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민연금을 둘러싼 계급투쟁, 자본이 빼앗은 노동계급의 삶을 되찾는 계기여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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온라인신문

국민연금을 둘러싼 계급투쟁, 자본이 빼앗은 노동계급의 삶을 되찾는 계기여야 한다

국민연금, 자본 부담 대폭 강화 이외 대안은 없다

  • 백종성
  • 등록 2023.04.08 15:21
  • 조회수 7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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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 연합뉴스

 

한국 노동자와 연금

 

한국 노동자는 세계에서 둘째 가라면 서러울 만큼 많은 노동에 시달리다 49.3세가 되면 비자발적으로 퇴직한다. 49세. 법정 퇴직연령까지는 11년, 연금수령까지는 16년이나 남아있는 나이다. '주된 일자리'에서 퇴출된 노동자가 실제로 노동력 시장을 떠나는 나이는 72.3세다. 이렇듯 한국 노동자는 50세도 안 되는 나이에 직장에서 쫓겨나 이곳저곳을 떠돌며 무려 23년이나 더 일하고 나서야, 즉 OECD 가입국 평균보다 7.8년을 더 일하고서야 은퇴한다.* 이렇게 일해도 노인 빈곤율은 38.9%로 OECD 평균 3배에 달해 세계에서 가장 높다. 노동하는 삶도, 노동 이후의 삶도 그저 고통일 뿐이다. 

 

한국 노동자를 빈곤하게 만드는 중요 원인이 한국 연금제도다. 국민연금제도의 역사는 개악의 역사다. 1998년 김대중 정부는 국민연금 소득대체율을 기존 70%에서 60%로 삭감했고, 수급연령은 기존 60세에서 65세로 점진적으로 늘렸다. 2007년 노무현 정부는 다시 소득대체율을 2028년까지 40%로 조금씩 깎는 삭감 조치를 단행했다. 심지어 40%로 낮아진 소득대체율조차 허구적 수치다. 국민연금연구원에 따르면 2020년 기준 신규 수급자의 평균 가입기간은 18.6년, 실질 소득대체율은 24.2%에 불과하다.** 앞서 살핀 대로 한국 노동자는 일찍 퇴출당해 불안정한 일자리를 전전해야 하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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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9년 기준, 국민연금 평균 급여는 52만원에 불과하다. 2020년 말 기준 국민연금 의무가입 대상자 2,919만 6천명 중 43.3%에 달하는 1,263만명은 국민연금에 가입조차 하지 못하거나, 연금을 받기 위한 최소 가입기간에 미달하거나, 가입기간이 충분하지 못해 연금액이 낮은 것으로 드러났다.*** 상황이 이럴진대, 노인빈곤율이 낮다면 그것이 이상한 일이다. 

 

최악의 한국 연금제도, 노동자가 양보할 것은 하나도 없다

 

한국노동자는 최소한의 안전장치도 없는 삶을 살다 죽는다. 그런데도 연금에 대한 정부와 자본의 태도는 한결같다. ‘고갈을 지연시키기 위해 지급액을 줄여야 하며, 노동자가 납부하는 보험료를 올려야 한다. 또한 고위험 금융상품에 대한 투자를 늘려 기금운용수익률을 높여야 한다.’ 아래는 2006년 노무현 정부 당시 국민연금 ‘개혁’을 호소하는 보건복지부 보고서다. 

 

“김대중 정부 시절 한 차례 법을 고쳐 60%로 낮추었습니다. … 보험료 9%와 급여수준 60%를 핵심으로 하는 현행 제도를 그대로 유지하면 기금이 바닥나는 것은 언제냐가 문제일 뿐 피할 수 없는 일입니다. … 고갈을 늦출 수 있다면, 그때는 부분적으로라도 부과방식으로 전환하기가 상대적으로 수월해질 것입니다. … 보험료율을 올리고 … 급여수준을 적절하게 낮추는 것 … 높은 수익을 올리면 가입자의 보험료 부담을 줄여줄 수 있습니다.” 

