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060 여성 노동자 미투 증언대회 - “회사의 태도는 나를 더 병들게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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온라인신문

5060 여성 노동자 미투 증언대회 - “회사의 태도는 나를 더 병들게 했다”

5060 여성 노동자들의 외침에 메아리가 되자

  • 홍희자
  • 등록 2023.04.12 10:50
  • 조회수 43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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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럼에도 용기를 내보는 건 살아있기 때문인 것 같습니다. 그저 그늘에 숨어 잊혀지기를 바라는 게 고작이었습니다. 이제 전 어려운 고백을 시작으로 한 걸음 한 걸음 햇빛으로 나아가보려 합니다.”


노년 여성이 성폭력에 맞서 세상과 싸우며 자신의 존엄을 찾아나가는 영화 <69세>에 나오는 대사다. 세상은 나이가 많은 여성을 ‘무성의 존재’로 치부하려 하지만 노년 여성에 대한 성폭력은 우리 사회 곳곳에서 버젓이 자행되고 있다. 용기를 내어 어려운 고백을 시작한 여성들이 있다. 


1월 말에 경향신문에 난 <공론화까지 1년 반, 5060 지하철 청소 노동자의 ‘미투’>라는 기사를 기억하는가? 관리자들의 일상적인 성추행과 성희롱에 노출된 50~60대 여성 노동자들은 자책하며 고통을 견디는 경우가 많다. 젊은 여성만이 아니라 나이를 불문하고 여성 노동자에 대한 직장 내 성폭력이 만연해 있는 현실을 보여주는 사건이었다. 이 사건 관련해서 꾸려진 ‘5060 성폭력 뿌리뽑기 대책위’(이하 대책위)는 한 달여간 활동을 펼친 뒤 2월 28일, ‘지하철 내 50~60대 여성 노동자 성폭력 실태조사 결과보고회’를 연 바 있다.


그 후속사업으로 4월 7일엔 ‘성폭력 가해자와 공모자를 밝히다! 5060 여성 노동자 미투 증언대회’가 민주노총 서울본부에서 열렸다. 대책위와 너머서울 등이 공동주최한 이번 증언대회는 제목에서 알 수 있듯, 피해자가 스스로를 내보이는 것보다 가해자와 공모자를 드러내는 것에 초점이 맞춰져 있다. 많은 성폭력 사건에서 피해자가 도리어 손가락질 받고 이중삼중의 고통을 받는 안타까운 경우가 있었다. 직장 상사, 관리자 등 힘의 우위에 있다는 이유로 성폭력을 가한 가해자에 대한 비판과 분노의 목소리가 절실하다. 


이날 증언대회에는 비록 많은 수가 참가하지는 않았지만, 증언 하나하나에 가해자에 대한 분노와 울분으로 한숨과 탄식이 이어졌다. 때론 아픈 경험을 되뇌느라 눈물지으며 고통스러워하는 피해자의 모습에 공감하고 안쓰러워하며 함께 눈시울을 적시느라 분위기가 숙연해지기도 했다.


지하철 청소노동자, 장애인활동지원사, 서울사회서비스원 재가방문 돌봄노동자, LG케어솔루션 방문점검 노동자, 요양보호사 등 증언대회 참가자들은 거의 다 비정규직 여성 노동자이자 돌봄노동자였다. 이 사회에서 꼭 필요한 노동을 하지만 정당하게 대우받지 못한 채 불안정하고 고된 일자리에서 성폭력 위험까지 감수하며 살아가는 노동자들. 이들은 다행히 노조로 단결해 성폭력 피해를 숨기지 않고 상담하고 대응하며 때론 산재승인을 받기도 하는 등 작으나마 자신의 권리를 찾아가고 있다. 여기 그들의 목소리를 옮겨보고자 한다.


시설과 노동보다 사람이 더 위험한 일터?!


“약자의 입장에서 청소일하며 당하고도 어디 가서 떳떳이 하소연하기도 어렵다. 법적으로 해결하려 해도 1~2년이 지나간다. 이 세상이 너무나 잘못됐다. 서울교통공사 역장 출신이 서울메트로환경(자회사) 소장, 팀장을 한다. 자회사는 2심 판결 날 때까지 공사 출신 관리자들 징계 안 한다. 공사의 감사 결과, 자회사는 아무런 잘못이 없다고 한다. 힘 모아 이 현실을 타파해 나가야 한다. 그래서 우리가 이 자리에 모였다. 가장 큰 실질적 피해자는 성희롱당한 사람이다. 정말 심각하게 성폭력 당한 사람들은 우리 나이에 나서지도 못한다. 가벼운 성추행을 당한 사람이 나서도 이렇게 길이 험난하다. 가족들도 이해 안 해 준다. 사회에 널리 알려져야 한다. 법·제도 보완이 시급하다. 현행법으론 안 된다. 성희롱은 형사 처벌감이 아니라고까지 말한다. 말도 안 된다.”


