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동상담 일기 (2) ┃ IT 원하청 실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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온라인신문

노동상담 일기 (2) ┃ IT 원하청 실태

  • 김요한
  • 등록 2022.11.09 10:22
  • 조회수 289

네이버

 

간접고용 하청 노동자의 진짜 사장이 원청 자본가라는 것은 현실이 지금껏 수천수만 번 증명한 일이다. 원청 자본가는 도급(용역)계약이라는 허울 뒤에 숨은 채, 하청 노동자의 인원수, 임금과 노동시간 등 모든 노동조건을 일일이 결정한다. 해고와 징계권도 직접 행사하는 데 주저함이 없다. 자본가로서 행사할 수 있는 모든 권한을 유감없이 행사하면서도, 나아가 하청 노동자들을 착취해 초과이윤을 누리면서도, 사용자로서의 법적 책임은 단 0.1그램도 지지 않는 것, 그것이 간접고용의 본질이다.

 

이러한 원하청 관계는 IT업계라 해서 다르지 않다. 특징이 있다면 IT업계에서의 간접고용 관계는 본사-자회사 구조가 두드러진다는 것이다. 예컨대 포털사이트 ‘네이버’는 자회사 ‘네이버아이앤에스’의 지분 100%를 가지고 있으며, ‘네이버아이앤에스’는 다시 손자회사 ‘그린웹서비스’, ‘엔테크서비스’, ‘컴파트너스’ 등의 지분 100%를 가지고 있다. 차이가 있다면 노동자들의 노동조건이다. 네이버 본사와 손자회사 사이의 연봉 차이는 거의 2배 수준이다. 신입 초임을 기준으로 손자회사의 연봉은 2,400~2,500만 원 수준으로, 네이버 본사와 비교해 약 2,000만 원 이상 차이가 난다. 값싼 노동을 사용하기 위해 본사-자회사-손자회사의 복잡한 원하청 구조를 만들어놓은 것이다.

 

그러나 노동자들이 하는 일에는 실상 차이가 없다. IT공룡 네이버의 다종다양한 서비스 모두를 정상적으로 운영하기 위해서는 자회사, 손자회사에 고용된 노동자들의 노동이 빠져서는 안 된다. 네이버가 자회사, 손자회사의 지분을 100% 보유한 채 일체의 경영권을 행사하는 이유다. 자본가들은 자신들끼리는 무정부적 경쟁을 일삼으며 틈만 나면 자유경제를 주창하지만, 하나의 기업집단 내부에서는 고도의 계획경제를 시행한다. 네이버도 예외가 아니다. 본사-자회사-손자회사의 효율적인 업무 분담을 위해, 네이버 본사는 손자회사에 고용된 노동자들에게 구체적인 업무지시를 내리고 프로젝트에 넣고 뺄 사람들을 직접 정한다. 불법파견 판정을 피하기 위해 위장수단을 얼마나 세련되게 썼는지의 차이가 있을 뿐, 하청(손자회사) 노동자들의 진짜 사장이 네이버 본사라는 건 움직일 수 없는 진실이다.

 

사진: 참여와 혁신

 

네이버의 손자회사 한곳에서 일하는 김희준(가명) 씨는 10년 차 IT노동자다. 컴퓨터공학을 전공한 김희준 씨는 대학교를 졸업할 때 교수의 소개로 지금의 회사에 입사했다. 네이버 계열사 몇 군데를 소개받았는데, 소개받은 계열사 중 집에서 먼 자회사가 아니라 집에서 가까운 손자회사를 선택했다가 지금 땅을 치고 후회한다고. 자회사와 손자회사도 급여 수준과 복리후생에서 엄청난 차이를 보이기 때문이다. 10여 년 전만 해도 본사, 자회사, 손자회사의 노동조건에는 큰 차이가 없었다고 한다. 심지어 본사의 필요에 따라 손자회사의 부서 하나가 통째로 본사로 옮겨가는 경우도 있었다고 한다. 지금은 비교조차 어려운 노동조건의 차이가 단순히 우연적 요소에 따라 결정됐던 것이다.

