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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07기후정의행진조직위 위성정당 창당세력 배제를 둘러싼 논쟁, 어떻게 볼 것인가사진: 연합뉴스 7월 11일, 사회주의를향한전진은 907기후정의행진조직위원회 1차회의에서 민주당과 함께 위성정당을 창당한 세력에 대한 배제를 요구하는 수정동의안을 발의했다. 8월 1일 2차 조직위원회 2차회의에서 해당 수정동의안, 즉 (보수양당에 더해) “22대 총선에서 보수양당과 함께 비례위성정당을 창당한 정당 역시 참여대상에서 제외한다”는 찬성 23표, 반대 28표, 기권 19표로 부결되었다. 이에 따라 민주당과 함께 위성정당을 창당한 정당들, 즉 기본소득당과 진보당의 기후정의행진 조직위원회 참여가 허용되었다. 배제가 아니라 논쟁과 토론이 필요하다? 8월 1일 2차 조직위원회 당일, 인권운동사랑방은 ‘세상을 바꾸는 기후정의운동을 더욱 너르고 단단하게 조직하자’라는 제목의 글을 통해 수정안이 제기된 이유에 공감하나 위성정당 창당세력 조직위 배제에는 반대한다는 의견과 함께, 향후 논쟁과 토론을 이어가자는 입장을 밝혔다. “인권운동사랑방은 보수양당과 분별되는 기후정의운동의 세력화라는 전망 속에, ‘비례위성정당 참여'에 대해 분명히 반대합니다. 하지만 기후정의운동의 수많은 투쟁 현장에서 함께 했던 동료이기도 한 이들과 함께 기후정의운동의 세력화를 위한 ‘운동 현장의 조직과 연결', ‘정치사회세력화의 경로와 방안’에 대한 논쟁과 토론을 이어나가고자 합니다.” 2차 조직위 결정 이후 플랫폼C 역시 마찬가지 취지로 입장을 발행해, 위성정당 비판과 기후정의행진 조직위 배제는 다른 문제라고 주장했다. “진보당을 배척하는 것은 전혀 다른 심급의 문제다. 연대기구는 정치적 입장, 조직형태가 다른 상이한 단체들이 참여하여, 해당 시기에 함께 투쟁하기 위해 만들어진 것이다. 여기서 어떤 하나의 정치적 입장을 무조건 관철할 수 없고, 그렇게 하려면 연대기구가 와해되어 강력한 운동을 전개하지 못하는 문제가 발생한다. 907 조직위에는 진보당뿐만 아니라 전환의 경로, 기업 및 기득 정치권과의 재정적·정치적 독립성, 구체적 이슈에 대한 찬반 등에서 서로 다른 조직이 참여하고 있다. 다양한 쟁점은 907 조직위를 넘어서는 사회운동의 공간에서 토론과 논쟁, 운동 간 경합을 통해서 다루어질 수밖에 없다.” 이렇듯 2023년 기본소득당 조직위 배제에 찬성한 많은 단체가, 2024년 진보당이 조직위 가입 배제 대상으로 놓이자, 배제에 반대하며 2023년 자신들의 입장조차 공개 반성하는 이유는 무엇보다 진보당이 기본소득당보다 크기 때문이다. 노동자 민중운동에 대한 영향력에서도, 보유한 조직적 자원에서도 말이다. 말하자면 기본소득당을 배제해도 ‘연대기구가 와해’할 우려까지는 발생하지 않으나, 진보당에 대한 배제는 ‘와해’를 촉발할 우려까지 발생한다는 것, 그래서 ‘강력한 운동을 전개하지 못하는 문제’가 발생한다는 것이다. 그래서 우리는 ‘907조직위를 넘어서는 공간’에서 토론과 논쟁을 벌여야 하는가? 아니다. 첫째, ‘논쟁과 토론’은 어떻게 촉발되었는가? 민주당과 함께 당을 만든 세력을 기후정의행진조직위에서 배제하자는 주장이 제기되면서부터다. 둘째, 기후정의행진조직위라는 연대기구가, 나아가 기후정의운동이 지금 강력한 운동을 전개하고 있는가? 아니다. 기후정의행진조직위 가입단체들은 ‘전환의 경로, 기업 및 기득 정치권과의 재정적·정치적 독립성’ 등에서 각양각색이며, 그런 만큼 해당 문제들은 당연히 논쟁과 토론의 대상이 되어야 한다. ‘에너지 요금인상’ 등 구체적 문제를 논쟁 대상에서 제외하는 접근이 아니라, 바로 그런 구체적이고 민감한 문제가 907조직위원회 내에서 논쟁되어야 한다. 민주당에 대한 태도, 또한 어떤 반성도 없이 민주당과 연대해온 세력에 대한 입장도 마찬가지다. 결국 907기후정의행진조직위 2차회의 결정의 의미는 다음과 같다. “그 단위가 배제될 경우, 기후정의운동 연대체에 많은 타격을 야기할 정도로 큰 세력을 가진 단위가, 아무렇지도 않게 기후악당과 당을 만들고, 어떤 반성도 없이 다시 연대체에 가입을 신청했으며, 연대체는 이를 허용했다. ‘연대’를 위해.” 이들이 2020년 총선에 이어 2024년 다시 민주당과 당을 만들어도, 민주당 입장에 따라 신공항사업 국회표결에 찬성하거나 기권해도, 기후정의행진조직위는 이들을 조직위 일원으로 인정했다. 말하자면 이 모든 행위를 ‘기후부정의’ 규정에서 면죄했다. 이쯤 되면 9월기후정의행진조직위가 누구와 어떻게 싸우겠다는 것인지, 조직위에 민주당 가입을 불허하는 이유가 무엇인지조차 모호해진다. 실제로 전진이 발의한 수정동의안에 반대한 단위 중에는, 민주당을 배제할 이유가 없다고 여기는 단체도 있을 것이다. 민주당과 문재인 정부의 신규·민간 석탄화력발전소 건설과 핵발전 유지를 비롯한 그 모든 기후악행에도 불구하고 말이다. 올해 조직위 결정이 유지된다면, 우리는 향후 민주당의 조직위 참여 여부를 두고 논쟁을 벌여야 할지도 모른다. 행사가 아닌 운동이 필요하다 - 민주당과의 연대를 ‘입장’으로 반대할 것인가, ‘실천’으로 반대할 것인가? 온몸으로 느껴지는 극심한 기후위기에도, 현 국면 ‘기후악당’에 대한 노동자 민중의 분노가 결집하고 있다고 보기는 힘들다. 기후정의운동은 하강기에 있으며 그 추세는 급격했던 확장세만큼이나 가파르다. 2022년 9월 기후정의행동은 2만 명 넘는 인원을 거리로 불러내며 하나의 가능성을 드러냈으나, 그 가능성을 운동의 확대와 현실의 변화로 연계해내고 있다고 보기는 힘들다. 이는 단지 한국만의 현실도 아니다. 미래를위한금요일 독일지부에 따르면 2019년 9월 140만 명 이상이 독일에서 글로벌 기후파업에 참여했지만, 5년이 지난 지금은 25만 명에 불과하다. 유럽 전역에서 확대되는 ‘그린래시(기후운동에 대한 백래시)’는 기후운동 위축과 동전의 양면을 이룬다. 즉, 여전히 ‘기후’는 ‘먹고사는 데 걱정 없는 사람들의 이야기’로 인식되고 있으며, 극우는 전환비용을 노동자 민중에 전가해온 각국 기후정책에 대한 반감을 효과적으로 조직해냈다. 상황을 보자. 기후정의운동의 ‘적’은 기후정의운동을 두려워하지 않는다. 심지어 이제는 두려워하는 흉내, 그린워싱조차 이전보다 줄었다. 9월 어느 날 거리를 장악했다는 해방감, 그 자체만으로 운동을 확대할 수 없다는 것이 명백해진 지금, 한국 기후정의운동은 좌표를 진지하게 고민해야 한다. 다음은 2023년 923기후정의행진 조직위원회 4차회의 안건1. <923 기후정의행진 평가> 결과 중 일부다. “9월행동이 어떤 자리가 되어야 할 것인가와 관련해, 참여자 설문조사에서도 드러나듯이, ‘운동의 흐름이나 투쟁의 현장’보다는 ‘행사’의 성격이 강하다는 점이 확인됨.” 행사가 아닌 운동이 필요하다. 그리고 행사를 벗어나지 못하는 9월 기후정의행동의 상황과 민주당에 대한 태도는 직결되어 있다. 자본을 위한 민주당의 온갖 기후악행에도 불구하고, 민주당과 함께 당을 만든 세력을 조직위 일원으로 인정한 기후정의운동에도, 윤석열의 수십 번 거부권 행사에도 민주당에 의존하며 지루한 의회 공방을 지켜보고 있을 뿐인 노동운동에게도 민주당으로부터의 독립은 핵심 문제다. “신규 석탄화력발전소 확대, 탈원전 공약 파기, 공적자금을 자본의 이윤으로 바꾸는 과정에 불과한 '한국형 그린뉴딜', 가덕도 신공항과 새만금 신공항 추진, 기업 민원창구에 불과한 '탄소중립녹색성장위원회' 구성, 전력구매계약제도(PPA) 도입으로 전력산업 민영화 가속, 민간자본 40조원으로 '에너지 고속도로'를 만들어 모두가 부자되자는 값싼 선동 … 9월기후정의행진이 한차례 집회에 그치지 않는 '운동'의 마중물이기 위해 필요한 것은 무엇인가? 그것은 행진할 때는ᅠ기후재난의 주범을 규탄하면서도, 행진이 마무리되면 언제 그랬냐는 듯 기후재난ᅠ주범과 손잡는 행위를 용인하지 않겠다는 의지를 보이는 것이다.” 물론, 인권운동사랑방과 플랫폼C 등 전진이 제안한 수정동의안에 반대한 단위들도 민주당과의 연대에 반대한다고 한다. 기후정의행진조직위는 다양한 단체가 함께하는 연대체이며, 특별한 문제가 없는 한 취지에 동의하는 모두가 참석할 수 있어야 한다고 한다. 그러나 민주당과의 연대는 특별한 문제다. 투쟁의 대상, '적'과 연대한 세력의 조직위 참여를 용인할 것인가의 문제이기 때문이다. 나아가 이들과 민주당의 연대는 내년과 내후년에도, 그리고 대선이 있을 2027년에도, 민주당이 이들을 파트너로 인정하는 한 지속될 것이다. 민주당과의 연대는 이들의 당론이기 때문이다. 그렇기에 진보당과 기본소득당은 지금까지 그 어떤 해명도 하지 않았고, 앞으로도 하지 않을 것이다. 올해 결정을 유지하고서, 대체 위성정당 문제에 대해 어떤 논쟁과 토론을 만든다는 것인가? 기후정의운동의 ‘적’, 민주당과의 연대를 그저 ‘입장’으로 반대할 것인가, 그 입장에 근거한 ‘실천’으로 반대할 것인가? 운동의 민주당 의존성을 실천 상으로는 수용하며 입장으로 비판하는 데 그칠 것인가, 이 처참한 상황을 실천으로 지양할 것인가? 수정동의안을 둘러싼 논쟁의 본질은 이것이다. 2023.10.06. 가덕도신공항건설공단법안 표결 강성희(진보당) 찬성, 용혜인(기본소득당) 기권 기후위기를 만든 ‘체제’, 자본주의체제와 투쟁하는 기후정의운동이 필요하다 돌아보자. 문재인정부 탄소중립위원회에 대한 입장을 두고 벌어진 논쟁과 함께 급격히 확대된 ‘기후정의’ 요구가 단지 ‘지구 온도를 내리자’는 주장이었던가? 기후정의운동은 기후위기과 그 위기를 낳은 체제의 본질은 같다는 인식을 전제했다. 탄중위해체공대위 이후 본격화한 한국 기후정의운동은 ‘기후는 기후, 노동은 노동, 여성은 여성, 정치는 정치’로 사안을 바라보지 않았다. 전통적인 환경운동 단체들의 거버넌스 중심 상층 활동에 대한 반성과 비판 역시 있었다. 기후위기라는 현상에는 자본주의체제의 모순이 집약되어 있다는 인식, 기후위기를 해결하는 것은 자본주의와의 투쟁을 통해서만 가능하다는 인식이 탄중위해체공대위 이후 기후정의운동의 정신이었다. 바로 그랬기에 전진 같은 사회주의 정치조직도 기후정의운동 일원으로 뛰어들었다. 그런데 이번 기후정의행진조직위 2차회의에서 수정동의안에 반대한 단위들은 결국 다음과 같이 주장한 셈이다. ‘정치는 정치고, 행진은 행진이다’, ‘문턱을 높여 배제하지 마라’, ‘조직위 가입 자격은 당면 행진에 대한 동의면 족하다.’ 이런 주장이야말로 기후정의행진을 자본과 국가에 하등의 위협도 되지 못하는 행사로, 가슴조차 뛰지 않는 행사로 만든다. 퀴어축제에 미대사관 독일대사관이 주최단위로 참여하는 것에 대해선 우리는 왜 비판했을까? 그 조직위에서도 똑같이 '현실적으로' 저 대사관들의 영향력을 활용할 때 축제에 더 용이한 면을 감안한 것 아닌가? 전쟁은 전쟁이고, 축제는 축제다, 할 수 없다 비판했던 우리가, 위성정당은 위성정당이고, 행진은 행진이다, 그렇게 말할 수 있을까? 성소수자 차별철폐 위해 그 운동 목표에만 동의하고 협력할 수 있다면 다른 운동과의 관계나 정치적 입장은 상관없다. 이런 태도는 - 언제부턴가 한국 사회 운동에 스며들어 있는 - 자기 운동에 갇혀 세계와 정세를 바라보는 총체적 관점을 확보하지 못하고 정치적 입장 상관없이 사안별로 분리해서 연합하는 '건별 연대', '도구주의적 수단적 연대'와 다를 바 없지 않은가. 채효정 동지의 비판처럼 올해 기후정의행진은 자본주의 체제와의 투쟁이라는 총체적 관점을 탈각하고 ‘행진은 행진’, ‘건별 연대’ 논리로 퇴행했다. 이것이 ‘축제는 축제’라는 서울퀴어문화축제 조직위 측 태도와 무엇이 다른가? 파국으로 치닫는 기후위기 앞에, 이 위기를 만든 자본주의 체제와 대적하겠다는 날 선 운동이 필요하다. 그러나 907조직위는 자본주의체제에 맞선 기후정의 계급투쟁의 한 계기로서의 907이 아니라, 더 많은 사람이 부담 없이 참여할 수 있는 행사로서의 907을 선택함으로써 9월 행진과 운동의 관성화에 일조했다. 지금, 기후정의운동은 누구와 싸우고 있는가? 물론 국가와 자본일 것이다. 그러나 투쟁 대상인 국가와 자본도, 국민의힘과 민주당도 기후정의운동을 두려워하지 않는다. 2023년 ‘SK에코플랜트’는 9월 기후정의행진을 홍보하는 여유까지 보였다. 현 국면 기후정의운동이 국가와 자본을 강제하지 못하고 있음을, 국가와 자본에 대한 날선 적대감을 결여하고 있음을 드러내는 단면이다. 물론 이 상황이 전통적 기후-환경운동 진영 책임만은 아니다. ‘계급투쟁 없는 기후정의 운동’의 가장 큰 책임은 민주노총에 있다. 2023년 9월 23일 기후정의행진 당일, 민주노총 부스는 ‘대나무 칫솔’과 ‘친환경 비누’를 나누어주었다. 명색이 민주노조운동의 대표체가 ‘에코백과 텀블러’로 기후위기를 해결할 수 없다는 인식조차 결여하고 있음을 드러내는 장면이다. 지금, 민주노총에는 ‘계급투쟁 없는 기후정의운동’을 넘어서야 한다는 문제의식이 없다. 민주노총 기후위기대응특위 역시 산업국유화와 총고용보장, 노동자통제 투쟁을 위한 투쟁기구로서 역할하기는커녕, 일종의 상층 외교기구에 머물고 있다. 2023.10.26. 민주노총 기후특위 10차회의 <논의1. 923 기후정의행진 평가> 중 이런 침체 속에서 ‘적대 없는 운동’, ‘적과의 연대에 어떤 반성도 없는 세력조차 용인하는 운동’에 대한 지향이 싹트고 있다. 기후정의행진조직위 2차회의에서, 수정동의안에 반대한 단위 상당수는 전진이 누군가를 '배제하려 한다’고 비판했다. 전진의 주장이 민주당은 물론 민주당과 위성정당을 만든 세력까지 조직위에서 ‘배제’하자는 것이었으니, 그다지 유의미한 비판은 아닌 셈이다. 우리는 민주당과 위성정당을 창당한 세력을 조직위에서 배제하자고 주장하며, 당면 운동이 누구와 연대해 어디로 나아가야 하는지를 물었다. 민주당과의 연대를 당론으로 삼고, 노동자 민중운동 전반에 그 당론을 관철하고자 하는 세력이 있다. 그리고 907기후정의행진조직위는 해당 세력의 조직위 참여를 허용했다. 배제가 아닌, 더 넓은 연대를 위해! 그러나 기후위기를 낳은 체제를 바꿀 ‘힘’은 어떻게 형성되는가? 한 혁명가의 말로 글을 마무리한다. “인민전선 이론가들은 본질적으로 산수의 첫 번째 규칙, 즉 덧셈을 넘어서지 않는다: 공산주의자와 사회주의자, 무정부주의자, 자유주의자를 합하면 그 합은 개별 숫자보다 크다는 것이다. 이것이 그들 지혜의 전부다. 그러나 산수만으로는 충분치 않다. 최소한 역학이 필요하다. 힘의 평행사변형 법칙은 정치에도 적용된다. 힘의 평행사변형에서, 그 구성요소가 더 많이 갈라질수록 그 합력 또한 작아진다. 정치적 동맹자들이 서로를 반대 방향으로 당길 때, 그 합력은 0과 같다.”2024-09-01 | 조회 1,2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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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석열, 뉴라이트에 세뇌되다 : 노동자계급은 어떤 역사관으로 맞설 것인가?