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옥은 여전히 지옥이다 - 택배산업 죽음의 행렬 멈출 연대의 힘 모으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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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옥은 여전히 지옥이다 - 택배산업 죽음의 행렬 멈출 연대의 힘 모으자!

  • 이용덕
  • 등록 2024.09.12 17:48
  • 조회수 158

 

죽음의 행렬

 

지난 7월 4일 경산에서 40대 쿠팡 여성 택배노동자가 배송업무 중 폭우에 휩쓸려 실종됐다가 사흘 만에 숨진 채 발견됐다. 7월 3일 오후 5시부터 다음날 오전 11시까지 180mm가 넘는 기록적 폭우가 내렸지만 쿠팡은 배송을 중단시키지 않았다. 재난 앞에 무방비 상태로 놓여 있는 택배노동자의 처지를 비극적으로 보여주는 사례다.

 

그런데 이 노동자는 산재 보상도 받을 수 없다. 노동부는 산재보상보험법과 산업안전보건법 등이 퀵플렉스에만 적용되고, 카플렉스는 제외된다고 봤다. 퀵플렉스가 계약한 쿠팡CLS와 달리 카플렉스가 계약한 쿠팡 본사는 법적 택배사업자 자격이 없다는 이유다. 쿠팡 배송 노동자는 자회사(쿠팡CLS)와 계약한 ‘퀵플렉스’와 쿠팡 본사와 계약하는 ‘카플렉스’로 나뉘는데 숨진 노동자는 카플렉스였다. 자기 차로 로켓배송을 수행하는 것만 다를 뿐인데, 다른 기사들과 똑같이 쿠팡 물건을 배송하는데 이 노동자는 정부와 자본이 씌워 놓은 굴레 때문에 죽어서도 차별 받는다.

 

2012년 2개 직종(퀵서비스 기사, 택배기사), 2016년 3개 직종(대리운전기사, 대출모집인, 신용카드 모집인), 그리고 그 이후에도 몇 가지 업종이 추가되어 산재보험에 가입할 수 있는 특수고용노동자가 늘어났다. 2022년 5월 “주로 한 업체에서 일했다”라는 기준, 즉 ‘전속성’이라는 기준도 폐지됐지만 아직도 법의 사각지대에 놓여 있는 특수고용노동자는 수없이 많다.

 

쿠팡 남양주 캠프에서 일하다 올해 5월 28일 과로사로 세상을 떠난 정슬기씨는 쿠팡의 압박에 “개처럼 뛰고 있긴 해요”라고 답변했다. 쿠팡은 정슬기씨에게 지금까지 어떠한 사과와 보상도 하고 있지 않다.

 

지난 7월에는 쿠팡 제주물류센터에서 일하던 일용직 노동자 한 명이 숨지고, 심야 배송을 하던 또 다른 노동자 한 명이 뇌출혈로 쓰러졌다. 지난 18일에는 쿠팡 시흥캠프에서 일하던 58세 노동자가 쓰러져 숨졌고 26일에는 그곳에서 일하던 다른 노동자가 또 쓰러져 심정지 상태로 발견됐다 다행히 목숨을 건졌다. 같은 달 청주에선 쿠팡 로켓설치 대리점 대표가 죽었다.

 

지난 8월 7일에는 한진택배 대전메가허브털미널에서 30대 노동자가 쓰러졌다. 당시 그 노동자의 체온은 40.9도에 이르렀다.

 

흔히 택배 상하차 알바를 ‘지옥의 알바’라 부른다. 아마 2000년대 중반부터 이런 말이 나온 것 같은데 세월이 많이 흘렀지만 변한 게 거의 없다. 한진택배에서 쓰러진 노동자는 택배 상하차를 했다고 한다. 보통 컨베이어 레일을 안으로 조금씩 집어넣거나 빼면서 물건을 상차하거나 하차하는데 사방이 꽉 막힌 화물차 안의 열기는 찜통 그 이상이다.

 

대부분의 물류센터는 냉난방 설비가 거의 없다. 내가 일했던 터미널에는 천장에 걸려 있는 선풍기가 전부였고 컨베이어 레일에 물건을 올리는 분류알바 노동자들에게는 그것조차 없었다. 최근 몇 년간 대형택배사들이 매년 택배비를 올렸는데 노동자를 위한 투자는 보이지 않는다. 대형허브터미널을 지었다고 하지만 그곳에 노동자들을 위한 공간과 시설은 없다. 건당 수수료는 몇십년 째 제자리거나 오히려 깎였다.

 

전무한 대책

 

 

나는 지난 8월 31일까지 서울에서 택배 일을 했다. 3년 넘게 했는데 올해 여름이 가장 더웠다. 오래 일한 동료들도 올해가 가장 덥다고 했다. 아침에 터미널에 가면 밤새 웃통을 벗고 일했던 분류알바 노동자를 많이 볼 수 있었다. 특히 이주노동자가 많았다.

 

배송하는 동료 기사들은 “살갗이 타들어간다”고 했고 “숨이 턱턱 막혀 계단을 오를 수 없다”고 얘기했다. 나는 3년 전에 항문이 헐었던 경험을 했는데 올 여름엔 온 몸에 쉴 새 없이 땀띠가 돋아나는 경험을 했고 체력이 달려 쓰러질 것 같은 기분으로 배송을 했다.

