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청 정규직 남성 노동자(남): 퇴근하고 뭐해?
비정규직 여성 노동자(여): 할 일은 없지만, 저녁 먹자고 그러진 마세요.
(...)
여: 저는 그런 관계 싫어해요.
남: 그냥. 내 친구가 갑자기 생각나서 A씨랑 알콩달콩 데이트하면 좋겠다고 생각돼서.
여: 왜 유부남들을, 가정을 잘 지키라고 하셔야지 왜 그러신지.
기아차 비정규직 청소노동자들의 선전전 피켓
기아자동차 화성공장 비정규직 청소 노동자 A씨는 원청 직원 ㄱ씨에게 이런 식의 전화를 받곤 했다. “간부 숙소에 혼자 사는 사람이 있는데 부인과 사이가 안 좋으니 잘 꼬시면 옷도 가방도 사줄 거”라면서 “저녁에 외로우니 술도 사달라고 연락도 해봐”라는 말을 듣기도 했다. 더 노골적인 내용의 전화도 있었지만, 그때마다 전화를 바로 끊기는 어려웠다. 보복성 괴롭힘 때문에 가능한 그의 ‘성질’을 건드리지 않기로 했다.
청소 노동자들은 심증은 분명하지만, 물증은 잡기 어려운 보복을 많이 당하고 산다. 누군가는 변기를 막아놓는다든가, 핸드타월을 왕창 뽑아서 먼저 넣고 볼일을 봐 일부러 넘치게 한다. 커피를 바닥에 질질 흘리고 가기도 한다. 화장실에는 감시카메라가 없어서 누가 했는지 알 수가 없다.
일부 원청 직원들은 A씨를 동등한 노동자로, 동등한 인간으로 생각하지 않았다. 임금과 노동조건에 이어 비정규직 여성 노동자가 당하는 또 다른 차별이었다. 지금은 퇴사한 어느 원청 직원은 매일 같이 ‘밥 먹자’, ‘술 먹자’라며 추근대기 일쑤였다. 어느 날에는 “오늘 바지를 샀는데 이것 좀 봐줘”라고 말을 걸더니 “바짓단을 수선하게 접어줘 봐”라고 하며 몸을 이리저리 돌리면서 “나 운동 많이 하는 사람이야. 다리 근육 좀 만져봐. 엉덩이도 이 나이에 이렇게 업 된 사람은 별로 없어”라고 신체 접촉을 유도하며 수작을 걸었다. 또 회식 자리에서는 화장실을 따라오더니 갑자기 손을 잡고 벽에 밀치며 입을 맞추려 했다. 화를 내는 A씨에게 그는 “장난이야”라고 돌아서 가버리면 그만이었다.
A씨는 청소와는 무관한 일도 했다. 밥과 찌개를 끓였다. 점심식사 20분 전인 10시 30분부터 원청 직원들이 A씨가 해주는 밥을 먹고 10시 50분부터는 배드민턴 운동을 해야 했기 때문이었다. 가끔은 호주머니까지 털어 돼지고기나 식재료를 사 요리를 해야 했고, 찌개는 매일 다른 종류로 끓여야 했다. 먼저 그 일을 해 왔던 김○○ 언니는 “이곳에서 편하게 지내려면 ㄱ씨한테 잘 보여야 해. 혜택을 받는 거니까, 이런 재료 사는 거 아까워 말고. 너 오기 전부터 여기 여자들 했던 일이니 그냥 해”라고 했다. 그러나 A씨는 그 혜택이 뭔지 받아본 적도 없고, 정신적으로도 육체적으로도 불편하고 괴롭기만 했다.
또 다른 원청 직원은 커피를 마시며 노닥이자는 말은 매일 같이했다. 강요에 못 이겨 노래방에 갔을 때는 온갖 추잡한 짓을 하려 했다. A씨는 수시로 이런 말을 들어야 했다. “가서 친해질 겸 앉아만 있으면 돼. 니가 그냥 꽃이지 꽃.”
A씨는 이러한 성희롱과 성추행, 부당한 업무 지시를 2년 가까이 거부하지 못했다. 괴롭힘이 두려웠고, 관행을 깨는 것 같아 마음이 불편했다. 하지만 바른 일이 아니라는 생각은 분명했고 김○○ 언니의 퇴사를 계기로 그 틀을 깨기로 결심했다. 처음에는 밥과 설거지를 거부했고, 이후에는 원청 직원들을 멀리했다. 더 일찍 그렇게 하지 못한 것을 후회했다.
그러자 원청 직원들은 A씨의 ‘행실’을 문제 삼으며 나쁜 소문을 냈다. 분노한 A씨는 카톡방을 만들어 그들을 모두 초대하고 경고했다. 원청 직원을 따르던 일부 비정규직 동료들의 눈초리와 말도 참기 힘들었다. A씨는 그럴 때마다 사측에 어떤 조치라도 해달라고 사정했지만, 관리자들은 아무런 관심도 보이지 않았다.
