의 철학의 탄생, 변증법과 유물론의 결합 헤겔이 자신의 사상을 집대성한 것은 《법철학》을 통해서였다. 그는 법의 역사적 변화 과정을 따라, 자신이 발견한 변증법을 가장 완전무결한 형태로, 구체적으로 전개했다. 그러나 마르크스는 스승 헤겔을 그대로 따를 수 없었다. 헤겔의 변증법은 뒤집어진 변증법이었고, 그 때문에 여러 지점에서 불완전하고 뒤틀릴 수밖에 없었기 때문이다. 헤겔은 ‘절대정신(이념)’이라는 관념으로부터 출발했다. 그것으로부터 법, 정치 체제, 경제적 토대로 순차적으로 이어지는 사회가 모습을 드러냈다. 하지만 사회의 진정한 모습은 그 반대였다. 경제적 토대가 정치적 상부구조를 탄생시키고, 이 정치적 상부구조 속에 법과 사상, 철학이 자리 잡았다. 바로 이것이 유물론적 접근이고 현실에서 운동이 전개되는 객관적 양상이었다. 현실이 운동하므로 그것의 그림자도 운동한다. 그런데 헤겔은 현실의 운동에 주목하는 대신, 그림자의 운동에 주목했고, 그림자의 운동으로부터 거꾸로 현실의 운동을 끌어냈다. 이처럼 헤겔철학은 존재와 의식, 실체와 그것의 그림자가 전도된 관념론이었다. 하지만 사회의 경제적 토대가 운동하기에 그 토대 위에 놓인 정치적 상부구조인 그림자 또한 그것을 따라 운동할 수밖에 없다. 헤겔은 현실과 그림자, 토대와 상부구조를 혼동했지만, 끊임없이 운동하는 역사적 맥락에서 그림자(법, 철학)를 검토했기에 그림자의 운동에 반영된 현실의 운동 법칙을 드러낼 수밖에 없었다. 마르크스는 헤겔이 그림자의 운동에 대한 분석을 통해 정식화한 사물의 운동 법칙 즉, 변증법을 받아들였다. 그러나 마르크스는 머리와 발이 거꾸로 서 있는 헤겔철학을 완전히 뒤집었다. 여기서 마르크스는 포이어바흐로부터 영향을 받았다. 그러나 헤겔에 대해서와 마찬가지로, 스승 포이어바흐 철학의 한계 또한 극복했다. 포이어바흐는 물질적 토대로부터 의식을 설명했지만, 그가 토대로 했던 물질은 사회의 경제적 토대, 그리고 이 경제적 토대에서 이뤄지는 생산을 둘러싼 인간의 사회적 관계가 아니라 이로부터 분리, 고립된 개별 인간이었다. 그는 이런 ‘개별 인간’이 놓여 있는 토대로부터 여러 의식을 설명했다. 그러나 포이어바흐가 상정했던 그러한 ‘개별 인간’은 현실에서 결코 존재하지 않는다. 모든 인간은 주어진 경제적 관계 속에서 타인들과 사회적 관계를 맺으며, 그 속에서 살아간다. 모든 개별 인간의 윤리, 취향, 취미, 생각 등을 그가 관계를 맺고 있는 수많은 타인들 즉, 사회적 관계 속에서 접근하지 않는다면, 그렇게 남겨진 ‘개인’이라는 것은 완전히 허상일 수밖에 없다. “포이어바흐는 ‘종교적 심성’ 그 자체가 하나의 사회적 산물이라는 것을, 그리고 그가 분석한 추상적 개인이 사실은 일정한 사회 형태에 속해 있다는 것을 보지 못했다.(마르크스, 《포이어바흐에 관한 테제》)” 그래서 포이어바흐의 유물론은 왜곡될 수밖에 없었고, 인간의 의식을 제대로 설명하는 도구가 될 수 없었다. 당연히 헤겔철학을 넘어설 수도 없었다. 특히 사회에 발을 딛고 살아가고 있는 억압당하는 노동 인민에게 현실적 탈출구를 제공할 수도 없었다. 마르크스는 유물론과 변증법이 서로 분리돼 대립함으로써 발생하는 모순과 부조화, 한계를 결합시킴으로써 해결했다. (비록 정치적 상부구조가 경제적 토대에 반작용을 가할지라도) 경제적 토대가 정치적 상부구조를 탄생시키고, 이 정치적 상부구조 속에서 법과 사상, 철학이 자리 잡게 된다는 것이 마르크스의 사회와 역사에 대한 분석의 결론이었다. 이러한 철학적 결론은 자본주의 사회를 역사적, 구체적으로 분석함으로써 제대로 전개될 수 있었다. 관념론자였던 헤겔이 그것을 시도한 무대가 법철학이었다면, 유물론자인 마르크스가 그것을 시도한 무대는 자본주의 경제 분석이었다. 《자본론》을 통해 마르크스는 자본주의 체제가 어떻게 역사적으로 탄생했고, 자신을 매장할 무덤을 만들고 있는지, 그리고 자본주의의 경제적 토대로부터 어떻게 자본주의 정치 체제와 법, 이론들이 탄생하고 있는지 구체적으로 다룬다. 마르크스의 변증법적 유물론은 어디에 있는가? 바로 《자본론》에 가장 체계적이고 구체적인 형태로 서술돼 있다. 형식논리학 vs 변증법 형식논리학과 변증법의 차이를 잘 보여 주는 사례가 있다. 바로 스냅 사진과 동영상이다. 부산에서 서울로 달리는 마라톤 주자를 떠올려 보자. 이렇게 달리고 있는 주자의 위치를 설명할 수 있는 방법은 무엇일까? “주자가 지금 어디에 있는데, 어디를 향해 달리고 있다”는 식의 설명 외에는 불가능하다. 운동하고 있는 그의 위치는 고정된 것이 아니라 끊임없이 변화하고 있기 때문이다. 이 마라톤 주자를 스냅 사진으로 찍는다면 어떤 일이 일어날까? 스냅 사진 속의 마라톤 주자는 ‘정지’해 있다. 그러므로 우리는 콕 집어서 그의 위치를 정확히 말할 수 있다. 하지만 이 마라톤 주자가 끊임없이 움직이는 상태, 즉 운동하는 상태라면 이 스냅 사진은 그의 움직임을 제대로 보여 주지 못한다. 동영상만이 끊임없이 운동하는 마라톤 주자의 실제 모습을 보여 줄 수 있다. 철학에서 형식논리학은 이 ‘스냅 사진’에, 변증법은 ‘동영상’에 비유할 수 있다. 만일 우리가 어떤 사물을 변화 속에서, 운동 속에서 포착하고자 한다면, 변증법이 필요하다. 형식논리학은 이 변화를 반영하지 못하며, 사물을 고정불변한 것으로 취급하기 때문이다. 형식논리학을 대표하는 두 명제는 ‘동일률’과 ‘모순률’이다. 동일률의 예를 들면, “나는 나다.”, “책상은 책상이다.” 등이다. 수학적으로 표현하면, ‘A=A’라는 것이다. 따라서 같은 것을 두고서 “나는 내가 아니다.”, “책상은 책상이 아니다.”라고 말한다면, 이 두 의견은 모순되기에 양립할 수 없고 틀렸다는 것이다. 수학적으로 표현하면, “A=A가 아니다.”는 것은 틀렸다는 뜻이다. 이것이 모순률이다. 그러나 스냅 사진처럼, 어느 한순간의 정지된 것처럼 보이는 모습을 찍는 것이 아니라 긴 역사적인 운동 과정, 변화 과정을 찍고자 한다면, 동일률과 모순률은 단박에 한계를 드러낸다. 열일곱 살 고등학교 1학년 때의 나와 예순 살 환갑의 나는 과연 같을까? 아니면 이 사이에는 역사적 변화가 일어나니 서로 다른 나일까? 육체적인 측면만이 아니라 가치관, 세계관, 취향 등의 측면에서 두 ‘나’는 과연 같을까? 부모님에게 용돈을 타 쓰는 열일곱 살 나와 손주에게 용돈을 주는 예순 살의 나는 과연 같은 존재일까? 시간의 길이를 더 늘려 보자. 오늘 내가 앉아서 커피를 마시고 있는 이 책상은 200년 후에도 책상일까? 아마 200년 후에 이 책상은 썩거나 쓸모가 없어 쓰레기장으로 보내진 뒤, 땔감으로 쓰여 이미 사라졌을 수 있다. 더 이상 책상이 아니라 숯으로 변해 버린 것이다. 결국 형식논리학은 운동하고 변화하는 사물을 어느 특정 시점에서 고정된 것으로 취급했을 때만 유효하다. 반면 사물의 운동과 변화에 주목한다면, 우리는 변증법을 채택해야 한다. 변증법은 동일한 사물에 대해, 변화와 운동의 측면에서 접근한다. “‘오늘의 나’는 ‘내일의 나’와 다르다.”, “나는 살아 있지만, 동시에 나는 죽어 가고 있다.”, “오늘의 책상은 미래에는 책상이 아닐 것이다.”, “책상은 책상임과 동시에, 썩고 유행에 뒤처져 숯으로 변하고 있다.” 등처럼 말이다. 지배 계급은 왜 형식논리학에 집착할까? 그리고 왜 변증법을 거부할까? 그 이유는 간단하다. 변증법은 오늘의 사물이 내일에는 바뀔 수 있음을 명료하게 보여 주기 때문이다. 오늘의 자본주의 착취 체제가 영원불멸하기를 꿈꾸며 “이대로!”를 외치는 자본가 계급은 아직 충분히 각성하지 못했고 자본주의를 타도할 생각에 이르지 못한 노동자 계급의 현 상태가 그대로 지속되기를 희망할 것이다. 또한 그들은 노동자 계급이 미래의 혁명적 변화의 가능성을 믿지 못해 자포자기하면서 자본주의 착취에 순응하기를 간절히 희망할 것이다. 반면 노동자 계급에게 변증법은 희망과 용기, 확신을 불어넣는다. “노동조합에 가입하고 파업에 나서 변화하고 있는 ‘어제의 동료’는 ‘내일의 동료’와는 분명 다를 것이다.” 바로 이런 변증법적 정신 즉, 변화 발전의 정신에 입각해, 선진 노동자들은 노동조합에서 파업을 준비한다. “파업 투쟁에 나서고 있는 ‘오늘의 동료’는 자본주의 체제에 맞서야 한다는 점을 자각하는 ‘내일의 동료’로 변화할 것이며, 언젠가 노동자 혁명의 ‘주인공’이 될 것이다!” 바로 이런 변증법적 정신을 바탕으로 해서 사회주의 노동자들은 노동조합 속에서 활동한다. 반면 자본가 계급은 ‘절대 세상은 변하지 않고 어제의 임금노예는 내일도 임금노예로 남아 있을 것이다.’라는 철학으로 노동자의 정신을 물들이려 노력한다. 하지만 자본가 계급의 실천은 자신이 유포하는 고정불변의 철학을 거역한다. 그들은 4차 산업혁명의 파도처럼 끊임없는 변화 속에서 살아남기 위해서는 더 열심히 일하고, 기술을 혁신하며, 더욱 순종해야 한다고 요구한다. 그들은 아무리 강력한 노동조합 앞에서도 좌절하지 않는다. 그들은 “오늘의 민주노조는 내일의 어용노조로 바뀔 수 있다!”는 확신을 가지고 민주노조 파괴에 전력을 다한다. 상황은 분명하다. 자본가 계급의 이익에 도움이 되는 한, 자본가 계급은 변증법까지도 활용한다. 그러나 그들의 이익을 거역하는 한, 자본가 계급은 변증법을 거부하고 매장시키려 분투한다. 6. 전체와 부분, 그리고 총체적 연관 젊은이들이, 노동자들이 변증법 철학에 익숙해야 하는 이유는 그것이 현재의 자본주의 체제를 새로운 체제로 대체하는 투쟁의 무기가 될 수 있기 때문이다. 우선 변증법은 사물들의 전체적 연관 속에서 개별적 사물을 이해하고 분석할 수 있는 힘을 불어넣어 준다. 변증법의 핵심인 운동과 변화는 고립돼 일어나지 않는다. 수많은 사물들이 맺는 무수한 관계 속에서 운동과 변화가 일어난다. 역으로 운동과 변화는 사물들 사이의 관계를 재구성해 낸다. 따라서 사물의 운동을 인식하려면 우선 사물의 전체적 연관에 주목하라고 변증법은 가르친다. 이러한 전체적 연관 속에서 상황을 접근할 때 현재의 상황이 왜 발생했고, 어떻게 극복할 수 있는지에 대한 분명한 인식에 도달할 수 있다. 가령 지금껏 한반도에서 일어났던 여러 사건들은 전체 세계 자본주의, 즉 제국주의 질서 속에서 접근해야만 옳게 이해할 수 있고, 미래의 전망을 예측할 수 있으며, 능동적으로 대처할 수 있다. 한반도에서 발생하는 전쟁 위험들은 단지 남북 지배자들 사이의 대립이 아니라, 한·미·일 제국주의 세력과 중국 제국주의 사이의 대립에 뿌리를 두고 있다. 더 깊이 분석해 보면, 이러한 제국주의 대립의 뿌리에는 주요 강대국 대자본가들의 상호대립적인 경제적 이해관계가 도사리고 있다. 미국 제국주의와 중국 제국주의 사이의 갈등, 대립이라는 전체적 연관 속에서 남북문제를 바라보면 한반도에서 진정한 평화를 이룩하기 위해서는 남북 노동자 민중의 단결, 나아가서 세계 노동자 민중의 단결이 반드시 필요하다는 점을 이해할 수 있다. 이렇게 전체적인 연관 속에서 사건이나 상황을 바라볼 때 비로소 우리는 ‘부분’을 정확히 분석하고, 해법을 모색할 수 있다. 조합주의를 넘어서는 데서도 변증법은 사고의 방법을 제시한다. 사물의 전체적 연관을 고민한다면, 모든 노동자들은 자신을 덮치는 자본가들의 공격과 정부의 억압에 맞서 승리하기 위해 사업장의 경계를 뛰어넘어 모든 노동자가 단결해야 한다는 점을 인정하게 될 것이다. 게다가 전체로서 볼 때 어느 개별 자본도 지속적인 승리를 구가할 수 없는 무한대의 경쟁 체제가 자본주의 체제이므로, 자본의 위기가 덮칠 가능성은 갈수록 높아지고 이에 따라 구조조정, 파산위협 등에 맞선 단단한 준비가 필요하다. 그것은 개별 노동조합 차원에서는 성공적으로 수행할 수 없다. 전체 노동자의 연대가 반드시 필요하다. 젊은이들 또한 마찬가지다. 변변한 정규직 일자리가 없어 고통을 겪는다면, 그 고통의 이유를 따져 봐야 한다. 사물의 전체적 연관을 고민하지 않는다면, 이런 고통은 전적으로 자신의 불행, 혹은 능력과 노력 부족 탓으로 돌리게 된다. 그러나 사회 전체의 연관을 따져 본다면 얘기는 달라진다. 왜 일자리가 부족한가? 더 낮은 임금과 더 높은 노동강도를 강요해, 더 많은 이윤을 얻기 위한 자본가들의 이해 때문이다. 그리고 이 자본가들이 작업장의 대부분을 소유하면서, 일자리를 좌우하고 있기 때문이다. 시선을 더 확대한다면, 이런 고통이 자신만을 덮치고 있는 것이 아님을 알게 된다. 수많은 청년들이 이런 고통에 신음하고 있다. ‘혼자’서는 계란으로 바위 치기지만, 이런 사회적 역량을 단결시켜 자본주의에 맞서 투쟁함으로써 양질의 일자리를 만들어 낸다면 비참한 운명을 충분히 개선할 수 있다는 희망에 도달할 수 있다. 7. 물질의 운동 3대 법칙: 양질 전화, 부정의 부정, 대립물의 통일과 투쟁 변증법은 사물이 맺는 무한한 연관성 속에서 일어나는 운동을 일반적으로 분석할 수 있는 도구를 운동의 주요 법칙들을 통해 제시한다. 그 법칙들은 양질 전화의 법칙, 부정의 부정의 법칙, 대립물의 통일과 투쟁의 법칙인데, 이것들은 사물이 하나의 단계에서 다른 하나의 단계로 질적으로 이행하는 것을 분석하고 설명하며 예측할 수 있는 인식의 주요 도구들이다. 가령 이것을 소위 보수냐 진보냐 하는 대립구도에 적용해 보자. 보수파 지배 계급의 철학은 고정불변을 찬미하면서 변화에 대한 적대감을 드러낸다. 반면 개혁파 지배 계급의 철학은 일정한 변화를 요구한다. 하지만 개혁파 지배 계급의 경우에도 자본주의 착취 체제의 안정과 고도화를 향한 변화를 추구할 뿐이다. 개량주의자들은 적극적으로 변화를 앞세운다. 하지만 개량주의자들은 자본주의 사회 내에서 점진적인 양적 변화만을 인정한다. 그들은 이러한 양적 변화가 어느 시점에서는 질적 변화라는 사회의 혁명적인 변화로 이어지며, 또한 반드시 이어져야 한다는 점을 부정한다. 그러나 진정으로 변화를 인정한다는 것은 혁명적 변화까지 인정하는 것이다. 사물의 변화의 정점이자, 질적으로 도약하는 가장 거대하고 위대한 변화는 바로 혁명적 변화이기 때문이다. 이 혁명적 변화를 반영하는 법칙이 바로 “양적인 변화가 어느 지점에서 질적인 변화로 이행한다.”는 ‘양질 전화의 법칙’이다. 인간이 나이를 먹어 가면서, 아이에서 소년, 소년에서 청년, 청년에서 장년으로, 장년에서 노년으로 양적인 변화를 겪으며, 종국에는 죽음으로써 살아 있던 생명체에서 무생명체로 질적으로 변화한다. 마찬가지다. 자본주의 또한 이런 ‘양질 전화의 법칙’을 피할 수 없다. 자본주의에 대한 문제의식이 극소수 사람들에게 생겨나기 시작한다. 이런 문제의식은 노동자 투쟁이 확산하면서 점차 다수 대중에게 퍼져 나간다. 노동자들의 단결이 확대되고 투쟁력과 경험이 성장함에 따라, 이런 문제의식은 사회주의라는 새로운 대안을 향한 갈망으로 성장한다. 사회주의 운동의 성장은 자본주의에 대한 이러한 문제의식을 더욱 전면화하고 확고하게 만든다. 결국 이러한 문제의식의 양적 축적이 어느 단계에 이르러, 사회구성원의 압도적 다수인 노동자 계급에 의한 혁명이 일어난다. 이것이 바로 질적 도약이다. ‘대립물의 통일과 투쟁의 법칙’ 또한 이러한 혁명적 변화를 설명해 주는 소중한 도구다. 인간은 태어날 때부터, 산 것과 죽은 것이라는 대립물의 투쟁 속에 놓이게 된다. 우리 신체를 구성하는 세포의 일부는 죽어 가고, 일부 세포는 새롭게 탄생한다. 새롭게 탄생하는 세포의 수가 죽어 가는 세포 수를 능가할 때, 인간은 자라나고 성장한다. 그러나 그 반대가 되면, 인간은 점차 늙게 된다. 산 것과 죽은 것이라는 대립물의 투쟁에서 어느 시점이 되면, 죽어 가는 세포가 새롭게 탄생하는 세포를 압도하게 되고, 인간은 죽음이라는 질적 변화와 만나게 된다. 대립물 사이의 투쟁은 대립물의 통일 속에서 전개된다. 가령 자본주의 사회에서 노동자 계급과 자본가 계급은 대립물의 통일 속에 있다. 자본가는 생산수단을 소유하고 있지만, 노동자들의 노동 없이는 단 한 푼의 이윤도 뽑아낼 수 없다. 반면 노동자들은 노동력을 소유하고 있지만, 자본가의 생산수단을 활용해 노동하지 않으면 생계를 유지할 수 없다. 이처럼 자본주의 사회에서 노동자 계급과 자본가 계급은 상호 대립하면서도 서로 의존하는 사회적 관계를 맺고 있다. 자본주의 사회에서 임금과 이윤을 둘러싼 대립과 투쟁이 그 사례다. “너희가 우리가 원하는 것을 내놓지 않으면 우리도 일하지 않겠다.”라는 정신으로 전개되는 노동자 파업은 노동에 대한 자본가들의 의존성을 활용한 투쟁이다. 반대로 자본가는 생산수단(불변자본)에 대한 노동자들의 의존성을 활용해 사업장을 폐업하거나 공장 가동을 중단해 파업을 압박한다. 매우 격렬한 파업도 자본주의 사회 내에서는 어느 한도를 넘어서기 어려운 이유다. 그런데 변증법적 유물론에서 ‘대립물의 통일’이란 단지 상호의존성만을 다루는 개념이 전혀 아니다. 오히려 더욱 중요한 것은 대립과 적대적인 투쟁이다. 상호 대립하되 서로 의존하고 있는 두 대립물 사이의 투쟁이 계속 발전해 가다가, 결국에는 격렬한 상호 투쟁 속에서 낡은 것이 파멸하고 새로운 것이 승리하면서 상호의존과 함께 대립도 소멸하는 과정, 즉 대립물의 통일과 투쟁이라는 운동을 통해 모순이 극복되고 새로운 단계로 이행하게 되기 때문이다. 자본주의 사회 또한 이러한 대립물의 투쟁 속에 놓여 있다. 바로 자본가 계급과 노동자 계급 사이의 계급 투쟁이다. 자본주의를 탄생시키면서 신흥 지배 계급으로 올라선 자본가 계급은 부단히 자본을 축적하면서 노동자 계급을 끊임없이 배출해 낸다. 두 계급 사이에서는 임금과 고용, 노동조건을 둘러싼 부단한 투쟁이 일어난다. 초기에는 자본가 계급의 힘이 노동자 계급의 힘을 압도한다. 그러나 자본주의가 성장함에 따라 수적으로 압도적 다수가 되고, 사회적 생산의 대부분을 담지하며 전 세계적으로 단결해 나가는 노동자 계급의 힘도 성장한다. 노동자 계급은 더 이상 자본가들에 대한 의존성을 인정하지 않게 된다. 생산수단을 사회 공동의 재산으로 전화시켜 완전한 독립성을 획득하고자 한다. 어느 시점에 자본가 계급의 힘과 노동자 계급의 힘은 팽팽한 힘의 균형 상태, 즉 이중권력 상태로 이행한다. 혁명과 반혁명의 치열한 대립 끝에 힘의 우위를 점한 노동자 계급은 자본주의를 철폐하고, 사회를 지배하는 새로운 계급으로 떠오른다. 자본가 계급은 소멸한다. 이렇게 대립물의 한 축이었던 자본가 계급이 소멸하게 되면 대립물 사이의 모순도 마침내 마침표를 찍는다. 이것이 자본주의의 철폐다. 모든 지배 계급은 자신이 새로운 지배 계급으로 떠오르는 시점까지는 이러한 ‘대립물의 투쟁’을 인정한다. 가령, 프랑스에서 자본가 계급은 봉건 체제에 맞선 자신의 투쟁 역사를 찬미해 왔고, 혁명기념일까지 제정했다. 그러나 이 대립물의 투쟁이 이제 자신을 권좌에서 몰아내려는 단계까지 이르게 되자, 이렇게 부르짖는다. “이제 계급 투쟁(대립물의 투쟁)을 멈추자. 계급 투쟁은 야만적이다. 계급 협조를 통해 평화의 세상을 열자!” 그러나 마르크스주의는 선언한다. “계급 투쟁(대립물의 투쟁)은 역사발전의 원동력이다!” ‘부정의 부정의 법칙’은 이러한 혁명적 변화가 질적인 발전을 내포하고 있을 뿐만 아니라, 이 질적인 발전이 이뤄지는 역사적 과정이 무엇인지를 드러낸다. 자본가 계급을 극복하고 세상의 주인공으로 도약한 노동자 계급은 단순히 새로운 유형의 지배 계급을 만들어 낸 것일 뿐일까? 그렇지 않다. 자본가 계급을 부정하고 사회의 전면에 등장한 노동자 계급은 2차 부정으로 나아간다. 사회주의에서 공산주의(공동체 사회)로 전진함으로써 노동자 계급은 자신을 포함한 계급 일반을 제거해 버린다. 우선 생산수단을 전체 사회구성원의 공동 소유로 전환시킴으로써, 노동자 계급은 유산자와 무산자 사이의 구별을 없애 버린다. 모두가 (공동의) 유산자이면서도, 동시에 모두가 (누구도 생산수단에 대한 개인적 소유권을 주장할 수 없다는 점에서) 무산자다. 다음으로 이렇게 누군가가 누구를 착취할 이유도, 착취할 근거도, 착취할 힘도 없게 만듦으로써 타 계급을 억압하기 위해 존재했던 모든 국가 기구들이 존재 근거를 잃게 된다. 오직 ‘자유로운 생산자들의 의식적 공동체’만 남게 된다. 자본주의의 부정을 통한 사회주의의 건설, 사회주의의 부정을 통한 공산주의의 건설이라는 ‘부정의 부정’을 통해 인류 사회는 계급 사회에서 무계급 사회라는 질적 발전에 도달하게 된다. -
[그래, 다시 마르크스주의 연재#1] 왜 우리는 마르크스주의와 만나야하는가?모든 지배자들은 마르크스주의를 두려워했다. 그들은 거듭 마르크스주의의 종말을 선언했지만, 마르크스주의는 그때마다 거대한 생명력을 드러내며 부상했다. 2023년이 저물어 가는 오늘도 마르크스주의라는 이름은 모든 나라들에서 잊히지 않은 채 떠오르고 있다. 최근 미국에서 사회주의는 젊은이들 사이에서 상당한 지지를 얻고 있다. 이러한 열광은 2018년에 처음 발견되었으며 오늘날까지 계속되고 있다. 한국에서도 사회주의를 향한 거대한 열광은 1980년대 중반 이후 1990년대까지 터져 나왔다. 이러한 열광은 최근 잠시 수면 밑으로 가라앉았지만, 그럼에도 사회주의에 관심을 갖고 고민하는 사람들은 여전히 끊이지 않고 나타나고 있다. 이 글을 읽고 있는 당신도 그중 한 명이다. 왜 마르크스주의는 ‘죽은 개’가 될 수 없는가? 나아가 오늘날 노동자들이, 특히 젊은이들이 마르크스주의를 탐구하고 마르크스의 사상과 대화해야 하는 이유는 무엇인가? 마르크스주의의 출발 - 자본주의에 대한 단호한 규탄 마르크스주의를 잘 알지 못하는 사람들일지라도, 마르크스주의에 대해 갖고 있는 상식과 직관이 있다. 그것은 마르크스주의는 자본주의에 적대적이며 자본주의 철폐를 주장하는 급진적 사상이라는 점이다. 그렇다. 마르크스주의는 자본주의 체제가 일하는 사람들에게 전쟁과도 같은 비참한 상태를 강요하며, 인류의 미래를 위협하는 반동적인 체제라는 단호한 비판 정신에서 출발한다. 사회주의는 자본주의가 낳는 치 떨리는 폐해들에 맞서 싸우는 과정에서 그것을 극복하고 대체할 수 있는 과학적인 대안으로, 마르크스에 의해 발견됐다. ‘투사!’ 바로 이것이 사회주의가 마르크스라는 인물 속에서 탄생할 수 있는 뿌리였다. 하지만 마르크스가 처음부터 투사로 태어난 것은 아니었다. 마르크스를 투사로 만들고, 그럼으로써 사회주의 사상을 탄생시킬 수 있던 원천을 창조했던 것은 바로 자본주의 그 자체였다. “학문은 이기적인 쾌락이 되어서는 안 된다.”, “운이 좋아서 학문 추구에 전념하게 된 사람은 인류를 위해 자신의 지식을 사용해야 한다.” 마르크스가 즐겨 하던 말들이다. 그리고 마르크스는 이러한 삶의 가치관을 죽을 때까지 굳게 지켜 나갔다. 역사적으로 인류를 위해 학문을 하고자 했던 선량하고 훌륭한 청년은 많았다. 그런데 마르크스는 왜 자본주의에 맞선 열렬한 투사의 삶으로 나아갔을까? 그것은 그가 태어나고 살았던 사회와 깊이 연결돼 있었다. 마르크스가 살았던 시대 마르크스는 1818년 프랑스 국경에 인접한 독일의 도시 트리어에서 태어났다. 1842년 프로이센에는 시대에 뒤떨어진 절대주의가 만연해 있었다. 스물네 살에 〈라인신문〉에서 편집진으로 일하기 시작한 마르크스는 자연스레 정치적 저항을 펼쳤고, 사회의 다양한 문제들과 씨름했다. 당시 유럽에서는 산업혁명이 한창 진행되면서 기계제 대공업 생산이 밀려들고 있었다. 이러한 흐름은 공장 노동자들을 대규모로 탄생시켰고, 가난한 농민들을 임금노동으로 내몰았다. 마르크스는 슐레지엔 지역 방직공들의 봉기와 모젤 지방에서 포도를 재배하던 가난한 농민들이 받는 억압과 고통 등 노동자 민중의 비참한 삶과 대면했다. 그는 방직공들의 봉기를 전면적으로 지지했고, 그들의 민주적 권리 보장을 주장했다. 또한 사적 소유를 강화하는 새로운 법이 제정되면서 숲에서 땔감을 줍는 일마저 절도죄로 가혹하게 처벌받아야 했던 가난한 농민들의 권리를 옹호했다. 이렇게 가난한 노동자 민중과 연대하는 과정에서 마르크스는 ‘사적 소유권’ 즉, 자본가들의 재산 보호를 우선으로 하는 자본주의의 약탈성과 반인간성을 경험했고, 분노했다. 그는 저물어 가는 낡은 봉건적 지배 체제와 새롭게 떠오르는 자본주의 지배 체제 모두에 맞섰다. 두 체제 모두 가난한 노동 인민을 무자비하게 착취했고, 잔인하게 억압했기 때문이다. 그는 모든 지배 체제의 뿌리, 가난한 노동 인민이 겪는 고통의 뿌리에는 ‘토지와 기계, 작업장 등 생산수단에 대한 배타적, 독점적 소유’가 자리 잡고 있음을 발견했다. 지주와 자본가들은 이런 소유권과 이로부터 비롯되는 거대한 이익을 포기할 생각이 전혀 없었고, 오히려 이것에 저항하는 가난한 사람들을 악랄하게 공격했다. 당연히 그것에 대한 해결책은 ‘서로 사랑하자.’는 식의 관념적 호소가 아니라 ‘지배계급에 맞선 피지배계급의 투쟁’이었다. 만일 절대주의의 잔인한 억압이 없었다면, 그리고 신흥 자본가들의 이윤을 위해 희생되고 짓밟힌 노동자들과 가난한 농민들의 비참한 상태가 없었다면, 마르크스의 이론과 실천은 결코 저항적이지 않았을 것이다. 그는 헤겔과 포이어바흐처럼, 관념철학의 상아탑에 갇힌 평범한 철학자가 됐을지도 모른다. 그의 뇌가 자본주의를 타도해 새로운 세상을 건설해야 한다는 혁명적 사상을 토해 내는 일도 없었을 것이다. 마르크스를 마르크스주의의 창시자로 만든 것은 바로 반동적 사회 즉, 자본주의 자체였다. 만일 마르크스주의가 괴물이라면, 이 괴물은 모순으로 가득 찬 당시의 반동적 사회 체제가 잉태한 것이었다. 이것은 “왜 마르크스주의는 ‘죽은 개’가 될 수 없는가?”에 대한 대답을 찾는 데서 중요한 실마리다. 자본주의 사회에서 나타나는 착취, 억압, 부정의, 불평등, 전쟁, 바로 이것들이 마르크스주의를 잉태했을 뿐만 아니라, 마르크스주의에 대한 관심을 끊임없이 불러오는 공통의 원천이다. 이 원천이 사라지지 않는 한, 마르크스주의와 만나야 할 필요성은 결코 사라지지 않을 것이다. 이 글은 바로 그 점에 대해 다룰 것이다. 1부. 알쏭달쏭 마르크스주의 1. 자본주의, 괴물이 되고 있다 마르크스가 제시한 이론이 21세기 세계와 한국 사회에 어떤 깨달음을 줄 수 있을까? 마르크스가 살았던 시대와는 너무 많은 것들이 변해 이제 마르크스주의는 쓸모없는 이론이 되지 않았을까? 마르크스주의에 대해 알 필요가 없다고 주장하는 사람들이 흔히 제시하는 이야기다. 과연 그럴까? 브라질에서는 총기 사고로 매년 3만 7,000명이 총에 맞아 죽는다. 인구 10만 명당 19명꼴이다. 이를 두고 가히 전쟁과도 같은 상태라 부를 수 있다면, 한국은 정말 전쟁 중이다. 하루에 43명, 연간 1만 5,000명, 매년 인구 10만 명당 무려 31명이 자살한다. 한 해 평균 2,000명 이상이 산업재해로 사망한다. 이것은 코로나가 정점이었던 2020년 한 해 동안 한국에서 코로나19로 사망한 900명을 훨씬 넘는 숫자다. 수많은 사람들이 전쟁과도 같은 삶을 살고 있음을 방증하고도 남는다. 하지만 자본가들에게 한국을 포함한 자본주의 체제는 전쟁터가 아니고, 안전한 천국이다. 미국의 억만장자인 데이비드 게펜은 코로나가 절정으로 치달으며 모두 불안에 떨고 있던 2020년 3월, 인스타그램에 “바이러스를 피해 그레나딘 제도에서 자가 격리 중입니다. 모두 안전하길 바랍니다.”라는 글을 올렸다. 이 글과 함께 올라온 사진에는 바다 위에 떠 있는 요트를 탄 그의 모습이 담겨 있었다. 요트는 7500억 원짜리 호화 요트였다. 마르크스가 태어나서 자신의 사상을 발전시킨 시기와 그보다 약 200년이 지난 오늘날의 상황이 크게 다르지 않다. 마르크스가 과학적으로 분석한 자본주의의 본성은 조금도 변하지 않고 작동하고 있다. 자본가들과 노동자들 사이의 격차 즉, 불평등은 오히려 갈수록 커지고 있다. 국제구호단체 옥스팜이 2014년에 발표한 보고서에 따르면 전 세계 1% 안에 드는 부유층의 재산은 110조 달러(약 11경 7,183조 원)로, 가난한 인구 35억 명의 재산보다 65배나 많다. 이런 불평등 경향은 최근 10년 가까운 사이에 계속 증가하고 있다. 다보스포럼이 발표한 보고서에 따르면, 2022년 기준 전 세계 억만장자 2,668명의 재산은 코로나19 2년 기간을 거치면서 무려 5,300조 원이나 증가했다. 불과 2년 사이에 1인당 재산이 평균 2조 원이나 늘어난 것이다. 옥스팜 보고서에 따르면 2020년 3월 이후 2021년 12월까지 세계 최빈곤층은 매일 2만 명 이상 사망했지만, 세계 10대 부호의 자산은 2배 이상 늘었다. 이러한 불평등은 한국에서도 적나라하게 드러나고 있다. 2021년 기준, 한국에서 상위 10%가 보유한 부(재산)는 평균 12억 2,508만 원으로 전체 부의 58.5%를 차지한다. 반면 하위 50%는 평균 2,354만 원으로 전체 부의 5.6%에 불과해, 상위 10%와 하위 50% 격차가 52배 정도에 이른다. 이처럼 사회의 부 가운데 훨씬 많은 부분을 자본가들이 독점하면서, 그들의 권한은 모든 영역에서 커져 가고 있다. 