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주 치밀하지만, 허약한 덫 - 김영훈 노동부 장관 후보자 지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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온라인신문

아주 치밀하지만, 허약한 덫 - 김영훈 노동부 장관 후보자 지명

  • 이용덕
  • 등록 2025.06.28 12:36
  • 조회수 118

사진: 뉴시스

 

아주 치밀하지만, 허약한 덫 - 김영훈 노동부 장관 후보자 지명

 

노동부 장관 후보자로 지명된 전 민주노총 위원장 김영훈은 첫 출근길에서 가장 시급한 과제는 “노동시장 분절화”라고 얘기했다. 그러면서 비임금 노동자의 확산과 법 밖의 노동자 보호를 강조했다. 근로감독관들을 만나서는 “가짜 3.3 계약, 5인 미만 사업장 쪼개기 관행을 살펴야 한다”라고 얘기했다.

 

특수고용노동자들을 비롯해 수많은 노동자가 오래전부터 외쳐 왔던 것이기에, 당연히 수긍할 수 있는 말이다. 이런 말들과 더불어 ‘민주노총 전 위원장’, ‘철도 노동자’란 김영훈의 타이틀은 다른 노동문제도 해결해 줄 수 있지 않느냐는 기대를 하게 만들기도 한다.

 

노동운동 지도자가 정부가 내준 자리를 꿰찬 건 이번이 처음은 아니다. 예를 들어 70년대 원풍모방 노조위원장으로 이름을 날렸던 방용석은 김대중 정부 때 노동부 장관을 지냈는데 고졸에 노동운동가 출신으로 주목을 받았다. 하지만, 철도·발전·가스 등 공공부문 노조 파업과 공무원노조 투쟁을 탄압했다. 공무원노조와 대화하기는커녕 무조건적인 설립 불허방침을 내세웠고 경찰 투입과 간부 체포를 밀어붙였다. 김영훈은 얼마나 다를 수 있을까?

 

김영훈은 “민주노총 위원장 시절과 현재 생각이 달라진 것이 있느냐”라는 질문에 “서 있는 자리가 달라지면 풍경이 달라진다”라는 말로 앞으로의 실제 행보가 어떨지 가늠케 했다.

 

저들도 느낀다

 

‘가짜 3.3 계약’은 4대 보험 가입이나 퇴직금 지급 의무를 피하려고, 근로소득자인 ‘노동자’를 ‘사업소득자’로 위장해 사업소득세(3.3%)를 원천 징수하는 계약 형태인데, 이런 계약을 맺고 일하는 노동자들이 800만 명이나 된다는 통계가 있다. 최소한 수백만 명이다. 이들의 문제를 뺀 노동자 권리 보호는 어불성설이다.

 

이재명이 특고·플랫폼·프리랜서 등 ‘비임금 노동자’ 가운데 사용자의 지휘·감독을 받는 경우, ‘근로자 추정제도’로 근로자 오분류를 개선해 근로자성을 부여하고, 최저임금을 적용받을 수 있도록 추진할 계획이라고 밝힌 이유도 이 문제를 비껴갈 수 없는 상황이기 때문이다.

  

근로자 추정 원칙이란 특고, 플랫폼, 프리랜서 등에게 근로자성 분쟁이 발생할 때, 일단 이들을 근로자로 추정해 문제를 해결하자는 것인데, 불 보듯 뻔한 자본가들의 반발을 제어할 계획은 아무것도 없다. 무엇보다 근로자성 추정을 하려면 기존 근로자 정의나 범위를 새로 만들어야 하는데 그럴 계획도 없다. 기존 대법원 판례 바탕으로 판정하겠다는 뜻인데, 이렇다면 근로자성을 아무리 추정해 봐야 특고, 플랫폼, 프리랜서 노동자 등은 아무도 근로자성을 인정받지 못한다. 하지만 이재명 정부가 이들의 분노를 컨트롤해야 한다고 느끼고 있는 것은 분명하다.

 

당분간 한국의 계급투쟁은 기존 미조직 상태에 있던 비정규 불안정노동자층이 투쟁과 함께 자기 조직화에 나서고, 여기에 조직 노동자 운동이 영향을 받아 움직이는 양상을 보일 가능성이 크다. 열악한 미조직 노동자, 청년노동자들의 분노에 조응하기 위해, 민주노총은 조직 전반에서 관료주의와 조합주의를 청산해야 한다. 신자유주의 양극화를 거치며 극심해진 정규직과 비정규직의 분열 상태를 계급 단결투쟁으로 극복하며, 새롭게 투쟁에 나서는 노동자들의 목소리와 요구를 중심으로 민주노조운동을 재구축해야한다.

 

세계 자본주의의 전반적인 위기 심화에 따라 이재명 정부가 조직된 노동자들에 대한 전면적 공세를 펼칠 시점은 다가올 수밖에 없다. 그러나 당분간 이재명 정부는 노조 관료층이 수용하는 범위 내에서 노동개악을 밀어붙이고, 노동자들의 역동적 투쟁을 봉쇄하는 전략을 쓰려고 할 것이다. 정치적으로는 조직된 노동운동을 극우 보수정당에 대한 견제 도구 정도로 활용하려 할 것이다. 이러한 전략이 체제 유지를 위해 더 효과적이라고 생각할 것이기 때문이다.

