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3년 정세와 과제 1] 2023년, 심화하는 자본주의 세계체제의 균열과 열강의 투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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온라인신문

[2023년 정세와 과제 1] 2023년, 심화하는 자본주의 세계체제의 균열과 열강의 투쟁

  • 백종성
  • 등록 2023.01.03 14:28
  • 조회수 946

IMF(2.7%, 2022.10), WB(3.0%, 2022.9.), OECD(2.2%, 2022.9.) 등 주요 기관들이 모두 2023년 경제성장율을 낮추어 잡으며 본격적 침체가 시작될 것이라고 전망한다. 2000-2021년 세계경제성장률 평균치가 3.6%임을 감안할 때, 또한 2021년 세계경제성장률이 6%를 기록했음을 감안할 때 급속한 침체 양상이다. IMF가 전망한 미국, 유로존, 중국의 2023년 성장률 전망치는 각각 1.0%, 0.5%, 4.4%로 전망시기에 따라 추세적으로 하강하는 형국이며 하락폭도 가파르다. 위 주요 기관들은 코로나19 지속가능성, 인플레이션 장기화 위험, 러시아-우크라이나전쟁 장기화 위험, 통화긴축 지속에 따른 글로벌 경기침체 가능성, 달러화 가치상승에 따른 신흥국 물가불안 심화 위험, 글로벌 공급망 재편 과정에서 발생하는 공급 차질 등을 주요 위험요인으로 꼽고 있다. 우리는 현 상황을 어떻게 바라보아야 하는가? 

 

인플레이션은 단기간에 진정되기 힘들다 - 공급망 위기가 드러내는 거대한 균열 


돌이켜보자. 2020년 이후 신차 출고지연과 그에 상응하는 중고차 가격폭등을 낳은 바 있고, 아직도 이어지고 있는 반도체 공급차질을 촉발한 것은 트럼프 정부의 대중 반도체기업 제제였다. 트럼프 정부는 SMIC, 화웨이 등 중국의 주요 반도체 기업을 ‘국가안보’를 명분으로 미국은 물론 동맹국 시장에서도 퇴출시켰으며 이는 반도체 공급망 위기, 그리고 오늘의 반도체 공급망 재구축 전쟁으로 다시 이어지고 있다. 


2021년, 이름은 물론 존재조차 생소했던 ‘요소수’를 전 국민에게 각인시킨 요소수 부족 사태는 중국과 호주의 무역분쟁에서 비롯되었다. 그리고 그 무역분쟁을 촉발한 것은 안보분쟁이다. 2020년 중국은 호주가 쿼드(QUAD, 미국·일본·호주·인도 4자안보대화)에 가입하자 호주산 석탄 수입을 금지했고, 호주산 석탄이 끊긴 중국이 전기부족사태에 직면했다. 석탄과 석탄에서 요소를 추출하기 위해 소요되는 전력 모두 부족해진 중국은 자국 요소 수출을 금지했고, 그 결과가 한국의 요소수 사태로 이어졌다. 현 공급망 위기는 단지 전쟁이 만든 것이 아니다. 전쟁은 근저에서 심화하던 위기의 발현이었을 따름이다. 


신자유주의 시대에 본격화된 세계화는 전 세계를 긴밀한 공급망으로 통합했다. 이른바 GVC, 즉 지구적 가치사슬을 통해 자본주의 열강들은 자국 물가를 낮게 제어할 수 있었고, 이를 통해 자국 노동자들의 임금을 정체시키거나 하락시키면서도 대중적 분노의 폭발을 제어할 수 있었다. 그 과정에서 가장 중요했던 요소가 바로 중국의 시장개방과 세계 자본주의체제로의 긴밀한 결합이다. 


중국은 2001년 WTO에 가입한 이후 값싼 공급의 중심으로서 세계 자본주의의 견인차 역할을 해왔고, 이는 미국의 전략이기도 했다. 즉, 미국은 중국의 개방을 유도하며 ‘중국의 개방은 미국과 그 우방에게 경제적 이익을 가져다 줄 뿐 아니라 중국의 ‘민주화’를 촉진할 수 있다'고 계산했다. 실로 미국 주도 단극 자본주의체제에 대한 낙관이 넘치던 시기였다. 2000년 3월 9일, 중국의 WTO 가입을 지지하며 WTO가입 시 최혜국 대우를 보장하는 미중무역법 통과를 공개적으로 촉구하는 빌 클린턴의 발언은 다음과 같다. 

