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발언] 안전한 정보를 생산하는 데이터 라벨링 노동자도 안정적으로 일하고 싶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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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의 투쟁

[발언] 안전한 정보를 생산하는 데이터 라벨링 노동자도 안정적으로 일하고 싶습니다

여성/퀴어/노동자 3차 오픈마이크_저임금, 고용불안 없어야 민주주의

[편집자 주] 2025년 3.8여성파업조직위원회는 “저임금, 고용불안 없어야 민주주의”라는 주제로 1월 18일 여성/퀴어/노동자 3차 오픈마이크를 진행했습니다. 이날 자유발언으로 데이터 라벨링 산업의 고용불안과 친기업적인 분쟁 조정 절차 등의 문제를 비판한 지안 동지의 발언문을 기고문으로 싣습니다. 

 

 

안녕하세요. 광장 식으로 자기소개를 하자면 저는 앞으로 어떤 멋진 분을 만날지 알 수 없어 ‘아직은 이성애자’ 4050 비청년 여성 페미니스트 페스코, 트위터 아이디 심지, 그리고 반려종과 잘 헤어지기 프로젝트 무지개정류장을 기획한 지안이라고 합니다. 또, 저는 글 쓰고 일하는 노동자시민이기도 합니다. 시즌에는 생계노동으로 데이터 라벨링을 하고, 비시즌에는 르포를 쓰고 있습니다. 
 

데이터 라벨링은 인공지능 학습데이터를 구축하는 일로 주로 챗봇 모델에게 학습시킬 질의와 응답을 만드는 작업을 합니다. 올해 햇수로 5년차이고요. 이 일은 프로젝트 단위로 계약을 하기 때문에 계약직인 경우가 대부분입니다. 계약을 연장하거나 정규직 전환을 제안하는 경우도 간혹 있긴 합니다만, 전 직장동료의 경우를 보면 1년 근무 후 정규직 전환이라고 해놓고 그냥 계약 연장만 하는 걸 봤습니다. 그것도 거취에 대한 사전 협의도 노동자 쪽에서 먼저 이야기를 꺼내야 하는 조건을 비롯해 사측의 불성실한 태도로 곤란을 겪었습니다. 
 

저는 원래 한 곳에서 오래 정주하는 것이 적성에 잘 맞지는 않아서 이전에는 프리랜서 다큐멘터리 번역 작가로 일했고 본격적으로 글을 쓰기로 결심한 이후로는 에너지 분산을 위해 단순노동을 찾아 데이터 라벨링을 하게 되었습니다. 단순노동이 아니더군요. 하지만 일정한 조건에 맞춰 결과물을 내는 것이 일정 정도 효능감을 주고 텍스트를 다룬다는 점에서 흥미를 지속할 수 있었습니다. 지금은 이 일에 꽤나 애정을 가지고 있습니다. 그래서, 시즌에는 일과 글을 병행하다 실업급여 자격이 주어지면 글에 집중하는 패턴으로 살고 있는데요. 작년 한 해 동안에는 유달리 가는 곳마다 노동 이슈를 겪게 되었습니다. 

 

작년 4월에는 부당해고를 겪었고 한 달 뒤, 이직한 곳에서는 직장 내 괴롭힘을, 2주 전에 계약 종료된 사업장에서는 불합리한 업무구조와 싸워야 했습니다. 부당해고 건의 경우 지노위까지 갔지만 막상 그곳에 가니 담당직원도, 근로자위원도, 심지어 국선노무사도 내 편이 아니었습니다. 어찌어찌해 저만 두고 떠난 동료들 몫까지 사과를 받아내기 위해 그 자리까지 갔는데, 저 가서요. 합의 당하고 나왔습니다. 그들은 저를 세상 물정 모르는 순진한 사람 프레이밍해서 몰아 부치더니 돈 이야기만 했습니다. 노무사는 자기가 듣고 경험한 중에 가장 많은 합의금이라며 마치 이 합의가 세상 절대 성과인 양 이야기했습니다. 그 합의금, 하나도 기쁘지 않았습니다. 

