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월 15일 오후, HD현대중공업 용접공 출신 이주노동자들이 울산이주민센터에 모였다. 이날 울산이주민센터에서는 조선업 기능인력비자E-7-3(조선업 등 일반기능인력)를 발급받아 현대중공업에서 일하다가 1년 또는 1년 3개월 만에 쫓겨난 이주노동자 9명과 울산, 대구, 부산의 노동자와 활동가들이 모였고, 많은 언론사 취재진의 관심 속에 ‘미등록으로 내몰리는 울산 조선소 이주노동자 어디로 가야 하나?’ 긴급 집담회가 열렸다.
일하러 왔는데 1년 만에 쫓아내면 우린 어디로 가야 하나요?
이주노동자들은 현대중공업에서 용접공으로 일하면 ‘월급 4백만 원, 재계약이 보장된다’는 송출업체의 약속을 믿고 각자의 나라에서 한국행을 결심했다. 각국으로 파견 나온 현대중공업 노동자들에게 교육받고 합격해, 현대중공업에서 2년간 일한다는 계약서를 쓰고서 한국에 왔다. 막상 현대중공업 직영 계약직으로 입사해서는 새로 1년 계약서를 쓰고 일해야 했다. 현대중공업 입사까지 지출해야 하는 비용은 최소 2천만 원이었다.
그런데 현대중공업은 연말께부터 1년이 지난 이주노동자와의 재계약을 거부하거나 3개월~6개월 등 쪼개기 계약 후 계약만료를 통보하는 방식으로 이주노동자를 내쫓고 있다. 숫자는 이미 백 명이 훨씬 넘는 걸로 추정된다. E-7-3비자의 체류기간은 원칙적으로 3년인데 대체 이게 무슨 일인가. 현대중공업은 최저임금으로 일할 정주노동자가 부족하다며 이주노동자를 데려와서 일하게 해놓고 1년 만에 내쫓고 있다. 3월 31일 1년 3개월 만에 현대중공업에서 쫓겨난 스리랑카 이주노동자는 “일하러 왔는데 1년 만에 쫓아내면 우린 어디로 가야 하나요?”라고 호소했다. 이주노동자들은 현중 자본으로부터 어떠한 정보나 안내도 받지 못한 채 ‘헬스 이슈’(건강 문제)라고 인쇄된 사직서에 서명하고, 기숙사에서 나가라는 통보만 받은 채 거리로 쫓겨났다.
다른 조선소에 이력서도 낼 수 없는 구조
이주노동자들은 일하는 동안 ‘최소 1인당 국민총소득(GNI) 80%’ 임금을 약속받았지만, 알 수 없는 공제액으로 최저임금을 받으며 일했다. 그래도 이주노동자들은 열심히 일하며 한국행 대출금을 갚고 앞으로도 꾸준히 일할 계획과 꿈을 키워왔다. 하지만 현중 자본은 이들을 무참히 내쫓았다. 비자 제도의 문제로 인해, 이주노동자들은 폐업 같은 예외적 상황이 아니라면 다른 회사로 취업도 할 수 없다. 조선소 취업 전까지 다른 직종에서 일하지도 못 하는 상황에 놓여있다. 뭐 이런 법이 다 있냐고 하겠지만, 법과 법무부 내부지침이 그렇기 때문이다.
2023년, 정부가 조선업 자본가들의 요청대로 저임금 숙련 이주노동자들을 손쉽게 착취하기 위해 만들어준 E-7-3비자는 조선업종 노동만 허용한다. 이직 시에는 D-10구직 비자(최대 6개월)를 먼저 발급받아야 하고, 각종 서류는 물론 조선소 자본가 단체인 한국조선해양플랜트협회의 고용추천서를 받아야 한다. 애초에 정부가 자본가들의 민원대로 E-7-3비자를 신설하면서 조선업 이주노동자 송출-송입, 채용에 관한 사항을 공공기관인 대한무역투자공사(코트라) 대신 민간업체(현지 송출업체와 한국조선해양플랜트협회)에 맡겼기 때문이다.