“공사 역장 출신 소장에게 3년 동안 성추행당한 다섯 명이 경찰에 고발했지만 증거불충분이라며 무혐의 결정 나고, 직위해제된 소장은 현장 복귀해서 되레 노동자들을 명예훼손으로 고발했다. 역시 혐의 없음으로 결정 났다. 아직도 직장 내 괴롭힘은 이어지고 있다. 회식 때 허벅지에 손 올리기는 비일비재하다. 사실 피해자는 훨씬 더 많다. 우리 세대가 웬만하면 참고 묻고 가는 데 익숙하다. 혹시 일자리 뺏기고 쫓겨날까 봐 나서지 못하는 사람도 많다. 가장 심한 동료는 우울증으로 자살 시도를 두 번이나 했다. 고발 이후에도 2차 가해 때문에 더 힘들다. 노동자들을 회유해서 오히려 피해자를 음해하기도 하고 심지어 가족에게 피해가 갈 수 있다고까지 협박한다. 직장 내 따돌림을 시키거나 근무형태를 바꿔서 피해자가 결국 그만두게 만들었다. 우리 사건 기사 쓴 기자에게도 전화해서 폭언을 했다.”


문제의 소장과의 통화내용엔 ‘시건방, 개건방 떨지 말라’는 날선 말이 수십 번 반복된다. 여성 노동자를 얼마나 무시하는지가 그대로 느껴져 참가자들은 치를 떤다.


‘내일부터 이 집 바우처 못 찍는데 어떡할래?’


“정해진 업무 외에 목욕을 시켜달라고 한다. 쉽게 거절하지 못하고 바들바들 떨며 목욕을 시켜준다.”


“장애인활동지원사 하면 떠오르는 특징이 중고령, 여성이다. 2021년 복지부 통계에 따르면 50~60대가 73%, 이 가운데 여성은 65%다. 수급자는 남성이 10% 정도 많다. 여성노동자가 남성 수급자에게 파견될 수밖에 없는 구조다. 피해당한 사례에 대해 정부대책을 지속해서 요청하지만 예방하거나 구제하기 위한 대책은 정부에서도, 사용자에게서도 나오지 않고 있다. 오히려 피해 신고하면 사용자에 의해 2차 가해가 발생한다.” 


“담당자는 복지관에 오는 장애인을 막을 수 없다고 한다. 시간이 꽤 지난 지금도 가끔 그 사람(가해자)을 본다. 복지관에서 다른 지원사를 계속 매칭해 준다. 비슷한 문제가 자꾸 생겨 더 이상 매칭 안 해 주자 그 장애인은 다른 복지관으로 가서 서비스를 계속 받는다.” 


“장애인의 인권과 사생활 보호를 이유로 노동자에게 아무런 정보도 주지 않는다. 장애인의 선택권을 존중해야 한다는 이유로 가해자가 여성을 원하면 여성을 보낸다. 여성 노동자는 경찰에 신고하기 어렵다. 가족에게 알려지게 되니까. 남편이 내가 남성에게 신체지원하는 걸 모른다. 무슨 죄를 지었다고 자기가 하는 일을 남편에게 말도 못하는가?”


“이용자에게 밉보이면 일을 제대로 받지 못한다. 일할 사람은 얼마든지 있기에(정부가 교육을 많이 해서 요양보호사, 장애인활동지원사가 엄청 많은 상태) 피해사실을 말하면 바로 일 안 주다가 지쳐 떨어져나가게 한다. 당장 생계부터 고민해야 한다. 고객이 바우처를 쓰도록 해야 임금을 받을 수 있기 때문이다. 피해 호소하는 노동자를 한 없이 대기시키는 경우가 많다.”


“성희롱이나 성추행 피해를 입은 뒤 남성 이용자 집엔 가지 않겠다고 여성을 매칭해 달라고 요구한다. 그런데 가족의 성별도 문제가 된다. 이용자는 여성인데 남성 가족이 같이 있는 경우 피해자는 그 집에 갈 수 없다. 까다로운 사람, 일 회피하는 사람이라는 낙인을 찍고 비난하며 피해자가 사건 보고한 걸 오히려 후회하게 만든다.”


“아들 뻘 장애인에게 신체접촉 서비스를 요구받고 성희롱 당하면서 버틴다. 60대라 그만 둘 수가 없다. 소름 끼친다. 한 달 유급휴직 받고 나서 석 달 동안 일을 못 받았다.”


