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진: MBC
내란 수괴가 풀려났다. 한덕수도 복귀했다. 이제 노동자 민중은 윤석열의 파면 기각까지 걱정하고 있다. 겨우내 차가운 광장에서 피눈물 흘리며 외쳤던 주권자의 권리는 어디로 갔는가?
윤석열은 자신이 곳곳에 심어 놓은 부르주아 엘리트들이 값어치를 하고 있다며 회심의 미소를 짓고 있을지 모른다. 노동자 민중이 선출하지도 않은 극소수 엘리트가 수백만, 수천만 노동자 민중의 의지를 배반하고 있다.
무대 뒤의 실세들
그나마 주기적인 선거로 바뀌는 대통령이나 국회의원들만큼이나, 아니 그 이상으로 강력한 정치적 영향력을 행사하는 세력이 바로 검찰, 경찰, 법원, 군대 내에 있는 부르주아 엘리트들이다. 이 엘리트 집단은 국민의힘이 집권하건 민주당이 집권하건 상관없이 국가기구를 실질적으로 관장하는 진정한 실세다.
폭력적인 자본주의 국가기구의 계급적 본성을 체화한 이들은, 당연하게도 노동자 민중에게 적대적이다. 이들은 대중의 통제를 받지 않으며, 어떤 행보를 하건 그 임기 역시 거의 완벽하게 보장된다. 이들이 무서운 이유다.
이들은 노동자 민중을 위한 충실한 하인 노릇을 하겠다고 선언하기도 한다. 그야말로 ‘쇼’일 뿐이다. 무대 뒤에선 다른 일이 벌어진다. 그들은 노동자 민중의 통제에 복종할 생각이 전혀 없다.
검찰개혁이라는 뜬구름
한때 민주당이 검찰개혁의 상징으로 칭송했던 공수처를 보자. 그들은 공수처가 자본가들과 결탁한 부패·비리 고위공직자들을 제대로 수사할 것처럼 떠벌렸다. 정작 1년 예산이 200억이라는 공수처가 지난 4년 동안 기소한 사건은 5건이고, 그나마 유죄를 입증한 사건은 1건이었다. 그야말로 유명무실한 기구였다.
공수처는 대통령의 업무지휘를 받지 않는 독립행정기관이다. 형식적 독립성은 있지만, 공수처장은 대통령이 지명한다. 독립성은 말로만 그칠 뿐이고, 정부의 입김이 강하게 작동할 수밖에 없다.
윤석열이 임명한 공수처장 오동운은 윤석열 체포를 위해 200명의 인력만 투입하며 사실상 ‘쇼’를 하다가, 뒤늦게 여론에 밀려 영장을 집행했다. 내란죄 수사권 논란에서 볼 수 있듯, 공수처는 검찰·경찰과 수사 범위가 중복되어 수시로 수사권 경쟁을 벌일 수밖에 없는 조직이다. 도대체 이런 경쟁이 노동자 민중의 삶과 무슨 관계가 있는가?
무엇보다 공수처에서도 노동자 민중의 실질적인 통제권은 전혀 보장되지 않는다. 노동자 민중이 공수처장을 비롯해 공수처 간부들을 직접 선출할 권리가 전혀 없다. 수사 과정도 알 수 없고, 그 어떤 자료도 볼 수 없다. 최소한의 통제도 불가능하다.
다른 국가기구의 부르주아 엘리트들도 제멋대로 행동하고 있다. 검찰은 윤석열 체포를 끝까지 방해한 경호차장 김성훈의 구속영장을 세 차례나 반려했다. 경찰청장과 서울경찰청장이 내란 동참으로 구속되었지만, 박현수, 백남익 등 내란 가담 의혹을 받은 또 다른 쓰레기들이 경찰 내부 인사에서 무더기로 승진했다.
