검색결과
-
[공동성명] 이스라엘은 당장 팔레스타인 가자지구 집단학살을 멈춰라1. 이스라엘이 미국의 지원 속에 집단학살을 재개했다. 3월 18일 현지 시각 새벽 2시, 이스라엘은 폭격기와 드론 100대 이상을 동원해 가자지구 전역을 기습하며 휴전 협정을 깨고 어둠 속에 주민 410명을 학살했다. 이스라엘은 내내 그랬듯이 인구 밀집 지역을 집중 폭격했고, 아동 173명을 살해하며 팔레스타인 역사에 단 하루 동안 가장 많은 아동을 살해한 날을 기록했다. 며칠을 굶주리다 살해된 아이를 안은 엄마는 절규하고 오지 못하는 구급차를 기다리던 부상자들은 숨이 다할 때까지 비명을 질렀다. 잔해에 깔린 가족의 시신을 수습하기 위해 몇 달을 고군분투하던 이들도 잔해 속 시신이 되었다. 의료 물품 부족으로 부상자는 분 단위로 죽어가고 병원 영안실을 넘어 복도에도 더 이상 죽은 자를 안치할 자리가 없다. 트럼프 미국 대통령과 이스라엘 정치가들이 거듭 약속한 대로 가자지구는 생지옥으로 변했다. 2. 하지만 이는 예견된 일이었다. 1월 17일 이스라엘과 팔레스타인 저항 세력의 위임을 받은 하마스가 휴전 협정을 체결한 이후 이스라엘은 지속적으로 협정을 위반했다. 휴전 중에도 가자 주민 150명을 학살했고, 구호단체 활동가 6인과 기자 3인을 표적 살해했다. 피란민들이 기거할 이동식 주택 6만 채와 텐트 20만 개의 반입을 금지해 저체온증으로 신생아 7명이 사망했다. 포로 교환을 통해 풀려난 팔레스타인 포로들을 재차 납치하고 1단계 휴전 중 2단계 휴전을 논의하기로 했던 합의에 응하지 않았다. 42일간의 1단계 휴전이 끝난 다음 날인 3월 2일에는 가자지구로 식량과 의약품 등 모든 구호품 반입을 완전히 차단해 구호 트럭 1만 대가 국경에 묶였고, 일주일 후엔 전기와 연료 공급도 끊었다. 기아를 조장하는 이런 점진적인 집단학살은 영국, 독일과 같은 이스라엘의 동맹국조차 우려를 표할 정도로 국제적인 규탄을 받았다. 유엔 전문가들은 이스라엘이 집단학살을 재개할 가능성을 우려했다. 애초 이스라엘은 휴전을 파기하겠다는 의도를 숨긴 적도 없다. 이스라엘은 즉각 가자지구 공습을 멈추고, 집단학살을 중단해야 한다. 3. 가자지구에 물 한 방울, 밀가루 한 봉지 들어오지 않은 16일간 가자지구에선 이스라엘 점령군을 향해 총알 한 발 발사되지 않았다. 2단계 휴전 논의를 거부한 것은 이스라엘이다. 때문에 미국은 별도 채널을 개설해 하마스와 직접 휴전을 논의하고 있었다. 그런데도 미국과 이스라엘은 하마스가 휴전 협정을 위반했다고 주장하고 있다. 당초 양측이 합의한 휴전안은 2024년 이스라엘이 중재국인 카타르, 이집트에 제시한 아이디어를 바탕으로 바이든 전 미국 대통령이 구상한 안과 같다. 이를 하마스가 받아들이자, 이스라엘이 거부한 것이다. 그러고는 집단학살을 재개하며 네타냐후 총리는 이것이 “시작일 뿐”이라고 선포했다. 생환한 이스라엘 포로와 포로 가족들은 이스라엘 정부가 원래 휴전 조건에 따라 풀려날 예정이었던 이스라엘 포로들을 폭격으로 또다시 “희생”시킨다고 규탄했다. 이스라엘 논평가들은 네타냐후 총리의 집단학살 재개는 부패 혐의에 대한 재판과 휴전을 끝내라는 극우 세력의 압박 등 국내 정치에 대한 돌파구라고 지적한다. 이를 미국이 전면 지원해 주고 있는 것이다. 실제로 트럼프는 전임 시절에도 피점령지 동예루살렘과 시리아 골란고원을 이스라엘 영토로 승인하는 등 네타냐후가 실각할 위기에 처할 때마다 구원자로 나섰다. 4. 이번에도 트럼프는 이스라엘이 일주일 전 계획안 집단학살 재개를 바로 승인했다. 야만적 개인들의 야합은 중동 전역을 전쟁으로 몰아넣는 더 큰 계획의 일부에 불과하다. 지난 주말 미국은 예멘을 폭격해 아동 5명을 포함해 53명을 살해했다. 미국 국방부 대변인은 예멘을 향해 “압도적인 살상력을 사용할” 것이라 발표했다. 예멘이 홍해를 봉쇄하고 미국 국적선을 공격했다는 것이 그 명분이다. 하지만 예멘은 트럼프 취임 하루 전에 발효된 휴전 이후로 홍해 봉쇄를 중단했고 2달간 어떤 미국 배도 공격받지 않았다. 3월 이스라엘이 가자지구로 구호품 반입을 전면 차단하자, 예멘은 오직 구호품 반입만을 요구하며 이스라엘 관련 배만을 상대로 홍해 봉쇄를 재개했다. 앞서 홍해를 봉쇄한 것도 같은 이유였다. 미국은 이스라엘이 집단학살을 용이하게 수행하도록 예멘을 공격하고 있고, 이를 넘어 트럼프는 예멘이 발사한 모든 총격을 이란이 행한 것으로 간주하겠다며 “이란이 그 결과를 감당해야 하고, 그 결과는 끔찍할 것”이라고 이란으로의 확전을 협박하고 있다. 이란과의 전면전은 이스라엘이 오랫동안 추구해 온 바이다. 5. 미국을 등에 업은 이스라엘은 레바논과 시리아까지 공격을 확대하고 있다. 이스라엘 스스로는 절대 멈추지 않는다. 전 세계가 멈추도록 강제해야 한다. 국제사법재판소가 결정한 대로 그 결정을 받아 유엔 총회가 채택한 대로 팔레스타인 피점령지에서 완전히 철수하도록 모든 수단을 동원해야 한다. 국제형사재판소가 체포 영장을 발부한 네타냐후 총리 등 수많은 이스라엘 전쟁범죄자들을 처벌해야 한다. 더 많이 거리로 나와 자국 정부를 압박하고 이스라엘을 규탄하자. 지금 당장 가자지구 집단학살을 멈추게 이스라엘을 강제하는 것이 중동 전역으로의 확전을 막을 유일한 방법이다. 휴전이 발효된 후 가자 주민들은 집으로 돌아와 무너진 집터를 청소하고, 폐허 위에 학교를 세우며 이전의 삶을 회복하려 노력하고 있었다. 우리는 팔레스타인인들의 희망이 또다시 부서지도록 두고 보지 않을 것이다. 2025년 3월 19일 팔레스타인과 연대하는 한국 시민사회 긴급행동
-
중동 전쟁위기와 지속되는 가자 학살지속되는 가자학살 이스라엘은 가자지구 전역에 공중 폭격, 지상과 해상폭격을 이어가고 있고, 이로 인해 민간인 시설과 주거지 파괴, 대량 난민 발생, 민간인 사망과 부상이 증가하고 있다. 가자지구 보건부(MOH)에 따르면 10월 7일 이후 현재까지 최소 34,845명이 사망했고, 77,368명이 부상당했다. 가자지구 최대 병원인 알 시파(Al-Shifa) 병원에서는 2주간 이스라엘 점령군의 공격 이후 400여 구의 시신이 발견됐고, 가자지구 남부 나세르 병원에서는 283명의 시신이 파묻혀있던 집단무덤이 발견됐다. 4월 12일부터 15일 사이 이스라엘은 가자지구 다수의 피난민이 대피해 있는 중부 누세라트 난민촌과 라파 동부 지역을 공격하여 163명의 팔레스타인인이 사망했고 251명이 부상당했다. 이스라엘은 피난민이 심각하게 밀집된 라파에 대규모 지상군 투입을 공언하고 있다. UN 팔레스타인 난민 구호기구(UNRWA)에 따르면 3월에 가자지구로 들어온 트럭은 하루 평균 161대에 불과하며, 가자 주민 절반인 110만 명이 재앙적인 식량상황에 놓여있다. 서안지구에서도 이스라엘의 불법행위는 계속되고 있다. 지난 해 10월 7일 이후 지금까지 서안지구에서 최소 489명의 팔레스타인인이 이스라엘 점령군과 불법 정착민들에 의해 살해됐으며, 이중 124명이 어린이다. 일촉즉발의 중동 정세 몇 주 간 중동에서 전면적인 확전으로 나아가는 일촉즉발의 상황이 다시 한 번 지나갔다. 이스라엘이 지난 4월 1일 시리아 다마스쿠스의 이란 대사관을 폭격하였고, 이란혁명수비대 쿠드스군 사령관 모하마드 레자 자헤디 등 7명의 군인이 살해됐다. 이란은 4월 13일, 이스라엘 본토를 향해 350여기의 드론과 미사일을 발사했다. 4월 19일, 이스라엘은 핵개발 시설이 밀집되어 있는 이스파한에 드론 3기를 날려 공격하며 다시 한 번 위협을 가했다. 이란을 위시한 레바논 헤즈볼라, 시리아 정부, 예멘 후티 세력 등 이른바 ‘저항의 축’은 이스라엘과 오랫동안 국지적인 교전을 이어왔다. 10월 7일 이후 레바논의 헤즈볼라와 4천번 넘게 공격을 주고받고 있으며, 이스라엘은 12월 25일 폭격으로 다마스쿠스의 이란혁명수비대 파견군 사령관을 살해했다. 