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2.3 내란 이후, 투쟁의 현장에 연대하는 많은 '말벌동지'들을 만났다. 4월 4일 윤석열이 파면된 뒤에도 많은 ‘말벌동지’들이 각자의 자리에서, 때로 노동조합원이 되기도 하고, 때로 투쟁사업장에 연대하기도 하며 활동을 이어나가고 있다. 이들은 어떤 생각으로 윤석열 퇴진 광장에 나왔을까? 그 전에 이들은 뭘 하고 있었을까? 이들은 왜 광장에서 투쟁하는 노동자들과 같은 대오에 섰을까?
다섯 번째 인터뷰이는 IT노동자 동지다. 주 100시간 노동을 견디며 살아온 IT하청노동자인 그는, 세종호텔 투쟁을 통해 처음으로 ‘입체안경을 쓴 듯 세상이 다르게 보였다’고 말한다. 지금은 일반노조 누구나지회 소속으로 연대 활동을 이어가는 IT노동자 동지. 7월 15일, 그가 어떻게 광장에 서게 되었는지, 어떤 고민과 실천을 이어가는지 들었다.
안녕하세요. 본인을 ‘IT노동자’로 표현하고 계신데요. 간단한 소개 부탁드립니다.
‘IT노동자’라는 닉네임은 엄청난 의미를 가지고 지은 건 아니고요. 1월에 허지희 동지가 만든 웹자보 보고 세종호텔 집회에 참여했어요. 집회에서 참석자 이름 확인하잖아요. 저는 온라인 활동을 안 해서 닉네임 같은 게 없어서요, 노동 현장이니까 노동자로 얘기해야겠다, 근데 IT쪽에서 일하니까 ‘IT노동자’로 해야겠다 해서 한 번 쓴 거에요. 근데 그때부터 계속 ‘IT노동자’로 기억을 해주셔서 쓰고 있습니다. 저는 강서구에 살고 있는 평범한 신혼부부이고요. 작년에 결혼했는데, 윤석열 내란 때문에 신혼생활을 6개월 만에 빼앗겼습니다.
전에 IT현장에서 근무할 때 1주 100시간씩 4주간 400시간까지 일해봤단 얘기를 하셨어요. 충격적인 얘기였는데요, IT노동 현장 얘기를 좀 들려주세요.
저는 SI(소프트웨어 통합) 업무를 해요. 그러니까 쇼핑몰이라든지, 키오스크라든지 새로운 시스템을 구축해서 소비자들에게 오픈할 때까지 개발하는 과정이에요. 제가 일하는 업체는 전체 규모로는 200명 정도 일하는 곳인데요, 정직원은 50명이고 프리랜서가 150명 정도입니다. 업력은 15년이니 업계에서는 중견기업 정도 되고요.
장시간 노동이 일상이라고 봐야 해요. 일하다 보면 계획대로 되지 않는 경우가 많거든요. PM(프로젝트 매니저)이 바뀐다든지, 다른 업체가 펑크를 내 전체 일정이 밀린다든지 하는 일들이 터지는데, 원래는 그럴 때 인원을 추가 투입해야 하거든요. 프리랜서를 계약해 데려오든지 해야 되는데, 그냥 어차피 월급 받는 정직원들이 땜빵하라는 식이죠.
코로나 때는 장시간 노동이 더 심각했어요. 그 전에는 진짜 심각한 프로젝트도 많았는데, 그나마 약간 나아져서 이제는 주 7~80시간까지 가는 프로젝트는 적어지지 않았나 싶어요. 예전에는 밥 먹듯이 넘겼는데. 그래도 주 60시간 정도는 일합니다.
그건 명백하게 노동법 위반인데 문제 제기하는 동료들이 없었나요?
아무래도 우리 업체가 하청이다 보니까, 항의를 해도 원청에 책임을 떠넘기죠. “네가 갑(원청)에게 직접 따져서 오더를 내리게 해라” 뭐 이런 식으로요. 원청 대기업과 하청업체가 프로젝트 계약서를 쓰면요, ‘프로젝트 종료 후 2년간 무상으로 애프터서비스를 제공한다’ 이런 조항까지 넣어요. 그래서 이미 끝난 프로젝트인데, 원청에서 애프터서비스 요구했다는 이유로 가서 일하는 경우도 있어요.