그 와중에 세기말적 징후라고 하는 전쟁, 범죄, 도덕적 타락은 더욱 기승을 부리고 있다. 자본주의 체제는 절대빈곤을 해결했다는 것을 체제 정당화의 거의 유일한 알리바이로 제시한다. 그러나 그것마저도 흔들리고 있다. 세계적으로 실업률은 높은 수준을 이루고 있다. 일자리를 잃은 노동자들은 최소한의 인간적 삶마저 포기해야 한다. 국제구호단체 옥스팜의 2015년 발표에 따르면 전 세계 인구 9명 중 1명이 충분한 음식을 공급받지 못했고, 하루 1.25달러 미만의 소득을 올리는 이들이 10억 명 이상이었다. 2022년 옥스팜의 발표 내용은 더욱 어둡다. 이러한 빈곤층이 33시간마다 100만 명이나 늘어나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격화되는 자본주의 경쟁과 이윤율을 높이려는 자본가들의 잔인한 착취가 결합해, 더 많은 노동자들이 비정규직 상태로 내몰리고 있다. 언제든 실업자가 될 수 있다는 공포 때문에 수많은 젊은이들이 결혼과 출산을 기피한다. ILO(국제노동기구)의 2022년 11월 〈2022~2023 글로벌 임금 보고서〉에 따르면, 대부분의 중소득과 저소득 국가에서 일자리 숫자는 감염병 이전 일자리 수준에 비해 2% 줄었다. 더욱 심각한 문제는 고소득 국가까지 포함해, 새롭게 생겨나는 일자리들에서 불안정하고 저임금의 비정규직 일자리가 차지하는 비중이 늘고 있다는 점이다. ILO는 해당 보고서에서 글로벌 임금이 2022년 상반기에 실질적으로 0.9% 하락했다고 지적했는데, 이는 〈글로벌 임금 보고서〉를 발간하기 시작한 2008년 이후 최초의 하락 사례다. 이것은 가난한 나라들에만 해당하는 사례가 아니다. 보고서는 세계 임금노동자의 60%를 차지하는 G20 국가들로 범위를 좁힐 경우 월 임금 하락률이 2.2%에 달한다고 지적했다. 자본주의가 구세주로 삼는 과학과 기술의 발달도 해법이 되지 못하고 있다. 자본가들의 수중에 장악돼 이윤을 위해 작동하는 과학과 기술은 대규모로 일자리를 제거하고, 노동자들을 더 강력한 경쟁의 톱니바퀴 속으로 밀어 넣는 공포의 수단으로 작동해 왔다. 2016년 7월 보고서에서, ILO는 4차 산업혁명으로 앞으로 20년 사이에 아시아에서만 1억 3,700만 명의 노동자들이 일자리를 잃을 수 있다고 경고했다. 이와 같은 명백한 상황은 만인 대 만인의 무한대의 경쟁을 강요한다. 비참한 상태로 떨어지지 않기 위해, 노동자들만이 아니라 어린 학생들까지도 경쟁의 링에 올라야 한다. 이것은 인간의 안정감과 행복의 가장 중요한 원천 중 하나인 연대감을 파괴한다. 고립된 개인으로 내몰려 불안정해지고 행복감을 상실한 사람들은 자살의 늪으로 빨려들어 가고 있다. 고통에 절규하는 한국의 젊은이들 마르크스 이래 조금도 변하지 않았고, 오히려 마르크스가 규정한 그 잔인한 착취 본성을 더욱 철저하게 발현해 온 것이 자본주의다. 게다가 이 자본주의의 미래 또한 달라질 것이 없다. 그것을 가장 명확히 보여 주는 것이 한국 노동자계급 젊은이들이 현재 겪고 있는 삶이다. 세상을 확 바꿔야 한다는 생각은 이미 젊은이들의 가슴 속에 움트고 있다. 2015년 10월 한국과학기술원(카이스트) 미래전략대학원의 토론회 “한국인은 어떤 미래를 원하는가?”에서 발표된 조사 결과는 의미심장하다. 이 조사 결과에 따르면, 청년 42%가 원하는 미래에 대해 “붕괴, 새로운 시작”을 선택했다. 지속적인 경제 성장을 미래에 원하는 것으로 선택한 비율을 23%에 불과했다. 이런 결과는 이들의 조부모나 부모 세대가 젊었을 때와는 확연히 다르다. 조부모나 부모 세대만 하더라도, 그들이 젊었을 때 압도적 다수가 지속적인 경제 성장을 원하는 미래로 선택했다. 조부모, 부모 세대와 지금의 젊은 세대 사이에는 어떤 강이 흐르고 있는가? 과거를 지배했던 패러다임은 무엇이었는가? 첫째 낙수 효과 즉, 선성장 후분배에 대한 기대였다. 자본주의가 성장해 경제가 발전하면, 그 낙수 효과로 자본가들만이 아니라 가난한 노동자들도 혜택을 얻을 수 있어 더 나은 풍요로운 미래가 열릴 수 있다는 기대감 말이다. 이른바 “한강의 기적”으로 불리는, 박정희 시대의 엄청난 속도의 경제 발전은 그 낙수 효과를 증명하는 것으로 보였다. 조부모 세대들은 열광했고, 성장하는 자본주의를 포옹했다. 부모 세대에 이르자 이런 포옹에 금이 가기 시작했다. IMF 사태는 자본주의의 잔인한 야만성, 그리고 자본주의가 경제적 풍요의 박차가 아니라 장애물일 수 있다는 사실을 부모 세대에 각인했고 거대한 공포심을 불러왔다. 이러한 부모 세대의 공포감을 보면서 자랐던 지금의 젊은 층은 더 이상 자본주의를 격하게 포용하지 않는다. 오히려 갈수록 경제적 활력이 떨어지고 수시로 비틀거리는 자본주의의 야만성이 자신을 덮칠까 공포에 떨고 있다. 세월호 사태는 이 젊은 층에게서 자본주의에 대한 기대감을 뿌리부터 뒤흔들었다. 2022년 미국 퓨리서치센터의 여론조사 결과는 그 점을 적나라하게 보여 준다. 19개국을 대상으로 한 미래경제전망 설문조사에서 18세 이상 한국인 응답자의 60%가 자녀 세대의 경제형편이 부모 세대보다 어려울 것이라고 답했다. 그런데 이 수치는 미국 72%, 일본 82%에 비하면 그나마 나은 편이다. 둘째, ‘개천에서 용 나기’ 패러다임이었다. 허리띠를 조르고 열심히 노력하면, 또는 열심히 공부해서 좋은 대학에 진학하면 훨씬 나은 미래로 나아갈 수 있다는 기대감, 그래서 이 고통스런 노동자 계급의 삶을 벗어날 수 있다는 기대감이었다. 그러나 그런 기대감이 산산조각 나고 있다. 계층 이동의 통로는 갈수록 좁아지고 있으며, 학력 수준은 갈수록 집안의 경제 수준에 좌우되고 있다. 대학을 나오더라도 그들의 다수에게 닥치는 미래는 ‘청년 실업의 높은 벽’이다. 소위 좋은 대학을 나오고 경쟁에서 겨우 승리하더라도, 그들의 대부분은 운 좋게 얼마 안 되는 정규직 자리를 꿰찬 것에 만족해야 한다. 그러나 그들 부모 세대에서는 안정된 정규직 일자리는 고등학교까지 나와도 충분히 기대할 수 있는 것이었다. 세대를 거치면서 젊은이들의 삶의 기대치는 갈수록 악화하고 있다. 이런 상황은 전 세계적으로 나타나고 있다. 영국 〈파이낸셜타임스〉에 따르면, 18~33세 때의 고용 상황을 비교했을 때, 침묵의 세대(1946년 이전 출생), 베이비붐 세대(1946~1964년생), X세대(1964~1980년생)까지는 고용률이 80%에 이르지만, 1980년대 초반~2000년대 초반에 출생한 밀레니얼 세대의 경우 70% 수준에 머물고 있다. “세계를 변혁하라!”는 마르크스의 문제의식은 오늘날 젊은이들에게도 여전히 정당하다. 아니 더욱 절실하다. 마르크스 시대의 자본주의는 최소한 성장하는 성장하기라도 했다. 그러나 쇠퇴해 내리막길을 내달리는 것이 지금의 자본주의다. 그 내려가는 속도는 갈수록 빨라지고 있기에 인류, 특히 미래의 세대를 더욱 고통스럽고 위험천만한 상황으로 내몰 것이다. 2. 여전히 빛을 발하는 마르크스의 문제의식 마르크스주의의 문제의식의 핵심은 바로 나와 우리를 포위하고 있는 ‘사회 구조’를 정확히 과학적으로 해명하는 것이다. 자본주의는 항상 노동자를 비롯한 압도적 다수의 노동하는 사람들을 착취하는 계급 착취 체제인데, 이 착취는 갈수록 강화되고 그 결과 불평등 및 노동하는 사람들의 고통은 갈수록 커진다는 것이 그 해명의 결과물이었다. 마르크스의 사상은 마르크스 생전보다 오늘날의 현실에 더욱 유효하다. 당시에 출발 단계였던 자본주의는 오늘날 더 성숙한 단계에 이르렀다. 자본주의는 세계적으로 확장됐고, 자본주의가 토해 낸 노동자 계급은 더 거대해졌다. 그런데 자본주의의 착취적, 반동적 본질이 200년 동안 결코 변하지 않았다면, 오히려 더 확고해지면서 미래 세대의 삶을 짓밟고 있다면, 이 자본주의의 본질과 모순을 밝히는 마르크스의 사상은 다른 누구보다도 젊은 세대에게 절실한 가치가 된다. 이 사상은 단지 과거의 현실을 기록하는 것이 아니라, 결코 변하지 않을뿐더러 오히려 갈수록 현실에서 더욱 명확히 드러낼 수밖에 없는 자본주의의 본질을 파헤치고 있기 때문이다. 나아가서 이러한 자본주의의 운동 원리가 낳을 수밖에 없는 불가피한 미래의 방향을 추적하고 있기 때문이다. 1883년 마르크스가 세상을 떠났을 때 런던 하이게이트에서 열린 그의 장례식에는 불과 10여 명이 참석했다. 마르크스의 사상을 받아들이는 이들이 당시로는 그만큼 많지 않았던 것이다. 그 뒤 자본주의가 마르크스의 과학적 분석의 정당성을 현실에서 스스로 드러냄으로써, 나아가서 실업과 공황, 세계대전의 폭풍우 속에서 자본주의를 넘어서는 대안을 인류가 갈구함으로써, 마르크스의 사상은 전 세계의 노동자들과 젊은이들 속으로 널리 퍼져 나갔다. 오늘날도 마찬가지다. 만성화된 불황, 높아지는 실업률, 격화되는 경쟁, 갈수록 앞이 안 보이는 불확실한 미래, 전쟁의 위협 등이 젊은 세대를 칭칭 휘감고 있다. 다른 누구보다도 ‘오늘날’의 젊은이들 속에서 마르크스주의는 가장 거대한 생명력을 발휘할 것이다. 그리고 그것은 이미 시작되고 있다. 마르크스주의와 대면해야 하는 이유 마르크스주의와 대면해야 하는 가장 중요한 이유는 이러한 자본주의의 착취적, 반동적 본성을 마르크스주의가 가장 분명하게 드러내고 있어서가 아니다. 가장 중요한 이유는 마르크스주의가 그런 반동적 체제가 갖는 모순과 함께, 그 모순을 타파하고 극복할 수 있는 대안을 함께 제기하고 있기 때문이다. 자본주의에 적대적인 사상은 마르크스주의만이 아니다. 마르크스주의가 갖는 진정한 차별점은 자본주의에 적대적일 뿐만 아니라 그 대안으로서 사회주의를 제시하고 있다는 데 있다. 마르크스는 사회가 변화 발전하며, 낡고 반동화된 체제는 필연적으로 붕괴한다는 것을 해명했다. 자본주의도 역사적 진보성을 갖고 태어났지만, 결국 반동화돼 폐지해야 할 대상이 된다는 것이다. 나아가서 마르크스는 자본주의를 대체할 필연적이고도 과학적인 대안으로서 사회주의를 제시했다. 개인적인 이익이나 계급적 편견에 눈먼 사람이 아니라면 누구나 같은 결론 즉, 사회주의에 도달할 것이라고 마르크스는 주장했다. 마르크스주의는 끝났다고 기회만 되면 자본가 계급이 떠들었지만, 마르크스주의의 유령 앞에서 그들이 계속해서 벌벌 떨 만큼 변하지 않는 현실성을 사회주의는 획득해 왔다. 그 이유는 사회주의가 하나의 사상일 뿐만 아니라, 물질적 힘이 될 수 있기 때문이다. 사회주의 대안은 노동자 투쟁이라는 물질적 힘으로 구체화돼 자본주의를 붕괴 상태로까지 내몬 적이 있었다. 마르크스주의는 그 물질적 힘을 만드는 주체가 바로 노동자 계급이라고 규정했다. 노동자 계급은 자본주의에 의해 가장 고통받는 계급일 뿐만 아니라, 자본주의의 발전에 따라 모든 곳에서 거대하게 성장하고 조직화되는 계급이며, 궁극적으로는 자본주의를 철폐하고 새로운 노동 공동체 세상을 열 수 있는 혁명 계급임을 마르크스는 강조했다. 마르크스는 노동자 계급의 고통에 깊이 공감했다. 하지만 그들을 동정과 배려의 대상으로 여기지 않았다. 오히려 그는 역사와 경제를 깊이 연구함으로써 노동자 계급이 사회주의 건설의 주역이라는 견해에 이르렀다. 마르크스는 독일 고전철학과 영국 고전경제학, 프랑스 사회주의라는 당시 인류가 획득했던 가장 중요한 과학적 성과들을 깊이 탐구했고, 이로부터 자본주의 사회의 필연적 모순과 이것을 해결하는 새로운 사회로서 사회주의의 필연성을 도출했다. 사적인 이익의 영향을 받거나 계급적 편견에 눈먼 사람이 아니라면 누구나 같은 결론에 도달할 것이라고 그는 주장했다. 그런데 오늘날 우리는 수십 년 사이에 한국에서, 중국에서, 인도에서, 베트남에서 자본주의화와 나란히 등장하는 수억 명의 노동자 계급을 보고 있다. 또한 아무리 사회주의를 증오하더라도, 노동자 없이는 자본주의가 굴러갈 수 없기에 여전히 수많은 노동자들을 품고 있는 미국, 독일, 일본, 프랑스를 보고 있다. 교통과 통신, 무역의 발달은 이 노동자들을 더욱 긴밀히 연결시키고 있다. 그렇기에 자본가 계급은 잠시 사회주의를 막을 수는 있지만, 결코 이 도도한 물결을 막을 수 없다. 자본주의 착취에 대해 규탄하고 비판하는 사람들은 오래전부터 있었지만, 자본주의 체제의 모순과 함께 그것을 극복할 수 있는 혁명적 대안을 제시한 사람은 마르크스가 최초였다. 또한 마르크스가 제기한 혁명적 대안은 자본주의에 맞서 새로운 사회를 열고자 하는 모든 이들에게 여전히 가장 유력한 대안으로 남아 있다. 자신을 덮치는 자본주의의 공격에 맞서 해결책을 찾고자 하는 모든 젊은이들은 마르크스주의로부터 출발해야 한다. 3. 사회주의는 죽었다? 모든 이론은 실험을 통해 검증된다. 마르크스의 사회주의 이론이야말로 현실의 실험을 통해 명백히 파산을 선고받은 것이 아닌가? 이미 역사에서 자본주의를 대체할 수 없다는 점이 드러난 이론을 굳이 공부할 이유가 있을까? 마르크스주의는 자본주의의 약점을 지적한다는 점에서는 유효할지 몰라도, 자본주의를 대체하는 사회주의의 필연성과 정당성을 제기한다는 점에서는 더 이상 유효하지 않은 게 아닐까? 대략 위와 같은 논리가 마르크스주의에 다가오는 것을 가로막는 또 다른 결정적 장애물일 것이다. 사회주의가 북한이나 중국, 그리고 1930년대 이후 러시아를 의미한다면, 그런 비판이 유효할 것이다. 그러나 그렇지 않다. 마르크스주의를 정확히 탐구함으로써 그런 체제들이 과연 자본주의의 변종인지 아니면 진정한 사회주의인지를 확인할 필요가 있다. 만약 변종이라면, 마르크스주의가 그것에 책임질 이유가 없다. 오히려 진정한 마르크스주의를 부활시키는 것이 관건이다. 사회주의를 참칭하는 권력자들이 온갖 나쁜 짓을 한다고 해서 그 책임을 사회주의에 돌릴 수는 없기 때문이다. 역설적으로 이렇게 질문할 수 있다. 200년이 넘는 기간, 세계적인 역사적 실험을 통해 자본주의는 무엇을 증명했는가? 불평등, 실업, 전쟁, 경쟁, 도덕적 타락, 가난 등이다. 무수한 실험을 통해 응당 파산을 선고받아야 할 당사자는 바로 자본주의 자신이지 않겠는가? 이 모든 것들은 오늘날 젊은이들이 마르크스주의를 제대로 학습하고 탐구함으로써 마르크스주의에 대한 판단을 내릴 필요가 있음을 보여 준다. 자본주의 주류 체제가 왜곡한 마르크스주의가 아니라, 또는 이러저러한 지식인들이나 지배자들에 의해 변형되고 재해석된 마르크스주의가 아니라, 마르크스 저작 자체를 탐구함으로써 판단을 내려야 한다. 그래서 마르크스주의가 오늘날 사회가 직면한 문제들에 대한 과학적 해법을 제기하고 있는지, 그렇지 않은지를 살펴야 한다. 어떤 결과에 도달하든, 다음은 분명하다. 이 체제가 부당하고 낡았으며 다른 대안을 모색해야 한다고 느끼는 젊은이들, 이 사회가 주는 고통에서 벗어나고자 하는 전망을 모색하는 주체적 젊은이들이라면 누구나 마르크스주의를 학습하는 데서 ‘출발’해야 한다. 이제 마르크스주의 자체를 왜곡하지 않고, 그 객관적 실체에 다가가 보자. 물론 이 글 역시 마르크스주의에 대한 '또 하나의 해석'일 것이다. 책의 글들 또한 의심해 보면서, 더 많은 젊은이들이 마르크스주의를 통해 이 낡고 반동적인 자본주의 체제에 맞서는 길을 찾아갈 수 있기를 바란다. -
[기고] 유럽투쟁기행: 날짜변경선을 넘어서 (3) 이탈리아, 스위스, 다시 한국이탈리아 - 로마, 베네치아, 볼로냐 다음날 낮에는 로마로 이동. G 동지와 만날 장소를 모색하며 메시지를 나누다 '좋은 데'로 데려가 주겠다기에 로마 구도심에서 강 하나 건넌 트라스테베레 지구로 나설 채비를 한다. 짐을 줄일 겸 모자에 조끼를 바로 걸치고 나서면 문득 조끼는 여행 중 도난방지에 유리하리라는 생각이 든다. 파란 모자에 머리띠는 합류할 때도 눈에 띄고 말이지. 박물관에서 일어를 할 줄 아는 C 동지를 데리고 오느라 좀 늦는다고 해 젤라또 가게도 들르고 공원이며 유적지를 가로지르며 구경도 하다 목적지에 도착한다. 그 사이에도 이런저런 그래피티와 스티커와 심볼들이 눈에 들어와 넋을 놓고 셔터를 눌러대고, 한 시간 남짓 경로의 어디를 둘러봐도 존재하는 팔레스타인 연대의 메시지가 전날 시위에서의 환대를 떠올리게 한다. 트라스타베레로 넘어가는 강둑 성당 앞 작은 광장에서 두 동지와 만난다. C 동지는 일어를 3년, 한국어를 1년 정도 공부했다고 한다. 간단한 의사교환이 큰 지체없이 일어나는 것에 감사한다. C 동지의 첫 마디는 역시나 “한국에도 팔레스타인에 연대하는 단체가 있어?” 팔레스타인 긴급행동에 가입된 단체 숫자와 좌파 운동에서의 팔레스타인 문제의 중요도에 대해 말해 주었다. “다행이다”라는 반응도 이제는 익숙하게 느껴진다. 우리가 향한 바의 입구에는 팔레스타인기 스티커가 붙어있으며, 옆의 벽에는 울고 있는 수박과 다양한 메시지들이 쓰여있었다. 바에 자리가 없어 크래프트 콜라를 한 손에 들고 바로 앞 분수대 계단에 C 동지를 중간에 두고 셋이 나란히 앉아 번역기로 이야기한다. 이번에는 긴 호흡으로 좀 더 길고 어려운 이야기를 주고받는다. 번역기 입력창에서 최근 한국의 정세를 축약하다 보면 모든 걸 담았지만 건조하고 맥락 없는 문장이 넷플릭스 프로그램 소개문을 닮아있다. 나중에 찾아보니, 트라스타베레는 '로마의 홍대'라고 한다. 그러니까 동지는 정말로 외국인을 '좋은 곳'에 데려가 준 것이다. “팔레스타인 사안 외에도 어떤 투쟁이 한국에서 일어나고 있는가, 4B 운동에 대한 당신의 생각은 어떠한가.” 해외에 한국발 페미니즘으로 대표되고 있다는 말은 들었지만 여기까지 와서 4B 운동에 대한 질문을 받을 줄이야. C 동지는 한국의 페미니스트 작가의 인스타그램 계정도 보여준다. 기존의 좌익운동과의 분리, 해당 의제를 주로 하는 페미니스트 그룹의 배제주의 노선, 여성-재생산 파업이라는 개념에 대한 공감의 존재 등으로 설명한다. 더불어 우리야 뭐 이것저것 한다, 기후정의, 장애인이동권, 노동권, 젠더/성소수자 이슈 등등…정도의 맥아리 없는 대답을 돌려주자 유익한 이야기를 들려준다. “이탈리아는 2023년경 임신중절 범죄화와 같은 여성과 성소수자 권리에 대한 백래쉬가 있었으며, 많은 이들이 이에 대항하는 연대의 물결에 동참했다.” 전날 시위에서 남성 동지의 백팩에 달려있던 '임신중단은 자연스러운 것이다'라는 인상적인 뱃지와, 벽에 적혀있는 임신중단권을 옹호하는 문구에 대해 납득한다. 이 이전에도 후에도 본 수많은 여성과 트랜스젠더를 옹호하는 심볼이며 문구이며 인클루시브 프라이드 플래그 등등에 대해 이 설명이 없었다면 많이 혼란스러웠으리라. 동시에 이탈리아는 한국에 비해 중심적인 거대담론이 존재하는 사회라는 생각이 들었다. 멜로니 정부가 저출생에 대한 대응으로 이주민 유입을 일부 확대했다는 이야기를 해 주는 G 동지에게, 한국의 극우들 사이에서 북풍몰이를 대신해 확산되고 있는 혐중정서나 이주민 혐오에 대해 이야기하며, 한국의 저출생 대응에는 그러한 정책적 흐름이 그다지 존재하지 않는다거나, 왜곡된 페미니즘 이론을 우파적 선전에 이용하는 이들도 있으나 주류 정치에서 페미니즘과 성소수자 의제는 여전히 주변부적 위치라거나, 그런 대답을 늘어놓는다. C 동지가 G는 역사지리학 교수라고 소개하며, 이탈리아와 이탈리아의 사회에 대해 궁금하거나 이야기하고 싶은 부분이 있는지 묻는다. 10월 초 우정국 파업에 대해 경의를 표하며, 이탈리아는 지금까지 방문했던 국가들 중에서 비교적 설명하기 힘든 방식으로 감성적이고 고맥락적이라 한국(아시아권 국가)과 약간 닮은 부분도 있다. 친절하고, 타인과의 거리감이 가깝고, 아주 강하게 조직될 수 있는 사람들로 여겨지며, 동시에 그것이 정반대의 진영에서도 일어나리라 예상된다고 답하자 나름 수긍하는 표정을 한다. 이야기가 길고 복잡해지자 G 동지가 잠시 난감해하다 스마트폰을 수평으로 들어 올려 번역기에 음성인식으로 입력하는 것도, 그것이 제법 잘 인식-번역된 결과물도 인상적이었다. 마지막으로 G 동지가 건네오는 질문은 ‘한국에서의 사회주의 혁명의 전망’. 엄청난 주어이다. 기대에 서툰 성격 상 평소에 너무 생각하지 않으려 애쓰는 부분이라 뭐라 답할 수 없어, 대신 근 1년여간 봐온 것들, 만나온 사람들, 좌파 운동과 그 안에서의 사회주의 의제, 동시에 그것들에 대한 탄압의 현주소를 이야기한다. 나는 내 생애 그것이 가능할지 너무 기대하지 않고, 나의 노조와 함께 '내 일한 만큼 받는 세상', 더 나아가 '능력껏 생산하고 필요에 따라 분배하는 세상'을 위해 힘쓸 뿐이라는 말과 함께. 하늘이 어두워지기 시작하자 자리에서 일어나, 저녁 미사를 시작하기 전의 성당을 구경하러 간다. 입구로 들어서기 전, 오면서 여러 번 보며 신경 쓰였던 원과 화살표의 심볼을 떠올리고 사진을 보여준다. “자율주의Autonomism. 노조나 정당이 아니라 네트워크에 가까운 방식을 추구하는 노동자 운동.” 혼란에 빠진다. 일주일 안 되는 시간 동안 계속해서 노조 바깥의 사회주의자들을 만나며 세계관을 넓히고 있었지만 여전히 현장중심적 노동운동에서 노조운동 외를 좀처럼 떠올리지 못하는 나는 기존의 방법론에 대한 비판이나 냉소 같은 안티-테제적인 개념만을 한참 더듬다가, 일종의 아나키즘적-노동자 운동이라는 결론을 제시하고는 적당한 수긍을 듣는다. 그렇다면 그만큼 급진적인 사상이라는 거겠지. 트랜스 심볼과의 결합이며 함께 그려져 있던 서클 A들을 떠올리며, T 동지의 ‘뒤숭숭한 세상에서 극좌가 부상한다’는 이야기를 떠올린다. 이탈리아는 정말로 어떤 곳일까. 답이 끝나는 곳에서 다시 질문이 시작된다. 따뜻한 금빛으로 빛나는 작은 회랑의 천장을 올려다보며 C 동지와 실없이 몇 마디를 주고받는다. 크리스천이냐는 질문에 “크리스천적인 인간이지만 더이상 종교로서 믿지는 않는데, 나 같은 사람을 냉담자라고 하더라”고 답하자, C 동지는 “나도 그렇다”고 말한다. 예상 외의 대답이었기에 그 한마디가 어떤 의미일지 곰곰히 생각하면서 크지 않은 회랑에서 빠져나온다. 돌아가는 버스를 타기 직전에 한국의 연대시민들이 만든 팔레스타인이나 노동 의제 스티커를 한국어를 공부한다는 C 동지에게 넘겨준다. C 동지가 “티켓을 살 필요는 없다”고 한 버스에 올라타면 피렌체의 트램에서 본 것과 같은 티켓 리더기가 있어서, 흔들리는 버스 안에서 도덕의 기준이나 문화적 규범은 유동적인 개념이라는 사실에 대해 생각하며 숙소로 돌아간다. 트라스테베레의 로마 최고最古의 성 마리아 성당 다음 날에는 사람에 치이며 바티칸을 관광한다. 시스티나 성당 예배당 천장의 '천지창조'에서 나타나는 기독교적 세계관 속의 인간과 신의 도달 불가능한 간극에 대해 듣는다. 기념품점에는 새 교황의 호쾌한 얼굴이 마치 슈퍼스타처럼 늘어서 있다. 가족을 위해서는 삼중관과 열쇠가 그려진 묵주를 산다. 희년(禧年, Iobeleus)을 맞은 베드로 대성당은 성당은 고사하고 광장 바깥에서부터 사람으로 가득 차 들어갈 엄두가 나지 않는다. 바티칸 바로 옆의 집값은 로마의 다른 곳들과는 비교를 불허할 정도로 차이가 난다고 가이드로부터 듣는다. 구글 지도의 경로 안내가 버스 파업으로 갱신되고 우체국이 점심때 닫는 것을 보며 로마 구도심의 유적들로 다시 향하면, 이 성당에서는 라테라노 조약이 체결됐고 저 성채에는 교황님이 피신하셨으며 저 성당의 성문(聖門, Porta Sancta)을 통과하면 죄가 사라진다는 이야기들이 발에 채일 듯이 널려있다. 우리나라의 극우 컨트롤 타워 중 하나는 개신교와 해당 계열 컬트라고 했을 때 G 동지는 “억압적인 사상의 가톨릭 국가로서 공감되는 부분이 있다”고 했다. 가톨릭 신자 비율이 80퍼센트인 나라의 시민으로서 ‘그것은 더 이상 나의 믿음이 아니다’라고 말하는 것은 어떤 의미일지 C 동지의 말을 다시 곱씹어본다. 해방신학에 대한 흥미를 표했을 때 별 답을 듣지 못한 것을 생각해보면 그저 허공에 매인 십자가가 우리를 구원할 수 없다는 결론을 내렸을 뿐일지도. 일기예보를 본다. 변경된 일정에 따른 기상 악화의 가능성으로 고심 끝에 인터라켄 방문을 취소하고 로마에서 하루를 더 보낸다. 이런 일정을 짤 때는 앞으로는 주말을 동지들과 보내는 것을 염두에 두기로 한다. 달리 할 일이 없어 찾아간 국립 미술관에서 팜플렛 표지서부터 나오는 적장의 목을 따는 유디트는 결국 찾지 못하고 대신 인상적인 그림을 본다. '가시면류관을 쓴 그리스도'. 여행 속에서 나름 기독교 예술을 질리도록 접한 뒤라 흔치 않은 시점과 구도라는 설명에 공감한다. 고통에 찬 얼굴로 고개를 숙이는 '유대인들의 왕'과, 만면에 띄운 조롱의 미소이며 가시관을 씌우는 우악스러운 손길이 생생하게 대비된다. 이 그림의 감상은 '이 이야기의 올바른 편'이 어느 쪽인지 그림을 보는 모든 사람이 알고 있다는 사실에서 완성되리라. '아버지, 저들을 용서하소서. 저들은 저들이 무엇을 하는지 모르나이다.' 부담도 주저도 없는, 반성도 사과도 들을 수 없는 탄압과 살해에 스스로 용서를 주는 것은 하늘에 계신 아버지가 아닌 '사람의 아들'로서는 할 수 없는 일이다. ‘가시면류관을 쓴 그리스도’ 야간열차로 로마를 떠나 새벽에 베네치아에 떨어진다. 역을 나서자마자 바닷물이 보이는 도시에서는 자동차의 역할을 모두 배가 한다. 경찰 보트가 넓은 운하를 가로지르고 운구-선이 관을 공동묘지-섬으로 옮기며 정비소 역할을 하는 아주 작은 조선소에는 아주 작은 크레인이 있다. 잘못 탄 수상 버스 차창 너머에서, 바닷물 한가운데에 뻗은 기둥에 멋들어지게 적힌 'Free Palestine'이 눈에 들어와 잠을 깬다. 사람 없는 시간에 자기 배를 몰고 온 누군가는 이것을 그리는 동안 어떤 생각을 했을까. 벽에 이것저것 쓰여있다거나 심볼이 있다거나 물가에 면한 가정집 창가에 팔레스타인기를 걸어놓는 일은 여전히 계속되고, 오히려 골목골목을 돌아다니며 마주치는 것들의 종류며 빈도가 로마보다 더욱 밀도가 높은 느낌도 든다. 로마의 '관광객은 집으로'에 이어 '베네치아를 베네치아인에게'라는 문구를 벽에서 찾는다. 그린피스 스티커나 관광객 안내도의 금지사항들을 보며 기후위기의 국면을 맞은 수상-관광도시가 처할법한 여러 문제들에 대해 생각해본다. Stecco: 본명 Luca Dolce. 25년 4월에 3년 6개월의 징역을 구형받은 이탈리아 아나키스트 활동가. 현재 복역 중. 이 사람들에게 축구 팀이란 무엇일까 (‘1312’는 ‘ACAB’(모든 경찰은 후레자식이다)의 은어로 쓰인다.) 'Venezia FC 파이팅' 아담한 크레인. 구글 지도에 조선소라고 적혀있는 이곳은 아마 자동차 정비소 정도의 개념인 듯 하다. 여섯 색 무지개는 물론 인클루시브 프라이드 플래그가 어엿하게 자리잡은 사회가 신기하다 관광도시의 주민이 드러내는 정치적 실천은 세계를 향한 스피커로 기능할 수 있을지도 모른다 밤늦게 출발하는 열차로 베네치아를 떠나, 볼로냐 중앙역에서 짧은 밤을 보낼 숙소로 이동한다. 역 인근에서 10여 분을 걸었을 뿐인데도 아주 많은 말, 지금까지의 명료한 단어나 심볼을 넘어서는 난해한 문장들이 사방에 펼쳐진다. 런던에서의 익숙한 폰트와 재회한다. 영국에 비하면 이탈리아의 '혁명 공산당'은 상당한 신생정당인 것으로 보인다. Camp Unil Palestine: 스위스 로잔의 대학교 UNIL–Géopolis를 거점으로 하는 팔레스타인 연대 단체. 이스라엘에 대한 학술 보이콧 활동을 하고 있다. A Foras: 사르데냐 군사점령 반대 단체. 사르데냐에는 이탈리아와 NATO의 군사시설이 집중되어 있으며 분리주의 의제의 정당(사르데냐 행동당)이 존재한다. Rami Elgaml: 이집트계 19세 청년. 24년 11월 밀라노에서 친구와 스쿠터 운전 중 고의적 경찰폭력으로 추락사. 해당 사건에 대한 재판은 현재까지 진행 중. 인터라켄의 예정이 사라졌으므로 마지막 날은 볼로냐 중앙역에서 밀라노 중앙역으로, 거기에서 스위스의 취리히 중앙역으로, 다시 취리히 공항역으로 이동. 밀라노 중앙역에서 탄 국제선 교통약자 칸에서는 뒷좌석의 할아버지들이 팔레스타인 이야기를 나누는 것이 드문드문 들려온다. 국경을 넘기 직전에 잠시 정차한 기차 안에서 이것저것 돌이켜본다. 햇살이 뜨겁고 사람들이 정열적인, 국가 단위의 거대담론이 건재하고 강하게 조직된 동지들이 살고 있는 음식이 맛있는 나라. 동시에 전체주의와 조직폭력단을 일컫는 일반명사가 태어난 나라. 축구 경기에 관심이 많고, 거리감이 가까워 처음 만난 이에게도 친근하게 다가오지만, 그렇기에 더더욱 튀는 사람으로 살기에는 고생스러울 것 같다고 생각되는 나라. 아날로그에서 디지털로 급격하게 이행하는 불연속점이 시스템 전반에서 눈에 띄는 나라. 더운 날씨 때문인지 방문했던 다른 국가들에 비해 확연하게 밤이 늦은 나라. 카톨릭과 가부장제가 강력한 사회적 영향력을 가지는 나라. 고생하시는군요, 서로 힘냅시다 라고 말하고 싶어지는, 프랑스에서 느꼈던 서러움과는 정반대의 어딘가 익숙하고도 가까운 기분이 드는, 어딘가 지금의, 혹은 좀 더 이전의 한국에 대한 기억과 닮은 나라. 아직 다 해석되지 않은 한 무더기의 사진들과 함께 나는 한동안 이 땅에 대해 많이 생각하게 되리라는 느낌이 들었다. 스위스 기차에서 내리면 언어와 화폐와 물가가 다른 땅. 