 

원청이나 대리점에서 생수 한 병 받지 못했다. 그들은 아무 것도 얘기하지 않았다. 기사들도 그들에게 어떤 기대를 하지 않았다. 2022년 태풍 힌남노가 한반도를 강타했을 때 원청은 택배노동자를 신경 쓰지 않았다. 배송하지 못한 물건이 젖지 않도록 컨베이어 레일 밑으로 넣으라는 지시만 내렸다.

온열질환 산재 건수는 승인 사례 기준으로 2020년 13건(사망 2건), 2021년 19건(사망 1건), 2022년 23건(사망 5건), 지난해 31건(사망 4건)으로 매해 증가했다. 올해도 워낙 심한 폭염이었고 수많은 노동자가 쓰러졌기에 국회에서도 폭염작업중지법 얘기가 흘러나오고 있다. 작업중지권은 반드시 필요하지만 설사 그 법이 제정된다 하더라도 노동자들이 그 법을 활용하고, 실제로 행사하기까지는 시간이 걸릴 수밖에 없다.

 

택배노동자들이 폭염과 폭우 앞에서 자신의 안전과 생명이 위태로운데도 배송을 멈출 수 없는 이유는 여러 가지다. 그 중 하나가 당일 배송 압박이다. 쿠팡은 정해진 물량을 시간 내에 배송하지 못하는 일이 반복되면 해고할 수 있는 제도(클렌징 제도)를 두고 있다. 내가 일했던 택배사는 수시로 대리점별 당일배송률을 비교해 통보하면서 노동자들을 압박했다. 예전에는 대리점 소장들이 물량이 많으면 재우라고(당일 배송을 하지 않고 다음날 하라고) 얘기했는데 요즘엔 원청 압박을 얘기하면서 당일 배송을 하지 못하는 기사는 그냥 그만두라고 할 정도다.

 

이런 압박 아래에 놓인 택배노동자들은 폭염이 기승을 부려도, 폭우가 쏟아져도 탑차 안에 가득가득 물건을 싣고 배송지로 출발한다. 이밖에도 원청이 물량을 조절해 택배노동자들의 물량 부담을 줄여주면 택배노동자들의 숨통이 조금이라도 트일 수 있는데 원청은 절대로 그렇게 하지 않는다. 최고 기온이 33도 이상을 넘어가는 날씨라면, 폭우와 태풍이 예상되는 날씨라면 물량을 조절해줘야 하는데, 모든 물량을 다 쏟아내고 당일 배송하라니 노동자들은 계속 벼랑에 내 몰릴 수밖에 없다.

 

몸이 아파도 단 하루도 쉴 수 없는 특수고용노동자의 열악한 처지 역시 노동자들의 손발을 묶는다. 배송 중 더위를 심하게 먹어 쓰러진 뒤 119에 실려간 동료도 봤고 아침에 분류작업을 하다가 심한 더위 때문에 계속 토하는 동료들을 봤다. 이들은 하루라도 쉬고 싶었지만 대체할 사람이 없기 때문에 계속 일을 해야 했다. 이 폭염에 단 하루의 유급휴가도, 단 하루의 연차도 없다. 내가 쉬려면 용차(대체차)를 구해야 하는데 수십 만 원에 이르는 용차 비용을 감당할 수 없기에 울며 겨자 먹기로 일해야 한다.

 

정부와 자본은 여전히 택배기사가 자영업자라고 하지만, 사장이라고 하지만 이 사장이 통제할 수 있는 건 하나도 없다. 건당 수수료도, 물량도, 휴가도 그 어떤 것도 마음대로 결정할 수 없다.

 

기후가 아니라 세상을 바꾸자!

 

올 여름 폭염을 견뎌가며 밤 10시, 11시까지 자주 일했던 한 동료는 “누가 쓰러져도 전혀 이상하지 않은 상황”이라고 했고 “누가 쓰러져야만 이 상황이 조금이나마 바뀔 것 같다”라고도 했다. 당일 배송 압박에 저항하지 않는다면, 노동시간을 줄이지 않는다면 누군가는 쓰러질 수밖에 없다는 얘기였다. 이 동료는 우리 터미널 상황만 봐서 그런 얘기를 했는데 앞서 얘기한 여러 사례처럼 이미 곳곳에서 택배노동자들은 쓰러지고 있고 죽어가고 있다.

 

지난 9월 7일 강남에서 열린 기후정의행진에 참여했는데 노동자가 많이 참여하지 않아 아쉬웠다. 그러나 건설 현장, 조선소, 제철소, 택배 물류 현장에서 일하는 수많은 노동자는 기후위기의 심각성을 온몸으로 깨닫고 있고 생존을 위한 대책을 갈망하고 있다. 앞으로 더 많은 노동자가 여러 곳에서 더 큰 저항에 나서리라 확신한다.

 

얼마 전까지 쿠팡물류센터 노동자들이 온도감시단 활동을 펼치며 자본에 대항했고 과로사한 정슬기씨에 대한 대책위가 꾸려지며 좀 더 폭넓은 연대를 만들어가려 하고 있다. CJ대한통운의 주7일, 365일 배송 방침에 맞서 CJ대한통운 택배노동자들이 투쟁을 고민하고 있다. 이러한 투쟁들에 함께하자. 이 투쟁들을 하나로 연결시켜 더 큰 전선을 만들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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