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진: 연합뉴스
국가와 주택시장이 전세사기를 양성했다
지난 5월 8일 양천구 한 빌라에 사는 30대 여성 ㄱ씨가 숨진 채 발견됐다. 그는 1,139채의 빌라를 소유했던 빌라왕 김대성과 3억으로 전세계약을 맺었다가 보증금을 돌려받지 못했다. ㄱ씨를 비롯해 전세사기로 세상을 떠난 피해자가 올해만 벌써 4명이다. 전세‘사기’가 아니더라도 깡통주택, 소위 ‘역전세’ 피해 우려는 상당하다. 이 비극의 표면적 이유는 주택가격의 하락이지만, 근본적으로는 역대 정권이 다주택 투기와 민간임대사업을 장려했기 때문이다. 또한, 저렴한 공공임대주택이 턱없이 부족한 상태에서 다수 민중이 민간임대주택에 의존할 수밖에 없었다는 점을 지적해야 한다.
보증금으로 사들인 집 2,700채, 집값 내리자 ‘못 돌려준다’
전세사기의 양상을 보자. 우선 김대성 사례를 보면, 부동산 브로커(컨설팅업자 등)들의 바지사장으로 빌라왕이 된 정황이 확인된다. 언론보도에 따르면 김대성의 통장에서 ‘명의비’라는 입금 내역이 확인된다. 다른 빌라왕 정 모는 사망 당일은 물론 사흘 뒤에도 계약을 체결한 사실이 드러났다.
사정은 이렇다. 브로커들은 건물주에게 당신 소유 건물을 비싼 값에 팔아주겠다고 제안한다. 건물주야 마다할 이유가 없다. 이제 브로커는 임차인들을 모집하고, 매매가보다 비싼 값에 전세를 놓는다. 브로커는 해당 전세보증금으로 건물을 매입하고, 바로 명의를 바지사장에게 넘겨준다. 이른바 ‘동시 진행’이다. 임차인은 건실한 건물주에게 세를 들어간 줄 알았다가, 나중에 계약이 만료되어서야 명의가 바뀐 사실을 알게 된다. 그럴 것이 분명 계약을 맺을 당시에 건물주 명의는 정상이었기 때문이다. 심지어 임차인은 계약을 맺고 나면 임대인 동의 없이 임대인의 신상을 확인할 수 없다. 꼼짝없이 당하는 것이다.
브로커들은 애당초 전세보증금을 세입자에게 돌려줄 생각이 없었다. 김대성의 경우 지난해 10월 사망할 때까지 체납한 종합부동산세는 63억에 이른다. 이렇게 조세 체납이 발생하면 세입자가 보증금을 돌려받기 어렵다. 실제 김대성의 세입자 중 다수는 전세보증금반환보증에 가입하지 않아, 세입자들이 보증금을 돌려받을 길이 없다. 지난 8일 세상을 떠난 전세사기 피해자 ㄱ씨의 사례가 여기에 속한다.
한편, 이른바 ‘건축왕’ 사건은 전형적인 폰지사기다. 건설업자가 전세계약으로 챙긴 보증금으로 또 건설사업에 나선 것이다. 자기 자본 없이 보증금만으로 주택을 계속 살 수 있으며, 건축업자이기 때문에 은행 대출을 받기도 편리했다. 주택가격 상승기에는 적당한 때 시세차익도 챙길 수 있다. 그런데 부동산 경기가 하강하면서 ‘깡통전세’가 늘기 시작했다. 깡통전세란 집값에서 선순위채권을 뺀 금액이 전세보증금보다 낮은 전세를 말한다. 즉, 임대인이 집을 팔아도 전세보증금을 돌려줄 수 없는 전세가 깡통전세다. 심지어 금리가 오르면서 대출 이자도 감당이 안 돼, 건축왕 소유의 주택이 경매에 넘어갔다. 인천 미추홀구 전세사기 주범, 2,700채의 주택을 소유한 남 모씨의 범행 전말이다.
“다주택자와 상생하자”, 건축사기단에 판 깔아준 정권
피해가 속출하자 여당은 ‘전세사기 배후를 뿌리 뽑아야 한다’며 정부에 강력 대응을 주문했다. 그런데 따지고 보면 배후에는 역대 정권이 다 포함된다. 이들이 전세사기에 ‘판’을 깔아준 장본인들이기 때문이다.