마지막 식사를 위해 역을 나선다. 강풍주의보를 온몸으로 체감하며 강을 따라 내려가며 느낀 첫 감상은 '표백된 것 같다'였다. 풍요로운 마트와 맛있는 간식 가게와 예쁜 경치가 있고, 큰길을 따라 내려가면 별 눈에 띄는 낙서도 스티커도 없이 평화로운 광경. 여러 곳에서 본 여러 선전물들이 있을 법한 자리의 공백이 어색하게 느껴지고, 여섯 색깔 무지개와 환대의 표현이 종종 보이는 것 정도가 두드러지는. 그러나 역에서 조금씩 멀어지고, 음식점을 찾아 몇 걸음만 골목으로 들어가면 조금이나마 익숙한 문구들이 보이고, 인근 거주자들이 정기적으로 이용하는 쓰레기 수거함은 좋은 선전물이 될 수 있다는 걸 이탈리아에 이어 다시금 깨닫는다. 하여튼 어디든 경찰 싫어하는 것만큼은 똑같은 것 같다. 짧은 시간 체류했지만 산지가 많고, 문화적 특징보다는 청정하고 아름다운 자연에 대한 자부심이 두드러지고, 물가가 인근 국가들에 비해 상당히 높고, '일단은' 중립국인 작은 이 연방공화국으로부터 자의적으로건 타의적으로건 어딘가 고립되어 있다는 인상을 받는다. 이런 식의 사회가 유지되는 것이 신기하게 느껴지고, 한편으로는 이 사람들에게 자연이란 무엇일까 생각해본다. 다양한 사회의 형태를 접하고 그것이 운영되는 방식을 엿보는 것은 언제나 경이롭다. 대한민국: 그리고 남은 이야기 공항 구석에 있는 국적기 카운터의 직원이 수하물 위탁은 받지만 체크인은 모바일로 해오라고 하거나(영국이라면 이런 건 무인-기계-위탁으로 돌렸을 텐데!), 기껏 이탈리아어에 익숙해졌더니 독일어에 당황하거나 하는 일들을 거쳐 열 한시간을 날아 인천으로 돌아간다. 손가방에 배인 러쉬 워터멜론(수익의 70%가 팔레스타인의 절단장애인 의료지원에 사용된다고 한다)의 강렬한 향이 눈빛이 부드럽고 색소가 옅은 검역견과의 짧은 만남을 주선한다. 아뇨, 과일은 없어요. 가방에 든 음식은 과자랑 파스타 뿐입니다. 세관을 통과해 공항 로비로 나오자 제일 먼저 보인 것은 인천공항 재파업을 목전에 둔 공공운수노조 조합원의 조끼 위의 몸자보. 많은 것을 보고 많은 고민을 하고 돌아온 여행의 마무리에 어울린다고 생각하는 동시에 나의 삶과 운동의 공간으로 돌아왔다는 실감이 느껴진다. 날짜를 확인하면 빌려왔던 하루가 사라진 것이 묘하게 손해 본 기분이 든다. 여행 내내 셔터를 눌러 댄 필름 여섯 통분의 사진이 수동카메라의 조작 미숙으로 찍히지도 않았다는 사실을 현상소에서 깨닫고 절망한 다음(내 베스트 컷들이!) 사진을 기대한 L 동지 일행에게 그 사실을 전하고, 대신 스마트폰으로 찍은 사진 중 괜찮은 것들을 보내준다. 아직 시차에 고통받고 있는 동안 '원 배틀 애프터 어나더'의 감상평 하나가 눈을 끌어 심야 티켓을 끊는다. 초반부터 '아나키스트 활동가'는 구체적으로 어떤 반정부 투쟁을 하는지에 대한 깨달음을 얻는다. 동시에 T 동지의 '너희 나라 아나키'의 취급에 대한 어이없다는 듯한 반응도, 우리나라에는 '극좌'가 존재하지 않는다던 누군가의 평가마저도 이해한다. I 동지가 고공농성과 도크 점거를 보고 감탄한 다음 “그 사람들은 감옥에 갔어?”라는 물음부터 꺼냈던 것이 어떤 논리에서 온 것인지도 생각한다. “감옥은 안 갔어. 우리가 안 가게 탄원했어. 가끔 조사는 받았어.”라는 대답에 얼굴에 번지던 미소도. 혁명은 어느 날 갑자기 세상이 뒤집히고 완전히 다른 세계가 펼쳐지는 것이라고 막연히 생각했다. 파리에서도 런던에서도 혁명의 전운을 느끼고 앞으로의 세계가 어디로 나아갈지, 이 역동이 한국에는 언제 어떻게 다다를지 상상하였다. 그러나 이탈리아의 길거리며 시위 한복판을 걷는 동안 나는 지금 이 순간 여기에서는 현재진행형의 혁명이 일어나고 있다는 생각을 부정할 수가 없었다. 혁명은 한순간의 커다란 완결이 아니라 작은 변화들이 만드는 흐름에 대한 정의라는 것. 매일매일의 '이전으로 돌아갈 수 없는 변화'들이 서로 연결되어 우리가 바라는 세상에 다다르는 발걸음은 지금 이 순간에도 어딘가에서는 반드시 존재한다는 것. 그렇다면 그것이 내가 자리한 곳이 아닐 이유는 없으며, 오늘 우리의 집회도 몇십 년 후에는 혁명의 흐름 위에서 이야기될지도 모른다는 것. '연속혁명'이라는 단어를 처음 들었을 때는, 러시아 혁명이며 한국 노운사 따위의 성공과 실패, 반복되는 진전과 퇴보를 떠올리며 '말이 쉽지. 혁명이란 순간 같아도 전후 몇십 년을 블랙홀처럼 빨아들이는데, 지금의 우리에게 그런 큰일을 연달아 터뜨릴 기반이 있을까' 하고 생각했다. 좌파 운동이나 체제전환에 대한 이해 없이 장엄한 수사로서 혁명이라는 단어를 갖다 붙이는 사람들을 볼 때마다 냉소도 커져만 갔다. 세계가 나빠져만 가는 소식들을 들을 때마다 '어디로도 도망칠 수 없다'라는 무력감에 짓눌려왔다. 지금은 안다. 어디로도 도망칠 수 없는 이유는 사실은 우리는 서로를 알지 못할 때조차 언제나 같은 적과 함께 싸워왔기 때문이라는 것을. 그렇기에 혁명이란 연표 위의 한 점이 아니라 시공간적인 연속성이 만들어내는 흐름 그 자체이며, 역사라는 이야기의 모든 사람들이 연루되고 또 구성하는 것이며, 오늘 나의 한 걸음 또한 돌아갈 수 없는 변화를 만드는 데에 가담하였다면 나는 이미 '라 비바 레볼루시옹'의 일원이라는 것을. 말 그대로의 투쟁, 영원한 투쟁One Battle After Another. 여행을 떠나는 길에는 막연하게 '집회에 나간다'거나, '활동가를 만난다'라는, 마치 세상 어디서든 일요일에는 예배를 드리는 기독교인의 심정으로 내가 평소에 해 오던 것을 하러 가리라고 생각했다. 막상 현지에서 만난 동지들은 어엿한 사회주의 단체에 소속되어 공통된 이론적 기반을 가지고 있었고, 그들의 이야기를 듣고 있으면 사회상이나 운동의 양상, 방향성의 차이 등을 감안하더라도 스스로의 이론적 토대의 부실함에 조금 부끄러움을 느끼기도 했다. 그 간극을 곱씹는 동안 '사회주의자 동지들의 관심사를 듣는 것도 함께 이야기하는 것도 소중한 경험이지만 어쩌면 나는 노조활동가를 만나서 노조운동에 대해 이야기하고 싶었을지도 몰라' '다음 목적지는 독일의 금속노조 사무실이 될지도 모르겠군' 같이 자신의 관심사의 좌표가 점차 선명해져가고, 그러나 동시에 노동자 운동, 사회주의 운동에서 노조운동의 범주 바깥에 존재하는 다양한 방향성에 대해 시야에 넣을 수 있는 계기가 되기도 하였다. 그 즐겁고도 아귀가 들어맞지 않는 수많은 대화를 나누며 얻게 된 의문과 해답들을 좀 더 이해하거나, 사회주의 운동에 대한 전체상 위에서 나의 현주소를 진단하고 운동의 목표와 방향성을 설정하기 위해 시간과 공간을 훌쩍 뛰어넘어 연결될 필요성을 느끼거나, 누군가에게 여러가지를 더 잘 설명할 수 있는 개념과 언어를 가지거나 하고 싶은 마음이 사회주의의 이론과 역사를 공부하는 일의 필요성을 일깨운다. 좀 더 알고 싶다. 배우고 싶다. 먼 나라의 먼 시대의 사람들이 해왔던 이야기를 듣고 싶다. '전진의 교육은 새로 조직된 이들에게 지식과 통찰을 제공하였다'고 T 동지에게 스스로가 한 말을 믿는다면, 한국과 세계의 운동사에 대한 개괄적 이해가 실제로 먼 나라의 누군가와 공유할 수 있는 것이라면, 그러므로 이 모든 게 강단 위의 헛소리가 아니라 실재하는 역사이고 삶이며 운동의 실천과 유기적으로 연결된 지식이고 누군가를 키우고 또 연결하는 일이라면 조금만 더 잘 할 수 있으면 좋겠다고 생각해본다. 다양한 사회 속에서 다양한 사람을 만나 이야기하며 계속해서 생각했던 것은, '어딘가에서 당연하지 않은 것은 어딘가에서는 당연하게 이루어지고, 또 어딘가에서 당연하다고 믿는 것도 다른 곳에서는 당연하지 않다는 것'. 골목길의 가게나 마트의 진열대에 수많은 종류의 햄이나 치즈가 밑반찬처럼 늘어서 있는 풍경, 몇백 년씩 된 낯선 모양의 건축물들. 혹은 터무니없이 들릴 만큼 강력한 총파업과 봉쇄 행동, 관광지 한복판에 나타난 트랙터와 그에 대한 경찰의 태도, 거리를 메운 상징과 포스터의 전쟁. 좌파 정치에 영향을 미칠 만큼의 아나키스트와 마오주의자가 있는 나라. 우리가 쿠바의 미군정과 혁명에 대해 아는 만큼만 북한의 정세에 대해 아는 사람들. 그리고 거기서 열 몇시간을 날아가면 옛 왕궁 근처의 빌딩에서 사회주의의 기초를 가르치기 위해 '중국과 북한은 가짜 사회주의'라는 챕터에 한 강 전체를 할애하는 분단국가가 나온다. '멀리 있으니까 어쩔 수 없는' 팔레스타인 문제에 대한 인지도와 동의도의 차이. 우리가 물리적인 세계를 산다는 것이 빚어내는 간극들. '지정학'이라는 개념의 무게에 대해 새삼 느끼며 역사지리학자인 G 동지가 수업에서 할 법한 이야기들도 생각해본다. 다음에 그를 만날 때엔 좀 더 괜찮은 질문을 할 수 있는 사람이 되어 있다면 좋겠다. 그러니까 이번 여행에서 배운 것이 있다면 결국 동화 속 공주님이 뾰족한 성에 사는 것도, 에펠탑이며 모나리자도, 선진국에서는 허구한 날 파업으로 지각한다는 소문도, 사회주의 혁명을 삶의 목표로 삼고 내다보며 준비하는 사람들도, 어떤 이야기나 메타포 같은 것이 아니라 정말로 살아 움직이는 인간의 손을 거쳐 이 세상에 존재하고 있었다는 것이고, 나에게 그건 정말로 그곳에 가서 보지 않으면 느낄 수 없는 일이었으며, 어쨌거나 직접 보고 만 이상 다시 없던 것으로 치부할 수는 없고, 이 세상은 모두 연결되어 있으므로 이 '진짜인' 모든 것들이 나의 삶이며 결정 같은 것들과 이전에도 앞으로도 상호작용하리라는 진실이리라. 떠올릴 때마다 심란해지는 사실이지만 이론에 선행하는 경험을 부정할 재간은 없다. 이따금 피렌체 시위에서의 영원한 돌림노래가 머릿속에서 재생된다. 트랜스젠더 추모의 날 집회에서 찬바람 부는 이태원을 행진하며 만난 외국인들의 환대에 이어진 하늘 너머 어느 내리쬐는 햇살 속에서의 그것을 떠올린다. 다른 장대한 목표들과 함께 '제국주의에 반대하여 팔레스타인에 연대하는 것'을 사회주의자의 현시점에서의 중요한 과제라고 하는 강의자료를 보며 바다 건너 '제국'의 동지들의 진지한 고민들을 떠올린다. 돌아온 곳을 새로운 눈으로 마주하며 여행은 다시금 이어진다. 일곱 시간 뒤에서, 혹은 두 세기를 넘어서, 사십 오 년 전으로, 어쩌면 바로 지금. 바다를 건너서, 철조망을 넘어서, '제국'이 그은 금에도 신경 쓰지 않으며, 우선은 이 손이 닿는 곳에서부터. 백만 가지의 모습으로 서로에게 손을 뻗고 그렇게 누구도 선 뒤에 남겨두지 않아야만 비로소 내일이 찾아온다는 것을 아는 것으로부터 혁명은 시작된다. 당신의 의지와 상관없이 우리는 이미 '인터내셔널'일지니, 기립하는 것 외의 선택지는 더 이상 존재하지 않는다. (끝) [지난 글 보기] [기고] 유럽투쟁기행: 날짜변경선을 넘어서 (2) 이탈리아 피렌체 -
[기고] 유럽투쟁기행: 날짜변경선을 넘어서 (2) 이탈리아 피렌체이탈리아 - 피렌체 아침에 출발한 비행기가 약간의 연착을 거쳐 피렌체 공항에 도착한 것은 정오 남짓. 작은 도시의 작은 공항인데도 바로 앞의 정류장에서부터 군인들을 마주쳤다. 아, 지금 온 트램은 시내로 안 간다고요? 파리에서 런던으로 넘어갈 때의 영어가 이렇게나 친근한 언어였던가 하는 기분과 대조적으로 이탈리아어는 한 문장 중에 한 단어만 정도 귀에 들어온다. 이후 이탈리아 여행 내내, 어쩌면 경찰보다도 많은 군인을 길에서 마주친다. 밤에는 검문에 걸린 듯 군인에게 둘러싸인 사람들도 본다. 마지막 날 들른 볼로냐 중앙역에는 군용 인식표를 만들 수 있는 기계까지 있었다. 관광도시라서? 혹은 착륙하자마자 외교부가 칼같이 보내온 ‘치안과 마약에 주의하라’는 문자와 같은 맥락으로? 캐리어와 함께 매장된 유적을 보호하기 위한 울퉁불퉁한 돌바닥을 건너와 체크인을 하고 시간을 보니, G 동지가 연결해 준 오늘 시위에 참석하는 L 동지를 미리 만나 설명을 듣겠다는 계획은 물 건너간 듯하다. 시작 전까지는 도착하겠다는 연락을 보내고 간단한 세부사항을 묻는다. “공장을 점거하여 집단해고된 노동자들이 친환경적이고 자주적인 공장 운영을 위한 정부의 지원을 촉구하고 있으며, 이는 시민사회의 큰 지지를 얻고 있다.” “이런 종류의 시위는 평화롭게 진행되며, 대개 경찰과의 충돌은 없다.” 좋군요, 우리도 노동자-자주관리 기업이 드물지만 존재합니다. 첫 끼로 햄과 치즈가 든 피자-빵(아마도 파누오초)을 정류장까지 걸어가는 동안 해치우고는 버스에 오른다. 숏폼으로 시위 영상을 보는 승객의 옆자리에서 금속노조 조끼를 입는다. 10월인데도 아직 여름이라는 기분이 들 정도로 햇살이 따갑고 날씨가 더워서, 노조 모자도 가져온 것이 다행이라고 생각한다. '골리앗에 맞서는 다윗'. Collettivo di fabbrica GKN 주최. 피렌체 우피치 미술관에는 다비드 상이 전시되어 있다. 버스에서 내려 대학 뒤편의 광장으로 향하는 길에는 경찰이 둘쯤 보이고, 가방에 여러 개의 퀴어 플래그 뱃지를 달거나 쿠피예를 걸치거나 노란색 깃발(나중에 현장의 동지에게 유명한 반군사 단체의 깃발이라고 듣는다)을 든 사람들이 건널목에서 신호를 기다리는 걸 보고 안심하고 따라붙는다. 졸업 시즌이라 붐비는 대학교 앞을 돌아 샛길로 들어가면 광장에 도착한다. 집회 시작 전부터 투쟁 굿즈 가판대며, 동지들이 선전물을 나눠주는 작은 테이블, 모금함을 든 사람이며 책을 파는 사람들이 있다. 아나키즘이나 반-시온주의 상징 등과 함께, 한 손에는 팔레스타인기를, 한 손에는 투석구를 든 유명한 시위대의 사진이 뱃지로 판매되는 것을 보며 문화의 차이를 느낀다. 동시에, 그 모습이 오늘 시위의 테마에 어울린다고 생각한다. 매대 앞에서 가진 현금을 가늠하다 슬로건이며 핀버튼이며 마그넷 같은 것을 몇 종 산다. 배포대를 접을 준비를 하는 동지들과 인사하고 유인물을 받아든다. 동지들이 주고받는 대화 속에서는 'Solidarlity' 한 단어만이 귀에 꽂혀온다. 다양한 단체의 깃발들이며 행진을 위해 길게 펼쳐진 현수막들은 붉은색과 흰색이 주된 색조로, 천 위에 손으로 쓰고 그린 것이 생각보다 많다. 확성기를 들고 행진 내내 노래를 부르게 되는 영어를 잘하는 동지가 '우리를 잃어버리면 이 못생긴 깃발을 따라오면 돼'라고 했던 오늘 함께하게 될 조직의 깃발도 붉은 천 위에 손으로 쓰여있다. 크기가 크거나 깃대가 길지 않아서인지 대부분의 깃발이 마치 손깃발을 키워놓은 양 흰색 플라스틱 깃대에 천 전체가 걸려있는 것이 인상적이다. 다비드가 붉은 옷을 입고 있었으니 노동 의제 시위이겠거니 한 것 치고는 팔레스타인에 연대하는 상징들이 제법 큰 비중을 차지하고 있고, 행진이 시작되면 동지들이 내내 부르는 노래들 또한 그러하다. 필름카메라의 셔터를 연신 누르고 있자니 행진이 시작할 때쯤 '저런 걸 찍어야지'라며 한 동지가 앞쪽을 가리킨다. 손가락이 가리킨 끝에서 붉은 연기가 피어오르는 것을 보고 저게 뭐냐고 기겁하자 '스포츠 경기 응원 등에서도 사용되는, 근사한 장면을 만들기 위해 사용하는 것'이라고 말하며 덕덕고(DuckDuckBot. 구글 등과 달리 개인정보 보호를 모토로 계정 기능, 검색어 수집 없음을 특징으로 하는 일부-오픈소스 검색엔진)로 'Fumogeno'의 이미지 검색 결과를 보여줘서 에펠탑 앞에서 피어오른 검은 연기에 대해서도 어느 정도 납득한다. 한편으로는 화기로 오인되지는 않는 것인가? 경찰에게 제지받지 않아? 하고 한국에서 온 연대자로서는 머리가 멍해진다. Insorgiamo: '기립하라, 봉기하라'. 시위의 주최단위인 GKN 피렌체 공장 노동자들로부터 시작된 사회적 운동. 기원은 2차 세계대전 당시 이탈리아 파르티잔 저항운동의 구호. 눈부신 햇살 아래 어느 단위든 씩씩하게 행진하지만, 나의 일행들은 한눈에 봐도 작은 단위인데도 쉼 없이 구호를 외치고 노래하고 북을 두드리는 모습이 대오 안에서도 존재감 있게 느껴진다. 끝나지 않는 돌림노래, 처음부터 끝까지 이어지는 클라이맥스. 영원히 불나비를 부르며 진격하는 말벌부대를 상상해보라. 탄핵 정국의 '축제 같은 시위'에 대한 누군가의 엄중한 지적이 한층 더 공허하게 느껴진다. 잠시 대오가 멈추고 노래가 잦아드는 쉬는 시간에도 지치지도 않고 서로 장난치고 입을 맞추고 방금 전까지 부르던 네타냐후를 규탄하는 노래를 어깨에 힘을 빼고 흥얼거리는 것을 보며 그 활력에 감탄한다. 동시에, 시위의 행선지도 종료 시간도 모르고, 불리우는 노래도 구호도 평소와는 모두 다르고, 몇 시간 전에 처음 밟은 땅의 말은 제대로 알아듣지도 외치지도 못해서 동지들의 성량에 뒤지지 않기 위해 조끼 주머니의 '응급용 카주'를 꺼내 열심히 불던 입장에서는 '나도 저런 동지들이 있는데, 저런 거 할 줄 아는데' 하고 약간의 쓸쓸함을 느끼고, 동시에 내가 광장에서 만나온 동지들을 하나씩 겹쳐보며 나름대로 마음으로 다가서 보기도 한다. 파리와도 런던과도 다른 직선적인 건축양식. 도로 양옆으로 늘어선 오래된 건물들 위로 맑은 날씨의 빛과 그림자가 드리우며 풍경을 만들고, 몇 시간에 걸쳐 걷다 보면 해가 기울어 감에 따라 시가지는 점차 얼굴을 바꾸어간다. 통일감 있는 건물들 사이에서도 심심찮게 시선을 사로잡는 것들은 평범한 가정집에 내건 팔레스타인 깃발이며 인클루시브 프라이드 플래그, 낯익은 배색으로 늘어놓은 빨랫감, 무심하게 난간에 걸쳐진 쿠피예, 때때로 육교 위에서며 가게 위층이며 열린 창 너머로 환호를 보내오는 사람들. 생각 이상으로 대오는 컸고, 경찰은 보이지 않았고, 퀴어문화축제나 퇴진광장에서나 느낄 수 있었던 종류의 환대를 비교도 되지 않을 정도의 크기와 빈도로 접해서 얼떨떨해진다. 여기서는 팔레스타인 문제가 좌파 운동 바깥에서도 이렇게나 지지를 얻고 있단 말인가? 대오가 잠시 멈추었을 때, 누군가가 말을 걸어온다. “모자의 머리띠는 무슨 의미인가?” 단결, 투쟁, 노동조합 내셔널 센터 로고입니다. “어디서 왔나?” 한국입니다. “한국의 팔레스타인 연대는 어떤가?” 어, 오늘 열린 2주년 집회에 천명 정도 왔습니다. “좋군. 오늘 뉴욕에서 열린 No Kings 시위에는 10만 명 이상이 모였다고 한다. 그 말인즉슨 우리는 모두 연결되어 있으며 (인터내셔널?) 그래, 인터내셔널, 당신은 이 이야기의 올바른 편에 서 있다는 것을 의미한다. 오늘 시위에 나와 우리를 지지해줘서 고맙다.” '이 이야기의 올바른 편'이라는 단어가 서정적으로 들림과 동시에 아주 높은 곳에서 스스로를 내려다보는 듯한, 유럽에서 내내 느껴왔던 오늘의 나의 운동이 시공간을 넘나들며 연결된 거대한 흐름 위에 있다는 사실을 다시 한번 되새기게 만든다. 얼마쯤 지나자 같은 노래가, 같은 구호가, 반복되는 단어가 점차 또렷하게 들리기 시작하고, 이탈리아에 도착하자마자 광장이며 이스라엘이며 팔레스타인이며 평화이며 종식 같은 단어들을 '고맙습니다'나 '미안합니다'보다 먼저 익히고 말았다는 것을 깨닫는다. 동시에 시위대의 기세도 약간은 잦아들어 대오가 잠시 멈추면 차도에 앉거나 담배를 말아 불을 붙이는 사람들도 종종 보인다. 프랑스도 한국에 비해 흡연에 관대하기는 했지만, 행진 한복판에서? 전노대며 결의대회 때마다 들리는 사회자의 '흡연은 대오 밖에서'라는 잇따른 고지와, 대오가 멈추면 삼삼오오 무리 지어 옆으로 빠졌다가 어느새 돌아오는 금속노조의 아저씨들을 떠올린다. 운동의 실천과 면면에서는 의제만 조금 바뀌어도 언제나 새로움을 느껴왔지만, 정말로 함께 걸으며 무언가를 외친다는 것 외에는 모든 것이 낯설다. Scuola per la Palestina: '팔레스타인을 위한 학교'. 팔레스타인과 연대하는 이탈리아 교사 네트워크 Società operaie di mutuo soccorso (SOMS): 이탈리아 노동자 상호부조협회. 1848년 혁명의 영향 하에서 탄생함. '마르완 바르구티를 석방하라' '투쟁하는 GKN 노동자들과 언제나 함께하겠습니다!' FLC-CGIL Università di Firenze: '피렌체대학교 이탈리아 노동총연맹(Confederazione Generale Italiana del Lavoro, CGIL) 지식노동자연맹(Federazione Lavoratori della Conoscenza , FLC)' '공공재 수호를 위해 단결' '누구든 경찰을 싫어한다(프랑스어)' 몇 시간씩 걸어 슬슬 지쳐갈 때서야 하루 동안 그다지 먹은 게 없다는 사실을 떠올린다. 조금 긴 휴식 이후 행진이 다시 출발하기 시작하자, 기운을 찾은듯한 시위대와 대조적으로 나이든 참가자들을 중심으로 인도 쪽으로 빠져나와 대오를 배웅하는 사람들이 나타나는 것이 눈에 띈다. 어디로 가는 것인지, 언제 끝나는지 물을 엄두도 내지 못하고 발걸음을 옮기다 보면 점차 시가지를 벗어나, 해가 기울어 서늘한 색으로 변한 하늘 아래 아스팔트가 깔리고 근처에서 차가 다니는 황량한 국도 같은 곳을 걷고 있었다. 가드레일을 몇 번 넘다 보니 일행들과도 흩어지고, 그럼에도 여전히 앞뒤에서 한 방향으로 걷고 있는 대오를 따라간다. 걷다 보면 머리 위에 걸린 표지판의 공항 마크가 눈에 들어와 불현듯 오늘의 목적지를 깨닫는다. 아, 공항. 사람도 많고 좋지. 뭔가…선전전이라도 하는 건가? 한참을 걷다 보면 예상대로 오늘만 두 번째 보는 낯익은 공항이 보이고, 주차장을 가로질러 건물로 들어가면 거기에는 상상 이상의 광경이 펼쳐지고 있었다. 작은 도시의 작은 공항의 유리문을 들어서자 모든 곳에 사람이 차 있었다. 이번 여행에서 접한 새로운 전략, '주요시설 점거'. 이 정도의 시위대가 이 정도의 공간에 들어가면 물리적으로 공항을 마비시킬 수 있다는 것을 몸으로 느낀다. 밀집한 사람들의 냄새와 열기. 쉼 없이 공간 안을 울리는 구호와 노랫소리에 맞춰 사람들은 박수를 치고 양손을 들어 손바닥을 보이거나 가끔 양 주먹을 쥐어 보이는 일종의 항의행동을 한다. 주최단체의 긴 현수막이 공간을 만들며 선전물의 역할을 한다. 드문드문 나갈 길을 찾지 못해 당황한 이용객들이 보인다. 시위대를 따라 앞으로 나가다 보면 공항의 반대쪽 끝에 가까워진다. 한쪽 끝에는 한 무리의 세룰리안 블루 색의 헬멧과 검은 슈트로 온몸을 감싼 사람들-아마도 이 나라의 기동대가 시위대와 대치하고 있다. 젠더를 인식할 수 있는 기호가 거의 남아있지 않아서인지 생각보다 여성의 비율이 높다고 느껴 약간의 의문에 빠진다. 머잖아 그들이 삼단봉으로 나보다 조금 앞 열에 있던 참가자들을 구타한다. 순간 얼어붙기도 잠시 곧이어 사람들이 기동대 쪽으로 움직이며 스스로를 밀어붙이고, 이 사람들에게 밀집 사고 트라우마는 없는 것인가 하는 의문 반, 항의 반의 생각을 머릿속에 띄우면서도 앞뒤의 사람들에 섞여 속절없이 한 사람분의 부피를 보탠다. 얼마지않아 압력이 사라지고-대치가 풀리고-저지선을 넘는 데에 성공해 그때까지 기동대에 가려져 보이지 않던 오른쪽 계단과 에스컬레이터로 걸음을 옮긴다. 기동대 몇몇만이 2층으로 올라가는 사람들에게 난간 너머로 삼단봉을 휘두르며 때늦은 저지를 시도한다. 2층에는 탑승 게이트가 보이고(도착했을 때부터 생각했지만 정말 작은 공항이다), 여전히 팔레스타인 깃발 한 쌍이 시위대의 머리 위에서 힘차게 춤추고, 1층보다 더 좁은 공간에서 여전히 구호를 외치고 노래를 부른다. 영상을 촬영하자 몇몇이 저지하는 제스처를 건네 스마트폰을 내리지만, 생각보다 많은 사람들이 이 모습을 화면에 담고 있는걸 보고 눈치를 보며 다시 카메라를 켠다. 넋이 나간 상태로 아직 본 적 없는 채증 카메라를 뒤늦게 염두에 두고 구호가 적힌 슬로건으로 얼굴을 가리자 누구는 손짓으로 내리라고 하지만('테러리스트'를 연상해서?) 막상 해산할 때 보면 여러 여성들이 얼굴을 가리고 있다. 이런 상황에서 전원이 공유하는 명확한 룰은 성립하기 힘들다. 갑자기 누군가가 큰 소리로 선언하고 사람들이 중간중간 환호한다. 한층 기세를 얻은 노래와 구호가 이어지고, 그것이 잠잠해지면 대오가 한 방향으로 움직이기 시작해 주변 사람들과 함께 올라온 계단으로 천천히 질서 있게 내려온다. 이 많은 인원이 계단을 오르내리는 동안 사고가 없었다는 사실에 새삼 놀란다. 기동대의 저지선 뒤쪽에 있던 작은 카페의 진열장 유리가 산산조각 나 계단 앞부터 쏟아져 있다. 아마도 충돌에 휘말려 부서진 거겠지. 혹은 시위대에 대한 반감을 염두에 두고 기동대가 부쉈거나. 'Sigfrido Ranucci(이탈리아의 언론인. 이 시위가 있기 이틀 전 마피아에 의한 차량 폭탄테러의 표적이 되었다.)는 우리들 중 한 사람이다. 기립하라!' 부서진 진열장. 바닥에 유리조각이 쏟아져 있다. 나가는 길은 들어올 때와는 반대쪽 출구라 내려오면 머잖아 자동문을 마주친다. 공항을 나서기 직전 인파 속에서 L 동지가 나타난다. 나의 얼굴을 보며 걸어온 첫마디는 “나는 몰랐다”. 생각지 못한 강도의 현장을 맞닥뜨린 충격과의 간극에 뭔가 따지고 싶어졌지만 사실 이런 종류의 게릴라 행동이 모든 참가자들에게 공유되지 않는다는 것 정도는 알고 있다. 주차장에서 다시 북소리와 음악과 구호를 발산하며 대오가 모이기를 한동안 기다리고, 공항을 나와 아스팔트 도로 위로 오르면 먼 하늘에서부터 희미한 저녁노을이 번져온다. 아까의 선언 같은 것으로 힘을 얻은 모양인지 시위대는 다시 목청껏 노래하고, 이제 에너지가 남아있지 않다는 사실을 온몸으로 느끼는 나는 동지들 곁에서 노이즈캔슬링 이어폰을 끼고 터덜터덜 걸으며 이제는 뇌리에 지져진 돌림노래를 카주로 따라 연주한다. 그런 와중에도 하늘은 시시각각 얼굴을 바꾸어가고 공항을 나오면서부터 심심찮게 피어오르던 붉은 색과 녹색의 연기며 때때로 쏘아 올리는 불꽃 또한 허공을 가르며 감색으로 깊어져 가는 배경을 점차 아름답게 수놓는다. 여러 가지 생각은 들지만 역시 한국에서는 보기 힘든 광경이다. 처음 출발했던 곳 인근에서 대오 정비를 하고 해산할 즈음엔 이미 밤이 깊어 사위가 어둑하다. 같이 저녁을 먹으러 가자는 네 명 정도의 동지들의 말에 기다렸다는 듯이 따라나서다, 행진 진행 방향의 끝에서 경찰 밴 몇 대와 삼단봉과 방패를 들고 있는 십수 명의 기동대를 찾아내어 등골이 서늘해진다. 상상 이상의 현장이었음에도 아무도 연행되지 않은 것에 새삼 안도하기도 하고 놀라기도 한다. 2층의 열린 창 너머로 환호하며 인도를 걷는 우리에게 말을 거는 가족(아마도 아래층 가게를 운영하는)들과 거기에 응답하는 동지들의 대화가 퍽 다정하게 들린다. 무어라 이야기를 나누다 창 아래의 피자가게로 별 고민 없이 들어선다. 자리에 앉아 메뉴를 고르고 나에게 돌아온 첫 마디는, “그 옷은 무엇인가”. 우리 노조 유니폼이다. 다른 나라에서는 조끼가 노조의 상징이 아니라는 것을 알고 있어도 매번 설명하면서 다시 놀란다. “한국의 전쟁무기 수출은 팔레스타인 학살에 기여하고 있다” 어, 우리 '진짜 사장'은 한화인데, 한화는 '한국 화약'의 약자이고 당연히 전쟁 무기를 수출하고 있다. 그러므로 우리는 팔레스타인과 연대하고 있다. “한국의 팔레스타인 연대는 어느 정도인가” 음…오늘 2주년 집회에 천 명쯤 왔다. 그래도 작년보단 많아진 것이다. “괜찮네, 잠깐, 몇천? 아니면 일천?” 일천(현장의 동지로부터 시작 시에 집계된 인원만 들었다). “적군…. 하지만 거긴 머니까 말이지” 이 대답에 새삼 지정학적 요건이라는 변수를 상기한다. 지중해의 맞은 편. 가자행 선단을 출발시킬 수 있는 위치. 수무드 선단의 안전에 따라 파업을 결의한 바다 위의 항만노동자들에게는 이 모든 것이 정말로 피부로 느껴지는 일이었으리라. 그리고 대체로 번역기를 사용해 여러 가지 이야기를 나눈다. 행동력이나 언어나 IT능력과 같은 교섭력이 좋은 비교적 젊은 동지 한 명이 소통을 맡고, 연장자로 여겨지는 차분한 인상의 한 명 정도가 토의의 중심이 되어 의견을 내거나 취합하거나 하는 흐름으로, 이와 비슷한 모습은 다음날 로마에서도 보게 된다. 골판지 상자 위에 무심히 올려져 나온 나폴리 피자에서는 앤초비의 짠맛이 두드러진다. 이탈리아에서는 사람 하나당 피자 한 판으로, 일행과 나누거나 하지 않는다고 한다. 접시의 튀긴 공 같은 것 중 붉은 색은 아란치니. “삼성 노조가 파업한 것은 팔레스타인 연대의 의미인가?” T 동지도 전국삼성노동조합의 파업 이야기는 알고 있었던 것을 떠올리며 새삼 삼성의 인지도와 영향력에 놀란다. 더불어, 이러한 관점의 차이에서 현재 이들에게 팔레스타인 문제가 얼마나 주된 담론으로 여겨지는지를 체감한다. 팔레스타인에 대한 연대의 파업은 아니라는 대답에 이어 겸사겸사 삼성의 무노조 경영방침이나 전삼노 간부들의 비리며 한국에서는 정치파업이 금지되었다는 이야기를 거쳐 노조 간부들의 총파업에 대한 결단이 필요하다는 이야기까지 흘러간다. 노조관료주의는 아직 국적과 소속을 불문하고 어느 테이블에서도 실패한 적 없는 주제로, 대화를 통해 이탈리아 또한 비슷한 문제가 있음을 확인한다. “오늘 시위는 마음에 들었나?” 마음에 들었지만, 설명이 좀 필요할 것 같다. 공항 점거는 사전에 계획된 건가? 우리는 오늘 시위에서 우리가 원하는 바를 이루고 퇴각했나? 왜 공항 2층에서 사람들이 기뻐했나? 