 

문제는 자본가들이 만들어놓은 위계적 고용구조가 단순히 비용절감 차원을 넘어 그 자체로 이데올로기적 효과를 보고 있다는 점이다. 현재 네이버 본사와 자회사, 손자회사에는 몇 년 전 노동조합이 조직되었다. 화섬노조 네이버지회다. 그러나 손자회사 조합원들의 요구안은 네이버 본사로의 직접고용, 또는 차별 없는 노동조건이란 요구까지는 나아가지 못하고 있다고 한다. 10여 년에 걸쳐 위계적인 고용구조가 자리 잡으면서, 네이버 본사는 훨씬 어려운 채용시험을 통과한 사람, 자회사는 이보다는 못하지만 손자회사보다는 어렵게 채용절차에 합격한 사람, 손자회사는 훨씬 쉽게 채용된 사람이라는 인식이 노동자들 사이에 광범위하게 자리 잡았기 때문이다. 노동조건의 차이는 개인의 능력에 따른 차별이라는 능력주의 이데올로기를 십분 활용할 수 있게 된 것, 이것이 IT 자본가들이 끝끝내 위계적인 고용구조를 고집하는 이유일 것이다.

 

IT노동자들의 원하청 실태는 최근 윤석열 정부와 자본이 떠드는 직무급 도입 논의가 얼마나 허황한 것인지를 그 자체로 드러낸다. 사실 전체 노동자의 61.4%는 임금체계 없이 일하는 실정이다. 그들에게는 최저임금이 유일한 임금제도에 불과하다. 형편이 이런데도 자본가들은 직무급이 동일가치노동 동일임금이라는 원칙으로 노동자들 사이의 임금격차를 해소하는 수단이 된다고 우겨댄다. 고양이 쥐 걱정한다고, 뻔뻔하기 짝이 없는 헛소리다. 직무급이 다소나마 그런 역할을 하기 위해서는 반드시 초기업별 교섭, 원청 사용자의 사용자 책임 인정이 선행돼야 하기 때문이다. 기업 규모별로, 그리고 고용형태별로 노동자들 사이에 넘을 수 없는 칸막이를 만들어놓고, 직무급으로 임금격차를 완화하겠다고 떠들어대는 의도는 빤하다. 저들은 조직노동자를 공격하기 위한 이데올로기로 직무급 논의를 꺼내놓고 있을 뿐이다.

 

네이버의 경우를 보라. 네이버지회는 네이버 본사와 각 계열사의 집단교섭을 요구하고 있지만, 네이버 자본은 한사코 이를 거부한다. 자본에게 이득이 되는 위계적 고용구조를 법적 강제 없이 스스로 포기할 리 만무하다. 네이버 본사, 자회사, 손자회사 노동자들이 종사하는 유사 직무에 대해, 자본가들은 정말 직무급을 도입해 임금 수준을 평준화할 의사는 눈곱만치도 없다. 본사와 계열사를 포괄하는 집단교섭도, 지분 100%를 가지고 있는 본사가 직접 교섭에 나와야 한다는 요구도, 저들은 자기 계급의 이해를 지키기 위해 철저히 차단한다. 노동자들을 분할시키는 것이 한 줌에 불과한 자본가들의 독재를 유지하는 가장 확실한 방법이기 때문이다.

 

작금의 노조법 2, 3조 개정 요구는 그 자체로 노동자들의 분할을 극복하고 계급적 단결로 나아가기 위한 정세적 요구이기도 하다. 하청 노동자들의 노동으로 이윤을 얻는 원청이 그에 따른 법적 책임도 지게 하는 것, 글로벌 스탠더드에도 한참 미달하는 불법의 잣대를 들이대며 손배 가압류로 노조를 파괴하는 행위를 금지시키는 것, 이것은 한국의 노동자운동이 다시 변혁적 운동으로 나아가는 데서 중요한 디딤돌이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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