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터뷰] 가해자는 남고 피해자가 떠나는 금속노조는 안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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온라인신문

[인터뷰] 가해자는 남고 피해자가 떠나는 금속노조는 안 된다

한국지엠비정규직지회 조합원 김태훈

  • 홍희자
  • 등록 2022.12.01 12:37
  • 조회수 57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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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금속노조 인천지부장의 성폭력 사건이 금속 비정규직 단위 공동성명서와 호소문 등으로 알려졌습니다. 사회주의를향한전진은 현장에서 제대로 된 성폭력 사건 해결을 위해 투쟁해온 한국지엠비정규직지회 해고자 이준삼 동지에 이어 김태훈 한국지엠비정규직지회 조합원을 만나 그동안의 경과와 문제에 대해 들었습니다. 성평등한 금속노조를 위해 투쟁하는 동지들에 대한 많은 관심과 지지를 당부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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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떤 사건이 벌어진 것인지 그리고 왜 지금까지 문제가 제대로 해결되지 못한 채 이어지고 있는지 설명을 부탁합니다.

 

사건은 지난 4월 금속노조 인천지부장이 여성집행위원에게 언어 성폭력을 가하며 불거졌습니다. 집행위원을 성적 대상화한 것이었습니다. 선두에서 치열하게 투쟁을 조직하고 모범을 보여야 할 지부장이 성폭력 문제를 일으켰다는 사실 그 자체만으로도 선출직 임원으로서의 자격을 상실할 만한 일이었다고 봅니다. 그런데 충격적이게도 지부장의 언어 성폭력 행위는 이번 사건이 처음이 아니었습니다. 거친 욕설과 반말, 여성비하와 성적 발언 등의 행위가 수년 동안 지속적으로 이루어져 왔다는 사실이 이번 사건으로 드러났을 뿐이었습니다. 피해자 동지는 지난 4월 사건 발생 전부터 과거의 언행들에 대해 개선을 요구해 왔습니다. 그러나 계속 무시되었고, 그러한 언행들이 축적되어, 그 연장선상에서 이번 성폭력 사건까지 발생한 것이었습니다. 더구나 지부장은 사건 발생 이후에도 조직의 책임자로서 사건을 해결하려는 모습을 전혀 보이지 않았습니다. 조사과정에서도 허위 진술과 형식적 사과를 비롯해 무책임한 태도를 지속했습니다. 결국 지금까지 문제가 점점 더 커질 수밖에 없었던 것입니다.

 

사태가 이렇게 된 데에는 금속노조의 책임도 컸습니다. 해당 사건을 해결하는 과정에서 금속노조의 후속조치는 미흡했고, 피해자의 의견은 묵살됐습니다. 특히 피해자 보호를 위해 가해자 분리가 필요한 상황이었는데, 금속노조는 파티션을 설치하라는 조치를 낸 것 외에는 몇 달 간 사건을 방치했습니다. 또 가해자가 5천여 만 원의 조합비를 사용해 54평의 호화스런 사무실을 사용할 수 있도록 승인했습니다. 결국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는 현장 조합원들에게 알리고 직접 목소리를 내야 하는 상황에 이르게 된 것입니다. 이러한 과정을 옆에서 지켜본 한국지엠부평비정규직지회 조합원들은 지부장실 앞에서 피켓을 들고 항의했습니다. 저 또한 이에 문제의식을 느껴 인천지부 앞 피켓팅 시위에 동참했습니다.

 

성폭력 사건이 일어난 지 꽤나 시간이 흘렀습니다. 이미 징계기간도 다 지났는데 이번에 비지회에서 총회를 통해 지부장 사퇴를 촉구(“성폭력 사건으로 징계를 받은 지부장의 사퇴를 촉구한다!”, 11.11)하게 된 배경과 구체적인 내용, 그리고 그 의미에 대해서 말씀해 주십시오.

 

금속노조의 성폭력 사건 처리 과정에는 문제가 많았습니다. 남녀고용평등법에도 성희롱 행위자에 대한 징계와 근무장소 변경, 조치 전 피해자 의견 청취를 명시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실정법에도 있는 근무지 분리 조치조차 제대로 이행되지 않으면서 2차 가해가 발생했습니다. 결국 이에 문제의식을 느낀 지회 조합원들이 먼저 행동했습니다. 자발적으로 텔레그램 프로필 창을 검은색으로 바꾸고, 인천지부 사무실 앞에서 제대로 된 해결을 촉구하는 시위를 벌였습니다.