김건희 고백의 진실성 “다들 노무현 팔이를 많이 해서 저흰 되도록 안 하려 해요. … 오히려 저희 남편이 2011년에 봉하마을 권 여사 만나고 왔어요. … <변호인> 영화 보고 얼마나 울던지… 노통의 연설을 외울 정도로 늘 틀어놓아요.”, “전 자유한국당이 마귀라고 생각할 정도로 너무 싫어했어요. 솔직히 지금도 그래요. … 지금 국힘이 너무 싫지만 민주당이 더 싫은 거죠.”, “윤 후보는 의리를 생명처럼 생각해 여기까지 온 사람이에요. 그런 사람이 왜 대통령을 상대로 배신을 하나요. … 문 정권과 운명을 같이하고 있는 사람이었는데 저희는 조국 따위하곤 달랐어요. 문통이 실패하면 저희가 가장 먼저 제거될 운명이었죠. 간절한 맘으로 지킨 거죠.” 2022년 2월 21일, 김건희가 최재영 목사에게 보낸 카톡 내용이다. 김건희 왈, “문통에게는 가장 충신이 윤후보”였는데 특정 세력들에 의해 윤석열이 밀려난 거라고. 부르주아 정치판의 부박(浮薄)함을 이보다 더 잘 드러낼 수는 없다. 경쟁자를 딛고 내가 더 높은 자리로 올라가겠다는 탐욕만 넘쳐날 뿐, 정책도, 이념도, 철학의 차이도 없다. 저들에게 정치란 부르주아 계급독재 체제 속에서, 최고 권력의 자리를 차지하기 위한 권모술수의 경연장일 뿐이다. 김건희 말대로, 윤석열도 운때가 맞아떨어졌으면 민주당 소속의 대통령이 되었을지 모른다. 뉴라이트에 세뇌된 윤석열 그러나 이런저런 이유로 국힘 소속으로 대통령이 되었으니, 이제 윤석열도 무언가 민주당과 맞설 논리로 무장하지 않으면 안 된다. 윤석열의 인문‧사회학적 인식 수준이 고등학교 윤리 교과서 수준에 머물러 있다는 건 공공연한 비밀이다. (고등학교 전교 1등 수재들이 대학에서는 법률‧의학 전공 지식만 들입다 파고 그에 대한 과도한 사회적 보상을 받게 되었을 때, 사회문제에는 황당할 정도의 무식함과 자신감을 동시에 드러내는 건 자연스럽기까지 하다. 이런 의미에서 29일 윤석열이 “저는 솔직히 뉴라이트가 무엇인지 잘 모른다”고 발언한 것은 딱히 틀리지 않다.) 정치‧이념‧철학적으로 백지상태에 가까웠고, 제도권 교육에서 반공반북 이데올로기를 주입 받았을 뿐인 윤석열이 대권을 장악하며 자연스럽게 받아들인 정치 이념은 뉴라이트였다. 특히 뉴라이트의 서구 중심 문명론이, 북한‧중국‧러시아라는 야만의 동맹에 맞서 한미일 삼각동맹의 강화를 주창 중인 윤석열의 구미에 잘 들어맞았던 것으로 보인다. 윤석열은 2023년 광복절 경축사에서 “독립운동은 국민이 주인인 나라, 자유와 인권, 법치가 존중되는 자유민주주의 국가를 만들기 위한 건국 운동”이라고 정의했다. 이것은 소위 뉴라이트의 ‘건국절’ 주장을 그대로 차용, 승계한 것이다. 그간 윤석열은 김낙년 한국학중앙연구원장, 김주성 한국학중앙연구원 이사장, 허동현 국사편찬위원장, 박지향 동북아역사재단 이사장, 김광동 진실·화해를 위한 과거사정리위원장, 이배용 국가교육위원장 등 뉴라이트 인사들을 이데올로기 국가기구에 임명하는 것을 멈추지 않았다. 이 중 김광동 같은 인물은 한국전쟁 민간인 희생자 유족과 면담하는 자리에서 “전시에는 재판 없이 사람을 죽일 수 있다”는 망언을 내뱉고, 5‧18 광주항쟁에 북한군이 개입했다는 것이 자기 소신이라고 밝히는 광인이다. 윤석열의 뉴라이트 요직 등용은 얼마 전 김형석을 독립기념관장에 임명하며 절정에 이르렀다. 김형석은 26일 국회에서 “1945년에 광복이 되었느냐”는 민주당 의원의 질문에 “독립기념관장 자격으로는 코멘트하지 않겠다”고 답변한 인물이다. 뉴라이트 인사들은 대체 무슨 생각을 하는 것일까? 뉴라이트 사관은 무엇인가? 역사는 현재의 시원이다. 따라서 모든 역사는 현대의 관점에서 재해석된 역사다. 그런데 한국의 주류 지배계급은 역사적 정통성이라는 관점에서 대단히 취약할 수밖에 없는데, 주지하다시피 1945년 해방 공간에서 미군정은 소련에 맞선 반공 기지를 공고히 하기 위해 친일 부역 세력을 등용하는 데 주저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이로 인해 한국의 주류 지배계급은 해방과 분단 이전 일제에 부역했던 과거 대신, 건국 이후 자본주의적 산업화와 민주화의 성공에서 자기 지배의 정당성을 발견하려 든다. 즉 “평화적으로 민주화를 이룩하고, 가난을 극복하여 세계 제10대 경제대국으로 성장”한, “어떤 기준으로 가늠해 보아도” “미션 임파서블을 이룩한 대한민국”의 역사가 무엇보다도 중요하다는 것이다. 뉴라이트의 핵심 역사관은 다음의 몇 가지로 정리해 볼 수 있다. 첫째, 서구중심적 문명론이다. 뉴라이트 논자들에게 중국, 조선 등의 대륙 문명은 개인의 자유와 인권을 억압했던 후진적 체제로, 자본주의 문명을 달성한 서구 해양 문명과 구별된다. 뉴라이트 논자 이영훈이 조선 노비의 역사적 특수성을 일체 간과한 채, ‘조선은 인구의 40%가 노비였던 노예제 사회’ 운운하는 것은 이런 맥락에서다. (아이러니하게도 뉴라이트 이영훈이 이런 서구중심적 역사인식을 갖게 된 근저에는, 그가 ‘마르크스주의자’이던 시절 받아들인 스탈린의 역사발전 5단계론이 상당한 영향을 끼쳤다.) 따라서 조선과 같은 수준이 낮은 문화권에서 역사의 발전을 위한 노력이란, 보다 우월한 문명을 알아채는 혜안과 그것을 신속하고 원활하게 수용하려는 노력으로 치환된다. 둘째, 바로 그래서 식민지 근대화론이 부각된다. 일본은 동아시아에서 서구 문명을 가장 빨리 수용한 선구자가 되며, 일본 제국주의가 수행한 일련의 근대화 프로젝트는 한반도에 자유민주주의 국가를 건설할 기틀을 다진 것으로 평가된다. 조선의 3대 천재 중 하나인 이광수가 “민족을 위하여 친일을 했다”고 말했던 것처럼, 일제하 제국주의 식민 지배에 협조했던 것은 반민족 행위가 아니라 자유민주주의 국가 건설을 예비한 애국적 활동이 된다. 더 나아가 한국인의 근대화와 독립에 기여한 외국인들, 특히 미국 선교사들의 공로가 인정되어야 한다는 것도 뉴라이트들의 주장에서 빠지지 않는 얘기다. 셋째, 일제에 의한 식민지 근대화를 긍정하는 데 방해가 되는 요소, 즉 민족주의는 철저히 배격된다. 이영훈에 따르면 ‘민족은 쉽게 선동되고 오도되는 것’에 불과하다. 따라서 항일투쟁에 나섰다 하더라도, 그가 자유민주주의 국가 건설에 어긋나는 좌익활동을 했다면 역사적으로 결코 긍정될 수 없다. 홍범도 흉상의 철거는 그런 맥락이다. 넷째, 뉴라이트는 1987년 이전에는 서구를 따라잡기 위해 “‘일정 수준’을 넘어서는 국가권력의 남용과 심각한 인권침해”가 있었다는 것을 부정하지 않지만, 1987년 절차적 민주주의를 달성하면서 민주주의의 여정은 완전히 종료됐다고 주장한다. 예컨대 안병직은 1987년 민주화를 통해 민주주의는 완전히 확립됐으며, 이제 그 이상의 민주주의를 요구하는 것은 “좌익적 민주주의에 대한 욕구”에 불과하다고 주장한다. 민주당의 ‘반일 몰이’는 뉴라이트에 대한 올바른 반론일까? 역사의 기억은 쉽게 잊히지 않는다. 이미 몇 세대가 흘렀지만, 일제 식민지 시기 조선의 노동자 민중이 겪어야 했던 착취와 수탈의 기억은 기록과 구전으로 계승된다. 뉴라이트의 일제하 독립운동 부정과 건국절 타령에 한국민 대다수가 본능적 반감을 갖는 이유다. 민주당 세력은 기회를 만난 듯이 윤석열 정부를 맹공격하고 있다. 예컨대 조국은 “뉴라이트들은 보수도 우파도 밀정도 아닌 대놓고 일본을 위해 복무하는 자들”이라며 “그런 자들을 주요 직위에 올린 자는 밀정 왕초”라며 윤석열을 비난했다. 민주당은 28일 ‘헌법부정 및 역사왜곡행위자 공직임용금지 등에 관한 특별법’을 당론으로 발의하기도 했다. 일제 침략과 식민지 지배를 두둔하거나 친일·반민족 행위를 미화하고 정당화한 자는 공직에 임명되지 못하도록 하는 법이다. (역사학자들이 올바로 지적한 대로, 이는 물론 터무니없는 과잉 입법이다.) 그러나 민주당의 ‘반일 몰이’ 역시 제대로 된 역사 인식이라 볼 수 없다. 무엇보다도 이들은 독립운동의 정통성을 헌법 전문에 기재된 대로 “3ㆍ1운동으로 건립된 대한민국임시정부의 법통”에서 찾고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실제 역사를 살피면, 1920년대 초반 대한민국임시정부의 분열 이후 ‘임정’은 김구 등 소수 우익 독립운동세력의 근거지에 지나지 않았다. 특히 일본 제국주의가 1930년대 이르러 군국주의적 파시즘 체제를 강화하고 우익 진영 대다수가 변절하자, 민족해방운동의 주도권은 완연하게 좌익 진영으로 넘어가 있었다. 조선공산당은 일제의 가혹한 탄압으로 여러 차례 지도부가 검거되며 조직이 와해됐지만, 해방 직전까지도 국내에서 당 재건을 위해 노동자들 사이에서 활동을 멈추지 않았다. 또 한반도에 인접한 중국 동북 지방에서 중국 공산당과 연계해 빨치산 투쟁을 벌였던 무장투쟁 세력도 빼놓을 수 없다. 그런데도 민주당이 독립운동에서 오로지 대한민국임시정부의 정통성만을 좇는 이유는 간단하다. 이들 역시 작금의 자본주의 체제가 역사의 종착점이라 보는 점에서는 여타의 자본가 정치세력과 다르지 않기 때문이다. 특히 한국 독점자본의 눈부신 성장은 한국을 제국주의 국가의 일원으로 자리매김하려는 욕망으로까지 뻗어나가고 있다. 민주당이 내세우는 반일 논리는 바로 이런 정서를 표현하기도 한다. 사진: MBC 노동자계급의 대중투쟁으로 뉴라이트의 헛소리를 분쇄해야 뉴라이트 논리는 노동자계급 의식과 절대 양립할 수 없다. 일찍이 2000년대 초반부터 한국의 뉴라이트는 ‘선진화’란 명목 아래 일련의 감세, 작은 정부, 차별의 정당화 등을 주문해 왔다. 이들은 자본주의의 무한 경쟁 질서를 인간의 자유가 온전히 실현된 역사의 궁극적 상태로 보기 때문이다. 예컨대 2006년 어느 뉴라이트 논자는 “사유재산과 경제적 자유가 보장될 때 인류사회는 궁극적으로 공정한 분배(실질적 평등)에 가장 근접한 결과”를 얻었다고 강변했다. 이렇게 떠들었던 자를 잡아 와서 눈앞에 오늘날의 저출생, 기후재난, 불평등 심화 데이터를 들이대야 한다. 출생률이 0.72명(2023년 기준)에 그치는 사회가 “공정한 분배(실질적 평등)에 가장 근접”한 사회란 말인가? 개소리도 정도껏 해야지! 오늘날의 자본주의는 이윤 논리로는 절대 해결할 수 없는 3대 위기에 부닥쳤다고 평가할 수 있다. 기후위기, 사회재생산 위기, 불평등 위기가 그것이다. 자본의 탐욕과 무분별한 착취를 제어하지 않고서는 자본주의 체제의 존속 자체도 불가능한 지경에 이른 상황이다. 공동체의 존속을 위협하는 반사회적 자본을 통제하는 것은 노동자계급의 대중투쟁이 다시 솟구쳐 오를 때만 가능하다. 이를 위해 노동자계급은 뉴라이트는 물론, 민주당과 같은 자본가 정치세력의 논리를 단호히 배격하고 자신의 역사관으로 튼튼히 무장해야 한다. 계급투쟁의 역사를 통해 인류는 생산력의 발전을 향유하고 인간의 자유와 평등이 확대되는 사회를 건설해 왔다. 역사는 소수의 선각자들이 아니라 아래로부터 대중이 만든다는 것, 이것이 바로 노동자계급이 확고히 견지해야 할 역사관이다. 더 나아가 제국주의 진영 간 대립이 격화되며, 한국의 제국주의적 속성이 강화되는 현실에서는 노동자 국제연대의 역사를 계승‧발전시키는 것이 또한 중요하다. 무분별한 반일 몰이에 부화뇌동할 것이 아니라, 일제 식민지 시기 조선인 사회주의자들과 헌신적으로 연대했던 일본 사회주의자들을 기억할 필요가 있다. 예컨대 자기 집 바닥에 토굴을 파고 경성콤그룹의 이재유를 한 달 넘게 은신시켰던 경성제대 미야케 시카노스케 교수를 되새기는 것이 오늘날 노동자계급에게 필요한 역사일 것이다.2024-08-29 | 조회 49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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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랑스 총선은 과연 극우파를 성공적으로 저지했는가?6월 14일 신인민전선 선거강령 발표 사진: AFP 2차 대전 이후 최초로 극우파 정부가 출현할 가능성 때문에 세계적인 주목을 끌었던 프랑스 총선이 7월 7일 예상 밖 결과와 함께 끝났다. 1차 투표에서 33.2%를 득표하며 1위를 했던 극우파 ‘국민연합’(RN)은 143석을 차지하며 3위로 밀려났다. 마크롱 대통령이 속한 중도우파 ‘앙상블’은 1차 투표 3위(21.3%)라는 부진을 딛고 163석으로 2위로 올라섰다. ‘불복프랑스’(LFI)·사회당·공화당·녹색당을 중심으로 결성된 신생 좌파연합 ‘신인민전선’(NPF)은 1차 투표에서 2위(28.2%)로 선전한 여세를 몰아 182석으로 깜짝 1위를 차지했다. 이번 선거는 투표율이 1차(66.7%)와 2차(67.1%) 모두 1997년 총선 이후 최고를 기록할 만큼 프랑스 국내에서도 뜨거운 관심 속에 치러졌다. 2022년 총선에 비하면 20% 가량 투표율이 치솟았다. 관심의 초점은 역시 거침없는 상승세를 보여 온 극우파 국민연합의 집권 여부였다. 2007년 총선 때만 해도 4.3%에 불과했던 극우파의 득표율이 2022년 총선 때 18.7%로 늘어났다가 올해 6월 초 유럽의회 선거에서 31.4%로 폭증했기 때문이다. 2위를 한 마크롱 세력(14.6%)과 16.8%나 차이가 나면서 선거 결과는 더 충격적으로 받아들여졌다. 유럽의회 선거 결과가 나오던 6월 9일 밤, 프랑스 대통령 마크롱은 의회 해산과 조기 총선이라는 승부수를 꺼내 들었다. 한편으로 극우파의 기세가 탄력을 받은 상황에서 다음 총선까지 3년 동안 소수파 정부를 끌고 가는 데 대한 부담 때문이었다면, 다른 한편으로 극우파의 집권을 경계하는 표가 결집함으로써 자신의 당이 2022년 총선의 부진을 딛고 다시 과반수를 획득할 수도 있으리라는 계산에서였다. 극우파의 집권 실패와 신인민전선의 ‘성공’ 마크롱이 그런 도박을 할 수 있었던 중요한 전제는 2022년 총선 때 결성됐던 좌파 선거연합 ‘사회생태신인민연합’(NUPES)이 붕괴한 상태였기 때문이다. 끊임없는 내부 분란으로 시달리던 사회생태신인민연합은 2023년 10월 7일 하마스의 공격과 이스라엘의 가자 침공 이후 내부 이견이 첨예화하면서 끝내 붕괴했다. 하마스의 공격을 “테러리스트 공격”으로 규정해야 한다는 사회당의 주장을 불복프랑스가 반대하자 사회당이 전격 철수했던 것이다. 그런데 마크롱이 조기 총선을 발표하고 불과 5일 만인 6월 14일 불복프랑스·사회당·녹색당·공산당은 새 선거연합 ‘신인민전선’의 결성을 선언하면서 공동 강령을 발표했다. 사회경제 분야에서는 급진좌파 불복프랑스의 입장을 골격으로 해서 △2023년 연금개악 취소 및 퇴직 연령을 64세에서 60세로 하향 △세후 최저임금을 월 1,600유로(약 230만원)로 14% 인상 △생필품과 에너지 가격 동결 △임금과 연금의 물가연동제 △(2017년 마크롱 정부가 폐지한) 부유세 재도입 △과도한 이윤에 대한 새로운 세금 도입 △의회 투표를 생략할 수 있는 정부의 긴급명령 입법권을 헌법에서 삭제 등의 공동 강령이 만들어졌다. 