그 밖에도 여러 차례 시리아에서의 공습으로 이란혁명수비대의 고위 지휘관 여러명을 살해했다. 이란은 이에 1월 15일 이라크 북부의 모사드 기지를 폭격하기도 했다. 이스라엘과 이란은 지난 6개월 간 레바논, 시리아, 이라크 등에서 다양한 형태의 대리전을 벌여왔지만, 상대국의 영토를 직접 공격하지는 않았다. 이번에 이스라엘이 시리아의 이란 영사관을 공격한 것은 곧 이란의 영토를 공격한 것과 마찬가지이고, 전면적인 전쟁으로 나아갈 위험을 품고 있었다. 그러나 4월 13일 이란은 반격이 전면전으로 번지지 않도록 세심한 주의를(?) 기울였던 것으로 보인다. 미국은 부인하고 있지만, 여러 언론에서는 이란이 공격 전, 카타르, 튀르키예 등을 통해 미국에 공격예정일을 통보했다고 보도했다. 이란은 이란의 극초음속 미사일 여러 발이 네비팀 공군기지에 명중했다고 주장하고, 이스라엘은 다중미사일방어체계와 미,영 공군에 의해 대부분 요격됐다고 주장했다. 이스라엘은 4월 19일 이스파한에 미사일과 드론으로 재반격을 했다. 이스라엘은 테헤란 공격을 포함한 보다 광범위한 반격을 계획했으나, 미국의 압력으로 수위를 낮추었다고 한다. 이란과 이스라엘의 공격이 상징적인 것에 그치며 당장 전면전으로 치달을 가능성은 일단 사라졌지만, 확전의 먹구름은 한층 더 깊이 드리우고 있다. 미국의 이스라엘 원조 11월 미국 대통령 선거를 앞두고, 바이든은 미국의 팔레스타인 시위대에게 ‘제노사이드 조(집단학살자 조)’라는 별명으로 불리는 상황이 달갑지 않다. 미시건, 미네소타, 워싱턴 주 민주당 예비선거에서 대규모로 표현된 “uncommitted(지지후보 없음)”는, 이스라엘의 집단학살을 굳건히 지원하고 있는 바이든을 지지하지 않을 것이라는 항의의 뜻을 보여주었다. “uncomiitted(지지후보 없음)”는 전체의 10~19%를 득표했는데, 미시건 주 같은 주요한 경합주에선 실제 대선에서도 유의미한 캐스팅보트 역할을 할 수 있는 수준이다. 바이든은 자신의 정치적 위기관리를 위해 ‘학살자 조’라는 오명을 벗고 싶어한다. 물론 이러한 바이든의 정책은 자신의 정치적 이익을 위한 가면술일 뿐이고, 팔레스타인 민중들에게 실시간으로 가해지고 있는 집단학살을 멈추는 데에는 아무 관심이 없다. 3월 26일, 바이든 행정부는 유엔 안보리에서 그동안 휴전결의안에 반대해오던 것에서 한 발 물러나 기권을 택하며 이스라엘과 하마스 간 즉각적인 휴전을 촉구하는 결의안이 처음으로 유엔 안보리에서 통과됐다. 그러나 며칠 후 바이든은 대규모 사상자를 내는 데 사용되는 폭탄을 포함한 수십억달러 상당의 무기 지원을 조용히 승인했다. 이스라엘이 집단학살을 지속할 수 있는 것은 전적으로 미국을 위시한 서방세계의 지원 덕분이다. 바이든이 오바마 정부의 부통령이던 시절 진행한 합의에 따라, 미국은 2026년까지 이스라엘에 매년 33억 달러의 군사지원을 하고 있다. 여기에는 전투기, 헬리콥터, 유도탄 등 가자지구 민중을 공격하는 데 사용되는 무기들이 포함된다. 한편 미국 하원은 4월 20일, 초당적인 협력 아래 우크라이나, 이스라엘, 대만에 안보지원을 제공하는 950억 달러의 법안 패키지를 통과시켰다. 이후 상원을 거쳐 4월 24일 바이든이 최종적으로 법안에 서명했다. 이 법안에 따라 이스라엘은 미국으로부터 약 260억 달러의 추가 원조를 받는다. 이 260억 달러에는 미사일과 로켓방어시스템의 재보급(52억 달러), 새로운 무기 구매(35억), 무기생산 강화(10억) 등이 포함돼있다. 이중 92억이 ‘인도적 지원’을 위해 배정되었는데, 하지만 이 법안은 유엔팔레스타인난민기구(UNRWA)에 대한 재정지원을 금지하도록 규정하고 있다. (*지난 2월 이스라엘이 UNRWA 직원들 일부가 10월 7일 공격에 연루돼있다는 주장을 한 뒤 서방의 다수 국가들이 UNRWA에 대한 지원을 끊어 팔레스타인의 인도적 위기가 더 심화됐다. 그러나 UN이 최근 제출한 보고서에 따르면 이스라엘은 UNRWA 직원의 연루에 대한 어떤 실질적인 증거도 제시하지 못했다.) 미국이 이번에 통과시킨 법안으로, 더 많은 무기가 이스라엘을 향하게 됐다. 한편 미국 국무부는 초정통파 유대인들의 극우적 군대인 ‘네짜 예후다’가 2022년도에 저지른 잔혹행위에 대한 조사에 착수했다. 가자지구와 서안지구에서 소셜미디어와 언론을 통해 실시간으로 전해지는 수많은 전쟁범죄와 잔혹행위에 대해 침묵하면서, 이제야 겨우 한 가지 사건을 조사한다는 것은 바이든 행정부의 위선을 단적으로 보여주고 있다. 집단학살로 수명을 연장하려는 네타냐후 정부 이스라엘은 라파에 지상군을 대대적으로 투입하겠다는 계획을 곧 현실화하려 한다. 여의도보다 조금 더 큰 크기의 라파에는 150만 명의 가자주민들이 절망적인 과포화와 기근 속에 놓여있다. 라파에 대한 지상군 투입은 다시 한 번 팔레스타인인들에 대한 어마어마한 살해를 동반할 것이다. 네타냐후는 전쟁을 지속하고 확대할 강력한 정치적 동기를 갖고 있다. 10월 7일 이전 그가 행정부의 권력강화를 위해 추진하던 사법개혁에 대한 반대여론이 인질의 가족들을 중심으로 한 이스라엘 내 휴전시위대와 합세하며 그의 정치적 위기를 증폭시키고 있다. 지난 6개월 간 그는 100명의 인질도 구출하지 못했고, 이스라엘 군은 오히려 무차별적이고 때로는 의도적인 공격으로 인질들을 살해했다. “하마스를 절멸”시키겠다는 그의 선언은 성공을 거두지 못했고, 베니 간츠는 “시온주의 국가의 국제적 이미지 재구축”을 얘기하며 9월 조기선거를 주장하고 있다. 이란과의 교전 속에 네타냐후 내각의 지지율은 일시적으로나마 반등했다. 전쟁 지속이 네타냐후의 정치적 위기를 근원적으로 해결할 수 없다. 하지만 자신의 정치적 위기가 전면화하는 것을 늦추기 위해 네타냐후는 집단학살을 지속하고, 팔레스타인인들을 가자지구와 서안지구에서 추방하고, 중동에서 더 큰 전쟁을 벌일 강력한 동기를 갖고 있다. 중동에서의 확전을 통해 미국이 중동에 지상군을 투입하지 않을 수 없게 끌어들이는 것이 그의 생존전략이다. 팔레스타인 해방투쟁의 확산이 중동에서의 전쟁을 막을 유일한 길 미국에서는 집단학살에 반대하는 학생들의 급진적인 시위가 확대되는 흐름이 나타나고 있다. 컬럼비아 대학교 학생들은 팔레스타인 연대행동을 이유로 교원과 학생을 징계하는 것에 저항해 컬럼비아대 잔디밭에서 농성투쟁을 벌였다. 4월 18일, 뉴욕경찰이 100명이 넘는 농성중인 학생들을 체포하자, 미국 전역의 대학교에 12개가 넘는 캠프가 추가로 생겨났다. 학생들은 “지금당장 휴전(Ceasefire Now)”과 함께 이스라엘 기업 및 군수기업에 대한 대학의 투자철회와 시위대에 대한 완전한 사면을 요구하고 있다. 학생의 강제퇴거 명령을 받은 대학 교원 노동자가 자진해 사임하고, UAW 소속 교원노조는 파업을 벌이며 학생들과 연대행동에 나서고 있다. 팔레스타인의 해방을 외치는 학생들을 향한 탄압은 미국 제국주의가 중동에서 지난 수십년 간 이스라엘을 지원해오고, 집단학살을 지속할 수 있게 해주는 주범이란 사실을 더욱 더 많은 이들에게 똑똑히 보여주고 있다. 끔찍한 학살과 고문, 기근 등 모든 인간성이 말살되는 현실 속에서도, 저항하기를 멈추지 않는 팔레스타인 민중들과 함께, 한국에서도 팔레스타인 연대투쟁을 더욱 확대하자. 미국과 캐나다, 영국, 스페인 등지에선 항만봉쇄행동, 연금과 대학, 기업의 이스라엘에 대한 투자철회 요구, 무기공장의 이스라엘 거래에 대한 항의행동 등의 실천이 벌어지고 있다. 가까운 일본에서도 이토츄 상사와 이스라엘 엘빗시스템즈와의 거래를 중단시켰고, 군사거래 중단을 요구하는 더 큰 캠페인에 나서고 있다. 다른 나라의 노동자민중들이 자국의 군사거래를 향한 투쟁을 벌이듯, 우리도 한국정부의 이스라엘 군사거래를 중단시키는 투쟁에 나서자. 당면한 가자지구 학살을 중단시키고, 팔레스타인의 완전한 해방을 향한 투쟁으로 나아가는 것만이 중동에서 이스라엘이 더 큰 전쟁을 일으키는 것을 막을 수 있는 길이다.