 

“이 협정이 중국 외부로부터 가져올 변화도 아주 특별합니다만, 중국 내부로부터 촉발할 변화에 비하면 아무것도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WTO 가입으로, 중국은 단지 우리 제품을 더 많이 수입하는 데 동의하는 것이 아닙니다. 중국은 민주주의의 가장 소중한 가치 중 하나인 경제적 자유를 수입하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 중국이 경제를 더 많이 자유화할수록, 중국 인민의 잠재력, 즉 창의력, 상상력, 놀라운 기업 정신이 더 완전히 해방될 것입니다. 그리고 각자 꿈꾸는 것은 물론 그 꿈을 실현할 힘을 가질 때, 중국인들은 큰 발언권을 요구할 것입니다.”

 

그렇게 중국과 미국의 ‘호혜적 관계’가 형성되었다. 미국은 생산비용을 낮추었고, 중국은 자본을 축적했다. WTO라는 자유무역의 첨병을 통해, 또한 해외직접투자(FDI)를 통해 공급망은 국경을 넘어 통합되어 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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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거 GVC 중심에 미국, 일본, 독일이 있었다면 이제 미국, 중국, 독일이 있다. https://www.wto.org/english/res_e/booksp_e/gvc_dev_report_2019_e.pdf

 

 이것이 미국을 비롯한 주요 자본주의 선진국이 성장하면서도 노동계급의 저임금과 저물가를 동시에 유지할 수 있던 배경이다. 클린턴 정부 당시 호황기에도 미국은 저물가를 유지했다. 아래는 미국의 1960-2021 물가 추이다. 신자유주의 본격화 후 장기 저물가를 확인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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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런 상황을 끝낸 것이 바로 2008년 발발한 위기다. 바로 그런 의미에서, 2008년은 신자유주의체제의 균열, 그 시작을 알리는 신호탄이었다. 1970년대 후반, 신자유주의는 자본주의의 위기관리체제로서 등장했다. 그리고 신자유주의 본격화 이래 40년이 흐른 후, 2008년 위기는 위기관리체제 자체가 위기에 부딪혔음을 드러냈다. 아래 두 그래프는 각각 1970년 이후 세계 각국의 해외직접투자 추이와 1995년 이후 글로벌 벨류체인 참여율 추이다. FDI의 경우 2007년을 정점으로 하락세가 완연하고, GVC의 경우 1995년부터 2008년까지 맹렬한 상승기 당시의 흐름을 회복하지 못한 채 추세적으로 하강하는 형국이다. 세계화가 균열하고 있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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좌: 해외직접투자 순유입액 (GDP 대비) 출처: 세계은행 우: GVC 참여율(위 생산기반, 아래 무역기반) 출처: WTO

 

이렇듯 벌어지는 인플레이션의 기저에는 기존 질서의 균열이 있다. 그 균열의 심화가 전쟁을 불렀다. 전쟁을 봉합한다고 해도 새로운 축적체제 구축까지는 갈 길이 멀다. 신자유주의는 소멸했는가? 소멸하기 시작했다. 새로운 질서가 형성되고 있는가?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과 대만을 둘러싼 미중의 투쟁에서 드러나듯, 열강은 균열의 심화 속에 질서의 재구축을 향한 격렬한 투쟁으로 치닫고 있다. 그람시의 말마따나 “위기는 정확히 말하면, 낡은 것이 소멸해가고 있는데 새로운 것이 태어날 수 없다는 사실에 놓여 있다. 이러한 인터레그넘*에는 극히 다양한 병리적 증상들이 출현하게 된다.”


심화하는 쟁투를 표현하는 한 단면이 WTO 분쟁 건수다. WTO 제소는 ‘협의요청(request for consultations)’을 통해 시작된다. 아래 협의요청 건수 추이는 각국 무역분쟁이 WTO를 매개로 이루어지다가, 급기야 WTO 자체가 무용지물이 되고 있음을 드러낸다. 2008년 이후 국가 간 무역분쟁은 추세적으로 증가한다. 즉, 몇 년 전까지만 해도 세계 각국은 그 속내가 어떠했건 아직 WTO라는 자유무역 체제의 틀 내에서 투쟁했다는 것이다. 


그러나 ‘보조금 지급과 비관세 장벽으로 자유무역질서를 위배했다’며 상대방을 제소하던 각국(상대방을 가장 많이 제소하던 미국이다)은 어느새 명분으로나마 유지하던 ‘자유무역체제 수호’마저 벗어던졌다. 그 결과 제소 자체가 급감하고 있다. 어느새 껍데기만 남은 자유무역체제의 폐기, 그 선봉에 선 것이 미국이다. 


