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끄럽지만 몇 가지 고백부터 해야겠다. 나는 올해 처음으로 퀴어퍼레이드에 참가했다. 앨라이(ally)라는 말도 이번에 처음 알게 됐다. 민주노총에서 앨라이를 대체할 우리말 표현을 공모해서 ‘무지개 동지’가 1등을 한 것도 퀴어축제에 참가하고서야 알았다.
24회를 맞은 서울퀴어문화축제. 서울시가 서울광장을 사용하지 못하게 해 어렵사리 투쟁을 거쳐 을지로 일대에서 열린 이번 축제의 모토는 ‘피어나라 퀴어나라’. 퀴어나라는 ‘갇힌 동물이 우리를 뛰어넘어 달아난다’는 뜻의 제주어에서 빌려온 표현이라고 한다. 알록달록 무지개색 깃발이 나부끼고 무지개색 옷차림으로 가득한 그곳은 말 그대로 축제의 현장이었다. 행사부스만도 50개가 넘었다. 참가자들은 여러 부스를 다니며 기꺼이 후원금을 내고 기념품을 살뜰히 챙겼다. 퀴어 관련 가수나 밴드의 공연에는 열띤 환호와 호응이 함께했다. 다양한 볼거리, 나눌 거리 덕에 행사장은 인산인해를 이뤘다. 땡볕 속에서도 더위를 무색하게 할 만큼 활기와 흥겨움이 넘쳤다. 긴 공연 뒤 4킬로미터나 되는 행진에도 지친 기색보다는 유쾌하고 발랄한 기운이 가득하다. 모두가 평등하고 즐거운 연대의 장!
피땀으로 일군 모두의 축제
이런 ‘평화로운’ 풍경이 만들어지기까지는 많은 이들의 애씀과 투쟁이 있었다. 24년째 행사를 이어올 수 있었던 것은 차별과 혐오 대신 평등과 연대를 퍼뜨리고자 하는 성소수자 당사자와 지지자들의 피땀 덕분이다. 서울광장을 빼앗겨 64명의 자원자가 여기저기 집회신고를 하러 다녀야 했다. 차별금지법제정연대 동지는“왜 축제조차 투쟁의 현장이 되어야 하나?” 물으며 “퀴어는 내 옆에 오랫동안 있어 왔다”는 것을 강조했다. 광주퀴어문화제준비위에서 활동하는 동지는 “광주에서까지 퀴어문화축제를 해야 하는 이유가 뭐냐는 질문을 자주 받는다”며 “서울에 올라오기 어려운 장애인, 청소년을 위해 지역퀴어축제를 꿈꾼다”고 했다. 퀴어는 어디에나 있는데 지역축제를 못 할 이유는 그 어디에도 없다!
행사장 주변 곳곳에서는 기독교 단체나 성소수자 혐오세력들의 반대집회가 열리고 있었다. ‘동성애는 죄악, 회개하라’ 이런 혐오 현수막을 들고 목청껏 외쳐대는 그들의 기세는 다행히 퀴어축제 참가자들의 규모와 흥에 압도되어 맥을 못 췄다. 당연하게도 모든 기독교인이 그런 것은 아니다. 몇 년 전 퀴어축제에서 축복기도를 했다는 이유로 교회로부터 중징계와 고발을 당한 목사는 말한다. “한국교회가 차별과 혐오의 관습을 버리고 사랑과 환대와 평화의 공동체가 될 때까지 수십 번의 재판을 받게 될지라도 기쁘고 달갑게 받겠다”고.
국가인권위, 대사관들 그리고 길리어드
축제에 참가한 유일한 국가기구인 국가인권위. 참가자는 무대에서 솔직하게 말했다. “현재 우리 정부의 성소수자 정책은 딱히 없습니다. 국가인권위도 그 책임에서 자유롭진 않습니다.” 퀴어축제를 지지하는 많은 유럽 나라 대사관도 부스에 참가하고 있는 게 눈에 띄었다. “외국 대사관 부스도 있네!” 하며 의아해하는 참가자들도 있었다. 행사 초반, 부스 참가하는 여러 대사관 관계자의 축하영상은, 국가 홍보+자랑 느낌이 없잖아 있었지만 성소수자 관련한 법과 제도가 우리나라보다는 훨씬 잘 갖춰져 있다는 것을 구체적으로 알 수 있다는 점에서는 도움이 됐다.
하지만 퀴어축제에 자본가 국가와 정부 기관의 참가를 열어주는 게 맞을까? 국가인권위가 7년째 퀴어축제에 참가하고 있고 차별금지법도 17년째 밀고 있다지만, 정부기관인 건 사실이고, 윤석열 정부가 들어선 뒤에는 더욱 후퇴하고 있으니 말이다. 유럽 등 여러 나라도 우리나라와 비교하면 성소수자 관련 정책에서는 앞서 있을지 모르지만 노동자민중, 소수자를 차별하고 억압하는 자본가 정부라는 본질에서는 크게 다를 바 없기도 하다.
무엇보다 길리어드가 이번 축제에 참가했다는 사실을 이해하기 어려웠다. ‘HIV 감염인을 응원한다’지만 초국적 제약기업답게 시장을 독점하며 치료약을 고가에 판매하면서 성소수자와 HIV 감염인에게 해악을 끼치는 존재라는 걸 알게 되었기 때문이다. 축제 전날인 6월 30일, 여러 시민사회단체가 길리어드의 핑크워싱을 규탄하는 성명을 내고 기자회견을 하기도 했다. 행사부스를 운영하는 것은 물론이고 다섯 개의 행진차량 가운데 하나를 배정받기까지 했다. 퀴어축제 조직위가 좀 더 분명하게 자본과 정부에 대해 선을 긋고 투쟁의 기조를 날카롭게 세웠으면 하는 바람을 가져본다.
