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3년 전 서울역 어느 식당에서 일하던 한 노동자, 금속노조가 투쟁을 마치고 식사하러 올 때 자신이 줄 수 있는 게 깍두기밖에 없다는 사실에 부채감을 느껴오던 한 노동자는, 13년 뒤 농성을 시작한 한화오션 하청노동자들에게 연대하기 위해 밤을 지새우러 달려갔다. 그는 최근 6년 간의 콜센터 노동을 마친 미조직 노동자였다.
한화오션 하청노동자들의 투쟁을 폭력으로 탄압한 한화자본
거제통영고성조선하청지회는 지난 12월 23일부터 한화오션 19개 하청업체와 5개월 만에 단체교섭을 재개했지만, 하청업체 대표는 아무것도 결정할 수 없다는 점을 확인했다. 이에 진짜 사장인 한화오션에 책임을 묻기 위해, 1월 7일 강인석 부지회장의 49일 단식을 중단하며 한화그룹 본사 앞에서 농성투쟁을 시작했다. 요구사항은 명징했다.
- 하청노동자 진짜 사장 한화오션은 2024년 단체교섭 타결을 위해 결단하라.
- 한화오션은 상용직 고용확대, 임금인상, 처우개선 약속을 지켜라.
- 한화오션은 오직 하청노조 탄압 목적의 470억 손배소송을 취하하라.
- 정부와 검찰은 윤석열-명태균-대우조선해양 파업 불법개입과 한화오션의 대우조선해양 헐값인수 과정의 특혜/비리에 대해 철저히 조사하라.
그러나 한화자본은 용역깡패를 동원해, 농성투쟁을 하는 노동자에게 폭력을 휘둘렀다. 사람이 들어가 있는 텐트를 부수었고, 그 과정에 조합원 한 명이 허리를 다쳤다. 11월 13일에 농성투쟁을 결의했을 때와 마찬가지였다. 그러나 11월 13일과 달리, 현장에서 연대하고 있던 민주노조를 깨우는 소리 호각 고태은 동지(트위터 계정이름 김팔이하은)의 주도로 트위터를 통해 널리 퍼지며 60명 가까운 연대자들이 거통고 조합원들과 함께 투쟁하기 위해 현장으로 모여들었다.
트위터라는 곳에서 온 퀴어페미니스트와 노동자들
근처에서 농성투쟁을 하고 있는 세종호텔에서 핫팩 등 농성물품과 음향을 가져왔고, 남태령에서처럼 자연스레 또 하나의 자유발언대가 만들어졌다. 자발적으로 연대를 위해 모여든 이들은 자기 이야기를 풀어내기 시작했다.
누군가 자신의 성적 정체성에 대해 이야기할 때마다 사람들은 박수를 보냈다. 퀴어페미니즘으로 무장한 참가자들은 모든 종류의 차별과 억압에 민감했고, 다른 사람들에게 다정했고, 상대방의 이야기를 경청하려 했다. 자유발언을 진행하던 중 ''평등의 약속'을 함께 읽었고, 누가 발언을 잘하든지 못하든지, 그리고 발언을 하다 버벅일 때마다 응원과 격려의 박수를 보냈다. 누군가 자려고 누워있으면 추울까봐 서로서로가 침낭을 덮어주었다. 현장소식을 보고 마음을 보내려는 이들이 주문한 국밥, 치킨, 비건된장찌개 등의 음식이 연이어 도착했다.
한 발언자는 인천에서 소식을 보고 2시간을 걸려 왔는데, 10명의 친구들로부터 택시비에 보태라며 몇십만원을 받았다고 했다. 그러니 나 혼자 온 게 아니라, 10명의 그림자가 함께 있다고 생각해달라고 이야기했다. 또 다른 발언자는 사실 거통고지회의 투쟁에 대해 잘은 모르고 왔다면서, 하지만 기업과 노동자가 싸우고 있고, 노동자들의 농성천막을 걷어내고 있다면 일단 노동자 편을 들어야하지 않겠냐고 이야기해 많은 호응을 받았다.
이렇게 몰려든 이들은 또 다른 이름없는 노동자이기도 했다. 한 발언자는 13년 전에 서울역 인근 식당에서 일을 했는데, 노동조합이 집회를 마치고 식사를 예약했다고 한다. 그런데 음식점 사장이 “이미 돈도 받았으니 깍두기 리필해주지 마라”고 했다. 그때 자신이 할 수 있었던 일은, 깍두기를 계속해서 제한 없이 갖다드리는 것뿐이었다는 것에 너무 미안했고, 주마다 받는 돈으로 생계를 유지했어야 했기 때문에 더 저항하지 못했던 부채감을 늘 가져왔다고 얘기했다. 최근에는 6년 간 배달 콜센터 일을 했으나 노동조건이 악화돼 어쩔 수 없이 퇴사했다고 했다.