 

그런데, 노동운동 통제의 핵심은 바로 수많은 미조직 노동자, 불안정 노동자, 청년 노동자의 응축된 분노가 폭발하는 것을 막을 수 있느냐, 없느냐다. 윤석열 퇴진 국면에서도 이 노동자들이 지치지 않고 투쟁을 밀어붙였다. 억눌린 용수철이 크게 튀어 오르듯 아무런 권리도 없고, 아무런 보호도 받지 못하는 수많은 가난한 노동자의 저항은 적절한 때를 만나면 아주 높게 솟구칠 수 있다. 윤석열 퇴진 투쟁 때 등장해 지금도 싸우고 있는 ‘말벌’ 들은 몇십 배, 몇백 배 규모로 확장될 수 있다. 그렇다면 저들은 어떻게 대응할 것인가?

 

꼼수, 기만, 탄압

 

문재인 정부도 수많은 미조직 노동자의 열악한 처지를 거론하며 “노동기본권을 국제기준 수준으로 보장하겠다”라고 여러 차례 얘기했다. 하지만, 어떤 것도 바뀐 것은 없었다. 특수고용노동자들의 온전한 노동3권은 기약 없이 미뤄지기만 했다.

 

문재인은 최저임금 1만원을 공약으로 내걸었다. 최저임금을 올리지 않으면 가난한 노동자들이 저항할 수 있고, 대폭 올리면 자본가들이 난리 칠 것 같으니 최저임금 산입범위를 개악해서 가난한 노동자들의 뒤통수를 후려쳤다. 재벌과 원청사가 하청 노동자 적정임금 지급을 책임지도록 원청 사용자 책임을 법제화하는 대신 꼼수를 부렸다. ‘공공부문 비정규직 제로’정책은 기껏해야 자회사나 무기계약직으로 비정규직의 형태만 바뀌는 기만적인 결과를 낳았다. 광주형 일자리 같은 부스러기를 가난한 노동자들과 청년층에 던져 주었을 뿐이었고, 톨게이트 투쟁 사례에서 볼 수 있듯 노동탄압은 멈추지 않았다. 조선산업 구조조정으로 수많은 노동자가 가차 없이 일터에서 쫓겨났다. 이 모든 일이 진행되는 동안 자본가들의 이윤은 철저히 보호됐다. 만약 민주노조운동이 문재인 정부에 의존하지 않고 박근혜 퇴진 촛불로 움터져 나왔던 광장의 에너지를 믿고 독자적으로 치고 나갔다면 볼품없는 것만을 움켜쥐지는 않았을 것이다.

 

다시 말하지만, 꼼수, 기만, 탄압이 문재인 정부가 가난한 노동자들, 불안정 노동자들을 통제했던 방식이다. 이재명 정부는 다르겠는가? 그렇다면, 노동운동이 가야 할 길도 명확하다. 꼼수에 속지 않고, 기만에 빠지지 않으며, 탄압에 멈추지 말아야 한다.

 

특히 저들이 대안을 내놓겠다고 하는 부분에서, 서로가 피할 수 없는 첫 번째 승부처에서, 즉 특수고용, 플랫폼, 5인 미만 사업장 부문에서 진짜 대안을 제시하며 대대적인 조직화와 투쟁에 나서는 것이다. 노동자성 인정, 근로기준법 완전 적용, 노조할 권리 보장, 사회보험 보장 등 노동자들이 모든 노동권을 누리면서 조직화와 투쟁에 나설 수 있도록 뒷받침해야 한다.

 

양의 탈

 

이러한 피할 수 없는 대결 앞에 놓인 김영훈의 역할은 무엇인가? 역대 민주당 정부는 노동자에게 한 약속을 헌신짝처럼 버리고 탄압하면서도 자신을 ‘노동자의 친구’로 위장하려 했다. 그래야 노동자 투쟁으로부터 자본주의 체제를 효과적으로 보호할 수 있기 때문이다. 그 위장 수단이 바로 일부 노동운동 지도자들을 포섭해, 양의 탈을 쓰도록 만드는 것이다. ‘민주노총 전 위원장까지 했던 사람이 참여한 정부는 결코 노동자의 적이 아니’라는 포장지는 얼마나 그럴싸한가?

 

노동운동 상층 지도자들이 자본가 정부와 자본가 정당에 포섭되면 어떤 일이 일어나는가? 포섭된 지도자들은 단호한 투쟁을 포기한 채 자본가 정부의 시혜에 의지하고, 자본가 정당의 중재와 협조에 기대는 노동운동을 요구할 것이다. 발톱 빠진 호랑이를 무서워할 늑대는 없다. 정부와 자본가들은 투쟁의 힘을 잃어버린 노동운동에 탄압의 몽둥이를 마음대로 휘두를 것이다.