이주노동자 이직에 필요한 ‘한국조선해양플랜트협회 고용추천서’는 조선소 협력업체나 부품사 사장조차 발급할 엄두를 내지 못하니, 구직을 원하는 이주노동자를 채용할 수 없다. 추천서 없이 일자리를 찾는 이주노동자는 이력서조차 낼 수 없다. 그럼 이주노동자는 어디로 가야 할까? 김현주 울산이주민센터장은 “현 사태의 가장 심각한 문제는 조선업 이주노동자 인력 도입 과정 자체가 기업에 맡겨져 있다는 점이다. 예전 문제가 많던 중소기업 연수생제도처럼 20년이 지나 역행하는 상황이 되었다”고 비판했다.
친구집에서 자고 라면을 먹으며 버틴다
현대중공업은 E-7-3 이주노동자를 대상으로 고용보험조차 가입하지 않아 이들은 회사에서 쫓겨난 후 실업급여도 아예 받지도 못한다. 또한 법무부의 E-7의 구직비자(D-10)는 생계활동을 금지해 아르바이트로 돈 한 푼도 벌 수가 없다. 1년여 동안 최저임금 수준으로 대출금 갚고 가족 생활비를 보내며 일했으니 모아둔 돈도 있을 리가 없는데, 한국의 법과 제도는 아무 일도 못 하게 묶어놨다.
“지금 돈이 없어서 먹는 게 힘들고, 다른 친구 방에서 같이 자고 도움을 받는다. 라면 먹고 살고 있다. 돈이 없어서 힘든 현실이다. 스리랑카는 힘든 사람에게 잘해주는 문화가 있지만 계속 있을 수는 없다”, “지금 대출도 많이 받고 왔는데, 일을 구할 수 없다. 한국에서는 (미등록 이주노동자를) 집중단속하고 있어 무섭고, 앞으로 어떻게 되는지 모르겠다. 집에도 갈 수 없다. 이런 상황이라서 자살하고 싶은 심경이다” 사람이 일하러 왔을 뿐이다. 그런데 이들의 인생은 오로지 자본의 이해만 충족한 이주노동자 차별의 법과 제도로 인해 180도 뒤바뀌었다.
이에 대해 긴급 집담회를 주최한 울산이주민센터 김현주 센터장은 이렇게 설명했다. “계약 만료인 분들에 대한 회사 입장은 ‘당신들은 가세요’ 다. 하지만 돌아갈 수가 없다. 이분들을 미등록으로 일할 수밖에 없는 상황으로 모는 거다. 그런데 정부는 미등록 노동자를 또 단속한다고 한다.” 이미 4월 14일부터 또다시 미등록 이주노동자 추방을 위한 5개 부처 합동 단속이 시작되었다.
정부와 자본은 ‘이대로 살 수 없는’ 조선소 현장을 만들어놓고, 이주노동자들에게 ‘빚더미 안고 순순히 돌아갈래? 아니면 미등록으로 일하다 험하게 붙잡혀 추방당할래?’라고 협박하고 있다. 이번 현대중공업 직영계약직 이주노동자 해고 사태는, 정부와 자본이 이주노동자를 함부로 쓰고 버려도 되는 소모품 취급하고 있음을 다시 한번 여실히 보여준다.
더 값싸게 쓰고 버리려는 또 다른 비자
정부는 자본의 소원대로 E-7-3비자의 임금요건을 매년 완화해 올해는 최저임금과 같으며, 자본은 현대중공업처럼 수십만 원을 임금에서 공제해도 제재받지 않는다. 이주노동자들은 잔업이나 특근이 없는 달 약 200만 원의 월급을 받으며 고되게 일하다 쫓겨날 뿐이다. 그런데도 정부와 자본은 노동자 분열 조장과 하향평준화에 열 올리며 더 값싸고 손쉽게 노동력을 충원하기 위해 지역 광역형 비자, 울산형 고용허가제를 새로 만들려 한다.