반면 대외정책 분야에서는 사회당의 입장을 골격으로 해서 △러시아에 맞서 NATO 협력을 유지하며 우크라이나 계속 지원 △우크라이나에 프랑스의 직접적인 군사개입 반대 △두 국가 해법을 전제로 팔레스타인 국가 인정 △이스라엘에 무기수출 중단 △10·7 하마스 공격을 ‘테러주의 학살’로 규정 △이스라엘과 하마스 지도부에 대한 국제형사재판소 체포영장 지지 등의 공동 강령이 만들어졌다. 또한 극우파 국민연합이 이민자 수의 대폭 축소를 핵심 공약으로 내거는 데 맞서 △2023년 마크롱 정부가 개악한 이민법 취소 △망명 절차를 더 관대하고 매끄럽게 하는 이민법 개정 등을 내걸었다. 결과적으로 신인민전선은 결성 23일 만에 극우파의 집권을 저지하고 최다 의석을 차지하면서 일정한 ‘정치적 성공’을 거두었다. 그런데 신인민전선의 성공은 극우파의 집권 가능성에 맞서 신인민전선을 열렬히 지지한 노동자대중에게도 역시 성공을 뜻할까? 신인민전선의 모델 - 1936년 프랑스 인민전선 극우파의 집권을 막겠다고 결성된 신인민전선이 모델로 한 것은, 그 이름에서 바로 드러나듯이 1936년의 프랑스 인민전선이다. 아이러니한 것은 프랑스 인민전선이 처음에는 파시즘에 맞서 그럴 듯하게 출발했지만 결국에는 파시즘에게 스스로 굴복했다는 명백한 역사적 사실이 있는데도 신인민전선이 이를 모델로 하고 있다는 점이다. 1933년 독일에서 히틀러의 나치당이 집권한 이후 이웃 나라 프랑스에서도 나치당과 비슷한 파시즘 세력이 거침없이 준동했다. 독일 노동자계급이 파시즘에게 패배한 핵심 이유가 공산당과 사회당의 분열에 있다고 본 프랑스 노동자대중은 파시즘에 맞선 공산당과 사회당의 단결을 아래로부터 추동해 냈다. 1935년 정치적 단결을 실현해 낸 프랑스 노동자계급이 파시즘 세력을 거리에서 육탄전을 펼쳐가며 분쇄해 냈을 때, 노동자대중의 자신감은 하늘 높이 솟구쳤다. 그런 상황에서 공산당과 사회당이 1936년 총선을 앞두고 자본가정당인 급진당을 끌어들여 인민전선을 결성했다. 57.8%를 득표하며 610석 가운데 386석(63.3%)을 차지한 인민전선의 총선 승리는 파시즘을 확실히 제압한 것처럼 보였다. 총선 직후 노동자들은 수백만 명이 참여하는 거대한 공장점거 총파업을 일으켰다. 10일 이상 프랑스를 완전히 마비시킨 총파업을 중단시키기 위해 자본가들은 (1930년대 대공황 상황임에도) △집단교섭권과 파업권의 보편적 인정 △주 48시간 임금을 지급하며 주 40시간으로 노동시간 단축 △2주간의 유급 여름휴가 등 상당한 양보를 제시했다. 1936년 총파업에 나선 르노 노동자들. '바캉스'라는 말은 프랑스 노동자들이 총파업으로 얻어낸 2주 유급휴가에서 비롯되었다 그런데 노동자들이 더욱 근본적인 변화를 향해 전진할 수도 있었을 그 상황에서, 노동자들을 설득하여 이 총파업을 중단시킨 것은 바로 인민전선이었다. 더 정확하게 말하자면, 당시 노동자들에게 강력한 영향력을 갖고 있던 공산당이 급진당의 인민전선 이탈을 막기 위해 노동자들에게 총파업을 중단하도록 설득하여 관철시킨 것이었다. 파시즘을 막아내고 세상을 바꿀 수 있는 것은 자신들의 총파업이 아니라 인민전선 정부라는 잘못된 믿음 때문에 노동자들은 물러섰다. 그러나 인민전선은 세상을 바꾸는 길과는 반대로 갔다. 바로 옆 나라 스페인에서 비슷한 성격의 인민전선 정부가 쿠데타를 일으킨 파시즘 군부에 맞서 내전을 벌이고 있었지만, (독일의 나치 정부와 이탈리아의 파시즘 정부가 스페인 군부를 공공연히 지원한 것과 달리) 프랑스 인민전선 정부는 급진당의 반대에 가로막혀 스페인 인민전선에 대한 지원을 포기했다. 급진당은 자본가들의 지원을 받으며 1년 뒤 인민전선의 주도권을 장악했고, 급진당 주도로 재구성된 인민전선 정부는 긴축정책을 전면화하고, 그에 항의하는 노동자들의 파업과 시위를 무력 진압했다. 인민전선 정부의 정책은 국내적으로나 국제적으로나 노동자대중의 힘을 약화시키고 파시즘 세력의 힘을 키우는 결과를 낳았다. 결국 1940년 애초 인민전선 정부를 출범시켰던 그 의회가 (히틀러에게 항복한) 파시즘 군부에게 나치 부역정권을 수립하도록 전권을 부여하면서 스스로 최후를 맞이했다. 자본가정당과 연합한 인민전선 정부에 대한 환상 때문에 총파업이라는 무기를 내려놓고 수동적 방관자로 전락했던 노동자대중은 결국 그 대가를 톡톡히 치러야 했다. 그런데 만일 1936년 거대한 총파업에 나섰던 프랑스 노동자들이 인민전선 정부에 대한 환상을 거부하면서 (당장 권력 장악까지는 아닐지라도) 작업장을 토대로 지역별로 노동자평의회를 건설해 내면서 자본가계급과 정부를 감시하고 통제할 물질적 힘을 구축하는 방향으로 전진했다면, 역사는 완전히 달라질 수도 있었을 것이다. 프랑스를 비롯한 유럽의 경제위기 신인민전선이라는 이름이 상징하듯이, 지금 프랑스의 상황은 1930년대와 비슷한 점이 적지 않다. 프랑스를 비롯한 유럽 전반은 1930년대 대공황 때와 비슷하게 2008년 세계 금융위기 이후 끝없는 경제위기에 시달리고 있다. 물론 1930년대보다는 국가의 경제 개입이 훨씬 다양하게 전개되기 때문에 경제위기의 양상이 덜 파국적이지만, 문제는 출구가 전혀 보이지 않는다는 것이다. 유럽의 위기는 미국과도 뚜렷이 대비된다. 미국은 2008년 세계 금융위기의 진원지였지만, 지난 15년 동안 기축통화 달러를 마음껏 찍어내며 자신의 경제위기를 나머지 세계로 (아직까지는 성공적으로) 전가해 왔다. 물론 프랑스를 비롯한 유럽의 제국주의 열강들이 여전히 몇몇 나라를 상대로 제국주의적 수탈을 지속하고 있긴 하지만, 달러화 대비 유로화가 가진 취약성은 미국과 큰 차이를 만들어 내고 있다. 경제학적으로는 벌써 수십 번 파산했어야 마땅한 달러화의 무제한 발권이 지속될 수 있는 힘은 첨단기술, 금융, 군사 부문에서 여전히 세계를 압도하는 미국의 패권에서 나온다. 그런 패권을 갖고 있지 않은 유럽은 따라서 유로화를 마음껏 찍어내며 국가개입을 극대화하는 마법을 부릴 수가 없다. 게다가 유로화는 유럽연합이 미국처럼 하나의 국가가 아니라는 또 하나의 취약점을 안고 있다. 유럽연합 27개 국가 중 19개 국가가 유로화를 공동화폐로 사용하는 상황에서, 유로존 국가들은 특정 국가가 과도하게 재정을 지출하여 유로화 가치를 떨어뜨림으로써 타국에 피해를 안길까봐 서로 민감하게 감시하고 있다. 그래서 유로존에서는 매년 정부 재정적자를 GDP 대비 3% 이내로 하고 누적된 총 정부부채를 GDP 대비 60% 이내로 유지한다는 이른바 ‘재정건전성’ 기준이 존재한다. 물론 이 기준은 수시로 무시되긴 하지만, 늘 신경 쓰지 않을 수 없다는 점에서, 미국처럼 무제한 발권을 통한 국가개입을 불가능하게 하는 또 하나의 족쇄로 작용한다. 지난 15년 동안 자본주의 위기 대응에서 미국과 유럽 사이에 발생한 차이는 2008년 미국 GDP 대비 110.3%를 기록했던 유럽연합의 GDP가 2023년에는 67.1%로 축소됐다는 통계로도 확연히 드러난다. 위기 전가 공세에 맞선 노동자들의 투쟁 2008년 이후 만성화된 유럽의 경제위기는 당연하게도 그 고통을 노동자들에게 전가하기 위한 수많은 공세를 낳았다. 그에 맞선 노동자들의 투쟁도 줄기차게 전개됐다. 특히 프랑스에서는 정권의 공세와 노동자들의 투쟁이 거대한 파노라마를 형성하며 전개돼 왔다. 2010년 우파 정권이 밀어붙인 연금개악에 프랑스 노동자들은 최대 300만 명이 참여한 총파업으로 맞섰다. 그러나 총파업의 위력을 10여 차례의 하루 경고파업과 거리시위로 제한시킨 노조 지도부 때문에 ‘60세 정년의 62세로 연장’ 등을 요지로 하는 연금개악을 저지하지 못했다. 노조 지도부가 생각한 대안은 정권교체였고, 노동조합의 강력한 지원에 힘 받은 중도좌파 사회당이 2012년 대선과 총선에서 모두 승리하며 집권했다. 그러나 사회당은 연금개악을 되돌리지 않았다. 뿐만 아니라 2016년에는 노동시간 연장과 정리해고 자유화를 골자로 하는 노동법 개악을 추진했다. 다시 노동자들이 격렬한 총파업으로 맞섰지만, 사회당 정부는 헌법상 긴급명령 제도를 활용해 의회 표결을 생략한 채 입법을 강행했다. 이후 사회당 정부의 지지 기반이 무너져 내린 틈을 뚫고 중도우파 마크롱이 혜성처럼 나타나 권력을 장악했다. 프랑스 정치의 양대 축으로서 번갈아 공세를 폈던 우파와 중도좌파가 공히 대중의 분노 앞에 무너져 내리면서 발생한 정치적 격변이었다. 그런데 2017년 집권한 마크롱 또한 공격을 멈추지 않았다. 2018년의 유류세 인상은 ‘노란 조끼’ 운동이라는 광범위한 빈민층의 반란을 촉발했다. 2019년의 공공부문 연금개악 추진은 공공부문 노동조합들의 강력한 총파업에 맞닥뜨렸고 2020년 코로나가 터지면서 흐지부지되었다. 2022년 가까스로 재집권에 성공한 마크롱은 2023년 다시 ‘정년 64세로 추가 연장’을 핵심으로 하는 연금개악을 추진했다. 2023년, 그러니까 지난해 상반기 연금개악에 맞서 다시 한 번 거대한 총파업이 전개됐다. 최대 참가 인원이 350만 명으로 2010년의 규모를 능가하면서 1980년대 이후 최대 규모의 노동자투쟁이 됐다. 전통적으로 노동자투쟁의 중심 역할을 해온 대도시뿐만 아니라 프랑스 전역의 중소도시들까지도 총파업 열기로 가득 찼다. 여론조사에서 94%가 연금개악에 반대하고 65%가 연금개악 철회를 위한 경제봉쇄를 지지할 정도로 일반 대중의 지지도 압도적이었다. 2010년의 총파업이 연금개악을 저지하지 못했다는 사실을 모두가 다 기억하는 상황에서, 일부 선진노동자들은 무기한 총파업을 건설하기 위한 운동에 착수했다. 에너지·정유·철도·청소 등 일부 부문에서는 실제로 무기한 파업이 아래로부터 시작되기도 했다. 그러나 노조 지도자들은 다시 한 번 총파업을 10여 차례의 하루 경고파업과 거리시위로 제한하면서, 더 이상 넘어서려 하지 않았다. 이번에도 그들이 생각한 대안은 ‘정권교체’였다. 그들이 생각한 정권교체의 주체는 2022년 총선 때 결성됐던 좌파 선거연합 ‘사회생태신인민연합’(NUPES)이었다. 그 중심에는 사회당의 몰락 이후 좌파의 새로운 중심으로 부상한 급진좌파 불복프랑스가 있었다. 그러나 노동자들을 명백하게 배신했던 사회당 또한 좌파 선거연합의 일원이었다. 따라서 좌파 선거연합의 집권이 또 다른 배신으로 이어질 가능성을 누구도 부정할 수 없었다. 이번에도 총파업이 연금개악을 막지 못하고 허망하게 소멸되자, 대중의 기대는 좌파 선거연합보다는 한 번도 집권한 적이 없는 극우파 국민연합을 향해 쏠렸다. 연금개악에 반대한다는 입장만 밝혔을 뿐 총파업 시위에는 매우 적대적이었던 극우파가 아이러니하게도 연금개악 반대투쟁의 가장 큰 정치적 수혜자가 됐다. 극우파의 지지가 가파르게 상승하자, 마크롱 정부는 그 기세를 꺾어볼 요량으로 극우파의 핵심 공약인 이민 제한을 상당 부분 수용하는 이민법 개악을 지난해 12월 강행했다. 이민 허용 기준을 강화함으로써 극우파로 쏠리는 흐름을 자기 당에 묶어 보겠다는 계산이었지만, 결과적으로 자신의 당은 분열되고 극우파의 기세만 더 살려주는 꼴이 되었다. 바로 이런 배경 위에서 지난 6월 초 유럽의회 선거에서 국민연합이 (2022년 총선 때 18.7%에서 31.4%로 득표율이 폭증하는) 눈부신 선전을 하게 된 것이었다. 독일을 비롯한 다른 나라들에서도 극우파들의 약진이 두드러졌는데, 구체적인 맥락은 조금씩 다르지만 큰 틀에서는 비슷한 과정의 결과였다. 2023년 프랑스 연금개악 반대투쟁 사진:AFP 무엇이 진정한 희망인가? 자본가세력과의 인민전선인가, 투쟁하는 노동자대중의 자기조직화인가? 이번 총선에서 극우파의 상승세가 집권으로 귀결되는 것을 막았다고 해서 불복프랑스를 중심으로 하는 신인민전선이 새로운 희망을 만들고 있다고 말할 수 있을까? 불복프랑스는 지난해 연금개악 반대투쟁 때 오로지 그 정치적 수혜를 얻는 것에만 집중할 뿐 무기한 총파업을 건설하려는 노력에는 철저히 눈을 감았다. 그런 태도를 가진 불복프랑스가 설령 집권을 한들 노동자들의 열망을 진정으로 관철해 낼 수 있을까? 결코 그러지 못할 것이다. 그것은 그들의 주관적인 진실성에 관한 문제가 아니라 객관적인 역학관계의 문제이기 때문이다. 무기한 총파업과 같이 노동자들의 투쟁이 폭발적으로 분출하는 상황이 열리면 노동자대중은 자본주의 일상 속에서는 감히 꿈꾸지 못하던 변화를 추구하고 실행하면서 자본주의를 결정적으로 타격할 힘을 만들어 나갈 수 있다. 그러한 투쟁 속에서 건설되는 노동자평의회 같은 노동자대중의 자기조직화 기관들은 노동자계급의 혁명적 잠재력을 집결하는 조직적 수단이 될 수 있다. 그러나 그러한 투쟁들이 중단되고 자본주의 일상으로 돌아오게 되면, 그래서 노동자대중의 힘이 가라앉고 자본가계급의 통제력에 압도당하는 상황에서는 노동자대중의 의식마저 부르주아 의식에 장악당하게 된다. 그렇게 무기력해진 노동자들 위에서 자본가계급이 가하는 압력은 어떤 정권에게든 거역할 수 없는 힘이 된다. 이번 선거에서 불복프랑스가 보여준 ‘정치’는 만일 그들이 집권한다면 훨씬 더 거세질 압력에 어떻게 대응할 것인지를 잘 보여준다. 불복프랑스가 주도적으로 결성한 신인민전선에 참여한 사회당은 2012년부터 5년 간 대통령을 역임하며 노동법 개악 강행 등을 주도했던 올랑드를 총선 후보로 내세웠고 결국 당선까지 시켰다. 6월 30일 오후 8시 15분, 1차 투표의 개표 결과가 나온 직후 불복프랑스를 대표하는 멜랑숑은 신인민전선 소속으로 3위를 한 모든 후보들의 사퇴를 전격 선언하며 극우파 국민연합에 맞선 이른바 ‘공화국전선’의 형성에 앞장섰다. 그런데 그렇게 해서 신인민전선 후보들이 양보해 준 후보들 가운데에는 마크롱 정부의 전 총리로서 2023년 연금개악과 그 긴급명령 강행처리를 주도했던 보른, 그리고 역시 마크롱 정부의 현 내무장관으로서 노란조끼 시위부터 연금개악 반대투쟁과 경찰폭력 항의투쟁에 이르기까지 수많은 시위에 대한 잔인한 폭력진압과 2023년 이민법 개악을 주도했던 다르마냉이 포함돼 있었다. 아르헨티나의 극우파 대통령 밀레이의 미치광이 같은 정책들이 보여주듯이, 지난 10여 년 자본주의 위기 심화와 함께 세계 곳곳에서 성장해 온 극우파의 집권은 노동자들에 대한 훨씬 더 강화된 공세를 가져올 것이다. 또한 앞으로 자본주의 위기가 더욱 심화되면 이들 극우파는 노동자의 모든 성과를 파괴하고 노동자운동의 절멸을 시도하는 파시즘의 수준으로까지 발전해 갈 것이다. 자본주의 위기가 끝없이 전개되는 상황에서는, 자본주의를 뛰어넘어 대안을 바라보지 못한다면, 결국 누군가를 희생양 삼아야만 나의 생존을 지킬 수 있다는 극우파와 파시즘의 논리가 대중에게 악마적 호소력을 갖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극우파의 전진을 저지하는 것, 파시즘으로의 진화를 가로막는 것은 오늘날 세계 노동자계급에게 사활적인 과제가 아닐 수 없다. 얼핏 보기에 극우파를 제외한 모든 세력과의 연합은 극우파를 저지할 수 있는 가장 효율적인 방법처럼 보인다. 