드물지 않은 경험, 그러나 오로지 여성 개인에게 전가되는 책임
한국보건사회연구원의 ‘2021년 인공임신중절 실태조사’는 만15~49세 여성 8,500명을 온라인 설문조사한 것이다. 그 결과 조사 대상 여성의 7.1%가 인공임신중절을 경험한 것으로 나타났다. 임신 경험이 있는 여성 중에서는 17.2%다. 이를 통해 한국보건사회연구원은 만 15~49세 기준 2020년 인공임신중절 건수를 약 33,479건으로 추정했다. 그러나 건강보험심사평가원 자료에 따르면, 2020년에 건강보험 적용을 받은 인공임신중절 수술 건수는 고작 3,258건에 불과하다. 전체 인공임신중절 건수의 10분의 1만 건강보험 적용을 받은 셈이다.
왜 한국 사회에서 임신중지를 경험한 여성들의 90%는 건강보험의 적용도 받지 못한 채 병원에서 ‘부르는 게 값’인 수술비를 온전히 부담해야 하는 걸까? 2021년 한국여성정책연구원은 임신중지를 위해 여성 개인이 지출하는 비용이 처방 약물 구입에는 3~40만 원, 수술에는 임신주수에 따라 통상 5~80만원에 이른다는 조사 결과를 내놓았다. 응답자의 64.4%는 약물 비용에, 81.6%는 수술 비용에 부담을 느낀다고 답했다.
헌법재판소가 임신의 전 기간 낙태를 금지한 형법상 낙태죄 조항을 헌법 불합치 결정한 날이 2019년 4월 11일이다. 이로부터 만 4년이 지난 오늘에도 달라진 것은 없다. 원치 않았던 임신의 진짜 이유가 무엇이었든, 오로지 여성만이 비난의 대상이 되기에 대부분의 임신중지가 비밀리에 행해진다는 점 또한 그렇다. 여기에 국가의 의도적 무책임, 의료자본의 이윤욕이 겹치면서 유산유도제(미프진) 처방과 같은 안전한 임신중지 방법의 도입은 여전히 먼 얘기다. 이것은 과연 정당한 걸까? 왜 자본가국가는 터무니없는 직무유기로 일관하고 있는 것일까?
한국보건사회연구원의 ‘2021년 인공임신중절 실태조사’ 중 임신중절 경험률
자본주의 인구정책과 여성의 몸
산아제한이 시대적 과제이던 시절이 있었다. ‘덮어놓고 낳다 보면 거지꼴을 못 면한다(1960년대)’, ‘3명 자녀를 3년 터울로 35세 이전에 단산하자(‘3·3·35’ 표어·1960년대)’, ‘딸 아들 구별 말고 둘만 낳아 잘 기르자(1970년대)’, ‘잘 키운 딸 하나 열 아들 안 부럽다(1980년대)’ ‘하나씩만 낳아도 삼천리는 초만원(1980년대)’의 시대 말이다. 맬서스의 인구법칙에 따랐던 산아제한 정책의 정당성은 차치하고, 이때도 피임과 임신중지에 관한 모든 문제가 오롯이 여성의 책임으로 전가됐다는 점을 기억해야 한다.
아이는 낳지 말라면서, 피임을 위한 제대로 된 성교육은 공교육 내에서 한번도 한 적이 없으면서, 임신중지를 위한 의료비용은 여성들 개개인이 알아서 부담해야 하는 것이 산아제한 시대의 모습이었다. 국가는 가장 내밀한 삶의 영역을 직접적으로 통제하면서도 일체의 책임은 방기했다. 모자보건법이 ‘합법적’ 낙태수술을 ①본인·배우자가 유전학적 장애가 있는 경우, ②본인·배우자가 전염성 질환이 있는 경우, ③강간 또는 준강간에 의해 임신된 경우, ④혈족·인척 간 임신된 경우, ⑤본인의 건강을 심각하게 해치는 경우에만 허용한 것에서 단적으로 드러나듯이 말이다. (헌법재판소의 낙태죄 헌법 불합치 결정 이후, 임신중지 허용범위를 제한한 모자보건법은 응당 개정됐어야 하지만 여전히 개정법 통과는 이뤄지지 않았다.)
