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2년 7월 ‘이대로 살 수는 없다’는 거통고 조선하청지회 동지들의 51일 파업투쟁은 이 땅 모든 비정규직 노동자의 처참한 현실을 투영하며 한국사회에 큰 울림이 되었다. 이에 정부와 자본은 정규직과의 임금격차 해소를 약속했으나, 그 어떤 노동조건 개선도 없었다.
한화오션 또한 대우조선을 인수하기 전 하청노동자 300% 성과급을 지급을 약속했지만, 인수 이후 약속은 지켜지지 않았다. 51일 파업투쟁으로 힘겹게 체결한 상여금 50% 조차 지급하지 않는 실정이다. 한편 한화오션의 올해 3분기 영업이익은 689억 원에 달한다. 이후에도 흑자파티가 전망되기에 불황을 명분으로 빼앗아간 상여금 550%를 원상회복하지 않을 이유가 없다. 그러나 조선업 호황기에도 한화오션 하청노동자들은 대우조선 시절보다 더 많은 임금체불로 고통받고 있다.
문제는 이뿐만이 아니다. 한화오션의 흑자전환 과정에서 올해에만 7명(사측 주장 5명)의 하청노동자가가 중대재해로 목숨을 잃었고, 국정감사에 소환된 한화오션 대표이사는 ‘안전보건 활동에 하청지회 참여 보장’을 약속했지만 이 또한 지켜지지 않고 있다. 11월 12일 <거제노동안전보건활동가모임>이 한화오션 노·사에 “하청지회가 참여하는 원·하청 공동 산업안전보거위원회 구성”을 요청했다. 그러나 11월 28일 개최된 4/4분기 산업안전보건위원회(산보위)에서 해당 요청은 안건으로조차 상정되지 않았다.
하청노동자 차별철폐, 저임금구조 개선은커녕 자본은 거통고조선하청지회 임원 5명에게 470억 원의 손해배상을 청구했고, 검찰은 조합원 22명에게 징역 총 20년 4개월 및 벌금 3천3백만 원을 구형했다. 이렇게 자본과 국가는 회사에 손해를 끼쳤다는 명분으로 노동자의 손과 발을 묶고, 싸울 권리마저 박탈한 채 노예의 삶을 강제한다. 그 어떤 결정권도 없는 하청업체가 아니라 진짜 사장 원청자본에 책임을 요구한 비정규직 노동자들의 투쟁은 정당하고 또 정당하다. 대우조선은 다음과 같이 손배청구 명분을 들었다. “불법파업으로 대우조선에 손해를 입힌 하청노조에 손해배상 책임을 묻지 않으면 대우조선이 오히려 배임죄를 저지르게 된다.”
말도 안 되는 소리다. 약 8조짜리 ‘한국형 차기 구축함(KDDX)’ 입찰 과정에서 현대중공업이 대우조선의 설계도면을 훔쳐가고, 방사청이 동조해 채점 기준을 변경한 방산비리 사건이 있었다. 그럼에도 한화오션은 11월 22일 ‘국익’을 거론하며 현대중공업에 대한 형사고발을 취하했다. 정작 거대한 손해를 끼친 경쟁 자본에 대해서는 아무 대응도 하지 않고, 비정규직 노동자들의 투쟁은 끝 간데 없는 탄압으로 일관하고 있다. 거통고조선하청지회에 대한 민형사상 소송의 목적은 오롯이 노조파괴에 있음이 더욱 명백하게 드러난 것이다. 자본의 이율배반적 행태에 더욱 분노가 치민다.
당장 폭동이 일어나도 이상하지 않을 상황이다. 이에 거통고조선하청지회는 전태일 열사 54주기를 맞이하는 11월 13일, 한화오션의 약속 이행과 24년 임단협 성실교섭을 촉구하며 무기한 농성에 돌입했다. 천막을 설치하는 과정에서 한화오션의 폭력 탄압이 발생했고 하청지회 동지 3명이 구급차에 실려갔다. 하청지회는 이 추운 겨울날 하늘이 뻥 뚫린 차가운 아스팔트 위에서 노숙농성을 이어갈 수밖에 없었다. 참담한 현실이다.