그런데 인천지부가 아무런 공식적인 입장도 내지 않고 방관하면서 조합원들 사이에서 분노가 끓어오르기 시작했습니다. 결국 114일 비정규직지회는 조합원 임시 총회를 통해 지금까지의 상황에 이르게 된 책임을 인천지부 지부장과 인천지부 사무국장에 물으며 사퇴를 촉구하기로 결정했습니다.

 

성폭력 사건이 발생한 사실 자체도 문제지만, 그것을 처리하는 과정에서 민주노조로서의 원칙에 입각한 징계나 피해자 보호 등의 후속조치가 제대로 이뤄지지 못했다는 사실에 더 큰 문제가 있었다고 봅니다.

 

피해자 보호 조치로서 파티션 분리는 피해자 괴롭히기에 불과했습니다. 그게 금속노조에서 내놓은 해결책이라는 점이 조합원으로서 충격이었고요. 금속노조에서는 문제제기가 심각해지니 그제야 사무실 분리를 고민하기 시작했습니다. 그런데 그 이후에는 피해자 보호를 위한 후속조치로 5,300만 원을 들여 54평의 호화스러운 사무실을 구했습니다. 이런 말도 안 되는 조치에 금속노조의 책임이 너무 큽니다. 조합원으로서 금속노조에 대한 자부심으로 치열하게 투쟁해왔기에 이번 후속조치로 인해 느낀 배신감이 이루 말할 수 없이 컸습니다. 중앙집행위원회(중집)가 이런 걸 승인했다는 것 또한 너무 충격적으로 다가왔고요.

 

금속노조의 책임이 크다고 생각합니다. 금속노조는 이번 성폭력 사건을 제대로 해결하지 못해 2차 가해도 야기했다고 봅니다. 가해자 지부장은 임원으로서 성평등교육도 수차례 받았고, 조직 내 성폭력 문제가 발생했을 때 문제를 해결해야 할 위치에 있는 사람이기에 더더욱 가해 행위에 대한 책임을 강하게 물었어야 하는데 3개월의 경징계에 그치니, 결국 금속노조가 가해자에 대한 온정주의를 부추긴 꼴입니다. 그 결과 2차 가해를 증폭시켰습니다. 신속한 후속조치와 격리조치, 피해자에 대한 불합리한 처우를 사전에 막았어야 했는데 전혀 그러질 못했습니다.

 

금속노조가 성평등한 조직으로 바로서지 못하는데 과연 투쟁을 제대로 조직할 수 있겠나 싶습니다. 중집이 이번 사건과 그 미흡한 해결과정에서 금속노조 인천지부 여성 조합원들이 느낄 고통과 충격에 대해서 과연 얼마나 고민했는지 묻고 싶습니다.

 

여러 동지들의 연명을 받아 1115, 금속노조 중집 회의에 호소문을 제출하고 피켓시위를 했다고 알고 있습니다. 그날 실천에 대해서 듣고 싶습니다.

 

금속노조 중집에서 가해자 격리 사무실 임대 승인 건에 대해 재논의한다고 들었기에 조합원들의 목소리를 중집에 전달해야 한다고 생각했습니다. 피해자 보호 조치라는 본래의 취지와 목적에 부합하지 않고, 절차도 심각하게 위반했기 때문에 몇몇 조합원들이 사무실 임대 건 취소를 촉구하는 호소문을 쓰고 초동제안자로 나섰습니다. 그렇게 3-4일 호소문을 돌렸는데 500명에 가까운 금속노조 조합원이 연서명에 동참해주셨습니다. 이 목소리를 1115일 금속노조 중집 회의에 전달하고 피켓팅을 진행했습니다. 무엇보다 해당 사안에 분노하는 금속노조 조합원들의 동참이 있었기에 피켓시위까지 했던 것입니다. 연서명에 동참한 조합원들은 지부장 사퇴와 조합비를 함부로 사용한 책임자들을 엄중하게 징계해야 한다고 요구했습니다. 그러나 중집은 기존 사무실 임대 계약을 취소하고, 작은 사무실을 다시 임대하기로 했을 뿐, 지부장 사퇴나 책임자들에 대한 징계 요구는 외면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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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호소문] “인천지부 성폭력 사건 가해자 사무실 임대는 원점에서 재검토해야 합니다”, 11.15

 

 

2차 가해자들에 대한 진상조사위도 꾸려졌는데요, 어떤 상황인가요?