그러나 바로 최근의 프랑스 사례가 보여주듯이 그러한 방법은 극우파의 전진을 저지하지 못한다. 오히려 극우파의 성장을 위한 비옥한 토양을 만들어줄 뿐이다. 극우파의 전진을 저지할 힘은 노동자계급의 혁명적 잠재력을 불러내는 데 있다. 노동자계급의 투쟁을 가장 강력하고 광범위하게 건설해 내고, 그 한복판에서 노동자대중의 자기조직화 기관을 건설해 내는 것이다. 자본가세력과 연합하는 인민전선이 무엇보다 문제가 되는 것은 바로 그러한 노동자투쟁의 건설 및 노동자대중의 자기조직화와 정면으로 충돌하기 때문이다.2024-07-19 | 조회 1,4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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집게손가락을 넘어서 변혁을 이야기하기지난 7월 12일, 한 인터넷언론 기사를 통해 금속노조 현대중공업지부 소식지 ‘민주항해’에 혐오표현이 다수 사용되었음이 드러났다. 안전캠페인 포스터에 사용된 집게손가락 이미지가 “한국 남성들을 혐오하기 위해” 만들어졌다고 주장하며, 남성비하 광고라고 한 것이다. “정신적 문둥병”, “수구 꼴페미”라는 표현과 “페미들은 병원에서 정신과 진료”를 받아야 한다며, 포스터 철거를 요구하는 글이었다. 몇 시간이 채 지나지 않아 금속노조 여성위원회는 위 소식지에 대해 사과글을 올렸다. 소식지에서 가장 문제가 된 점은 집게손가락 이미지를 ‘남성혐오’ 표현이라고 규정한 것이다. 집게손가락이 남성혐오 표현이라고 규정되는 이유는, 남성들이 주로 활동하는 온라인 커뮤니티, 소위 남초 커뮤니티에서 집게손가락 이미지가 한국 남성의 특정 신체부위에 대한 조롱이라고 여겨지기 때문이다. 그래서 남초 커뮤니티 사용자들은 이 이미지를 사용한 기업들에 이 이미지가 ‘남성혐오’라며 삭제를 요청하고 더 나아가 담당 노동자 해고를 요구한다. 지난 7월 2일, 르노코리아 신차 홍보영상에서 여성 노동자가 집게손가락을 사용하는 것을 보고 많은 남성이 온라인에서 분노를 표현하며 해당 노동자 신상 공개와 해고까지 요구했다. 해당 노동자는 유튜브 채널에 영상에서 표현한 손 모양이 혐오 표현으로 해석될 줄 몰랐다며 사과문을 게시했고, 사측은 해당 노동자를 직무정지한 상태다. 2021년 GS25의 홍보포스터에 나온 집게손가락 이미지부터 시작하여 포스코, 동서식품, BBQ, 넥슨 등 대기업은 이런 논란이 제기될 때마다 회사 매출과 주가를 걱정하며 ‘집게손가락 이미지’가 남성혐오 표현임을 화급히 인정했다. 비뚤어진 효능감을 느낀 남성 온라인 커뮤니티 사용자들은 앞으로 집게손가락을 볼 때마다 이런 논란을 만들 것이다. 위기의 주범은 자본주의 체제 그러나 문제는 집게손가락이 아니라 자본주의 체제다. 기후위기, 경제위기, 전쟁위기 등 자본주의가 초래한 위기는 계속되고 있다. 하지만 노동조합과 진보적 단체 등으로 조직되어 있지 않은 대다수는 본인이 경험하는 고통과 부정의가 자본주의 체제에서 비롯한다고 인식하기 어렵다. 자본주의 체제는 ‘노력하라’고 말할 뿐이기 때문이다. 그 결과는 종종 사회적 소수자에 대한 혐오와 낙인으로 이어진다. 예를 들어, 한국 남성들의 박탈감과 고통 뒤에는 징병제, 취업난, 치솟는 물가와 낮은 임금, 저렴하고 살기 좋은 주택의 부족, 각자도생을 강요하는 능력주의 등이 있다. 이 모든 문제는 계급투쟁으로, 함께 싸워서 해결해야 할 일이지 누군가를 혐오 대상으로 제물 삼아 해결할 수 있는 일이 아니다. 체제에 맞선 대중투쟁을 만들어내지 못한 결과, 많은 남성은 여성과 장애인 등이 자신들의 설 자리를 빼앗고 있다고 쉽게 단정 짓는다. 일자리도, 공공복지도 소수자들에게 빼앗기고 있다는 정서가 만연하다. 생존을 위해 고군분투하는 나보다, 왜 여성·성소수자·이주민·장애인·노인·아동청소년 등 사회적 소수자가 더 나은 대우를 받아야 하는가? 나보다 사회에 기여하지도 않는 저들이, 왜 응당 나에게 돌아와야 할 혜택을 가져가는가? 이렇게 소수자들이 내는 목소리에, 나아가 소수자의 존재 자체에 불만을 가지게 된다. 이렇듯 자본주의는 정상성과 비정상성을 나누고, 소위 ‘비정상’이라고 규정되는 소수자에 대한 차별과 혐오를 통해 계급지배를 강화한다. 소위 ‘남초 커뮤니티’에서는 누구를 혐오하고 낙인찍고 조롱해야 하는지 열띤 토론이 펼쳐진다. 특히 여성, 장애인, 성소수자, 빈민 등이 이곳에서 혐오, 조롱의 대상이 되고 ‘남성’의 연대와 결속을 확인시켜 준다. 일간베스트, 디시인사이드, 에펨코리아, 이종격투기(다음카페) 등 남성들이 많이 사용하는 커뮤니티를 한 번이라도 들어가 본 사람이라면 무슨 말인지 알 것이다. 그러나 한국 남성이 경험하는 고통과 부조리는 사회적 소수자의 존재와 요구에 기인하지 않는다. 그 고통은 자본주의 체제의 착취와 수탈에서 비롯된다. 신체가 버틸 수 있는 한계까지, 저임금 장시간 고강도 노동을 견디며 자신을 희생해 ‘정상가족’의 가장이 되라는 가부장적 자본주의 규범에서 기인하는 것이다. 고통을 강요하는 자본주의 체제에 맞선 싸움을 펼쳐야 할 이때, 사회적 소수자를 혐오 대상으로 삼는 행위는 이 뒤틀린 체제의 뒤틀린 존속으로 이어질 뿐이다. 약자 혐오가 아니라 연대와 단결로 - 분노가 향해야 할 곳은 집게손가락이 아니라 이 체제다 온라인 공간은 누구나 사용할 수 있다. 우리는 이 공간에서 사람들이 토로하는 부조리, 부정의를 면밀히 포착해야 한다. 특정한 사람들이 특정한 공간에서 사용하는 언어, 공유하는 가치관, 생산하고 소비하는 문화에서 자본의 질서와 규범이 반영되기 쉬우나, 그것을 역으로 활용하여 가부장적 자본주의의 모순을 드러내고 계급적 단결을 추동할 수도 있다. 온라인 공간에서 페미니즘 대중화를 경험하고, 분노를 표현하고 싶었던 여성들이 거리로 쏟아져 나왔던 것처럼, ‘국정농단’에 분노한 수많은 사람이 주말마다 광화문에 나왔던 것처럼 말이다. 온라인 혐오표현을 법으로 규제하고 규율, 감독해야 하는가? 아니다. 자본이 만든 부조리와 모순을 명확히 직시할 수 있도록 연대와 자본주의에 맞선 계급투쟁을 설득하고, 사회주의 변혁을 이야기하자. 하다못해 인터넷 뉴스 댓글에도 혐오에 동조하거나 편승하지 말자고, 문제는 자본의 착취와 억압에 있다고 이야기하자. SNS에 짧게라도, 우리가 분노하는 가부장적 자본주의의 실태를 이야기하자.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자본주의 체제가 조장하는 혐오에 맞선 노동조합의 실천이다. 우리는 가부장적 자본주의 사회 속에 살고 있기에 체제가 조장하는 소수자 혐오로부터 자유롭지 않으나, 또한 그 체제에 맞서 싸워왔으며, 또한 싸우고 있기에 앞으로 나아갈 수 있다. 그 전진을 위해 가장 중요한 조직 중 하나가 노동조합이다. 7월 15일, 현대중공업지부는 여성과 장애인에 대한 혐오와 멸시적인 언어를 담은 기사를 내보낸 것에 대해 사과문을 발행했다. 참으로 다행한 일이다. 노동자의 권리를 위해, 단결과 연대를 위해 결성된 노동조합이 여성혐오와 억압에 맞선 투쟁에 더 앞장서야 한다. 집게손가락을 색출하자는 마녀사냥에 노동조합이 맞서야 한다. 우리의 분노를, 그 분노가 응당 향해야 할 곳으로부터 사회적 소수자에게 돌리는 자본주의에 맞서자. 착취당하고 수탈당한 사람들의 분노를 ‘집게손가락’으로 돌리는 이 사회를, 바로 그 착취당하고 수탈당한 사람들이 째려볼 수 있도록 실천하고 설득하자.2024-07-17 | 조회 1,26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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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병대 채 상병 사망 1년, 노동자계급 주도로 윤석열정권 퇴진투쟁에 나서자사진: 연합뉴스 국방부 통계에 따르면 2022년 사망한 대한민국 장병은 95명에 달한다. 3.8일에 한 명꼴로 군대에서 목숨을 잃은 것이다. 장병들은 여러 이유로 안타깝게 생을 마감한다. 훈련 중 사고로 인해 목숨을 잃기도 하고, 군대 내 폭력으로 죽음을 맞거나 스스로 생을 놓는 경우도 있다. 규정에 어긋난 ‘군기훈련’으로 목숨을 잃기도 하고, 작전이나 임무를 수행하다가 죽음을 마주하기도 한다. 해병대 채 상병 역시 그렇게 목숨을 잃었다. 7월 8일, 경찰이 ‘임성근 전 해병1사단장은 채 상병 사망사건에 혐의가 없다’는 결론을 내렸으나 이를 신뢰하는 사람은 많지 않다. 2023년 7월 19일 채 상병 사망 이후 1년을 앞둔 지금, 채 상병 사건은 윤석열 퇴진투쟁의 발화점으로 작용하고 있다. 채 상병 사건의 경과와 주요 쟁점을 살펴보자. 채 상병의 죽음이 말하는 것 - 병사들에게 부당한 명령을 거부할 권리를 보장하라 2023년 7월 19일, 해병대 채수근 상병은 경북 예천 수해 현장에서 실종자를 수색하다 급류에 휩쓸려 실종되었고, 실종 14시간 만에 숨진 채 발견됐다. 당시 장병들은 수색작업을 하는지도 모른 채 작전 지역으로 이동했고, 채 상병의 직속 대대장인 포7대대장이 ‘위험해서 현장수색을 하면 안 된다’고 보고했음에도, 해병1사단은 사단장 명령에 따라 수색을 강행했다. 사단장에게는 관할 부대가 잘 드러나는 것이 중요했을 뿐, 병사들의 안전은 안중에도 없었다. 수색 당시 채 상병을 비롯한 병사들에게는 구명조끼조차 지급되지 않았다. 문제의 임성근 사단장은 ‘빨간색 해병대 티셔츠로 복장을 통일하라’는 지침을 내렸을 뿐이다. ‘해병대’가 잘 보여야하기에 구명조끼를 지급하지 않은 것이다. 투입 예정이던 장갑차까지 철수할 정도로 물살이 강한 상황에서, 병사들은 그 어떤 안전장비도 없이 ‘인간띠’ 수색을 해야 했고 채 상병은 끝내 목숨을 잃었다. 특기할 만한 사실이 있다. 당시 해병대 현장지휘관은 채 상병이 떠내려가자 직접 신고하는 대신 주민에게 신고를 요청했다. “해병대 간부 한명이 다급하게 뛰어와 119 신고를 요청해 오전 9시 11분쯤 신고 … 구급대는 체감상 10분 안에 왔지만 해병대원은 이미 떠내려간 뒤”, 최초 신고 주민이 언론에 밝힌 내용이다. 왜 현장지휘관은 채 상병이 떠내려가는 모습을 보고도 직접 신고하지 않았을까? 병사가 죽음의 위기에 처한 상황에서, 왜 주민에게 신고를 부탁하느라 시간을 허비했을까? 해병대 측은 현장지휘관이 직접 신고하지 않은 이유를 “답변할 수 없다”고 했다. 향후 진상이 규명되어야 할 일이나, 분명한 것은 해병대 현장 간부는 자신이 군 외부의 사건 개입을 초래한 당사자로 기록되는 것을 저어했으며, 이는 군의 폐쇄성을 여실히 드러낸다는 것이다. 군은 군 외부 조직에 도움을 요청하는 행위, 군 내부의 일을 바깥에 알리는 행위를 철저히 억압하고, 이를 통해 군의 억압적 질서를 유지한다. 이렇듯 군대는 가장 폐쇄적이고 억압적인 공간이다. 채 상병과 동료 병사들에게는 안전장비도 없는 수중수색이라는 부당한 명령을 거부할 권한이 없었다. 병사들은 사회와 단절된 채 고립되어 있고, 이런 상황에서 아무리 부당한 명령이 내려와도 저항할 수 없다. 양심적인 지휘관이 있었다면 채 상병이 죽지 않았을까? 그랬을 수도 있다. 그러나 병사들이 죽어나가지 않기 위해 진정 필요한 것은, 가뭄에 콩 나듯 나타나는 ‘양심적 지휘관’의 선의가 아니라 병사들의 권리다. 부당한 명령을 거부할 권리를 병사들에게 보장해야 한다. 이런 권리는 한국 현실에서 엄두도 못 낼 만큼 낯설게 들린다. 그러나 이미 독일과 미국, 영국과 프랑스 등 주요 국가들, 그리고 국제법은 ‘부당한 명령에 대한 불복종’을 병사의 권리로 명시한다. 이는 주로 2차대전 당시 전쟁범죄에 대한 반성에서 비롯되었다. 뉘른베르크 전범 재판에서 아이히만을 비롯한 나치 전범들은 ‘명령에 따랐을 뿐’이라고 스스로를 변론했다. 나치 전범들의 변론에서 드러나듯 부당한 명령을 거부할 권리가 병사들에게 주어지지 않는다면 거대한 전쟁범죄도, 군대 내의 억울한 죽음도 반복될 수밖에 없다. (일부 국가에서 부당한 명령에 대한 불복종은 권리일 뿐만 아니라 의무이기도 하다.) 뉘른베르크 전범재판의 나치 전범들은 ‘명령에 따랐을 뿐’이라고 자신을 변론했다 이렇듯, 병사에게 복종하지 않을 권리가 필요하다는 것은 역사의 교훈이다. (물론, 병사의 불복종을 권리로 명기한 국가들에서 실제 병사들이 불복종의 권리를 얼마나 자유롭게 행사할 수 있느냐는 다른 문제다. 이라크 전쟁 파병을 거부한 병사에 대한 미 군사법원의 처벌1)처럼 말이다.) 이 권리는 단지 병사 개인의 권리로 한정해서는 안 된다. 병사들에게 단체를 만들고 집단행동에 나설 권리를 보장해야 비로소 부당한 명령에 불복종할 권리가 온전히 보장될 수 있다. 채 상병의 죽음이 드러냈듯, 병사들에게는 스스로를 지킬 권리가 필요하다. 1) 이라크 전쟁 당시 미군 불복종 사례로 아구스틴 아구아요(Agustín Aguayo)의 사례가 있다. 멕시코에서 태어난 미국 시민권자인 아구아요는 학비를 벌고자 2002년 미군에 입대했다. 입대 당시 그는 전쟁에 반대하지 않았으나, 군대에서의 경험으로 전쟁에 반대하게 되었다. 그가 파병되기 전인 2004년 2월, 아구아요는 양심적 병역거부자 지위를 소급해 신청했으나 거부되었고, 결국 전투의무병으로 이라크에서 1년을 복무한다. 2005년, 다시 양심적 병역거부자 지위를 요구하며 연방법원에 소송을 제기했으나 기각되었다. 2006년 독일 주둔 중이던 그는, 부대가 이라크로 복귀한다는 통보를 받고 기지를 떠났다. 2007년 3월, 미 군사법원은 탈영죄로 유죄판결을 내렸고, 그를 불명예 제대시켰다. 아구아요는 6개월간 복역했고 앰네스티는 그를 양심수로 지정했다. 윤석열 정권의 외압, 특검과 탄핵청원을 둘러싼 공방 채 상병의 죽음 이후 전개를 보자. 사건 수사 책임을 맡은 박정훈 당시 해병대 수사단장이 사건을 조사했고, 국방부 장관 결재를 거쳐 경상북도경찰청에 수사자료를 이첩했다. 박정훈 단장에 따르면 임성근 해병대1사단장 등 8명에게는 과실치사 혐의가 있고, 임성근 역시 사퇴를 결심한 상황이었다. 그러나 이후 ‘외압’이 시작된다. 수사자료 이첩 후, 국방부 장관은 자신의 결재를 뒤집고 ‘경찰 이첩 보류’를 지시했고, 국방부 법무관리관 등은 해병대 수사단에게 ‘관련자 혐의사실을 삭제하라’고 연락했다. 이어 국방부 검찰단은 수사자료를 경찰로부터 회수하고 박 대령을 항명과 상관명예훼손 등 혐의로 고발했으며, 수색을 명령한 임성근 사단장을 혐의에서 제외한 채 사건을 경찰에 다시 넘겼다. 한 병사를 죽음으로 몬 주모자가 면죄되는 비상식적인 과정에, 권력의 부당한 개입이 있었다는 의혹이 번지는 것은 당연하다. 일파만파 번지는 의혹에 대해, 정권은 강행돌파를 시도한다. 그러나 이종섭 전 국방장관을 호주대사에 임명해 국외로 빼내려는 윤석열의 시도는 노동자 민중의 더 큰 분노를 불렀을 뿐이다. 