자본주의 국가기구에 대한 모든 종류의 환상을 버려야
소위 진보적 법관으로 알려진 헌법재판소의 문형배, 이미선도 한덕수 탄핵소추안에 대한 기각 의견을 냈다. 한덕수가 계엄 당시 적극적인 행위를 했다고 인정하기도 어렵고, 헌법재판관 후보자 3인을 임명하지 않은 행위는 위법하지만, 파면을 정당화할 만큼 중대한 법률 위반 행위가 아니라고 했다. 계엄을 막으려는 그 어떠한 실질적 행동도 하지 않으면서 계엄을 묵인했고, 한동훈과 공동담화문을 발표하면서 실권을 장악하려 했던 한덕수에게 면죄부를 줬다.
부부가 수십억 주식 부자로 알려져 논란이 됐던 이미선은 2013년 대법원 전원합의체의 '통상임금 판결' 과정에 재판연구관으로 참여했는데, 희대의 궤변인 '신의칙' 논리를 옹호하는 논문을 기고했다. 당시 사법부는 자본가와 노동자 사이에 ‘신의성실의 원칙’, 즉 신의칙이 있으므로 노동자는 응당 받아야 할 자신의 몫을 자본을 위해 내어주어야 한다는 논리를 폈다. 이는 그 자체로 근로기준법 위반이었는데, ‘노사합의가 있을 경우 정기상여금 등 각종 정기수당을 영원히 통상임금에 포함하지 않아도 된다’는 해괴한 논리였다. 자본가와 노동자 사이에 원칙이 있다면 그것은 계급투쟁의 원칙일 뿐이다. 그런데도 이미선은 이 해괴한 ‘신의칙’에 대해 "법적 안정성과 근로기준법의 강행 규정성의 조화를 이뤘다"라고 얘기했다. 자본주의 사회에서, 자본의 이윤을 위해서라면 못 만들 논리가 없다.
이 사례에서 볼 수 있듯 소위 '진보'로 분류되는 판사들도, 근본에서 노동자 민중의 편이 아님을 잊지 말아야 한다. 그들은 노동자 민중의 권리보다 자본주의 체제의 안정을 중요하게 여긴다. 자본주의 체제는 안정되어야 하며 그것이 이들의 대전제다. 그런 관점 아래에서는 언제든 '파면을 정당화할 만큼 중대한 법률 위반 행위가 아니다'라는 논리가 나올 수 있다. 설사 이들이 윤석열을 파면한다고 치자. '파면을 정당화할 만큼 중대한 법률 위반 행위'라는 논리도 그 대전제에서 나온다. 즉, 이들이 윤석열을 파면한다면, 그 이유는 분노한 노동자 민중의 투쟁으로 체제가 뒤집어질 가능성을 막아야 하기 때문이다. 그렇기에 소위 '진보적 법관'들에게 환상을 갖고 끌려다녀서는 안 된다.
그 어떤 국가기구도 노동자 민중을 대신해 내란 세력을 진압하지 않는다. 경찰, 검찰, 법원 등에 대한 모든 종류의 환상을 버려야만 노동자 민중의 투쟁은 올곧게 전진할 수 있다.
자본가 민주주의의 실체
검찰과 판사들처럼 노동자 민중에게 선출되지도 않은 권력이 주권자 위에, 노동자 민중 위에 군림하며 무소불위의 권력을 휘두른다. 그들은 노동자 민중의 통제를 단호히 배격한다. 자신의 권력 자체를 위협하는 노동자 민중의 압도적 힘이 행사되지 않는 한, 그들은 태도를 바꾸지 않는다.
그들은 자본가들과 권력자들에게는 솜방망이 처벌을 내리지만, 노동자 민중에게는 무한하게 억압적 태도로 나온다. 이 주권자로부터의 '자립성'은 계엄 국면에서 극에 이르고 있다.
이처럼 자본가 민주주의는 노동자 민중의 직접적 국가운영 참여를 차단한다. 그래야 국가기구와 국가 관료들이, 정치인들이 노동자 민중을 대리해 사회를 좌우할 수 있기 때문이다. 이 자본가 민주주의는 몇몇 자본가정당이 선거 놀음으로 노동자 민중을 기만하는 껍데기 민주주의다.