 

인천지부 지부장 성폭력 2차 가해 사건 진상조사보고서가 얼마 전 금속노조 홈페이지에 올라왔습니다. 2차 가해는 피해자의 업무 복귀 전후에 이루어졌습니다. 사건 접수 당시부터 가해자 우선 격리조치가 이뤄졌어야 하는데 가해자가 기존에 했던 그대로 지부장의 업무를 다시 하다 보니 조직보존 논리와 가해자 온정주의가 앞서게 된 것 같습니다. 우리는 피해자 보호를 위해 초기부터 지부운영위와 중집에 가해자 업무중단을 요구했지만, 금속노조는 받아들이지 않았습니다. 선출직 임원이라 직무정지는 징계성이고 따라서 징계가 끝난 시점에서 추가적인 징계를 할 수 없다는 이유였습니다. 그러나 사건 발생 시 실효성 있는 가해자 격리 조치가 최우선 사항이 되어야 2차 피해를 방지할 수 있습니다. 또한, 조직이 성폭력 사건을 아무리 잘 해결하더라도 피해자는 주변 동지와 조합들과의 관계로 인해 일상회복에 많은 어려움을 겪게 됩니다. 피해자가 건강하게 활동해 나갈 수 있도록 조직이 아낌없이 지원하고 노력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비정규 단위 공동성명서에서는 주로 호화로운 사무실 임대 건에 초점이 맞춰진 것 같습니다. 사무실 건만이 아니라 성폭력 사건 해결 과정에서 발생한 문제들에 대해 보다 더 확대된 선전선동, 실천을 조직할 필요가 있다고 생각하는데 어떠신지요?

 

동의합니다. 최근 금속노조 내에서는 상근 간부에 의한 언어 성폭력 사건이 빈번하게 발생하고 있습니다. 성평등한 금속노조를 만들기 위해서는 이러한 성폭력 문제가 발생했을 때마다 제대로 된 해결 절차를 만들어가야 합니다. 특히 이번 인천지부 성폭력 사건에서는 규약·규칙의 한계 때문에 징계 결과에 대한 피해자의 재심청구가 불가능했습니다. 미흡한 규약·규칙을 개선하여 문제를 제대로 해결하고 나아가 조직 내 성인지 감수성을 키워야 합니다. 노조가 법보다 성폭력의 범위를 더 넓게 적용해야 하는 이유는 성폭력 문제의 적극적 해결을 통해 피해자에 대한 근본적 치유책을 강구하고 조직 내에서 이러한 사건이 재발되지 않도록 공동체적 책임감을 부여하기 위함입니다. 이런 조치를 통해 금속노조가 더 발전할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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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금속 비정규직 단위 공동성명서] "성폭력 가해자 위해 집행한 조합비 5,300만원 당장 환수하라”, 11.13

 

 

이번과 같은 사건은 금속노조만의, 인천지역만의 문제가 아니라고 봅니다. 민주노조운동 안에서 크고 작은 성폭력 사건이 벌어질 때마다 문제가 반복되는 느낌입니다. 그 이유가 뭐라고 생각하시는지, 이를 바로잡기 위해 가장 필요한 것은 무엇이라 보시는지요?

 

조직 내에서 성폭력 사건은 참 많이 벌어져왔지만, 문제가 제대로 공론화되지도 못하고 사라져왔다고 생각합니다. 문제가 해결되는 게 아니라 피해자가 떠나는 형태로 문제가 사라진 것이지요. 문제를 바로잡아야 한다는 금속노조 내 인식의 변화, 조합원들의 의지가 모이는 게 중요하다고 생각합니다. 이번 연서명에 단 며칠 사이 500여 명의 조합원이 동참해준 것처럼 문제해결을 위한 의지가 계속해서 모여야 합니다. 근본적으로 조합 내 성폭력 문제가 뿌리 뽑힐 때까지 공동체적 책임감을 가지고 나서야 합니다. 일상적으로 표현되는 성희롱, 성폭력에 대해 참거나 회피하지 않고, 문제제기하고 실천하는 성평등한 문화를 만들기 위한 행동들이 일상적으로 취해질 때 조직이 더 단결하고 강화될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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