국방부 장관이 입장을 바꾼 배경, 박정훈 대령이 해임되고 ‘항명 수괴’ 혐의로 고발된 배경, 임성근 해병1사단장에게 어떤 혐의도 적용되지 않은 배경에 윤석열의 ‘격노’가 있었다는 것, 격노의 이유와 이후 과정을 규명해야 한다는 것이 채 상병 특검이 제기되는 이유다. 심지어 최근 언론보도에 따르면, 임성근 사단장이 사임하지 않은 배경에 김건희 도이치모터스 주가조작사건 피의자의 임성근 사단장 구명을 위한 청와대 로비가 있었다고 한다. 한마디로 대통령 배우자의 금융범죄자 지인이 주도해 국가권력을 움직여냈다는 것이다. ‘공정’을 내건 정부의 국가권력은 ‘비선’을 통해, 그야말로 추잡하게 행사되었다. 정부와 여당은 사건 은폐에 여념이 없다. 2024년 5월 2일, 국회는 진실 규명과 책임자 처벌을 위해 채 상병 특검법을 통과시켰으나 5월 21일 윤석열은 10번째 거부권을 행사해 법안은 다시 국회로 돌아갔다. 5월 28일, 국회는 채 상병 특검법을 재표결했지만 재석 294인, 찬성 179표로 부결됐다. 결국 21대 국회에서 채 상병 특검법은 거부권 행사법안 재의결 요건, 즉 재적의원 과반 출석과 출석의원 3분의 2 이상 찬성 조건을 충족시키지 못해 폐기되었다. 38일 뒤인 7월 4일, 22대 국회 7월 임시국회 본회의는 채 상병 특검법을 찬성 189표, 반대 1표로 가결했다. 7월 9일, 윤석열은 예상대로 거부권을 행사했다. 윤석열 정권에, 기를 쓰고 진실 공개를 막아야만 하는 중대한 이유가 있음이 명백해지고 있다. 물론 정권이 사건을 은폐할수록, 이를 규명하라는 대중의 요구도 커지고 있다. “윤석열 정권은 7월 폭우 피해 실종자 구조 중 사망한 해병대 채수근 상병 사건을 수사하던 박정훈 수사단장에 외압을 행사했습니다. 또 박정훈 수사단장에게 항명죄를 뒤집어씌워 사건 수사를 가로막았습니다. 이는 군사법원법 위반으로 명백한 탄핵 사유입니다. 이것도 모자라 윤석열은 채해병 특검법에 거부권을 행사했습니다” - 140만명을 돌파한 윤석열 탄핵 국민청원의 첫 사유가 채 상병 사건에 대한 정권의 외압 행사다. 종합하면, 상황은 다음과 같다. 부당한 명령으로 병사가 죽었고, 진실을 밝히려는 군대 내부의 시도가 윤석열 정권과 군부에 의해 가로막혔으며, 정권의 외압 배경에 대통령 주변인의 로비가 있었음이 알려지는 등 국가권력의 악취나는 작동이 드러나고 있고, 분노한 대중은 특검을 통한 진상규명과 탄핵을 청원하고 있다. 오는 7월 19일과 26일, 윤석열 탄핵 청원 심사를 위한 국회청문회가 열린다. 윤석열 퇴진투쟁을 아래로부터 확대하자 진실을 조금이라도 밝히기 위해, 특검은 필요하다. 그러나 특검이 문제를 해결하는가? 탄핵 국민청원을 수용해 국회가 탄핵에 나선다면 문제는 해결되는가? 그렇지 않다. 현 국면과 2016~2017년 박근혜 퇴진투쟁 당시의 중요한 차이점은, 2016년 당시에는 가두투쟁이 기회주의적 야당을 왼쪽으로 견인하며 박근혜 퇴진 요구를 대중화했음에 반해, 현재는 ‘대통령 퇴진’의 경로가 처음부터 국회로 잡히고 있다는 점이다. 돌아보자. 2016년 10월 26일은 당시 여야가 ‘최순실 국정농단 사태’에 대한 특검을 합의한 날이다. 당시 민주당 입장은 ‘우선 특검과 추후 국정조사 추진’, 정의당 입장은 ‘특검과 국정조사 병행’, ‘청와대 참모진 전면 교체와 내각 총사퇴를 통한 거국 중립내각 구성’, 국민의당 입장은 ‘문고리 3인방 배제’에 지나지 않았다. 2016년 11월 초까지만 해도 보수야당의 요구는 ‘국회추천 총리임명, 특검, 국정조사’에 지나지 않았고 박근혜 정부와 여당은 절체절명의 위기 속에서 얼마든지 ‘거국중립내각’을 받아들일 용의가 있었다. 즉, 광장의 투쟁이 없었다면 박근혜 탄핵은 불가능했다는 것이다. 당시 민주노총의 정치총파업이 보다 위력있게 전개되며 광장투쟁과 결합되었더라면, 투쟁의 주도권은 민주당에 넘어가지 않았을 것이고, 노동자 민중은 박근혜 정권을 자신의 손으로 퇴진시킬 수 있었을 것이다. 그랬다면 그 어느 것 하나 바꾸어내지 못한 문재인 정부 5년의 환멸 또한, 따라서 윤석열 정부의 등장 또한 없었을 것이다. 핵심은 박근혜 퇴진투쟁 국면 노동자계급의 역할이 미약했다는 것, 따라서 박근혜 퇴진투쟁이 부르주아 민주주의 체제의 ‘정상화’를 넘어서지 못했다는 것이다. 채 상병 특검법, 노조법 2·3조 개정안, 전세사기특별법 …. 임기가 절반도 지나지 않은 이 정부가 행사한 거부권만 15번이다. 정부는 거부권 남발의 효과를 알면서도 그렇게 할 수밖에 없다. 다른 방안을 선택할 자원이 없기 때문이다. 다시, 지배계급 내부 분열이 격화하고 있다. 그러나 지배계급 내부의 위기가 곧 노동자 민중의 기회인 것은 아니다. 지금, 엄중한 정세에 비해 노동자 민중의 주체 역량은 미약하다. 연대를 확대하며 다가올 격돌에 대비해야 한다. 아리셀 참사의 진상을 규명하고 재발을 방지하기 위한 투쟁, 노조법 2·3조를 온전히 개정하는 투쟁, 일터의 경계를 넘어 생존권 쟁취투쟁을 확대하자. 노동자계급 주도로 윤석열 퇴진투쟁을 확대하며 ‘체제의 정상화’, 그 너머를 준비해야 한다.2024-07-15 | 조회 7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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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시사회서비스원 해산 만행, 패배를 딛고 다시 전진하기 위하여!사진: 공공운수노조 설마 했더니 진짜였다. 보육, 노인 요양, 장애인 활동 지원 등의 공공돌봄서비스를 제공하던 서울시사회서비스원(이하 ‘서사원’)이 해산됐다. 지난 4월 26일, 서울시의회는 국힘 의원들을 중심으로 <서울특별시 사회서비스원 설립 및 운영 지원 등에 관한 조례> 폐지를 의결했다. 서울시 출자출연기관인 서사원은 서울시의 재정 투입이 없으면 존속 불가능하다. 이어 5월 22일 서사원 이사회는 해산을 의결했다. 10월 말까지 모든 청산 절차가 마무리된다고 한다. 지금보다 몇 배 확대해도 모자랄 공공돌봄기관을 오히려 폐쇄하는 경악할 일이 벌어진 것이다. 7월 3일 한덕수 총리는 윤석열 정부의 경제 성과(?)를 자화자찬하면서, “정부 출범 당시 우리가 물려받은 경제를 봤을 때 저는 우리나라가 망할 수도 있겠구나, 그런 생각을 절실하게 했다”고 말했다. 망할 뻔한 나라를 저들이 살려놨다는 것이다. 개소리다. 한국 사회는 이미 망했고, 너희들이 그것을 가속했다고 평가해야 마땅하다. 합계출산율이 0.6명 대에 그치는 사회는 어떤 사회이겠는가? 경쟁의 패배자에게서 모든 것을 박탈한 사회, 이로써 미래에 대한 희망마저 앗아간 사회다. OECD 최고 수준의 성별 격차에도 불구하고 “더 이상의 구조적 성차별은 없다”는 개소리가 공공연히 횡행하는 사회, 육아·간병·노인 요양 등의 각종 돌봄을 온전히 여성에게 전가함으로써 여성의 ‘사회적’ 해고를 당연시하는 사회다. 노동자계급의 생존을 위한 최소한의 기반도 무너뜨려 놓고서는, 자본 이윤의 원천인 노동력이 부족하니 아이를 더 많이 낳으라고 떠들어대는 사회가 ‘망할 뻔한’ 나라인가? 이미 ‘망한’ 나라지! 마르크스는 <자본1>에서, 이윤욕에 사로잡힌 자본가들은 “인류가 장차 멸망할 것이라든지 결국은 인구가 끊임없이 감소할 것이라든지 하는 정도의 예상에 대해서는 [지구가 태양에 부딪힐지 모른다는 예상이나 마찬가지로] 자신의 실제 행동에서 눈도 깜짝하지 않는다”고 지적했다. 자본주의 체제 유지를 위해서라도 공공돌봄의 확대가 불가피한 마당에, 오히려 공공돌봄기관을 폐쇄하는 자본가 정치세력의 행태를 이보다 더 잘 묘사할 수 없을 것이다. 서울시의 터무니없는 서사원 해산 이유 서울시는 서사원 해산의 이유로 “서사원이 민간과 차별화되는 공공돌봄 기능을 제대로 수행하지 못하는 점, 내부 구성원의 반대로 더 이상 구조개혁을 기대하기 어려운 점”을 꼽았다. 감히 ‘공공돌봄’ 운운이라니, 꼴같잖은 소리다. 서울시의 진짜 속내는 이미 여러 차례 확인된 바 있다. 핵심적으로 ‘사회서비스원 돌봄노동자의 임금이 민간보다 훨씬 높게 책정돼 있다’는 게 문제란다. 서사원 폐지를 강력히 부르짖던 어느 돌봄자본가는 신문 기고에서 이렇게 떠들었다. “이들은 민간 기관과 달리 월급제 정규직이다. 고정급 205만 원에 교통비 15만 원, 식비 13만 원을 더해 기본급 233만 원을 월 급여로 받는다. 가족수당은 물론이고 휴일이나 야간 시간대 등 시간 외 근로를 하면 규정에 따라 초과 수당도 받는다. 정당한 사유가 있다면 유급으로 병가나 휴직도 보장받는다. 돌봄 서비스를 제공하는 민간에서는 상상도 할 수 없는 일이다. ‘돌봄업계의 삼성’이라 불리는 이유다.” (세계일보, <[기고] 공공돌봄이라는 허울 뒤에서 낭비되는 서울시민 혈세>, 2023. 5. 19.) 노동자 평균임금이 300.7만 원(통계청, <경제활동인구조사>, 2023년 8월), 중위임금이 249만원(고용노동부, <고용형태별근로실태조사>, 2022년 6월)인 시대다. 그런데 서사원 노동자들은 무려(!) 기본급 233만 원에 근로기준법에 따른 시간 외 수당까지 받으며, “월급제 정규직”이기까지 하므로 “돌봄업계의 삼성”, 귀족 노동자라는 것이다! 돌봄 노동의 가치를 이보다 더 노골적으로 폄훼할 수 있을까? 파리 목숨인 계약직·시급제·단시간 노동 대신 주 40시간 풀타임·정규직 노동을 원했을 뿐인 돌봄노동자들의 소박한 요구를 제정신이라면 이렇게 매도할 수 있을까? 서울시의 자본가 정치세력과 돌봄자본가들은 민간 기관에서는 훨씬 더 싼 값에 돌봄노동자를 고용할 수 있다고 지껄인다. 그렇다. 민간 부문 돌봄노동자들은 우리 사회에서 가장 열악한 노동자들이다. 방문요양서비스를 제공하는 요양보호사 노동자들(이들 대부분은 50대 이상의 여성 노동자들이다)은 풀타임으로 근무해도 고작 월 140만 원 안팎의 급여를 손에 쥔다. 이동시간, 교육·회의 시간 등은 노동시간으로 인정되지 않기 때문이다. 비정규직 고용이 일반적이기 때문에 자본가들의 눈 밖에 난 돌봄노동자들은 일상적 해고 위협에 놓여있다. 어린이집 원장의 상상을 초월하는 갑질에 시달리는 보육노동자들, 휴게시간 없이 무급노동을 강요당하는 장애인 활동지원사 노동자들의 사연은 낯설지 않다. 바로 그래서 자본가 정부조차 사회서비스원이라는 공공돌봄기관을 만들지 않을 수 없었다. 열악한 노동조건에 고통받는 돌봄노동자들이 양질의 사회서비스를 제공할 수 있을 리 만무하기 때문이다. ‘사회서비스 지원 및 사회서비스원 설립ㆍ운영에 관한 법률’(이하 ‘사회서비스원법’) 제1조(목적)에 “사회서비스와 사회서비스 관련 일자리의 질을 높여 국민의 복지증진에 이바지”하겠다는 표현이 들어가 있는 이유다. 물론 사회서비스원 설립이 전체 돌봄노동자들의 권익 개선을 추동(推動)했는지는 진지하게 평가해야 할 문제다. 또한 서사원에 건설됐던 노동조합이 노동자계급 총단결의 관점에서 노동자의식을 싹틔워 나갔는지의 문제도 그렇다. 그러나 최소한 한 가지 사실만큼은 무조건 단언할 수 있다. 자본가들이 서사원 노동자들을 두고 귀족 노동자 운운한 짓거리만큼 비열한 공격은 세계 어디에도 없을 것이란 점이다. 서사원 해산 사태는 공공부문이 더 이상 고용의 안전지대가 아니라는 점, 공공부문 노동자들이 노동자계급 전체의 권익을 대변하며 투쟁하지 않을 때는 고작 기본급 233만 원만으로 말도 안 되는 갈라치기 공격을 받을 수 있다는 점을 보여줬다. 이것은 재정 긴축이 일상이 된 시대, 자본 이윤이 장기침체에 빠진 쇠퇴기 자본주의에서 또다시 반복될 수 있는 일이다. 마지막까지 비열함의 극치를 보여준 자본가들, 그러나 쓰라린 패배 저들이 마지막까지 얼마나 치밀하고 비열했는지, 한 가지는 꼭 짚고 넘어가야겠다. 5월 31일 서사원 원장 직무대행 윤재삼은 서사원 청산과 관련된 입장문을 발표했다. 윤재삼은 두 차례에 걸쳐 희망퇴직을 받겠다며, 1차(신청기간 : 6월 3일~5일) 희망퇴직 신청자에게는 기본급 3개월분의 퇴직 위로금을, 2차(신청기간 : 6월 20일~26일) 희망퇴직 신청자에게는 기본급 2개월분의 퇴직 위로금을 지급한다고 밝혔다. 또한 2차까지 희망퇴직을 신청하지 않으면 7월 31일 근로계약을 종료하고 퇴직 위로금을 한푼도 지급하지 않겠다고도 했다. 정말 역겨울 정도다. 서울시와 서사원은 행여나 서사원 노동자들이 폐업에 반대하는 투쟁을 벌일까 봐 희망퇴직 신청 시기에 따라 퇴직 위로금을 차등 지급하겠다 떠든 것이다. 자본가들이 파업한 노동자들에게 천문학적인 손배 가압류를 때려놓고, 노조를 탈퇴한 사람에게만 소송을 취하해 주는 개수작과 조금도 다르지 않다. 서울시와 서사원의 진짜 속내는 희망퇴직을 신청한 노동자가 작성해야만 하는 합의서에 그대로 드러나 있다. 서사원이 내민 합의서에는 “회사와의 고용관계 및 회사로부터의 근로종료로 발생한 모든 권리를 포기하며, 본인의 회사와의 고용관계 및 근로종료와 관련하여 회사와 그 임직원 및 회사와 이해관계가 있는 여타 당사자에 대하여 행정상 또는 민·형사상 제소 기타 어떠한 형태의 이의제기도 하지 않을 것임을 약속”한다는 조항이 기재돼 있다. 노동자투쟁의 가능성을 원천 봉쇄하기 위해, 생계수단 단절의 위험에 놓인 노동자들을 돈 몇 푼으로 매수하려 한 것이다. 그러나 냉정하게 말해, 자본가들의 치밀함에 비하여 서사원 노동자들의 대응은 무력하고 뒤늦었다. 4월 26일 서울시의회의 서사원 조례 폐지 이후, 서사원에 조직된 두 민주노조(전국공공운수서비스노조 서사원지부, 서비스연맹 전국돌봄서비스노동조합)는 서울시가 요구하는 임금 삭감안(시급제 전환 등)에 대한 논의를 진행했다. 5월 13일 다수 노조인 서사원지부 조합원들의 71%는 임금 삭감안에 반대했으며, 13일~14일 쟁의행위 찬반투표를 가결(찬성률 86%)했다. 하지만 5월 22일 이사회에서 서사원 해산이 의결되는 순간까지도 노동조합은 서사원 폐쇄를 막아내는 위력적 대중투쟁을 조직하는 데 실패했다. 공공운수노조 서사원지부의 경우, 공공운수노조가 주최한 결의대회는 5월 17일 하루에 그쳤으며 이마저도 연대 단위가 결합하기 힘든 평일(금요일) 집회였다. 이어 지부장 삭발, 6월 10일부터 28일까지 서사원 폐쇄에 항의하는 릴레이 단식농성이 진행됐지만 이것만으로는 자본가들의 단호함을 막을 수 없었다. 현재 조합원들 대다수는 희망퇴직을 신청한 상황이다. 너무나 쓰라린 패배다. 서사원 폐쇄에는 아무런 사회적 명분도 찾을 수 없다. 만약 전면 파업이나 이사회 원천 봉쇄 등 서사원 노동자들의 강력한 대중투쟁이 전개됐다면 서사원 폐쇄에 반대하는 사회적 여론이 형성될 가능성이 적지 않았다. 저출생 재난, 초고령화 시대에 그나마 있는 공공돌봄기관의 문을 닫겠다는 자본가들의 폭거는 무엇으로도 정당화될 수 없기 때문이다. 패배를 딛고 더 멀리 전진하기 위해, 서사원 해산을 둘러싼 과정을 면밀히 평가할 필요가 있다. 노조법 2·3조 개정의 필요성이 또다시 확인됐다 우선 서울시의 서사원 해산 만행은 노조법 2·3조 개정 요구가 왜 정당한지를 수백 번째로 보여준 실례라 하겠다. 통상의 간접고용 노동자들과 마찬가지로, 서사원 노동자들은 자신들의 노동조건을 실질적으로 결정한 서울시와는 아무런 교섭도 할 수 없었다. 