자본의 탄압은 더 이상 놀랍지도 않다. 그보다 더 큰 문제는 대우조선지회의 무기력한 대응, 그리고 민주노총을 비롯한 상급단체의 행보에 있다. 한화오션 자본의 폭력탄압이 다름 아닌 전태일 열사 54주기에 발생했지만, 대우조선지회는 어용세력의 준동에 단호히 대처하기는커녕 눈치만 보고 있다. 그리고 아직까지 민주노총 중앙차원의 규탄 성명도 나오지 않았다. 몸과 마음이 고립된 동지들의 투쟁현장에 민주노총 중앙집행위가 아닌 민주당 국회의원들이 먼저 찾아오다니... 이 얼마나 부끄러운 일인가? 하청지회 동지들이 전태일 열사 기일에 무자비한 폭력을 당했고, 이제 단식을 불사하며 투쟁하고 있다. 거통고 조선하청 노동자들의 처절한 투쟁에 대한 연대를 조직해야 할 이때, 어용세력에 단호히 대처하지 못하는 대우조선지회를, ‘민주당과 함께하는 윤석열 퇴진 운동’에 더 진심인 민주노총을 우리는 어떻게 받아들여야 하는가?
최근 국가보안법 위반으로 민주노총과 금속노조 전직 간부가 법정 구속된 문제로 하청지회 동지들은 더욱 고립된 상황에 직면했다. 민주노총은 9월 24일 검찰 구형에 ‘윤석열 정권 공안몰이와 국가보안법을 통한 탄압은 민주주의의 퇴행, 사상과 이념의 자유는 민주주의 사회의 기본적인 가치’라는 성명을 내고는 1심 선고 뒤 이렇다 할 대응을 하지 않았다. 대우조선지회의 눈치보기, 전체 민주노조운동의 대응 부재와 함께 ‘하청지회=간첩’이라는 자본의 선동은 거통고조선하청지회의 투쟁을 고립시키고 있다. 이러한 현실 속에 하청지회 출퇴근 선전에 연대하는 정규직 동지는 필자를 포함하여 2명에 불과하다.
'하청지회가 간첩이라 수주가 안된다'는 어용세력의 선동이 난무하는 참혹한 현실에 대해, 대우조선지회는 물론 민주노총 차원의 대응이 필요하다. 국가보안법은 정부가 노동탄압을 위해 곧잘 써먹던 카드로 당연히 폐지되어야 한다. ‘사상과 이념의 자유’ 또한 존중받아 마땅하다. 그렇다면 한화오션에서 거통고조선하청지회 투쟁이 ‘간첩, 빨갱이’로 몰리는 현실을 대우조선 지회는, 금속노조와 민주노총은 어떻게 돌파할 것인가? ‘투쟁하는 노동자는 간첩이고 국가보안법으로 처벌되어야 한다’는 자본과 어용세력의 악랄한 선동에 맞서는 진정한 길은, 국가보안법이 폐지되어야 한다는 원론적 입장의 재확인에 그치는 것이 아니라, 바로 지금 힘겹게 투쟁하는 거통고 조선하청지회 비정규직 노동자들의 싸움을 엄호하고 연대를 확장하는 데 있다. 자본과 어용세력의 악랄한 공격이 결코 이 절박한 싸움을 무너뜨리지 못한다는 것을 당당히 보여주는 것에 있다.
11월 13일 전태일 열사 기일에, 거통고 조선하청지회 비정규직 노동자들을 무참히 짓밟은 구사대가 대우조선지회, 금속노조, 그리고 민주노총 조합원인 이 참담한 상황을 어떻게 보아야 하는가! 민주노조 운동은 ‘더이상 이렇게 살 수 없다’는 하청노동자들의 절규에 답해야 한다. 민주노조라면, 거리와 고공에서 외롭게 투쟁 중인 동지들의 방패가 되어야 한다. 구사대를 징계하고, 투쟁을 엄호하며, 연대를 확대해야 한다. 그것이 대우조선지회, 금속노조, 민주노총의 과제다. 필자 역시 부족한 힘이나마 하청노동자들의 옆을 지킬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