6년 동안 한 번도 없었던 업무상 클레임도 찾아 왔다. 최근에는 눈 밖에 난 A씨와 그의 동료에게 산업폐기물을 청소하라는 부당한 지시까지 떨어졌다. A씨는 누가 누가 공모해 이 일을 밀어붙였는지 확실히 알고 있다. A씨는 투쟁하기로 결심했다. 동료와 함께 투쟁을 시작했다.
기아차 화성공장 전경
일상적인 직장 내 성희롱
물론 이 같은 성희롱은 A씨만 겪는 일은 아니다. 가령 고충처리를 하러 회사에 갔다가 되려 성추행을 당한 또 다른 비정규직 여성 청소 노동자 B씨의 사례가 있다.
B씨는 2024년 현장 대의원으로 활동하던 중 C씨가 집단적으로 당한 직장 내 괴롭힘에 대한 고충 처리를 맡았다. 괴롭힘 가해자가 회사 대표의 친동생이거나 인척 관계인 조건에서 회사는 사측 위원들로만 고충처리위원회를 구성하여 사건을 은폐하려 했다.
B씨는 2024년 5월 이에 항의하기 위해 피해 조합원과 함께 회사 대표를 면담하러 갔는데, 언성이 높아져 서로 욕을 하게 되었고 이때 성추행을 당했다. 그 자리에 있던 회사 대표는 마치 즐기듯 그 장면을 쳐다보기만 했으며, 현장소장도 아무렇지 않게 방관했다.
B씨는 그런 성추행을 겪은 날부터 해당 관리자를 볼 때마다 극심한 혐오감과 트라우마를 겪었다. 그리고 이는 정신적 고통뿐 아니라 신체적 반응으로까지 이어졌다. B씨는 잠도 안 오고 미쳐버릴 것 같다. 아무것도 할 수 없는 상황이다.
회사는 B씨가 아무런 폭행도 하지 않았는데도 그를 업무방해죄와 폭행죄로 고소했다. 형량이 나오면 이걸로 해고하겠다는 소문도 퍼트렸다. 또 현장에서 뺨을 때렸다는 식의 거짓 소문을 내 대의원으로서의 신뢰도를 떨어뜨렸다. B씨도 혼자 삭히지 않기로, 이대로 당하지 않기로 마음먹었다.
“청소와 식당 노동자가 더 이상 무시받지 않아야 한다”
노동자들은 더 이상 참지 않기로 했다. 뭉치기로 했다. A씨는 성희롱 사건을 원청에 통보했다. 그러나 회사는 협상 테이블을 마련하지 않으려고 했다. 그나마 최근 요구안에 대해 협의를 해보겠다는 연락이 왔지만, 없는 걸로 하려는 것 같다. 그래서 A씨는 직장 내 성희롱 피해를 제대로 해결할 수 있는 방법을 찾고 있다. B씨도 지회에 얘기했고 금속노조 여성위원회에 제소할 생각이다.
이미 A씨는 직장 동료 김은희(가명) 씨와 함께 회사의 부당한 업무 지시에 맞서 1개월이 넘게 싸우고 있기도 하다. B씨와 C씨는 이들의 투쟁에 누구보다도 앞장 서 연대하고 있다. 요구안으로는 △긴급대응팀에 대한 정확한 정보 제공(임금, 채용비리) △탄압한 하청업체 관리자(보광) 해임 △제대로 된 노사 협의안 이행 △조합원이 요구하는 기간만큼 사과문 게시 △재발방지대책 및 보복금지 등 7가지를 걸었다.
비정규직 노동자도 인간답게 살기 위한 노동자들의 단결은 강력하다. C씨는 “우리가 여기서 그만두면, 다른 조합원들이 불만을 말해봐야겠다는 생각을 접어버릴 것이다. 우리가 이겨야 다른 사람들도 나설 수 있다”고 한다. 김은희 씨는 “나는 10년을 더 일해야 한다. 내 현장을 지키기 위해 싸우고 싶다”라고 한다. A씨는 “비정규직이 이제 청소와 식당 업종만 남았다. 비정규직 청소와 식당 업체만 남았는데, 이번 부당 업무지시 건은 노동강도가 세지고 탄압이 심해지고 있는 사례다. 우리가 이 투쟁에 이기지 않으면, 점점 더 열악한 조건에서 일할 수밖에 없기에 반드시 이겨내야 한다. 직장 내 성희롱이 널리 퍼져 있는 이 현장을 바꾸고 싶다. 청소와 식당 노동자가 더 이상 무시당하지 않도록, 같은 노동자라는 인식을 주고 싶다”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