문재인 정부 부동산 정책을 떠올려 보자. 한국부동산원이 발표하는 서울 공동주택 실거래가 지수는 2017년 5월 93.4에서 2021년 10월 188.1로 상승했다.* 4년 만에 집값이 2배 이상 오른 것이다. 이런 상황에서 쾌적하고 안정적인 주거를 바라는 민중의 요구를 충족하는 방법은, 저렴하고 쾌적한 공공주택을 정부가 직접 공급하는 것이다. 그러나 정부는 공공주택이 아닌 다주택 구매 확대를 부추겼다. 정부가 5년간 30차례 가까운 부동산 정책을 내놓았음에도 다주택자의 주택구매를 억제하지 않았다. 오히려 다주택자가 주택임대시장에서 공급자 역할을 한다며 보호에 나섰다.
대표적인 것이 바로 주택등록임대사업자 특혜다. 문재인 정부는 2017년 12월 ‘집주인과 세입자가 상생하는’ 「임대주택 등록 활성화방안」을 발표했다. 여기서 정부는 임대사업자의 △재산세·취득세 감면 확대 △주택 1호만 소유해도 임대소득세 감면 △8년 이상 임대사업자 양도세 감면 △건강보험료 인상분 대폭(40~80%) 감면 등을 약속했다. 말로는 다주택자를 잡겠다고 하면서도 실제로는 다주택자를 양산한 것이다.
통계청이 매년 발표하는 주택소유통계를 확인해 보자. 2016년 3주택자는 24만, 4주택 이상은 17만 명 규모다. 그런데 문재인 정부 말기인 2021년 3주택자는 180만, 4주택 이상은 35만으로 각각 7.4배, 2배 가까이 증가했다. 반면 1주택자는 같은 기간 13.1% 증가에 그쳤다. 다주택자 증가는 주택임대시장의 팽창을 의미하며, 이는 정권이 의도하고 부추긴 결과다.
이런 가운데 전세는 세입자 주거권이 아닌 ‘갭투기’ 등 다주택자의 주택구매 수단으로 장려되고 확대됐다. “목돈 안 드는 전세 8월 중 출시.” 어느 부동산 중개업체의 광고 문구가 아니라 2013년 국토교통부가 배포한 보도자료** 제목이다. 정부가 리스크를 대신 감수하는 조건으로 금융기관들이 각종 전세대출상품을 쏟아냈다. 청년과 신혼부부를 대상으로 한 ‘버팀목대출’이 이때 만들어졌고 문재인 정부를 거치면서 규모가 계속 늘어났다.
그림: 국토교통부 2013년 8월 12일자 보도자료
통계를 보자. KB금융지주 경영연구소가 한국은행 자료를 분석한 결과 2012년 전세자금대출잔액은 23조 원 규모에 불과했다. 그러나 2019년 100조 원을 돌파하고, 2021년에는 180조 원을 기록했다***. 2021년 한국 가계부채(1,757조 원)의 10% 이상이 전세자금대출인 셈이다. 주택담보대출은 더 빠르게 증가했다. 2013년 514조 원이던 주택담보대출은 2022년 1,008조로 500조 가까이 증가했다. 같은 기간 한국 가계부채 증가분 800조원(961조 → 1,757조)의 절반 이상이 주택담보대출이다. 세입자들은 전세대출을 받아 보증금을 마련하고, 다주택자는 전세보증금을 밑천으로 더 많은 주택구매에 나섰다.
여기서 세입자의 잘못은 없다. 매달 일정 규모의 월세 지출은 부담스럽다. 특히 지난 10여 년간의 저금리 상황에서 목돈만 마련할 수 있다면 전세가 더 저렴하다. 정부는 이 점을 노리고 전세대출을 확대해 다주택자를 지원했다. 전세사기 범죄자들이 활보할 공간을 열어준 셈이다. 빌라왕 김대성도 등록 주택임대사업자였다. 전세사기를 방지할 대책도 부실했다. 주택임대사업자의 보증보험 가입 의무는 2021년 8월부터 시행되었으나 미가입자에 대한 감시와 처벌도 없었다. 김대성 명의 주택 1,139채 중 보증보험에 가입된 주택은 44건에 불과했다.* 세입자가 별도로 보증금반환보험에 가입하지 않으면 전세사기를 당해도 법적으로 보호받을 수 없다.
전세자금대출 증가 실태(KB금융지주 경영연구소, 2022)
‘나 몰라라’ 정부에 철퇴를, 국가책임 주거를 요구한다
전세사기 피해가 속출하자 피해자들은 보증금 반환채권 공공매입을 요구했다. 이에 국토교통부장관 원희룡은 “사기 피해자들을 국가가 다 도와줘야 하냐”고 반문했고, 결국 정부 전세사기 피해지원 특별법안에서 제외됐다.