노동자, 민주노조의 비중이 아쉽다
자원활동에서 하필 큰 깃발을 여럿이 드는 일을 맡아 엄청 힘들었는데, 행진차량 소리도 안 들려 퀴어축제의 꽃인 퍼레이드를 즐기지 못해 아쉽다는 동지도 있었다. 피켓 하나 달랑 들고 축제를 즐기기만 한 나로서는 전체 행사를 준비하고 마무리까지 해야 하는 자원활동가들의 노고가 존경스러울 지경이었다.
민주노총이 참가하긴 했지만, 노조 깃발은 그리 많지 않았고 참가한 조합원 수도 많지 않은 듯했다. 앞으로는 노동자들이, 민주노조들이 좀 더 적극적으로 퀴어축제에 주체적으로 참가했으면 하는 바람이 크다. 더 많은 노동자가, 더 많은 민주노조가 사회적 약자, 소수자들의 투쟁에 함께하고 연대를 만들어 가는 데 앞장서야 한다. 자기 임금, 자기 고용만 요구하고 투쟁하는 편협한 민주노조가 아니라, 억압과 차별을 벗어던지기 위해 투쟁하는 모든 이들과 손 맞잡는 노동자계급, 민주노조운동이 되어야 하리라.
더불어 자유분방하고 흥에 넘치는 퀴어축제의 분위기에서 뭔가 영감을 얻어 노동조합 집회문화도 쇄신했으면 싶다. “이렇게 더운 날, 이렇게 긴 시간, 이렇게 긴 거리를 행진하다니! 만일 민주노총 집회였으면 절대 못 했을 거다. 그런데 오늘 행진은 재밌더라”는 게 함께 참가한 동지들의 비슷한 소감이었다.
한 장애인 동지는 ‘프라이드는 자긍심이다, 그건 곧 권리!’라고 말했다. 전국장애인철폐연대 동지는 “장애인 철폐와 마찬가지로 성소수자 철폐도 치료의 문제가 아니라 사회의 기준을 바꾸는 것”이라며 “혐오에 무감각하지 말자”고 투쟁의 필요성을 강조했다. 사회에서 차별받고 억압받는 소수자들의 투쟁은 닮아있고 연결되어 있다. 하기에 이들 사이의 연대와 단결은 자연스럽다. 노동자, 여성, 성소수자, 장애인 모두 마찬가지다. 더 단단하고 폭넓은 연대가 절실하다는 생각이다.
존재 자체로 저항하는 퀴어
행진까지만 참가하고 그 뒤 축하무대는 나중에 라이브영상을 통해 봤다. 역시 내 기대에 어긋나지 않게 트랜스젠더 사이클 선수 나화린이 등장했다! “여러분에게 받은 응원에 힘입어 우리 모두가 올바르게 구별 받는 그런 세상에서 살 수 있도록 더 큰 무대를 향해서 힘차게 달려가겠습니다.” 길지 않은 말이었지만 ‘올바르게 구별 받는 세상’이란 대목이 임팩트 있다, 멋지다! 퀴어는 존재 자체로 저항한다는 누군가의 말이 새삼 실감 난다.
언론에선 이날 5만 명이 모였다던데, 성소수자와 그 지지자가 이렇게 많이 한자리에 모여 한바탕 축제를 벌이고 존재감을 드러내는 것만으로 이미 엄청난 저항이고 투쟁이다. 노동자집회에서 흔히 볼 수 있는 딱딱한 구호나 행진가풍 노래 대신에 화려한 복장과 흥겨운 춤사위로도 우리를 억누르고 가로막는 힘과 장벽에 저항하고 투쟁할 수 있다는 사실이 씁쓸하면서도 한편으로 놀랍다. 이래서 퀴어축제는 축제이면서 곧 투쟁이 아닐까.
이번 축제에 참가하면서 가진 기대 하나 더, 샘 스미스의 노래가 당연히 울려 퍼질 줄 알았는데 참가하는 내내 한 번도 못 들어본 것 같다. 성소수자로 커밍아웃한 세계적인 팝 스타 아닌가! 이 정도 셀럽의 노래를 퀴어축제에서 안 틀어주다니, 주최 측한테 섭섭할 지경이다.
“굳이 힘낼 필요 없이 모두가 편안하게 살아갈 수 있는 사회가 오기를 바란다”는 자원활동가 대표의 말, 그리고 “서로 꽉 안아주면서 얼굴 한 번씩 들여다보면서 죽지 않고 함께 해나가자”는 제주퀴어축제 관계자의 말이 유독 오래 가슴에 남는다. 퀴어축제가 이렇게 자리 잡기까지 성소수자 활동가들의 죽음도 있었다. 혐오와 차별과 배제로 고통받는 많은 이들이 삶의 끈을 놓지 않고 편안하게 살 수 있는 사회는 저절로 오지 않을 것이다. 평등과 권리를, 인간다운 삶을 꿈꾸는 모든 이들이 함께 힘을 모아 투쟁하자.
“성소수자에게 권리를! 동정은 집어치워! 차별은 이제 그만! 혐오는 쓰레기통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