기록적 저출생으로 노동력 공급 차질을 걱정하게 된 자본주의 국가는 이제 방향을 180도 바꾸어 여성의 몸을 출산 도구쯤으로 치부하는 듯하다. 2017년 수많은 사람들을 공분케 한 행정자치부의 ‘대한민국 출산지도’ 사건을 모두 기억할 것이다. 지방자치단체별 가임 여성수를 끝자리 수까지 보여주며 등수를 매긴 ‘출산지도’는 이윤생산체제인 자본주의가 여성의 몸을 어떻게 바라보고 통제하는지를 가감 없이 보여준 실례다. 더 나아가 자본주의 체제는 이제 여성들에게 출산을 일종의 도덕적 의무와 같은 것으로 강요한다. 출산의 의지가 있어도 성차별 문화와 사회경제적 제약 때문에 출산을 포기해야만 하는 이들의 절실한 요구를 받아안는 대신 말이다. (오히려 거꾸로 가고 있다. 주80시간 노동을 합법화하겠다는 저들을 보라!)
노동자 민중이 스스로의 재생산을 결정할 권리, 여성이 자신의 몸에 대해 가지는 불가침의 권리는 이처럼 국가에 의해 일방적으로 통제된다. 이것은 한국만의 일이 아니다. 자본주의 경제위기에서 등장한 신자유주의는 ‘모든 것은 개인의 책임이다’를 표어로 내세운 채 세계 노동자계급이 오랜 투쟁을 거쳐 획득한 사회적 권리를 끈질기게 공격하기 시작했다. 특히 자본가들이 전통적인 성 윤리와 가족 이념을 전면에 내세우기 시작했다는 점이 중요하다. 그것은 사회적 비용으로 충당돼야 할 노동력 생산비용을 노동자계급에 전가함으로써 전체 자본가계급의 이윤을 극대화하는 길이기 때문이다. 이런 맥락에서 여성의 임신중지권에 대한 체계적 공격이 세계 곳곳에서 시작됐다.
산아제한을 위해 정부에서 만든 표어들
세계 곳곳에서 벌어진 공격들
정은희 동지가 쓴 <검은 시위>는 폴란드, 미국, 아르헨티나, 아일랜드에서 벌어진 임신중지를 둘러싼 사회적 투쟁을 소개하는 것으로 시작된다. 가톨릭, 기독교 복음주의, 프로라이프(pro-life, 생명 우선) 등등 임신중지를 공격하는 사회문화적 맥락에는 다소 차이가 있으나, 1970년대 자본주의 경제위기 이후 임신중지에 대한 공격이 강화되었다는 점은 공통적이다.
세계 곳곳에서 벌어진 임신중지권에 대한 공격 양상은 그 자체로 처참하다. 특히 태아의 심장이 박동한다는 이유로 임신중지 시술을 받지 못해 죽어간 폴란드와 아일랜드 여성들의 사례는 ‘생명권(프로라이프, pro-life) 대 선택권(프로초이스, pro-choice)’이란 구도 자체가 얼마나 허구적인지를 보여준다. 1998년 임신중지가 범죄화된 이후 병원 침대에서 수갑이 채워진 채 끌려갔던 엘살바도로 여성 3명의 사례, 코로나19 시기 임신중지 시술을 ‘비필수 의료서비스’로 전환한 미국 텍사스 주에서 안전한 임신중지를 위해 수백Km를 이동해야 했던 사례는, 여성들이 이 체제에서 겪는 고통을 온전히 전해준다.
전통적 성윤리와 보수적 가족주의가 사회 곳곳에 강요될수록, 자본주의 체제의 불평등은 가장 가난한 계급의 재생산권을 가장 가혹하게 공격한다. 아르헨티나 여성운동이 “부자는 임신중지하고, 가난한 사람들은 죽는다”는 구호를 외쳤던 것은 조금의 과장도 아니었다. “임신중지 합법화 이전 아르헨티나에서는 매년 50만 건의 임신중지가 음성적으로 이뤄졌는데, 그 과정에서 5만 명 이상이 합병증에 걸렸으며 그중 100명 이상은 목숨까지 잃었다.”
<검은 시위>의 저자 정은희 동지는 미국의 재생산 연구 결과를 인용해 임신중지 문제와 계급에 따른 사회경제적 불평등 사이에 밀접한 관계가 있음을 지적한다. 즉 의도하지 않은 임신의 비율 자체가 저소득계층 여성에게서 높으며, 임신중지를 하는 가장 중요한 원인 역시 경제적 어려움 때문이고, 임신중지를 시도하는 여성들이 겪는 가장 큰 장벽도 경제 문제라는 것이다.