-
[2024년 정세와 노동자계급의 과제 4] 전쟁위기 확산[편집자 주] 지난 1월 27일 사회주의를향한전진을 포함한 6개 단위가 함께 개최한 신년 정세토론회에 제출한 <2024년 정세와 노동자계급의 과제>를 나누어 연재한다. 이 글은 조직적 토론을 통해 제출되었다. ᅠ Ⅰ. 자본주의 위기 지속, 심화하는 노동자계급 생존권 위기 Ⅱ. 제국주의 열강투쟁 격화, 불확실성 확대로 치닫는 세계 자본주의 Ⅲ. 세계 각지 극우세력 부상 Ⅳ. 전쟁위기 확산 Ⅴ. 위기 확대, 한국자본주의 정치경제 정세 Ⅵ. 노동자계급 생존권 위기 심화와 노동탄압 강화 Ⅶ. 노동자 계급운동 대응방향 24.02.17. 이스라엘의 공격으로 파괴된 가자지구 중부 데이르알발라 (사진: getty images) 오슬로 평화연구소에 따르면, 2022년 기준 진행 중인 분쟁은 55건이며, 평균 8-11년 정도 지속되는 것으로 나타났다. 이는 10년 전 평균 7년간 지속된 33건의 분쟁에 비해 많이 증가한 수치다. 세계 인구의 4분의 1에 해당하는 20억 명이 분쟁의 영향을 받는 지역에 거주하며, 2023년 초까지 전 세계적으로 강제로 이주당한 사람들의 수는 1억 8천만 명에 달했다. 세계 곳곳에서 전쟁과 분쟁이 확산하고 있다. 1. 장기화하는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을 둘러싼 열강의 균열 장기화하는 러우전쟁 앞에 우크라이나를 지원하던 유럽과 미국의 피로도가 커지고 있다. 바이든은 10월 20일 우크라이나 610억 달러, 이스라엘 143억 달러 지원을 포함한 안보예산 1,050억 달러 승인을 의회에 요청했으나 공화당 반대로 이스라엘 지원 예산만 우선 처리되었다(이는 결국 2월 13일 처리되었다). 유럽연합은 우크라이나에 500억 유로를 지원하기로 약속했지만, 헝가리의 반대와 독일의 예산 전용에 대한 위헌 판정 문제로 2023년 12월 현재 보류 상태다(이후 2월 1일 500억 유로 지원에 합의했다). 이에 반해 러시아는 미국과 유럽의 제재를 버티고 있다. 러시아는 2023년 2분기 4.9%, 3분기에는 5.5% 성장률을 기록했다. IMF는 2023년 러시아 경제성장률을 2.2%, 2024년 성장률을 1.1%로 전망하고 있다. 장기화하는 전쟁으로 미국과 유럽의 피로감이 누적된 가운데, 중동 분쟁으로 서방의 전선이 확대되고 있는데, 유가 60불 가격상한제 등 제재조차 온전히 관철되지 않고 있다. 이런 상황은 트럼프의 부상으로도 이어지고 있는바, 트럼프는 우크라이나 지원 거부와 당선 시 24시간 내 종전을 공언했다. 심지어 트럼프 집권 시 나토 탈퇴설까지 불거지는 상황은, 그 자체로 미국 헤게모니의 심대한 균열을 드러낸다. 중국은 러시아를 지탱하는 핵심축이다. 그간 중국이 북러 정상회담에 대외적으로 이렇다 할 입장을 표명하지 않았으나, 우크라이나 전쟁에 있어 사실상 러시아 지지 입장 등을 밝혀온 경과에서 볼 때 북중러 블록화에 반대할 이유가 없다. 이를 증명하듯, 러시아가 중국에 공급하는 가스는 2022년보다 46% 이상 늘어 사상 최고치에 달할 전망이다. 서방의 러시아 금융제재 이후 러-중 위안화 결제 비율은 급증해, 양국 무역거래 시 위안화 결제비율은 80%, 러시아 외환거래 중 위안화 비중은 2023년 7월 기준 44%에 달한다. 2. 이스라엘의 팔레스타인 학살이 불러온 중동위기 극우파 네타냐후, 네타냐후보다 더한 극우파에 잠식된 이스라엘 정부는 2만을 훌쩍 넘는 사망자를 내고서도 팔레스타인 학살을 지속하고 있다. 이스라엘과 팔레스타인을 둘러싼 역학으로 볼 때, 현 사태는 단기간에 해결되기 어렵다. 네타냐후 정부는 행정부의 사법부 통제 강화 방안이 담긴 사법재편에 대한 이스라엘 내 대중적 저항을 무력화하기 위해서라도 미국의 권고조차 무시한 채 학살을 지속하고 있다. 대선을 앞둔 바이든 정부는 우크라이나에서 중동으로 확대된 전선을 제어하지 못한 채 무력한 모습을 비치고 있다. 부패한 팔레스타인 정부는 대표성은커녕 존재감조차 없다. 이란은 하마스와 이스라엘의 확전을 원치 않는다는 입장이나, 중동 위기가 확전으로 치달을 가능성은 상존한다. 하마스의 공격과 이스라엘의 팔레스타인 학살로, 2020년 아브라함 협정에 기반해 이스라엘과 사우디아라비아가 목전에 두던 관계정상화 협정은 무력화되었다. 2018년 트럼프 정부가 일방 파기한 이란과의 핵합의 복원도 불가능해졌다. 2023년 3월 중국 중재로 이루어진 이란과 사우디 관계정상화 전망 역시 불투명하다. 이스라엘의 학살과 함께, 중동 전역에서 전쟁 위기가 커지고 있다. 최근 홍해(아랍과 아프리카 사이)와 호르무즈해협(이란과 오만 및 아랍에미리트 사이)에서 위기가 고조하고 있다. 이란이 지원하는 시아파 예멘반군 ‘후티’는 이스라엘로 향하는 모든 선박을 표적으로 삼겠다는 경고와 함께 2023년 11월부터 홍해를 경유하는 상선을 30여 차례 공격했고, 이란은 1월 11일 미국 유조선을 나포했다. 미국은 20여 개 국가를 모아 다국적 함대를 결성했고, 1월 11일에는 예멘 30여 곳을 폭격했다. 홍해는 수에즈 운하를 통해 유럽과 아시아를 잇는 핵심 수송로인바, 해상 컨테이너 물동량 3할을 포함한 세계 해상 상품무역량 12%가 이 경로를 통과한다(홍해 좌남단 지부티에는 미국과 중국의 해군기지가 10km도 되지 않은 거리를 두고 들어서 있다). 수에즈 운하를 거쳐 유럽-아시아-미국을 연결하는 무역로가 차단되었고, 희망봉 우회로로 컨테이너를 운송함에 따라 해상물류비가 급증했다. 마찬가지로 이란 앞바다, 호르무즈 해협은 세계에서 가장 중요한 원유 수송로다. 세계 석유 소비량 20%와 LNG 소비량 20%가 매일 호르무즈 해협을 통과한다. 사우디·이란·아랍에미리트·쿠웨이트·이라크가 생산하는 원유 대부분, 최대 LNG 수출국 카타르가 생산하는 천연가스 대부분이 호르무즈해협을 거쳐 수출된다. 현 사태는 원유가격과 물류비 급등으로 이어질 수 있다. 3. 폭증하는 군비와 노동자 민중의 생존권 억압 심화 러우전쟁 발발 이후 전 세계적으로 군비가 급증하고 있다. 스톡홀름 국제평화연구소(SIPRI)는 2022년 세계 군비 지출이 8년 연속 증가해 사상 최고치인 2조 2,400억 달러로 증가했다고 발표했다. 이중 유럽 군비 증가율은 13%로 가장 급격히 증가했다. 아래는 2014년(러시아가 크림반도를 점령한 해) 당시 GDP 대비 국방비 지출 2% 가이드라인을 지키는 나토국가가 3개에 불과했음에 반해, 2023년에는 가이드라인 이상으로 지출하는 국가가 11개로 급증했음을 드러낸다. 국방비 증가는 사회복지예산 비중 축소를 동반한다. 2022년 키프로스, 불가리아, 룩셈부르크를 제외한 모든 EU국가에서 GDP 대비 사회보장지출이 감소한 것으로 드러났다. 군비증강과 재도입된 EU재정준칙 아래1), 사회보장예산 비중 축소 추세는 지속될 공산이 높다. 1) GDP 대비 부채비율이 90%를 넘는 국가는 연 1%, 부채비율 60-90%인 국가는 0.5%씩 부채비율을 줄여야 한다. 국방예산 GDP 2% 가이드라인을 넘긴 나토회원국이 급증했다(좌). GDP 대비 사회보장지출 비중은 거의 모든 유럽국가에서 감소했다(우)
-
[번역] 혁명 시기 러시아에서의 여성 해방(편집자 주) 2023년 10월 1일 자로 레프트 보이스에 실린 웬디 Z. 골드만의 글을 번역해 소개한다. 웬디 Z. 골드만은 러시아 역사 전공 역사학 교수로 혁명 시기 러시아의 여성 해방에 관해 연구했다. 그의 연구서 《여성, 국가 그리고 혁명》은 1993년에 재출판되었다. 이 글은 웬디 골드만이 9월 12일과 15일에 바르셀로나와 마드리드에서 이 책에 대해 강연한 내용을 레프트 보이스 지면에 게재한 것이다. 오늘날, 여성들은 100년 전에는 상상조차 할 수 없었던 변화를 요구하고 있다. 많은 투쟁이 승리해왔기 때문이다. 오늘날 여성들이 직면하고 있는 수많은 조건, 문제, 의제는 클라라 체트킨, 알렉산드라 콜론타이, 이네사 아르망, 알렉산드라 알츄키나 같은 사회주의 페미니스트들이 처음으로 해방을 위한 강령을 만들던 19세기 말과 20세기 초반에 여성들이 직면했던 것과는 다르다. 대부분의 선진국에서, 여성들은 임금노동에 진입했고, 투표할 권리와 공직에 참여할 권리를 얻었으며, 고등교육, 전문직과 스포츠 분야에 접근할 권리를 얻었다. 우리는 피임의 권리와 성적 실천을 직접 통제할 수 있는 권리를 얻었다. 우리는 성희롱과 추행에 맞서 싸웠고 이를 금지하는 법을 통과시켰다. 우리는 억압적인 성역할과 고정관념에 도전했고, 집과 직장에서 남성과의 평등을 신장시켰다. 