 

어리석은 대중을 계도하려는 듯, 기금이 고갈되기 전 국민연금을 ‘개혁’해야 한다고 한다. 그러나 연금은 국가나 기업이 대중을 어여삐 여겨 주는 선물이 아니다. 적립식이건 부과식이건 모든 연금의 본질은 이연임금(deferred wage), 즉 지급이 미래로 연기된 임금이다. 따라서 연금제도에 대한 국가와 자본의 공격은 본질적으로 더 많은 이윤을 위한 임금삭감 공세이며, 연금을 둘러싼 모든 논의는 계급투쟁이다. 

 

연금개혁은 윤석열 정부 ‘3대 개혁 과제’ 중 하나이며, 올해 10월 보건복지부 종합안이 제출될 것으로 알려졌다. 국민연금 5차 재정추계 발표와 함께, 또 한 번 연금을 둘러싼 계급투쟁의 무대가 열리고 있다. 노동계급은 이 무대에 올라 연금 구조를 바로 세움은 물론, 노동자를 극한까지 착취한 후 폐기하는 한국 자본주의 그 자체에 근본적 의문을 제기해야 한다. 한국 연금제도는 자본의 보험료의 부담으로 보건, 자본/노동 보험료 부담비율로 보건 최악의 상황에 있다. 대체 무엇을 더 내주어야 한다는 말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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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차 재정추계, 다가오는 윤석열 정부의 연금개악에 어떻게 맞설 것인가

 

3월 31일 보건복지부가 발표한 '제5차 국민연금 재정추계 결과'에 따르면 현 상태로 제도를 그대로 유지할 경우, 국민연금은 2040년까지 적립액이 증가하다 2041년부터 적자로 전환해 2055년 소진된다. 다른 조치가 없다면, 저출생·고령화·저성장으로 고갈은 필연이다. 여기까지가 논의의 전제다. 

 

문제는 이에 어떻게 대응할 것이냐다. 매 재정추계마다 보수언론과 경제지는 ‘이대로라면 젊은 세대는 국민연금을 받을 수 없다’는 자극적 보도를 생산한다. 이런 여론전은 소득대체율을 축소하고 노동자 민중의 부담을 확대하려는 국민연금 개악의도는 물론, ‘고갈’에 대한 공포를 사적 연금시장 확대계기로 삼으려는 자본의 의도와 맞닿아있다.

 

2022년 11월 출범한 국회 연금특위 민간자문위원회는 3월 29일 국민연금 보험료율, 가입상한연령, 수급개시연령을 모두 올려야 한다고 제안했다. 지난 1월에는 ‘보험료율 9%에서 15%로 상향’, ‘가입상한·수급개시 연령 65세로 일괄 상향’을 제안하기도 했다. 국민연금을 소위 ‘용돈 연금’으로 만든 김대중·노무현 정부, 직역연금(공무원연금)을 개악한 박근혜 정부와 마찬가지로, 윤석열 정부 역시 ‘더 내고, 덜 받고, 더 늦게 받는 연금개악’을 추진할 공산이 높다. 보험료 인상, 소득대체율 삭감, 수급개시연령 상향, 국민연금 운용수익률 확대… 실로 고전적 레퍼토리다. 그리고 이는 노동자를 한층 더 깊은 빈곤으로 내모는 일괄적 임금삭감 조치, 곧 전체 노동계급을 상대로 자본이 벌이는 계급투쟁이다. 또 한 번 국민연금 개악이라는 투쟁을 개시한 국가와 자본에 맞서, 노동자는 무엇을 요구하며 어떻게 싸울 것인가? 

 

부과식 전환은 문제를 해결하는가?

 

먼저 시민사회의 주장을 보자. 시민사회는 주로 ‘고갈’에 대한 강조가 ‘공포 마케팅’임을 강조한다. 주장의 요지는 재정추산이 초저출산율 시나리오를 가정해 도출되었고, 부과방식 전환에 따른 보험료 금액을 자극적으로 부각해 국민연금에 대한 불신을 강화하고 있다는 요지다. 

