황유미를 기억해 주세요. 재벌의 이윤을 위해 더 이상 죽을 수 없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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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의 투쟁

황유미를 기억해 주세요. 재벌의 이윤을 위해 더 이상 죽을 수 없습니다!

- 3월 6일 황유미 18주기 추모, 반도체특별법 폐기 결의대회 발언문

사진: 전병철

 

[편집자 주]
3월 6일, 고 황유미 18주기 추모, 반도체특별법 폐기 결의대회가 열렸습니다. 결의대회에서 황유미를 기억하며 노동자의 목숨보다 이윤을 우선하는 기업, 반도체특별법을 제정하려는 기업과 정부를 비판한 이종란 반올림 상임활동가의 발언문을 옮깁니다. 

 

긴 겨울이 끝나고, 봄을 시샘하는 꽃샘추위가 닥치는 3월의 첫 주에 반올림은 한 해를 황유미 추모로부터 다짐합니다. 인쇄된 어느 달력에도 황유미 님의 기일이 적혀 있지 않지만, 반올림의 추모 달력에는 3월 6일 황유미 님의 기일이 있습니다. 이날을 우리는 반도체 산재사망노동자 추모의 날로 기려왔습니다. 그렇게 18년 동안 해마다 황유미 님과 또 다른 황유미들을 추모해 왔습니다.

 

얼마나 많은 노동자가 반도체 공장에서 일하다 사망했는지 정확히 알 수는 없습니다. 하지만 우리가 알고 있는 반도체 산재사망노동자 114명의 이름과 약력이 담긴 영정 피켓을 오늘 준비했습니다. 이 영정들을 들고 오늘 추모제 끝에 행진을 하고자 합니다.

 

500만 원으로 입막음하려 했던 삼성

 

85년생 유미 씨가 살아 계셨더라면 마흔 살이 되었겠네요. 황유미 님은 2007년 3월 6일 23살의 나이에 멈췄습니다. 유미 씨는 2005년 속초상업고등학교 3학년 때 남들이 부러워하는 삼성반도체 회사에 취업했습니다. 부푼 꿈을 안고 입사한 유미 씨. 유미 씨의 다이어리에는 첫 월급 타면 엄마, 아빠, 할머니에게 속옷을 사드리고 동생 시계와 신발을 선물하겠단 너무도 선한 계획이 적혀 있었습니다.

 

유미 씨 다이어리에는 조금 착잡한 내용도 있습니다. 반도체 라인에서 실수를 해서 반성문을 연습한 흔적, 엔지니어에게 혼나서 펑펑 울었다는 일기. 그중 유독 시선이 머무는 내용도 있습니다.

 

“엄마가 대학 가라고 했는데 끝까지 우겨서, 회사에 왔는데 지금 퇴사하면 엄마한테 미안해서 퇴사를 못하겠다. 슬픈 책이라도 읽고서 펑펑 울고 싶다. 나도 친구들처럼 대학에 가고 싶다.”라고 했습니다.

 

그런 유미 씨는 입사 1년 8개월 만에 몸에 이상이 찾아왔습니다. 속이 메슥거리고, 먹으면 토했고, 어지러운 증상이 나타났습니다. 백혈병이 찾아왔습니다. 유미 씨와 함께 2인 1조로 일하던 동료도 똑같은 급성 백혈병이 발병해 한 달 만에 숨졌습니다. 유미 씨는 조혈모세포 이식 수술을 했지만 백혈병이 재발해 2007년 3월 6일 병원에 다녀오는 길에 아버지가 몰던 택시 안에서 숨을 거두고 말았습니다.

 

산재를 의심했던 아버지는 2인 1조 작업자 둘 다 백혈병이 걸렸으니 산재라 확신했습니다. 화학물질로 동그란 반도체 기판을 세척하는 작업을 했다는 딸의 이야기를 듣고 화학물질에 뭐가 문제가 있다고 의심을 했습니다. 그리고 삼성에게 산재처리를 요구했지만 돌아오는 것은 단돈 500만 원으로 입막음하려는 것뿐이었습니다.

 

 

서로가 서로의 증인이 되어

 

그러나 유미 씨의 억울한 죽음의 진상을 밝히기 위해 10년이 넘는 투쟁했습니다. 그 투쟁이 계기가 되어 우리는 그동안 드러나지 않았던, 산재를 개인의 불행으로 여기며 살아왔던 제2, 제3의 황유미를 무수히 만나 왔습니다. 인구 10만 명당 고작 2~3명밖에 걸리지 않는다는 매우 드문 혈액암인 백혈병이 삼성 기흥공장에서만 무더기로 나왔습니다.

 

“반도체 공장에선 종이쪽지 하나도 나오지 않는다, 삼성이 모든 정보를 통제하기에 아무것도 증명하지 못할 것이다. 결코 이길 수 없는 싸움이다.”라고 모든 이들이 이야기할 때 피해자들은 서로를 도왔습니다. 서로가 서로의 증인이 되어 주었습니다.

 

유미 씨와 같은 디피전 공정에서 일한 엔지니어는 법정 증인이 되어 주었습니다. 엔지니어는 말했습니다. “나는 알고 있으니까요. 유미 씨 같은 여성 오퍼레이터들이 그 독한 가스들을 마셔가며 일했던 것을 나는 알고 있으니까 내가 이야기할게요.” 사실 증인이 되어 준 그 분도 베게너씨 육아종이라는 매우 드문 희귀질환 피해자였습니다. 그와 함께 일한 남택신 대리는 흑색종으로 사망했고, 주교철 부장은 백혈병으로 사망했습니다.

