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주 여성 노동자에 대한 계엄, ‘외국인 가사사용인’ 시범사업 안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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온라인신문

이주 여성 노동자에 대한 계엄, ‘외국인 가사사용인’ 시범사업 안 된다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국가가 요람에서 무덤까지 돌봄을 책임지는 공공돌봄시대’

  • 홍희자
  • 등록 2025.03.21 15:41
  • 조회수 134

나는 적극 동의한다. 필리핀 가사관리사 시범사업은 “예고된 실패”였다는 나경원의 말에. 단 딱 그 한마디에 대해서만. 뒤이어 나온 나머지 모든 주장엔 손톱만큼도 동의할 수 없다. 

 

지난해 9월 서울시가 노동,여성,이주민단체 등의 반대에도 아랑곳하지 않고 시행한 6개월 동안의 ‘외국인 가사관리사 시범사업(이하 시범사업)’이 1년 연장됐다. 2월 14일 고용노동부는 시범사업 1년 연장을 발표했다. 서비스 이용 요금은 지난해 시간당 1만3,940원에서 올해 최저임금 인상과 퇴직금 등을 반영해 시간당 1만6,800원으로 오른다. 전국으로 확산하는 계획은 이루지 못했다. 그만큼 문제가 많았기 때문이다. 

 

 

예고된 실패

 

애초에 이주노동자를 통해 저출생 문제를 해결하겠다는 것부터가 설득력이 아주 없는 데다 시범사업 내내 숙소 통금, 임금체불, 인권침해 등으로 잡음이 끊이지 않았다. 100명 중 2명이 사업 시작하고 얼마 지나지 않아 이러한 악조건과 통제에 참지 못하고 이탈했다. 

 

시범사업에 참여한 가구의 41%가 강남3구에 몰려있고 42.8%가 고소득층이었다. 이런 분석에 대해 특정 계층만을 위한 정책으로 전락했다는 비판이 나올 만도 하다. 그런데 ‘그렇기 때문에 가격을 더 낮춰야 한다’는 이상한 결론을 내는 이들이 있다. 대표적으로, 국민의힘 나경원 의원은 2월 15일, 시범사업 전국실시 계획이 무산되자 “예고된 실패”라며 “국제노동기구(ILO) 협약 111호(고용 및 직업상 차별 금지 협약) 탈퇴 논의를 시작해야 한다”라고 목청을 높였다. 대놓고 최저임금 예외를 두자고, ILO를 탈퇴하자고 자신의 SNS에 자본가의 본심을 드러낸 것이다.

 

 

솔직한 고백

 

사실 나경원의 주장은 새로운 것이 아니다. 이미 조정훈 의원 등이 이주 가사노동자에게는 최저임금을 적용하지 않는 법안을 발의한 바 있다. 더구나 한국은행까지 저출생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선 돌봄서비스에 최저임금을 차등 적용하거나 가사사용인에게는 노동자로서의 권리를 보장하지 않는 근로기준법 11조를 활용해야 한다고 연막을 깔았다. 

 

결국 정부는 이런 일부 정치인과 정부기관의 장단에 맞춰 은근슬쩍 가사사용인 시범사업을 내년 예산안에 끼워 넣었다. 이 같은 사실은 국민의힘 곽규택 의원실이 확보한 법무부 예산안에 ‘외국인 가사사용인 활용 직무교육’ 항목이 드러나면서 알려졌는데, 법무부는 이것이 마치 당연한 수순인 듯 원래 지난해 하반기에 시범사업을 실시하려다 예산이 없어 못 해 올해 시행하는 것이라는 입장을 냈다.

 

정부의 화답

 

‘가사사용인’은 보통 개인 가정의 가정부, 파출부, 운전기사 등의 노동자를 뜻한다. 이들은 주로 개별 가정과 계약을 맺고 일해 근로기준법·최저임금법 등을 적용받지 못한다. 이에 반해 ‘가사근로자’는 가사서비스 제공기관 등 회사에 고용돼 근로기준법상 근로자로 법적 보호를 받는다. 그런데 정부가 가사사용인 시범사업을 추진하겠다는 것은 나경원 등의 고백을 적극적으로 받아들이겠다는 정부의 화답인 셈이다. 정부와 자본이 생각하는 돌봄노동에 있어서 ‘합리적 비용’이란 결국 공공돌봄이라는 사회적 책임을 포기하고 노동자를 더 열악한 조건으로 내몰고 쥐어짜는 것을 통해 돌봄공백을 메우는 것에 지나지 않는다.

 

더구나 3월 5일 정부는 제30차 외국인정책위원회에서 논의된 ‘외국인 요양보호사 양성·도입 방안’을 발표하고 외국인 요양보호사 맞춤형 교육을 위해 대학까지 지정하겠다고 했다. 그러나 우리나라의 요양보호사는 전혀 부족하지 않다. 건보공단에 따르면 2020년 말 요양보호사 자격증 취득자가 193만5,220명, 이 가운데 24.8%만이 현업근무 중이다. 공공운수노조는 “부족한 것은 요양보호사가 아니라 공공성이고, 정부의 책임감과 적극적인 의지”라며 “정부는 돌봄의 국가책임을 회피하여 외국인 요양보호사 도입 같은 허무맹랑한 대책을 내놓을 것이 아니라 돌봄의 공공성 확보와 요양보호사 처우개선을 위한 구체적 대책을 수립”하라고 촉구했다. 

 

이제 노동자가 답할 차례

 

착취자, 권력자끼리 고백과 화답을 주고받는 사이 희생되는 것은 노동자뿐이다. 돌봄의 주체로서 노동자들이 더 목소리를 내고 실천해야 한다. 고령사회, 저출생 문제에 대처하는 가장 확실한 방법은 돌봄의 공공성을 강화하는 것이다. 국가가 책임지고 공공돌봄기관을 늘리고 돌봄노동자가 저임금과 고용불안 때문에 돌봄일자리를 꺼리지 않도록 좋은 일자리를 마련하는 것이다. 그런데 정부와 자본은 그 반대로만 하려 한다. 그나마 공공돌봄서비스의 발판을 만들어가던 서울시사회서비스원마저 폐쇄하고 도리어 돌봄노동자의 임금을 낮춰서 개별 가정이, 개인이 돌봄서비스를 부담 없이, 싸게 이용할 수 있도록 하자고 한다! 이주노동자를 도입해서 임금과 고용 모두에서 차별을 두어 오로지 노동자 착취를 통해서만 돌봄 문제를 해결할 수 있다고 떠벌린다.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99만 원 가사관리사와 간병인시대’가 아니라 생활임금과 고용안정이 보장되는, ‘국가가 요람에서 무덤까지 돌봄을 책임지는 공공돌봄시대’이다. 저출생, 고령화로 자본주의 사회는 그 안정적인 존속이 갈수록 위태로워지고 있다. 이는 자본가와 노동자 모두에게 위기이다. 하지만 자본은 저출생, 고령화가 심각한 문제라면서 정작 이에 대해 어떠한  책임도 지지 않으려 한다. 오히려 가사돌봄서비스를 상품화하여 관련 자본만 배 불리고 개별 가정과 가구에, 노동자에게 이 국가와 사회의 유지와 존속의 책임을 모두 떠넘기려 한다. 노동자의 더 강한 단결과 연대투쟁이 절실하다. 돌봄공공성 강화, 국가책임을 통한 안정된 돌봄, 노동자의 국제연대, 노동자 스스로에게 당연하고 명백한 대안을 더 전면에 내걸고 투쟁해나가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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