일단 나는 이 시위를 공장 자주관리를 시도하는 노동자들을 지지하는 의제라고 들었던 것 같은데. “계획되었지만 고지되지는 않았다. 기뻐한 것은 아니고 점거를 통해 우리의 강력한 의사를 표현하는 것에 대한 동의의 의미로 환호했다. 오늘 우리가 옹호한 공장의 노동자들은 팔레스타인을 지지하기 위한 파업을 했기 때문에 해고되었다. 평소에는 이 정도까지 하진 않지만, 최근 몇 주간 교착된 정세로 인해 가중된 압력이 터져 나온 것이다.” 요컨대 위력 행사이군. 왜 해고노동자를 지지하는 시위가 동시에 팔레스타인 연대 시위인지 납득했다고 전한다. 점거현장의 분위기와 대답을 겹쳐보며 '데모'가 무엇의 약자인지 새삼 깨닫는다. 시위에서 나온 구호나 노래들을 정확하게 알려주면 감사하겠다고도 말한다. “'멜로니 정부는 물러가라, 모든 것을 봉쇄하자, 파업하라, 파업하라' 같은 반정부 구호를 많이 외쳤다. 팔레스타인을 억압하는 제국주의에 맞서 '강에서부터 바다까지, 팔레스타인을 해방하라' 같은 구호도 외쳤다. 파업을 주도한 노동자들을 위한 구호도 많이 외쳤다.” 이탈리아어 원문을 훑어보며 그게 이런 뜻이었군. 하고 끄덕인다. 나는 이제 이탈리아어로도 '파업하라'라고 외칠 수 있게 되었다. 아직 '감사합니다'는 어떻게 말하는지 모른다. 말이 나온 김에 좋아하는 민중가요도 물어본다. 이탈리아 파르티잔들이 부른 'Fischia il vento'를 제일 좋아하지만 인터내셔널도 좋아한다. 당신이 좋아하는 노래는 무엇인가?' 고민 끝에 임정득 가수님의 '벨라 차오' 번안이나 금속노조가, 팔레스타인 정기집회에서 자주 듣던 'Leve Palestina, krossa sionismen' 등을 답한다. 한국에서 '파르티잔(빨치산)'은 과격파 좌파 운동가를 통칭하는 일반명사가 되었다는 이야기도 한다. 금속노조가의 가사에 흥미를 보이기에 영상을 찾는 김에 나온 김형수 거제통영고성조선하청지회 지회장의 고공해제 영상도 보여준다. 내친김에 2022년 파업 당시 부지회장의 사진도 보여준다. 눈빛이 형형한 다박수염의 남자가 올라간 이유를 대답하다 보면 조선소 하청노동자들의 현실을 거쳐 한국의 정규직과 비정규직의 노조조직률 이야기까지 넘어간다. “북한에 대한 인식은 어떠한가?” 좌파 전반의 통일에 대한 희망, 우파의 전쟁 위협과 매카시즘의 수단, 같은 민족이라는 의식, 이북에서 온 조부의 이야기는 이 땅에서 드물지 않다는 설명을 한다. “사회주의 국가로서의 북한이 주변의 제국주의적 자본주의 국가들로부터 어떤 영향을 받고 있는가?” 한국인으로서는 의외의 접근에 잠시 멍해진다. 오늘만 몇 번을 이렇게 되는 것인지. 북한이 기근과 빈곤을 거치며 퇴보한 이유 중 하나로 소련의 붕괴를 꼽을 수는 있겠으나, 북한에 이미 자유시장경제가 자리를 잡았으며 돈이 있다면 외국의 문물도 어느 정도 접할 수 있다는 것, 나의 관점에서 현재의 북한은 단순한 세습독재국가에 가까우며 매체에서도 자본주의의 영향보다는 내부의 모순이나 병폐에 더 주목하는 경향이 있다는 것을 말하고 나면 저쪽에서도 예상치 못한 답변이었는지 심화된 질문이 들어온다. “그 사람들이 굶고 있는가?” 북한 내에서 외국 통화가 더 가치가 높은 현상이며, 외국 친지로부터의 송금이나 외국 주재 요리점, 단속을 피해 중국으로 일하러 다녀오는 등이 GDP의 많은 부분을 차지한다고 설명한 다음, 음식이 아예 없다고는 단언할 수 없으나 가치체계의 붕괴와 불평등이 결과적으로 인민의 배를 고프게 한다고 말한다. 국가보안법 등에 대한 설명과 함께 몇 년에서 몇십 년이 지나서야 한국으로 들어올 수 있는 탈북자들의 증언을 참고하므로 현재 정세를 확실하게 알 수는 없다고도 말한다. 동지들이 접하는 주류 언론에서는 북한에 대해 거의 다루지 않는다는 설명을 듣자, '굶어 죽어가는 북한 주민들'은 나에게 어릴 적부터 좌우를 막론하고 이야기되어온 익숙한 이미지이지만, 어쩌면 저 동지들에게는 오늘 새롭게 듣는 일일지도 모르겠다고 뒤늦게 생각한다. 한국에는 사회주의자 K-팝 스타가 있는지도 물어온다. 표정을 보니 이전보단 격의 없는 질문이라고 느껴져 짧은 대화 속에서도 거리감이 가까워졌음을 실감한다. 정치적 지형 때문에 가수가 자신의 정치신념을 밝히기는 쉽지 않으며 적어도 내가 아는 바로는 없지만 부적절한 노동환경에 대해 고발하기 위해 국회에 출석한 아이돌은 있다고 말한다. 시간은 이미 10시가 넘어 해산할 때가 다가오고, 제국주의에 맞서기 위한 우리의 전략에 대해 묻는다. 피로로 잘 돌아가지 않는 머리로 한국의 분단이 미-소의 대리전에서 왔다는 사실에 대해 언급하며 사회주의의 국제주의적 측면, '만국의 노동자가 단결하는 것'이 지금으로선 가장 확실하다고 말하자 좌중은 일제히 환호하고, 우리는 자리에서 일어난다. 돌아가는 길에 천과 깃대가 분리되지 않은 깃발을 말아쥐고 어떻게 할지 의논하다 누군가가 받아들고 저마다의 방향으로 흩어지는 모습이 어딘지 익숙한 풍경처럼 느껴져, 다음에 또 봐요, 하고 인사해야 할 것 같은 기분이 된다. 돌아가는 길에 신나서 셔터를 눌렀지만 이 정도는 서막에 불과했다 두어명의 사람들이 군인들에게 둘러싸여 검문(같은 것)을 겪고 있는 장면을 마주친다 [지난 글 보기] [기고] 유럽투쟁기행: 날짜변경선을 넘어서 (1) 프랑스, 영국 [다음 글 보기] [기고] 유럽투쟁기행: 날짜변경선을 넘어서 (3) 이탈리아, 스위스, 다시 한국 -
[기고] 유럽투쟁기행: 날짜변경선을 넘어서 (1) 프랑스, 영국프랑스 가족의 개인전으로 10월 초 파리 방문 예정이 잡혔다. 유럽 여행에 대한 생각은 전부터 있었지만 급하게 계획을 시작해, 가이드 북 한 권에 기대어 파리-런던-로마-인터라켄 루트로 일정의 개요만 정한다. 마침 9월의 파리는 한창 총파업으로 떠들썩했다. 9일 아침에 출발해, 태양의 운행을 거슬러 열 네시간을 날아가면 현지 시각으로 같은 날 오후에 착륙한다. 줄곧 밝기만 한 창 옆에서 내내 졸면서 마비된 시간감각까지 더해져 하루를 득본 기분을 느낀다. 시내에 도착한 다음부터는 가족과 함께 시내에 머무르며 숙소와 갤러리가 있는 파리 3, 4구역 위주로 움직였다. 남쪽으로 강을 끼고 상대적으로 도시의 부가 집중되는 지역으로, 관광지나 미술관이나 브랜드 매장, 그리고 실외기도 설치되지 않아 에어컨이 없는 오래된 건물들이 잔뜩 있었다. 3구의 퀴어 씬에 관심이 있어 LGBT 센터에 방문하고 싶었지만 일정이 허락하지 않고, 대신 인근의 문 앞에 프라이드 플래그를 다섯 개쯤 건 성인용품점이나 횡단보도의 무지개 정도만 눈에 담는다. 들라크루아의 민중을 이끄는 자유의 여신. 커다란 그림 곳곳에는 프랑스 국기의 모티프가 산적해 있다. 이 사람들에게 예술과 혁명은 무엇일까 생각한다 파리 3구 인근에서 찍은 사진. FREE PALESTINE(팔레스타인에 자유를), EAT The Rich(부자를 잡아먹자), ACAB(모든 경찰은 후레자식이다), Fuck le macronisme(마크롱주의 엿먹어라) 같은 낙서들이 눈에 띈다. 13일 오후에야 혼자가 되어 런던행 유로스타가 있는 10구의 파리 북역 근처 도미토리로 이동했다. 이전 일정에서도 가끔 경찰에 대한 반감이나 팔레스타인에 대한 연대를 표시하는 그래피티나 스티커를 보긴 했지만, 스탈린그라드 역(스탈린그라드 전투의 전승을 기리는 의미라고 한다)에서 내려서 도미토리로, 또 거기에서 북역이며 생드니의 무역노조 사무실 등을 오가는 이 하루 저녁 동안에는 그동안 봤던 것과는 비교할 수 없는 양의 좌파적 색채의 포스터나 연대의 슬로건을 볼 수 있었다. 파리 북역에서 파리 북역은 '이민자와 시위대가 경찰과 충돌하는', '치안이 나쁜' 지역이라는 인터넷의 '경고'를 떠올린다. 파리 북역 인근은 세계요리점이나 수입 식료품점, 전통의상점 등이 있는 서아시아계 이민자 거리로, 담배 같은 물건들을 파는 행상인들이 종종 있었다. 도미토리에 도착할 무렵 다음날 북역 인근에서 만나게 될 T 동지에게 저녁의 집담회 일정을 추천받아, 일정을 변경해 체크인 후 바로 출발한다. 목적지는 북역에서 고속열차로 한 정거장을 가면 나오는 93번 지역인 생드니. 역에서 무역노조 사무실까지는 북역보다 피부색이 어둡고 아프리카계에 가까워 보이는 사람들이 커뮤니티를 이루고 있고, 파리 중심가보다는 좀 더 현대적이고 개량된 건축양식의, 길에는 트램이 다니고 통속적인 품목이 늘어선 슈퍼나 저렴한 빵집 등이 있는 한적한 주택가였다. 교통이나 입지, 주변 환경을 고려할 때 상대적으로 소득수준이 낮고 파리 시내로 출퇴근하는 사람들이 살고 있는 위성도시로 느껴졌다. 생드니에서 역에서 주택가로 들어가자 T 동지가 연결해준 집담회 참가자 I 동지가 근처까지 나와 같이 올라갔다. 긴장한 탓에 동지의 유창한 영어에 제대로 답하지 못하고 어색하게 사무실을 향했지만, 무역노조 사무실을 보고 웃으며 카메라를 꺼내 들자, 시선을 따라간 끝을 보고 같이 웃는 것으로 서로가 동지임을 확인한다. 생드니의 무역노조 사무실. 이탈리아에서도 종종 보게 될 스프레이로 그린 낫과 망치를 이때 처음으로 보았다. 집담회가 이루어진 공간은 작고 조명이 약했다. 참가자들은 철제 테이블을 ㅁ자로 두고 둘러앉았고, 문이 열려있어 방 안으로 다 들어가지 못한 사람들은 입구 쪽에 의자를 두거나, 비치되어 있는 남은 책상에 걸터앉았다. 젊은 여성으로 보이는 사회자가 노트북을 보며 긴 이야기를 끝마친 다음 다른 동지들이 의견을 주고받는 시간이 이어졌다. 거의 알아들을 수 없었지만 통역 앱을 켜거나 I 동지에게 묻거나 하면서 포착한 개념들: [9월 사회운동과 그 결과 | 노조관료화(투쟁을 꺼려하는 간부들) | 마크롱의 재선 요구와 제도권 좌파 정당들의 선거만능주의 | 투쟁을 통해 급진 민주주의 요구를 제시할 필요성 | 팔레스타인 학살에 맞선 이탈리아의 총파업 | 9월 운동 중 많은 사람들이 '우리'로 조직되었으며, 이러한 상황에서의 조직의 사후전략 | 마린 르펜에 대한 비판(이베리아 포퓰리즘(스페인 복스당)과의 연관?) | 제5공화국의 끝 | 마크롱에 대한 반감(탄핵이라는 단어가 나옴) | 2019년의 영향(체념? 소진?) | 학생들의 노동자들에 대한 연대] 파편적인 정보들이었지만 시위와 총파업을 기대하고 도착한 파리가 생각보다 조용해서 의아했던 부분들이 어느정도 정리되었다. 그들은 지난 정국을 돌아보며 앞으로의 방향성을 계획하고, 9월에 조직된 사람들, 특히 많은 젊은이들을 어떻게 할 것인지에 대해 의논하고 있었다. 요컨대 나는 4월 20일의 서울에 도착해 비상행동 시위를 찾고 있는 상황이었다. 6시 반부터 시작된 집담회는 8시 반 정도까지 이어졌고, 우리 이후에는 다른 팀이 회의실을 이용하려고 기다리고 있었다. 뒤풀이는 인근의 프렌치프라이가 맛있는 노천 바. 프랑스는 야외 테이블이 있는 식당이 많다. I 동지와 번역기로도, 또 영어로도 이런저런 이야기를 했다. 유창한 영어로 이야기하는 중간중간 '부르주아지bourgeoisie'나 '레짐Régime'과 같은 단어들이 프랑스어의 발음으로 돌아가는 것에서 느껴지는 혁명의 나라라는 감각이 인상적이었다. 22년 도크게이트 점거와 25년 고공농성을 포함한 거통고의 투쟁 이야기를 하자 멋지다는 대답이 돌아온다. 감사와 함께 따라오는 석연찮음을 말로 만들어, “그러나 우리는 선진 노동자와 후진 노동자 간의 간극이 크다. 프랑스처럼 다 같이 안전한 총파업을 하고 싶다. 당신들은 어떤 강력한 투쟁을 해왔는가?” 하고 되물었다. 단어를 고르기 위해 잠시 머뭇거리는 동지에게 “Dangerous?” 하고 묻자 “위험한” 투쟁은 아니라고 하며 예시들을 들어 보였다. “이를테면 연료를 수송하는 노동자들이 총파업을 한다면 경찰차도 도로 한복판에서 서버린다”는 말을 하면서 장난스러운 미소를 지어보이고, '결정적 액션'으로 주요 도로나 식료품점을 봉쇄하는 것을 언급했다. 한국의 노조운동에 결합한 관점에서 '봉쇄'라는 개념에 의아함을 느끼고 되묻는다. “종사하는 노동자들의 동의를 받지 않고 점거할 수 있어? 실패한 총파업 같은 건가?” 하고 물으니 I 동지는 조금 난감해하다, “9월과 같은 정치, 경제적 요구가 결합한 대규모 운동에서는 수십만명 규모의 대규모 시위와 기업 봉쇄 등이 연계되어야 하며, 이것이 우리의 전략이다. 내일 동지들과 만나서 더 나은 설명을 듣도록 하라”고 이야기한다. 자리를 정리하며 건넨 “마지막으로, 당신에게도 자랑하고 싶은 동지가 있는가?”라는 질문에는 “철도노동자인 A동지(모로코계 프랑스인으로 철도노조 파업을 포함한 다양한 캠페인을 주도했다.), 변호사인 E동지(노동 변호사이자 운동가.), 고등학교에서의 T와 대학 시절의 동지” 같은 사람들을 언급한다. “T 동지와 고등학교 동기였어요?” 하고 되묻자 어떤 체제나 구조와 관련된 것 같은 전부 알아들을 수 없는 설명을 들을 수 있었는데, 이 문장의 의미는 다음 날 T 동지와의 만남에서 대략적으로 확인하게 된다. 다음 날, T 동지와 만나기 전에 에펠탑과 마르스 광장을 구경한다. 마르스 광장 쪽으로 발을 옮기자 눈에 들어온 것은 노란색의 큰 슬로건 현수막, 뭔가 타는 냄새와 회색의 연기. 이어지는 환호성. 이것은…트랙터? 그리고 멀찍이 서 있는 방패를 든 경찰들…. 구경하느라 약간 늦을 것을 고할 겸, 연기와 타는 냄새에 놀란 마음으로 T 동지에게 “마르스 광장인데, 트랙터가 있다. 무언가의 데모인가?” 하고 설명하니 ‘좌파 농민단체의 데모’라고 했다. 발언 사이사이에 “oui(프랑스어로 ‘그렇다’라는 뜻)” 같은 화답을 들으며, 파리에도 전봉준투쟁단과 ‘맞습니다!’가 있군…같은 생각을 하며 떠나려는 찰나 시위대는 인터내셔널가를 부르고, 곧이어 EDM이 나오며 몸을 들썩이거나 바닥에서 춤을 추기 시작하는 사람들도 있었다. 나중에 T 동지는 “이들이 파리에서 시위를 하는 것이 흔한 일은 아니다”라고 말하며, “최근 조직된 한국의 젊은이들은 다들 트랙터를 좋아한다”고 말하니 “우리 쪽에는 농민 의제 시위에 그렇게 쿨한 이미지는 없어서 의외”라 한다. 이해합니다. 아무래도 우리에게도 많은 일이 있었지요. 방패를 들고 각반을 찬 경찰(기동대?)들. 검은 베레모를 쓰고 있다. '유기농 식품이 암을 예방한다' 농민연맹Confédération paysanne의 EU와 메르코수르 4개국의 무역협정에 대한 반대 북역 근처의 소박한 알제리 식당에서 기다리고 있는 T 동지에게로 서둘러 향한다. T 동지는 일어가 유창한 일본계 프랑스인으로, 대화하는 동안 다른 프랑스 동지들의 질문도 일어로 번역하여 전달해주었다. 알제리가 프랑스의 식민지였던 역사를 언급하며, 아프리카에 가지 않는 한 이런 제대로 된 알제리 음식을 먹어볼 일은 없으니 가족이나 친지들이 파리를 방문할 때에는 데려온다는 설명에서 연속혁명의 반제국주의적 지향이 생활속에 녹아서 드러나는 것이 인상적이었다. 패스트리로 고기나 야채 등을 감싸 튀긴 알제리 요리 부렉Bourek 자리에 앉아 들은 첫 번째 질문은 “한국은 수험에 대한 압박이 심하다 들었는데, 이에 대응하는 당사자 단체가 있어?” 예상을 벗어난 질문에 얼떨떨하며 ‘대학입시 거부로 삶을 바꾸는 투명가방끈’에 대해 설명할 수 있어 다행이라고 느꼈다. 뒤이어 도착한 다른 동지의 첫 번째 질문은 “한국의 소자고령화(저출생 고령화의 일본식 조어) 문제는 수험압박과 관련이 있어?” “물론, 당연하게도.”라고 답했다. 이날 자리한 동지들은 (기억하기로는) 조직 산하 학생단체의 학생 운동가들로, 대학 내에서의 활동이나 조직화는 물론이고, “우리는 고등학생들을 조직하고 있어”라고 말했다. '고등학교에서의' T. 간밤의 I 동지의 이야기의 퍼즐이 맞춰지는 동시에 고등학생 운동을 찾아보기 어려운 한국에서는 도저히 상상하기 힘든 조어였다. “한국의 대학생 운동은 어때? (일본의 전학련과 같은) 관련 단체들은 있어?” 라던가, 일본의 6,70년대 학생운동 등에 대해서도 이야기를 나누었다. 프랑스의 전국 대학 단체 선거에서 동지들이 속한 조직 쪽의 사람들이 많은 득표수로 당선되어 대학 사회에서의 약진을 보이고 있다는 소식도 들었다. 곧 올 동지는 파리 8대학에 버금가는 우수한 대학에 재학 중이라는 것과 같은 '대학 이름이 정체성이 되는' 설명을 들으며 여기에서조차…라는 생각과 동시에 우리 쪽에서 대공장노조의 이름이 거론되듯 학생운동 당사자의 입장에서는 자신의 생활과 운동의 주된 무대가 곧 정체성이 될 수 있으리라는 묘한 납득을 얻기도 하였다. 내가 나온 대학은 재학 당시 총여학생회를 폐지하는 행렬의 선두에 있었기에 소속감이나 주위 환경등의 영향으로 당사자로서의 대학생 운동은 참가한 경험도 아는 바도 관심도 많지 않았으므로, 학생운동을 중심으로 활동하는 동지와의 만남은 여러 가지를 생각하고 돌아볼 기회를 주었다. 동시에, 관심사가 명확한 동지의 질문들에 '좀 더 잘 아는 사람이 설명해줄 수 있었다면 좋았을 텐데' 하는 아쉬움이 들기도 했다. “사회가 뒤숭숭해지며 마린 르펜과 같은 극우가 지지를 얻음과 동시에, 아나키스트나 마오주의와 같은 극좌(이 단어를 건조한 지칭으로 들은 것은, 살면서 사회주의 기초학습을 포함해 세 번째였다) 사상 또한 힘을 얻고 있으며, 우리 조직 또한 그들을 고려하여 활동의 전략을 짜야 한다”라는 말을 듣고 “우리는 범좌파 자체가 세가 적어서 그렇게 하지는 않는다. 극좌라는 구분조차 잘 안쓴다. 그러나 우리나라에서도 마오주의자 개인과 아나키스트 단체를 본 일이 있다”고 답하자, 한국의 '빨갱이' 탄압의 설명을 들은 T 동지는 놀라며 “그 사람들은 경찰이나 국가로부터 탄압받거나 하지 않아?” 하고 물었다. “딱히? 아나키스트라니, 그게 뭐야? 라는 느낌이지. 애초에 아나키스트라 긴밀하게 조직되지도 않고.”라고 답했을 때 그가 느꼈을 황당함에 대해서는 귀국 후 한 영화를 보고 나서야 깨닫게 된다. 회원 규모가 몇 백명에 달하지만 파리의 물가 때문에 올해 말에야 사무실을 얻게 되는, '고등학생을 조직하고' '극좌를 염두에 두며 활동하는' 사회주의자들. 이야기를 잔뜩 나누고 여러 가지를 알게 되어 즐거웠으며, 지구 반대편에서도 사회주의 혁명에 대해 진지하게 생각하며 자신의 위치에서 할 일을 찾는 사람들이 있고 그들과 같은 꿈을 꿀 수 있다는 것에 설레는 시간이었다. 다른 사회에서 보이는 진보적 단면들이며 프랑스의 정치지형과 그 위에서의 생각치 못한 운동의 방식 등은 여러 가지 통찰과 스스로를 깨치는 경험들을 안겨주었다. 그러나 한편으로는, '위험한' 투쟁과 '강력한' 투쟁은 같은 단어가 아니라는 깨달음이며, “정치파업은 금지되어 있으며, 경제파업을 하기 위해서는 지난한 교섭과 조정을 거치고 국가기관에 신고 후 심사를 통해 허가를 받아야 한다” 거나, “아이가 셋 이상이면 출국할 때 줄을 안 선다는 것 따위가 우리의 저출생 정책이다”라거나 “우리나라 극우는 기독교와 그 계열 컬트와 긴밀하게 연결되어 있으며, 식민지배의 영향인지 통상의 자국우월주의보다는 미국과 일본을 숭상하는 경향을 보인다” 같은 부분을 들을 때마다 T 동지와 그 일행이 헛웃음을 터뜨리며 서로를 바라보는 모습에서 알 수 없는 서글픔을 느끼기도 했다. 비행기를 타고 열 네시간을 가면 당연하다고 여긴 것은 당연하지 않고, 당연하지 않다고 여긴 것이 당연하게 되는 곳이 있다는 것. 경험하기 전까지는 그것이 어떤 의미인지 알 수 없었다. 영국 프랑스를 뒤로하고 유로스타를 통해 육로로 영국 런던에 도착했다. 다음 날 아침, 프랑스 동지들과 함께하다 보니 나의 동지들이 생각나 실례를 무릅쓰고 런던에 계시는 아는 동지께 연락 해봤다. 체류 기간 중에는 아쉽게도 만나지 못할 것 같다는 대답을 듣고 결합할만한 단체나 시위를 추천해달라고 말하니, 영국의 팔레스타인 연대 행동 인스타그램 계정(@palestinesolidarityuk)과 더불어 '영국 정부가 시위자들을 보호하지 않고 있다. 경찰력을 동원해 대규모 체포가 이루어졌다. 신변 보호를 위해 집회 참가를 추천하지 않는다.'라는 답을 들었다. 계정을 둘러보니 현재 가장 가깝게 예정된 시위는 토요일로 참가일정이 맞을 것 같지 않고, 프랑스에서 집회에 참가하지 못한 아쉬움과 팔레스타인 총파업이 강력하다는 이탈리아의 정세에 대한 기대를 안고 현지의 활동에 결합할 방법을 찾다 이탈리아의 한 사회주의 조직의 동지들과 연락이 닿게 된다. 런던에서는 특별히 예정된 만남이 없으니 짧은 일정동안 쉬어가는 시간을 갖기로 생각한것도 무색하게, 아침의 찬 공기를 가르며 킹스 크로스 역 인근의 숙소에서 빨래방으로 가는 길에 심상찮은 외관을 한 서점과 마주친다. '1945년부터 영업한 급진적 서점' Housmans 세탁이 끝나고 둘러본 내부는 외관 이상으로 굉장해서, 한국의 기준으로는 상당히 진보적인 담론들도 아동/청소년 도서나 그래픽 노블 등의 낮은 접근성을 가진 매체로 비치되어 있었으며, 다양한 진보적 사회운동과 관련된 유인물을 배부하고 굿즈를 장식하거나 판매하고 있었고, 직접수유 친화/반-인종차별적 '안전공간'으로서의 명시나 청소년을 위한 할인이나 다른 손님이 책값을 대신 내주는 시스템 등 여러 방식으로 진보적 가치를 실현하고 있었다. 남아있는 인칭대명사 뱃지가 He/Him밖에 없는 것에 아쉬워하는 동시에 좌파 서점 고객의 성비에 대해 생각해보며 이런저런 뱃지나 '래디컬 플레잉 카드(역사의 진보에 한 획을 그은 인물들이 그려져 있다)'나 작은 책자를 사서 나온다. 이후에 목적없이 시내를 돌아다니다 보면 하루 저녁 만에도 거리에서 메시지 카드 전문의 문구점이며 크고 작은 서점과 다양한 문구류들을 마주치고 그때마다 즐거워했지만, 다음 날 영국박물관을 나와 세인트폴 대성당으로 향하는 길에 의도도 노력도 없이 같은 일이 일어났을 때에는 아무리 서점이 많다고는 해도 이게 이 도시에서는 얼마나 일반적인 일일지 가늠해보며 혼란에 빠졌다. '사회주의 서점' 이라고는 하지만, 사회주의에 대한 쉽고 짧은 이론서 등이 눈에 띄고, 입지 때문인지 좀 더 가게가 작고 구성이 간결하며 현대적인 인테리어라는 것 외엔 범좌파적 의제의 폭이나 내용의 관점에서 큰 차이는 없었다. 한눈에 봐도 좌파언론 같은 제목에 뒤표지까지 기사가 적힌 잡지들을 둘러보다 작은 '붉은 별' 뱃지와 책 몇 권을 구매한다. '사회주의 서점' Bookmarks 런던의 성이며 사원 같은 관광지들은 4시 반이면 영업을 종료하는 곳이 생각보다 많아 의아해한다. 우중충한 날씨 속에서 갈 곳은 없어도 중랑천을 닮은 템즈강도 보고, 저녁 하늘에 불을 밝히는 빅 벤도 보며 거리를 방황하다 보면 다양한 스티커들을 마주할 수 있었다. 드문드문 보이는 지나간 시위나 기후위기 관련 서적의 북 토크 홍보 전단 같은 것들이 고전적인 방식의 조직화가 아직도 유효하게 여겨진다는 놀라움을 준다. 파리와 비교하면 놀라울 정도로 세속적이고 고도화된 이 도시가 왕과 서점과 메시지 카드로 대표되는 아날로그적 문화 속에 있다는 것은 이런 부분에도 적용되는구나 하는 생각이 들기도 한다. 불충분한 의료복지가 사회적 문제가 되고 있는 것 같다 런던에서 항상 보였던 영국 혁명 공산당(RCP. 마르크스-레닌주의 공산당)의 선전물은 대부분 QR코드가 훼손되어 있었다. 칼 마르크스 워킹 투어. 매주 일요일 출발. 코비드 19에 희생된 사람들을 기리는 벽. 이스라엘을 옹호하는 상징들. 하마스에 구금된 인질의 귀환을 바라거나, 팔레스타인의 행동들을 폭력으로 규정하고 있다. 족히 20여 종은 될 팔레스타인 연대의 스티커와 곳곳에 보이는 공산당의 선전물. 동시에 그중 절반 이상은 뜯겨나가거나 덧칠되거나 다른 스티커로 덮혀 있었고, 방문한 나라들 중 이스라엘 측을 대변하는 메시지 또한 가장 구체적이고 다양했다. 래쉬와 백래쉬 모두 강하고 그 사이에서 충돌이 발생하는, 국지적으로 퍼져나가는 장과 장이 거리 곳곳에서 부딪히는 이미지를 떠올리며 '영국 정부가 시위대를 보호하지 않는다'라는 문장이 반영하는 이 도시의 정세를 상상해본다. 근위병 교대식을 관람하러 버킹엄 궁을 향했을 때, 금요일 낮치곤 유독 붐비는 지하철에서 사람들이 같은 역에서 다 같이 내리고, 전철 안에서 코스프레를 닮은 검은 정장에 높은 실크햇을 쓴 남성이 생활감 넘치는 비닐봉지를 든 것을 목격한다. 의아해하던것도 잠시 열차가 목적지에 가까워지자 몇몇 남성들, 심지어 겉보기 남성이 아닌 사람까지 '영국 신사'의 차림을 한 사람들이 드문드문 보이며, 어른아이 할 것 없이 경찰의 통제가 필요할 정도로 인근을 가득 메워 정작 교대식은 제대로 볼 수도 없었다. 대다수가 전형적인 코카서스계 백인의 인상에 유아차를 끌고 나온 생활감 넘치는 가족들도 심심찮게 보이는 것이 마냥 관광객만 있는 것은 아니었으리라. 행사가 끝나고 바로 옆의 버킹엄 궁 정원에서 시민들의 관심을 익숙하게 무시하는 수많은 새들과 다람쥐에 둘러싸여서도, '왕실 납품' 티 브랜드의 매장 맨 위층에서 차를 마시면서도, 이 차갑고 세속적인 도시에서 이토록 존중의 대상이 되는 고루한 개념, '이 사람들에게 왕이란 무엇인가'라는 얼떨떨한 의문은 가시지를 않는다. 사진으로는 다 담기지 않는 군중들. 비수기의 유럽에서 손에 꼽을 정도로 인구밀도가 높았던 장소이다. 무지개들. 축구 팀 이름으로 여겨왔던 단어들이 전부 런던의 지명이라는 것에 놀랐는데, 지지하는 팀의 이름으로 사회적 가치를 드러내는 모습도 신기하다. 방문한 다른 국가들과 비교해 영국이 특히 인상적이었던 지점은 대도시 특유의 개인주의와 영어권-제국의 다문화적인 배경의 구성원들을 고려한 것인지 식이지향에 대한 고려를 일상적으로 마주칠 수 있는 것. 고통받는 생명으로서의 동물을 묘사하며 비거니즘을 촉구하는 스티커들, 맥도날드의 비건 메뉴 탭, 식당에서의 알러지 여부를 묻는 질문 같은 것은 프랑스와 이탈리아와 같은 미식으로 유명한 나라들에서는 도리어 찾기 힘든 광경이었다. 포장은 물론 상품에서도 콩기름 잉크나 재생지, 혹은 생분해성 플라스틱 등이 비교적 보편화된 것도 눈에 띄었다. 재료를 전부 선택할 수 있는 파이브가이즈의 탄생이며 써브웨이의 패스트푸드 점유율 1위, 비거니즘이나 생태주의를 필두로 하는 진보적 가치를 세일즈 포인트로 삼는 러쉬(Lush)가 만들어진 토양 등에 대해 나름 납득할 수 있을 것 같았다. 맥도날드의 비건 메뉴. 병아리콩으로 만든 너겟 같은 것Dipper과 소스에서는 커리 맛이 난다. 런던의 거리를 걸으며 마주한 시위 선전물의 날짜가 모두 주말인 것을 보아 스위스와 이탈리아의 순서를 바꾸는 편이 낫겠다는 결론에 반쯤 도달한다. 마침 이탈리아 조직의 G 동지로부터 '18일 피렌체 시위가 볼만할 것'이라는 말을 듣고, 마지막 날 로마에서 취리히로 가는 환승편을 취소하고 대신 18일 아침에 출발하는 런던발 피렌체행 항공편을 예약한다. 시위 장소까지의 경로를 찾다 '피렌체 공항은 시내와 가까워 도보로도 접근이 가능하다'라는 정보를 보고 무슨 효용이 있는 건지 고민하지만 이내 잊어버리고 밤을 새워 다시 짐을 꾸린다. [다음 글 보기] [기고] 유럽투쟁기행: 날짜변경선을 넘어서 (2) 이탈리아 피렌체 -