서사원 노동자들은 서울시의 결정 사항을 앵무새처럼 읊어대는 서사원 사측과 무의미한 교섭을 지속해야 했다. 간접고용 구조에서 진짜 사장들은 하청노동자들의 노동조건을 모두 결정하면서도 아무런 책임도 부담하지 않는다. 택배 노동자들의 살인적 장시간 노동을 강제하는 원청 택배자본이 그러하며, 조선소 하청노동자들의 임금을 30% 삭감했던 조선사 원청자본이 그러하다. 마찬가지로 서울시는 400명이 넘는 서사원 노동자들의 생계를 단박에 날려버리면서도 손에 흙 묻히는 일조차 겪지 않았다. 노동자의 노동조건 결정 등에 “사실상의 영향력 또는 지배력”을 행사하는 주체를 노조법상 사용자로 명시해야 하는 이유다. 노조법상 사용자 개념을 확대하고 노조 파괴 행위를 금지하는 노조법 2·3조 개정 없이 가장 열악한 노동자들의 노동3권 행사는 기대하기 힘들다. 서사원 해산이 보여주는 것처럼, 노동자들이 진짜 사장에게 악 소리 한번 내지 못한 채 대량 해고되는 말도 안 되는 일이 반복돼서는 안 된다. 노조법 2·3조 개정은 노동3권을 빼앗겨왔던 하청노동자 등이 노조할 권리를 행사하기 위한 최소 조건이다. 노동자계급의 자기조직화가 결정적으로 중요하다 그러나 법 제도를 떠나 서사원 해산 사태에서 뼈아프게 되새겨야 하는 결정적 교훈은 이것이다. 노동자계급의 자기조직화 과정 없이는 노동자들이 거대한 잠재력을 온전히 발휘할 수 없다는 점 말이다. 앞서 언급한 이유로 인해 민간 부문 돌봄노동자들의 노동자의식은 매우 낮은 편이다. 비정규직 고용, 30명 미만의 영세한 사업 규모 등으로 인해 돌봄노동자들은 노동조합 활동에 엄두를 내지 못한다. 노동조합은커녕 근로기준법 준수를 요구하는 것만으로도 해고 위협에 시달리는 것이 돌봄노동자들의 현실이다. 반면 돌봄자본가들은 ‘땅 짚고 헤엄치기’ 중이다. 이들의 사업은 파산 위험이 없다. 현재 보육·노인 요양·장애인 활동 지원 등의 돌봄서비스는 국가와 지자체가 공적 재원으로 지원하고 있기 때문이다. 돌봄자본가들은 공적 재원으로 사업을 하면서도, 자신의 사업장 내에서 거의 무제한적인 권력을 휘두른다. (역설적으로 파산의 위험이 없으므로 ‘세련된’ 인사노무관리의 필요성을 느끼지 않는다.) 노동조합으로 조직되지 못한 돌봄노동자들은 자신의 정당한 권리를 주장하기보다는 돌봄자본가들의 눈 밖에 나지 않는 것을 생존 전략으로 삼는 데 익숙했다. 서사원 설립 초기 임금체계 설명회에서, 가족수당이 지급된다는 말에 돌봄노동자들이 반신반의하며 ‘일 안 하는 남편이어도 가족수당을 지급하느냐’고 되물었다는 에피소드는 평소 돌봄노동자들이 얼마나 열악한 상태에 놓여있었는지를 보여준다. 이런 조건에서 공공돌봄기관인 서사원이 탄생했다. 노동자들도, 자본가들도, 과거의 경험과 습관을 한 번에 떨쳐내지 못했다. 서사원에서 몇 차례 있었던 부당해고 사건은 과거 민간 부문 돌봄자본가들의 무식함이 어느 정도였는지를 여실히 드러낸다. 요양보호사 노동자가 관리자에게 말대답했다는 이유로 인사 평가에서 최하점을 줘 촉탁 재고용에서 탈락시켰던 사건이기 때문이다. 마찬가지로 노동자들 역시 노동조합의 필요성, 더 나은 노동조건을 쟁취하기 위한 노동자투쟁의 불가피성에 대한 이해가 높다고 할 수 없었다. 서사원 설립 초기인 2020년, 서사원지부는 유사한 서울시 출자출연기관의 단체협약을 기준으로 단체협약을 체결했다. 그러나 이 단체협약은 아래로부터의 투쟁을 통해 쟁취했다고 보기 어려운 것이었다. 사측이 2022년 단체협약의 해지를 통보한 후, 서사원지부가 단체협약을 갱신하기 위한 위력적 투쟁을 전개하지 못했던 상황은 이를 보여준다. 오세훈 시장 당선 이후 이뤄진 조직 축소 등 전방위적 공격에도 제대로 대응하지 못했다. 이러한 주체적 조건을 고려했을 때, 서사원 노동자들이 노동조합 활동에서 민주성과 전투성의 원칙을 구현하기 위해서는 전체 민주노조운동 진영의 전폭적 지원이 불가결했다. 공공돌봄기관을 폐쇄하겠다는 자본가 정치세력의 만행에 맞서, 민주노총과 산별노조 차원의 투쟁 계획 제출, 적극적 연대 조직이 필요했다. 그러나 이것이 턱없이 부족한 상태에서 서사원 노동자들이 자기 경험을 통해 단번에 비약해 높은 수준의 노동자투쟁을 전개하기란 쉽지 않은 일이었다. 서사원 투쟁이 단지 서사원에 고용된 노동자들의 처우 개선에만 머무는 것이 아니라, 민간 부문을 포함한 전체 돌봄노동자들을 대변하는 계급단결 투쟁으로 나가기엔 절대적으로 시간이 부족했던 것이다. 그러나 서사원 노동자들은 서울시와 사측이 서사원 폐쇄를 위협하며 던진 임금 삭감안에 반대 투표함으로써, 노동자의식이 급격하게 성장할 수 있다는 점도 뚜렷이 보여줬다. 5월 17일 공공운수노조 결의대회에 적지 않은 조합원들이 참여해 전투성을 보여준 점도 주목해야 한다. 서사원 노동자들은 본능적으로 노동조합을 통해 자신의 일자리를 지키겠다는 의지를 보여줬던 것이다. 하지만 노동조합은 조합원들의 투쟁 의식을 고양시키는 강력한 투쟁을 더 이상 진행하지 못했다. 예컨대 서사원 폐쇄를 결정한 5월 22일 이사회는 조합원 대중의 강력한 파업 투쟁으로 원천 봉쇄했어야 했을 것이다. 노동조합이 결정적 위기의 순간에 이렇게 높은 수준의 노동자투쟁을 전개할 수 있으려면 평소의 준비 태세가 필요하다. 그것이 바로 노동자계급의 자기조직화다. 노동자운동이 점점 더 대중적 활력과 전투성을 잃어가고 있는 지금, 노동자계급 자기조직화의 중요성은 수백 번 강조해도 지나치지 않다. 현재 조건에서 노동자운동의 미래는 눈에 쉽게 보이는 ‘이슈 파이팅’이 아니라(이것이 불필요하다고 주장하는 것은 절대 아니다), 눈에 띄기 힘든 일상적 자기조직화 과정을 통해 담보된다. 사측이 내세우는 반동적 이데올로기에 맞서 조합원 교육과 토론을 일상화하는 일, 노동조합의 의사결정을 상급단체와 전임 간부 몇몇이 좌우하는 것이 아니라 노동자 민주주의 원칙 아래 조합원들이 주도하게 하는 일이 그래서 중요하다. 민주노조답게 평조합원이 노동조합의 중심이 돼야 한다. 자신의 문제를 노조 간부가 대리 해결해 줄 것이라 기대하는 것이 아니라, 아래로부터의 연대와 단결, 주체적 투쟁으로 문제를 해결한다는 기풍이 흘러넘쳐야 한다. 노동자들이 자본가들에 비해 가진 유일한 장점은 수(數)가 많다는 것이다. 아무리 뛰어난 개인도 집단의 힘을 뛰어넘을 수 없기 때문이다. 다만 이 장점은 노동자 개개인의 능동적 실천이 전개될 때만 비로소 실현된다. 노동자의식으로 무장한 노동자계급은 자본에 맞선 일상적 실천과 투쟁을 통해서만 등장한다는 것을 잊지 말아야 한다. 유감스럽게도 서사원 해산 사태에선 이런 준비가 너무나 부족했다. 2022년 9월 사측의 일방적인 단체협약 해지 통보 이후 노조 활동에 여러 지장이 있었던 것도 한 이유다. 노동조합이 자신의 고용을 보장할 수 있다는 확신이 들지 않는 순간, 다시 말해 노동자 단결로 상황을 반전시킬 수 있다는 자신감이 사라지는 순간, 노동자 개개인이 사측의 퇴직 위로금 수작을 받아들인 건 불가피한 수순이었다. 민주당과의 정책 대응이 향후 계획의 중심이 되어서는 안 된다 이런 원칙에서 보자면, 서사원 폐쇄 이후 공공운수노조에서 민주당과 함께 서사원을 재건하겠다는 계획을 향후 대응의 중심축으로 둔 것은 매우 잘못된 일이다. 6월 25일 국회에서는 공공운수노조와 조국혁신당 김선민·정춘생 의원실 공동주최로 ‘사회서비스원법 개정안 발의 기자회견’이 열렸다. 사회서비스원 설치를 의무화해서 제2의 서사원 해산 사태를 방지하겠다는 것이다. 이 밖에도 7월 중 민주당 의원실과 함께하는 서사원 해산 관련 토론회, 하반기 국회 국정조사 등이 추진 중이라 한다. 사진: 공공운수노조 문재인 정부가 만든 사회서비스원을 윤석열 정부와 국힘 시의회가 해산했으니, 다시 민주당과 함께 서사원을 재건하겠다는 생각이 당연해 보일지 모른다. 그러나 애당초 사회서비스공단 공약에서 한참 후퇴한 채, 지금의 무늬뿐인 공공돌봄기관을 만든 것이 문재인 정부라는 사실을 잊어서는 안 된다. 현행 사회서비스원법 제7조제1항은 “시ㆍ도지사는 제10조의 사업을 수행하기 위하여 관할하는 특별시ㆍ광역시ㆍ특별자치시ㆍ도ㆍ특별자치도에 시ㆍ도 사회서비스원을 설립ㆍ운영할 수 있다.”고 규정하고 있다. 25일 열린 ‘사회서비스원법 개정안 발의 기자회견’은 위 조항의 “설립ㆍ운영할 수 있다”를 “설립ㆍ운영하여야 한다”로 바꾸겠다는 것이다. 민주당의 당론이기도 한 것으로 보인다. 그런데 이제 와 개정을 이야기할 것이 아니라, 입법 당시(2021년 9월 24일 제정) 처음부터 사회서비스원법을 그렇게 통과시켰으면 되는 일 아니었나? 당시 입법 과정에서 문재인 정부는 민간 부문 돌봄자본가들의 압력에 굴복해 자신들의 사회서비스공단 설립 공약을 크게 후퇴시켰다. 지자체의 사회서비스원 설치 의무 규정을 삭제했을 뿐 아니라, 일례로 국공립 어린이집을 사회서비스원이 우선 위수탁 운영해야 한다는 규정도 삭제했다. 이 때문에 서사원이 담당했던 돌봄 영역은 극히 협소했다. 서울시 국공립어린이집 1,838개소 중 서사원이 운영하던 어린이집은 고작 6개소, 0.3%에 불과했을 정도다. 이런 엉터리 법안을 만든 민주당 정치세력이 이제 와 사회서비스원 설치를 의무화하겠다는 소리를 늘어놓는 것만큼 뻔뻔한 일이 또 있을까? 설령 민주당이 사회서비스법 개정안을 통과시킨다 하자. 그러나 서사원에 소속된 노동자들이 민간 부문 돌봄노동자들보다 상대적으로 나은 처우를 받는다는 현실은 단시간에 바뀌기 어려울 것이다. (초기업별 단체교섭 제도, 초기업 단위 단체협약 효력 확장 제도가 없는 한국의 후진적 노동법에서는 불가피하기까지 하다.) 국힘 등의 자본가 정치세력은 이를 빌미로 돌봄노동자 갈라치기 공격을 재개할 것이다. 이때 민주당은 ‘서사원을 살려야 하니 우선 노동조건 개악을 받아들여라’고 요구할 가능성이 높다. 민주당에 기대는 방식으로 서사원을 재건해서는 이런 부당한 요구에 맞서기란 불가능하다. 부르주아 민주주의자 김대중은 ‘민주주의에는 공것(공짜)이 없다’는 표현을 즐겨 썼다. 피 흘리지 않고 얻은 민주주의는 모래성과 같다는 뜻이다. 노동자들의 성취물 또한 그러하다. 노동자들의 처지를 개선하는 모든 제도적 성과는 시혜적 방식으로 주어졌을 때가 아니라 대중의 자주적 투쟁으로 쟁취했을 때만 확고부동할 수 있다. 더구나 노동자 대중의 자기조직화를 중심으로 두는 방식이 시간이 더 걸린다고 할 수도 없는데, 오늘날 쇠퇴하는 자본주의에서 강력한 노동자투쟁 없이는 자본가들은 세상이 망하건 말건 가진 것을 내놓지 않기 때문이다. 모든 자본가 정치세력으로부터 독립된 자주적 노동자운동을 건설해야 한다는 것은 타협할 수 없는 원칙이다. 서사원 폐쇄에 맞선 향후 투쟁 계획에서 민주당과 함께하는 정책 대응이 중심에 있어서는 안 된다. 우선되어야 할 것은 열악한 노동조건으로 고통받는 민간 부문 미조직 돌봄노동자들을 노동조합으로 조직하고 이들을 노동자운동의 새로운 주체로 세워내는 일이다. 멈추지 않는 투쟁을 결의한 서사원 해고 노동자들의 투쟁에 적극적으로 연대하면서, 이들을 중심으로 돌봄 부문 미조직노동자 조직사업에 더 많은 역량을 투입해야 한다. 제대로 된 사회서비스원의 재건은 돌봄노동자들의 대중적 투쟁을 새롭게 조직할 때만 가능하다. 더 나아가 돌봄노동자들의 조직된 힘은, 공적 재원으로 사업을 운영하면서도 사적 전횡을 휘두르는 돌봄자본가를 몰아내고 돌봄노동자들이 민주적 방식으로 전체 사회서비스 부문을 운영·통제하는 원동력이 될 것이다. 노동조합 바깥의 돌봄노동자를 더욱 광범위하고 전면적으로 조직하는 것, 그리고 이들이 노동자투쟁의 새로운 주체로 우뚝 서게 하는 것, 이것이 현재 제일 중요한 과제다.2024-07-11 | 조회 1,0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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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난은 재난이고, 돈벌이는 돈벌이다? 기후재난 시대에 유전 개발이 웬 말!사진: 연합뉴스 이게 지금 대통령이 나설 일이야? 이달 초 윤석열은 취임 이후 최초로 진행한 ‘국정브리핑’에서 “경북 포항 영일만 앞바다에 막대한 양의 석유와 가스가 매장돼 있을 가능성이 높다”고 발표했다. 윤석열은 “세계 최고 수준의 심해기술평가 전문기업에 물리탐사 심층 분석”을 맡긴 결과, 추정 매장량이 최대 140억 배럴에 해당한다고 덧붙였다. 채상병 수사 직권남용, 김건희 씨 명품 가방 수수 의혹 등으로 궁지에 몰린 윤석열은 임기 완주를 위해 손에 잡히는 대로 아무 얘기나 임기응변식으로 던져대는 중이다. 아무런 준비가 돼 있지 않은 노동법원을 노동약자 보호 운운하면서 임기 내 설치하겠다고 떠든 것이 단적인 예다. 언론 보도에 따르면 윤석열이 동해 유전 가능성을 직접 발표한다는 사실을 소관 부서인 산업자원통상부 대변인실조차 발표 1시간 전에 알았다고 한다. 윤석열은 답보 상태에 머물러 있는 정권 지지율을 반전시키기 위해 확실치도 않은 유전 개발 가능성을 직접 발표하는 뻔뻔함을 보인 것이다. 물론 윤석열의 장밋빛 전망이 그대로 실현된다는 보장은 전혀 없다. 유전 개발은 ‘지표 지질조사 → 탄성파 탐사 → 탐사 시추 → 경제성 평가 → 원유 생산’의 5단계로 이뤄진다고 한다. 이제 2단계 물리탐사가 끝났을 뿐이고, 실제 매장량이 얼마일지, 경제성이 있을지는 앞으로 확인해야 한다. 물리탐사 단계의 추정 자원량과 시추 이후 실제 추정량을 엄격히 구분하는 것이 자원 개발 사업의 통례인데도, 윤석열과 그 똘마니 산업부는 “석유·가스 최대 매장 가능성인 140억 배럴은 현 가치로는 삼성전자 총 시가총액의 5배 수준”이라며 기대를 부풀렸다. 긁지도 않은 즉석복권을 치켜들며 당첨금 운운하는 꼴이다. 근본적 질문 : 경제성이 있으면 유전 개발은 타당한가? 윤석열이 “세계 최고 수준의 심해기술평가 전문기업”이라고 평가한 액트지오가 과연 실제 전문성이 있는지, 시추공 하나당 1천억 원이 소요되는 막대한 예산 투입에 수상한 흔적은 없는지 따지고 들어가는 것은 물론 정당하다. 그러나 그에 앞서 판단해야 하는 근본적인 문제가 있다. 설령 윤석열의 장밋빛 전망대로 유전 개발이 막대한 경제적 효과를 불러온다 치더라도, 기후재난이 현실화한 지금 유전 개발을 하는 것이 정당한가 하는 질문이다. 정부 발표에 따르면, 시추 작업을 통해 실제로 매장이 확인되면 경제성 평가를 실시하고, 경제성이 확인되면 2027~2028년 채굴을 위한 공사를 진행해 2035년에 상업 생산을 시작한다고 한다. 2035년이면 어떤 해인가. 2021년 탄소중립위원회는 2030년 NDC(국가 온실가스 감축 목표, Nationally Determined Contribution)로 2018년 대비 온실가스 40.0% 감축을 결정한 바 있다. 이를 통해 2050년 탄소중립에 도달한다는 것이 정부 계획이다. 자본가 정부의 이 계획이 기후재난을 막기에는 턱없이 부족한 수준이란 것은 잠깐 묻어두자. 