트럼프는 2018년 이후 대 중국과 한국 등이 개도국 지위를 악용해 불공정 무역을 하고 있고, WTO는 이를 제재하지 않는다는 이유로 ‘미국 우선’을 외치며 보복관세조치로 무역전쟁에 불을 붙이는 한편 WTO 탈퇴를 압박했다. 바이든 정부는 한 발 나아가 자국에서 생산된 상품에만 보조금을 주겠다고, 중국산 부품이 없어야 보조금을 주겠다며 WTO를 완전히 무력화했다. 미국 정부가 노골적 보호주의에 나서도 어지간한 선진국이 아닌 이상 무역상대국들이 미국을 불공정무역으로 제소할 수도 없고, 설사 제소한다고 해도 미국이 만든 WTO가 미국을 징계할 수도 없다. 2022년 12월 9일, WTO는 트럼프 정부 시절 외국산 철강·알루미늄 관세를 규정 위반으로 판정했으나 미국 무역대표부(USTR)는 `안보 문제`라며 이를 수용하지 않겠다고 반박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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WTO 협의요청 건수 추이 (1995-2021)https://www.wto.org/english/tratop_e/dispu_e/dispustats_e.htm 


위기 전가, 미국주도 금리인상의 맥락과 효과  


1982년 이후 가장 빠른 속도로 치솟은 인플레이션에 대해, 미국은 1986년 이후 가장 급격한 금리인상에 나서고 있다. 그럼에도 인플레이션은 역사적 고점을 기록하고 있으며 단기간에 진정되기 어렵다. 연준의 금리인상은 미중관계를 복원하고 공급망을 재건할 수도, 우크라이나 러시아 전쟁을 끝낼 수도, 에너지와 식량 공급을 늘릴 수도 없다. 물론 미국 정부와 연준 정책결정자들 역시 이를 잘 알고 있다. 그렇다면 연준은 왜 금리를 올리는가? 


우선 수요를 누르기 위해서다. 2006년부터 2014년까지 연방준비위원회 의장으로 재임하며 전면적 신용완화 정책을 펼친 벤 버냉키는 현 국면 금리인상에 대해 다음과 같이 말한다.**  


오늘날, 공급 측면에서 오는 힘들이 실제로 중요하다. 이미 언급한 지구적 에너지 및 식량가격 상승뿐 아니라, 공급망 파열과 같은 팬데믹 관련 제약도 마찬가지다. 불행하게도 연준은 이러한 공급 측면 문제에 대해 거의 할 수 있는 일이 없다.

그렇지만 오늘날의 통화정책 입안자들은, 우리가 공급제약이 언젠가 완화될 때까지 기다리는 동안 연준이 수요의 성장을 둔화시켜 인플레이션을 낮추는 데 기여할 수 있음을 이해하고 있다. 그들은 또한 과거의 교훈에 근거해 인플레이션 통제에 필요한 조치를 취하여 경제와 노동시장이 미래에 훨씬 더 심각한 불안정을 피하도록 도울 수 있음을 이해한다.

 

현재 미국 경제에는 여전히 실업자 1인당 일자리 2개가 있다. 미국이 공격적 금리인상에 나설 수 있는 이유 중 하나가 바로 미국 고용시장이 여전히 수요초과, 즉 공급자 우위이기 때문이다. 미국 노동력 시장은 2001년 이후 가장 높은 노동력 수요초과 양상을 보이고 있다. 아래 그래프 중 두 번째는 2020년 코로나 유행 이후 미국 실질임금 감소, 즉 불안정노동 확대를 드러낸다. 첫 번째 그래프와 종합하면, 충분한 임금이 보장되지 않는다면 차라리 일자리를 구하지 않겠다는 미국 노동자들이 늘어나고 있음을 드러내는 것이기도 하다. 이런 상황은 ‘대사직(great resignation)’으로 명명된 바 있다. 그리고 바로 이런 상황이 미국노동운동 활성화의 한 조건이기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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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 비농업부문 노동시장 채용공고 추이(2000.12.1.-2022.9.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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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 정규직 노동자 주당 실질중위임금 추이 (1979-2022.7.1.)