[사회주의 기초학습#8] 기후위기와 민주적 계획경제이윤 생산 체제인 자본주의에서 ‘무엇을, 얼마나, 어떻게 생산할 것인가’는 모두 개별자본이 결정한다. 기후재난 앞에서 화석연료 사용을 중단하지 않는 일, 기후위기의 비용을 노동자들에게 전가하며 폭력적인 해고를 서슴지 않는 일, 에너지 가격을 인상해 폭리를 취하는 일 등이 그래서 벌어진다. 한 줌 자본가들의 이윤을 위해서가 아니라 공동체 전체의 필요를 위한 경제, 사회적 생산수단을 자본가들이 사적으로 소유하는 게 아니라 공동체가 공유하는 경제, 자본가들이 밀실에서 경제적 의사결정을 독점하는 게 아니라 노동자 민주주의 원칙에 따라 생산자 대중이 직접 의사결정에 참여하는 경제, 한마디로 민주적 계획경제가 우리의 지향이 되어야 한다. [목차] Ⅰ. 기후위기와 자본주의 Ⅱ. 기후정의운동, 어떤 방향으로 나아갈 것인가? 1. ‘탈성장’은 자본주의를 극복하는 대안인가? 2. 말름의 ‘기후 전시공산주의’ Ⅲ. 민주적 계획경제란 무엇인가? 1. 마르크스와 엥겔스가 예견한 미래 사회 2. 민주적 계획경제의 핵심: 민주적 노동자권력 3. 현실이 증명하는 민주적 계획경제의 가능성 Ⅳ. 민주적 계획경제로 나아가는 노동자투쟁 1. 노동자 기후파업을 조직하자! 2. 기간산업 국유화와 노동자 통제 ---- Ⅰ. 기후위기와 자본주의 기후 ‘이변(異變)’? 기후 ‘상태(常態)’! 세계기상기구(WMO)가 발간한 ‘2024 전 지구 기후 현황 보고서’(2025. 3. 19)는 2024년 지구 평균온도가 산업화 이전보다 1.55도 상승했다고 밝혔다. 2023년 평균기온이 1.48도 상승하면서 지금껏 가장 뜨거운 해로 기록됐는데, 고작 1년 만에 기록이 갱신된 것이다. 잘 알려져 있듯이, 2015년 유엔 기후변화협약 회의에서 채택된 조약, 즉 파리기후협정은 “지구 온난화로 인한 기온 상승을 산업화 이전 대비 2도 아래로 막고 산업화 이전 대비 1.5도 이상 기온 상승을 제한”하자는 내용을 담고 있다. 그간 기후과학자들은 기온 상승 폭 2도가 기후위기의 ‘티핑 포인트(tipping point)’라고 경고해 왔다. 즉 평균기온이 2도 이상 오르면 그때는 지구 생태계에 돌이킬 수 없는 위기가 초래되므로, 파국을 막기 위해선 기온 상승 폭을 1.5도 이하로 제한해야 한다는 것이다. 물론 1.5도란 기준은 10~20년에 걸친 평균기온을 의미하기 때문에 2024년 한 해 평균기온 기록만으로 1.5도 목표가 완전히 무너졌다고 할 순 없다. 그러나 지금까지의 평균기온 상승분만으로도 세계 곳곳에서 기후재난은 미래가 아니라 당면한 현실이 된 지 오래다. 올해 우리가 맞닥뜨린 기록적 폭염, ‘200년 만의 폭우’ 등도 앞으로 기후 ‘이변(異變)’이란 표현 자체가 현실에 걸맞지 않게 되었음을 나타낸다. 이제 기후재난은 말 그대로 기후 ‘상태(常態)[1]’, ‘뉴 노멀(New Normal)’이 되었다. 지구의 평균기온은 왜 상승하고 있는가? 2010년대 중반까지만 하더라도 산업화 이후 지구 기온 상승이 인간 활동과 무관하다는 헛소리가 횡행한 적이 있다. 그러나 이제 지구의 급격한 기온 상승이 인간의 탄소 배출 때문이란 점은 누구도 부인할 수 없는 과학적 진실이다. IPCC[2]의 5차 보고서(2013년) 때만 하더라도 과학자들은 1950년대 이후의 온난화가 인간 활동과 관련되었을 “가능성이 매우 높다”고 말했지만, 2021년 6차 보고서는 인간 활동이 지구 온난화를 일으킨 것이 “명백하다”고 단언한다.[3] 이는 인간이 대기 중으로 얼마나 많은 이산화탄소를 내뿜는지만 살펴도 직관적으로 파악되는 일이다. 매년 인간이 대기 중으로 배출하는 이산화탄소는 무력 400억 톤에 이른다. 인류는 하나뿐인 지구를 상대로 파국적 결과를 초래할 엄청난 기후 실험을 자행하고 있는 것이다. 이대로 가면 파리기후협정의 1.5도 제한 목표가 실패한다는 것은 주지의 사실이다. 현재 수준으로 기후위기 대응을 계속하면, 2100년까지의 지구 기온 상승 폭은 2.7도에 이를 것으로 예측된다. (한반도를 포함한 중위도 지역은 산업화 이전보다 4도 이상이 높아진다.) 연구자들은 기온 상승 폭이 2도만 돼도, 체온 조절 능력이 떨어지는 노령층은 육지의 1/3 지역에서 생존이 불가능할 것이라 본다. 누구나 재앙을 예감하며, 실감한다. 인류에게 기후위기 대응은 절박한 생존의 문제가 된 지 오래다. 그러나 모든 계급이 다 그렇게 느끼는 것일까? 화석에너지 시대로 돌아가자는 자본가계급 놀랍게도 이 체제의 운영권을 움켜쥔 자본가계급은 아예 기후위기 대응을 포기하는 모양새다. 내일 세상이 망한대도 권력과 금력을 가진 자신들만큼은 끝내 살아남으리라 확신하는 것일까? 폭염, 가뭄, 폭우, 거대산불 등 기후재난으로 인한 희생자는 어차피 노동자 민중일 뿐이라서? 지금 당장 특단의 조치에 돌입해도 한참 늦었다 할 판에 자본가계급은 심지어 화석연료의 시대로 돌아가자는 미친 소리까지 내놓는다. 자본주의 체제 위기의 시대, 즉 자본 이윤 생산의 불확실성에 마주친 시대에는 지구야 어떻게 되건 돈벌이부터 챙기겠다는 것이다. 이것을 상징적으로 보여주는 대목이 바로 트럼프 2기 행정부의 파리기후협약 탈퇴 망동이다. 2025년 1월 20일 미 연방의회 의사당에서 대통령 취임식을 마친 트럼프는 곧바로 지지자들이 모인 ‘캐피털원 아레나’ 경기장을 찾아 파리기후협약 재탈퇴를 비롯한 행정명령에 서명했다. 트럼프는 취임 전부터 기후위기를 ‘사기’라고 주장하며 파리기후협약을 탈퇴하고 화석연료 생산을 확대하겠다는 공약을 내세워왔는데 취임 첫날 이를 단행한 것이다. 트럼프는 취임식 연설에서 인플레이션 위기 원인으로 에너지 가격 폭등과 정부의 과다 지출을 꼽으며, 국가 에너지 비상사태를 선포하고 석유와 가스 시추를 늘릴 것이라 공언했다. 미국은 “지구상에서 가장 많은 양의 석유와 가스를 보유하고 있고, 이것을 사용”할 것이며, 나아가 “미국의 에너지를 전 세계 각국에 수출”하겠다는 것이다. 2021년 기준 미국은 전 세계 탄소 배출량의 14%를 차지하는 세계 2위의 온실가스 배출국이다. 1인당 탄소 배출량 역시 14.86톤을 기록해 호주에 이어 세계 2위다. 세계 평균 1인당 4.69톤의 세 배 수준이다. 그나마 바이든 행정부 시절에는 ‘그린뉴딜’ 운운하며 탄소배출을 줄인다는 모양새라도 취하더니 이제는 그런 겉치레도 집어치우는 것이다. 트럼프의 화석에너지 생산 확대 선언을 미치광이 정치인의 돌발 행동쯤으로 치부해서는 안 된다. 전쟁과 위기의 시대, 안정적 이윤 생산이 불투명해진 시대에 각자도생으로 이윤 생산에 몰두하는 자본가계급 전체의 의식이 발현된 것이라 보는 게 타당하다. 재생에너지 선도 국가로 주목받던 독일에서조차 화석에너지 사용을 늘리겠다는 얘기가 나오는 것이 이를 방증한다. 올해 초 독일 총리 프리드리히 메르츠는 “조기 총선에서 승리하면 가스 화력발전소 50개를 짓겠다”고 공언해 왔다. 독일이 2030년까지 재생에너지 비율을 80%까지 늘리겠다고 약속하고 탈원전 정책에도 나섰던 것을 생각하면 심각한 퇴보다. 지난해 말 독일은 기후변화로 풍력 발전량이 25% 줄어드는 등 재생에너지 공급에 어려움을 겪었다. 또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 이전 러시아산 천연가스에 의존했던 탓에 화력발전 비용도 급격히 증대한 상황이었다. 독일의 전기요금은 OECD 국가 중 3위로, ㎿h(메가와트시)당 440.3달러(2023년 가정용 기준)에 이른다. 프랑스의 2배 수준이다. 이렇게 높은 전기요금이 독일 제조업의 위기를 부르고 있다는 게 화석에너지 사용 정책의 명분이다. 잘 알려진 것처럼, 자동차산업으로 대표되는 독일 제조업은 최근 심각한 침체를 겪고 있다. 독일의 GDP는 2023년 0.3% 감소한 데 이어 2024년에도 0.2% 감소했다. 지난해 말 폭스바겐은 독일 내 공장 3곳을 폐쇄하고 전체 노동자 임금 10%를 삭감하겠다고 발표했을 정도다. 이윤 생산이 안정적이며 자본 축적이 정상적으로 이뤄지는 상황에서는, 자본가들은 “모범시민이고, 아마도 동물학대방지협회 회원일지도 모르며, 게다가 성인(聖人)이라는 평판”[4]을 보유한 채 하나뿐인 지구를 살리기 위한 녹색 투사로 행세할 수도 있다. 그러나 이윤 생산이 장애에 부닥치는 순간이면 자본가들은 언제나 본연의 계급적 이해에 충실해진다. 기후재난이건 뭐건 다 배부른 소리고, 이윤 생산이 최우선이라는 것이다. 윤석열의 친원전 정책과 이재명의 ‘실용’ 정책 일말의 부르주아적 합리성도 갖추지 못한 천둥벌거숭이 윤석열은 기후위기 대응에서도 헛짓거리로 일관했다. 윤석열은 평소 ‘원전 생태계 복원’을 자신의 업적으로 자부했다. 문재인 정부의 잘못된 탈원전 정책을 폐기하고 친원전 정책을 집행함으로써 막대한 ‘국부’를 창출했다는 것이다. 내란 직전인 11월 7일 있었던 기자회견에서 윤석열은 “24조 원 규모의 체코 원전 건설 사업 계약이 마무리되면, 원전 산업을 비롯한 우리 산업 전반에도 더 큰 활력이 불어넣어질 것”이란 자랑을 잊지 않았다. 또 국회의 탄핵안 가결 직전인 12월 12일 발표한 담화문에서도 윤석열은 이렇게 떠들었다. “망국적 국헌문란 세력이 이 나라를 지배한다면”, “원전산업, 반도체 산업을 비롯한 미래성장동력은 고사될 거고 중국산 태양광 시설들이 전국의 산림을 파괴할 것입니다.” 위 발언들은 윤석열의 단세포적 사고 구조를 투명하게 보여준다. 윤석열에게 기후위기는 정책 결정에서 고려 기준조차 되지 못하며, 무엇이 한국 자본가들에게 더 큰 이윤을 창출하는지가 핵심이라는 것이다. 특히 태양광은 중국 자본이 돈을 벌지만 원전은 한국 자본이 돈을 번다는 대목은, 윤석열식 한미일동맹 진영논리가 우스꽝스럽게 드러난 대목이다. 윤석열이 내세운 친원전 정책은 핵발전 고유의 위험성을 간과하고 있을 뿐 아니라, 원전 확대를 위해 기후위기 대응에 불가결한 재생에너지 발전량 목표를 현저하게 후퇴시켰다는 점에서 수천 번 비난받아야 마땅하다. 본래 문재인 정부는 2030년 국가온실가스감축목표(NDC) 목표를 달성하기 위해 2030년 재생에너지 발전 비율을 30.2%까지 올리겠다고 밝혔다(물론 이 역시 턱없이 부족한 목표다). 이때 원전의 발전 비율은 23.9%로 전망됐다. 그러나 윤석열은 2023년 발표한 제10차 전력수급기본계획에서 2030년 원자력발전 비율을 32.4%까지 올리며 재생에너지 발전 비율을 18.6%로 낮춰 잡았다. 원자력발전을 늘리기 위해 재생에너지 발전량을 줄이자는 반동적 행태를 보인 것이다. 그렇다면 이재명 정부는 윤석열 정부와 다를 것인가? 당면한 기후재난에 대응하는 것보다 이윤 창출이 더 중요하다는 윤석열식 논리와 명확하게 선을 긋고 있을까? 그렇지 않다. 민주당 정부가 ‘탈원전’을 표방하던 2017년까지만 하더라도 후쿠시마 원전 사고의 충격이 채 가시지 않았고 원전 해체, 재생에너지 발전망 등이 자본의 새로운 먹거리로 등장하던 시점이었다. 그러나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 등 국제 정세의 격변이 에너지 안보 위기를 부르자, 현재 각국에서 신규 원전 건설 붐이 일어나고 있다. 이런 형편에서 신규 원전 건설 시장은 한국 자본의 상당한 이윤 창출 경로가 될 것임이 분명하다. 자본가계급의 한 분파인 민주당 역시 ‘국익’으로 포장된 이윤 창출의 기회를 마다할 리 만무하다. 올해 2월, 한창 내란 정국이 진행되던 와중에 민주당이 대형 원전 2기를 신규 건설하는 제11차 전력수급기본계획안의 국회 보고 절차에 사실상 동의했던 사실이 이를 드러낸다. 또 민주당은 대선 공약집에서 “탄소중립 산업전환”의 목표가 “경제와 환경의 조화로운 발전”이란 점을 공공연하게 밝히고 있다. 즉 “탄소중립산업의 국산화 및 수출경쟁력 제고”와 “수출기업의 기후통상 대응역량 지원”에 정부 역할을 다하겠다는 것이다. 이처럼 이재명 정부 역시 자본의 이윤 창출이 정책 집행의 첫 번째 기준이다. 이윤 창출에 도움이 될 때는 ‘녹색 자본주의’를 표방할 수 있겠지만, 이윤 창출에 방해가 되면 ‘(자본을 위한) 실용주의’를 내걸고 반동적 기후정책으로 돌아가는 일을 되풀이할 게 뻔하다. 자본주의 체제를 넘어서야 기후위기 대응이 가능하다 결국 작금의 현실은 자본가계급이 오로지 이윤 창출에만 관심이 있을 뿐, 인류 공멸의 위기인 기후재난을 해결할 역량도, 의지도 없다는 것을 보여준다. 기후재난이 가장 가난한 사람들에게서 삶의 터전과 생명까지 앗아 가지만 자본가계급은 놀랄 만큼 태연자약하다. 이윤 증식에 눈먼 자본의 이런 태도는 사실 역사에서 몇 번이고 반복됐던 일이다. 19세기 노동자들을 생존의 벼랑으로 떠밀었던 장시간 노동을 두고, 마르크스는 자본이 이런 태도를 보인다고 묘사했다. “자본은 인류는 장차 퇴화할 것이라든가 인류는 결국 사멸해 버릴 것이라는 예상에 의해서는 그 실천적 활동에 조금도 영향을 받지 않는데, 그것은 마치 지구가 태양에 떨어질지도 모른다는 예상에 의해서는 자본이 아무런 영향도 받지 않는 것과 마찬가지다. … 뒷일은 될 대로 되라지! 이것이 모든 자본가와 모든 자본주의국의 표어이다. 그러므로 자본은 사회에 의해 강요되지 않는 한, 노동자의 건강과 수명에 대해 조금도 고려하지 않는다. 육체적‧정신적 퇴화, 조기사망, 과도노동의 고통 등에 관한 불평에 대해 자본은 다음과 같이 대답한다. 그러한 것들이 우리의 쾌락(이윤)을 증가시켜 주는데 어째서 우리가 걱정해야 하는가라고.”[5] 여기서 “노동자의 건강과 수명”을 ‘기후위기’로, 노동자의 “육체적‧정신적 퇴화, 조기사망, 과도노동의 고통”을 ‘기후위기로 생명을 잃거나 삶의 터전을 상실할 수억 명 기후난민의 고통’으로 바꿔 읽어보자. 오늘날 자본의 태도와 완전히 똑같지 않은가. 기후위기로 노동자 민중이 죽어 나가건 말건, “우리의 쾌락(이윤)을 증가”시켜야 하니 화석연료도 더 많이 추출하고, 원전도 더 많이 짓겠다는 것이다. 기후재난이 현실이 된 지금, 절박한 심정으로 모든 대안을 모색해 봐도 결국 우리가 다다를 결론은 하나뿐이다. 공동체의 안전보다 이윤 생산을 우선시하는 자본주의 체제를 놔두고서는 기후위기를 해결할 수 없다는 것이다. 즉 기후정의 운동은 명확하게 반(反)자본주의의 기치를 내건 운동이 되어야 한다. 그리고 궁극적인 대안은 자본의 이윤이 아니라 공동체 전체를 위하는 경제 체제, 즉 민주적 계획경제 체제를 건설하는 것이 되어야 한다. 이 점을 이야기하기에 앞서 우선 기후정의 운동에서 주목받는 두 가지 논의 흐름, 즉 ‘탈성장론’과 ‘기후 전시공산주의론’을 살펴보도록 하자. 사회주의 운동의 대안인 민주적 계획경제가 어떤 모습일지, 그 구체적 상(象)을 그려보는 데 도움이 될 것이다. Ⅱ. 기후정의운동, 어떤 방향으로 나아갈 것인가? 1. ‘탈성장’은 자본주의를 극복하는 대안인가? 현재 기후정의운동에서 ‘탈성장’은 의심할 여지 없는 지고지순(至高至純)의 가치처럼 보인다. 일례로 2022년 3월 ‘체제전환을 위한 기후정의포럼’은 다음과 같이 주장했다. “지속적인 경제성장은 자본주의 체제의 분리해낼 수 없는 속성이다. 자본주의 체제는 무한히 이윤을 창출하고 축적하려는 철칙을 관철하기 위해 끝없이 경제 규모를 성장시켜 왔으며, 이에 필요한 값싼 노동과 자원을 투입하기 위해 노동자를, 여성을, 지구적 남반부의 민중들(이는 한 국가에서도 존재한다)을 그리고 비인간 동물을 포함한 지구 시스템을 지속적으로 착취하고 파괴해왔다.” 이처럼 ‘탈성장’이란 기후위기 대응의 자본주의적 흐름(대표적으로 녹색성장, 그린뉴딜 등)과 단절하고, 기후운동을 ‘체제전환’을 위한 사회운동으로 재정립하기 위한 핵심 가치다.[6] 이윤 생산 체제인 자본주의의 야만성과 무정부성을 지적한다는 점에서 탈성장론은 물론 긍정적 측면을 가지고 있다. 그렇다면 기후정의운동의 주요 담론으로 등장한 탈성장론을 통해 우리는 과연 자본주의 이후의 대안 체제를 모색할 수 있을까? 이하에서 사이토 고헤이의 『지속 불가능 자본주의(2021)』와 요르고스 칼리스 등이 쓴 『디그로쓰(Degrowth, 2021)』를 통해 탈성장론을 비판적으로 검토해 보자. ‘생산력 지상주의’에서 ‘탈성장 코뮤니즘’으로 마르크스의 변화? 마르크스 엥겔스 전집(MEGA)의 편집위원이기도 한 사이토 고헤이는 탈성장론자 중 가장 왼쪽에 있다고 평가된다. 그는 마르크스가 젊은 날에는 ‘생산력 지상주의자’이면서 ‘유럽 중심주의자’였다가, 생의 마지막에 이르러 “탈성장 코뮤니즘”이란 도달점에 이르렀다고 주장한다.[7] 구체적으로 사이토 고헤이는 마르크스가 러시아의 자술리치에게 보낸 편지에서, “자본주의 단계를 거치지 않아도 러시아는 코뮤니즘을 실현할 가능성이 있다고, … 분명하게 인정했다”고 한다. 하지만 이것은 자기주장을 위해 마르크스를 단편적으로 왜곡한 것에 불과하다. 마르크스와 엥겔스는 러시아가 ‘미르’라는 농촌공동체에서 자본주의 단계를 뛰어넘어 공산주의 사회로 직행할 수 있는지에 대해 시종일관한 견해를 표명해 왔다. 즉 “러시아의 혁명이 서구의 노동자 혁명에 신호를 보내고 그리하여 양자가 서로를 보완”한다는 조건이 충족될 경우, “그때 러시아의 토지 소유는 공산주의적 발전의 출발점이 될 수 있을 것”이라고 말이다.[8] 마르크스와 엥겔스에 따르면, 러시아가 자본주의 발전 단계를 생략하고 공산주의로 나아가는 것은 결코 ‘독자적으로’ 수행할 수 있는 과업이 아니다. 1875년 엥겔스는 「러시아의 사회상태」란 글에서 이 말의 의미를 좀 더 직접적으로 표현한다. “(러시아의) 공동체를 있을지도 모르는 그러한 개조로 이끄는 데 있어서 주도권은 그것 자체로부터 나오는 것이 아니라 서구의 공업 프롤레타리아트들로부터만 나올 수 있다는 것이다. 부르주아지에 대한 서유럽 프롤레타리아트의 승리, 그와 연계된 사회적으로 지휘되는 생산에 의한 자본주의적 생산의 대체, 그것은 러시아 공동체를 동일한 단계로 고양시키는 데에 필요한 전제 조건이다.”[9] 이후 마르크스와 엥겔스는 러시아에서 자본주의의 발전으로 구래(舊來)의 농촌공동체가 빠른 속도로 분해되는 것에 주목한다. 1894년 쓰인 「러시아의 사회상태」 후기에서 엥겔스는 다음과 같은 마르크스의 편지글을 인용한다. “(러시아가) 일단 자본주의 경제의 소용돌이에 휩싸인다면, 다른 세속적인 민족들과 완전히 똑같이 이 제도의 가차 없는 법칙을 견뎌 내야 할 것이다. 이것이 전부이다.” 자본주의 생산력 발전에 대한 변증법적 인식 핵심적으로 말해서, 탈성장론을 주창하는 사이토 고헤이나 요르고스 칼리스 모두 자본주의 생산력 발전의 양면성을 변증법적으로 인식하지 못한다는 한계를 보인다. 요르고스 칼리스는 자신의 책에서 생산력 발전에 대한 부정적 인식을 더 명료하게 드러낸다. “이기적 경쟁을 기반 삼은 단종상품 경제의 세계화가, 인류 역사 전 기간에 사회적 진화의 동력이었던 무수한 형태의 상호부조 활동을 계속 갉아먹었던 것으로 보인다.”라는 대목이 그렇다. 그에게 “사회적 진화의 동력”은 자본주의 이전 공동체에 존재했던 자율적 “상호부조 활동”이며, 자본주의 산업화는 이를 훼손한 것에 지나지 않는다. 너무도 단순한 접근이다. 자본주의 생산력 발전은 그 자체로 대립물의 통일로서의 성격을 지니고 있기 때문이다. 일례로 일본 제국주의가 식민지 조선에 철도를 부설한 목적은 대륙 진출을 통해 일본 독점자본의 이익을 도모하기 위함이었다. 이는 요로고스 칼리스의 표현처럼, 조선의 전통적 “상호부조 활동”을 뿌리째 뒤엎었던 침략 행위였던 것도 이론의 여지가 없다(철도 노선에서 비켜난 조선의 전통적 상업 중심지가 일거에 몰락했음을 떠올려 보라). 그러나 일단 부설된 철도는 동시에 진보적 역할도 수행했다. 1921년 레닌이 조선의 혁명가 이동휘에게 날카롭게 지적했듯이, 철도는 1919년 3.1운동의 전국적 확산을 가능케 한 물질적 기반으로 작동한 것이다.[10] 요컨대 자본주의 생산력에 대한 변증법적‧종합적 인식이 필요하다. 첫째, 자본주의 생산력 발전 과정에서 자본주의의 무덤을 팔 혁명적 계급, 즉 노동자계급이 함께 성장한다는 점에 주목해야 한다. 자본가들은 경쟁에서 살아남기 위해 노동생산성을 지속적으로 발전시키고 자본의 집중, 집적을 도모한다. 그런데 그 과정은 동시에 분산돼 있던 노동자들을 집결시키고, 노동자들에게 집단적 생산에 필수적인 사회적 규율을 확립시키며, 자본의 이윤 생산을 전면적으로 중단시킬 수 있는 혁명적 잠재력을 노동자들에게 부여하는 과정이기도 하다. 둘째, 자본주의 이전 사회의 생산관계가 제아무리 공동체적 형식을 띠고 있다 하더라도, 자본주의적 발전 과정을 거치지 않은 미발달된 생산력 수준에서 공산주의로의 이행은 기대할 수 없다는 점을 상기해야 한다. 마르크스가 지적했듯이, “생산력의 발전 없이는 결여가 단지 궁핍만을 일반화할 뿐이고, 따라서 궁핍과 함께 필수품을 둘러싼 투쟁이 다시 시작”될 것이기 때문이다.[11] 마르크스의 예견은 러시아혁명으로 탄생한 최초의 노동자 국가가 몰락하는 과정에서 역사적으로 실증된다. 트로츠키가 지적한 대로, 소련 “관료집단의 통치 기반은 소비재의 빈곤과 이에 따른 만인의 만인에 대한 투쟁”이었다.[12] 즉각적인 탈성장이 필요한 부문 vs 급속한 성장이 필요한 부문 자본주의 생산력이 변증법적 성격을 가진다는 것은, 현재 산업 분야 중에서 탈성장(나아가 즉각적 생산 폐지)이 시급한 부문과, 반대로 급속하고 비약적인 성장이 필요한 부문이 동시에 공존한다는 것으로도 표현할 수 있다. 즉 우리는 ‘①자본의 이윤 획득을 위해 무분별하게 이뤄지는 낭비적‧재앙적 생산력 발전’과, ‘②생태환경을 보전하며 모든 종류의 차별과 억압을 일소하고 인간 해방으로 나아가기 위해 꼭 필요한 생산력 발전’을 구분해야 한다. 먼저 탈성장(또는 생산 폐지)이 즉각적으로 이뤄져야 하는 부문을 떠올려 보자. 우리는 이윤생산 체제가 얼마나 헛되이 노동력과 자원을 낭비하면서 무분별하게 탄소를 배출하고 있는지, 수백 가지 실례를 쉽게 찾을 수 있다. 몇 년 전 가상화폐 투기 광풍이 불었을 때 가상화폐 채굴을 위해 사용됐던 전력 사용량은 상상을 초월했다. 2021년 영국 케임브리지대 대안금융센터는 비트코인 채굴을 위한 전력소비량을 매년 149TWh(테라와트시)라고 추정했는데, 이는 말레이시아(147TWh), 스웨덴(131TWh), 아르헨티나(125TWh) 등 일개 국가의 연간 전력소비량을 앞지르는 규모다. 또 판매돼야만 잉여가치를 실현할 수 있는 상품이 “목숨을 건 도약”을 위해 마다하지 않는 과대포장, 경쟁사로부터 고객을 빼앗아 오기 위해 개별 자본이 지출하는 천문학적인 마케팅 비용, 그밖에 금융업, 광고업 등의 존재 자체도 모두 자본주의적 낭비의 실례다. 공동체의 필요가 아니라 자본의 이윤을 최우선시하는 체제에서는 이런 불필요한 자원 낭비가 필연적이다. 자본가들은 서로 간의 경쟁에서 살아남기 위해 생산을 위한 생산, 축적을 위한 축적으로 맹목적으로 돌진하기 때문이다. “사용가치와 향락이 아니라 교환가치와 그 증식이 자본가의 추진력 동기가 된다. … 자본주의적 생산의 발전은 필연적으로 한 기업에 투하되는 자본을 끊임없이 증대시키고, 또 경쟁은 자본주의적 생산양식의 갖가지 내재적 법칙을 개별 자본가들에게 외적인 강제법칙으로 강요한다. 경쟁은 자본가에게, 자본을 유지하기 위해서는 그것을 끊임없이 증대시키도록 강제하고, 그는 오로지 누진적인 축적을 통해서만 자본을 증대시킬 수 있다. … 축적할지어다, 축적할지어다! 이것이 모세와 예언자들의 말이다!”[13] 이와 반대로 탈성장 대신 집중적인 자원 투입을 통해 시급히 생산력을 끌어올려야 하는 부문도 동시에 존재한다. 대표적으로 재생에너지 부문을 꼽을 수 있을 것이다. 화석연료 연소로 인한 이산화탄소 배출을 중지시키자면, 그리고 인류의 미래를 담보로 대책 없이 확대되는 원전 건설을 막자면, 재생에너지 부문의 기술 개발과 생산성 향상이 필수적이다. 재생에너지 생산의 간헐성을 극복하기 위한 에너지저장장치(ESS), 수전해 그린수소 생산기술 등이 그렇다. 또 우리 사회에 꼭 필요한 노동이지만, 자본주의가 노동자계급의 분할을 통해 저임금 불안정 노동자에게 강요하는 열악한 노동이 있다. 예컨대 수천만 명이 배설하는 분뇨와 음식물쓰레기를 매일 처리하는 노동이 존재하며, 맨홀 작업‧고압송전탑 작업처럼 생명의 위험을 무릅써야 하는 노동도 있다. 이 노동을 좀 더 손쉬운 것으로, 좀 더 안전하고 위생적인 노동으로 바꾸기 위해서는 기계화, 로봇화 등의 노동생산성 발전이 필수적이다. 인간을 고통스러운 질병, 감염병 등에서 해방하기 위한 보건의료기술의 발전도 시급하다. 전 세계에서 희귀병을 앓고 있는 사람의 숫자는 약 3억 명에 이르며 이 중 50%가 어린이다. 희귀병, 난치병 환자를 위한 치료제 개발에 좀 더 많은 사회적 자원을 투여해야 한다는 데 이견이 있을 수 없다. 대규모 기계제 생산이 아니라는 점에서 탈성장론자들이 주목하는 돌봄노동의 영역에서도 생산력 발전은 꼭 필요하다. 갓난아기의 천 기저귀를 종일 빨아대야 하는 돌봄노동과 친환경 생분해 일회용 기저귀를 사용하는 돌봄노동을 같은 자리에 놓을 수 없다. 장바구니를 들고 식재료를 일일이 구입해 요리해야 하는 돌봄노동과 대공업적으로 생산된 밀키트를 전자렌지에 넣고 돌리기만 하면 되는 돌봄노동은 질적으로 다르다. 가사노동, 돌봄노동의 사회화로 성차별 폐지의 물질적 토대를 형성하기 위해서도 생산성 향상이 필요하다. 마지막으로 저개발국가에서 기본적인 생활 인프라의 발전이 필요하다. 2020년 기준으로 세계 인구의 4분의 1인 20억 명은 안전한 식수를 제공받지 못하고 있으며, 세계 인구의 절반인 36억 명은 안전한 위생시설을 이용하지 못하고 있다. 세계 인구 중 4억 9,400만 명이 여전히 노상 배변을 하고 있다. 여기서도 당연히 성장과 발전이 필요하다. 물론 탈성장론자들도 이 점을 모르는 게 아니다. 여전히 성장이 필요한 부문이 있다는 점을 적극적으로 인정한다. 그런데 문제는 여기서 드러난다. 우리는 ‘탈성장’이 필요한 부문과 ‘성장’이 필요한 부문을 어떻게 조정하고 통제할 수 있는가? 다시 말해 탈성장이 필요한 부문에서 비효율적으로 낭비되는 노동과 자원을, 꼭 성장이 필요한 부문으로 급속히 전용(轉用)함으로써 생태환경을 보전하고 인간 해방의 토대를 앞당기는 일을 어떻게 수행할 것인가? 탈성장론의 전략: ‘커먼(common, 공공재)’ 되찾기 탈성장론자들은 이 질문에 대해 제대로 답하지 못한다. 탈성장론들이 주목하는 것은 협동조합을 통한 ‘커먼(common, 공공재)’ 되찾기, 지역 공동체에서의 상호부조와 협력, 개인 소비 방식의 전환 등이다. 먼저 지역 협동조합을 통한 ‘커먼(common, 공공재)’의 공동체적 소유를 살펴보자. 물론 생산수단의 사회화는 마르크스주의의 오랜 강령이다. 그러나 탈성장론자들은 ‘커먼’의 영역을 확장하는 것을, 자본주의 국가권력을 우회한 채 시민들의 자발적인 상호부조와 협력을 통해 충분히 달성될 수 있는 것으로 간주한다. 구체적으로 사이토 고헤이는 “‘커먼’의 핵심은 사람들이 생산수단을 자율적‧수평적으로 공동 관리하는 것”이므로, 전력 부문을 국유화하는 대신 시민전력회사와 에너지협동조합으로 재생에너지를 보급하는 것이 필요하다고 주장한다. “전력을 국유화해도 원자력발전처럼 닫힌 기술이 도입되면 여전히 안전성 등에 문제가 남기 때문”이다. 사이토 고헤이는 명시적으로 “‘커먼’을 관리할 때 반드시 국가에 의존할 필요가 없다”고 말한다. 사이토 고헤이가 예로 든 전력산업을 두고 이야기해 보자. 우리가 잘 알고 있듯이 재생에너지는 간헐성이란 특징을 가지고 있다. 즉 재생에너지의 특성상 어느 지역에서는 전력이 넘쳐 생산되고, 어느 지역에서는 전력이 부족할 수 있다. 이때 전력 수요를 원만하게 보장하기 위해 전국적으로 전력망을 촘촘히 연결해 전력의 효율적 생산, 저장, 교환을 도모하는 것이, 과연 일개 지역 협동조합 차원에서 실현 가능한 일일까? 어느 지역에서는 시민 협동조합이 공동체의 필요를 위해 전력을 생산할 수도 있다. 그러나 바로 옆 지역에서는 이윤에 눈먼 거대자본이 전력을 생산, 판매 중일 수 있다. 이 거대자본은 어떻게 통제할 수 있을까? 더구나 거대자본은 자본가 국가권력의 비호를 받고 있을 것인데, 역사가 증명하듯이 자본가 국가권력은 자본의 이윤 생산을 보장하기 위해 폭력적 수단을 서슴지 않는 존재다. 사실 자본의 이윤 보장을 위해 자본가 국가가 굳이 나서지 않더라도, 소규모로 운영되는 시민 전력회사가 대공업적 방식으로 운영되는 거대 전력회사와 비용, 효율성 경쟁 등에서 살아남을 거라 기대하기 어렵다. 사이토 고헤이와 요르고스 칼리스는 바르셀로나의 협동조합 운동과 사회연대경제를 입에 침이 마르도록 칭찬한다. 바르셀로나는 전 세계에서 협동조합 운동이 가장 활성화된 곳이다. 그러나 사회연대경제가 바르셀로나 전체 일자리 수에서 차지하는 비율은 8%, 총생산액은 바르셀로나 전체 GDP의 7% 정도에 불과하다. 선진 자본주의 국가에서 협동조합 운동이 차지할 수 있는 공간은 고작 저 정도에 그칠 뿐이다. 마르크스가 지적한 대로, “노동의 사회적 생산력의 발전은 대규모의 협업을 전제”로 하기 때문이다. “오로지 이 전제 아래에서만 노동의 분할과 결합이 조직될 수 있으며, 생산수단을 대량 집적에 의해 절약할 수 있고, 또 그 소재적 성격 때문에 공동으로밖에 사용할 수 없는 노동수단(예를 들어 기계 시스템 등)이 생겨날 수 있으며, 나아가 거대한 자연력을 생산에 이용할 수 있을 뿐만 아니라 생산과정을 과학의 기술적 응용으로 전화시킬 수 있다.”[14] 그래서 마르크스주의자들은 상호부조를 통한 소규모 자급자족 경제 대신, 민주적 노동자권력이 국가권력을 장악할 필요성을 제기한다. 오늘날의 고도로 발전된 생산력은 국가적 차원에서, 더 나아가서는 세계적 차원에서의 조정과 통제를 필요로 하며, 국가권력을 장악하지 않고 그것을 실현한다는 것은 불가능하기 때문이다. 탈성장론의 전략: 돌봄노동을 주목하는 이유 사이토 고헤이나 요르고스 칼리스가 돌봄노동에 전략적 지위를 부여하는 것도 앞서와 비슷한 정치적 함의를 지니고 있다. 사이토 고헤이가 돌봄노동을 중시하는 이유는 돌봄노동이 “기계화가 어려워서 인간이 노동하지 않으면 안 되는” “노동집약적산업”이며, 그 자체로 사용가치 생산을 중시하는 노동이기 때문이다. 또 “탈성장 코뮤니즘이 돌봄노동에 주목하는 것은 … 세계 각지에서 자본주의의 논리에 대항하여 들고일어나는 이들이 바로 돌봄노동 종사자들” 때문이기도 하다. ‘돌봄 계급의 반역’은 자본주의 생산관계에 얽매이지 않는 자주 관리로 나아갈 가능성 역시 가진다고 한다. 지나친 주장이다. 물론 노동자계급의 한 부문으로서 돌봄노동자가 조직되고, 투쟁하고, 자본주의 생산관계를 넘어서는 대안 질서를 건설하려는 것은 매우 중요한 일이다. 특히 돌봄노동이 주로 여성들에게 전가되는 현실에서, 돌봄노동의 가치를 인정받기 위한 투쟁은 성별 분업을 십분 활용해 노동자계급을 분할하는 자본에 맞서는 투쟁이기도 하다. 