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검은 점들이 모여 검은 바위, 검은 산, 검은 파도가 되기를!

고 서이초 교사 49재 추모집회, '공교육 멈춤의 날' 후기

기사입력 2023.09.05 18:00 | 조회 5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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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살고 싶다. 교사로서 살고 싶다!”

    고(故) 서이초 교사 49재 추모집회가 열린 9월 4일 전 나흘 사이 세 명의 교사가 또다시 목숨을 스스로 놓았다. 


    전국 많은 교사들은 9월 4일을 ‘공교육 멈춤의 날’로 정하고 곳곳에서 고(故) 서이초 교사 49재 추모집회를 열었다. 서울에서는 국회의사당 앞에서 진행된 추모집회에 약 5만 명이 모였다. 교사들이 대부분이었지만 학부모와 학생들도 함께했다. 


    고 서이초 교사 49재 추모집회는 지난 7월 22일 1차 집회 이후 8번째로 이어지는 집회이기도 했다. 이번 추모집회의 주된 구호는 “교권보호합의안을 지금 당장 의결하라!”였다. 


    그동안 교사들이 외친 구호들은 다음과 같다.

    “교사의 생존권을 보장하라!”(7월 22일 1차 집회)

    “교사는 가르치고 싶다! 학생은 배우고 싶다!”(7월 29일 2차 집회)

    “서이초교 진상규명 촉구한다! 아동학대처벌법을 개정하라!”(8월 5일 3차 집회)

    “수업 방해 대응책을 마련하라!”(8월 12일 4차 집회)

    “실효적인 민원 처리 시스템을 마련하라!”(8월 19일 5차 집회)

    “교사가 전문가다! 현장 요구 반영하라!”(8월 26일 6차 집회)

    “우리는 포기하지 않는다! 우리는 끝까지 한다!”(9월 2일 7차 집회)

    “교권보호합의안을 지금 당장 의결하라!”(9월 4일 8차 집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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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집회에서 외쳐진 교사들의 주장과 요구들에 대해서는 교육계, 정치계, 노동운동 등 다양한 분야에서 의견이 분분하다. 수많은 교사들이 한자리에 모여 목소리를 모았지만 그 속에 색이 조금 다른 목소리도 함께 실리기도 했다. 조금 더 다른 목소리를 지녀 미처 함께 모이지 못한 교사들도 있었다. 필자 역시 ‘교권보호합의안’에 담긴 ‘정당한 생활지도 아동학대 범죄에서 제외’와 같은 요구에 대해 동의하지 않는다.  


    하지만 교사들의 구호들에, 함께하지 못한 교사들의 목소리를 듣노라면 누구나 쉽게 알아차릴 수 있는 소리가 있다. 바로 ‘더 이상 이렇게는 살 수 없다’는 절규다. 그리고 그 절규의 원인으로 ‘이상한 교육 현실’, ‘비정상적인 교육 현실’을 꼽는다. 학생들이, 교사들이, 학교들이, 학부모들을 경쟁으로, 또 경쟁으로 내모는 이상하고도 비정상적인 교육 현실을 규탄한다. 그리고 그 현실을 만든 시스템, 또한 그 현실을 막지 못한 시스템을 성토한다.   


    여덟 차례 동안 집회가 이어지며 구호의 내용들이 조금씩 바뀐 것처럼 발언 내용도 조금씩 달라졌다. 오늘 새롭게 듣게 된 발언 내용 중 하나는 “여러 교육단체들이 함께하자”는 것이었다. 추모를 위해 검은 옷을 입고 나선 각각의 교사들, 각각의 검은 점들이 “모여서 검은 바위가 되고, 검은 산이 되고, 검은 파도를 만들자”고 외쳤다. 


    추모집회에서 발언을 한 어느 교사는 서이초 교사를 떠나보낸 지 49일 동안 무엇이 변했는가를 물었다. 진상규명조차 제대로 이뤄지지 않고 있는 지금, 죽음이 계속되는 지금, 먹먹함, 답답함, 분노를 넘어 형용할 수 없는 그 무언가에 둘러싸인 것만 같다. 그것을 걷어내기 위해서는 더 거세게 출렁이는 검은 파도를 만들어 내야 한다. 지금보다 더 많은 이야기가, 훨씬 다양한 생각이, 더 민주적이고 폭넓은 행동이 필요하다.  


    거대한 분노에 밀려 철회하기는 했으나, 교육부는 ‘공교육 멈춤의 날’에 모인 교사들에 대한 징계를 압박했다. 실제로 ‘평일 단체행동을 징계로 다스리겠다’는 교육부의 압박 앞에 참여를 포기한 교사들도 상당수 있었을 것이다. 교육현장을 바꾸고자 분투해온 교육노동자들이 외쳐왔듯, 그래서 교사의 노동기본권과 정치기본권이 필요하다. 교육현장을 바꾸기 위해 파업으로 국가권력과 싸울 권리, 자신의 정치적 견해를 자유롭게 표명할 권리가 필요하다. 


    ‘파업’이 아니라 ‘조퇴’와 ‘연가’임을 애써 강조해야 하는 교육노동자 대부분이 이에 동의할 것이다. 필자는 이에 하나 덧붙이고자 한다. 민주노조운동은 세상을 바꾸고자 의사표현의 자유를 요구해왔고, 또 스스로 이를 보장함으로써 국가권력과 자본에 맞서왔다. 9월 4일을 비롯한 집회에서 보장하지 않은 바로 그 자유 말이다. 노동자의 권리는 정치적 진공상태를 추구하거나 가장해 얻어지지 않는다. 유인물과 피켓과 토론이 넘치는 집회가 세상을 바꾸는 노동자의 집회다. 

     

    전진은 ‘정당한 생활지도는 아동학대로 보지 않는다’는 동어반복적이고 자기모순적인 윤석열 정부 ‘교권강화 대책’에 반대해왔으며, 교육노동자 확대와 학급당 학생 수 감축, 진보적 교육내용에 대한 부당간섭 폐지, 상품화된 교육과 사법화한 학교를 바꾸기 위한 학교공동체 회복을 주장해왔다. 그리고 교육현장을 바꾸기 위한 근본적 대안을 실현하기 위해, 우리에게는 토론이 필요하다. 9월 4일, 교육노동자들이 외쳤던 것처럼 검은 점들이 검은 바위, 검은 산, 검은 파도가 되기 위해, 우리는 더 토론하고 논쟁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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