원청이 작업 일정 등을 통제하는 거니까 불법파견 소지도 있어 보이는데요.
하청업체 사장은 어쩌다 일 터지면 나와서 보는 수준이에요. 보통 6개월에 한 번이나 얼굴을 봤는데, 그래도 이 정도면 “너네 사장은 그래도 양심 있다”는 얘기를 해요. 우리 업체는 나름대로 팀이라도 꾸려서 프로젝트에 투입됐는데, 어떤 대기업은 하청을 주면서도 아예 원하청 노동자 자리 배치를 같이 하기도 하죠. 같이 일하지만 원하청 노동자 사이의 임금 격차도 크다고 들었어요.
본인은 일하실 때 어떻게 대응하셨어요?
일단 너무 바빠서 대응도 힘들었어요. 사실 1주 100시간 일했을 때, 정말 안 되겠다 싶어 퇴사하려고 짐을 다 쌌어요. 그리고 다음날 회사에 출근했는데 너무 바쁜 거예요. 일하는 곳은 광화문이고, 본사는 강남이거든요? 사직서를 내려면 강남까지 가야 하니까, 바빠서 사직서 낼 시간을 못 만들고 흐지부지된 적이 있어요. 워낙 힘드니까 동료들하고 전우 의식 같은 것도 생기기도 했고요.
일하며 힘들어서 민주노총 IT연맹 홈페이지 찾아가 보곤 했어요. 근데 처음에 프리랜서 노조 가입을 받을지 결정이 안 됐다고 하더라고요. 저는 프리랜서가 노조에 가입하지 않으면 제대로 된 노조가 아니겠다 싶어서 가입을 안 했어요. IT업체는 정규직이 적고 프리랜서가 많은데 프리랜서까지 가입이 돼야 뭔가 협상이 가능하지, 라고 생각했어요. 나중에 내란 터졌을 때 일반노조 누구나지회가 더 낫겠다 싶어서 거기로 가입했어요.
내란 사태가 터지고 활발하게 활동하셨는데요, 그때의 심경과 고민을 구체적으로 들려주세요.
저는 계엄령 발표되고 나라가 망하는 줄 알았어요. 12월 3일에 친구 돌잔치 가려고 돌 반지까지 준비해서 나가려다가 취소하고요, 이틀 후에 집회에 나갔어요. 그게 생애 최초의 집회 참여였습니다. 저는 박근혜 때도 집회 안 나갔었거든요.
근데 계엄령은 진짜 나라 망한다고 생각했어요. 과거 6~70년대 현대사 시간에나 배웠고, 다른 비민주적인 사회에서나 벌어지는 일이죠. 막 국정원에 끌려가고 그럴 텐데, 못 살 것 같다, 그렇게 생각했어요. 그래서 12월부터 집회에 참여하면서 1월부터는 집회 자원봉사 활동도 하게 됐습니다. 남태령, 한강진, 민주노총 노숙투쟁 모두 참여했고요. 회사 다니면서 집회 다니고 그러다 보니 탄핵되고 나서 몸이 힘들더라고요. 회사에 퇴직하겠다고 하니까 일단 휴직을 쓰라고 해서 6월부터 9월 말까지 휴직을 쓰는 중입니다.
남태령 말씀을 하셔서 말인데요. 고백하자면 저는 그날 남태령 갈 생각을 아예 안 했거든요. 낮부터 집회를 했으니까요. 저녁에 명동에서 정리집회할 때 ‘남태령에서 농민들이 경찰에 막혀 있다’는 얘기가 방송차에서 나왔죠. 저는 그때 ‘아, 그렇구나’ 하면서 집에 갈 생각만 했거든요. 남태령까지 가실 때의 생각은 어떠셨어요?
그때 2차 계엄령을 할지도 모른다는 그런 긴장감이 있었잖아요. 한덕수도 탄핵해야 하느냐로 시끄러웠고요. 내란 세력과의 파워게임이 되고 있는데, 남태령에서 농민들이 밀린다면 그럼 우리가 밀리는 거다, 저분들이 밀리면 모두 손해를 보는 거다, 이렇게 생각했어요. 그때 집회에서 같이 나간 사람이 있었던 것도 아닌데 저 혼자 남태령까지 갔어요. 근데 오래 활동하신 분들은 그때 약간 여유가 있으시더라고요. (웃음) 저는 그때 정말 나라 망하는 줄 알았고요.