그러나 이것이 유독 돌봄노동에만 전략적 지위를 부여하는 근거는 되지 못한다. 노동조건이 가장 열악하다는 존재 조건이, 그 자체로 가장 전투적인 실천이나 다른 노동자계급 부문을 선도할 역량을 담보하는 것은 아니기 때문이다. (혁명적 시기가 아닌 일상적 시기에는 더욱 그렇다.) 또 자본주의 이윤 생산의 중심이 돌봄노동 부문이라고 보기도 어렵다. 한국도 그렇지만, 일부의 시장화된 고가(高價) 돌봄서비스, 그리고 가정에서 무급으로 행해지는 돌봄을 제외하면, 대부분의 나라에서 돌봄 ‘임금노동’의 보수는 국가나 지자체의 공적 재원으로 부담된다. 보육교사의 보육료, 요양보호사의 장기요양보험료 등이 그것이다. 이들의 노동조건은 자본가 정부가 얼마나 많은 재원을 지출하느냐로 결정되는데, 자본가 정부의 지출 규모는 자본주의 경제의 경기 순환이 어느 지점을 통과하고 있는지, 즉 민간 자본의 이윤율에 따라 결정될 수밖에 없다. 그렇다면 이들은 왜 돌봄노동에 주목하는 것일까? 요르고스 칼리스의 『디그로쓰(Degrowth)』에서 직접적인 답을 발견할 수 있다. 그는 기본 소득을 제안한다. “탈성장과 보조를 맞추는 다른 UBI(Universal Basic Income, 보편 기본 소득) 정책들은 개인을 착취적 고용에서 해방하고, 환경 파괴 체제에서 벗어나는 대전환을 뒷받침할 수 있는 물질적 환경의 조성을 촉구한다.” 자본주의가 등장시킨 임금 노동자계급을 보면서 마르크스주의자는 자본주의의 착취 질서를 뒤엎을 거대한 혁명적 주체를 발견한다. 반면 요르고스 칼리스는 임금 노동자계급을 보면서 “개인을 착취적 고용에서 해방”시킬 필요성을 느낀다. 요로고스 칼리스는 자기 주장을 일부 페미니스트들[15]로부터 차용했음을 드러낸다. “급진적 페미니스트들과 나눈 대화를 통해 우리는 보편 돌봄 소득을 제안한다. 이것은 … 성별 분화가 심각한 무급 돌봄 활동에 대한 사회적 인정을 전면에 내세운다는 점 … 돌봄 소득론은 우리 자신, 우리의 친족과 다른 많은 이들을 돌보는 우리 모두의 역량과 활동에 우리 모두의 부를 투자하는 것으로 보편 소득을 이해하며, 이러한 이해를 통해 형평과 연대를 촉진하고자 한다.” “페미니스트들은 상업적 영역에 포섭되지 않은, 시장 밑에 숨어 있는 가정 내 돌봄, 의료 돌봄, 식료품 제공 돌봄, 어린이와 병약자와 노인을 위한 돌봄 같은 돌봄노동을 포함하여, 노동과 관련이 있는 비판작업과 대중 조직화를 선도해왔다. 페미니스트들은 모든 성인에게 풀타임 노동을 요구하며 노동을 쥐어짜는 경제 시스템 (바로 이것을 통해서 매일, 세대를 넘어 인간의 삶과 집단과 자연환경이 재생산되고 있다) 안에 기본 구조로서 존재하는, 여성들의 희생에 관한 우리의 인식을 증진시켜 왔다.” 자본주의의 생산 영역(또는 이윤 생산의 중심부)에서 자본의 이윤 생산을 중단시킬 수 있는 임금 노동자들이 아니라, 자본주의의 재생산 영역(또는 생산관계의 외부)에서 무급으로 돌봄에 종사하는 여성들, 지역 커뮤니티에서 상호부조와 협력을 통해 자본주의를 벗어나고자 하는 개인들이 변혁의 주체로 호명된다. 그래서 돌봄노동에 전략적 지위가 부여되는 것이다. 마리아 미스가 1991년에 쓴 ‘소비자해방’이란 글에는 동일한 아이디어가 담겨 있다.[16] 이 글에서 마리아 미스는 “거대한 경제단위에서는 생태적 지속가능성, 자립, 여성과 어린이의 욕구를 우선시할 수 없다. 이것들은 훨씬 더 작고 분산된 단위를 필요로 한다. 그렇게 되면 생산과 소비가 조율될 수 있을 것이며, 또한 소비의 필요에 생산을 맞추는 일은 사람들로 하여금 생산결정을 내리는 데 진정으로 참여할 수 있게 해줄 것이다. 소규모 경제단위는 공동체 내의 협동을 용이하게 하며, 자립으로 나아가는 데 필요한 첫걸음이 될 것이고, 상부상조와 호혜성 같은 덕목이 작용하도록 만들 것이다.”라고 주장했다. 마리아 미스가 주목하는 것은 일본의 세이까쯔클럽 소비자운동이다. 이것은 “생산자와 소비자를 직접 이어주는 대안적 경로”를 통해 자본의 이윤 생산을 종식시키겠다는 운동이다. 시종일관 자신의 ‘탈성장론’이 자본주의 체제 내부의 ‘탈성장론’과는 다르다고 강조했던 사이토 고헤이도 이 대목에서는 별반 다를 게 없다. “억제 없는 소비에 사람들을 몰아세우는 ‘자본의 전제’ 아래에서는 자기 억제의 자유를 선택하기가 어렵다. … 다만 반대로 이렇게 생각할 수도 있다. 자기 억제를 자발적으로 선택하는 것은 자본주의에 저항하는 ‘혁명적’ 행위라고.” 문제는 이런 “혁명적 행위”가 소위 먹고살 만한 중간계급에서나 가능하다는 점이다. (어디까지나 더 많은 이윤을 목표로 한 것이지만) 대자본이 대공업적 방식으로 생산한 상품을 저렴하게 공급하는 인터넷 쇼핑몰 대신, 지역 협동조합에서 품앗이 협업으로 생산한 수공업품을 이용할 수 있는 계층은 극히 드물다. 우선 시간이 넘쳐나야 할 것이다. 이런 주장은 장시간 노동에 시달려 하루하루가 피곤한 대다수 노동자계급에 냉소만을 불러일으킬 게 뻔하다. 또한 자본주의 체제에서 탈성장 담론은 노동력 재생산 비용을 감축하려는 자본가계급의 이데올로기로 오용될 가능성도 높다. 예컨대 자본가정부가 전력 수요를 줄여 지구를 구하자면서 전기요금을 대폭 인상하자고 하면 어떻게 대응할 것인가? 탈성장론은 노동자계급 생활에 대한 긴축 요구로 이어지기 십상이다. 기후정의 운동에서 노동자계급의 광범위한 대중운동을 조직하자면, 노동자의 고용이나 생활조건에 대한 일체의 공격에 단호히 맞서면서 동시에 생태환경의 보호에 나서자고 주장해야 한다. 마르크스주의 관점에서의 탈성장론 비판 사회주의자들은 탈성장론자들과 달리, 근본적으로는 자본의 이윤 생산을 위한 것일지라도 자본주의가 사회적 집단노동의 조직을 통해 진정한 생산력 발전의 주‧객관적 토대를 형성하는 것을 주목한다. 자본가는 인류와 생태환경을 위한 진정한 생산력 발전에는 전혀 관심이 없는 “가치증식의 광신자”일 뿐이지만, 역설적으로 자신의 목적을 달성하기 위해 “각 개인의 완전하고 자유로운 발전을 근본원리로 하는 더욱 높은 사회형태의 유일한 현실적 기초가 될 수 있는 물적 생산조건”을 창조한다.[17] 여기서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주체적 측면에서 노동자계급의 형성이다. 자본주의 생산과정 속에서 노동자계급은 사회적 역량을 축적해 나간다. 자본간 경쟁의 결과인 자본의 집중‧집적으로, 분산돼 있던 노동자들은 서로 연결되고, 공동의 규율을 확립하며, 자본의 이윤 생산을 전면적으로 중단시킬 수 있는 혁명적 잠재력을 보유하게 된다. 사회주의자들은 바로 이 노동자계급이 일련의 계급투쟁 과정을 통해 국가권력을 장악하고 민주적 노동자권력을 수립하면, 비로소 사회 모순의 진정한 해결이 가능해진다고 본다. 요약해 보자. 탈성장론은 자본주의 생산 발전의 양면성, 즉 자본주의적 생산력 발전이 미래 사회로의 이행을 담보하기 위한 주‧객관적 토대가 된다는 사실을 인식하지 못한다. 그 실천적 귀결은 임금 노동자계급이 갖는 전략적 중심성에서 이탈하는 것, 중앙집중화된 노동자 생산통제 대신 자본주의 체제 내부에서 소비자운동을 비롯한 풀뿌리 상호부조 활동에 머무르는 것이다. 이들에겐 자본의 이윤 생산을 폭력적 수단으로 수호하는 자본가 국가권력을 어떻게 뒤집을 것인가에 대한 문제의식 자체가 결여돼 있다. 반면 사회주의자는 궁극적으로는 계급독재 수단인 국가권력을 사멸시키고 공동체 내 진정한 상호부조와 협력을 실현하기 위해, 역설적으로 국가권력을 장악하려 한다. 즉 노동자 국가를 수립한다는 목적의식 아래 일상적 실천을 조직한다. 레닌은 이런 의미에서 “프롤레타리아트는 잠정적으로만 국가를 필요로 할 뿐”이며, “우리는 이러한 목표를 달성하기 위하여 피억압계급의 잠정적인 독재가 계급을 폐지하는 데 필수적이듯이, 착취자에 대항하여 국가권력의 도구와 원천들과 수단들을 잠정적으로 사용해야 한다고 주장”했다.[18] 2. 말름의 ‘기후 전시공산주의’ 안드레아스 말름의 주장 『코로나, 기후, 오래된 비상사태』(2021)를 쓴 안드레아스 말름은 현 국면을 비상사태, 일종의 ‘전시’로 규정해야 한다고 주장하며 ‘기후 전시공산주의’ 혹은 ‘생태적 레닌주의’를 제기한다. 안드레아스 말름의 이 책은 코로나19 위기의 한복판에 출간되었다. 그는 기후위기와 코로나19 위기 모두 자본이 만든 것으로 본질이 같다고 주장한다. 기후위기가 자본의 이윤욕 때문인 것처럼, 코로나19 같은 인수공통 감염병도 자본이 이윤 증식을 위해 야생동물의 서식지를 무차별하게 파괴해 탄생한 것이기 때문이다. 코로나19 위기 극복을 위해 국가권력이 사활적으로 대응한 것처럼, 기후위기라는 비상사태에도 국가적 동원 체제가 필요하다는 것이 안드레아스 말름의 주장이다. 안드레아스 말름은 기후위기에 대응해 일종의 ‘전시 동원체제’를 구성하려면, △시간이 우리 편이라고 믿는 점진적 사민주의, △국가권력을 거부하는 아나키즘 모두를 거부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사회민주주의의 이상향이었던, 즉 1950년대부터 1970년대 중반까지의 스웨덴 사회 같은 평온한 날들은 “장기 비상사태 시국”에서는 다시 돌아올 수 없다. 또 아나키즘의 교리는 ‘아랍의 봄’과 코로나19를 통해 오류로 입증됐다. 이집트혁명은 저항 세력이 국가를 장악하지 못했기 때문에 혁명에 실패했음을, 코로나19는 국가가 취약한 이들을 위한 상호부조 활동을 책임져야 함을 보여준 것이다. 말름은 레닌의 『임박한 파국』을 인용하며, 현재는 파국에 대처하기 위해 자본에 대한 단호한 강제조치가 필요한 시기라고 주장한다. 탄소배출권 거래 제도, 탄소세 부과 등 자본주의적 시장 내 조치로는 실질적 변화를 끌어내지 못했다면, 이제 국가권력을 동원해 급진적 조치를 시행해야 한다. 10월 혁명을 앞두고 레닌이 노동자 국가는 전쟁의 종식, 곡물 공급의 통제, 은행과 기업 연합들의 국유화, 주요 생산수단 사유제의 종식 등의 급진적 조치를 취할 것이라고 선동했던 것처럼 말이다. 말름은 구체적으로 기업들의 투입과 산출을 철저히 분석해 열대 지역에 대한 수탈을 중단시키고, 화석연료로 돈을 버는 모든 민간기업을 국유화해 “경제에서 화석연료 사업을 영구 삭제”해야 한다는 등의 주장을 내놓는다. 혁명 대신 ‘직접적 대중행동’? 말름은 이러한 조치들이 자본주의적 방법으로는 시행 불가능하며, 자본주의적 국가도 이를 강제할 수 없다고 올바로 지적한다. 그렇기 때문에 사회주의자들은 여기서 노동자 혁명을 통한 국가권력의 장악 필요성을 제기한다. 그러나 말름은 그 대신 ‘대중행동을 통해 국가기구가 자본과의 쇠사슬을 끊게 한다’고 말하는 것에 그친다. 말름은 방금 자본주의 국가는 이를 할 수 없으리라고 지적해 놓고선, 우리가 대중행동을 통해 강제력을 행사해야 하는 국가는 어쨌든 자본주의 국가일 수밖에 없지 않냐고 되묻는다. “코로나 위기와 기후위기를 처음 비교한 결과 도출된 결론은 어떤 자본주의 국가도 결코 스스로 이 같은 일을 할 수는 없으리라는 것이다. 자본주의 국가가 이 과업에 나서게 하려면, 시민이 국가에 강제력을 행사해야 한다. 선거운동부터 사보타주까지 일체의 대중적 영향력을 통해서.” “그러나 어떤 국가를 활용한단 말인가? 우리는 방금 자본주의 국가가 본성상 체제 전환을 스스로 단행할 능력이 없다고 주장했다. 그리고 아직껏 다른 형식의 국가는 역사에 등장하지 않았다. 소비에트 기반의 노동자 국가가 하룻밤 새에 기적적으로 탄생하지는 않을 것이다. 프롤레타리아트가 장악한 민주주의 기관들의 이중 권력은, 설혹 실현될 수 있더라도, 머지않은 시점에 실현될 것 같지는 않다. 이것을 기다리는 것은 망상과 범죄 모두에 해당한다. 그렇다면 우리가 붙들고 싸워야 하는 상대는 자본의 회로에 늘 얽매여 있는 음울한 부르주아 국가일 뿐이다. 자본주의 국가에 영향력을 행사하는 대중이 압력을 가해, 국가 내부에 응축된 힘의 균형에 변화를 일으키고, 다양한 수단(이 수단의 일부는 나의 책 《송유관을 폭파하는 방법: 불타는 세계에서 투쟁 학습하기》에서 더 상세히 다루고 있다)을 활용하며 국가기구들로 하여금 자본과 자기들을 엮은 쇠사슬을 끊고 나아가도록 강제해야 한다. 그러나 이러한 기획은 기성국가를 파괴하고 또 다른 국가를 세운다는 고전적 기획과는 분명 다르다.” 이처럼 말름은 국가권력을 통한 기후위기 대응 전시체제를 주장하면서도, 대중이 직접 국가권력을 장악해야 한다는 필요성 앞에서는 주저하며 멈춘다. 우리가 대중행동을 통해 움직여야 하는 국가는 언제 등장할지도 모르는 노동자 국가가 아니라 “음울한 부르주아 국가”다. 말름이 사회민주주의와 아나키즘을 올바로 비판하면서도, 마르크스주의의 프롤레타리아 독재 강령, 즉 노동자계급이 국가권력을 장악해 노동자 국가를 수립한다는 전략에 대해 한사코 선을 긋는 이유는 무엇일까? 그것은 스탈린주의의 경험 때문이다. 더 거슬러 올라가자면 내전의 발발로 러시아의 노동자계급이 소멸하고 관료주의가 등장하는 과정에서, 이를 어떻게 극복할지에 대해 사회주의자들이 정확한 대답을 내놓지 못했기 때문이다. “어떻게 기층민의 민주적 권리를 짓밟지 않고, 오히려 그들을 보호하고 그들의 힘에 의지하고 그들의 힘을 끌어내면서, 비상시국에 필요한 통제 조치를 실행할 것인가라는 딜레마 말이다. 아나키스트도, 사회민주주의자도 이 딜레마를 인식하지 못하고 있지만, 사회주의의 계보학에서는 이 문제를 두고 평생 고민해왔고, 이를 원칙적 사안으로 삼기를 결코 포기하지 않은 분파가 있다. 반스탈린주의 레닌주의의 분파이다. 그렇다면 이 분파는 그동안 어떤 확실한 해법을 제시했던 걸까? 물론 그렇지 않다. 관료주의적 남용을 막는 방어선이 무너지면 어떻게 일을 망칠 수 있는지, 몇 가지 무거운 교훈을 학습했을 뿐이다. … 지난 100년간, 이들은 언제 10월의 기관차가 탈선했는지를, 내적 건설 과정의 어떤 요소가 그 난파에 기여했는지를, 어떻게 했더라면 그 기관차가 더 생산적인 방식으로 조정될 수 있었을지를(또는 그것이 가능했을지를) 줄곧 숙고해왔다. 그러나 이들은 다음번에는 이 딜레마를 어떻게 극복할지에 관한 정확한 매뉴얼을 마련하지는 않았다.” 스탈린주의가 역사에 끼친 가장 큰 해악이 이것이다. 러시아혁명이 반혁명으로 귀결된 이후, 사회주의자들은 레닌과 볼셰비키가 멈췄던 곳에서 역사의 실마리를 계속 이어 나가야 할 의무가 있었다. 그러나 20세기 말까지 강력한 역사적 실체로 존속했던 스탈린주의는, 반(反)스탈린주의 사회주의자들이 혁명적 마르크스주의의 전통을 방어하는 것 이상으로 나가는 것을 어렵게 했다. 2차 세계대전 이후 세계 노동자투쟁의 퇴조도 적지 않은 영향을 끼쳤고 말이다. 그러나 다시 자본주의의 위기가 명백해진 상황이다. 말름 역시 국가권력을 통한 전시공산주의 체제가 즉각 시행되어야 한다고 주장하지 않는가. 객관적 정세의 격변은 주체의 비약적인 성장을 불러오기 마련이다. 오늘날 사회주의자들과 투쟁하는 노동자들은 끊어졌던 혁명적 마르크스주의의 실마리를 다시 이어 나가게 될 것이다. Ⅲ. 민주적 계획경제란 무엇인가? 이윤 생산 체제인 자본주의에서 ‘무엇을, 얼마나, 어떻게 생산할 것인가’는 모두 개별자본이 결정한다. 개별자본은 경쟁자를 누르고 더 많은 이윤만 획득할 수 있다면 어떤 일도 서슴지 않는다. 김남주 시인이 일갈한 것처럼, 이윤만 난다면 “범죄의 소굴이건 아비규환의 생지옥이건” 상관치 않는 게 자본의 본능이다.[19] 기후재난 앞에서 화석연료 사용을 중단하지 않는 일, 기후위기의 비용을 노동자들에게 전가하며 폭력적인 해고를 서슴지 않는 일, 에너지 가격을 인상해 폭리를 취하는 일 등이 그래서 벌어진다. ‘무엇을, 얼마나, 어떻게 생산할 것인가’를 온전히 개별자본이 결정할 수 있는 권력의 근원은 단 하나다. 생산수단의 소유권이 자본에 있으므로, 이를 자기 마음대로 써먹어도 된다는 것이다. 그리고 부르주아 경제학자들은 자본의 이 ‘자유’가 혁신을 통해 경제성장을 이끄는 근원이라고 주장한다. 그러나 현대 자본주의의 거대한 생산수단은 개별 자본가들이 땀 흘려 만든 것이 아니다. 노동자들의 피땀 어린 사회적 노동이야말로 저들이 가진 생산수단의 원천이다. 또 아무리 뛰어난 개인도 무에서 유를 창조할 수는 없다. 대개의 ‘혁신’은 과거로부터 전수된 경험과 동시대 집단 지성의 산물이기 마련이다. 그런데도 왜 한 줌 자본가들은 사회적 생산수단을 사적으로 소유한 채 무제한적 권력을 휘두를 수 있단 말인가? 삼성 재벌의 이병철은 이건희를 낳고, 이건희는 다시 이재용을 낳고, 이재용은 또 재벌 4세를 낳고…, 왜 자본가들은 대대손손 생산수단의 소유권을 상속해 가며 경제 부문의 의사결정을 독점하는가? 게다가 자본가들은 이윤이란 과실은 ‘기업가 정신’ 운운하며 모두 챙겨가지만, 손실과 사회적 낭비에 대해서는 손톱만큼도 책임지지 않는다. 우리 모두 경제위기 때마다 노동자 민중의 세금으로 만들어진 천문학적 공적자금이 ‘자본가 살리기’에 투입되는 것을 목격하지 않았나. 한 줌 자본가들의 이윤을 위해서가 아니라 공동체 전체의 필요를 위한 경제, 사회적 생산수단을 자본가들이 사적으로 소유하는 게 아니라 공동체가 공유하는 경제, 자본가들이 밀실에서 경제적 의사결정을 독점하는 게 아니라 노동자 민주주의 원칙에 따라 생산자 대중이 직접 의사결정에 참여하는 경제, 한마디로 민주적 계획경제가 우리의 지향이 되어야 한다. 1. 마르크스와 엥겔스가 예견한 미래 사회 그런데 ‘계획경제’란 말은 보통 사람들에게 상당한 거부감을 불러일으키는 것으로 보인다. 생필품에 대한 배급제, 상점 앞에 길게 늘어선 줄, 점원의 불친절한 서비스 태도, 뒤처진 기술혁신 수준…, 이런 것들이 계획경제라고 하면 제일 먼저 떠오르는 모습 아닌가? 요컨대 경제에서 계획이란 그냥 덮어놓고 나쁜 것만 같다. ‘시장경제는 좋고, 계획경제는 나쁘다!’ 그러나 가만히 생각해 보면 우리는 이미 가계 경제 수준에서도 넘치게 계획을 활용하고 있지 않은가? 한 달 수입 얼마 중에 저축과 보험은 얼마씩 지출해야 하고, 11개월 무이자 할부로 구입한 노트북 할부가 다음 달에 끝나니 로봇 청소기 할부를 새로 시작할 수 있고 등등…. 경제학에서 즐겨 쓰는 로빈슨 크루소의 비유, 즉 1인 경제 활동에서조차 계획은 필수다. “(로빈슨 크루소는) 아무리 본래부터 검소한 사람이라 할지라도 최소한의 여러 가지 욕구는 기본적으로 충족시켜야 할 것이므로 그는 도구를 만들고 가구를 제작하고 염소를 길들이고 고기잡이와 사냥을 하는 등 다양한 종류의 유용노동을 하지 않으면 될 것이다. … 그는 필요 그 자체의 요구에 따라 자신의 시간을 그 다양한 기능 사이에 엄밀하게 배분한다. 그의 전체 활동 가운데에서 어떤 부분이 더 많은 비중을 차지하고 어떤 부분이 더 적은 비중을 차지할 것인지는 그가 필요로 하는 유용성을 얻기 위해 극복해야 할 어려움이 얼마나 크고 작은지에 따라 정해진다. 그는 이것을 경험을 통해 알게 된다. … 그의 재산목록 속에는 그가 갖고 있는 유용한 물건들과 그것들을 생산하기 위해 필요한 작업, 그리고 마지막으로 이 생산물들을 일정량 생산하기 위해 그가 평균적으로 필요로 하는 노동시간에 관한 일람표가 기록되어 있다. 자신이 직접 창출한 부의 내용을 이루는 이들 여러 물건과 로빈슨 자신 사이의 모든 관계가 여기에서는 극히 단순명료하기 때문에 …”[20] 이처럼 모든 경제 활동에서 ‘계획’은 빠질 수 없다. 틈만 나면 ‘계획은 비효율적이고 시장은 효율적이다!’라고 외쳐대는 자본가들 역시 예외가 아닌데, 그들 역시 개별 기업 내에서는 철저한 계획 아래 경제를 운용하기 때문이다. 이 점을 먼저 살펴보자. 자본주의 생산의 모순: 기업 내부의 계획적 생산과 사회 전체의 무정부적 생산 엥겔스는 「오이겐 뒤링 씨의 과학 변혁(반뒤링)」에서 자본주의 생산력의 사회적 성격을 거듭해 강조한다. 전(前) 자본주의 사회에서 소소유자가 가지고 있던 협소하고 분산된 생산수단은, 자본주의 발전 과정에서의 집적과 확대를 거쳐 거대한 규모로 재탄생한다. “분산되고 협소한 생산수단을 집적시키고 확대하여 현재의 생산에 강력하게 작용하는 지렛대로 바꾸는 것은 바로 자본주의적 생산방식과 그것의 담지자인 부르주아지의 역사적 역할이었다. … 부르주아지는 생산수단을 개인의 생산수단에서 사회적 생산수단으로, 요컨대 오로지 인간들의 총체에 의해서만 사용될 수 있는 생산수단으로 전화하지 않고서는 저 제한된 생산수단을 강력한 생산력들로 전화할 수 없었다.”[21] 이렇게 만들어진 사회적 분업 체제에서, 개별 생산자는 상품의 거래를 통해서 다른 생산자들과 사회적 관계를 맺는다. 개별 생산자의 노동이 사회에 유용하다는 것을 증명하기 위해서는 개별 생산자의 상품이 시장에서 판매돼야 한다. 하지만 문제는 여기서 발생한다. 상품이 시장에서 판매될지 누구도 알 수 없다는 것이다. 한국의 주력 수출 상품인 반도체를 생각해 보라. 시장의 플레이어가 손에 꼽는 소수 독점자본임에도 불구하고, 반도체의 호황‧불황 주기가 대체 언제 올지는 아무도 예상하지 못한다. 그것이 가능하다면, 자본주의 사회에서 도산에 이르는 기업은 하나도 없을 것이다. “상품 생산에 근거하는 모든 사회는, 그 사회의 생산자들이 자신들의 사회적 관련에 대한 지배권을 상실한다는 특징을 갖고 있다. 각자는 자신이 우연히 가지고 있는 생산수단을 갖고서, 자신의 개인적 교환 욕구를 충족시키기 위해, 자신을 위해 생산한다. 어느 누구도 자기 것과 동일한 품목의 상품이 얼마나 시장에 나올지, 도대체 그 가운데 얼마나 사용될지를 알지 못하며, 그 비용을 회수할지, 또는 도대체 판매될 수 있을지를 알지 못한다. 사회적 생산의 무정부 상태가 지배한다. … (상품 생산의 법칙들은) 개별 생산자들에 대해서 경쟁의 강제 법칙으로서 통용력을 지닌다. … 이 법칙들은 생산자들과 독립하여, 생산자들과 대립해서, 그들의 생산 형태에 맹목적으로 작용하는 자연 법칙으로서 자리를 잡는다. 생산물이 생산자들을 지배한다.” 이제 개별 자본가들은 정글과 같은 시장에서 살아남기 위해 최선의 노력을 기울여야 한다. 경쟁자를 누르고 자신의 상품을 판매하기 위해서는 일체의 비효율적인 경영 방식과 생산 기법을 절멸해야 한다. 개별 자본가들이 사회의 무정부적 생산 경쟁에서 살아남기 위해 집착하는 것은 다름 아닌 ‘계획’이다. “사회적 생산의 무정부 상태는 더욱 명명백백해졌으며 더욱 극단화되어 갔다. 그러나 자본주의적 생산방식이 사회적 생산의 이와 같은 무정부 상태를 격화시키는 데 사용한 주요한 도구는 바로 무정부 상태와 반대되는 것이었다. 모든 개별 생산 기업 내에서 생산을 더욱 사회적 생산으로 조직하는 것. 이러한 지렛대와 함께 자본주의적 생산 방식은 지난날의 평온하고 안정적인 상태에 종지부를 찍었다. 어떤 산업 부문에 자본주의적 생산방식이 도입되면, 이 자본주의적 생산방식은 낡은 경영 방법이 자신과 병존하는 것을 용납지 않았다. … 개별 자본가들 사이에서도, 또한 산업과 산업, 나라와 나라 사이에서도 자연적인 또는 창조된 생산 조건들의 유리함 여부가 존망을 결정한다. 패배한 것은 가차없이 제거된다. 그것은 다윈이 말한 개체의 생존을 위한 투쟁이 몇 배 더 광포한 형태로 자연에서 사회로 옮겨진 것이다. … 사회적 생산과 자본주의적 전유(專有) 사이의 모순은 개별 공장 내에서의 생산의 조직화와 사회 전체 내에서의 생산의 무정부 상태 사이의 대립으로 재생산된다.” (강조는 엥겔스) 현대 기업은 내부에 경영지원, 연구개발, 자재, 생산, 영업, 고객지원 등 다양한 하위부서를 두고 있다. 물론 이는 조직적 효율성을 높여 이윤 창출을 극대화하기 위한 목적이다. 이때 여러 부서 간의 유기적 협업은 전사적 계획 없이는 달성 불가능하다. 예컨대 자동차 회사에서 내년 하반기에 신차를 투입할 계획이라면, 올해 안에 연구개발 부서는 신차에 탑재할 신기능을 기술적으로 완성해야 하며, 자재 부서는 신차 생산에 필요한 부품을 내년 상반기까지 조달해야 할 것이다. 생산 부서는 신차 생산에 투입할 인력을 미리 배치해 두어야 하며, 영업 부서는 마케팅 전략을 수립해야 하고, 기타 등등…. 이 모든 것은 하나의 ‘계획’ 아래 조정‧통제된다. 두말할 필요도 없는 얘기지만, 만약에 각 부서가 협소한 이기주의에 빠져 전사적 계획에 반대되는 헛짓거리를 한다면 그 기업의 경쟁력은 곤두박질칠 것이다. 계획 달성을 위해 조직적 효율성을 확보하는 것은 오늘날 기업이 경쟁에서 살아남기 위한 필수 조건이므로, 경영학에서는 오로지 이 주제만을 연구하는 하위 분과 학문이 있을 정도다. 경영조직론, 조직행동론 등이 그것이다. 부르주아 경영학자들은 조직 내에서 부문별로 권한을 어떻게 배분할 것인가, 구성원들의 담당업무별로 직무는 어떻게 표준화할 것인가, 조직 내 위계구조와 수평적 분권의 균형을 어떻게 맞출 것인가, 리더십(지도력)을 제고하기 위한 방법은 무엇인가, 부서 간 소통 체계는 어떻게 구성할 것인가 등등을 허구한 날 연구한다. 심지어 팀 조직에서 팀원은 몇 명 이내로 구성해야 수평적 소통이 가능한가, 어떻게 해야 회의를 성과 지향적으로 간결하게 끝낼 수 있는지도 주요 연구 대상이다.[22] 이 모든 것이 전사적 계획 집행의 효율성을 극대화하려는 의도 아래 연구된다. 물론 이때의 전사적 계획은 결코 민주적인 것은 아니다. 기업 내부에서 계획은 언제나 소위 최고 경영권자의 ‘결단’으로 확정되기 때문이다. 부르주아 정치권력의 정점에 있는 대통령조차 재벌 총수를 만나 투자계획의 조속한 확정을 ‘건의’하거나 ‘읍소’하는 일이 그래서 벌어진다. 자본가들은 생산수단의 소유권을 가지고 있다는 이유만으로, 현대 사회의 거대한 생산력을 저들 마음대로 주무르는 것이다. 그렇다면 이제 생각을 좀 더 확장해 보자. 오늘날 ‘개별 기업 내에서의 계획경제와 전체 생산에서의 무정부경제’라는 모순적 현상이 나타나는 이유는 생산수단이 사적으로 소유돼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사회적 생산력을 표현하는 생산수단이 한 줌 자본가들에 독점돼 있지 않다면, 예컨대 현대차 공장, 지엠 공장, 르노차 공장, KG모빌리티 공장이 몇몇 재벌가의 소유가 아니라 전체 사회의 공동체적 소유라면, 우리는 개별 기업 차원이 아니라 전체 사회의 차원에서도 ‘계획’을 운용할 수 있지 않겠는가? 각각의 자동차 공장에서 중복되는 낭비적 요소를 제거하고, 사치재 성격을 지니는 고급차 대신 사회에 더 필요한 친환경 차량 등을 훨씬 효율적으로 생산해 낼 수 있지 않을까? 쌍용차에서 그랬듯이 생산한 차량이 팔리지 않는다는 이유로 노동자를 폭력적으로 정리해고하는 대신, 자동차의 사회적 수요에 맞게 노동력을 매시기 합리적으로 재배치함으로써 전 사회적인 노동시간 단축을 실현할 수 있지 않겠는가? 요컨대 생산수단의 사적 소유가 폐지된 사회, 거대한 사회적 생산력을 전체 사회가 공동체적으로 소유하는 사회에서는 기업의 울타리를 넘어 전 사회적 계획경제의 실현이 가능해질 것이다. “오늘날에는 생산수단과 생산물의 사회적 성격이 생산자들 자신을 거스르고, 생산방식과 교환방식을 주기적으로 부수며, 맹목적으로 작용하는 자연 법칙으로서 폭력적이고 파괴적으로 자신을 관철해 나가고 있지만, 사회가 생산력들을 점유 획득하게 되면 생산력들은 생산자들에 의해 완전히 의식적으로 통용되게 사용될 것이며, 교란과 주기적 와해의 원인으로부터 생산 자체의 가장 강력한 지렛대로 전화할 것이다. … 오늘날의 생산력들을 마침내 인식된 그 본성에 의거하여 취급하면, 사회적 생산의 무정부 상태는 전체와 각 개인의 욕구에 의거한 생산의 사회적-계획적 조절로 대체된다.” 마르크스, 『고타 강령 비판 초안』 마르크스는 『자본』 1권에서 이런 사회를 “공동의 생산수단으로 노동하면서 각자의 개별 노동력을 하나의 사회적 노동력으로 인식하며 지출하는 자유인들의 결사체”라고 표현했다.[23] 이런 사회에서 계획적 생산은 사회적 필요에 따라 행해질 것이다. 착취계급의 이익이나 소수 부유층의 사치적 욕망을 충족하기 위해 이뤄졌던 생산은 절멸되거나 최후순위로 밀려날 것이며, 기후위기 대응, 생태환경 보전, 보건의료 위기 해소 등 공동체 전체의 필요를 위한 생산이 최우선이 될 것이다. 이렇게 생산된 공동체의 전체 생산물은 이제 구성원들에게 개별 생활수단으로 분배되어야 한다. 마르크스는 “이 분배의 방식은 사회적 생산조직의 특성과 생산자들의 역사적 발전수준에 따라 변화할 것”이라고 전제하면서, 사회주의 사회에서 생산물이 분배되는 과정은 다음과 같을 것이라 예측한다.[24] 우선 마르크스는 “사회적 총생산물”에서 최우선으로 다음과 같은 것들이 공제(控除)돼야 한다고 썼다. “첫째, 소모된 생산수단의 보전을 위한 배상분. 둘째, 생산의 확대를 위한 추가 부분. 