“피해사실 말하면 첫마디가 ‘내일부터 이 집 바우처 못 찍는데 어떡할래?’다. 우리는 바우처가 곧 수입이다. 당한 일에 대해 위로는커녕 회사 손실부터 걱정한다. 회사는 2차 가해성 말로 상처를 준다. 인간 취급도 못 받는다.” 


“사건 트라우마로 여성을 매칭해달라고 요구하자 ‘일은 많은데 다 남자라서 매칭 못 해준다’며 무급휴직하라고 한다. 이후 노조 알게 돼 산재신청하고 노동청에 진정도 했다. 이 과정에서 일방적으로 계약만료라며 퇴사처리됐다. 아직도 병원치료를 받는 중이다. 회사 태도는 나를 더 병들게 한다.”


대책은 없고 현장은 늘 혼란의 도가니


노인장기요양보호사들의 상황도 장애인활동지원사들의 그것에 못지않다. 


“일하는데 뒤에서 와락 끌어안는다. 온몸에 소름이 돋지만 강하고 단호하게 대처하기 어렵다. 손 뿌리치다가 낙상사고 생기면 요양보호사의 피해와 고충보다는 대상자의 낙상이 우선순위가 된다. 골절로 이어지면 치명타다. 우리는 어떤 경우에도 상대의 상태를 먼저 고려해야 하는 장기요양요원이기 때문이다.”


“종일 누워있는 와상환자 기저귀 갈아주는데 성기 만져 달라, 빨아 달라, 뽀뽀하자, 안아보자, 돈 줄 테니 한번만 누워 봐 달라고 한다. 보호자에게 알리겠다고 하면 다신 안 그러겠다지만 말뿐이고 며칠 지나 다시 시작된다. 센터에 보고하면 그걸로 끝, 대책은 없다. 현장은 늘 혼란의 도가니다.”


“성기가 다 보이는 헐렁한 속옷만 입고 있어도 사적인 공간이니 뭐라 말하기 쉽지 않아 ‘나를 좀 존중해 달라’ 말했다. 그날 바로 문자로 해고통보를 받았다.”


“우리가 놀라는 걸 보고 즐기는 건 아닐까 의문이 든다. 마치 지인을 놀래키는 장난처럼. 놀란 사람은 가슴이 벌렁벌렁, 심장마비가 올 수 있는 상황인데도.” 


“업무 중 경계태세 갖추고 아무리 멘탈을 강하게 무장해도 돌봄노동은 대책 세우기가 어렵다. 틈새를 노리는 고령노인에 대처하기 위해 철갑옷 같은 방어벽을 쳐도 당하는 건 한순간이다. 고령노인은 아픈 분이니까 보호받으면서 돌봄노동자의 심장을 노린다. 나의 인권, 나의 감정은 뒤로 한 채 항상 웃는 얼굴로 좋은 돌봄을 실천해야 하는 돌봄노동자는 전문직이라 하지만 우리 가슴엔 먹구름만 가득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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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신은 잊고 살 수 있지만 당한 사람은 평생 가슴에 안고 간다”


“내가 그 일 겪은 지 16년이 되었다. 이런 드라마 대사가 있다. ‘20년이 지난 거기는 괜찮으십니까?’ 16년 지난 지금 현장은 더 심하면 심했지 덜하지 않다. 내 딸이 살아가는 15년, 20년 뒤에 같은 일을 겪지 않았으면 한다.”


“그날의 더러운 느낌과 공포의 시간을 평생 잊지 못할 것이다. 시간이 많이 지났는데 몸이 안 움직이고 숨 안 쉬어지던 그 순간을 되새기며 산다.”


“사건 발생 이후 3년이 지나도 사람 많은 곳, 남성이 같이 있는 곳에 가기 두렵다고 하는 피해자도 있다.”


“성폭력 겪은 뒤 2차 가해 당하고 자살하는 뉴스를 보며 피해자가 왜 그런 선택을 하는지 이제는 안다. 억울해서다.” 


“성추행 당하고 나서 며칠 동안 먹지도 못하고 잠도 못 잤다. 그 뒤로 남자가 너무 싫었다. 남편 손이 내 몸에 닿는 것도, 옆에 오는 것도 싫었다. 남편과도 사이가 안 좋아졌다. 이래서 다른 사람들이 자살하는구나 싶다.”


“또 다른 피해자가 생기지 않길 바란다. 그래서 작은 용기를 냈다. 내 용기가 헛되지 않길 바란다.”