많은 국가에서 성소수자들은 새로운 자유, 사회적 인정, 법적인 권리를 얻었다. 내 일생 동안 일어난 변화는 정말 막대했다. 동시에, 전 세계 많은 나라에서 가부장제의 격렬한 반동이 있었다. 주로 조직된 종교단체, 남성 백래시, 권위주의 국가가 주도했다. 이러한 반동은 우리가 만들어 낸 여성의 진보와 우리가 얻은 자유를 강탈하고자 했다. 예를 들어 오늘날 미국의 경우, 많은 주에서 여성들이 임신중절의 권리를 잃었고, 이미 끝났다고 생각한 투쟁을 다시 하고 있다. 어머니들은 불법적인 임신중절의 공포와 두려움을 기억해내고, 딸들은 그들의 몸에 대한 새롭고 강압적인 통제를 경험하면서 함께 재생산 자유를 요구하는 시위에 나서고 있다. 오늘, 나는 페미니스트와 사회주의자의 오랜 투쟁에서 중요한 일부지만 잊혀진 소비에트 역사의 한 시기를 여러분과 나누고 싶다. 나는 노동자, 농민, 여성 그리고 혁명가들이 권력을 잡았으며 사회의 모든 측면을 재조직하는 것이 가능해 보였던 위대한 역사적 순간으로 시간을 돌리려고 한다. 이 순간은 1917년 10월 러시아의 혁명 시기다. 1917년 10월, 소비에트가 권력을 잡았을 때, 혁명가들은 여성 해방에 대한 매우 급진적인 시각을 가졌다. 이는 가족의 완전한 변화, 사회에서 여성의 평등을 위한 진정한 조건을 만드는 것을 목표로 했다. 이러한 시각은 많은 정치적, 사회적, 경제적 이유로 부분적으로만 실행되었다. 하지만 이는 오늘날 우리에게 여전히 많은 교훈을 준다. 러시아 혁명가들은 네 가지 원칙에 기반한 여성 해방의 시각을 가졌다. 첫째로 “자유로운 사랑” 또는 “자유로운 결합”이다. 둘째로, 경제적 독립에 의한 여성의 해방이다. 셋째로, 가사노동의 사회화이다. 넷째로, 교회와 국가에 의해 통제되는 결합체로서 가족의 점진적이고 피할 수 없는 소멸이다. “자유로운 결합” 또는 “자유로운 사랑”은 19세기에 광범위하게 유행하는 단어였다. 이것은 상호 간의 끌림과 존중에 기반하는 관계와 결혼을 의미했다. 관계는 경제적 구속, 부성 통제, 의존으로부터 자유로워야 했다. 또한 종교적 권위 또는 국가에 의한 간섭으로부터 자유로워야 했다. 사람들은 누구를 사랑할지에 대해서 그들 스스로 선택할 수 있어야 했다. 더 이상 사랑하지 않거나 폭력을 당했을 때 이 관계를 유지할 필요가 없어야 했다. 자유의지에 반해서 결혼을 하도록 또는 유지하도록 강요하는 외부의 힘도 없어야 했다. 사람들은 혁명 시기의 새로운 소비에트 사회에서 이렇게 토론했다: 사회주의 사회에서 사랑은 어떤 모습일까? 그와 같은 “자유로운 결합”은 얼마나 오래 지속될까? 평생, 몇 년, 며칠, 또는 아마 단지 몇 시간 동안일까? 그 당시 많은 사람들은 이러한 결합의 기간에 대해 어떠한 수치심이나 가치도 부여해서는 안 된다고 믿었다. 이 기간은 오로지 두 사람이 동의하는 만큼일 것이었다. 그 당시 한 소비에트 사회학자는 이렇게 적었다. “결혼 유지 기간은 오로지 배우자에 대한 서로의 끌림에 달려있을 것이다.” 결합이 진정으로 “자유”롭기 위해서는, 사람들은 이혼할 권리(혁명 전에는 없었던)가 필요했고, 경제적으로 독립할 수 있도록 그들 자신을 부양할 수 있어야 했다. 특히나 여성들은 자신 또는 가족을 부양하거나 남성들로부터 독립할 수 있도록 동등하고 독립적인 임금에 접근할 수 있어야 했다. 볼셰비키는 여성의 노동 참여가 남성으로부터 경제적인 독립뿐만 아니라 부엌과 집 밖의 더 큰 세상을 만나게 하는 또 다른 혜택을 가져올 것이라고 믿었다. 여성들은 새로운 사회에서 전면적이고 동등한 참여자가 되면서, 집, 가사노동, 가족이라는 좁은 세상에 더 이상 속박되지 않을 것이었다. 그러나 여성들이 남성과 동등한 조건으로 임금 노동에 진입한다면, 이전에 여성이 집에서 무료로 해왔던 가사 노동은 누가 할 것인가? 가사 노동(또는 마르크스주의자의 용어로 재생산 노동), 다시 말해 아동 돌봄, 세탁, 청소, 요리, 노약자 돌봄은 사회에 필수적이다. 여성들이 임금 노동과 더 큰 세상에 참여하기 위해 공적 영역으로 진출하자, 새로운 소비에트 국가는 대부분의 재생산 노동을 사회화하고자 계획했다. 재생산 노동은 더 큰 경제단위로 이전되어, 남성과 여성이 좋은 임금을 받으며 수행하는 존중받는 노동으로 전환될 것이었다. 사람들은 지역단위 공동식당에서 끼니를 해결하고, 세탁소 그리고 아이들을 위한 돌봄 센터를 이용할 수 있을 것이었다. 게다가, 소비에트 국가는 여성들을 보호하기 위한 강력한 모성보호 법률을 통과시켰고, 출산 전후 유급휴가를 제공했으며, 출산 이후 여성의 원직복귀를 보장했고, 모유를 수유하는 어머니들을 위한 보호도 제공했다. 그 당시에 이러한 법안들은 세계에서 가장 강력했다. 재생산 노동의 사회화를 강조하는 이러한 시각은 여성과 남성이 가사노동을 동등하게 분담해야 한다는 현대의 페미니스트 요구와 달랐다. 혁명의 아이디어는 가사노동을 사회화하는 것이었지 가사노동을 둘러싸고 싸우는 것이 아니었다. 이는 또한 1970년대 여성들이 “가사노동에 임금을”이라는 슬로건 아래 국가가 여성들이 수행하는 가사노동에 임금을 지급하라고 했던 더 현대적인 요구와도 달랐다. 모든 사람이 아이 돌봄과 가사노동에 더 많은 시간을 쓰기 위해 더 짧은 시간 동안 일해야 한다는 현재의 생각과도 다르다. 새로운 소비에트 정부는 가사노동을 수행하는 공동체 기관들을 설립함으로써 전통적인 성역할을 완전히 해소하는 것을 추구했다. 소비에트 정부는 가사노동을 (임금을 받든 안 받든) 전통적인 가족 안에서 여성이 수행하도록 놔두는 것을 계획하지 않았다. 혁명적 소비에트 시각의 네 번째 요소는, 아마도 제일 급진적인 것으로서, 가족의 “소멸(러시아어로는 otmiranie)”이다. 마르크스주의자로서, 많은 소비에트 혁명가들은 가족이란 다양한 시대에 서로 다른 형태를 취한 가변적인 제도라고 믿었다. 가족의 형태는 생산양식에 결부되었다. 예를 들어, 봉건제도 하에서 농민의 가족은 자본주의 하에서 노동자의 핵가족과는 다른 형태였다. 모든 가족 형태는 남성과 여성 사이에 고유한 사회적 관계를 갖고 있었으며, 고유한 양육방식, 풍습, 전통, 습관을 갖고 있었다. 그 형태는 고정되거나 영원한 것이 아니었고 변화했다. 또한 자본주의 하의 가족 형태가 봉건제 또는 부족 사회의 형태와 다르듯이, 사회주의 하의 가족 형태는 그 이전 시대의 형태와 다를 것이었다. 사회주의에서 가족은 경제적 기능을 상실하게 될 것이었다. 가족은 더 이상 재산을 상속하는 조직이 아니고, 여성은 더 이상 남성에 의해 통제되지 않으며, 아이들은 더 이상 권리 측면에서 “적출”과 “서출”로 구분되지 않을 것이었다. 가족을 법으로 규제할 필요가 없어질 것이었다. 사람들은 원하는 대로 결합하거나 헤어질 것이었다. 결혼할 필요가 없을 것이었다. 어린이는 부모의 결혼 여부와 관계없이 지원과 돌봄을 받을 것이었다. 경제적 의존이 제거되면 경제 단위로서의 가족은 최종적으로 “소멸”할 것이었다. 부모와 어린이, 파트너 간의 사랑하는 관계는 계속해서 존재하겠지만, 국가나 종교에 의해 강제되는 형태는 아닐 것이었다. 가족에 대한 이러한 생각들은 법에 대한 혁명적인 생각과도 밀접한 관련이 있었다. 볼셰비키와 당시 많은 혁명가들은 짧은 시간 내 국가와 법도 최종적으로 사라질 것이라고 믿었다. 법학자들은 법의 본질을 둘러싸고 흥미로운 논쟁을 벌였다. 법은 한 계급이 다른 계급을 지배하는 명시된 권력을 표현하는가? 아니면 법은 계급 갈등의 결과인가? 사회주의에서 법은 얼마나 빨리 새로운 형태를 취할 것인가? 그들은 빈곤과 계급착취가 없는 사회에서 범죄가 대부분 사라질 것이라고 믿었다. 궁극적으로 형법과 강압적인 국가권력은 불필요해질 것이었다. 마찬가지로 자본주의 회사와 사기업이 없어진다면, 회사의 권리를 규제하는 민법 또한 불필요하게 될 것이었다. 사회주의 법학자들은 얼마나 빨리 형법, 가족법, 시민법이 시대에 뒤떨어지게 될 것인지에 대해서는 의견이 달랐지만, 사회주의에서 법에 관한 완전히 새로운 관계들이 발전할 것이라는 점에 대해서는 동의했다. 1918년 가족법 초안을 작성하는 데 기여한 청년 혁명가인 알렉산더 고이크바르크(Alexander Goikhbarg)는 이렇게 말했다. “물론 프롤레타리아 권력은 이러한 법전을 펴내는 데 있어서, 이에 아주 오래 의지하고자 하지는 않는다. 프롤레타리아 권력은 이 법들을 변증법적으로 구성하여, 하루하루 이 법들은 자기 존재의 필요성을 약화한다.” 즉, 법의 목적은 법 자체를 불필요하게 만드는 것이었다. 여성을 위한 이 새로운 삶의 비전에 가장 헌신적인 집단은 공산당 내 여성 부서인 ‘제노텔’이었다. 