셋째, 사고, 자연재해로 인한 장애 등등에 대비한 예비 기금 혹은 보험 기금. … 이러한 공제는 경제상의 필연이며, 그리고 그것의 크기는 수중에 있는 수단과 역량에 따라 결정되고 부분적으로는 확률 계산에 의해 결정되는 것…” 즉 전체 생산물에서 현재의 생산력 수준을 유지‧제고하기 위한 공제가 우선 이뤄진다.[25] 이어 전체 생산물을 생산자 개개인에게 분배하기에 앞서, 공동체 전체 필요분에 대한 공제가 진행돼야 한다. 여기에는 노동 능력이 부족한 사람들에 대한 공공부조도 포함된다. (미래 사회에서 노동 능력이 부족한 사람들에 대한 공공부조는, 이들을 아예 노동에 참여시키지 않고 지원하는 형식보다는 각자의 조건에 따라 노동에 참여시키되 노동량이 평균적 수준에 미달할 때 추가적 지원을 하는 방식이어야 할 것이다. 노동할 권리는 인간의 기본 욕구가 될 것이므로.) “첫째, 생산에 직접 속하지 않는 일반 관리 비용. 이 부분은 지금의 사회와 비교하면 애초부터 극히 현저하게 축소될 것이며, 새로운 사회가 발전하는 것과 같은 정도로 줄어들 것이다. 둘째, 학교나 위생 설비 등등과 같은, 수요를 공동으로 만족시키게 되어 있는 것. 이 부분은 지금의 사회와 비교하면 애초부터 현저하게 증가할 것이며, 새로운 사회가 발전하는 것과 같은 정도로 늘어날 것이다. 셋째, 노동 능력이 없는 사람 등등을 위한 기금, 요컨대 오늘날의 이른바 공공 빈민 구제에 속하는 것.” 이제 비로소 사회적 분업에 참여한 생산자들이 각자 필요한 생활수단의 분배를 받을 차례다. 생필품을 포함하여, 자동차 공장의 노동자들은 식량‧주택 등의 분배를 받아야 하며, 농장의 노동자들은 자동차‧농기계 등의 분배를 받아야 하고 등등…. 이때 생산자들이 자신의 개별 노동을 다른 사람의 개별 노동과 교환하는 기준은 노동시간이다. 즉 노동시간은 공동생산물 중 개별 생산자들의 몫을 재는 척도가 된다. 자본주의 사회에서는 상품 매매라는 간접적 방식으로 사회적 노동의 교환이 이뤄지지만, 사회주의 사회에서는 더는 이러한 우회로가 필요하지 않다. “생산수단을 공유 재산으로 하는 것에 기초를 둔 조합적 사회 내부에서는 생산자들이 자신의 생산물을 교환하지 않는다. 마찬가지로 여기서는 생산물에 사용된 노동이 이 생산물의 가치로, 즉 그 생산물이 보유하고 있는 어떤 물적 특성으로 나타나지 않는데, 그 이유는 자본주의 사회와는 반대로 개인적 노동이 더 이상 우회로를 통해서가 아니라 직접적으로 총노동의 구성 부분으로서 존재하기 떄문이다. … 우리가 여기서 관계하고 있는 것은 자기 자신의 기초 위에서 발전한 공산주의 사회가 아니라 거꾸로 바로 자본주의 사회에서 생겨난 공산주의 사회이며, 그러므로 그 모태인 낡은 사회의 모반이 모든 면에서, 즉 경제적, 윤리적, 정신적으로 아직도 들러붙어 있는 공산주의 사회이다. 이에 걸맞게 개별 생산자는 자신이 사회에 주는 것을―공제 후에―정확히 돌려 받는다. 그가 사회에 주었던 것은 자신의 개인적 노동량이다. … 개별 생산자들 사이의 소비수단의 분배에 관해 말하자면, 상품 등가물의 교환에서와 동일한 원리가 지배하여, 어떤 형태의 동일한 만큼의 노동은 다른 형태의 동일한 만큼의 노동과 교환된다.” 누구나 자신의 노동량에 따라 자신에게 필요한 생산물을 공동체에서 교환해 간다는 측면에서 보자면, 일견 이러한 사회 체제는 평등한 것처럼 보인다. 자본주의 사회에서 노동자들의 노동량 상당 부분이 잉여가치의 형태로 자본가들에게 착취됨을 고려하면 더욱 그렇다. 그러나 이것은 진정한 평등과는 아직 거리가 있다. 개개인이 타고난 천부적 능력은 서로 다르기 때문이다. “여기서 평등한 권리는 여전히 ―원리상―부르주아적 권리 … 이 평등한 권리에는 아직도 부르주아적 제한이 들러붙어 있다. 생산자의 권리는 그의 노동 제공에 비례한다. 평등의 요체는, 평등한 척도인 노동으로 측정된다는 데 있다. 그러나 어떤 사람은 육체적으로나 정신적으로 다른 사람보다 뛰어나서, 동일한 시간에 더 많은 노동을 제공하거나 더 많은 시간 동안 노동할 수 있다 … 이것 암묵적으로 개인의 불평등한 소질을 승인하며, 따라서 노동자의 실행 능력을 자연적 특권으로 승인한다. 그러므로 모든 권리가 다 그렇듯이 내용상 불평등한 권리이다.” 따라서 어떤 노동자는 평균적인 노동자보다 더 많은 생활수단을 가질 수 있을 것이다. (물론 생산수단의 사적 소유가 폐지되고 개인적 필요분을 초과하는 재화에 대한 상속은 금지될 것이기 때문에 이것이 계급을 부활시키지는 않는다.) 마르크스가 보기에 이것은 “오랜 산고 끝에 자본주의 사회로부터 방금 생겨난 공산주의 사회의 첫 번째 단계에서는 불가피”하다. “권리는 사회의 경제적 형태와 이 형태가 제약하는 문화 발전보다 결코 더 높은 수준일 수는 없다.” 아직 자본주의적 가치관, 예컨대 ‘공정한 노동에 대한 공정한 임금’이라는 가치관을 가진 사람들에게 ‘일한 만큼 받는다’는 원칙만큼 간명하게 공감대를 불러일으킬 수 있는 분배 기준은 없을 것이다. 하지만 계급착취라는 굴레로부터 해방된 생산력이 전면적으로 발전하고, 공동체 성원들 사이에서 부르주아적 의식이 점차 소멸하게 되면, 이제 분배 질서는 질적으로 새로운 단계에 진입하게 된다. “공산주의 사회의 더 높은 단계에서, 즉 개인이 분업에 복종하는 예속적 상태가 사라지고 이와 함께 정신노동과 육체노동 사이의 대립도 사라진 후에, 노동이 생활을 위한 수단일 뿐만 아니라 그 자체가 일차적인 생활 욕구로 된 후에, 개인들의 전면적 발전과 더불어 생산력도 성장하고, 조합적 부의 모든 분천이 흘러 넘치고 난 후에―그때 비로소 부르주아적 권리의 편협한 한계가 완전히 극복되고, 사회는 자신의 깃발에 다음과 같이 쓸 수 있게 된다. 각자는 능력에 따라, 각자에게는 필요에 따라!” 대기 중 산소는 인간 생존에 반드시 필요하다. 그러나 우리는 더 많은 산소를 호흡하겠다고 서로 다투지 않는다. 각자의 능력(폐활량)과 필요(상황)에 따라 산소를 호흡할 뿐이다. 이것이 가능한 이유는 산소의 분배를 두고 다퉈야 할 만큼 산소가 부족하지 않기 때문이다. 생산력의 전면적 발전으로 정신노동과 육체노동의 대립이 사라지고, 연대와 협력의 가치관이 확산하면서 이제 공동체는 높은 단계의 공산주의로 이행하게 된다. 참고로 레닌은 『국가와 혁명』에서 “공산주의의 첫째 국면”, 즉 생산자가 일한 만큼 분배받는 사회를 ‘사회주의’ 사회로, 이어 ‘능력에 따라 일하고, 필요에 따라 분배받는 사회’를 높은 국면의 ‘공산주의’로 개념화했다.[26] 이후 마르크스주의에서 일반적으로 ‘사회주의’와 ‘공산주의’란 개념 사용은 이러한 용례를 따르고 있다.[27] 여기서 재차 상기해야 할 대목이 있다. 이런 식으로 전체 경제를 계획적으로 통제하기 위해서, 즉 개별 생산자들 사이에서 투명한 사회적 교환을 이루기 위해서는 생산수단의 사적 소유 폐지가 전제돼야 한다는 것이다. 마르크스는 이렇게 꼬집는다. “소비 수단의 그때 그때의 분배는 생산 조건 자체의 분배의 귀결일 뿐이다. 그런데 생산 조건의 분배는 생산방식 자체의 특성이다. 예를 들어 자본주의적 생산방식은, 물적 생산 조건들은 자본 소유와 토지 소유의 형태로 노동하지 않는 사람들에게 배분되는 반면에 대중은 인적 생산 조건인 노동력의 소유자일 뿐이라는 사실에 근거하고 있다. 생산의 요소들이 이렇게 분배되면, 오늘날과 같은 소비 수단의 분배가 저절로 생겨난다. 물적 생산 조건들이 노동자들 자신의 조합적 소유가 되면, 오늘날과는 다른 소비 수단의 분배가 생겨난다. 속류 사회주의는 부르주아 경제학자를 본받아 (그리고 이를 다시 본받아 일부 민주주의자들은) 분배를 생산방식과는 독립된 것으로 간주하고 또 그렇게 다루고 있으며, 따라서 사회주의는 주로 분배를 중심 문제로 하고 있다는 듯이 서술되고 있다.” 생산수단에 대한 자본가들의 사적 소유 폐지는 언급하지 않은 채, 단지 분배의 개선만을 이야기하는 것은 ‘속류(俗流) 사회주의’일 뿐이다. 오늘날에도 자본가 권력의 근원인 생산수단에 대한 소유권은 얘기하지 않은 채, 단순히 부자에게 더 많은 세금을 거둬 저소득층에게 더 많은 재정적 지원을 하자고 주장하는 데 그치는 정치 운동이 있다. 이런 정치 운동은 본연의 사회주의 운동과는 질적으로 구분되어야 마땅하다. 2. 민주적 계획경제의 핵심: 민주적 노동자권력! 민주적 계획경제는 관료적 명령경제일 수 없다 앞서도 언급했지만, 우리가 계획경제에 대해 편견을 갖는 이유는 지구의 1/3에서 실험된 스탈린주의 ‘사회주의 계획경제’가 처참한 실패로 종결되었기 때문이다. 일례로 중국을 보자. 1958~1962년, 중국 공산당은 “超英赶美(영국을 넘어서고 미국을 따라잡는다)”를 내세우며 대약진 운동을 시행했다. 중심 정책은 농촌에 인민공사를 설립해 농촌집단화를 실시한 것이다. 농민 혁명을 자신의 역사적 연원으로 하는 중국 공산당은 1949년 신중국 수립 직후 지주 계급의 토지를 무상몰수해 빈농에게 무상분배하였다. 이로써 전체 경작지의 90% 이상이 빈농과 중농의 소유가 되었다. 그러나 대약진 운동에서는 다시 토지 등 생산수단의 소소유를 철폐하고 생산수단의 공유를 시도한다. 이는 토지의 대규모 경작을 통해 농업 생산성을 높이기 위한 것이다. 기본적으로 대약진 운동은 자본과 기술이 부족한 후진 농업국가가 공업 발전을 위해 농촌으로부터 잉여를 추출하려던 시도로 이해할 수 있다. 즉 농촌에서 잉여를 효율적으로 징발하기 위해 인민공사가 설립된 것이다. 1958년 말이 되면 전체 농촌 가구의 99%가 인민공사로 편제된다. 인민공사는 ‘일한 만큼 분배받는다’는 원칙을 내세우고 공동생산에 돌입했지만, 곧 농민들은 인민공사 체제가 일한 만큼 분배되는 체제와는 거리가 멀다는 걸 깨달았다. 예컨대 농민들의 작업 점수는 노동시간에 따라 결정됐을 뿐, 노동의 질적 차이는 고려되지 않았거나 고려되더라도 여성에 대한 차별을 기반으로 한 것이었다. 그래서 농민들은 경작지에서 단순히 오랫동안 시간을 투여하는 식의 비효율적인 노동을 이어갔다. 문제는 더 있었다. 중국 공산당이 중공업 발전을 위해 농민들에게 철강 생산을 요구한 것이다. 철강 증산을 위해 농민들은 가정 내의 쇠붙이를 그러모아 전통적 방식의 용광로에 집어넣고 철강을 생산하는 토법제철(土法製鐵) 방식을 채택해야 했다. 그러나 그 생산물은 불순물이 많은 저품질이어서 실제로 활용되지도 못한다. 농촌 노동력이 철강 생산으로 집중되고, 토법제철을 위한 땔감으로 수목이 고갈되면서 임야와 농지는 황폐해졌다. 같은 시기 ‘참새는 해로운 동물이다’는 모택동의 말 한마디로 시작된 참새 박멸 운동으로 2억 1천만 마리의 참새가 소탕되는데, 해충을 잡아먹는 참새가 사라진 결과 먹이 사슬이 파괴돼 병충해까지 창궐하게 된다. 여기에 무리한 계획과 허위‧과장 보고가 문제를 악화시켰다. 서로의 혁명적 열정을 과시하듯, 각 단위를 책임진 당 관료들은 경쟁적으로 높은 목표를 설정했으며 목표를 달성하지 못하자 거짓 보고를 일삼았다. 예를 들어 어떤 단위에서 목표의 150%를 달성했다고 보고하면, 다른 단위에서는 200%를 달성했다고 보고하는 식이다. 이러한 허위 보고를 진실로 만들려면 어떻게 하면 되는가? 허위 보고에 맞춰 부풀려진 생산량만큼을 국가에 상납하면 된다. 그 결과 식량이 부족해진 농촌 지역에서는 아사자가 속출한다. 대약진 운동의 결과는 파국이었다. 중국 공산당의 공식 통계로 2,150만 명 이상의 직간접적 사망자가 발생했다. 실제로는 3,000만 명 이상일 것이라 추정된다. 이 참혹한 실패의 근본 원인은 무엇이었을까? 인민공사의 경험을 돌이켜 보자면, 생산수단 사적 소유를 철폐한다는 마르크스주의의 명제가 틀렸던 것일까? 아니다. 문제는 계획이 생산자 대중의 경험과 집단 지성에 근거해 민주적 방식으로 결정되지 않았다는 데 있다. ‘사회주의 계획경제’에서의 계획은 오로지 당과 수령이 결정하는 것이었으며, 소비에트 또는 전국인민대표대회(중국)는 당의 결정을 앵무새처럼 반복해 되뇌는 거수기에 불과했다. 앞서 인민공사에서 노동시간을 통해 작업 점수를 매기는 방식이 노동의 질적 차이를 구분하지 못했다고 지적했다. 그런데 본래 마르크스주의 노동가치론에서 “복잡노동”은 “단순노동이 제곱된 것 또는 배가된 것”으로 간주된다. 마르크스는 “갖가지 노동을 그 도량단위인 단순노동으로 환산해내는 여러 비율은 사회적 과정을 통해서 생산자들의 배후에서 결정”된다고 썼다.[28] 생산자들이 경험적으로 노동의 질적 차이를 구분한다는 것이다. 인민공사에 참여한 농민들 역시 갖가지 농업노동의 질적 차이를 관습적으로 구분했을 게 분명하다. 그러나 중국 공산당의 ‘계획’에서는 생산자들의 오랜 경험과 지혜가 반영되지 않았으며, 오랜 가부장제 문화에 따른 성차별적 편견도 제거되지 않았다. 말이 나온 김에, 생산수단을 공유해 계획경제가 실패했다는 반공주의의 오랜 선전에 대해 반박해 보자. 그들은 중국의 농촌집단화가 인간의 본성을 거스른 탓에 처참히 실패했으며, 1978년 이후 농지를 개개인에게 다시 배분하는 방식을 취하자 농업 생산이 회복됐다는 점을 강조한다. 여기까지는 맞다. 그러나 그들은 1985년 중국에서 곡물 생산량이 4억 7천만 톤에서 3억 7,900만 톤으로 급락했다는 점에는 침묵한다. 그 중요한 이유 중 하나는 토지의 개별 경영이 확산하면서 토지 운용에서 ‘규모의 경제’ 효과가 사라졌기 때문이다. 높은 수준의 생산력을 유지하기 위해서도 생산수단을 사적으로 분할하는 것이 아니라 공유제 형태를 도입해야 한다는 것은 분명하다. 문제는 사회적 생산수단을 생산자들의 자주적‧민주적 권력이 통제하는가, 아니면 당 관료가 상명하달식으로 통제하는가 하는 것이다. 전자에 해당할 때만 생산자 대중의 노동 의욕이 제고되고, 창의적‧혁신적 시도가 분출할 수 있기 때문이다. 모택동이 토법제철과 참새 박멸 운동을 지시하는 동안 누구도 혁명을 지도한 수령의 ‘권위’에 저항하지 못했으며, 생산단위의 책임자가 허위 보고를 일삼는 동안 누구도 해당 책임자를 소환하지 못했다. 당 관료가 하나의 특권 계급이 돼 생산자들을 지배했던 것, 이것이 과거 ‘사회주의 계획경제’의 실패 원인이다. 조지 오웰이 『동물농장』에서 스탈린주의 체제를 신랄하게 풍자했던 것처럼 말이다. “나폴레옹은 개들을 거느리고 헛간 바닥의 조금 높은 연단으로 올라섰다. 그 연단은 전에 미들화이트 수퇘지 메이저가 연설할 때 서 있던 바로 그 자리였다. 나폴레옹은 이제부터 일요일 아침의 <회의>는 폐지한다고 선언했다. 회의는 불필요한 시간 낭비라고 그는 말했다. 앞으로 농장 운영에 관한 모든 문제는 돼지들로 구성된 특별위원회가 결정할 것이며 그 위원회는 나폴레옹 자기가 주재한다는 것이었다. 특별위원회는 비공개로 열리고 결정 사항은 다른 동물들에게 통보될 것이라 그는 말했다. 앞으로도 동물들은 일요일 아침에 모여 깃발을 게양하고 「잉글랜드의 짐승들」을 노래하고 그다음 주에 할 일을 명령받게 될 것이지만 토론은 더 이상 없다고 나폴레옹은 말했다. 스노볼의 축출이 몰고 온 충격에도 불구하고 동물들은 나폴레옹의 이 선언에는 찜찜하고 언짢은 기분이었다. 제대로 따질 말을 생각해 낼 수만 있었다면 몇몇은 항의를 제기했을 것이다. 심지어 복서까지도 심기가 편치 않았다. 그는 귀를 뒤로 젖히고 앞 머리칼을 몇 번 흔들며 생각을 모아보려 했지만 결국 말할 거리를 찾아내지 못했다. 정작 똘똘하게 나선 것은 오히려 몇몇 돼지들이었다. 앞줄에 앉았던 식용 돼지 네 마리가 꽥꽥 날카로운 소리를 지르며 불만을 표하다가 넷이 한꺼번에 자리에서 일어나 발언하기 시작했다. 그러자 나폴레옹을 지키고 앉았던 개들이 으르렁 으르렁 깊고 위협적인 소리를 냈다. 발언하려던 돼지들은 입을 다물었고, 자리에 도로 주저앉았다. 이어 양들이 「네 발은 좋고 두 발은 나쁘다」를 엄청나게 큰소리로 외쳐댔는데, 그 외침은 거의 15분 동안이나 계속되었고 그 때문에 토론 기회 같은 것은 사라지고 말았다. 나중에 스퀼러가 농장 곳곳을 돌아다니며 농장의 새 질서를 다른 동물들에게 설명해 주었다. 「동무들, 여러분은 나폴레옹 동무가 이 가외의 일을 맡느라 얼마나 큰 희생을 치렀는지 다들 고맙게 생각하리라 믿소. 동무들, 지도자가 된다는 것이 즐거운 일이라고는 절대로 생각지 마시오. 오히려 그 반대요. 그건 무거운 책임입니다. 나폴레옹 동무만큼 확고하게 모든 동물이 평등이라는 걸 믿는 동물도 없을 거요. 여러분들이 스스로 모든 일을 결정한다는 데는 나폴레옹 동무도 백 번 찬성이오. 그러나 동무들, 여러분은 가끔 틀린 결정을 내릴 수 있고 그럴 경우 우린 어찌 되겠소? 만약 여러분이 스노볼과 그 황당한 풍차 계획을 지지했더라면 어찌 될 뻔했소? 모두 알다시피 스노볼은 범죄자요」 「지난번 <외양간 전투>에서 그는 용감히 싸웠는데」 하고 누군가가 말했다. 「용감한 것만으론 충분치 않아요」 스퀼러는 말을 계속했다. 「충성과 복종이 더 중요합니다. 그리고 그 <외양간 전투>에 대해선 당시 스노볼의 역할이 지나치게 과장되었다는 사실이 장차 밝혀질 것이오. 기율이 필요합니다, 동무들! 강철 같은 기율이 필요해요. 그게 지금부터 우리의 표어요. 우리가 한 발 잘못 디디면 적들이 달려듭니다. 동무들, 여러분은 존즈가 되돌아오는 건 원치 않지요?」 이번에도, 이런 식의 논의에는 아무도 답을 할 수 없었다. 정말이지 동물들은 존즈가 다시 오는 건 바라지 않았고 일요일 아침에 토의를 벌이는 것이 존즈를 되돌아오게 하는 일이라면 그 토의는 중단되어 마땅할 것이었다. 이제 생각을 다소 정리할 수 있게 된 복서가 동물들의 일반적인 느낌을 표현했다. 「나폴레옹 동무가 옳다고 하면 옳은 거야」 그리고 그 순간부터 그는 <내가 더 열심히 한다>라는 개인 모토 외에 <나폴레옹은 언제나 옳다>라는 격률을 하나 더 채택했다. … 매주 일요일 아침 열시 동물들은 헛간에 모여 다음 주 수행해야 할 명령들을 전달받았다. … … 스노볼이 쫓겨나가고 3주일째가 되는 일요일, 나폴레옹은 어쨌거나 풍차는 건설할 계획이라 발표했고 동물들은 깜짝 놀랐다. 그가 왜 생각을 바꾸게 되었는지에 대해선 아무 설명이 없었다. 다만 그는 이 특별 과제가 엄청나게 어려운 일이다, 어쩌면 동물들의 먹이 분배량을 줄일 필요가 있을지도 모른다고 말했다. 계획은 이미 마지막 세부 사항까지 다 완료된 상태였다. 돼지들이 특별위원회를 짜서 지난 3주간 그 일에 매달렸다는 것이다.” 노동자 대중의 창의성과 자주성을 발동하기 반면 마르크스주의의 혁명적 전통을 계승한 레닌은, 1917년 혁명 직후 끊임없이 노동자 대중이 자주적 창의성을 발동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자본가들로부터 몰수한 공장은 누가, 어떻게 운영해야 하는가? 엘리트 관료 중심으로 국가가 이를 효율적으로 통제해야 하는가? 레닌은 이에 반대해 자발적 노동자 관리를 지지했다. “일부 동지들은 흔히 공장, 광산 및 제재소 몰수 형태를 취하는 자발적인 노동자 관리 대신 국가 관리를 지지하였다. 다른 동지들은 모든 공장이 아니라 대규모 금속공장, 철도 등에 관리가 도입되어야 한다고 믿고 있었다. 그렇지만 일리치는 이 활동이 축소되어야 한다거나 노동자들의 주도권이 제한되어야 한다고 생각하지 않았다. 많은 일이 잘못된 방향으로 추진될 수도 있지만, 오직 투쟁 속에서만 노동자들이 진정한 관리를 배우게 된다는 것이었다. “사회주의란 위로부터의 명령에 의해서 건설될 수 없는 것이다. … 살아 있는 건설적인 사회주의는 인민대중 자신의 창작품이다(레닌전집 26).”[29]” 이 과정에서 자본주의의 때를 벗지 못한 노동자들은 수많은 시행착오와 오류를 범할 수 있다. 그룹스카야는 이런 후일담을 들려준다. 혁명 직후, 내일 하루 다 같이 쉴 것을 공장에서 민주적 투표로 결정한 노동자의 이야기다. (물론 이것 자체가 무조건 잘못됐다는 건 아니다. 그런데 만약 평소 야간노동으로 고통을 겪던 응급실 노동자들이 앞으로 야간 근무는 일체 하지 않겠다고 민주적으로 결정한다면, 이것이 타당한 일이겠는가? 개별 단위에서의 민주적 의사결정도 사회 전체의 요구와 결부되어야 함을 지적하는 것이다.) “블라디미르 일리치는 노동자, 농민들과 수많은 대화를 나누면서 발걸음을 옮길 때마다, 노동을 저주로서, 최소화시켜야 할 무엇으로 보는 수세기 동안의 의무 노동에 의해 조장된 태도와 결부된, 서투른 노동을 유의해 보지 않을 수 없었다. 혁명에 의해서, 들볶고 욕을 퍼부으며 몰아대는 십장과 감독 계층이 없어졌다. 노동자들은 그들을 없애서 기뻐했고, 피로할 때는 자기들을 혹사시키는 사람 없이 앉아서 담배를 피울 수 있어서 좋아했다. 처음에 공장 조직은 노동자들이 온갖 집회에 참석하는 것을 기꺼이 허용했다. 어떤 증명서를 받으러 교육인민위원회로 나를 찾아온 어느 여성 노동자가 기억난다. 대화 중에 내가 그 여성에게 어느 근무조에서 일하느냐고 물었다. 나는 그녀가 야근조에서 일하고 있으리라 생각했다. 그렇지 않다면, 주간에 인민위원회로 올 수는 없었을 것이니까. “오늘은 아무도 일하지 않습니다. 어제저녁에 집회가 있었는데, 각자 숙제가 밀려서 오늘 쉴 것을 투표로 결정하였지요. 아시다시피, 이제는 우리가 사장입니다.” 18년이 지난 지금, 이 이야기를 동지들에게 해보면, 아무도 이를 믿으려 하지 않으며 이를 전형적인 사정이라고 생각하지 않는다.” 이런 시행착오는 불가피한 것일지도 모른다. 계급사회에서 노동자들은 워낙 억압받고 있었기 때문이다. 해방의 카타르시스는 때론 통제하기 힘든 것일 수도 있다. 1917년 짜르의 동궁(冬宮)을 접수한 노동자들은 저장실에서 양질의 보드카를 발견하고는 “로마노프의 찌꺼기를 마셔 버리자”며 광란의 주연에 빠져든다. 노동자들이 고급 상점에서 술을 약탈하는 데까지 이르자, 소비에트는 특별 비상위원회를 구성할 수밖에 없었으며 트로츠키는 노동자들에게 다음과 같이 경고해야 했다. “만일 당신들이 혀가 꼬부라지도록 마셔댄다면, 당신은 혁명을 방어하러 나선 길에 장갑차를 팽개쳐 버린 꼴이 될 것이오. 이런 말을 명심해 두기 바라오. 고주망태가 된 날이 하루하루 늘어날수록 우리의 적은 승리를 향해 한 발짝씩 더 나아가는 것이고, 그만큼 우리는 예전의 노예로 다가간다는 사실을 말이오.”[30] 빅토르 세르주는 이후 일주일 만에 모든 악이 평정됐다고 쓴다. 사회주의가 노동자계급의 자기 해방 사업이라는 것을 잊지 않는 사회주의자들은, 비록 노동자 대중이 때론 잘못된 길을 선택하고, 비틀거리며 후퇴하고, 지지부진할지라도 자신의 경험을 통해 단련되고 성장한다는 것을 믿어 의심치 않는다. 레닌 역시 1917년 혁명기에 이를 직접 목격하고 역사의 증언을 남겼다.[31] “과거의 공상적 사회주의자들은 새로운 종류의 인간들이 사회주의를 건설할 것이라고, 즉 자신들이 먼저 선량하고 순수하고 교양 있는 사람들을 길러내면 그들이 사회주의를 건설할 것이라고 생각했다. … 우리는 자본주의 사회에서 성장하고 자본주의로 말미암아 부패하고 타락한, 그러나 자본주의가 투쟁으로 단련시킨 남녀 인간들의 도움을 받아 사회주의를 건설하기를 원한다. 프롤레타리아는 아주 굳건해서 여느 군대보다 천 배나 더 많은 곤경에도 끄떡없이 버틸 수 있다.” “인민대중이 스스로 순결하고 소박하게 거칠고 단호하게 역사를 만들기 시작하면, ‘원칙과 이론’을 즉시 그리고 직접 실천하기 시작하면, 부르주아지는 겁에 질려 ‘지성이 땅에 떨어졌다’고 아우성친다. (오히려 그 반대가 진실 아닌가, 속물근성의 영웅님들? 그런 순간의 역사의 영역으로 침투하는 것은 개인의 지성이 아니라 대중의 지성 아닌가? 그럴 때 대중의 지성은 탁상공론이 아니라 강력하고 효과적인 힘으로 바뀌는 것 아닌가?)” “우리가 100번 실수를 할 때마다, 그리고 부르주아지와 그 하수인들(우리나라의 멘셰비키와 우파 사회혁명당을 포함해서)이 우리의 실수를 전 세계에 떠들어 댈 때마다, 위대하고 영웅적인 업적이 1만 개씩 이뤄진다. 이런 업적이 훨씬 더 위대하고 영웅적인 이유는, 그것이 자신의 성공을 전 세계에 널리 알리는 데 익숙하지 않고(그럴 기회도 없는) 사람들이 공장 지대나 먼 시골의 일상생활에서 이뤄낸, 눈에 띄지 않는 소박한 성취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만약 그 반대가 진실이라 해도(나는 그런 가정이 틀렸다는 걸 알지만), 만약 우리가 정확한 일 처리를 100개 할 때마다 실수를 1만 번씩 한다고 해도 그때조차 우리의 혁명은 위대하고 천하무적일 것이다. 그리고 세계 역사에도 그렇게 기록될 것이다. 왜냐하면 처음으로 소수가 아니라, 부자들만이 아니라, 교육받은 사람들만이 아니라 진정한 민중, 압도 다수의 노동 대중이 스스로 새로운 삶을 건설하고 있고 그들 자신의 경험으로 사회주의를 조직하는 가장 어려운 과제를 해결해 나가고 있기 때문이다. 그렇게 노력하는 과정에서, 수많은 평범한 노동자, 농민이 가장 의식적으로 진지하게 자신의 생활을 완전히 재조직하는 이 과정에서 저지르는 실수 하나 하나가 소수 착취자들의 ‘완벽한’ 성공 ― 노동 대중을 속이고 사기 치는 데 성공하는 것 ― 수백만 개보다 더 소중하다. 오직 그런 실수를 통해서만 노동자, 농민은 새로운 생활을 개척하는 법을 배우고 자본가들 없이도 일할 수 있는 법을 배울 것이다. 오직 그런 식으로만 노동자, 농민은 스스로 수많은 장애물을 극복하고 사회주의의 승리를 향해 나아갈 수 있을 것이다.” 민주적 노동자권력의 모습을 예상하기 분명한 점이 있다. 현대 사회의 노동자계급은 1917년 혁명기의 러시아 노동자계급보다 훨씬 더 문화적으로 성숙해 있다는 것이다. 노동자들이 윤석열의 시대착오적 계엄령 발동에 단호하게 맞섰던 것처럼(심지어는 직업군인들조차 계엄령에 소극적으로 항명했던 것처럼), 앞으로도 노동자계급은 자신들 위에 군림하려는 특권 계급을 용납하지 못할 것이다. 또 노동자계급이 인구 구성의 다수를 점하지 못했고 교육 수준이 낮았던 1917년 러시아와 비교하면, 오늘날 노동자계급의 전반적 역량은 훨씬 탁월하다. 만약 노동자계급의 자주적 역량에 대해 여전히 의심이 남는다면, 범위를 좁혀 자신의 일터를 생각해 보라. 예컨대 나는 IT산업이나 물류산업 등에 대해서는 일자무식이지만, 내가 십수 년 동안 종사해 온 노동위원회, 노동청 법률 사무라면 누구보다도 효율적으로 업무를 재조직할 자신이 있다. 동지들도 마찬가지일 것이다. 돈벌이 때문에, 사장의 아집과 꼰대 기질 때문에, 간단하게 해치울 수 있는 일을 빙빙 돌아가며 해야 하는 경우가 좀 많은가? 어느 중소기업에서 젊은 노동자가 업무를 간단히 처리할 방법을 제안했더니, 만족한 사장이 이것도 시키고 저것도 시켜서 다음부터 침묵했단 얘기는 그냥 웃고 말 일이 아니다. 오랜 경험으로 단련된 노동자들은 자기 업종과 자기 업무에 대해서는 그 누구보다도 전문가다. 착취의 굴레가 벗겨진 사회에서는 노동자들의 집단 지성이 놀라울 정도의 성취를 이뤄낼 것이다. 사회주의 사회에서 노동자들은 부서(팀) 단위에서, 사업장 단위에서 민주적 의사결정 체계를 도입해 자주적 생산관리에 나설 것이다. 이를 통해 노동자 대중은 소외된 노동이 아니라 자주적 노동의 효능감을 만끽할 것이 분명하다. 그런데 동시에 민주적 노동자권력은 사업장 단위뿐만 아니라 산업 단위, 국가 단위에서도 중층적 의사결정 구조를 도입할 것이다. 즉 노동자권력은 부서 단위, 사업장 단위, 지역 단위 등 풀뿌리 민주주의의 활성화를 전폭적으로 긍정하면서도, 이를 중앙집중적으로 모아내는 작업을 동시에 수행할 수밖에 없다. 거듭 지적하지만 현대 사회의 발전된 생산력은 국가 차원 또는 세계적 차원의 조정과 통제를 필요로 하기 때문이다. 전체 공동체에 우선적으로 충족돼야 하는 필요가 무엇인지, 사회의 잉여 자원을 어느 부문에 우선 투입할 것인지, 만약 인간의 필요 충족과 생태환경의 보전이 충돌한다면 이를 어떻게 조정해야 하는지 등등 경제 계획의 수립과 집행을 둘러싼 다양한 정치적 견해와 흐름이 전국 노동자평의회에서 백가쟁명식으로 논의되고 결정될 것이다. 다만 계급사회로의 회귀 시도는 철저히 봉쇄한다는 전제 아래 말이다. 3. 현실이 증명하는 민주적 계획경제의 가능성 자주적 노동자권력이 민주적으로 전체 경제를 운영한다는 것이 결코 공상이 아니라는 점을 보여주는 흥미로운 책이 있다. 미국 서던캘리포니아대학(USC) 경영학 교수 폴 애들러(Paul Adler)가 쓴 『1%가 아닌 99%를 위한 경제(2021)』란 책이다. 폴 애들러는 민주적 사회주의자를 자임한다. 그는 경영학 연구 과정에서 “(자본주의) 사회에서 가장 복잡하고 정교한 몇몇 사업체의 경영 방식을 살펴볼 기회”가 있었고 이를 통해 “민주사회주의를 지향하는 두 가지 결론에 도달”했다고 한다. 두 가지 결론이란 사회적 생산과 자원의 배분 문제를 “민주적으로 결정”하고, “전략적으로 경영”하는 체제를 말한다. 즉 폴 애들러가 말하는 대안 사회에서는 “우선 사회의 주요 생산 자원을 공공의 소유로 둠으로써, 경제의 핵은 하나의 거대한 기업이나 다름없어질 것”이고 “오늘날 경쟁적인 여러 기업은 곧 핵심적인 거대 기업의 부차적인 팀원으로 바뀔 것”이다. 