국가기구와 관료들의 배후에는 누가 있는가? 자본가들은 검찰, 법원 등의 엘리트들과 수백 가닥의 사슬로 연결돼 있다. '삼성장학금 검사', '떡값 검사'는 옛날 얘기가 아니다. 작년에는 쿠팡이 정·관계, 언론계, 법조계 인사 61명을 영입했다는 사실이 밝혀지기도 했다. 국가기구와 관료들은 자본가계급의 이해를 대변한다.
따라서 자본가 민주주의는 노동자계급의 절박한 생존권에 무관심하다. 세종호텔노조, 거제통영고성하청지회, 옵티칼지회 노동자가 목숨 걸고 고공농성을 하고 있지만 정부, 수많은 언론, 자본가정당들은 신경도 쓰지 않는다. 자본가 민주주의는 '민주주의'를 자본가계급의 이해와 요구를 관철하는 범위 내로만 제한하며, 무엇보다 노동자계급에 대한 자본가계급의 착취를 보호한다. 정리해고, 비정규직화, 저임금, 불평등, 차별 등 온갖 재앙이 노동자들을 덮쳐도, 자본가 민주주의는 이 모두를 합법화한다.
반도체특별법과 부자감세를 추진하며 삼성 이재용을 만나 "기업이 잘 되어야 나라가 잘 된다"라고 추켜세운 이재명이 추구하는 민주주의는, 철저하게 자본가 민주주의의 틀 안에 있다.
근본 대안을 향해 나아가자
노동자 민주주의는 전혀 다르다. 노동자 민주주의는 노동자 조직과 투쟁을 바탕으로 노동자계급이 사회의 주역으로 떠오르는 실질적 민주주의다. 현장, 작업장을 기본으로 노동자 민중의 대표자들이 선출되고, 이들이 구성하는 정부가 국가를 운영하는 민주주의다. 정부의 모든 핵심 관리는 노동자 민중 대표자회의, 즉 노동자 정부에서 선출되어야 한다. 이들은 그 어떠한 특권도 누릴 수 없으며, 노동자의 평균임금만 받아야 한다. 노동자 민중은 언제든지 이들을 소환하고 파면할 권리를 가진다. 이들은 임기를 마치거나 소환되면, 현장과 작업장으로 돌아가야 한다.
다시 말해, 몇 년에 한 번씩 '누가 노동자계급을 지배할 것인가'를 결정하는 자본주의 선거가 아니라, 사회의 중요한 문제를 노동자 민중 전체가 언제든 스스로 토론하고 결정하며 집행하는 민주주의를 실현해야 한다. 이 노동자 민주주의는 안정적인 일자리와 충분한 임금, 죽지 않고 일할 권리를 보장하는 민주주의다. 모든 혐오와 차별을 끝장내고 실질적 평등을 보장하는 민주주의다.
물론, 이런 근본 대안은 당장에 실현될 수 없다. 자본주의 국가기구를 파괴할 힘, 세상을 송두리째 흔들 힘이 필요하다. 자본주의를 넘어서 새로운 사회를 건설할 노동자 민중의 역량을 만들어 가야 한다. 내란에 맞선 투쟁으로 일어나 노동자 민중의 역동성이 이 체제의 울타리에 갇히지 말고 더 뻗어나가야만 한다.
이 관점에서 볼 때 당장 시급한 것은 노동자 민중의 직접적인 힘으로 내란 세력을 완전히 제압하는 일이다. 노동자 민중이 선출하지도 않은 극소수 판사들에게, 노동자 민중을 기만하고 억압하는 국가기구에 노동자 민중의 운명을 맡길 수는 없다. 우리는 윤석열 파면을 넘어 계엄제도 철폐를 요구한다. 대통령 국민투표 파면제, 국회의원 주민소환제, 검찰·경찰·사법부 주민선출소환제 도입을 강력히 요구한다.
더 이상 국가기구에 의존하지 말고, 민주당에 끌려다니지 말고, 노동자 민중의 힘을 총동원하자. 윤석열 파면을 넘어 사회대변혁으로 나아갈 역사적 기회를 놓치지 말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