제노텔은 여성 당원들의 강력한 압박에 부응하여 만들어졌으며, 여성의 일상생활을 개조하는 것이 목적이었다. 여성들의 고유한 이익을 위해 여성을 조직하는 데 헌신하는 별도의 조직을 만드는 것은 쉽지 않았다. 많은 당원은 남성이든 여성이든 여성 ‘분리주의’ 개념이 부르주아 페미니즘과 관련이 있다고 보아 반대했다. 그들은 여성들이 당이나 노조와 같은 조직에 가입해야지 스스로를 특별한 집단으로 분리하지 않아야 한다고 주장했다. 제노텔의 설립은 당 내 남성과 여성 공산주의자들 간의 치열한 싸움의 결과였다. 제노텔은 대의원회의와 지방위원회로 구성되었다. 대의원회의는 노동계급 여성과 농민 여성 가운데서 ‘대표자(delegatki)’를 선출하여 짧은 기간 동안 다양한 정부 부처에 배치함으로써 관리(govern)하는 방법을 배울 수 있게 만들었다. 많은 ‘대표자’는 정부와 당에서 주도적인 자리를 차지하게 되었다. 제노텔의 지방위원회들은 아동 돌봄 센터, 세탁소 및 식당을 설립하는 데 기여했다. 제노텔은 소련 전역에서 수십만 명의 여성을 조직했다. 그들은 여성 실업에 맞서 싸웠고, 성매매 근절을 위해 노력했으며, 노동하는 여성과 주부에게 교육을 제공했다. 1920년대에는 ‘비토비키(bytoviki)’라 불리던 제노텔 활동가들이 높은 장벽에 직면했다. 사회복지 서비스를 위한 국가 자금이 부족하고 여성 실업률이 높아졌기 때문이다. 수백만 명의 어린이가 제1차 세계대전, 내전 및 1921년의 심각한 기근으로 고아가 되었다. 또한 공산당 하층과 노조에서는 많은 남성이 여성 문제에 대해 그리고 여성을 조직하는 여성에 대해 여전히 적대적이었다. 법적 측면에서도 새로운 소비에트 국가는 급진적인 조치를 취했다. 소비에트 정부는 1년도 채 지나지 않아 혁명적 비전을 법으로 담아 낸 ‘가족법’을 도입했다. 1918년 가족법은 수 세기를 군림해 온 가부장 권력과 교회 권력을 일소했다. 이것은 세계에서 가장 진보된 가족법이었다. 이 법은 세계 최초로 여성에게 완전한 법률적 평등을 부여했다. 종교적 결혼 대신 (전제적 러시아에서는 존재하지 않았던) 시민 결혼 제도를 수립했다. 사람들은 원한다면 여전히 교회에서 결혼할 수 있었지만, 국가는 더 이상 종교적 의식을 인정하지 않았다. 이 법은 어느 쪽의 배우자든 요청이 있으면 이혼을 허용했으며 여기에는 어떤 근거도 불필요했다. 남녀 모두에게 장애 및 가난에 대한 수당에 평등한 권리를 부여했다. 또한 사생(私生)이란 개념을 없애고 모든 아이들에게 결혼관계 안에서 태어났는가와 상관없이 부모의 지원을 받을 자격을 부여했다. 1920년, 소비에트는 세계에서 최초로 임신중지를 합법화하고 무료로 안전하게 병원에서 해결할 수 있도록 만들었다. 1927년에는 전국적인 격렬한 논쟁을 거쳐 법안이 더욱 급진적으로 바뀌었다. 새로운 형태의 파트너십을 권장하고 결혼하지 않은 사람들에게 법적 보호를 제공하려는 노력으로 사실혼과 동거 관계를 결혼과 법적으로 동등하게 인정했다. 동거 관계는 결혼과 동일한 법적 권리를 부여받았으며, 따라서 사람들이 결혼할 필요를 줄였다. 이 법은 이혼 절차를 더욱 간소화시켰으며, 처리기관도 법정에서 등록 사무소로 옮겨졌다. 어느 배우자든 등록 사무소에 가서 간단한 양식을 작성하면 이혼이 성립했다. 만일 상대 배우자가 함께 출석하지 않았다면 그들은 엽서로 이혼을 통지받았다! 이 규정은 유명한 소비에트의 “엽서 이혼”으로 알려졌다. 그러나 급진적인 입법과 함께 개인적 태도와 도덕에서 급격한 변화는 여성에게 해방적인 영향보다 부정적인 영향을 미친 심각한 사회 문제들을 일으켰다. 이혼이 너무 간단해서 많은 남성이 여러 번 결혼하고 이혼하며 각각의 여성에게 아이를 남기는 일이 흔해졌다. 1920년대 여성들의 높은 실업률 때문에 이혼은 특히 고통스러웠다. 많은 여성은 남편에게 의존하여 생계를 유지했다. 이혼한 여성들은 자신을 부양할 능력이 없었고 수당과 양육비를 받는 데 어려움을 겪었다. 상황이 어려운 여성들은 수당과 양육비를 청원하려고 필사적으로 법원에 몰려들었다. 대부분의 성매매 여성은 돌아온 참전 군인에게 직장을 뺏긴 뒤 다른 일자리를 찾을 수 없는 노동자들이었다. 그들 중 대다수는 부양해야 할 자녀나 노인 부모가 있었고, 돈을 벌기 위해 길거리에서 자신을 팔 수밖에 없었다. 게다가 여성이 직장이 있더라도 공동식당, 세탁소, 보육 시설이 거의 없었다. 1920년대 정부는 제1차 세계대전과 내전 기간 동안 파괴된 경제를 회복하려고 노력했다. 이러한 재건 시기에는 사회 서비스를 위해 투입할 수 있는 자원이 매우 적었다. 대다수를 차지하는 농민들도 새로운 법에 어려움을 겪었다. 농촌 가정은 여러 세대의 부계 가족이 함께 살았으며, 가부장적이었다. 그 가정의 재산 - 땅, 동물, 도구 - 은 확장된 가족에 의해 공동으로 보유되어 나눌 수 없었다. 예를 들어, 소는 절반으로 나눌 수 없었다. 농촌 여성은 마을에서 독립적으로 살 수 없었고 이것이 이혼을 매우 어렵게 했다. 마지막으로, 1920년에 임신중지가 합법화됐을 때, 대부분의 남성 법학자와 의학 전문가들은 물질적 조건이 개선되면 여성들이 임신중지를 원하지 않을 것이라고 믿었다. 그러나 이 생각은 허구로 판명되었다. 많은 여성이 임신중지를 했는데, 아이를 부양할 능력이 없어서이기도 했지만 특정 시기에 아이를 가지고 싶지 않아서이기도 했다. 공부를 원하는 학생, 일하고 싶은 여성, 여러 자녀를 키우는 어머니 등 많은 이가 가난하거나 물질적으로 어려운 상황에 근거하지 않는 개인적인 이유 때문에 임신중지를 선택했다. 피임 수단이 거의 없는 상황에서, 여성들은 임신중지를 통해 자신의 출산을 통제하고 싶었다. 임신중지 비율이 증가함에 따라 국가는 출생률 감소를 점점 더 우려하게 됐다. 1930년, 좌익 반대파와 우익 반대파에 맞서 치열한 싸움을 치른 끝에 스탈린은 당 내에서 절대적인 지도자로 등극하고 빠른 산업화와 농업집단화 프로그램을 진행했다. 여성들은 기록적인 수치로 산업 노동에 참여하였고 대도시와 산업 도시가 급속히 성장했다. 수백만 명의 농민이 시골을 떠났다. 1928년부터 1937년까지 660만 여성이 노동 시장에 진입했다. 세계 어느 나라에서도 여성이 이렇게 짧은 시간 동안 노동계급의 상당한 부분을 형성한 경우는 없었다. 당은 “생산에 집중하라”는 새로운 슬로건을 내세웠다. 이는 생활의 모든 영역에 영향을 끼쳤다. 모든 조직, 목표, 이상은 “생산주의”로 불리는 1차 5개년 계획을 달성하는 데 종속되었다. 같은 해, 중앙위는 다른 기관의 활동과 중복된다며 제노텔을 폐지했다. 여성 활동가들의 강력한 항의에도 불구하고, 당 지도자들은 그들에게 일상이나 존재(byt)에 관한 의제를 중심으로 조직하는 것을 그만두라고 지시했고, 대신 공장과 신규 집단농장의 생산량 증가에 집중하라고 지시했다. 여성들이 독립된 임금에 접근하게 된 시점에 자신들의 요구를 명확히 표현하고 일상생활을 새롭게 만들 수 있는 바로 그 조직을 상실한 것은 큰 모순이었다. 스탈린 시기에는 가족에 대한 국가의 태도에서 강력한 이념적 변화가 있었다. 산업화와 집산화는 전국적으로 대규모 동요와 사회적 혼란을 만들었다. 판사, 교육자, 사회복지사, 민병대는 길거리에서 발견되는 고아와 유기된 어린이들의 수에 점점 더 우려를 표했다. 국가는 이러한 문제에 대해 새로운 해결책을 찾기 시작하며, 초기 진보적인 시각을 버리고 더 억압적인 대안을 선호했다. 예전에는 청소년 범죄를 사회적 및 물질적 조건의 결과로 접근했던 법학자들은 이제 그것이 부모의 무책임으로 인한 결과라고 주장했다. 여성들은 본인의 자녀를 부양하지 않는 남성들을 찾아서 기소하도록 법원을 압박했다. 어떤 작가는 여성을 버리거나 그들을 “침대 파트너”로만 대우하는 남성들에 대해 “성폭력”으로 기소되어야 한다고 주장했다. 국가는 안정적인 가족을 옹호하고 남성의 무책임에 반대하는 대규모 선전 캠페인을 시작했다. 국가는 양육비 미지급에 대한 처벌을 강화하고 이혼 절차를 더 까다롭게 하는 새로운 법을 통과시켰다. “엽서 이혼”의 관행이 종료되었고, 법은 연속적인 이혼에 대해 점차 증가하는 수수료를 부과했다. 1936년에는 임신중지를 금지하고 임신중지 제공자를 처벌하는 법이 제정되었다. 이 법에는 여성들에게 더 많은 자녀를 낳도록 유도하는 강력한 물질적 인센티브가 포함됐다. 공식적인 국가 이데올로기는 이제 사회주의에서 가족이 “사라질 것”이라는 생각을 거부했다. 선전은 이제 “강력한 사회주의 가족”을 강조했다. 