마치 “대기업의 최고경영진이 기업 내 여러 부서를 경영하듯이, 이제 한 팀이 된 경쟁 기업들은 상호의존적 문화를 바탕으로 전략적으로 경영”하게 된다. 구성원들이 “민주적인 방식으로 협력”하면서 말이다. 이것이 머릿속 추정이 아니며, 현대 기업 연구를 통해 실증된다고 하는 게 이 책의 핵심이다. 폴 애들러는 자본주의의 초대형 기업 몇 군데를 연구한 경험을 소개한다. 이런 초대형 기업은 웬만한 국민경제 몇 개를 합친 것보다 크다. 예컨대 전 세계에 1만 1,700여 개 소매점을 두고 직원이 230만 명에 달하는 월마트, 매년 약 3억 명의 소비자에게 20억 개에 가까운 제품을 배송하는 아마존 등이 그렇다. 그런데 이들 초대형 기업 내부에서 “원자재 공급부터 최종 완제품 판매까지 이어지는 과정은 자본주의 시장 경쟁에 의해서가 아니라 경영자의 전략 경영으로 조정”된다. 앞서 말한 대로 철저한 계획경제가 시행되는 것이다. 따라서 “각각의 대기업이 조직을 관리하면서 내부적으로 맞닥뜨리는 문제는 우리가 경제를 사회주의적으로 관리하려고 할 때 극복해야 할 문제와 유사”하다. 폴 애들러는 초대형 기업 연구를 통해 계획경제에 대한 오래된 비난을 하나씩 반박한다. 첫째, 시장은 가격을 통해 수요와 공급을 ‘효율적으로’ 조정하는 데 비해, 계획경제로는 절대 이 효율성을 쫓아올 수 없다는 주장은 여전히 타당한가? 아니다. 폴 애들러는 “현대의 컴퓨터 기술은 경제 전반에서 일어나는 생산 및 투자 계획을 충분히 계산해낼 수 있어서 자본주의 시장을 통해서만 균형을 맞출 수 있다는 주장은 이제 옛말이 되었다”고 단언한다. 실제로 현대 대기업은 ‘전사적 자원 관리(ERP, Enterprise Resource Planning)’와 ‘판매 운영 계획(S&OP, Sales and Operations Planning) 같은 시스템으로 경영 전략을 세우기 위한 모든 기본 자료를 통합해 활용한다. 이미 우리도 오늘 오후에 주문한 상품이 다음 날 아침 배송되는 것을 경험한다. (놀라운 일이다! 물류‧유통 자본은 소비자 수요를 정교하게 예측하고 주문 가능성이 높은 물품을 물류창고에 미리 쟁여뒀단 뜻이다.) AI 기술은 이런 효율성을 한층 더 높일 것이다. 둘째, 계획은 본질적으로 중앙집중적일 수밖에 없으므로 계획경제는 결국 관료적 명령경제로 귀결되지 않겠는가? 즉 미래의 경제 혁신에 꼭 필요한 개인의 창의성은 말살될 수밖에 없지 않은가? 폴 애들러는 이른바 ‘고차원 기업’에서 행해지는 ‘협력하여 전략 세우기’를 실례로 삼아 이 역시 반박한다. ‘고차원 기업’은 디지털 기술에 기반해 경영에 필요한 모든 정보를 통합한 후, 하위 조직의 목표를 전체 전략과 효과적으로 조율하는 상향식 경영 참여 기법을 개발해 운영하고 있다. 중앙집중적 의사결정과 개별 구성원이 가지는 자율성 사이의 긴장은, 이와 같은 ‘협력하여 전략 세우기’를 통해 실천적으로 해소된다. ‘협력하여 전략 세우기’는 이어 ‘협력하여 혁신 이루기’, ‘협력하여 학습하기’, ‘협력하여 일하기’로 나아간다. 이러한 일련의 과정이 유기적으로 돌아가는 ‘고차원 기업’에서는 개인과 집단 사이의 상호의존성 기업 문화가 자리 잡는다. 즉 “창의적인 아이디어를 내기 위해 독특하고 다양한 발상이 필요한 상황이더라도, 직원과 기업이 공동의 목표를 공유한다면 개인주의 문화와 집단주의 문화가 충돌하지 않는다. 또한 일상적인 업무를 수행하는 직원이 팀에서 결정한 업무 지침을 따라야 하더라도 집단주의 문화는 향상할 기회를 확인하며 도움이 될 혁신적인 아이디어를 개발하는 데 필요한 개인의 창의력을 방해하지 않는다.” 고차원 기업의 어느 구성원은 이를 두고, 개인기에만 의존하던 길거리 농구가 개인 기량과 팀플레이가 융합된 NBA 프로 농구로 바뀌는 것 같다고 비유했다. 이 책이 영감을 불러일으키는 대목은 아쉽게도 여기까지다. 이어 폴 애들러는 민주사회주의로의 변혁 시나리오로 현실감이 떨어지는 이야기들만 내놓기 때문이다. 그의 첫 번째 시나리오는 파국적인 경제위기가 발생했을 때 “민주사회주의가 절실하다는 시민들의 요구”가 터져 나온다는 것이다. 예컨대 파산한 기업과 은행을 정부가 인수하라는 요구 같은 것이다. 두 번째 시나리오는 기후재앙이 현실화하여 사람들이 2차 세계대전의 전시경제체제와 비슷한 비상체제로 돌입할 것을 요구하게 된다는 것이다. 세 번째 시나리오는 “점진적인 변화”를 통한 민주사회주의의 달성이다. 최저임금 인상, 더 강력한 환경 규제, 보편적 의료보험, 노동자 이사, 무상 교육 등등 사회적 합의를 통해 민주사회주의로 이행한다는 것이다. 물론 세 가지 시나리오 모두 실현 가능성은 극히 낮다. 자본주의의 파국은 저절로 찾아오는 것도 아니며, 그때에도 자본가계급은 노동자 계급의 물리적 강제 없이 자신의 계급적 특권을 스스로 내려놓을 리 만무하기 때문이다. Ⅳ. 민주적 계획경제로 나아가는 노동자투쟁 기후위기뿐 아니라 자본주의가 겪고 있는 총체적 위기를 극복하기 위해 민주적 계획경제를 실현해야 함은 분명하다. 다만 이것은 사회주의자들의 최대강령이다. 즉 최대강령이란 노동자운동의 궁극적 목표를 가리킨다. 그러나 자본주의 이데올로기에 사로잡힌 노동자계급이 단번에 최대강령을 쟁취할 수 있는 것은 아니다. 노동자계급이 국가권력을 장악하고 민주적 계획경제를 실천하는 데까지 나아가려면, 1강에서 지적했듯이 일상적 투쟁을 통해 준비되고 단련되는 과정이 필요하다. 노동자들의 부분적 요구를 담아내는 강령을 최소강령이라 부르는데, 『공산주의 선언』에 명시된 고율의 누진세, 모든 아동에 대한 사회적 무상교육 등이 그 예다. 즉 최소강령은 자본주의 사회에서도 실현 가능한 요구들까지 포함된다. 그럼 최소강령과 최대강령 사이의 간극은 어떻게 극복되는가? 계급투쟁의 발전을 통해서다. 개량주의자들이 최소강령과 최대강령 사이에 넘을 수 없는 벽을 세우고자 했다면, 마르크스주의 혁명가들은 최소강령과 최대강령을 변증법적으로 통합하기 위해 분투했다. 트로츠키가 주창한 이행강령 역시 최소강령과 최대강령 사이에 다리를 놓는다는 측면에서 제기된 것이다.[32] “일상적 투쟁에서 대중이 사회주의혁명의 필요성을 인식하도록 가교(假橋)를 놓는 것이 필요하다. 이 가교에는 이행기 요구들이 포함되어야 한다. 이 요구들은 현재의 객관적 상황과 광범위한 노동자대중의 의식에 기초하여 제기되면서, 동시에 이들이 노동자계급의 권력장악이라는 단 하나의 최종 결론에 도달하도록 인도한다. … (제4인터내셔널의) 정치적 목표는 자본가계급 수중의 생산수단을 몰수하기 위해 노동자계급의 권력 장악을 돕는 것이다. 그러나 이 전략적 임무는 모든 전술적 문제들, 심지어는 아주 사소하고 부분적인 전술적 문제들을 가장 진지하게 고려하지 않고서는 달성될 수 없다. 후진층, 선진층, 직업, 집단 등을 망라하여 노동자계급 전체는 혁명운동에 가담해야 한다. 혁명정당은 대중의 일상투쟁들로부터 자유로울 수 없다. 반대로 이 투쟁들은 실제 혁명의 임무와 완벽히 결합한다. 이것이 바로 반동적 자본주의인 제국주의 시대의 특징이다.”[33] 이행강령이 제기된 시대적 배경은 제1차 세계대전과 함께 자본주의의 위기가 고조됐다는 점이다. 사회주의 혁명만이 인류를 구원할 수 있는 상황에서, 이행강령은 대중의 절박한 생존적 요구를 대변하면서 그 자체로 국가권력 장악의 필요성을 제기하게 된다. 마찬가지로 기후위기 대응을 위해 오늘날 절박하게 요구되는 긴급 조치들은 민주적 계획경제로 나아가는 이행강령적 성격을 띠게 된다. 1. 노동자 기후파업을 조직하자! 독일의 메가스트라이크 2020년 독일의 기후운동가들은 중대한 고민에 맞닥뜨렸다. 2018년부터 시작된 ‘미래를 위한 금요일(Fridays For Future, FFF)’ 운동이 전략적 공백과 퇴조를 겪었기 때문이다. 한때 ‘금요일 기후파업’ 등을 중심으로, 기후 운동에서는 ‘체제전환(System change)’이라는 슬로건이 유행했다. 그러나 이 운동은 실제로는 시민 불복종이라는 상징적인 행동, 혹은 정치 결정권자를 향한 몇 차례 집회 이상으로 나아가지 못하고 있었다. 반면 독일 사회민주당, 자유민주당, 녹색당이 연합한 소위 ‘신호등’ 연방정부는 2021년 출범해 전형적인 녹색자본주의 정책을 추진하고 있었다. 연방정부는 기후운동의 상승기에 기후위기 해결을 위한 적극적이고 즉각적인 조치를 약속했지만, 그 대신 기후위기의 비용을 노동자민중에게 전가하는 ‘긴축 생태’ 정책을 펼쳤다. 이때 기후활동가들이 주목한 것이 바로 노동자운동이었다. 이들은 기후정의 운동에 더 많은 노동자계급을 적극적으로 참여시키고, 기후 문제를 노동자들의 일터로 가져가는 것을 고민하기 시작했다. 그 첫 시도로 기후활동가들은 대중교통 노동자들을 조직하기 시작했다. 자가용 차량 대신 대중교통의 서비스 질과 이용 편의성을 높여야 탄소 배출을 줄일 수 있다는 것은 자명하다. 그러나 버스, 철도 등 대중교통 부문 노동자들은 장시간 교대 근무를 하며 최저임금을 약간 상회하는 급여로 간신히 생계를 유지하고 있었다. 청년층의 유입은 줄어들고 퇴직률이 높아 이미 수만 명의 운전자가 부족한 가운데, 교통요금은 꾸준히 상승하고 있었으며, 특히 농촌 지역의 여객 운송 시스템은 점점 더 축소되고 있었다. 이는 1990년 이래 지속된 공공부문 민영화의 결과다. 1990년대 이후 연방정부는 공공부문을 민영화하고 자유화하면서 인력 감축, 업무강도 강화, 불안정한 고용, 소득 감소, 노동조합 약화 등 각종 긴축 조치를 시행했다. 이 과정에서 철도 공기업이었던 ‘도이체반’도 1994년에 민간 기업으로 전환되고, 철도 여객 서비스의 상당 부분도 1996년 이후 대부분 민간 공급업체로 넘어갔다. 민영화의 여파 속에서 조직노동자들은 서로 다른 단체와 소속으로 분열되는 등 투쟁의 구심점을 모아내지 못한 채 결속력을 상실한 상태였다. ‘미래를 위한 금요일’은 2020년 지역 대중교통 단체교섭에 연대하며, 파업 당일 30개 이상의 도시에서 공공서비스노조(Ver.di)의 투쟁을 방문하고 지원했다. ‘미래를 위한 금요일’은 교통노동자들의 파업을 지지하고자 “#wirfahrenzusammen (#WeDriveTogether) 2020”라는 캠페인을 추진하였다. 이 캠페인을 통해 ‘미래를 위한 금요일’ 활동가들은 파업 노동자들을 위한 구체적인 연대를 조직하는 것부터 시작하여 승객들로부터 연대 성명서를 수집하고, 정치인들을 만나 노동자들의 요구를 전달했으며, 시민들과 노동자들의 노동조건에 대해 이야기하는 모임을 조직했다. 심지어 활동가들이 직접 노동자들에게 파업에 나서도록 설득하기도 했다. 2020년 파업을 계기로 여러 도시에서 노동운동과 기후운동의 동맹을 목적으로 하는 공동의 단체들이 설립되었고, 2024년 현재 60개 이상의 도시에서 1,000여 명의 활동가들이 #wirfahrenzusammen 캠페인에 참여하여 대중교통 노동자들의 투쟁을 적극적으로 지원하고 있다. 2023년 3월 3일, 그간의 성과를 바탕으로 전 세계 기후파업에 맞춰 독일 대중교통 노동자들이 함께 파업에 돌입했다. 이날 공공서비스노조는 전국적으로 지역 대중교통 노동자들이 하루 동안 행동할 것을 촉구하고 6개 연방 주에서 경고 파업을 벌였다. 그 결과 최소 30개 도시의 20만 명 이상이 파업에 참여했다. 독일 고용주 연맹(BDA)의 CEO 슈테펜 캄페터는 “노조가 정치파업의 영역으로 진입하고 있다”며 파업을 비난했다. 이는 역설적으로 자본가들이 사회적 정당성을 갖춘 노동자들의 파업을 극히 두려워한다는 것을 드러낸다. 3월 27일, 파업은 이제 전체 운송부문으로 확대됐다. 대중교통 종사자뿐만 아니라 항공, 철도, 수상 운송 종사자들도 파업에 참여했다. 이날 독일 최대 공항인 프랑크푸르트 공항 등 전국 공항에서 항공편 운항이 중단됐다. 전국에서 장거리 열차 운행이 멈췄고, 베를린에서는 도시고속철도 운행이 끊기고, 독일 최대 항구인 함부르크 항도 마비됐다. 한 언론의 표현처럼 독일 안의 “모든 바퀴가 멈췄다(All wheels stand still!).” 대규모 파업에 놀란 사측은 27개월 동안 5% 임금인상과 일시금 2,500유로(약 350만 원) 지급을 제안할 수밖에 없었다. 독일 내무장관 낸시 패저가 “노조의 요구를 들어주려면 매년 14억 유로(약 1조 9천억 원)가 추가로 든다”며 난색을 표했음에도 말이다. 프랑스 토탈(Total) 정유공장 파업 2021년 1월 4일, 프랑스 그랑퓌 정유공장 노동자들은 석유·가스부문 거대 다국적기업인 토탈(Total)의 정유공장 폐쇄에 맞서 파업에 들어갔다. 토탈은 그랑퓌 정유공장을 왜 폐쇄했는가? 자본이 내세운 명분은 “석유 제로” 전략이었다. 그러나 화석연료 생산을 줄이겠다는 공장 폐쇄 명분은 전형적인 그린워싱이었다. 실상 토탈은 그랑퓌의 정유공장을 폐쇄하고, 원유매장지에서 가깝고 노동조건이 열악하며 환경기준이 느슨한 아프리카 국가 등으로 공장을 이전할 계획이었기 때문이다. 실제로 토탈이 추진하고 있는 우간다 틸렝가 석유 시추 프로젝트와 동아프리카 원유 송유관(EACOP) 건설 사업은 해당 지역의 자연환경과 주민들에게 재앙적인 결과를 불러왔다. 1,443㎞ 길이의 송유관이 우간다와 탄자니아의 주요 생태계 보전지역을 가로지르면서 국립공원이 파괴되고, 10만 명이 넘는 주민들이 토지를 빼앗긴 채 강제 이주를 당할 위기에 처했다. 토탈 그랑퓌 공장의 노동자들은 자본의 그린워싱에 맞서 일자리를 위한 투쟁과 환경을 위한 투쟁을 묶어내는 광범한 공동전선을 건설했다. 토탈 정유공장 노동자들은 수년 전 정리해고가 관철됐던 라메드 정유공장 노동자들과 만나 소통하고, ‘지구의 친구들’, ‘그린피스’ 등 기후·환경운동 단체와 접촉했다. 기후·환경운동가들은 화석연료 자본과 맞서는 투쟁에 매우 흥분했고, 이를 계기로 형성된 노동자와 기후운동의 결합은 파업의 큰 동력이 되었다. 노동자들은 투쟁 속에서도 에너지·산업 전환에 관한 토론을 이어 나가며 생각을 발전시켜 나갔다. “다국적기업의 손으로 친환경 전환이 이루어질 수 있는가?”라는 질문에 이들은 “노동자들이 공장의 통제권을 장악하면 오염을 덜 일으킬 것”이라는 결론을 도출했다. 이윤 본위의 생산이 아니라 사회적 필요를 위한 생산이라면 생태적 한계를 유지하고 공동체를 존속시킬 수 있다는 것이다. 독일의 메가스트라이크, 프랑스 토탈 그랑퓌공장의 파업 모두 기후정의 운동과 노동자운동이 결합했을 때 얼마나 큰 성과를 낼 수 있는지 보여준 실례다. 결국 자본가들을 물러나게 하는 것은 노동자계급이 가진 물리적 힘이기 때문이다. 또 노동자운동은 기후정의를 내세워 사회적 정당성을 확보할 수 있었다. 한국의 기후정의 운동도 노동자운동과의 결합이라는 관점을 전면화해야 한다. 이를테면 노동 현장에서 노동안전 투쟁은 그 자체로 기후정의 투쟁이 될 수 있다. 폭염, 폭우, 혹한과 같은 기후재난에서 노동자가 죽지 않고 일하기 위해서는 작업중지권 보장, 노동시간 단축 및 충분한 휴게시간 보장, 냉난방 등의 조치가 시행돼야 한다. 현장의 노동자들이 노동조건을 자주적으로 통제해야 하며, 이는 그 자체로 기후정의를 위한 투쟁의 성격을 가질 것이다. 2. 기간산업 국유화와 노동자 통제 기후재난 시대 인류의 생존을 위해서는 기간산업에서 즉각적으로 자본의 소유권을 몰수하고 이를 국유화하는 긴급한 조치가 필요하다. 우선 에너지산업을 국유화해 재생에너지 전환을 전면화하고 노동자 민중의 필요와 계획에 따른 에너지 생산으로 대체해야 한다. 자본주의는 노동자 민중의 기본권인 에너지 생산마저 이윤 창출의 수단으로 악용한다. 한국에서 전체 발전의 30%는 민간자본 발전사가 담당한다. 천연가스 직수입을 악용해서 엄청난 돈을 버는 SK, GS 등 재벌 발전사도 그중 일부다. 한국전력공사는 재벌 발전사의 이윤을 보장하기 위해 비싼 값에 전기를 구매하고, 여기서 발생한 적자를 노동자 민중의 전기요금 인상으로 해결한다. 더욱이 저들은 안정적 이윤 생산을 위해서라면 위험천만한 핵발전도 마다하지 않는다. 이들의 무분별한 행태를 제어하자면 에너지산업의 각종 소유권을 몰수하고 국유화해야만 한다. 더 나아가 제철, 조선 등의 제조 분야, 철도, 버스 등 대중교통 분야 등 탄소 배출량이 높은 각종 기간산업 역시 국유화해야 한다. 이들 기간산업에서도 경쟁의 압력에 놓인 개별자본은 사회 전체의 이익보다는 자신의 이윤 획득을 우선시하기 때문이다. 더구나 기간산업의 재벌은 그동안 비정규직·사내하청 확대 등으로 노동자들을 가혹하게 착취한 것을 넘어, 중소기업, 소상인 등 광범위한 노동자 민중을 수탈하며 천문학적인 이윤을 벌어왔다. 기간산업의 국유화는 해당 분야에 고용된 노동자들의 생활 조건을 방어하는 것은 물론 사회에 대한 재벌의 문어발식 수탈을 막기 위해서도 필수적이다. 기간산업을 국유화함으로써 이윤이 아니라 노동자 민중의 필요에 맞춘 계획적 생산을 도모할 수 있다. 이것이 바로 사회가 기후재난에 대응하기 위한 기본 전제다. 여기서 핵심적으로 중요한 것은 국유화된 기간산업을 노동자계급이 자주적·민주적으로 통제해야 한다는 것이다. 그럴 때만 국유화된 산업은 노동자 민중의 필요를 충족하는 계획적 생산의 도구가 될 수 있다. 우리는 자본주의 체제 속의 공기업들이 사기업과 마찬가지로 비정규직 해고 등 악랄한 착취와 억압을 자행하는 것을 수차례 목격해 왔다. 기간산업을 국유화하더라도 이것이 단지 기업의 경영권을 민간 자본가에서 국가 관료의 탈을 쓴 자본가에게 양도하는 것에 불과하다면, 국유화는 아무런 의미도 지닐 수 없게 된다. 해당 산업을 실질적으로 운영해 온 노동자들은 자신들의 역량을 넘치게 발휘해 해당 산업의 생산체계를 사회 전체의 필요를 위해 합리적으로 재편할 것이다. 기간산업 노동자들로 구성된 산업통제위원회는 이윤 생산에만 도움이 될 뿐 기후위기 대응에는 무의미한 낭비적 생산 분야를 즉각 폐지할 것이며, 노동자 민중의 요구를 수렴하여 전기, 대중교통 등 필수 공공서비스 요금을 체계적으로 낮출 수 있을 것이다. 이러한 노동자 통제의 경험은 노동자계급의 거대한 잠재력을 현실화하는 수단이다. 노동자 통제를 통해 노동자계급은 민주적 계획경제를 운영할 수 있는 능력을 체계적으로 습득하고 발휘하게 된다. 이것은 기생충에 불과한 한 줌 자본가계급을 완전히 청산하고, 이윤 대신 사회적 필요를 위한 합리적 경제체제를 건설하기 위해 꼭 필요한 과정이 될 것이다. ※ 함께 읽으면 좋은 자료 = 마르크스, 「고타 강령 초안 비판」, 『맑스엥겔스 저작선집』 4권. = 엥겔스, 「오이겐 뒤링 씨의 과학 변혁」, 『맑스엥겔스 저작선집』 5권. = 레닌, 『국가와 혁명』 [미주] [1] 보통 때의 모양이나 형편. [2] IPCC(Intergovernmental Panel on Climate Change, 기후변화에 관한 정부간 협의체)는 기후위기에 대처하기 위해 세계기상기구(WMO)와 유엔환경계획(UNEP)이 1988년에 공동 설립한 국제기구로, 기후변화에 관한 과학적 연구를 수행한다. [3] “It is unequivocal that human influence has warmed the atmosphere, ocean and land. Widespread and rapid changes in the atmosphere, ocean, cryosphere and biosphere have occurred.” [4] 칼 마르크스, 『자본』 1권, 강신준 옮김, 도서출판 길, 333쪽. [5] 칼 마르크스, 앞의 책, 381쪽. [6] 다음 기사도 참조할 만하다. 박기용, “가속을 멈춰라, 달팽이처럼 기어서 가자”, <한겨레21> 2023년 4월 13일, https://h21.hani.co.kr/arti/society/environment/53695.html [7] 사이토 고헤이의 정의에 따르면, ‘탈성장 코뮤니즘’이란 “정상(定常)형 경제에 근거한 지속 가능성과 평등이 자본주의에 저항할 거점이 되어 미래 사회의 기초”가 된다고 보는 “평등하고 지속 가능한 탈성장형 경제”다. [8] 마르크스‧엥겔스, 「공산주의당 선언」 러시아어판 서문(1882년), 『맑스엥겔스 저작선집』 1권. [9] 엥겔스, 「러시아의 사회상태」, 『맑스엥겔스 저작선집』 4권. [10] 3.1 운동보다 불과 수십 년 앞섰던 1862년 임술농민봉기, 1894년 갑오농민전쟁 등이 삼남 지역만으로 제한됐던 것과 확연히 비교된다. [11] 마르크스, 「독일 이데올로기」, 『맑스엥겔스 저작선집』 1권. [12] 트로츠키, 『배반당한 혁명』, 김성훈 옮김, 갈무리, 제5장. ‘소련에서의 테르미도르 반동’ [13] 마르크스, 『자본』 1권, 강신준 옮김, 도서출판 길, 811쪽 이하. [14] 마르크스, 앞의 책, 851쪽. [15] 요로고스 칼리스가 말하는 페미니즘은 가부장제가 자본주의와 같은 생산관계와 무관하게 존속해 왔다고 보는 페미니즘이며, 자본주의의 핵심을 임금노동 관계에서의 ‘착취’가 아니라 ‘약탈’로 보고 자급자족 경제라는 대안을 제시하는 페미니즘이다. [16] 마리아 미스‧반다나 시바, 『에코페미니즘(개정판)』, 17장 ‘소비자해방’. [17] 마르크스, 『자본』 1권, 강신준 옮김, 도서출판 길, 810쪽. [18] 레닌, 『국가와 혁명』, 김영철 옮김, 제4장. ‘보론: 엥겔스의 보충 설명’ [19] <똥파리와 인간> - 김남주 똥파리에게는 더 많은 똥을 / 인간에게는 더 많은 돈을 / 이것이 나의 슬로건이다 // 똥파리는 똥이 많이 쌓인 곳에 가서 / 떼지어 붕붕거리며 산다 그곳이 어디건 / 시궁창이건 오물을 뒤집어쓴 두엄더미건 상관 않고 // 인간은 돈이 많이 쌓인 곳에 가서 / 무리지어 웅성거리며 산다 그곳이 어디건 / 범죄의 소굴이건 아비규환의 생지옥이건 상관 않고 // 보라고 똥없이 맑고 깨끗한 데에 가서 / 이를테면 산골짜기 옹달샘 같은 데라도 가서 / 아무도 보지 못할 것이다 떼지어 사는 똥파리를 // 보라고 돈 없이 가난하고 한적한 데에 가서 / 이를테면 두메산골 외딴 마을 깊은 데라도 가서 / 아무도 보지 못할 것이다 무리지어 사는 인간을 // 산 좋고 물 좋아 살기 좋은 내 고장이란 옛말은 / 새빨간 거짓말이다 똥파리에게나 인간에게나 / 똥파리에게라면 그런 곳은 잠시 쉬었다가 / 물찌똥이나 한번 찌익 깔기고 돌아서는 곳이고 / 인간에게라면 그런 곳은 주말이나 행락철에 / 먹다 남은 찌꺼기나 여기저기 버리고 돌아서는 곳이다 // 따지고 보면 인간이란 게 별 것 아닌 것이다 / 똥파리와 별로 다를 게 없는 것이다 [20] 마르크스, 『자본』 1권, 강신준 옮김, 도서출판 길, 140쪽. [21] 이하 엥겔스의 글은 「오이겐 뒤링 씨의 과학 변혁」, 『맑스엥겔스 저작선집』 5권. [22] 눈치챈 사람들이 있겠지만, 정말 사회주의자들이 배워야 할 실용 지식이 아닐 수 없다…. [23] 마르크스, 『자본』 1권, 강신준 옮김, 도서출판 길, 142쪽. [24] 이하, 마르크스, 「고타 강령 초안 비판」, 『맑스엥겔스 저작선집』 4권. [25] “한 사회가 그 부를 동일한 규모로 재생산하거나 유지하기 위해서는 예를 들어 1년 동안에 소비된 생산수단[즉 노동수단‧원료‧보조재료들]을 새로운 물품의 일정량―연간 생산물에서 따로 떼어내 다시 생산과정에 투입하는 양―에 의하여 현물로 보전해야 한다.” 마르크스, 『자본』 1권, 강신준 옮김, 도서출판 길, 777쪽. [26] “사회주의와 공산주의의 과학적 차별성은 명료하다. 현재 흔히 사회주의라고 불리워지고 있는 것을 마르크스는 공산주의 사회의 ‘첫째’, 또는 낮은 국면이라고 개념 규정했다.” 레닌, 앞의 책, 제5장. ‘국가사멸의 경제적 토대’. [27] 한편 레닌이 『국가와 혁명』에서 공산주의 사회에 이르러서야 국가가 사멸한다는 점을 분명히 했던 점도 주목하라. “‘보다 높은’ 국면의 공산주의가 도래하기까지는, 노동정책과 소비정책에 대한 사회와 국가의 엄격한 통제가 요구된다 … 이 통제는 자본가들에 대한 노동자들의 통제의 수립과 함께 자본가들이 지니고 있던 생산수단의 몰수로부터 시작해야 하며 관료로 이뤄진 국가가 아닌 무장한 노동자들로 이루어진 국가에 의해 실행되어야만 한다.”, “소비재의 분배에 관련하여 부르주아적인 권리는 불가피하게 부르주아 국가의 존재를 전제로 하는데, 왜냐하면 권리란 권리의 기준에 대한 준수를 강제할 수 있는 장치 없이는 아무런 의미도 지니지 않기 때문이다.” [28] 마르크스, 『자본』 1권, 강신준 옮김, 도서출판 길, 100쪽. [29] 이하 그룹스카야, 『레닌의 회상』, 일월서각, 1986, 352쪽. [30] 빅토르 세르주, 『러시아 혁명의 진실』, 제3장. ‘도시 중간계급 대 프롤레타리아트’. [31] 이하는 토니 클리프, 『레닌평전 3 – 포위당한 혁명』, 4. ‘자본주의에서 사회주의로의 이행’에서 재인용 [32] 최대강령, 최소강령, 이행강령의 역사적 의미에 대해서는 다음 글을 참조하라. 최영익, ‘오늘날의 사회주의 강령-최소강령, 최대강령, 이행강령’ https://nht.jinbo.net/bbs/board.php?bo_table=online1&wr_id=632 [33] 트로츠키, 「이행기강령 – 자본주의의 단말마적 고통과 제4인터내셔널의 임무」, 『사회혁명을 위한 이행기 강령』, 풀무질. [앞선 시리즈 읽기] #7 사회주의 바로알기: 중국, 북한은 가짜 사회주의 /* 스크롤 여백만 주고, 화면에는 안 보이게 */ .ftn-target { display: inline-block; /* 줄바꿈 안 생김 */ width: 0; height: 0; scroll-margin-top: 200px; } document.addEventListener("DOMContentLoaded", function () { // name="_ftn1", name="_ftn2", name="_ftnref1" ... 전부 대상 document.querySelectorAll('a[name^="_ftn"]').forEach(function(a) { var idValue = a.getAttribute("name"); // 이미 같은 id의 요소가 있으면 또 만들지 않음 if (!document.getElementById(idValue)) { var span = document.createElement("span"); span.id = idValue; span.className = "ftn-target"; a.parentNode.insertBefore(span, a); } }); }); /* 본문 각주 번호 + 아래쪽 각주 번호 색 지정 */ a[href^="#_ftn"] sup, a[href^="#_ftnref"] sup { color: #BF202D; } /* 밑줄이 보기 싫으면 */ a[href^="#_ftn"], a[href^="#_ftnref"] { text-decoration: none; } /* 마우스 올렸을 때 살짝만 강조하고 싶으면 (선택) */ a[href^="#_ftn"]:hover, a[href^="#_ftnref"]:hover { text-decoration: underline; } /* 페이지 전체가 오른쪽으로 넘치지 않게 */ html, body { max-width: 100%; overflow-x: hidden; } /* 본문 영역 폭 강제 고정 + 긴 단어/문장도 줄바꿈 */ #bo_v_con, .bo_v_con, .cke_editable, article { max-width: 100%; overflow-wrap: break-word; word-wrap: break-word; /* 구형 브라우저용 */ } /* 워드에서 붙은 이미지/표가 화면 밖으로 안 나가게 */ #bo_v_con img, #bo_v_con table, .bo_v_con img, .bo_v_con table, .cke_editable img, .cke_editable table, article img, article table { max-width: 100% !important; height: auto; } /* 워드가 p, span에 폭을 박아놓은 경우 강제로 해제 */ #bo_v_con p[style*="width"], #bo_v_con span[style*="width"], .bo_v_con p[style*="width"], .bo_v_con span[style*="width"], .cke_editable p[style*="width"], .cke_editable span[style*="width"], article p[style*="width"], article span[style*="width"] { width: auto !important; max-width: 100% !important;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