돌봄노동자의 존중받을 권리


“방문점검 노동자는 고객의 사적공간에 들어가서 일해야 한다. 상의탈의한 채 문 열어주는 남성고객, 예약일정 메시지 보내면 사적 만남 요구하거나 음란한 사진 보내는 고객도 있다. 노조 생기고 단협에 여성과 모성보호조항 만들고 케어노동자가 더 이상 위험에 노출되지 않게 사측에 강하게 요구했다. 개물림 사고가 빈번한데 ‘개님의 안전’을 우선하던 사측의 방문안내문자가 이제는 ‘매니저를 존중해 달라. 폭언, 폭행, 성희롱할 경우 법적 처벌받을 수 있다’는 경고문자로 바뀌었다. 여성이 안전하게 거리를 활보하고 결혼과 출산에서 차별받지 않고 일하고 승진할 수 있는 직장문화를 만들어야 한다.”


“돌봄노동은 시작은 있어도 끝은 없다. 시설엔 여럿이 근무하니 좀 낫다. 혼자 근무하는 재가 돌봄노동자는 성추행을 당했을 때 스스로를 보호하기 위해 고작 피하는 게 답인가? 센터가, 기관이 할 수 있는 역할이 충분히 있는데 우릴 보호하지 않는다. 여성노동을 저렴하게 취급하니까, 여성을 하대해도 된다고 생각하니까 성폭력을 가하는 것 같다. 여성으로서 내 가족과 모두의 돌봄을 책임지는 나, 그런데 정작 나 자신은 지켜지지 않는다.”


“여성 노동자가 대다수인데, 일하며 생기는 어려움에 대해 정부도 사용자도 대책 마련 안 한다. 바우처-사회서비스 노동자의 경우, 정부가 직접 영향력 행사하지만 근로계약은 민간위탁 사용자와 한다. 이런 시스템을 이용해 서로 대책을 미룬다. 많은 장애인이 활동지원은 생명이라고 말하며 활동지원서비스 더 달라고 투쟁한다. 우리도 함께 장애인의 권리 옹호하며 투쟁한다. 그게 바로 우리 활동지원사다. 그런데 정작 우리는 존중받지 못하고 위험한 노동환경에 무방비로 방치되어 있다. 장애인에게 바우처=이용권, 소비자 권리라고 강조한다. 그런데 이분들에게 노동자를 존중하고 성폭력을 해선 안 된다는 것은 아무도 가르쳐주지 않는다.”


5060 여성 노동자들의 외침에 메아리가 되자 

 

“정부는 서비스를 민간에 위탁한 뒤 발생하는 사건과 사고는 모른 척 한다. 성폭력피해자를 위한 지원센터를 지자체마다 설치하라, 피해자를 지원하라고 요구한다. 민간위탁기관은 이런 기능을 못하니까 사건 발생 뒤 이용자가 시설 옮기면 그만이다. 민간위탁기관은 장애인은 고객일 뿐이라고 말한다. 몇 년 지나도록 허공에 외치는 기분이다. 활동지원사는 쓰다가 버려도 되는 물건이 아니다. 사회서비스노동자가 정부를 믿고 일할 수 있도록 정부가 하루 속히 대책을 마련할 걸 호소한다.”


“성추행의 수치심은 이용자의 것이 아닌 돌봄노동자의 몫으로만 남는 것이 너무 안타깝다. 돌봄노동을 여성에게만 전가시킬 게 아니라 돌봄서비스 받는 남성 대상자, 문제행동이 큰 이용자만이라도 남성 돌봄노동자가 전담할 수 있도록 교육 만들어졌으면….


돌봄서비스 받는 분들이 약자여서 돌봄 노동자의 자리가 있는 것인데 얘기 듣다 보니 도대체 누가 약자인지 정말 모르겠다. 왜 돌봄노동자를 보호하는 울타리체계는 없는가, 이것 또한 우리가 만들어가야 할 숙제이다.”


청심환을 먹고 와서도 말하는 내내 울음을 삼키던 노동자는 “내가 순진하고 착해서 이렇게 마음 아파할지 몰랐다고 했다. 순진하고 착하면 이렇게 당해야 하는 건가?” 물었다. 여성 노동자가 성폭력 피해를 입는 것은 우리의 잘못이 아니다. 이것은 분명 구조적 문제이다. 안정적인 안전한 일자리, 성평등한 임금체계와 노동조건, 돌봄노동의 사회화, 여성 노동을 존중하는 사회분위기가 절실하다. 여성 노동자의 고통보다 당장 눈앞의 경제적 이익을 떠받들며 여성을 억압하고 차별하는 자본주의 체제를 끝장내고 이 모든 것을 현실로 만들기 위해 노동자운동은 무엇을 해야 하는가? 5060 여성 노동자 미투 증언대회는 가해자와 공모자가 누군인지를, 억울함과 분노로 울먹이며 그러나 용기 내어 분명하게 말해주고 있다. 이제 연대와 투쟁으로 이 외침에 메아리가 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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