 

3라인에서 하도 사람이 여럿 죽으니 노동자들은 3라인을 ‘사고라인’이라 부르기도 했습니다. 지금까지도 그 3라인에서는 피해자가 계속 나오고 있습니다. 작년 가을 난소암으로 이명순 님이 사망했고, 림프종, 뇌종양으로 투병중인 분도 계십니다. 얼마 전 산재신청을 한 3라인 출신 여성 노동자는 본인도 암이고 자녀 또한 건강손상 장애를 입었습니다. 함께 일한 여성 동료 4명이나 같은 장애 아이를 가졌습니다. 지금도 여전히 노동자들은 가스냄새를 맡으며 일을 하고 있습니다.

 

얼마나 안전해졌을까요?

 

자동화되었다는 반도체 화성사업장은 안전해졌을까요? 아닙니다. 그곳에서 일한 신정범 님은 2023년 백혈병으로 세상을 떠났습니다. 수어통역사가 꿈이었던 정범 씨는 죽고 나서야 법정에서 산재가 인정되었습니다.

 

반도체특별법에서 거론되었던 연구개발 노동자는 안전할까요? 아닙니다. 장시간 고강도 노동을 하면서 유해화학물질에 노출되어 일한 연구개발노동자들도 피해가 많습니다. 고 황선민, 고 최진경 님 등 반도체에 사용되는 PR 등 화학소재를 개발하는 일을 하다 백혈병과 유방암으로 젊은 생을 마감했습니다. 초미세 계량을 위해 심지어 국소배기장치를 끄고 작업을 했다고 했습니다.

 

최진경 님은 암 초기에 산재신청을 했는데 암말기가 되어도 산재조사가 수년째 끝나지 않았습니다. 산재처리 지연 문제가 심각하다며 국회에서 증언을 하기로 약속한 당일 응급실에 실려가 다시는 돌아오지 못했습니다. 옆에서 조금 지켜보는 저도 이렇게 억울한데 한평생 같이 동고동락한 가족들의 삶은 어떻게 되는 것일까요? 가족들의 시간은 사랑하는 이의 죽음 뒤로 멈춰버렸습니다.

 

단지 오래된 기흥공장만의 문제일까요? 아닙니다. 반도체 조립라인인 온양공장에서도 피해자가 많습니다. 박지연 님은 백혈병으로 이윤정 님은 뇌종양으로 세상을 떠났습니다.

 

삼성만의 문제일까요? 그것도 아닙니다. 물론 삼성에서 가장 많은 피해자가 발생한 것은 사실이지만, 후공정을 담당하는 ‘엠코’라는 회사에서도 노조 노안부장님이 유방암으로 사망했고, 매그니칩 반도체에서도 김진기 님이 백혈병으로 사망하는 등 한두 명이 아닙니다.

 

응원봉에 들어가는 ‘빛반도체’라는 LED 칩을 만드는 서울반도체의 이가영 님도 림프종으로 스물여덟 짧은 생을 마감했습니다. 대학에 붙고도 돈이 없어 공장에 갔던 여성입니다. 가족들은 가영님을 보내고 껍데기 같은 삶을 살고 있습니다.

 

2024년 작년에도 다섯 분의 사망제보가 들어왔습니다. 작은 반도체 소재업체에서 불산을 취급하던 노동자는 불산이 몸에 튄 후 보름 만에 돌연사하기도 했습니다. 한 집안에 자식 3명이 모두 반도체공장에 입사했는데 큰 딸은 30대 초반에 위암으로 막내는 2023년에 백혈병으로 세상을 떠난 일도 있었습니다.

 

아직도 밝혀내야 할, 끝내 밝혀져야 할 억울한 죽음이 너무도 많습니다. 하청, 협력업체가 포함되지 않은 2019년 집단역학조사 결과에서도 삼성, SK하이닉스 등 6개 반도체 회사에서 10년 동안 암에 걸린 노동자의 숫자는 3,442명이었고 이 중 사망자 1,178명입니다.

 

사진: 전병철

 

더 이상 죽을 수는 없습니다

 

반도체 노동자들의 암과 질병 피해가 크다는 것이 밝혀졌지만, 후속대책은 전무합니다. 이런 비극에 대해 정치권과 정부는 모른 척합니다. 반도체 경쟁력 강화를 위한 반도체 특별법이 꼭 필요하다고 홍보하고 있는데, 그 안에 노동자에 대한 안전대책은 단 한 줄도 없습니다.

 

더 이상 죽을 수는 없습니다. 우리사회에 반도체가 꼭 필요하다면 노동자들이 죽지 않고 안전하고 건강하게 일하는 환경을 만들어야 합니다. 탐욕스런 재벌 기업에게 온갖 특혜를 주는 방식으로, 모든 권한을 주는 방식으로 반도체를 생산하는 것에 반대할 수밖에 없습니다.

 

역사에서 보면 늘 죽은 자가 산자를 구해왔다고 합니다. 오늘 우리는 방진복을 입고 억울하게 돌아가신 114명의 영정 피켓을 앞에 세우고 행진을 할 것입니다. 오늘 우리는 이분들과 함께 외칠 것입니다. 더 이상 죽이지 말라고, 노동자의 생명과 건강을 짓밟고 만드는 반도체특별법을 막아야 한다고 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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