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양준석'검색결과 - 전체기사 중 45건의 기사가 검색되었습니다.
자본가들의 신자유주의 대공세와 그에 맞선 노동자들의 격렬한 투쟁은 한국 사회 전반에 계급투쟁의 격랑을 몰고 왔다. 노동자들의 투쟁은 성공적인 결과를 얻지는 못했지만, 광범한 계급적 자각을 낳았다. 노동조합에 대해 말하는 것조차 불온하게 간주되던 사회에서 광범한 노동자들이 ‘노동자 정치세력화’라는 구호에 호응하기 시작했다. 노동자 정치세력화의 열망은 민주노동당을 탄생, 성장시켰다. 그러나 노동자들의 투쟁을 패배로 귀결시키고, 민주노조운동을 후퇴와 위기로 내몰았던 똑같은 요인이 노동자 정치세력화에도 작...
한국 자본주의가 1990년대 중반을 분기점으로 쇠퇴기에 접어들자 자본가들은 IMF 외환위기를 계기로 정리해고 도입과 비정규직 확산으로 대표되는 신자유주의 공세를 전면화했다. 그로부터 몇 년 만에 비정규직은 전체 노동자계급의 절반을 훌쩍 넘어서게 됐다. 그런데 이 과정에서 민주노조운동은 정리해고 도입을 막아내지 못했을 뿐만 아니라, 비정규직 확산과 비정규직에 대한 착취·억압·차별의 심화를 방치했다. 이는 민주노조운동에도 심각한 위기와 퇴보로 되돌아갔다. 대기업 정규직만의 운동으로 쪼그...
비정규직은 악조건 속에서도 스스로 노조를 결성하고 투쟁에 나섰다. 1999년부터 2002년까지 예열기를 거친 뒤 2003년부터 2007년까지 비정규직 투쟁이 본격적으로 분출했다. 수백, 수천, 때때로 수만 단위의 대중투쟁이 곳곳에서 끈질기게 펼쳐졌다. 비정규직 문제를 둘러싼 사회적 이데올로기 전선에서도 비정규직 노조운동은 도덕적 우위를 갖고 상당한 대치전선을 형성해 냈다. 2004년부터 2006년까지 비정규직 제도를 둘러싼 정치투쟁이 치열하게 전개됐다. 민주노총은 비정규직 노조운동이 투쟁을 통해 만들어낸 요구들을 집약하...
1996~97년의 역사적인 총파업으로도 정리해고제와 근로자파견제 도입을 막아내지 못하고 나아가 1998년 이후 구조조정과 정리해고를 앞세운 자본가들의 파상적인 신자유주의 대공세에 패배를 거듭한 결과, 2000년대 초반에 이르러 민주노조운동 전반은 심각한 후퇴와 변질에 직면하게 됐다. IMF 외환위기 때 펼쳐진 신자유주의 공세로 비정규직 비율이 전체 노동자의 절반 이상으로 폭발적으로 증가했다. 비정규직은 1987년 이전 같은 열악한 임금·노동조건과 고용불안에 시달렸다. 민주노조운동의 주력이 된 대기업과 공공부...
1998년 2월 정리해고제와 근로자파견제 도입을 막지 못하면서 신자유주의 대공세에 맞서는 전체 노동자계급의 총력 방어선이 일단 무너지자, 거대한 해일이 휘몰아치듯 구조조정과 정리해고를 앞세운 자본가들의 대공세가 이후 몇 년 동안 전국의 수많은 사업장에서 파상적으로 전개됐다. 자본가들의 대공세에 맞서 노동자들은 처절한 저항을 거듭했다. 저항조차 해보지 못하고 삶의 터전을 송두리째 빼앗긴 노동자들도 무수히 많았지만, 가진 힘을 다 소진할 때까지 끈질기게 저항한 노동자들도 결코 적지 않았다. 이전 ...
2019년 이후 국제 계급투쟁이 고조되고 있는 상황에서, 혁명적 조직을 재건하기 위한 레닌주의 조직관은 엘리트주의 조직관이나 주변화된 편협한 집단을 육성하는 조직관과는 정반대임을 분명히 해야 한다. 레닌주의 조직관은 노동자계급의 가장 진보적이고 정치적으로 자각한 부문을 (혁명의 준비를 목표로 하며 투쟁하는 대중과 지속적으로 대화하는) 중앙집권적인 당으로 결집시켜 내는 것으로 요약될 수 있다. 구체적으로 말하자면, 이는 투쟁으로 떨쳐 일어서는 노동자들에게 (수십 년간 지배계급과의 화해 정책과 “사회적 대화”에...
1998년부터 2002년까지 구조조정과 정리해고를 앞세운 자본가들의 신자유주의 대공세에 맞서 노동자들이 거센 반격에 나섰다. 노동자들은 아래로부터 역동적인 투쟁들을 만들어냈지만, 취약한 지도력을 극복하지 못하고 패배했다. 투쟁의 패배와 민주노조운동의 후퇴는 비정규직의 대대적인 확산으로 이어졌다. 그런데 자본가들의 계획과 달리 비정규직에서도 민주노조운동이 시작됐고, 2003~07년 비정규직 투쟁이 거세게 타올랐다. 2004~06년에는 비정규직 입법을 둘러싼 대회전이 펼쳐지기도 했다. 그러나 민주노총의 주력인 대기업 정규직이 계급적 전...
김영삼 정권의 날치기 노동법 개악에 맞서 1996년 12월말부터 한 달 가량 전개된 민주노총 총파업은 매우 위력적이었다. 총파업은 무엇보다 정리해고제와 근로자파견제 도입을 저지하기 위한 것이었다. 일반 여론의 지지도 압도적이었다. 자신감이 넘치던 김영삼 정권은 총파업 한 달 만에 식물정권으로 전락했다. 1987년 노동자대투쟁 이후 축적돼 온 민주노조운동의 역량이 한국 사회를 완전히 뒤흔들었다. 하지만 안타깝게도 지도부의 역량이 매우 어설펐고 결정적인 순간에 총파업을 중단시켜 버렸다. 역사적인 총파업이 소기의 성과를 거두...
전노협은 애초 민주노조운동의 전국적 총결집체라는 위상을 갖고 건설됐지만 사무전문직과 대기업의 민주노조들이 대거 불참함에 따라 민주노조 총단결을 다시금 추진해야만 하게 됐다. 전노협은 정권과 자본의 탄압에 맞서 조직을 사수해 내긴 했지만, 지속되는 탄압으로 점점 약화됐다. 민주노조 총단결은 전투적·변혁적 노선의 전노협을 강화하는 대신 타협·개량주의 노선에 입각해 새 틀을 짜는 방향으로 현실화했다. 1993년 6월 전노협, 업종회의, 현총련, 대노협 4개 조직이 ‘전국노동조합...
1988~89년 민주노조운동의 폭발적 성장을 토대로 전투적·변혁적 민주노조운동의 전국적 총결집체로서 전노협이 1990년 건설됐다. 전노협을 와해시키려는 정권과 자본의 가공할 탄압에 맞서 노동자들은 1990년 5월 한국전쟁 이후 최초로 전국 총파업을 조직해 냄으로써 전노협을 사수해 냈다. 1991년 5월 군사파시즘의 부활을 모색하는 노태우 정권에 맞서 전 민중의 민주주의 투쟁이 1987년 6월 이후 최대 규모로 터져 나왔을 때, 노동자들은 조직적 대오로 참여해 주도적 역할을 수행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