 

지방노동위원회는 합의공장이었습니다. 여러분, 만일, 지노위 가실 일이 생기면 국선노무사 믿지 마시고 꼭 민주노총이나 한국여성노동자회 통해서 도움 받으십시오. 한 노동단체도 추천 받았지만 저는 연락을 못 받았고요. 해당 사건으로 언론제보도 하고 지인 통해서 모 언론사 기자가 제 연락처도 받아가긴 했지만 아무 연락 못 받았습니다. 그렇게 한 달 만에 이직한 곳에서는 상대적으로 고연령자인 것을 이유로 은근한 배제와 괴롭힘을 당해 3개월 버티다 퇴사했고요. 다행히 회사에 노동위원회가 있어서 근로위원에게 해당 사실 제보하고 사내 성희롱 사건까지 싹 다 읊어주고 나왔습니다. 그렇지만 더 적극적으로 행동하지는 못했습니다. 브레인 포그가 오더라고요. 마지막으로 근무한 곳에서는 상근 관리자 PM의 불합리한 업무지시로 스트레스 장애와 우울증을 얻고 겨우겨우 계약 종료까지 버티고 탈출했습니다. 실업급여를 받아야 하니까요. 현재 이 문제는 사측에 제보를 한 상태고요. 해당 PM에 대해 징계조치가 예정되어 있다고 합니다. 아니, 왜 자신들이 병원을 안 가고 자꾸 사람들을 병원에 보내는 걸까요. 그 사람들이 자꾸 곳곳에서 사람들을 정신건강의학과로 병원으로 보내고 있습니다. 안 그렇습니까? 
 
사실 저는 약 5년간의 가족 돌봄 이후 심신이 소진돼 임금노동을 할 수 없을 만큼 건강이 악화되어서 거의 누워 있다시피 하며 10년 가까이 노동할 수 있는 몸에 대한 갈망으로 살았습니다. 저는 출퇴근을 할 수 있는 지금이 사실 매일매일 신기하고 행복해 죽겠는, 출근하려고 사는, 심지어 일로 스트레스를 푸는, 사소한 데서 신나버리는 노동자입니다. 그런 저를, 드디어 노동할 수 있게 되어 기뻐 죽겠는 저를, 감히 이 저의 사기를 꺾어버린 데이터 라벨링 업계의 심각한 불안정 노동 구조가 하루 빨리 안정화되기를 바랍니다. 이 업무의 목적은 유용하고 안전한 정보를 전달한다는 것입니다. 결국 인간에게 유의미한 역할을 하겠다는 것인데 그 일을 수행하는 노동자들의 노동권은 얼마나 유용하고 안전하게 지켜지는 걸까요?

 

그저 인간은 못 보고 돈만 쫓는 이 세태가 사용자에게도 결과적으로는 자기 소외를 가져온다는 것을 좀 알아들었으면 좋겠습니다. 돈이 방패인 줄 아는데 돈이 수갑이 될 수도 있는 겁니다. 어떻게든 차별을 만들어서 위계를 갖고, 위에 서려는 그 천박하고 찌질한 위계 콤플렉스!! 좀 버리십시오. 그렇게 자신이 없습니까. 돈으로 치덕치덕 발라내야 당신들의 그 한 줌 희박한 자기 존중력이 감춰질 수 있다고 생각하십니까? 우리는, 노동자는 존재 자체가 존엄인데 말이죠. 안 그렇습니까? 우리는 존재 자체로 존엄입니다. 

 

여러분 잊지 마십시오. 어느 곳에서 어떤 형태의 노동을 하든, 혹은 못 하든, 안 하든, 당신은 하루하루를 투쟁하고 생존해내는 존엄한 주체입니다! 모든 노동자에게 파이팅을 외치고 싶습니다! 투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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