또한 2030년에도 재생에너지 발전 비중을 겨우 21.6% 수준에 맞추겠다는 한국 정부 계획을 두고 국제 자본가계급조차 비웃고 규탄한다는 사실 역시 잠깐 내버려두자. 온실가스의 실제 감축 여부가 이윤욕에 사로잡힌 자본의 선의(물론 존재하지 않는)에 온전히 맡겨져 있다는 사실을 고려하면, NDC 달성과 탄소중립 실현을 위해선 최소한 추가적 온실가스 배출은 없어야 한다. 그런데 지금 천문학적인 예산을 들여 화석연료 개발에 나서겠다는 것이 가당키나 한 일인가. 2022년 전 세계에서 원유 44억 톤을 생산·사용하면서 71억 톤의 온실가스가 배출됐다고 한다. 윤석열의 장밋빛 전망대로 동해 유전에서 140억 배럴(원유 약 19억 톤)이 모두 채굴된다면, 이때 배출되는 전체 온실가스는 30억 톤 수준이 된다. 2022년 한국이 배출한 온실가스 총배출량 잠정치 6억 5천만 톤의 4.6배다. 6월 중순부터 시작된 때 이른 폭염은 우리가 살게 될 미래를 압축적으로 보여준다. 일상화되는 폭염, 집중호우, 가뭄, 거대 산불 등에서 희생되는 사람들은 언제나 가장 가난한 노동자 민중일 것이다. 눈앞의 현실이 된 기후재난에 대처하려면(솔직히 이미 늦어버린 것 같다) 있는 유전도 폐쇄해야 하는 마당이다. 그런데도 자본가 정부는 유전을 새로 개발해 온실가스를 지금보다 더 배출하자는 정신 나간 소리를 지껄인다. 기후재난이 현실화한 지금, 유전 개발 자체가 정당한지 묻는 근본적 질문이 힘을 얻지 못하는 상황에는 자본가 정부의 국가 경제발전 이데올로기와 완전히 절연하고 있지 못하는 한국 시민사회의 문제도 있다. 윤석열의 동해 유전 발표 직후 다음날인 6월 4일, 이헌석 에너지정의행동 정책위원은 MBC 라디오 <김종배의 시선집중>에서 이렇게 발언했다. “석유가 있느냐가 중요한 게 아니라, 충분히 비용을 투자하고도 그만큼의 경제적 가치가 나오느냐가 중요하다.”, “배보다 배꼽이 더 클 수 있다." 심지어 이헌석은 “중요한 것은 그 안에 석유가 있다는 게 아니라 충분히 비용을 투자했을 때 그만큼의 경제성이 나오느냐는 것”, “제일 좋은 것은 모든 기름이 한 덩어리로 예쁘게 모여 있으면 상관이 없는데 예를 들면 여러 덩어리로 나뉘어 있으면 나중에 시추할 때 또 여러 군데를 파야 할 것”이라는 말까지 늘어놓았다. 이것이 명색 “자본에 짓밟히는 생명을 지키는 운동”(에너지정의행동 홈페이지)을 하겠다는 단체의 정책위원이 방송에서 떠들 소리인가? 경제성이 흘러넘치더라도 기후재난 앞에서 즉각 유전 개발을 중단하라고 해야하지 않겠는가? 태양광·풍력 재생에너지 발전 비중이 G20 평균(2023년 기준 14.91%)은커녕 세계 평균(2023년 기준 13.3%)의 절반에도 미치지 못하는 한국(2023년 기준 5.34%)에서, 온실가스를 지금보다 더 배출하겠다는 범죄적 시도를 어떻게든 막아내자고 호소해야 정당하지 않은가? 이헌석 정책위원의 발언은 심지어 자신이 속한 에너지정의행동이 6월 3일 발표한 입장과도 배치되는 것으로, ‘기후재난 시대 유전 개발이 옳은가’라는 근본적 질문을 보이지 않는 곳으로 치우는 처사다. 한국 태양광·풍력 재생에너지 비중은 G20은커녕 세계 평균의 절반에도 미치지 못한다 국가주의 이데올로기 극복 없이는 기후재난 대응도, 노동자운동의 전진도 불가능하다 그런데 자본가 정부의 국가 경제발전, 국익 이데올로기에 휘둘리는 것이 단지 기후정의운동 일부 인사에 국한된 경향이라고 볼 수 없다. 레닌은 <제국주의, 자본주의의 최고 단계>에서 “몇몇 해외 나라들과 식민지의 노동을 착취하는 것에 의해서 생활하는 나라”, 즉 제국주의 국가에는 “기생성이라는 각인”이 새겨진다고 지적한 바 있다. 논란의 여지가 있겠지만, 이런 면에서 보자면 한국은 제국주의 국가의 기생성을 점점 더 선명하게 드러낸다. 생산적이거나 이 사회에 꼭 필요한 일이지만, 어렵고 힘들며 위험한 일은 글로벌 사우스에서 이주한 노동자들의 몫이 된다. 그래서 리튬전지 제조 공장에서 불법 파견으로 일하던 이주노동자 수십 명이 사망하는 참변이 벌어지고, 이주 돌봄노동자를 최저임금도 주지 않은 채 대거 도입하겠다는 정책이 추진된다. 그러나 다른 한편 한국의 상층 노동자계급은 ‘내 집 마련’을 넘어 주식, 코인 금융투기에 골몰하며, 조직 노동운동은 자신의 협소한 조합주의적 이익 대신 노동자계급 전체의 이익을 위해 자본 이윤에 타격을 주는 진정한 노동자투쟁을 조직하는 것에 무관심하다. 백여 년 전의 식민지 경험, 그리고 최빈국에서 선진국으로 진입한 유례없는 경제발전의 경험이 기묘하게 결합한 탓에 한국의 국가주의 이데올로기는 도처(到處)에서 그 강력함을 뽐낸다. 그러나 전 지구가 기후재난으로 스러지는데 한국만 안전할 방법이 있을 리 없다. (과학적 사실을 말하자면 기후재난에서 한반도는 특히나 고통스러운 지역이다.) 또한 자본 이윤율이 장기침체에 빠진 시대, 이로써 제국주의 패권 경쟁이 전면화된 시대에 한국 혼자만 자본의 야만적 공격에서 자유로울 수 없다. (이 역시 엄밀히 말하자면 한반도는 제국주의 전쟁의 발발 가능성이 가장 높은 지역의 하나다.) 한국의 노동자운동은 협소한 국가 경제발전 이데올로기 대신 노동자 국제주의의 이념으로 무장하고 세계 노동자계급 앞에 자기 의무를 다해야 한다. 우선 당장 지구의 기후재난을 가속(加速)할 동해 유전 개발을 중단할 것을 촉구하자. 한국의 재생에너지 발전 비중을 최소한 국제 평균 수준으로 높이라고 요구하자. 돈벌이를 위해 탄소를 다량 배출하는 산업자본을 이제 사회가 운영·통제하자고 외치자. 최저임금도 주지 않겠다는 정부의 반노동 이주정책을 분쇄하고, 진정한 노동자 국제연대의 모범을 만들기 위해 분투하자!2024-06-28 | 조회 1,08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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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K 최태원 재판, 노동자 민중은 어떻게 보아야 하는가사진: 연합뉴스 서울고법, “SK는 노태우 정권의 비자금으로 성장했다” 5월 30일 서울고등법원이 최태원과 노소영 이혼소송 항소심에서 "원고가 피고에게 위자료 20억원 및 재산분할로 1조 3,808억원을 현금으로 지급하라"고 판결했다. 최태원이 보유한 SK 주식 35%를 노소영 몫으로 인정한 이번 소송의 핵심 쟁점은 최태원의 SK 주식이 분할 대상 재산인지 여부였다. 최태원은 SK 지분이 최종현 전 회장에게 물려받은 재산1)이기에 분할 대상이 아니라고 주장했으나, 2심 재판부는 노태우 정권의 비자금 300억원이 최태원의 아버지, 최종현 전 회장에게 흘러들어갔다고 판단했다.2) 1) 소위 ‘특유재산’. 특유재산은 부부 일방이 혼인 전부터 가진 고유재산과 혼인 중 자기명의로 취득한 재산으로, 재산분할 대상이 되지 않는다. 2) "SK 주식은 혼인 기간 취득된 것이고, 상장이나 이에 따른 주식의 형성 등에 관해선 1991년경 노태우 대통령으로부터 원고 부친에게 상당한 자금이 유입됐다고 판단한다. 이외에도 무형적 기여가 있었다고 판단한다" 이 돈으로 1991년 선경그룹이 태평양증권(현 SK증권)을 인수하는 등, 노태우 정권의 비자금으로 SK가 성장했다고 규정한 것이다.3) 또한, 재판부는 SK의 한국이동통신(현 SKT) 인수를 선경그룹이 노태우 정권과 유착한 결과로 규정했다. 노태우 정부가 공중전기통신사업법(현 전기통신사업법)을 개정해 통신설비제조사를 보유한 삼성·현대·대우·LG의 통신서비스 진출을 제한했고, 그 결과 SK가 오늘날의 SK텔레콤을 세울 수 있었다는 것이다. 3) “선경그룹이 태평양 증권을 전격 인수하는 방식으로 증권업에 진출하기로 한 사실을 놓고 ‘쉽사리 수긍이 가지 않는다’는 것이 재계의 일반적인 반응이다. 이같은 반응이 주종을 이루는 것은 … 최종현 선경그룹 회장이 개인 돈으로 전체인수자금 571억원을 어떻게 마련한다는 것인지가 불분명하기 때문이다” (1991년 12월 11일 <동아일보>) SK 역시 그룹 차원의 대응에 나섰다. 재판부의 숫자계산이 잘못되었다며 문제를 제기한 것인데, 요지는 액면분할을 감안하지 않아 최종현 당시의 주가 상승분이 실제의 1/10로 과소 계상되었다는 것이고, 최태원 취임 이후 주가상승분이 10배로 과대 계상되었다는 것이다. 말하자면, ‘아버지의 경영능력에 비해 자신의 능력을 과대평가해, 노소영과의 분할 대상 재산을 지나치게 많이 잡았다’며 법원에 항의한 것으로, 경영권을 지키기 위한 최태원의 행보는 매우 희극적이다. “재판부 판단대로라면 최 회장은 자수성가한 재벌 2세라는 형용모순에 빠지게 된다” - 최태원의 법률대리인이 ‘최태원은 자수성가하지 않았다’고 강조하는 형국이다. 고등법원은 이런 입장을 수용하지 않았다. “최 선대회장이 지극히 모험적이고 위험한 경영활동을 할 수 있던 배경은 사돈 관계였던 노 관장의 부친이 대통령이었기 때문”, "그룹 경영의 보호막 내지 방패막이로 인식해 결과적으로 성공한 경영활동과 성과를 이뤄냈다" - 6월 18일, 서울고등법원이 재차 밝힌 입장이다. 대기업집단 그 자체가 범죄자산이라면 몰수해야 한다 제법 ‘사회적 기업’ 흉내를 내온 SK그룹의 본질은 실상 ‘범죄자산’에 지나지 않는다. 이렇듯 이번 재판은 독재정권에 기생해 착취와 수탈로 자본을 축적해온 한국 자본의 추악한 역사를 드러낸다는 점에서, 지배계급 내부의 파렴치한 이전투구를 여실히 보여준다는 점에서, 또한 자본주의 사법체계의 본질과 한계를 드러낸다는 점에서 일종의 ‘역사성’까지 띤다. 노동자 민중은 이번 판결의 본질과 한계를 잘 안다. 사법부 판단대로 노태우 정권의 비자금이 흘러들어간 결과로 오늘의 SK그룹이 만들어졌다면, 왜 그 ‘기여 인정’의 수혜자가 노소영이 되어야 하는가? 노태우의 비자금은 노동자 민중의 피와 땀을 강탈해 쌓은 범죄자산이다. 그 범죄자산이 정권과의 연줄을 가진 자본가에게 흘러가 오늘날 굴지의 기간산업 사업체를 여럿 거느린 재계서열 2위의 대자본을 형성했다면, 당장 몰수되어야 하지 않는가? 오늘날 재벌집단은 짐짓 자신을 권력에 부당하게 상납을 강요당한 피해자로 묘사한다. 사실은 완전히 다르다. 전두환·노태우 정권이 쌓은 비자금은, 군사정권과 끈끈한 동맹을 위해 대자본이 정권에 건넨 노동자 민중의 피와 땀이었다. 이번 판결이 SK그룹의 성장사를 드러내듯 말이다. 노태우 정권과 자본은 1987년 6월 항쟁과 789 노동자대투쟁 이후 분출하는 노동자 민중의 투쟁을 막고자 혹독한 탄압을 퍼부었다. 1989년 현대중공업 해고자협의회에 대한 구사대 테러, 연이어 벌어진 현대중공업 노동자 식칼테러, 1989년 노동법 개정안 거부권 행사, 1989년 전교조 불법화, 1991년 한진중공업 박창수 위원장 고문치사, 1991년 강기훈 유서 대필 조작 등, 노동자 민중 탄압에 있어 신군부와 자본은 한마음 한뜻이었을 뿐이다. 이렇듯 이번 재판에 대한 노동자 민중의 결론은 자명하다. 범죄로 만들어진 대자본, SK그룹을 몰수하고 노동자 민중이 통제해야 한다. 자본가들의 지배에는 그 어떤 정당성도 없다 - 기간산업을 국유화하고 노동자 민중이 통제하자 이번 판결이 없더라도, 심지어 최태원에게 유리하게 나왔더라도 재벌을 국유화하고 노동자 민중이 통제해야 할 이유는 차고 넘친다. 한국 자본주의 발전사는 자본가들의 지배에 그 어떤 정당성도 없음을 적나라하게 드러낸다. 대표적으로 적산불하4), 즉 일본인들이 남기고 떠난 생산수단과 자산에 대한 매각 조치로 이는 한국 자본주의의 원형을 형성하는 과정이었다. 1949년 12월, 이승만 정부는 《귀속재산처리법》을 제정해 적산 매각에 나섰다. 이듬해 발발한 한국전쟁으로, 적산불하는 1954년에 개시되어 1958년 마무리된다. 총 263,744건의 적산이 매각되었고, 해당 사업체는 우수한 생산능력을 가진 대규모 기업이 대부분이었다. 이승만 정권의 적산 매각가는 애초 책정 가격에 비해 평균 62% 수준으로 그 자체로 헐값이었지만, 이승만 정부는 한국전쟁 이후 물가상승률이 매년 수십 퍼센트에 달하는 상황에서 ‘15년 분할납부’라는 엄청난 특혜까지 자본가들에게 부여했다. 심지어 이 자금 마련조차 은행 특혜대출로 이루어졌다. 자본가들은 사실상 무상으로 당시 한국경제 1/3에서 1/2을 차지하는 기간산업을 인수한 것이다. 4) 敵産拂下, 적이 남기고 한 재산을 매각함 일제강점기 노동자 민중의 피땀으로 만들어진 산업기반이 정권과 연줄을 가진 한줌의 친일이력 자본가들에게 떨어졌고, 이후 이들은 오늘날 한국사회를 쥐락펴락하는 지배계급으로 성장했다. 이렇게 국가적 특혜와 함께 일군의 산업자본가 집단이 형성되었고 이들은 자손만대에 이를 이어가고자 한국사회 전체를 수탈하고 있다. 박근혜 퇴진투쟁을 촉발한 ‘최순실 사태’의 본질은 삼성그룹 3세 승계를 위한 국민연금 동원이었음을 상기해보 자. 노동자 민중의 시각에서 보건, 저들 스스로 말하는 '공정한 시장경제'의 맥락에서 보건, 한국 지배계급은 지배체제를 유지할 최소한의 정당성조차 가지고 있지 않음은 자명하다. 5월 30일 재판 이후 SK그룹 구조조정 본격화 소식이 들려온다. 최태원은 대법원 확정 판결에 대비해 ‘실탄’을 마련해야 하고, 어떤 잘못도 없는 노동자들은 최태원의 경영권 유지를 위해 고통을 뒤집어써야 한다. 이 어처구니 없는 착취체제가 아무렇지도 않게 유지되고 있다. 문제는 계급투쟁이다. 자본주의의 위기가 심화하는 지금, 더 많은 분배를 넘어 생산수단의 사회화를 지향하는 정치투쟁을 발전시켜야 한다. 그 시작은, 지배계급의 존재에 그 어떤 정당성도 없음을 직시하는 것이다.2024-06-25 | 조회 1,19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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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고] ‘노동약자보호법’ 아닌 ‘사업주 보호법’ 만드는 윤석열 정부=5월 14일 진행된 '함께 보듬는 따뜻한 노동 현장' 민생토론회 KTV국민방송 화면 갈무리 윤석열 정부, 노동약자를 보호하겠다? 지난 5월 14일, 윤석열 대통령은 ‘함께 보듬는 따뜻한 노동 현장’이라는 주제의 민생토론회에서 “‘노동약자 지원과 보호를 위한 법률’(약칭 노동약자보호법)을 제정해 노동약자를 국가가 더 적극적으로 책임지고 보호하겠다”고 말했다. 해당 법률안에는 △질병, 상해, 실업을 겪었을 때 경제적으로 도움을 받을 수 있는 ‘공제회’ 설치 △노무제공자와 사업주 사이의 분쟁조정협의회 설치 △표준계약서 제정 △이를 위한 정부 재정지원 사업 등에 관한 법적 근거 등이 담길 예정이다. 대통령의 말 끝나기가 무섭게 이틀 뒤 이정식 고용노동부 장관은 민생토론회 사후브리핑에서 “노동약자보호법 제정안이 올해 정기국회에서 논의될 수 있도록 준비하겠다”고 말했다. 정부가 해당 법안을 적극적으로 추진하려는 모양새다. 