공포통치 동안, 초기 혁명적 법학자 중 많은 사람이 “법적 허무주의” 또는 사회주의 아래서 국가, 법, 가족이 결국 사라진다는 사상을 퍼뜨렸다는 이유로 체포되고 처형되었다. 1930년대 말에는 스탈린과 당 지도자들이 혁명 초기의 사회적, 정치적 사상 가운데 많은 부분을 거부하고 되돌렸다. 거대한 역진은 부분적으로 전통적인 가족 유대와 책임을 부활시킴으로써 사회를 안정시키고자 하는 아래로부터 사회적 압력이 낳은 결과였다. 하지만, 당 지도자들 또한 가족과 안정된 결합을 촉진하는 방향으로 이데올로기적 선택을 하면서 초기 혁명적인 시각을 거부했다. 압도적으로 여성 대다수는 임신중지 범죄화를 지지하지 않았다. 여성들은 여전히 자신들의 생식력을 통제하려고 노력했고, 음지로 밀려들었다. 출생률이 일시적으로 증가했지만, 여성들이 위험한 불법 임신중지에 의존하면서 곧 다시 감소하기 시작했다. 동시에 국가는 초기 해방적인 시각의 모든 요소를 거부하지는 않았다. 여성들은 기록적인 수치로 노동에 참여했다. 그들은 이전에 남성들에게 맡겨졌던 산업과 전문직에서 숙련직 일자리를 얻었다. 국가는 보육 시설, 공동식당, 세탁소를 만들었다. 이러한 서비스는 소련 생활의 고정된 특징이 되었고 광범위하게 사용되었다. 많은 사람은 직장이나 학교 내에 있는 비싼, 보조금을 받는 식당에서 주로 밥을 먹었고, 이는 여성들의 요리 부담을 일부 완화했다. 그러나 여성들은 여전히 대부분의 가사노동에 대한 책임을 졌다. 성역할에 대한 문화적 태도는 느리게 변했다. 여성들은 오늘날 “이중 부담”이라고 부르는 것을 담당했다. 바로 임금노동을 하고 또 대부분의 가사노동을 수행하는 것 말이다. 소비에트가 처음으로 권력을 잡은 지 100년이 넘은 지금, 혁명적 비전은 우리에게 어떤 의미를 가질까? “이중 부담”의 문제는 아직도 해결되지 않았다. 임금 노동을 하면서 가족도 돌보는 여성들은 스트레스를 받고, 지쳤으며, 분노하고 있다. 자본주의 아래서 국가도 민간 기관도 양질이면서 저렴한 보육을 원하는 수요에 보조를 맞추지 못했다. 가사노동은 사회화되지 않았으며, 여전히 여성들이 주로 수행하고 있다. 자본주의는 두 가지 해결책을 제공하지만, 그 어느 것도 문제 해결에 충분하지 않으며 부유한 사람들에게만 효과적이다. 첫 번째는 부유한 가족이 가난한 여성, 이민자, 또는 저임금 노동자를 고용하여 가사노동을 맡기는 것이다. 두 번째는 가사노동이 레스토랑, 보육 시설, 세탁소, 가정부 및 노인 보호소를 통해 이윤을 창출하는 비즈니스로 전환되는 것이다. 이 서비스들은 어느 정도 모든 가족이 의존하는데, 비용이 클수록 더 나은 질을 제공한다. 직장을 다니는 어머니의 어린 자녀들은 가족이 가진 자원에 비례한 돌봄을 받는다. 가사노동의 문제는 세계적인 형태로 나타나고 있다. 수백만 명의 남성과 여성이 경제적 필요로 인해 자국과 가족을 떠나 다른 곳에서 일자리를 찾고 있다. 가사노동자, 보육노동자, 그리고 노인 돌봄 노동자들은 이제 자국에서 멀리 떨어진 국가의 서비스 부문에서 일하기 위해 국경을 넘는다. 카타르와 사우디아라비아의 가정부들은 파키스탄과 인도에서 왔다. 미국에서는 필리핀, 라틴 아메리카 및 카리브해의 여성들이 서비스 및 가사노동을 하고 있다. 많은 사람이 법적인 서류나 보호 없이 불법으로 생활하고 있다. 그들은 자녀를 두고 가족을 떠나야만 한다. 이는 더 이상 해결책이 아니다. 100년 전 볼셰비키들은 여성해방이 어떤 모습일지에 대한 하나의 전망을 가졌다. 지금 우리에게 주어진 문제는 이런 것이다: 어떤 종류의 체제가 소수의 엘리트뿐만 아니라 모든 여성을 해방시킬 수 있을까? 오래된 미국의 투쟁가 “Pass it On”의 가사로 말하자면: 자유는 날개 달린 새처럼 오지 않아 여름 비처럼 내려오지 않아 자유, 자유는 얻기 어려운 것 그것을 위해 노력해야 해 그것을 위해 싸워야 해 밤낮으로 싸워야 해 그리고 모든 세대는 그것을 다시 얻어야만 해. [원문] https://www.leftvoice.org/womens-liberation-in-revolutionary-russia/
-
[번역] Q&A: 이스라엘과 팔레스타인의 폭력이 동일시될 수 있는가?원문: Class vs. Class - Q&A: Can the violence of the Israeli military and the Palestinians be equated? (klassegegenklasse.org) 편집자 주: 한국에서 주류언론은 현재 진행되고 있는 이스라엘의 가자 폭격에 대해 조선일보와 같이 노골적으로 친 이스라엘적 입장을 내세우거나, 혹은 이스라엘과 팔레스타인 양쪽 모두의 책임을 ‘균형감있게’ 다뤄야한다는 입장을 내세운다. 그래서 팔레스타인 문제에 익숙치 않은 평범한 노동자 민중의 시각에서, 이스라엘의 지배에 맞선 팔레스타인 민중의 권리를 방어해야한다는 입장에 대해 많은 궁금증과 질문을 가질 수 있다. 아래 기사는 혁명적 사회주의 경향인 FT-CI 그룹의 독일 온라인신문인 ‘계급대계급’에서 이스라엘의 가자 폭격 직후 발행된 기사로, 위와 같은 맥락에서 파생하는 주요한 질문들에 대해 답하고 있기에, 지면을 빌어 소개한다. 팔레스타인 전쟁에 대해 소셜 미디어와 공론장에서 매우 반동적인 분위기가 조성되고 있습니다. 우리는 가장 첨예하게 논란이 되고 있는 몇 가지 질문에 대해 답변하고자 합니다. 1) 현재 팔레스타인은 이스라엘 내 지역을 공격한 침략자가 아닌가요? 현재의 분쟁은 팔레스타인 민중에 대한 이스라엘 국가의 수십년간의 억압의 맥락 속에서만 이해할 수 있습니다. 팔레스타인은 20세기 초에 영국에 의해 점령되었으며, 영국은 유럽의 부르주아 시온주의 운동과 함께 팔레스타인에 "유대인의 국가적 고향"을 만들기로 결정했습니다. 그 전까지는 소수의 유대인들이 팔레스타인 사람들과 함께 살았습니다. 얼마 지나지 않아 시온주의 운동이 "유대인들만의 순수한 팔레스타인 땅"의 건설을 촉구하면서, 팔레스타인으로의 유대인 이민이 시작되었습니다. 수년간의 분쟁 끝에 1948년 팔레스타인인들에 대한 대량 추방과 인종 청소를 통해 이스라엘 국가가 수립되었습니다. 오늘날까지 계속되고 있는 체계적인 추방으로 인해 지금까지 720만 명의 팔레스타인 난민이 발생했으며, 이들 중 일부는 현재 가자지구로, 다른 일부는 레바논과 시리아로 피난했습니다. 현재 이스라엘 국경 내에 거주하는 660만 명의 팔레스타인인 중 475만 명은 투표권에서 제외되어 있습니다. 세계에서 가장 인구 밀도가 높은 가자지구에는 200만 명의 팔레스타인인이 살고 있습니다. 이 중 절반이 어린이입니다. 이들은 14년 넘게 이스라엘의 봉쇄 아래 살아왔습니다. 가자지구 인구의 95%는 깨끗한 물을 이용할 수 없으며 56%는 생명을 위협하는 빈곤과 굶주림에 시달리고 있습니다. 2010년부터 2019년까지 이스라엘 군의 공습이나 총격으로 3,624명의 팔레스타인인이 사망하고 103,207명이 부상을 입었습니다. 따라서 팔레스타인 민중의 저항은 수십 년에 걸친 조직적인 인종 청소, 추방, 살인에 대한 대응입니다. 팔레스타인 민중이 현재 싸우고 있는 영토는 '외국 땅'이 아니라, 그들이 폭력적으로 쫓겨난 땅입니다. 이런 의미에서 팔레스타인 민중은 이스라엘 점령에 맞서 스스로를 방어할 권리가 있으며, 그들의 행동은 점령에 대한 반발일 뿐입니다. 이 분쟁에서 ‘침략자’는 지구상의 마지막 아파르트헤이트 국가 중 하나인 이스라엘입니다. 2) "아파르트헤이트"란 무슨 뜻인가요? 국제법의 정의에 따르면 아파르트헤이트 제도는 "한 집단이 다른 집단을 억압하고 지배하는 제도적 시스템"입니다. 이는 “국제법에서 금지하는 심각한 인권 침해에 해당”합니다. (앰네스티 보고서, 2022년 2월 1일) 이에 따라 휴먼라이츠워치(Human Rights Watch)나, 이스라엘 인권단체인 브트셀렘(B'tselem), 예쉬 딘(Yesh Din)에 이어 국제앰네스티도 이스라엘에 대해 아파르트헤이트 혐의를 채택했습니다. 2년간의 연구와 법률 분석 결과에 따르면 이스라엘은 팔레스타인인의 토지와 재산을 대량 몰수하고, 불법적으로 살해하고, 강제 이주시키고, 이동의 자유를 제한하고, 팔레스타인인의 여권을 거부하는 등 조직적으로 인권을 침해하며 팔레스타인인을 제도적으로 차별하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습니다. 남아프리카공화국에도 흑인 인구를 체계적으로 억압하고 인종에 따라 법적으로 분리하는 아파르트헤이트 정권이 있었습니다. 3) "팔레스타인의 테러"에 대해서는요? 