 

양의 탈 뒤 늑대의 얼굴이 드러나는 시간은 그리 오래 걸리지 않을 것이다. 국민의힘은 벌써 김영훈에게 화물연대가 파업하면 어떻게 할지를 묻고 있다. 김영훈의 대답은 예정되어 있다. 자본가들의 반발을 최소화하고 노동자들의 저항도 억눌러야 하는 김영훈이 ‘국가 경제를 생각해 무리한 요구를 하지 말라’는 것 외에 어떤 대답을 할 수 있겠는가?

 

이재명은 민주노조운동의 정치적 독자성이 그 어느 때보다 약해져 있는 지금, 민주노총 전 위원장이란 타이틀을 가지고 있고, 이미 오랫동안 민주당과 손발을 맞춰 온 김영훈을 투쟁에 나서는 노동자들을 달래고 압박할 최적의 인물이라고 생각했을 것이다. 정리해고제, 근로자파견제를 도입한 노사정위원회에서 알 수 있듯, 사회적 대화기구는 노동자의 이름으로 노동개악을 관철하는 수단이었는데, 김영훈을 노동부 장관에 앉히는 것이 민주노총을 사회적 대화 기구로 끌어들일 가장 효과적인 수단이라는 계산도 했을 것이다.

 

하지만 타이틀만 빼면, 김영훈은 허약한 덫일 뿐이다. 아직 김영훈을 잘 모르는 노동자들도 많지만, 김영훈의 관료적 행태와 출세주의적 행동은 여러 번 드러난 적이 있다. 철도노조 위원장 시절, 그는 철도청의 공사 전환 과정에서 대대적인 구조조정 계획을 용인하면서 2004년 12월 3일 파업 돌입 1시간을 앞두고 사측과 일방적으로 합의한 전력이 있다. 전기분야에는 자회사가 설립되고 운수분야엔 대규모의 비정규직이 채용되었으며, 인력 충원 없는 3조 2교대 전환으로 노동자들은 고통 속에 내몰렸다. 철도 해고자들이 철도공사 출범일인 2005년 1월 5일 대전청사 앞에서 격렬한 투쟁을 벌이고 있던 그 시간에, 김영훈은 신광순 공사 사장과 출범식장에서 화합의 케이크를 잘랐다.

 

정의당 노동본부장을 지내고 국회의원 선거에서 정의당 비례대표로 출마까지 하고 나서, 아무런 사과조차 없이 2021년 민주당에 기어들어가 작년 국회의원 선거에서 민주당 비례대표 20번을 맡는 등, 무책임하고 기회주의적인 모습을 보여왔다. 투쟁하는 노동자들에게 김영훈에 대한 환상은 거의 없다.

 

사진: 경남도의회

 

김영훈 같은 관료들이 자본가 세력으로부터의 정치적 독자성이라는 노동자운동의 근본 대의마저 손바닥 뒤집듯 뒤집고 버젓이 활동할 수 있는 이유는 정의당에 스며들어있던 정치노선 때문이다. 민주당의 왼쪽 날개 정도로 역할하며 기반을 마련하고, 노조 관료들과 출세주의자들을 마구잡이로 끌어들여 세를 부풀리는 야권연대 노선, 선거주의 노선의 반영이다.

 

아닌 것을 아니라고 말하는 것부터 시작하자!

 

민주노조운동은 광장의 에너지가 살아 있고, 이재명 정부가 자신의 말을 행동으로 옮겨야 한다는 압력을 거세게 받을 수 없는 지금, 최대한 능동적 자세로 투쟁을 조직해야 한다. 이 열린 국면에서 수많은 미조직·불안정 노동자, 청년·여성 노동자들의 자기 조직화와 대대적인 분출을 끌어내야 한다.

 

이재명 정부에 대한 지지와 의존은 이 소중한 과제에 다가서는 것조차 가로막는다. 자본가 정부의 공허한 약속, 화려한 말 잔치, 수백 번의 거짓말이 노동자의 현실을 바꾼 사례는 단 한 번도 없다. 아닌 것을 아니라고 말해야 한다.

 

우리는 ‘민주당 밀어주기 정치’의 결과를 수없이 봐왔다. ‘윤석열 정부로 돌아갈 수 없다’며 이재명 정부에 의존하고 그들을 밀어주는 한, 노동자운동은 거듭 민주당 정부의 디딤돌 역할로 남아 있을 것이고, 민주당 정부는 김영훈 같은 인물을 방패 삼아 노동자들을 저항을 억누를 것이다.

 

다른 길이 있다. 이재명 정부에 어떠한 신뢰도 주지 않으며 독립적인 투쟁에 나서는 길이다. 정부에 맞선 투쟁을 확대하며 모든 자본가 정당으로부터 단절해야 한다. 치밀하지만, 허약한 덫을 걷어내고 세상을 바꿀 수 있는 유일한 힘은 노동자계급의 집단적인 투쟁을 조직하는 길이다. 자본주의를 고쳐 쓰려다 자본주의에 흡수되는 개량주의 정당이 아니라 노동해방을 열어가는 노동자 투쟁정당 건설을 위해 한 발 한 발 앞으로 나아가는 길이다. 진실한 희망은 이 길에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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