결론적으로 정은희 동지는 임신중지를 둘러싼 사회적 모순을 “가부장제와 결탁한 자본주의 체제가 여성 노동계급을 성과 계급적 위계로 억압하고 착취하기 때문에 발생하는 모순”의 하나로 지적한다. 자본주의는 한편으로는 값싼 노동력 원천으로 여성 노동력을 활용하기 위해 “여성의 노동을 가치 절하하고 성별분업을 구조화”하면서, 다른 한편으로 노동력을 안정적으로 공급받기 위해 “순결과 모성 이데올로기에 기초하여 여성의 성과 재생산을 억압”한다. 가부장적 성적 억압으로 가장 고통받는 이들은 가난한 노동자계급 여성들일 수밖에 없다. 다른 모든 문제에서도 그런 것처럼.
임신중단권을 위한 폴란드의 '검은 시위'
<검은 시위>, 안전한 임신중지를 위한 여성 투쟁의 기록
그러나 <검은 시위>를 읽으면서 우리는 동시에 더 나은 세상을 향한 희망도 발견하게 된다. <검은 시위>에 기록된 여성들은 자본주의의 성적 억압을 그저 고통스럽게 감내하는 피해자들에 머물지 않기 때문이다. 이 책의 가장 탁월한 장점은 세계 곳곳에서 안전한 임신중지를 위해 싸워온 여성들의 투쟁 기록을 충실히 담아냈다는 데 있다.
로 대 웨이드 판결 이전 안전한 임신중지 시술을 위해 분투했던 시카고의 ‘제인 콜렉티브(Jane Collective)’ 사례, 2016년 10월 3일 비정규직 투쟁 사업장, 경제특구 노동자, 운수 노동자, 소농 등 수십만 명이 참여한 폴란드 여성파업, 2017년 3월 8일 여성의 날에 ‘헌법8조 폐지를 위한 여성파업’을 일으킨 아일랜드 사례 등은 우리에게 용기를 북돋는다. 낙태죄 위헌 결정 이전, “낙태가 죄라면 범인은 국가다”라는 구호를 내걸었던 한국의 검은 시위도 빼놓을 수 없다.
가장 인상적인 건 인구의 77%가 가톨릭 신자이다 보니 2019년 임신중지권을 지지하는 인구가 단지 27%에 불과했던 아르헨티나의 사례다. 놀랍게도 2020년 12월 30일 이후, 아르헨티나에서는 ‘자발적 임신중지 접근법’에 따라 임신중지 시술이 무상으로 이뤄지고 있으며 유산유도제 역시 무상으로 공급되고 있다. 이토록 놀라운 변화의 배경에는 여성살해 항의시위 ‘니 우나 메노스’(Ni Una Menos, 단 한 명도 잃을 수 없다), 수십 년간 지속된 전국여성회의와 여성 실업자 운동이 있다. 그리고 임신중지를 여성 노동자계급의 보편적 의제로 조명한 노동자 운동의 역할을 빼놓을 수 없다. 2016년 10월 19일 벌어진 여성파업에서 “우리 삶이 무가치하다면 우리 없이 생산하라”는 슬로건을 내세우며 노동자계급의 정체성을 드러낸 여성들과 함께, 여러 사업장의 노동자들이 여성의 권리를 토론하며 직접적 연대행동을 조직했던 것이다. 가장 노동자계급다운 방식으로 말이다.
엥겔스가 칭찬했던 푸리에의 명제, 즉 “어떤 주어진 사회에서 여성해방의 척도가 전반적 해방의 자연적 척도”라는 명제는 오늘날 다음과 같이 바꿀 수 있다고 생각한다. ‘어떤 노동자운동에서든, 여성해방의 의제를 전면에 내걸고 실질적으로 투쟁하고 있느냐가 그 노동자운동의 발전 수준을 보여준다’라고. 이에 동의하는 모든 동지들의 일독을 강력히 권유한다.
2020년 12월 30일 이후, 아르헨티나에서는 ‘자발적 임신중지 접근법’에 따라 임신중지 시술이 무상으로 이뤄지고 있으며 유산유도제 역시 무상으로 공급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