 

이런 논지는 국민연금은 애초 영원한 적립이 아니라 고갈을 전제하고 만들어진 제도라는 점을 강조한다.**** 현행 적립식 기금을 필요한 만큼 걷어서 주는 부과식 연금으로 전환해, 매해 필요한 만큼 보험료를 거두고 부족분은 세금으로 보충하면 된다. 그리고 이는 대부분의 국가에서 시행하는 방법이기도 하다. 연금을 대규모로 적립하는 국가는 한국과 일본을 비롯한 극소수에 불과하다. 보험료율 인상 문제 역시, 보험료 징수대상 소득이 아니라 GDP 기준으로 했을 때 10% 내외로 연금지급을 해결할 수 있으며, 이미 많은 선진자본주의 국가의 지출 규모 역시 그러하다. 여기까지는 옳은 주장이다. 그러나 현행 구조를 그대로 둔 채 부과식 전환에 따라 문제가 해결된다는 주장은 한계가 분명하다. 

 

첫째, 시민사회는 국민연금 재정추산이 ‘초저출산율 시나리오’라는 비관적 예측에 근거한다고 주장하나, 이는 단지 비관적 예측이 아니다. 매 추산마다 예상 기금소진 시점이 빨라지고 있으며, 그 핵심 원인은 낮은 출생율 예상을 훌쩍 뛰어넘는 극단적 출생율 저하다. 실제 출생율은 매 재정추산이 가정하는 예상 출생율보다 더 낮아지고 있으며, 이는 국가와 자본의 연금개악 시도와 무관하게 재정추계의 출생율 가정을 비관적이라고 평가할 수 없음을 뜻한다. 지난 10년의 추이는 다음과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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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 추계마다 ‘극단적 저출생을 가정한 공포마케팅’이라는 시민사회의 비판이 있었다. 그러나 실제 출생율은 예상 출생율보다 더 낮았다. 극단적 저출생은 현실이며, 생존의 위기가 지속되는 한 그 추세가 바뀌지도 않을 것이다. 저출생은 오직 자본의 이윤증식 도구로서 살 것을 강요하고 또 강요하는 한국 자본주의에 대한 일종의 저항이다. 맑스 말마따나 ‘임금노예로서의 실존조차 보장하지 못하는’ 자본주의 체제에 대해, 대중은 재생산을 멈추는 것으로 대응하고 있는 것이다. 2022년 기준 0.78에 달하는 합계 출산율은 한국 자본주의 모순이 응축된 결과로서 사회재생산의 총체적 위기를 드러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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압도적 저출생은 한국 자본주의의 모순을 집약해 드러낸다 (출처: OECD 출산율 통계. 2021년 기준)

 

둘째, 위와 연관된 문제로서 보험료율 문제다. 현재의 부담 구조를 바꾸지 않는다면, 보험료율 인상은 필연이다. 부과식 연금이 원활히 작동하기 위해서는 노동가능인구의 활발한 유입이 있어야 하나, 한국은 세계에서 가장 빨리 노령화하는 국가다. 통계청에 따르면 2022년 17.5%에 달하는 65세 이상 노령인구는 2030년 25.5%, 2040년 34.4%, 2050년 40.1%로 1,900만명에 달한다. 

 

이에 따라, 2050년 한국 부양비(20-64세 인구 대비 65세 고령인구 비율, OECD 기준)는 78.8%에 달해 일본 다음으로 높을 것으로 예측되며 2060년이면 일본을 제치고 세계에서 가장 높아진다. 즉, 현 연금 부담 구조를 바꾸지 않는다면, 가장 빠르게 줄어드는 현직 노동자의 부담으로 가장 빠르게 늘어나는 은퇴 노동자를 부양하는 결과를 맞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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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 부양비 증가율은 OECD 평균을 훌쩍 초과한다 (65세 이상 고령인구∕20세-64세 생산가능 인구. 출처: OECD)

 

3월 국민연금 5차 재정추계에 따르면, 부과식 전환에 따라 해당연도 보험료 수입만으로 연금 급여 지출을 충당할 경우, 필요한 보험료율은 2030년대 부과대상 소득총액의 9.2%, 2040년대 15.1%, 2050년대 22.7%에 달하며 최대 35%까지 올라야 한다. 