팔레스타인의 행위는 이스라엘 군의 행위만큼이나 나쁘지 않나요. "테러"라는 용어는 통치자들이 반대 세력의 신용을 떨어뜨리고 범죄화하기 위한 국제 안보 정책의 핵심으로 사용됩니다. "테러와의 전쟁"은 이제 제국주의 열강이 중동과 아프리카에 대한 야만적 개입에 정당성을 부여하는 수사가 되었습니다. 튀르키예와 북부 쿠르디스탄에서는 반대파 청년, 노동자, 학자, 정치인들이 에르도안 정권에 의해 '테러리스트'로 낙인찍히고 있습니다. 프랑스에서는 17세 소년 나헬 살해 사건에 반대하는 시위대가 분노를 표출했다는 이유로 테러리스트라고 불리기도 했습니다. 지배 질서의 관점에서 너무 위험해질 때, 억압받는 민중과 노동자계급의 모든 활동은 테러리즘으로 정의될 수 있습니다. 그러나 억압받는 자의 폭력을 억압하는 자의 폭력과 동일시할 수는 없습니다. 한편에는 여러 제국주의 국가들이 자금을 지원하는 공군과 핵폭탄까지 갖춘 고도로 기술적이고 잘 무장된 전문 군대가 있습니다. 다른 한편에는 가자지구에서 사방이 포위된 채 노천 감옥에 갇혀 조직적인 공중폭격을 받는 민중이 있습니다. 노예를 사슬에 묶어두는 노예 주인은 구조적 폭력을 당하는 노예와 동일한 보편적 도덕의 기준으로 고려될 수 없습니다. 사람들이 처음 폭력을 접했을 때 모든 면에서 이를 비난하는 것은 납득할 만한 것입니다. 하지만 팔레스타인 민중이 점령과 식민지로부터 자신을 방어하기 위해 폭력을 사용하지 않는다면 어떤 결과가 초래될까요? 현상 유지, 식민 통치, 수백만 명의 팔레스타인인에 대한 추방과 살인이 계속될 것입니다. 팔레스타인의 폭력을 끝낼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은 식민지배와 아파르트헤이트를 종식시키는 것입니다. 억압이 존재하는 한 저항은 계속될 것이기 때문입니다. 폭력을 억압에 맞선 방어를 위해서 그리고 해방을 위한 수단으로 사용하는 것과, 식민지 지배자들처럼 억압의 수단으로 사용하는 것에는 차이가 있습니다. 4) 팔레스타인 민중의 해방을 위한 투쟁에 연대하는 것은 곧 하마스와 직접적으로 연대하는 것이 아닌가요? 우리는 점령에 맞선 팔레스타인 민중의 저항과 연대하는 것이지, 그것을 주도하는 조직과 연대하는 것이 아닙니다. 팔레스타인 운동에는 이슬람운동 단체 외에도 파타(Fatah), 팔레스타인해방인민전선(PLFP) 등 다양한 세력이 존재합니다. 현재 하마스가 운동을 주도하고 있다는 사실은 운동의 좌파 및 사회주의 (스탈린주의) 세력이 이전에 점령, 그리고 ‘2국가 해법’과 같은 시온주의 앞에서 기권했기 때문입니다. 오늘날 하마스도 두 국가 해법을 옹호합니다. (*편집자 주: 알자지라 기사에 따르면(기사보기) 하마스가 2017년에 새로 내놓은 입장은 다음과 같은 두 부분으로 요약할 수 있다. 첫째, 1967년 (제3차 중동전쟁 이전의) 경계를 따라 (즉 온전한 예루살렘+서안지구+가자지구로) 팔레스타인 국가를 수립한다는 데 동의한다. 둘째, 이스라엘 국가를 인정하지 않는다. 이스라엘과 팔레스타인해방기구가 추진한 ‘두 국가 해법’이란 기본적으로 ‘팔레스타인의 분리 독립’뿐만 아니라 ‘이스라엘 국가 인정’을 모두 포함하는 개념으로 해석해야 맞을 듯하고, 그런 점에서 하마스의 입장은 ‘두 국가 해법’에 대응하는 전술적 입장이지 ‘두 국가 해법’에 대한 동의는 아닌 것으로 보인다. 달리 말하면, 2017년 하마스의 새 입장에서 ‘이스라엘 국가 인정’을 거부한 부분은 장차 이스라엘이 차지한 영토도 팔레스타인 영토로 회복하겠다는 의지를 내재한 것으로 해석된다. 기사 막바지에 Palestinian National Initiative 리더가 “1967년 경계를 따라 팔레스타인 국가 수립을 수용하는 것은 두 국가 해법에 대한 수용을 뜻한다”는 부분이 있는데, 이것은 객관적 성격 규정이라기보다는 그의 ‘(이제 하마스도 두 국가 해법에 동의했으니 더 이상 이스라엘이 핑계 댈 게 없고 두 국가 해법 실현에 임할 수밖에 없으리라는) 희망을 담은 해석’으로 보인다.) 우리는 저항 세력의 현존하는 지도부가 사라지길 바랄 수는 없으며, 우리의 전술과 제안은 현실 상황에 근거해야 합니다. 오늘날 하마스는 팔레스타인 저항세력 중 가장 큰 조직입니다. 이에 대한 책임은 팔레스타인 좌파뿐만 아니라, 무엇보다도 이스라엘과 국제적 차원에서 좌파의 수동성에 있습니다. 하마스의 종교적인 종파성과 반동적 리더십은 무슬림 형제단 및 튀르키예의 정의개발당(AKP)과의 정치적 근접성으로 드러납니다. 이 경향은 반퀴어, 반여성적이고, 민영화에 대한 광신자이며, 노동자의 생계를 공격하고 불안정화로 밀어 붙입니다. 또한 부패와 외국 자본과의 협력으로도 유명합니다. 하마스는 팔레스타인 해방을 대가로 외국 자본에 경제 및 정치 프로그램을 개방하는 경향이 있습니다. 이 운동이 공산주의자들을 사냥하고 고문한다는 것은 더 이상 비밀이 아니어야 합니다. (이와 관련해 "계급대계급"으로부터 아래와 같은 보충설명을 받았다: “하마스의 자본주의적 성격은 무슬림형제단 및 그 후원자인 카타르 정부와의 긴밀한 관계를 통해 알 수 있습니다. 무슬림형제단은 항상 사유 재산을 보호해 왔습니다. 하마스는 2006년부터 가자지구를 장악하고 모든 종류의 시민 사회를 탄압하고 있습니다. 지난해 하마스 경찰이 열악한 생활 환경에 항의하는 시위를 해산하는 장면을 보도한 기사를 볼 수 있습니다. 또한 평화 운동가들을 투옥하고 고문하기도 했습니다. 최근에는 가자 지구에서 탄압할 공산주의자가 그리 많지 않습니다. 그러나 1980년대 후반에 시작된 하마스는 훨씬 더 큰 규모의 세속주의 및 좌파 조직을 "부도덕하다"는 이유로 공격했습니다. 이것이 이스라엘이 원래 그들을 지원한 이유입니다.”) 팔레스타인이 스스로를 해방하기 위해서는,아파르트헤이트에 맞선 투쟁과 사회주의 사회를 위해 제국주의에 맞서는 투쟁을 결합하는 혁명적 사회주의 지도력이 필요합니다. 해방을 위한 올바른 방법은 대중적 봉기인데, 하마스는 자신들의 종파적 전략에 반하기 때문에 이를 조직하기를 원하지 않습니다. 그러나 우리는 하마스의 반동적 지도력에도 불구하고 이스라엘의 군사적 패배에 찬성합니다. 이스라엘의 패배는 이스라엘과 모든 제국주의 동맹국을 극도로 약화시켜 전 세계적으로 착취당하고 억압받는 팔레스타인 민중의 해방투쟁 조건을 크게 개선할 것이기 때문입니다. 이스라엘의 패배는 이스라엘과 팔레스타인에서 예비-혁명적 상황을 촉발할 수 있습니다. 5) 저항 운동과의 연대는 민간인 희생에 대한 승인을 의미하나요? 우리는 양측 모두에서 사망자가 발생한 원인은, 시오니스트 아파르트헤이트 정권, 그리고 팔레스타인 민중에 대한 대규모의 일상적 폭력이라는 점을 분명히 밝힙니다. 지속적인 평화를 위한 유일한 관점은 팔레스타인 민중에 대한 식민지배와 권리박탈을 종식시키는 것입니다. 식민주의 하에서 비폭력 사회나 비폭력 저항은 있을 수 없습니다. 우리는 팔레스타인 민중의 해방을 위한 투쟁에 연대합니다. 그러나 우리는 해방 운동의 최전선에 있는 하마스 같은 조직과는 다른 전략과 방법을 추구합니다(이에 대한 자세한 내용은 질문 6) 참조). 우리는 팔레스타인 저항 운동의 투쟁에 국제적으로뿐만 아니라 이스라엘 노동자계급 내에서의 동맹이 필요하다고 생각합니다. 우리는 이스라엘 노동계급이 이 투쟁에서 할 역할이 있으며, 자국 정부에 맞서고 아파르트헤이트 종식을 위해 싸우며 시오니즘과 단절할 책임이 있다고 믿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민간인에 대한 공격을 거부합니다. 이는 팔레스타인 노동자들을 전략적 동맹인 이스라엘 노동자들로부터 고립시킵니다. 이스라엘 노동자들은 자국에 대한 투쟁과 평화 공존에 대한 신념을 향해 반드시 획득돼야 합니다. 그래서 사회주의 기반의 자유로운 다민족 팔레스타인이라는 일국가 해법이 실현될 수 있도록 해야 합니다. 특히 전투가 벌어지고 있는 현재 이스라엘 영토의 남부 지역에는 나크바의 흔적이 곳곳에 남아 있습니다. (이스라엘의) 마을, 도시, 키부츠는 파괴된 팔레스타인 마을 바로 옆에 지어졌습니다. 키부츠 운동의 임무 중 하나는 점점 더 많은 시오니스트 전초기지를 통해 국경을 확장하는 것이었습니다. 이러한 키부츠의 주민들은 많은 경우 이러한 원초적인 폭력 행위의 직접적인 결과로 그곳에 살고 있습니다. 우리는 이스라엘 군이 발표한 공격을 정당화하기 위해 팔레스타인에 대한 75년간의 억압, 추방, 토지 절도, 살인, 포위 상태를 잊게 하려는 부르주아 언론이 민간인 사상자를 일방적으로 강조하는 것에 강력히 반대합니다. 2009년 이후 현재까지 공습과 총격으로 사망한 3,000명의 팔레스타인인과 마찬가지로, 현재의 사망자들도 식민주의가 만들어낸 결과입니다. 