기존에 일하는 사람들을 포괄적으로 보호할 수 있는 근로기준법이나 노조법 등이 있음에도, 정부가 이러한 법률과는 별개의 시혜적 법안을 냈다는 점은 생각해 볼 만한 지점이다. 노동약자보호법 속 용어가 노동조합이 아닌 '공제회', 고용노동부/지방노동위원회가 아닌 '분쟁조정협의회', 근로계약서가 아닌 '표준계약서'인 것은 애초에 노동약자는 노동자가 아니라는 시각에서 기인한다. ‘노동하는 약자’라면서 마치 사업주와 동등한 계약자인 양 취급한다. =고용노동부에서 6월 9일 발표한 "노동약자를 보호하고 지원하기 위해 최선을 다하겠습니다" 보도자료 내용 갈무리 ‘노동약자보호법’은 노동약자와 노동자를 갈라치는 법 사실상 정부가 말하는 노동약자, 즉 미조직 노동자들은 작은사업장/저임금/불안정 노동자들일 것이다. 이 노동자들이 현장에서 겪고 있는 문제는 최저임금 미지급, 임금체불, 갑질, 장시간 노동, 위험한 노동, 고용불안 등이다. 그런데 이를 단순히 공제회 설치를 지원 받거나, 분쟁조정위원회의 도움을 받거나, 표준계약서를 작성한다고 실질적으로 해결할 수 있을까. 정부는 ‘노동자의 권리와 사용자의 책임’보다는 ‘정부의 지원과 도움’이란 소극적이고 시혜적인 방식으로 노동약자를 보호하겠다고 나선다. 그러나 법적 강제력이 없는 방식으로는 일터가 바뀔 수 없다. 현 시스템은 ‘노동약자’를 통해 이윤을 내야 작동하기 때문이다. 일터에서 노동자의 권리와 사용자의 책임을 명확히 강제하지 않으면 노동자들의 권리는 계속 침해된다. 이 법이 제시하는 권리는 기존 근로기준법이 보장하는 노동자의 권리에 미치지 못할뿐더러, 지속되는 권리침해를 정부의 지원으로 메꾸는 것에는 한계가 분명하다. 밑 빠진 독에 물을 붓는 셈이다. 애초 이정식 고용노동부 장관은 프리랜서·배달 노동자에게 근로기준법을 적용하는 것에 대해 “(노-사에게) 굉장히 복잡한 권리·의무가 생기고 (사용자를) 규제하기 위한 처벌 조항이 들어간다”며 부정적인 입장을 표했다. ‘복잡한 의무와 권리’ 없이 노동약자를 보호할 수 있을까? 그의 말은 사실상 노동약자를 방임하겠다는 뜻으로 들린다. 이러한 정부의 문제적인 정책은 기존 노무현, 문재인 정부 시절 추진되었었던 ‘비정규직 보호법’, ‘플랫폼 종사자 보호법’과도 맥을 같이한다. 노무현 정부가 추진한 '비정규직 보호법'은 IMF 이후 급증한 비정규직 노동자를 '보호'한다는 명목으로 제정됐으나, 실제로는 비정규직 노동자를 2년마다 상시적 고용불안에 빠뜨렸고, '비정규직'을 2등 노동으로 고착화시켰다. 문재인 정부 시기 추진했던 '플랫폼 종사자 보호법'도 배달라이더 등의 플랫폼 노동자를 '노동자'로 인정하는 대신, '플랫폼 종사자'라는 제3의 지위를 부여해 기존 노동법에 못 미치는 권리를 보장하자는 법이었다. 윤석열 정부가 말하는 '노동약자보호법' 또한 일하는 모든 노동자에게 근로기준법과 같은 기존 노동법을 확대/보강 적용해 기본적 권리를 보장하기보다, 별도의 법을 만들어 오히려 취약한 노동을 고착화시키는 방식이다. ‘노동약자’ 보호에 필요한 것은 노동법 확대적용과 노조법 2,3조 개정이다 노동약자보호법은 언뜻 취약한 노동자들을 보호해주려는 좋은 법안처럼 보인다. 그러나 이 법이 시행된다면 노동자들의 권리구제, 권리쟁취 방식은 파편화될 것이고, 취약한 노동자들은 더 취약해질 것이다. 정부가 ‘노동자’라는 이름을 지우기 위해서, 노동자들이 노조를 만들고 단결할 권리를 제한하기 위해서, 노조 혐오의 기조를 깔고 법제정을 추진하는 것은 아닌지 의문이다. 현 정부가 내놓은 노동약자보호법은 실질적으로 정부가 책임지고 노동약자를 보호하겠다는 것이 아니라, 정부가 책임지고 사업주들을 보호하겠다는 법안이다. 진정 노동약자를 보호하고 싶다면 무엇보다도 근로기준법을 비롯한 기존 노동법을 작은사업장, 플랫폼, 특수고용 등 일하는 모든 노동자들에게 확대해 강력하게 적용해야 한다. 또한 비정규직의 사용기간을 2년으로 제한했지만, 결과적으로 비정규직 노동자를 2년에 한 번씩 해고되도록 만들었던 '비정규직 보호법'의 사례에서 보듯, 일터에서 노동자가 사용자에 맞서 투쟁할 권리가 없이는 정부의 어떤 시혜적 지원정책도 노동자를 보호할 수 없다. 노동자와 사용자 간의 불평등한 관계는 어떤 보호법도 결국 사용자의 이익을 위해 작동하도록 만들기 때문이다. 노동약자가 스스로를 조직하고 투쟁할 권리를 보장해야만, 진정으로 노동약자를 보호할 수 있다. 따라서 모든 노동자에게 노동법 전면적용을 통해 권리를 명문화하는 것에 더해, 원청사용자의 범위를 확대하고 투쟁할 권리를 전면적으로 보장하는 노조법 2,3조 개정이 뒷받침되어야만 노동약자의 권리가 현장에서 진정 보호될 수 있을 것이다.2024-06-11 | 조회 78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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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거 투쟁의 경험을 반면교사로 2024년 울산지역 민주노조에 집중되는 타임오프 탄압을 돌파하자!윤석열 정부 출범 직후 오랜 침체를 거쳐온 노동자 운동은 기지개를 켜며 일어설 기회를 맞았다. 그러나 예상과 달리 대우조선 하청노동자와 화물연대 파업, 양회동 열사의 분신에 이은 건설노동자 투쟁은 뼈아픈 패배로 귀결됐다. 노동자 파업을 연이어 진압한 윤석열 정부와 자본은 그 여세를 몰아 다음 공세를 준비했다. 2024년 상반기 윤석열 정부는 다시 노동시장 이중구조 개선대책을 마련하겠다면서, 이른바 ‘귀족노조’에 대한 혐오 조장과 함께 △정규직 임금체계 개편 및 고용의 유연화 △주 52시간 내 1일 연장노동 한도를 깨는 노동시간 확대 △점거파업을 금지하는 파업권 무력화 △회계공시 강요와 타임오프 전임자 축소를 내세우며 공격을 예고했다. 그간 조직된 노동자 운동을 향한 공격은, 대부분 윤석열 정부의 의도대로 추진되지 못했다. 국회 여소야대 구도와 30% 초반대 낮은 지지율로 추동력을 가질 수 없었기 때문이다. 큰 그림의 노동법 개악에 실패한 윤석열 정부가 뽑아 든 카드는 역대 보수정부와 마찬가지로 시행령 개악을 통한 공격이었다. 그것이 바로 회계공시 강제와 타임오프 전임자 축소 탄압이다. 5월 29일 《타임오프 폐지! 민주노조 사수! 윤석열 퇴진 결의대회》 타임오프 탄압을 위한 사전 정지작업 타임오프 탄압의 시작은 공무원과 교직원 노동조합에 대한 타임오프 적용이었다. 윤석열 정부는 2022년 5월 30일 공무원과 교직원 노동조합에 타임오프를 적용하는 노조법 시행령 개정안을 통과시켰다. 이 시행령은 전임자의 근무면제시간과 사용 인원, 보수(임금) 등 노동조합 활동과 개인정보 공개를 강제하는 독소조항을 포함했다. 정부는 ‘전임자의 근무면제시간, 사용 인원, 보수 등’을 심의하는 ‘공무원·교원 근무시간 면제심의위원회’ 구성과 운영을 경제사회노동위원회(경사노위)에서 결정하게 했다. 공무원과 교직원에 대한 타임오프 적용을 마무리하려면, 한국노총이 경사노위에 묶여있어야 했다. 그러나 상황은 정부 의도와 다르게 흘러갔다. 2023년 5월 30일 고용노동부는 노동조합이 있는 510개 대규모 사업장을 대상으로 ‘기업의 근로시간면제제도 운영현황 실태조사’를 실시했는데, 이것은 말로라도 타임오프를 반대해 온 한국노총의 기분을 상하게 했다. 이에 더해 6월 초 윤석열 정부가 고공농성 중인 한국노총 금속연맹 사무처장을 폭력진압하고 구속하면서 한국노총은 경사노위에서 탈퇴했다. 한국노총이 경사노위를 이탈한 후, 윤석열 정부는 2023년 9월에 노동조합의 자주성을 훼손하는 회계공시 노조법 시행령 개정안을 일사천리로 의결했다. 또한 고용노동부는 9월부터 ‘근로시간 면제제도 운영현황 실태조사’를 근거로 사업장 200곳을 선별해 표적 근로감독을 시작했다. 그리고 11월부터 민주노총 사업장을 상대로 본격적인 타임오프 시정명령을 내렸다. 이에 화답한 자본가들은 노동조합 전임자에게 업무복귀 명령을 내리고 임금 지급을 중단하며 고용노동부와 협공했다. 이런 상황에서 한국노총은 회계공시를 수용한다는 뜻을 밝혔고, 윤석열의 경사노위 복귀 요청에 대해 한국노총의 노동자 대표성 인정을 약속받고 11월 13일 경사노위로 복귀했다. 그리고 공무원과 교직원 노동조합에 타임오프를 적용하는 노조법 시행령은 11월 28일 국무회의 의결에 이어 12월 시행에 들어갔다. 2024년 3월 고용노동부는 타임오프 탄압 대상으로 노동조합이 있는 63개 대규모 사업장을 최종 선별했다. 대부분 민주노총 산하 노동조합을 표적으로 삼았다. 윤석열 정부는 민주노총 산하 노동조합에 대한 타임오프 공세 수위를 높이고 있는데, 이 공세는 임금·단체교섭 본격화 시기에 맞추어져 노동조합 전임자와 간부들의 발목을 잡고 있다. 타임오프 시정명령이 집중되는 울산지역 지난 2009년 12월 30일 이명박 정부가 집권 여당(한나라당) 날치기로 타임오프 악법을 통과시킨 후, 정부와 자본은 2년 동안 3,000여 개 사업장에서 노조 전임자 축소로 노조 활동을 제한하기 위한 전면 공세를 펼쳤다. 전국적으로 민주노조가 있는 사업장에서 타임오프를 둘러싼 갈등과 대립이 있었다. 금속노조 구미지부 KEC지회는 민주노조를 말살하려는 타임오프 탄압에 맞서 투쟁한 대표적인 사례로 남아 있다. 이 시기 큰 불협화음 없이 조용하게 넘어간 곳은 울산이다. 현대자동차와 부품사 노동조합들이 노사 협의로 타임오프 전임차 축소를 둘러싼 대립을 비켜갔다고 할 수 있다. 그러나 윤석열 정부의 타임오프 탄압은 이제 울산지역을 표적으로 삼고 있다. 울산지역 민주노총 산하 노동조합에 타임오프 시정명령을 집중하는 경향은 뚜렷하며, 임단협 시기 노사 간 긴장감은 높아지고 있다. 고용노동부의 타임오프 시정명령으로 대립하는 울산지역 사업장은 6곳이다. 금속노조 현대중공업지부, 금속노조 울산지부 현대모비스울산지회, 울산현대모비스지회, 현대제철지회, 화섬식품노조 울산지부 KCC지회, LX하우시스지회다. 금속노조 울산지부 현대글로비스울산지회는 6월 근로감독이 시행될 경우, 7월 중 시정명령이 예상된다. 타임오프 탄압을 받는 노동조합들에는 공통의 특징이 있는데, 우리는 이로부터 윤석열 정부와 자본의 의도가 무엇인지를 충분히 예측할 수 있다. 첫째, 울산지역 노동자 운동 중심에 있는 현대자동차의 공급망과 긴밀하게 연결되어 있다. 둘째, 현대중공업지부를 제외하면 대부분 민주노조를 건설한 지 10년을 넘지 않은 젊고 발전 가능성 있는 노동조합들이다. 셋째, 대부분 다른 지역 계열사 민주노조와 연결된 1,000명 전후의 대규모 노동조합들이다. 넷째, 이런 이유로 노동조합들은 아직 충분한 경험을 쌓고 있지 않지만, 소속 지역지부 내에서의 활동력과 동원력, 파업의 파급력이 있어 상급단체와 울산지역 노동자 운동을 떠받치는 중요한 사업장들이다. 울산지역 노동자 운동에 매우 중요한 사업장들인 만큼, 자본에는 눈엣가시다. 자본의 영업사원을 자처하는 윤석열에게도 마찬가지일 것이다. 무능과 부패로 얼룩진 윤석열, 김건희 사건과 채상병 사건으로 위기에 처한 윤석열은 타임오프 탄압을 성과로 포장하고 싶을 것이다. 5월 29일 《타임오프 폐지! 민주노조 사수! 윤석열 퇴진 기자회견》 윤석열 정부와 자본이 노리는 것 타임오프 시정명령이 울산지역에 집중되는 이유는 모든 노동조합이 악법에 밀려 굴복하지 않고 저지선을 치고 있기 때문이다. 타임오프로 탄압받는 노동조합의 네 가지 공통점에 비춰볼 때, 울산지역 노동자 운동은 타임오프 탄압에 맞서 강력한 저지선을 칠 수밖에 없다. 이번 타임오프 탄압을 저지하지 못하면 두 가지 문제가 연이어 발생할 가능성이 있기 때문이다. 우선, 대규모 노동조합들의 조직력과 투쟁력, 정세 대응력이 무력화되며 울산지역 노동자 운동의 근간이 흔들릴 수 있다. 다음으로, 윤석열 정부와 자본이 표적으로 삼은 노동조합이 패퇴할 경우, 탄압은 울산지역 다른 노동조합으로 확대되는 것은 물론 다른 지역 노동조합으로 확대될 수 있다. 이것이 윤석열 정부와 자본이 울산지역 노동자 운동을 대상으로 타임오프 탄압을 집중하는 진짜 목적이 아니겠는가. 타임오프는 교섭창구 단일화와 한 쌍의 악법으로써, 민주노조의 무력화와 파괴를 목표로 한다. 타임오프 탄압을 위기의식을 갖고 봐야 하는 이유는, 그것이 중장기적으로 “민주노조 활동력 위축 → 현장조직력과 투쟁력 무력화 → 노동조합 활동에 대한 자본의 통제 강화 → 민주노조의 파괴”로 이어질 것이기 때문이다. 이에 민주노총 울산본부, 금속노조 현대중공업지부와 울산지부, 화섬식품노조 울산지부 산하 지회들이 타임오프 탄압에 맞서는 노동자 공동투쟁을 결의했다. 지난 5월 29일 울산노동지청 앞에서 노동조합 활동과 전임자 문제에 대한 고용노동부 개입을 규탄하는 기자회견과 항의방문을 조직했다. 곧이어 타임오프 시정명령 사업장 상근간부와 교섭위원들이 《타임오프 폐지! 민주노조 사수! 윤석열 퇴진 결의대회》를 열고 윤석열을 퇴진시켜서라도 타임오프를 폐지하고 민주노조를 사수하겠다고 결의를 다졌다. 이렇듯 공동투쟁에서 나선 울산지역 노동자들은 5월 29일 고용노동부 울산노동지청 결의대회를 시작으로, 6월 타임오프 분쇄 1만 간부 상경투쟁과 최저임금 투쟁을 거쳐 각 사업장 타임오프 교육과 선전전 등 투쟁결의를 모으고, 7월에는 임단협 시기 집중 파업을 준비 중이다. 5월 29일 《타임오프 폐지! 민주노조 사수! 윤석열 퇴진 결의대회》 사진: 노동과세계 노동자 공동파업으로 타임오프 탄압 분쇄하자! 2010년 이명박 정부의 첫 번째 타임오프 탄압에 민주노총과 금속노조는 저지선을 쳤다. 그러나 타임오프 악법을 폐기할 정도의 강력한 총파업을 조직하지 못했다. 타임오프 탄압에 맞선 투쟁전선은 강력하지도, 집중되지도 않았고 단위사업장과 지역으로 분산되면서 민주노조들은 줄줄이 패퇴했다. 일부 민주노조에서 타임오프 탄압에 맞선 총파업을 조직했지만, 개별사업장의 힘만으로 타임오프제의 벽을 넘을 수는 없었다. 과거 투쟁 경험을 반면교사로 삼는다면, 2024년 윤석열 정부의 두 번째 타임오프 탄압에 맞선 투쟁의 답을 찾을 수 있을 것이다. 모든 투쟁이 그렇듯 타임오프 탄압에 맞선 투쟁에서도 “흩어지면 죽고 단결하면 산다”, “각자 투쟁하면 밀리고 함께 투쟁하면 승리한다”라는 구호가 집약하는 공동투쟁은 노동자의 강력한 무기다. 울산지역 타임오프 시정명령 민주노조들이 결의한 “타임오프 폐지! 민주노조 사수! 윤석열 퇴진 노동자 공동투쟁”을 강고하게 유지하고 확대하자. 또한 7월 한시적인 임단협 시기집중 파업에 한정하지 않고 ‘임단협 승리와 타임오프 탄압 저지 공동총파업’으로 승리의 돌파구를 열자. 울산지역 노동자 총단결 총파업으로 타임오프 탄압을 분쇄하고, 그 기세와 열기로 노동자가 앞장서는 윤석열 퇴진의 길을 열자! 5월 29일 《타임오프 폐지! 민주노조 사수! 윤석열 퇴진 결의대회》 현수막2024-06-04 | 조회 55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