 

둘째, 한계기업을 구조조정하기 위해서다.*** 2018년 국제결제은행(BIS)의 14개 국가 대상 조사 결과, ‘좀비기업’은 1980년대 말부터 늘기 시작했다. 좀비기업 비중은 당시 평균 2%에서 2016년 12%로 높아졌다. 2008년 터진 금융위기는 그 가속화의 변곡점이 됐다. OECD 역시 주요국 좀비기업이 2000년대 중반 이후 급격히 늘었다고 지적한 바 있다. 한계기업은 1980년보다 훨씬 많이 늘었고, 한계기업인 채로 더 오래 연명할 수 있다. 양적완화로 국가가 이를 가능케 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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좀비기업 비율도, 좀비기업이 계속 좀비기업으로 남을 수 있는 확률도 계속 증가했다. BIS, 2018.


결국 현 국면 이자율 인상은 대중에게 위기의 비용을 전가하는 것이자, 한계기업 구조조정의 성격을 가진다. 또 하나의 큰 문제는 미국 주도 고금리 지속은 달러 가치를 높여 인플레이션의 충격을 타국에 전가한다는 것이다. 소위 ‘인플레이션 수출’이다. 아래 그래프에서 드러나듯, 개도국·선진국 가릴 것 없이 제반 국가 통화가치가 하락하고 있다. 이는 2008년 이후 노골화하는 근린궁핍화(beggar thy neighbor) 전략의 현 국면 전개양상 중 하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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좌: 개도국 통화가치 하락율(2022.1-7. 출처:UNCTAD) 우: G20국가 통화가치 변동(2021.12.31.-2022.9. 출처:FT)

 

즉 에너지, 상품, 식량가격 등 인플레이션이 가속화하는 지금, 달러 강세는 미국의 수입 가격을 낮추나 오직 달러로 거래되는 석유를 포함해 달러로 통상하는 다른 모든 국가의 물가인상 요인으로 작용한다. 특히 대외의존도가 높고 달러표시 부채가 많은 국가, 저발전 국가는 증가하는 이자부담과 자국통화가치 폭락으로 더욱 심각한 인플레이션에 직면할 공산이 크다. 잠시 각국 인플레이션 양상을 살펴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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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 CPI 인플레이션 항목별 기여도(2011-2022). 에너지·식량 수출국답게 근원 인플레이션 비중이 높고, 점차 에너지·식량가격 비중이 커지는 형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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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일 CPI 인플레이션 항목별 기여도(2011-2022). 근원 인플레이션에 더해 유럽의 심각한 에너지 위기를 드러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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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스 CPI 인플레이션 항목별 기여도(2011-2022). 에너지에 더해 고조하는 식량위기를 드러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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멕시코 CPI 인플레이션 항목별 기여도(2011-2022). 심각해지는 식량위기

 

상당수 국가가 식량·에너지 위기에 시달리는 지금, 미국 주도 이자율 인상과 강달러 정책은 현 국면 위기에 대응하는 미국의 패권주의를 그대로 드러낸다. 미국도 금리인상이 신흥국과 개도국에 가져올 고통을 안다. 미국은 고통을 전가할 수 있기 때문에, 인플레이션을 타국으로 수출할 수 있기 때문에 지금과 같이 행동하고 있다. 즉, 미국은 세계자본주의 질서의 ‘헤게모니 국가’보다, 위기를 타국으로 전가할 수 있는 능력을 거리낌 없이 휘두르는 ‘패권국’으로 기능하고 있다. 균열하는 자본주의 세계질서의 표현이다. 


노골적 보호무역 시대 개막 - ‘아메리카 퍼스트’와 ‘바이 아메리칸’


2008년 위기의 산물인 G20 정상회의가 가장 많이 우려한 것이 바로 보호무역 심화였고, 매년 정상회담을 마치며 발표한 공동선언이 빼놓지 않고 포함한 것이 바로 ‘보호주의 반대와 자유무역 수호’였다. 다음은 각각 2010년 서울 G20정상회의 선언문, 2016년 항저우 정상회의 선언문이다. 

 

“2008년 이후 우리는 세계경제의 도전과제와 이에 대한 대응책 그리고 보호주의 배격에 대해 공통의 관점을 공유함으로써 위기의 근본원인에 대응하고 회복세를 지킬 수 있었다. 우리는 오늘 이러한 새로운 도전과제에 직면하여 위기 이후 강하고 지속가능한 균형성장의 경로로 나아가기 위해 공통의 관점을 더욱 발전시켜 나가기로 하였다.” 


“우리는 개방적 세계경제를 구축하고, 보호주의를 배격하며, 다자간 무역체제 강화 등으로 국제 교역과 투자를 촉진하고, 국제경제 안에서의 더 넓은 성장에 대한 대중적 지지를 획득하며, 또한 국제경제 안에서의 폭넓은 기회를 보장하기 위해 더욱 노력할 것이다.” … “우리는 미약한 경제회복과 낮은 시장수요로 인해 더욱 악화한 일부 산업의 과잉공급 등 구조적 문제가 무역과 노동자들에게 가하는 부정적 영향을 인식한다.” 

