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주노총은 민주당의 현장선대본이 아니다
노동자계급의 정치세력화는 침몰하고 있다. 4월 29일 민주노총 중앙집행위원회에는 이재명을 지지하자는 대선방침안이 제출되었고, 5월 15일과 5월 20일 중집에서도 마찬가지로 민주당을 지지하자는 주장과 진보정당 후보를 지지하자는 주장의 논쟁 끝에 대선방침 없이 대선을 치르기로 결정했다. 민주노총 중앙집행위원회에서 민주당을 지지하자는 주장이 거리낌 없이 나오는 상황이 말이나 되는가!
이미 민주당에 대한 투항이 줄을 잇고 있다. 5월 7일, 민주노총 전직 간부 200여명이 이재명 지지를 밝혔고, 5월 9일에는 진보당 김재연 후보가 사퇴 후 이재명 지지를 표명했다. 민주노총 양경수 집행부가 추진하던 민주당과의 정책협약은 비판 끝에 취소되었으나, 산별 가맹노조 단위에서는 민주당과의 정책협약이 줄을 잇고 있다.
이번 선거에서 이재명을 지지해야 한다는 민주노총 집행부의 논리는 결국 ‘내란을 끝내기 위해 압도적 정권교체가 필요하다’는 것이다. 그러나 윤여준, 이석연, 권오을, 염홍철, 권선택, 심지어 ‘홍준표와 함께한 사람들’, ‘박근혜 서포터즈’까지 강경보수 인사를 줄줄이 끌어들이며 오른쪽으로 돌진하는 ‘이재명 정부’가 내란세력을 청산할 수 있는가? 나아가, 윤석열 정부 자체가 어떻게 등장했는가? 압도적 지지와 함께 출범한 문재인 정부의 반노동 행보가 노동자 민중의 환멸을 낳았고, 윤석열은 바로 그 미조직 대중의 민주당에 대한 환멸을 등에 업고 출범하지 않았는가?
또 하나의 자본가 정당에 불과한 민주당에 대한 지지는 노동자 정치의 파산이자 계급투쟁의 무덤이다. 우리는 민주노총을 민주당의 ‘현장선대본’으로 만드는 모든 행위와 단호히 싸워야 한다.
‘이재명 정권’이 노동자에게 안길 것은 노동탄압 뿐이다
물론 민주노총의 민주당 지지가 처음은 아니다. 민주노총의 2010년 6·27 지방선거 방침은 민주당을 포함한 ‘반MB 단일후보 지지’였고, 2011년에는 민주노총의 ‘배타적 지지’로 성장한 민주노동당이 민주당계 정치세력과 함께 ‘통합진보당’을 창당했다. 2012년 총선에서도 민주노총의 선거방침은 민주당을 포함한 ‘반MB 단일후보 지지’였다. 민주노총의 이런 방침에 따라, 노동자계급은 민주당 정부의 노동탄압 주범들에게 투표해야 하는 신세로 내몰렸다. 당시 민주노총 위원장 김영훈은 지금도 민주당 노동본부장 신분으로 민주노총을 기웃거리며 이런저런 협약의 도구로 쓰이고 있다.
노동자 정치세력화의 추락과 함께, 민주당은 민주노총의 토대를 잠식했다. 노동자에 대한 국가와 자본의 공격을 민주노총의 이름으로 승인하는 사회적 합의주의 노선이 확대되었고, 계급투쟁이 아니라 민주당 의원실과의 공조로 문제를 해결하려는 협조주의 경향이 확대되었다.
이 과정 끝에 2024년 총선에서는 민주노총의 지지를 받는 진보당이 민주당과 함께 위성정당을 창당하고, 민주노총 전직 임원이 더불어민주연합 후보로 출마하는 사태까지 벌어졌다. 그런데도 민주노총은 위성정당 후보로 출마한 전직 간부들을 징계하고 진보당에 대한 지지를 철회하기는커녕, 총선 평가논의조차 일방적으로 종결했다.
2025년 대선, 이제 민주노총 위원장이 이재명 지지 안건을 직접 발의하는 데까지 나아갔다. 민주노총 양경수 집행부는 6월에는 민주당과 연대하고 7월에는 민주당 정부에 맞서 총파업을 하자고 하는가?
민주당은 자본가 정당이고, 자본가 정당 지지는 민주노총의 무장해제 선언이다. “민생의 핵심은 경제 살리기고, 그 중심에는 기업이 있다” - 5월 8일, 경총 등 경제5단체장과 만난 이재명의 발언이다. 공공재정을 반도체 자본의 이윤으로 바꾸는 반도체특별법 제정에 나선 민주당, ‘자본규제 대폭 완화’와 ‘법인세 감세’를 내건 민주당은 자본가들의 도구일뿐이다. 이재명 정권이 노동자계급에게 안길 것은 더 낮은 실질임금과 더 많은 노동시간, 더 쉬운 해고뿐이다.
민주당과의 단절이 노동자 정치세력화의 시작이다
민주당에 대한 투항이 줄을 잇는 지금, 사회주의를향한전진은 사회대전환연대회의 권영국 후보에게 투표하자고 제안한다. 권영국 후보와 사회대전환연대회의가 민주당과 독립적인 정치세력화를 지향한다는 점, 제반 노동권 확대와 포괄적 차별금지법 제정 등 권영국 후보가 제시한 공약이 큰 틀에서 진보적이라는 점, 고공농성 등 투쟁현장을 찾는 권영국 후보의 행보가 노동자계급과 연대하겠다는 의지를 드러낸다는 점이 그 이유다.