6) 사회주의자들은 팔레스타인-이스라엘에 대해 어떤 해결책을 제안하나요? 혁명적 마르크스주의자로서 우리는 팔레스타인의 민족 자결권, 그리고 1948년 시온주의 국가 헌법으로 시작해 이어지고 있는 이스라엘의 점령에 대항하는 투쟁을 옹호합니다. 이 권리는 제국주의와 시오니즘에 의해 거부되었습니다. 우리는 ‘두 국가 해법’을 거부합니다. 왜냐하면 이스라엘의 지배 조건 하에서 ‘두 국가 해법’이 지속적인 억압을 의미하며 실제로 불가능한 유토피아란 것이 입증되었기 때문입니다. 계속되는 식민지화, 이스라엘의 군사적 확장, 해결되지 않는 팔레스타인 민중의 탈출, 추방, 집과 마을 약탈 문제는 이 ‘해결책’이라는 게 불가능하다는 것을 보여줍니다. 팔레스타인인과 유대인이 평화와 자매형제애 속에서 함께 살 수 있는 유일하게 가능한 해결책은 아파르트헤이트 정권과 이스라엘 식민국가에 대항하는 것입니다. 이 투쟁은 이 지역에 대한 제국주의 지배를 종식시키기 위한 투쟁과 분리할 수 없습니다. 중동사회주의공화국연맹을 향한 한 걸음으로, 우리는 혁명적 마르크스주의자로서 ‘역사적 팔레스타인 영토’ 전체에서의 사회주의, 세속주의, 다민족 팔레스타인 국가에 대한 관점을 옹호합니다. 점령에 반대하는 팔레스타인 민중의 저항에 연대를 보여줍시다. 독일에서는 독일 연방 정부와 이스라엘 아파르트헤이트 정권의 배후를 감싸고 있는 대기업에 맞서 싸우고, 노동계급의 수단인 대중 시위, 파업, 점거를 통해 투쟁합시다. 양동민 옮김
-
[주간 여성뉴스 브리핑_22.11.21] 11월 25일 국제 여성폭력 철폐의 날, 여성에 대한 모든 폭력을 멈춰라!발행일_ 2022. 11. 21 | 11월 셋째 주 여성뉴스 브리핑 사회주의를향한전진 여성운동위원회 1. 프랑스 8만 명, 여성 폭력 규탄 행진 https://www.laprensalatina.com/tens-of-thousands-march-in-france-to-demand-action-on-gender-violence/ 국제 여성폭력 철폐의 날을 앞두고 최소 8만 명이 19일 파리에서 행진했다. 시위 참가자들은 연평균 225,000명의 여성이 친밀한 파트너로부터 성적, 신체적 폭력을 당하고 있지만, 정부가 이를 근절하기 위한 대책을 마련하지 않고 있다고 비난했다. 여성단체들은 2021년 122건의 여성살해가 일어난 데 이어 올해 이 수치는 100건에 달했다고 밝혔다. 프랑스 정부의 보고에 따르면, 현지에서 강간 및 강간 시도는 2017년 16,900건에서 2021년 34,300건으로 2배 이상 증가했다. 오는 25일 국제 여성폭력 철폐의 날을 앞두고 세계 도처에서도 유사한 시위가 벌어질 것으로 예상된다. 유엔(UN)에 따르면, 세계 여성 3명 중 1명이 평생 1번 이상 주로 친밀한 파트너에 의해 신체적, 성적 폭력을 당한다. 2. "멈춰!" 11월 25일 국제 여성폭력 철폐의 날에 돌아보는 한국과 세계 여성폭력의 실상 ※위 사진이 잘 보이지 않으면 하단 첨부파일을 열어주세요. 3. 이란 시위, “혁명 향한 전환점에 서다” https://www.iranintl.com/en/202211202324 이란 시위가 완전한 혁명으로 향하는 전환점에 서 있다고 언론이 보도했다. 영국 기반 반체제 언론 <이란 인터내셔널>은 20일 지난 2개월 동안 이란 시위대는 정권 개혁은 불가능하며, 지도자는 없더라도 체제의 전복을 추구하고 있다는 점을 분명히 했다고 밝혔다. 시위는 현재 대부분의 주요 도시에서 더욱 격렬하고 빈번해졌으며, 전국의 작은 마을이나 외딴 지역으로도 확산했다. 인구 4천 명 이하의 작은 도시인 머뮤리나 1만4천 명 정도의 에파츠에서도 시위가 일어났으며, 인구 5만의 아바데흐에서는 “이것이 마지막 메시지이다. 우리의 목표는 전 체제를 무너뜨리는 것”이라는 구호가 울려 퍼졌다. 파업 또한 확산하고 있다. 지난 13-14일에는 이란교사노조연합조정위원회(Coordination Council of Iranian Teachers' Trade Associations)의 발의에 따라 수많은 학교에서 파업이 벌어졌다. 노동자들은 잇따라 살해된 10대 학생들의 죽음에 항의하며 정권 퇴진을 촉구했다. 이란 최대 자동차 부품 설계 및 제조업체인 크라우즈사의 노동자들도 19일 파업에 돌입했다. 이 회사는 이란 정권의 주요 수입원인 자동차 제조산업의 중추를 이룬다. 이란에서 3번째로 큰 국영 이스파한 철강회사 노동자들도 시위에 연대하여 파업에 돌입했다. 앞서 이란 남부에서는 국영 채굴업체 노동자들이 정부의 잘못된 경영과 불공정한 임금에 항의하며 파업에 돌입했다. 또 여러 개의 정유공장에서도 파업이 일어났다. 특히 11월 15일부터는 시위대 학살 3주기를 계기로 최소 3일간 테헤란, 마슈하드 등 여러 도시에서 파업과 상점 폐쇄 조치가 잇따랐다. 2019년 당시 이란에서는 에너지 가격이 50-200% 인상되면서 시위가 촉발된 뒤 빠르게 반정부 시위로 발전하자 이란 정권이 유혈 진압에 나서 최소 1,500명에서 최대 3천 명까지 학살하고 2만 명을 체포했다. 한편, 이란의 인권운동가통신(HRANA)에 따르면 16일까지 어린이와 청소년 58명을 포함해 최소 402명이 사망했다. 또 학생 524명을 포함해 최소 16,813명이 체포됐다. 13일 이란 정권은 시위자 1명에게 사형선고를 내렸고, 추가로 20여 명이 같은 선고를 받을 수 있다는 전망도 나오고 있다. 반정부 시위는 약 150개의 도시와 최소 140개의 대학에서 지속되고 있다. 4. 카타르 월드컵 호텔 이주 여성 노동자, 젠더폭력 악화 우려 https://www.theguardian.com/global-development/2022/nov/17/female-migrant-workers-speak-out-about-harassment-in-qatar-world-cup-hotels 카타르 호텔산업에서 일하는 여성 이주 노동자들에 대한 젠더 폭력 위험이 월드컵 기간 증가할 것이라는 우려가 제기됐다. 카타르 호텔산업 노동 환경을 연구해온 인권단체 활동가 이소벨 아처(Isobel Archer)는 <가디언>에 카타르 월드컵 대회에는 건설 노동자의 노동권 문제뿐만 아니라 호텔 서비스직 여성 노동자들에 대한 젠더 폭력 문제도 존재한다며, 유명 스포츠 행사들은 여성에 대한 폭력의 증가와 연관되어 있고, 호텔 서비스직 여성 노동자들이 직면하는 위험은 더욱 증가할 것이라고 밝혔다. 2020년 통계에 따르면 카타르 호텔 서비스직에서 일하는 여성 이주 노동자들의 비율은 5분의 1이 조금 넘는다(하청 노동자를 제외했기 때문에 실제 수는 이보다 더 많을 것으로 예상). 카타르에서는 월드컵 개최를 위해 108개의 호텔이 추가로 지어졌으나 호텔 서비스직 여성 노동자들이 일상적으로 경험하는 성희롱과 신체적, 언어적 학대 등 젠더 폭력을 막을 수 있는 대책은 마련되지 않아 시급한 조치가 필요한 실정이다. 5. 여성가족부 폐지 저지와 성평등 정책 강화를 위한 범시민사회 전국행동 발족 http://www.newscham.net/news/view.php?board=news&nid=106932 윤석열 정부의 여성가족부 폐지 정책을 저지하기 위한 시민사회 공동행동 연대체인 ‘여성가족부 폐지 저지와 성평등 정책 강화를 위한 범시민사회 전국행동’(이하 범시민사회 전국행동)이 전국 693개 단체의 참여 속에 지난 11월 8일 발족했다. 이들은 정부가 추진 중인 여가부 폐지 정책은 “성평등 민주주의의 심각한 후퇴’이자 ‘여성가족부가 전담부처의 위상을 잃을 경우, 국무위원으로서의 심의·의결권, 전담부처의 입법권과 집행권이 상실되며, 정부부처와 지자체의 성평등 정책 총괄·조정기능은 축소·폐지될 것”이라고 출범 기자회견을 통해 목소리를 높였다. 범시민사회 전국행동은 이날 발족을 시작으로 여가부 폐지 저지와 성평등 정책 강화를 요구하는 ‘대국민 온라인 서명운동’과 전국 집중집회, 간담회, 국제연대활동 등 다양한 실천을 향후 전개해나갈 예정이다. 한편, 지역에서도 10일 울산행동 발족을 시작으로 경남, 경기, 인천, 제주, 대전, 전북, 광주 등 8개 지역행동 조직이 발족해 자체 활동을 계획하고 있다. 공동행동에 따르면, 일부 지자체에서는 ‘여성’이나 ‘성평등’ 등을 부서명에서 삭제하거나 아예 부서를 폐지하기 위한 조례 개정에 나설 예정이다. * 대국민 온라인 서명운동 참여하기 : https://campaigns.kr/campaigns/80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