김현주 센터장은 울산시가 새로 도입하려는 ‘지역형 광역비자 시범사업’(E-7-3, 510명)과 ‘울산형 고용허가제’(조선 5개 직종 E-9, 280명) 계획을 중단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조선업 자본을 위해 “이주노동자를 E-7-3제도의 희생양”으로 내모는 계획이라는 것이다. 게다가 공교롭게도, 울산시가 새롭게 추진하는 비자 규모가 현대중공업 직영 계약직으로 일하는 E-7-3 이주노동자 800명과 같다며 “새로운 비자 도입이 아니라 현재 여기 와 있는 이분들에게 살길을 열어주는 게 먼저”라고 강조했다.
현대중공업사내하청지회 오세일 부지회장은 정주노동자 고용보장을 원청이 책임지는 것과 마찬가지로, 이주노동자를 도입하고 사용한 현대중공업이 이 문제를 해결해야 한다는 점을, 윤태현 사무장은 새로운 비자 추진 등이 원청에서 실질적으로 직영 계약직을 없애 아웃소싱하려는 의도로 보인다며 현대중공업이 그 책임져야 한다고 뜻을 모았다.
이주노동자들은 “우리는 언제 다시 일할 수 있을까요? 일자리를 어디에서 어떻게 구할 수 있나요? D-10비자 없는 사람은 빨리 만들도록 도와주세요. 그리고 D-10비자 받는 사람들이 일할 수 있게 도와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고 말했다.
이주노동자와 손잡자
취재진은 다른 이주노동자들이 이런 내용을 아느냐고 물었고, 이주노동자들은 “현대중공업은 커뮤니티를 금지하고, 커뮤니티에 참여하면 집에 보내 버린다”고 증언했다. 지금도 이주노동자들은 체류에 필요한 생활, 업무, 미래에 대한 제대로 된 정보를 제공받지 못한 채 저임금 고강도 노동에 시달리며 일상적 고용불안에 떨고 있다. 아프다고 말하면 재계약이 안 될까 봐 참다가, 일요일이 되어서야 울산이주민센터 진료소를 찾기도 한다. 이주노동자에게만 식비를 받으니, 돈을 아끼려 구내식당에 가지 못하기도 한다. 이런 현장에서 일하던 직영 이주노동자들이 이제 거리로 내몰리고 있다.
자본주의 쇠퇴기, 격화하는 경제위기에 따라 더 악랄해지는 자본의 착취는 이주노동자만을 향한 것이 아니다. 정주노동자가 열악한 처지에 놓인 이주노동자를 탓하거나, 이주노동자들의 고통에 무관심해서는 안된다. 이주노동자를 ‘우리와 다른 존재’로, 이주노동자의 문제를 별개의 사안으로 취급하며 분열해서는 안된다. 단결투쟁으로 정주노동자와 이주노동자를 용접해야 한다. 그러할 때 조선소 전체 노동자 착취도를 높이며 생명과 존엄을 위협하는 자본에 맞서 노동자의 권리를 지킬 수 있다.
이주노동자는 소모품이 아니다! 정부와 자본은 이주노동자를 미등록으로 내모는 야만적 해고를 당장 멈춰라! E-7-3 이주노동자의 적정기간 고용을 보장하라! 계약만료 노동자에 대한 재교육과 재취업을 보장하라! 사업장 변경·이동의 자유를 보장하라! 저임금과 차별 대우를 중단하라!
빚더미를 안고 타국에서 해고된 채 자신의 목소리를 낸다는 건 보통을 용기가 아닐 것이다. 이들은 자신의 억울함을 증언하며 다른 이주노동자들 맨앞에 서서 연대를 호소했다. 라면을 먹으며 버티지만, 노동자로서 당당히 자신의 권리를 말한 동지의 손을 잡자. 뜻있는 울산지역 노동자 활동가들이 구체적 연대 방안을 모색할 것이다. 정부와 자본의 이주노동자 차별에 맞서자. 국적과 인종을 넘어, 일하며 살아가는 전국 노동자 민중이 단결 투쟁하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