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대재해 처벌법 폐지' 외치는 대선, 오늘도 노동자는 일터에서 죽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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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의 투쟁

'중대재해 처벌법 폐지' 외치는 대선, 오늘도 노동자는 일터에서 죽는다

  • 배예주
  • 등록 2025.05.29 18:06
  • 조회수 82

 

2025년 5월 15일, HD현대중공업이 HDC현대산업개발(주)에 발주한 사외방파제 헥사콘 설치 공사현장에서 일하던 40대 노동자가 익사하는 중대재해가 발생했다. 고인이 사망한 지 15일째인 5월 29일, 유족과 '중대재해없는세상만들기 울산운동본부'가 기자회견을 열었다. 

 

"엄마, 나 절대 물에 안 들어가고. 텔레비전으로 보면 줄 잡아주고 하는 거, 엄마 봤지? 그거다." 이정제 노동자는 혹시라도 위험한 잠수일을 할까 걱정하던 모친을 안심시키던 현대산업개발 하청업체 ‘아진건설’ 소속 '잠수조공'이었다. 

 

5월 15일, 회사는 잠수부가 아닌 그에게 전날 기상악화로 미뤄진 잠수작업을 지시했다. 테트라포드와 바지선을 연결하는 줄을 푸는 마지막 공정의 일이었다. 파도가 거세고 와류도 강했으나, 그는 잠수복만 입은 채 250톤급 바지선에서 내려 바다로 들어가야 했다. 어떠한 잠수장비도 없이, 마지막 숨을 들이쉬고 바다로 잠수했다. 그것이 이정제 노동자의 생애 마지막 숨이 되고 말았다. 

 

 

현장에는 원청 안전관리자도, 작업지휘자도, 잠수부도, 감시인도 없었다. 관련 업무의 위험평가서 내용도, 바지선에 실린 잠수장비도, 잠수작업 시 2인 1조도 원칙도 없었다. 사측 관리자라면 이런 조건에서 바다로 잠수할 수 있었겠는가?

 

노동자를 죽여놓고도 현대산업개발과 아진건설은 자신의 책임을 회피하고 있다. 하청사는 처음에는 숨진 노동자를 탓하더니 이제는 동료 노동자 탓을 하고 있다. 아진건설 사장은 유족에게 ‘수심 1m도 안 된다’, ‘평소에 하던 일’이다, ‘밧줄은 밖에서 자르면 되는데 왜 바다에 들어갔는지 모르겠다’는 막말을 해대기도 했다.

 

울산대학교병원 장례식장에 마련된 고인의 빈소에는 현대산업개발의 화환이 없다. 그런데 기가 막히게도, 현대산업개발에 공사를 발주한 현대중공업 경비대가 있다. 유족이 현대산업개발 사측에 문제를 제기하기 시작하자, 현중 경비대들이 유족과 빈소 주변을 감시하기 시작한 것이다. 바로 이 장면이 현대산업개발 원청 자본이 노동자를, 노동자의 생명을 대하는 모습이다. 

 

기자회견에 참가한 유족들은 현대산업개발은 연락조차 없다고 호소했다. 유족들은 '현대라는 대기업 이름을 달고 어떻게 이런 일을 벌일 수 있느냐'고 되물었다. 

 

HDC현대산업개발 자본은 2022년 1월 광주 화정동 아이파크 신축 현장 붕괴사고 등 최근 5년간 18명의 노동자와 시민을 사망하게 만든 살인기업이다. 그런데도 작년에는 ‘한국의 경영대상’ ESG부문 대상을 받았다. 현대산업개발이 대체 사회에 어떤 기여를 했나? 자본이 자본에게 수여한 이 어처구니 없는 상은, 책임감도 죄책감도 없이 노동자를 죽인 것에 대한 치하인가?

 

기자회견에 참가한 노동자들과 활동가들, 그리고 유족은 현대산업개발과 아진건설에게 중대재해에 대한 책임과 재발 방지를 요구했다. 아울러 '중대재해 처벌법 폐지'가 공공연히 외쳐지는 대선판을 규탄하며 정부와 국회를 향해 '중대재해처벌법을 강화하고 노동자와 시민의 생명을 보호하라'고 촉구했다. 

 

중대재해없는세상만들기 울산운동본부는 기자회견을 마친 후 부산지방노동청에 HDC현대산업개발 법인과 정경구 사장, 아진건설 사장 등 5명을 중대재해처벌법과 산업안전보건법 위반으로 고발했다. 하지만 우리 모두는 알고 있다. 기자회견과 고발로 자본과 정부가 자행하는 살인을, 일터의 죽음을 막을 수 없다. 다단계 하청구조와 복잡다단한 생산의 그물망 속에서, 민주노조는 원청 자본의 책임을 요구하며 모든 노동자의 생명과 노동권을 지키기 위해 투쟁해야 한다. 현장과 거리에서 더 힘차게 투쟁하자. 이정제 노동자를 죽게 만든 자본을 호되게 처벌하고, 노동자의 단결 투쟁으로 죽음의 외주화를 끝장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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