민주당이 민주노총을 잠식하는 지금, 민주당과 독립적인 정치세력화 지향을 드러내는 권영국 후보에게 투표하자. 자본가 정당과 단절하자!
권영국 후보의 한계
권영국 후보의 의미와 함께, 우리는 권영국 후보의 한계 또한 분명히 한다.
첫째, 권영국 후보가 제시하는 공약 전반은 자본주의 안에서의 개혁, 그것도 불충분한 개혁에 머무르고 있으며 심화하는 자본주의 위기에 대한 인식 또한 결여하고 있다. 그 결과, 최저 출생률과 최대 자살률이 상징하는 삶의 위기 앞에서도 자본주의 그 자체에 맞선 투쟁이 아니라 증세와 제도개혁을 통한 분배 확대를 요구하고 있을 뿐이다. 이런 요구로는 근본적 변화는커녕 최소한의 개선조차 불가능하다.
“불평등을 넘어 함께 사는 경제구조”라는 이름이 붙은 경제공약은 △지역공공은행 설립 △지역공공은행의 경영악화 중소기업에 대한 지분투자 △노동자의 부도위기 기업인수 지원 등을 명시하고 있다. 기간산업과 재벌을 국유화하고, 자본가의 경영권을 박탈하며, 노동자 민중이 산업을 통제하자는 투쟁 선동 대신 철저히 법체계 안의 주변적 조치를 나열하고 있을 뿐이다.
권영국 후보가 제시하는 ‘전국민 일자리보장제’ 역시 문제적이다. ‘시장에서 만들어지지는 않지만 사회적으로 필요한 일자리 창출’을 지향하는 권영국 후보의 일자리보장제는 자본주의적 생산과 대자본이라는 몸통은 그대로 두고, 대자본이 장악한 영역 밖에서 공공근로를 확대하자는 주장에 머물고 있을 뿐이다. 이런 주장으로는 세상을 바꿀 수 없다.
심지어 권영국 후보의 국방·외교 공약은 노골적인 민족주의와 반생태적 내용으로 채워져있다는 점에서 공약 전체를 폐기하는 것이 옳을 정도다. 특히 '러시아 북극항로 개척'으로 조선·물류산업을 확대하겠다는 공약은, 북극항로 자체가 기후위기로 인한 해빙으로 열렸다는 점에서 기후재난을 이윤축적의 기회로 삼겠다는 반생태적 발상이다. 나아가 북극항로는 미·중·러 열강이 격돌하는 지정학적 투쟁 공간이라는 점에서, 제국주의 열강투쟁 격화라는 시대인식 자체를 결여하고 있다. "석유, 가스, 희토류 등 러시아 극동자원개발에 참여"한다는 것도 해외자원개발에 적극 나서겠다는 반생태적 공약이다. 이것도 모자라 박근혜 정부의 ‘유라시아 이니셔티브’와 문재인 정부의 ‘한반도 신경제구상’을 계승하겠다는 공약은 황당하기까지 하다. 양자 모두 자본과 국가의 동북아 확장주의를 집약한다. ‘우리도 열강과 어깨를 나란히 하자’는 국가와 자본의 열망을 계승한다니, 이게 웬말인가?
둘째, 권영국 후보가 속한 사회대전환연대회의 내 일부 세력은 과거 민주당과의 연대를 정당화한 전력을 갖고 있으며, 이들은 노동자 계급운동을 혁신할 주체가 아니라 혁신의 대상일뿐이다. 특히 노동자의 희생을 통한 기업살리기에 민주노총을 동원하려는 시도였던 ‘코로나19 위기극복을 위한 노사정 합의안’을 문재인 정부와 손잡고 민주노총에 관철하고자 했던 세력이 버젓이 사회대전환연대회의에 포함된 상황은, 투쟁하는 노동자 민중의 실망을 낳을 뿐이다.
민주당으로의 투항이 줄을 잇는 시기, 권영국 후보가 표명하는 민주당과의 단절은 분명 의미가 있다. 그러나 민주당으로부터의 독립성이 노동자계급 정치세력화의 충분조건이 될 수는 없다.
자본주의에 맞선 노동자계급의 정치세력화, 그 새로운 순환을 시작하자
노동자계급의 정치세력화를 다시 시작할 때다. 노동자계급의 정치적 독립성을 회복하고, 계급정치를 재건하자. 의회주의·개량주의·몰계급적 정치세력화의 폐허를 넘어, 자본주의와 싸우는 노동자계급 투쟁정당 건설로 나아가자.
대선 시기, 사회주의를향한전진은 노동자계급 공동전선으로 대중적 정치투쟁을 확대하고자 분투하고 있다. 물론 우리는, 공동투쟁을 확대하려는 노력 그 자체로 노동자계급의 정치세력화를 달성할 수 없다는 점을 잘 알고 있다. 사회주의를향한전진은 노동자계급 속에서, 노동자계급 자신의 투쟁을 통해, 자본주의 그 자체와 싸우는 노동자계급정당의 건설로 매진할 것임을 밝힌다. 위기의 시대, 전쟁의 시대, 그리고 혁명의 시대, 다시 노동자계급 정치세력화의 깃발을 들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