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의 투쟁] "삼성반도체 노동자들이 더 이상 죽지 않았으면 좋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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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의 투쟁

[우리의 투쟁] "삼성반도체 노동자들이 더 이상 죽지 않았으면 좋겠습니다."

2025 여성파업 첫번째 오픈마이크: 삼성 산재피해 여성 노동자 정향숙님 발언

2024년 12월 13일, 2015년 페미사이드가 벌어졌던 강남역 10번출구 앞에서 2025 여성파업 첫번째 오픈마이크가 열렸습니다. 참가자들은 강남역 8번출구 삼성전자 건물을 향해 행진하며, 삼성 반도체 라인에서 끊임없이 발생하고 있는 산재피해와 차별에 대해, 삼성 협력업체 노동자들의 해고와 죽음에 대해 이야기했습니다. 삼성 산재피해 여성노동자 정향숙님이 여는 발언을 하였습니다.

 

 

안녕하십니까, 저는 1994년부터 2015년까지 21년 가까이 삼성전자 기흥사업장 7, 8, 9라인 엔드팹에서 근무했던 정향숙이라고 합니다. 처음 입사했을 때는 6라인 엔드팹으로 시작하였으나 7, 8, 9라인이 셋업되고 양산을 시작하면서 통합된 엔드팹이 필요하여 라인 통합을 하게 되었고, 퇴사할 때까지 엔드팹 그룹에 있었습니다.

 

반도체에서 근무하고 있는 라인 여성들이 그러하듯이 교대 근무를 퇴사 직전까지 하였고, 작업자, 부조장, 조장, 직장의 관리 감독 업무까지 하게 되었습니다. 반도체 라인은 수많은 화학물질을 다루지만, 그 성분이 무엇인지, 몸에 어떻게 유해한지 제대로 된 교육은 없었습니다. 방사선 계측기도 수시로 사용하지만, 그저 안전하다고 믿고 사용했습니다.

 

생산량에 쫓겨 생각할 겨를도 없었습니다. 바빠서 화장실도 잘 못 가고 일하면서 방광염은 여성노동자에게 흔한 일이었습니다. 생리 중에도 화장실을 자주 갈 수 없어 말로 표현하기 힘든 불상사도 많았습니다.

 

제가 퇴사한 지 10년이 다 되어가는 시점에 이 자리에 서게 된 이유는 한낱 개인의 건강 문제로 치부하기엔 저의 건강 상태나 주위에서 계속적으로 발생하고 있는 각종 질병을 보면 나 스스로 건강관리 못 해서 생긴 병은 아닌 거 아닌가 라는 의구심이 들어서입니다.

 

저는 현장에서 무거운 런박스를 반복해 들면서 22살에 허리 디스크가 왔습니다. 두 번의 디스크 수술, 계류유산과 불임, 인공수정을 통한 임신과 출산, 자궁적출 수술, 또 잘 낫지 않는 중이염과 어지럼증 등으로 수년간 수없이 병원을 다녔었고, 정밀검사 결과 관자뼈의 거대세포종임을 알게 되었습니다. 최근 이 거대세포종 제거수술을 3회에 걸쳐 진행하게 되었습니다. 거대세포종은 100만명당 1명 생긴다는 희귀종양으로 이 수술과정에서 저는 한쪽 고막을 없앴고 귓구멍을 막아놓은 상태입니다.

 

저의 병력을 이렇게 나열한 이유는 근골격계 질환 및 여성질환 그리고 또 희귀질환까지 저에게 발생한 이 병들을 제가 단순히 관리 못 해서 생긴 병으로 생각하며 살아왔고 반도체 근무 중 여러 가지 질병으로 돌아가시는 가까웠던 분들을 보면서도 직업병, 이런 생각은 하지 못한 채 살았습니다. 하지만 희귀병까지 저를 덮치고 힘든 수술을 반복하다 보니 저 모든 병이 회사를 다니면서 저에게 생긴 일이었고 제 주위에 같이 일했던 많은 여사원도 비슷한 질병을 앓고 있는 사람이 많았었기에 저는 반올림을 통해 산업재해 신청에 이르게 되었습니다.

 

제가 근무했던 라인은 일명 노가다 라인입니다. 3, 4, 5라인보다는 자동화되었으나 그래도 여사원들이 런을 들고 나르고 넣고 빼고 하는 곳이었습니다. 손가락이 휘어지고 허리디스크가 생길 수밖에 없습니다. 지금 생각해보면 그렇게 작업하면 안 되는 것들을 당시에는 당연하게 생각하면서 작업을 했습니다. 20년간 근무하면서 4조 2교대, 3조 3교대, 4조 3교대 회사 입맛에 맞는 근무 변경, 군소리 없이 했고 감독자를 하면서는 여기저기 위험 요소가 많았지만 냄새가 난다고 하면 마스크 내리고 찾아 다녀야 했습니다. 가스가 새거나 케미칼 리크(Chemical leak) 알람이 울리면 어느 부위에서 샌 건지 바닥 그레이팅 열면서 찾아다녀야 했고, 정전이 오랫동안 나도 공조배기도 안 도는 라인에서 웨이퍼 정리해야 했고, 생산 관련 OT, 즉 연장 근무는 기본이고 자동화는 제가 일했던 곳에서는 꿈도 못 꾸던 이야기입니다. 심지어 저는 웨이퍼 불량을 칼로도 긁어봤습니다.

 

최근 황유미님이 근무했던 곳인 3라인에서 일한 여성 노동자들이 암과 자녀장애 산재로 기자회견을 하였습니다. 제가 산재 신청을 하면서 그동안 알지 못했던 그리고 잠시나마 같이 일했던 작업자들이 직업병으로 투병하고 사망한 사실을 알게 되었습니다. 또한 얼굴을 모르지만 같은 나이 다른 조에서 근무했다가 직업병으로 사망하신 분들의 이름을 봤을 때 정말 큰 충격으로 다가왔습니다. 너무나 많은 그리고 연속적인 직업병 사망, 투병의 피해가 있었습니다. 이것이 아직도 현재 진행형인 것 같아 너무 겁이 납니다.

 

저는 삼성반도체에서 근무하고 계신 분들이 직업병으로 인해 아프지 않았으면 좋겠고 죽지 않았으면 좋겠습니다. 저 또한 죽고 싶지 않습니다. 삼성은 달라져야 합니다. 여성 노동자들의 처지는 달라져야 합니다. 오늘 이 자리가 우리의 힘으로 바꿔나갈 수 있는 기회가 되었으면 좋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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