 

국가와 자본은 이 부담을 노동계급에게 지우고자 하며, 자유주의 시민사회와 사민주의자들 역시 정도의 차이만 있을 뿐 노동자의 보험료율 인상에 동의하며 ‘더 많이 내고, 더 많이 받는’ 국민연금으로의 재편을 지향한다. 그러나 저출생과 저성장이 집약하는 체제의 위기도, 그 위기에서 파생하는 국민연금의 문제도 노동자 민중이 만든 것이 아니다. 한국 자본주의 속에서 살아남고자 발버둥치는 노동자 민중이 왜 위기의 비용을 책임져야 하는가? 둘째, 노동자의 보험료율 인상에 동의하는 것은 필연적으로 은퇴한 노동자 세대와 현직 노동자 세대의 갈등으로 이어진다. ‘왜 우리 세대는 앞세대보다 훨씬 많은 보험료를 내야 하는가? 차라리 안 내고 안 받는다!’ 젊은 노동자들의 분노는 국민연금에 대한 무지와 연대의식의 결여로 치부할 수 있는 것이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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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민연금, 더 내고 더 받자고? - 노동자 민중의 삶을 위해 자본의 이윤을 줄여라 

 

우리는 노동자 보험료 부담 증가에 반대한다. 위기로 치닫는 한국사회를 만든 책임은 자본에 있으며, 부과식 전환에 따른 재원 확대가 필요하다면 그 부담은 자본이 져야 한다. 앞서 살핀 공적연금 보험료 노-사 부담비율과 마찬가지로 각국 사회공헌기여금 총액의 노-사 구성비를 살펴보면, 한국과 같이 노동과 자본이 1:1로 보험금을 부과하는 국가는 소수임을 쉽게 알 수 있다. 

 

스페인, 체코, 프랑스, 슬로바키아, 라트비아, 스웨덴, 아일랜드, 벨기에, 핀란드, 노르웨이, 포르투갈, 튀르키예, 영국, 캐나다, 오스트리아, 독일, 네덜란드 등 국가 모두 자본이 더 많은 사회보장기여금을 납부한다. 한국보다 소득대체율도 훨씬 높고, 노인빈곤율은 훨씬 낮다. 노동자의 사회보장기여금 비율이 더 높은 국가들조차 덴마크, 룩셈부르크, 그리스, 헝가리 등 한국 소득대체율의 2배에서 2.7배에 달하는 연금을 보장한다. ‘더 내고 더 받는’ 국민연금 재편론은 그 의도가 무엇이건 한국 사회를 파탄시킨 자본의 책임을 면죄함은 물론 보험료를 추가 부담할 여력조차 없는 노동계급의 현실에 눈감는다. 연금제도를 바로 세우는 방법은 자본 부담의 대폭 강화일 뿐이다. 노동자의 보험료 인상 반대는 일종의 이기주의가 아니라 계급투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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총체적 위기로 치닫는 한국 자본주의, 이대로 살 수는 없다 

 

62세에서 64세로, 연금수급연령을 2년 연장하려는 마크롱 정부에 맞서 프랑스 노동계급은 거대한 파업을 벌이고 있다. 한국 노동자들에게는 어색한 풍경이다. 빈곤의 나락으로 떨어지지 않기 위해 평생 발버둥치는 한국 노동자들에게는, 사회보장제도 자체가 낯설기 때문이다. 

 

다시, 국민연금 개악이 온다. 이제 정년연장 요구와 임금피크제 수용 등 더 많은 노동을 위한 발버둥 대신, 자본이 빼앗은 나의 몫을 되찾는 공적연금 강화 계급투쟁에 나서야 한다. 모든 노동자 부담 확대론을 거부하고 삶을 위해 자본의 이윤을 줄이라고 요구하자. 윤석열 정부의 연금개악에 맞선 투쟁은 공적연금을 바로 세우는 계기여야 함은 물론, 한국 자본주의가 빼앗은 노동자 민중의 삶 자체를 되찾는 계기여야 한다. 총체적 파탄으로 치닫는 한국 사회를 바꿀 수 있는 것은 계급투쟁뿐이다. 

 

[각주]

* 통계청, 「2022년 5월 경제활동인구조사 고령층 부가조사 결과」, 2022.7.26.

** 정인영, 「국민연금 소득대체율 관련 현황과 쟁점」 2022.11.10.

*** https://www.hani.co.kr/arti/society/society_general/1050154.html

**** 국민연금이 애초 고갈을 전제하고 만들어진 제도인지에 대해서는 논쟁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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