정부 법안에서도 전세사기 피해자가 피해를 입증하기는 낙타가 바늘구멍 들어가기만큼 어렵다. 정부에게 전세사기 피해자로 인정받기 위해서는 △대항력을 갖추고 확정일자를 받은 상태이며 △임차주택에 대한 경매·공매가 진행되고 △피해 주택이 면적·보증금 등을 고려한 서민 임차주택이어야 하며 △수사개시 등으로 ‘전세사기 의도’가 있다고 판단되고 △‘다수의 피해자’가 발생할 우려와 △보증금의 ‘상당액’이 미반환될 우려가 있는 경우여야 한다.
그러나 전세사기는 피해자들의 잘못이 아니며, 따라서 피해자들에게 피해를 증명하라고 요구해서는 안 된다. 애당초 정부가 저렴하고 쾌적한 공공임대주택을 필요한 만큼 충분히 공급했더라면 일어나지 않았을 비극이다.
일각에서는 전세제도 자체가 문제라고 이야기한다. 그러나 앞서 지적했듯 세입자들이 전세를 선택한 이유는 전세가 월세보다 주거비를 절약할 수 있다는 판단 때문이었다. 전세를 없앤 결과가 월세의 확대라면 그것은 괜찮은가? 실제 지난 3월, 서울 대학가 평균 월세는 전년 대비 15% 상승했다*****. 금리가 오르고 전세사기 피해가 알려지며 전세 수요가 줄고 월세로 쏠린 탓이다. 문제는 전세가 아니라 민간임대시장 그 자체다. 따라서 문제 해결의 열쇠는 공공주택 확충을 통한 주거권 보장이다.
우선 급한 불인 피해자 긴급구제를 제대로 실시해야 한다. 세입자 강제퇴거 금지는 기본이며 지금 당장 약속해야 한다. 정부는 전세사기 주택에 대해 경매를 중단하고 피해자에게 우선매수권을 부여하겠다고 밝혔다. 그러나 이미 자기 자산 대부분을 전세사기로 상실한 상태에서, 주택을 매입할 여력이 있는 피해자는 극소수다.
당장 전세사기 주택을 국유화해 기존 세입자들이 계속 거주할 수 있도록 보장해야 한다. 윤석열 정부도 뒤늦게 ‘매입임대’ 방식을 통해 전세사기 주택 일부를 공공주택으로 전환하겠다고 나섰다. 그러나 공공임대주택 예산이 대폭 삭감된 상태에서는 피해자를 지켜내기 역부족이다. 특히 부동산 하락기엔 더 많은 깡통주택이 발생할 수 있는 만큼, 공공주택을 선제적으로 확대해야 한다. 2021년 무주택가구는 940만에 이르지만, 2020년 장기공공임대주택 재고는 92만 호로 10%에도 못 미친다.******
나머지 공공주택을 새로 지을 필요도 없다. 2021년 주택보급률은 102.2%이다. 집이 없는 것이 아니라, 소수의 다주택자가 너무 많은 주택을 가진 것이 문제다. 그들이 부동산 상승기에 천문학적인 투기이익을 거두고서도, 지금 같은 하락기에는 되레 보증금 떼먹기로 책임을 면피하고 있다. 해결의 방향은 다주택 소유와 주택임대사업으로 얻은 이익을 환수하고, 나아가 다주택자 소유 주택을 국유화하고 공공임대주택으로 전환해 무주택자의 주거권을 보장하는 것이어야 한다. 자본가정권에는 그 의지도, 능력도 없다. 노동자 민중의 투쟁으로 국가책임 주거를 실현하자.
* https://www.reb.or.kr/r-one/cm/cntnts/cntntsView.do?mi=10116&cntntsId=1407
** 국토교통부, 「목돈 안 드는 전세 8월 중 출시」, 2013.08.12.
*** KB금융지주 경영연구소, 「전세자금대출 증가에 따른 시장 변화 점검」, 2022.04.10.
**** 연합뉴스, 「임대업자 보증보험 의무인데…1천139채 '빌라왕'은 44건만 가입」, 2022.12.25.
***** 한겨레, 「서울 대학가 원룸 월세 59만6천 원…1년 새 15% 올라」, 2023.04.12.
****** 경실련, 「지난 13년간 LH장기공공주택 재고 현황 분석결과」, 2022.10.0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