  

2008년 위기 발발 후 14년이 흐른 지금, 자본주의는 자신이 가장 우려하던 곳에 당도했다. 미국 우선을 내세운 트럼프 정부 등장이 우연이 아닌 것과 마찬가지로, 바이든 당선 당시 ‘다자주의 부활’이라는 예측은 전혀 근거가 없었다. 트럼프가 ‘미국 우선(america first)’ 슬로건을 내세우며 본격화한 보호주의는 바이든 정부에서도 ‘국산 우선(buy american)’으로 유지되고 있음은 물론 오히려 노골화하는 형국이다. 2022년 3월 1일 미 대통령 연두교서를 살펴보자. 

 

“항공모함 갑판에서 고속도로 가드레일 철강재에 이르기까지 모든 미국 제품을 구입할 것입니다. … 인플레이션에 대항하는 한 가지 방법은 임금을 낮추고, 미국인을 더 가난하게 하는 것입니다. 그러나 나는 인플레이션과 싸우는 더 좋은 계획을 가지고 있습니다. 임금을 낮추는 것이 아니라 비용을 낮추는 것입니다. 미국에서 더 많은 자동차와 반도체를 만듭시다. 미국에서 더욱 더 인프라를 정비하고 혁신을 일으킵시다. 미국에서 더 빠르고 싸게 움직이는 사물을 늘립시다. 미국에서 충분히 살 수 있는 일을 늘려봅시다. 그리고 해외 공급망에 의존하지 않고 미국에서 만들어 봅시다.”


‘항공모함 갑판부터 고속도로 가드레일 철강재까지 모두 미국산을 구입하자’, ‘더 많은 차와 반도체를 미국에서 만들자’는 말이 미국 대통령 입에서 나오고 있다. 2008년 이전에는 상상하기 어려웠을 풍경이다. 무역 상대국을 자유무역협정 위반이라며 WTO에 제소하고, 보조금 지급에 대해 상계관세(countervailing duties, anti-subsidy duties)를 부과하고 ‘상품이 국경을 넘지 못하면, 군인이 국경을 넘게 된다’며 자유무역을 설파하고 강제해온 미국은 지금 노골적 보호주의로 기운 지 오래다. 

 

2018년 트럼프 정부는 중국산 수입품에 보복관세를 부과하면서 무역전쟁을 시작했다. 지금, 바이든 정부는 중국에 반도체 기술 수출을 금지하고 있으며 미국 반도체 기업에 수천억 달러에 달하는 보조금 지급계획을 세웠다. 이런 기조는 ‘반도체 과학법’은 물론 ‘인프라 투자법’, ‘인플레이션 감축법’에서 그대로 관철되고 있다.

 

자유무역시대의 첨병, WTO는 무력화되었다. 오프쇼어링에서 리쇼어링으로, 나아가 ‘프렌드 쇼어링(friend-shoring)’으로. 미국은 ‘동맹국과만 무역하며, 적과 무역하는 동맹국은 징벌한다’는 보호주의를 노골화하고 있다. 이런 흐름은 트럼프가 나타나면서 갑자기 등장한 것이 아니다. 이는 2008년 이후 일관된 흐름이다. 2008년 위기는 우리가 알던 세계의 균열과 위기의 본격화를 촉발한 계기였다. 그리고 현 국면 위기는 여전히 해결되지 못한 2008년 위기의 연장선상에 있으며, 보다 격화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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좌: 미-중 상호 관세율은 20%가량으로 치솟았다(출처 PIIE). 우: 2008년 이후 무역 비중 감소(출처:Economist)

 

  

[각주]

왕이 죽은 후 새로운 왕이 즉위하기까지의 궐위기

** 벤 버냉키, 「Inflation Isn’t Going to Bring Back the 1970s」, 2022.6.16. NYT 

*** 일례로 파이낸셜 타임스 2022년 8월 11일자 「Why the Fed is to blame for the boom in zombie companies」의 경우 다음과 같이 구조조정을 주문한다. “통화 조건을 완화함으로써, 연준은 수많은 기업을 좀비화하고 생산성 향상을 지체시켰을 뿐만 아니라, 인플레이션 상승을 부추겼다. 지금이야말로 좀비기업 먹여 살리기를 중단하고 전통적인 정책으로 돌아갈 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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