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삼노 부당징계 사태라는 거울로 곱씹어보는 민주노조운동의 원칙과 아래로부터의 활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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온라인신문

전삼노 부당징계 사태라는 거울로 곱씹어보는 민주노조운동의 원칙과 아래로부터의 활동

  • 이용덕
  • 등록 2025.05.17 12:17
  • 조회수 215

전국삼성전자노동조합(이하 전삼노) 집행부가 이면 합의를 비판한 노동자들을 제명했다. 이 사태는 18년 동안 삼성과 싸워 온 반올림(반도체 노동자의 인권과 건강 지킴이)의 부당징계 철회 호소문으로 많이 알려지게 됐다. 반올림은 전삼노 집행부만이 아니라 전삼노와 연대했던 금속노조의 태도도 비판했다.

 

 

명백한 오류

전삼노 집행부는 지난 3월 7일 전임자 처우 개선을 조합원 임금협상과 별도로 합의했다. 조합원 평균 인상률보다 높은 수준의 임금 인상률을 조합원 찬반투표도 거치지 않고 서면 합의도 없이 구두로 합의했다. 사전에 조합원들과 대의원들에게 알리지도 않았다. 집행부는 이 이면 합의를 비판한 간부들을 제명했다. 전삼노 집행부의 비민주적이고 관료적이며 억압적인 행동이다.

 

지난 5월 15일 제명당한 한기박 기흥지부장과 우하경 대의원의 재심이 열렸는데 초심대로 제명과 피선거권 3년제한이 유지됐다. 한기박 지부장의 제명 사유에는 작년 임단협 찬반투표 부결 선동이 포함되어 있고, 우하경 대의원의 제명 사유에는 이번 별도 합의에 대한 조합원 간담회 영상을 조합 내부에 알린 일이 포함되어 있다. 얼토당토않은 징계사유다.

 

금속노조 법률원 변호사가 징계 대상자에게 의견서를 써주었고 의견서가 징계위원회에 제출되었는데, 전삼노 집행부는 이 의견서까지 문제 삼으며, 금속노조 위원장, 법률원장 등에게 항의 공문을 보내기도 했다.

 

4천 명 이상의 조합원이 탈퇴했다. 노동자들을 통제하고 경쟁시키는 고과 제도로 수많은 노동자가 고통받고 있는데, 전임자들에게만 별도의 임금 인상률을 적용하는 합의가 자신들도 모르게 이루어졌기 때문이다. 전체 조합원의 권리보다 집행부의 처우 개선에 앞장선다고 판단했고, 집행부의 투명하지 못한 모습에 실망했기 때문이다.

 

전삼노 집행부는 뒤늦게 사과했는데, 문제를 제기한 대의원들은 제명하는 이율배반적 행동을 멈추지 않고 있다. 이면 합의도 아니고, 큰 일도 아닌데, 문제를 제기한 사람들 때문에 조합원들이 탈퇴했다며 책임을 떠넘기고 있다.

 

(부당징계 철회를 요구하는 전국삼성전자노동조합 한기박 기흥지부장)

 

누구와 함께 해야 하는가?

금속노조는 2021년부터 전삼노와 연대해 왔고, 전삼노와의 연대사업을 중요한 조직화 사업이라고 얘기해 왔다. 이 연대 자체는 아무 문제가 없다. 한국노총 소속인 전삼노가 민주노총으로 조직되어 거대 글로벌 자본인 삼성과 제대로 싸울 수 있다면, 그것이 민주노조운동과 한국 사회에 미칠 영향은 엄청날 것이다.

 

하지만 진정한 연대와 투쟁은 단순한 조직 형식의 변화에서 오지 않는다. 시간이 걸리더라도 민주노조다운 내용이 뒷받침되고 갖춰져야 한다. 조합원들이 단결과 연대의 필요성을 절실히 느끼며 금속노조로의 전환을 위해 크고 작은 행동에 나서야 제대로 된 조직 전환이 가능하다. 더군다나 전삼노는 조합원이 3만 명이 넘는 거대 노조다. 진정한 변화에는 시간이 걸릴 수밖에 없다. 간판만 바꾸는 것은 모래 위에 성을 쌓는 일일 뿐이다.

 

이번 사태가 터지고 금속노조 내에선 이면 합의가 아니라거나 심각한 문제가 아니라는 의견도 터져 나왔다. 아무리 민주노조운동의 원칙이 곳곳에서 무너져 내리고 있긴 하지만, 이런 명백한 오류를 감싸거나 축소하려는 태도는 많은 활동가에게 충격을 줬다.

 

다행히 여러 활동가가 치열하게 문제를 제기했고, 금속노조 내부에서도 원칙을 정돈하면서 금속노조는 늦었지만, 입장을 냈다. ‘전삼노의 처우 개선 합의 과정에 명백한 과오가 있었고 징계는 민주노조 운영의 원칙에 반하며, 전삼노가 숙고하고 성찰하고 민주노조를 지향하는 노동조합으로 거듭나길 기대한다’는 내용으로 전삼노에 답신을 보냈다.