윤석열 퇴진 광장에는 정말 많은 사람들이 나와서 자기주장을 펼쳤죠. 그중에 노동자들의 투쟁에 함께 하게 된 계기가 있을까요? 가장 인상적이었던 분들은 누구였어요?
세종호텔 투쟁이 가장 인상적이었어요. 깜짝 놀랐습니다. 제가 광화문에서 5년 동안 일했는데 세종호텔에 노숙 농성투쟁이 있다는 것도 처음 알았거든요. 마치 입체안경을 쓰고 새롭게 세상을 보는 것 같은 충격을 받았어요. 내가 너무 무관심하고 몰랐구나, 하는 충격이요. 이렇게 치열하게 투쟁하고 있구나, 내가 이 사람들에게 빚지고 있던 것은 아닐까 하는 부채 의식이 생겼죠. 나는 그동안 내 살 길만 살았는데 이분들은 이런 사회운동을 했구나, 싶은.
아까 말씀하신 대로 일반노조 누구나지회도 가입하신 건데요. 실제로 노조 활동에 참여해 보니 어떠신가요? 사실 한국에서 노조활동은 사업장 단위로 단체교섭을 통해 단체협약을 체결하는 게 중심 활동이거든요. 이를 위한 의결체계가 만들어지고요. 그런데 누구나지회 같은 형태에서는 의결체계를 만들기도 쉽지 않을 것 같아요.
생각보다 활동이 쉽지는 않더라고요. 톡방에서 대화는 활발한데, 서로 얼굴을 익히기도 힘들고요. 두 달에 한번 오프라인 모임을 하고 교육을 하고요. 교육 내용은 민주노조의 형성 과정, 일반노조의 의미 같은 거요. 총회하면 오프라인으로 2~30명 정도? 줌으로 참여하시는 분들도 있고요. 사업계획으로 지역 연대활동을 얘기하는데, 개념은 좋지만 아직 좀 막연한 측면이 있는 것 같아요.
동지는 ‘사회주의를향한전진’에서 진행 중인 사회주의 기초학습을 듣고 계시죠. 6강까지 한번도 빠짐없이 오프라인으로 개근하셨어요. 교육 들으면서 어떠셨어요?
일단 신선해요. 왜냐면 정규 교육에선 못 들었던 얘기니까요. 애니메이션을 통해 일본에는 전공투 같은 사회주의 운동이 있다고 알았지만, 한국에도 사회주의 운동이 있는지 잘 몰랐거든요. 지인들에게 ‘사회주의’란 얘기는 직접 하긴 좀 그런데, 같이 집회 자원봉사했던 사람들에게 ‘너 이거 들었으면 되게 좋았을 거야’라는 말을 많이 하고 다닙니다. 그리고 미학 공부할 때 변증법 이런 게 관심이 있어서, 1강 철학 교육이 제일 재밌었고요.
지금 이재명 정부 지지율이 60% 중반대로 찍더라고요. 아마 윤석열 퇴진 광장에 나왔던 사람들 상당수도 이재명 정부를 지지하고 있는 걸로 보이는데, 앞으로 이재명 정부의 앞날이 어떨까요?
좀 어려운 질문이긴 한데요. 자원봉사를 같이 했던 사람들 보면, 처음에는 기대를 많이 했다가 실망한 것 같더라고요. 이재명이 당선되면 공격적으로 내란 청산을 할 거라 생각했거든요. 광장에 나왔던 사람 중에 민주당원들도 있는데, 이들도 내란 청산이 빨리 안 되는 데 실망감 같은 게 있더라고요.
마지막으로 앞으로의 활동 계획이 있다면 들려주세요. 9월에 복직한 후에 회사 내에서 노조 활동은 가능할 것 같으신가요?
글쎄요, 회사에서 노조활동 하면 회사가 없어지지 않을까요? (웃음) 사장님이 고령이어서 맨날 ‘회사 문 닫아야 하는데’라고 얘기하시는 분인데 노조가 생기면 진짜 문 닫을 것 같아요. 그래도 동료들을 누구나지회에 가입시킨다든지 이런 건 해볼 수 있을 것 같아요. 지금처럼 노동자 투쟁 연대도 계속하고요. 윤석열 파면 때처럼 열심히는 못 해도, 일과 병행할 수 있을 만큼 투쟁 연대도 열심히 하고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