이날 함께한 여러 참가자들이 거제에서 진행되었던 거통고조선하청지회의 해넘이 문화제 소식을 듣고 함께 한 이들이었다. 무지개 깃발을 챙겨 거제로 달려간 이들은 거제의 하청노동자들에게 말했다. “혐오자들이 여러분을 하퀴벌레라는 멸칭으로 부르듯, 젠더퀴어들도 ‘젠퀴벌레’라는 멸칭으로 혐오당합니다. 여러분이 노동의 권리를 주장해 탄압당하듯, 전장연 동지들도 노동할 권리를 주장하다 매일 지하철에서 끌려나갑니다. 그러니 같이 싸웁시다.” 그들은 새해벽두에 전장연 지하철 선전전에 연대하며, 거제에서 들은 조선하청노동자의 이야기를 그곳의 연대자들에게 전하기도 했다.
밤새 거리를 지킨 키세스 우주전사들에게, 이제 민주노총이 달려가야 한다. 총파업으로!
금속노조가 12시 경 담요와 침낭 등 농성물품을 챙겨오자, 연대하러 와 자리를 지키던 이들은 금속노조에게 환호를 보냈다. 금속노조에서 만든 ‘무지개 금속’ 뱃지를 받자 ‘귀한 물건 득템’했다며 기뻐했다. “금속노조가 선봉에 선다”는 말이 자신의 가슴을 울려서, 전장연을 비롯한 투쟁하는 온갖 곳에 연대를 다니게 되었다고 얘기한 발언자도 있었다. “제가 지금은 백수라서 민주노총에 가입은 못 하는데, 지금은 그냥 일반시민이지만 나중에는 민주노총 가입해서 같이 투쟁하는게 꿈”이라는 발언자도 있었다.
내가 만난 이들을 이렇게 얘기할 수 있을 것 같다. 이들은 퀴어페미니스트이다. 이들은 노동조합이 없는, 미조직 노동자이다. 이들은 연대가 필요한 곳에, 탄압과 폭력이 있는 곳에, 착취, 차별, 억압에 저항하는 이들이 있는 곳에 자신의 조건에서 할 수 있는 모든 것을 걸고 연대하려고 최선을 다하고 있는 노동자들이다. 밤을 새서 시위를 하고 출근을 해야하는 이조차, 밤새 은박 담요를 덮고 생면부지의 조선소 하청노동자와 연대하기 위해 자리를 지켰다.
민주노총이 집회공간을 확보할 때, 농성지원물품을 가져다줄 때 이 동지들은 민주노총에게 박수를 보내고 고마워했다. 그러나 한달이 넘도록 내란수괴 윤석열과 공범들, 동조자들이 버젓이 자기 자리를 지키고 있고, 체포영장조차 집행이 되지 못하는 상황에서, 민주노총이 ‘길을 여는 것’은 집회공간을 확보하고 농성지원물품을 가져다주는 것에 그쳐선 안 된다.
민주노총이 진정 길을 여는 것은, 윤석열이 버티고 있는 이 세상을 멈추는 것이다. 민주노총이 총파업을 조직하는 것이아말로 '민주노총이 불러서 왔다'며 2시간을 걸려 와서, 하룻밤을 꼴딱 새고 돌아가 출근하는 미조직 노동자들의 연대에 화답하러 '달려가는' 것이고, 한파에도, 폭설에도 인간 키세스가 되어 거리를 지킨 그들에게 '길을 여는' 것이다.
이제 사회주의를향한전진은 현장의 뜻있는 활동가들에게, 그 길을 함께 열어가기 위해 총파업 네트워크를 제안한다. 민주노총은 바리케이트를 밀고 전 차선을 확보하는 것보다 훨씬 큰 힘, 광장을 열고 1박 2일 투쟁을 하는 것보다 훨씬 큰 힘, 윤석열의 세상을 멈추고 새 세상을 열 거대한 힘을 가지고 있다. 민주노총의 총파업, 그리고 이에 호응할 미조직 노동자들의 항쟁으로 윤석열을 체포, 구속하고, 내란 동조자들을 처벌하고, 국민의힘을 해체하자.
거리에서도, 집회에서도 민주노총에게 총파업에 나서자고 요구하면 좋겠다. 어젯밤을 함께한 키세스 우주전사들은 그럴 자격이 충분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