 

처음부터 전삼노 집행부의 오류를 정확히 비판하고, 바로 잡기 위해 치열하게 평가했더라면 상황이 이렇게까지 나빠지지는 않았을 수 있다. 잘못을 제대로 인정하지 않고, 내부 비판의 목소리를 잠재우려는 집행부가 아니라 용기 있게 문제를 제기한 노동자들의 손을 잡고 민주적 토론과 조직 운영을 위해 발 벗고 나서야 했다. 집행부와의 관계 단절보다 민주성, 자주성, 투쟁성이라는 민주노조운동의 원칙이 천만 배 중요하기 때문이다. 이 원칙 말고 민주노조 운동을 전진시킬 방법은 없기 때문이다.

 

 

아래로부터의 활동

곳곳에서 관료주의가 득세하고, 투사들이 고립되며, 조합원들은 노조에 등을 돌리는 일이 벌어지고 있다. 이럴 때일수록 아래로부터의 활동은 더욱더 중요해진다.

 

이번 전삼노 사태는 현장의 노동대중과 분리된 채 오직 노동조합 간부들과의 접촉, 그들에 대한 영향력 행사에만 머무는 활동이 필연적으로 가져올 위험성을 생각하게 한다. 노동조합 간부들에 대한 영향력이 노조에 대한 영향력, 조합원에 대한 영향력과 등치가 될 순 없다. 그런데 어떤 활동가들은 간부들에 대한 영향력을 전체 조합원에 대한 영향력으로 착각하며, 그 간부들만의 힘으로 노조를 바꿀 수 있다고 생각한다.

 

만약 어떤 활동가가 일반 노동자들을 상대로 자기 생각을 드러내고 활동을 펼치지 않는다면, 소수의 노조 간부에게만 배타적으로 주의를 기울인다면, 그 활동가들은 순식간에 고립될 수 있다. 관계를 맺어 왔던 노조 간부가 이러저러한 이유로 마음을 바꾸거나 변질될 때 모든 영향력을 상실할 수 있다. 다시 말해 활동의 역사적 성과가 몇 명 간부들의 향배에 따라 사라져 버리는 일이 일어난다.

 

민주노조운동의 위기에서 헤어 나오지 못하는 중요한 이유도 현장의 일상 활동이 너무나 약해졌기 때문이다. 일반 노동자들의 관심, 그들의 고민, 그들의 의식 수준을 치밀하게 고려하는 활동, 그 노동자들과 일상적이고 정규적인 혹은 밀접한 관계를 맺으려는 노력이 없다면, 노조의 운명은 몇몇 간부에게만 의존하게 된다. 평조합원들의 참여는 갈수록 사라진다. 대단히 힘이 들고 당장 성과가 눈에 띄지 않더라도 현장 노동자들의 변화를 바라는 아래로부터의 활동이 반드시 필요한 이유다.

 

관료주의에 맞서 싸울 수 있는 가장 중요한 방법도 자기 견해를 만들려 하고, 그것을 표현하려 하고 결국은 자기 결정을 내리려는 더욱 능동적인 평조합원들의 힘을 만들어내는 것이다.

 

투쟁하는 노동자들을 지켜내자!

작년 위력적인 파업으로 삼성과 세상을 놀라게 했지만, 전삼노는 민주노조의 길, 본격적인 투쟁 길을 향해 몇 걸음만 떼었을 뿐이다. 이 노조가 어떤 오류도 없이, 어떤 실패도 없이 직선적으로 성장할 수 있다고 누구도 생각하지 않는다. 그런데 출발선에서부터 관료주의와 조합주의가 심각하게 드러나고 있다는 것도 분명하다. 이 문제를 바로잡아 나가야만 투쟁의 길이 제대로 열릴 수 있다.

 

한기박 지부장과 우하경 대의원은 현장 안팎에서 부당징계 철회 서명운동을 조직하면서 연대를 호소하고 있다. 1,800여 명이 서명에 참여했고 현장의 관심도 조금씩 늘어나고 있다. 이 동지들을 지켜내야만 민주노조를 바로세우는 힘이 성장할 수 있을 것이다.

 

반도체 신화에 가려져 있는 삼성 노동자들의 고통은 켜켜이 쌓여 있고, 앞으로도 자본의 위기를 노동자들에게 떠넘기려는 공격이 계속 펼쳐질 것이다. 노동자들은 다시 투쟁을 조직할 수 있다. 여러 가능성이 관료주의에 잠식당하면서 가라앉아버리는 비극이 발생하지 않도록 투쟁하는 노동자들을 지켜내고 모든 곳의, 모든 형태의 관료주의에 대항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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