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보당의 사과가 남기는 질문 - 민주당 혀끝만 바라보다 무기력해지는 비극을 언제까지 반복해야 할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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온라인신문

진보당의 사과가 남기는 질문 - 민주당 혀끝만 바라보다 무기력해지는 비극을 언제까지 반복해야 할까?

  • 이용덕
  • 등록 2025.03.04 16:06
  • 조회수 539

2023년 6월, 진보당은 3살 아동의 외국인보호소 구금을 비판하는 성명서를 발표했다. 이 3살 아동은 창문 없는 지하 외국인보호소에서 식사와 아동용품도 제공받지 못하고 구금됐다가 강제 출국당했다. 2023년 3월, 헌법재판소는 출입국관리법 63조 1항이 '구금기간'에 대한 제한이 없고 '사법적 심사'가 없다는 이유로 헌법불합치 결정을 내렸다. 진보당은 이 헌법재판소 결정을 인용하며 법무부를 비판했다.

 

지난 2월 28일, 진보당 윤종오 원내대표는 출입국관리법 개정안에 대한 진보당의 찬성 표결을 사과했다. 해당 개정안이 "헌법재판소의 결정 취지를 부정하고 있다는 비판을 미리 인지하지 못한 채 표결에 임했다"면서 "이주구금제도 개선에 애써온 많은 분들께 큰 실망을 드렸다"라고 했다. 개정안은 2월 27일 국회 본회의에서 재석 의원 274명 중 268명의 찬성으로 통과됐다. 국민의힘, 민주당만이 아니라 진보당 의원들도 찬성표를 던졌다. 2년 전과 후, 달라진 진보당의 태도를 어떻게 이해해야 할까?

 

 

먼저 누구의 목소리를 들어야 했는가?

 

개정된 출입국관리법은 구금기간을 최대 9개월로 하되, 예외적으로 20개월로 연장할 수 있고, '재보호'(재구금)할 수 있다는 조항을 포함했다. 무기한 구금의 여지를 남겨뒀다. 영장 없는 구금도 바뀌지 않았다. 구금과 구금연장 결정을 법원이 아니라 법무부 내부 '외국인보호위원회'에서 결정하도록 했기 때문이다.

 

진보당은 변명하지 않고 빠르게 사과했다. 바람직한 일이다. 하지만, 개정안의 문제를 미리 인지하지 못했다는 설명은 이해하기 어렵다. 진보당은 바로 2년 전 비판 성명서를 냈고, 그동안 수많은 이주인권단체가 이주민 인권을 우선하라고 싸워왔기 때문이다. 퇴진 광장에서도 이주인권 단체들은 출입국관리법의 올바른 개정을 계속 외쳐왔다.

 

진보당의 민족주의 노선이 이 문제에 대한 둔감한 인식에 영향을 미쳤을 수 있다. 또는, 애초 법무부 개정안보다는 나은 안이라 생각하고 별 문제의식 없이 찬성표를 던졌을 수 있다. 애초 법무부는 외국인보호소 구금기간을 원칙적으로 18개월, 예외적으로 36개월로 하는 안을 냈다. 이 안은 개악된 측면도 많아 법무부 자신도 고집할 수 없었다. 이주인권단체들은 구금기간이 최대 100일 이내여야 하고, 구금 개시와 연장에 대한 법원의 통제가 이루어져야 한다고 주장했다. 애초 법무부 안은 말할 것도 없고, 이번에 통과된 개정안도 이주노동자의 인권과는 거리가 아주 멀다.

 

만약 진보당이 노동자계급의 이해를 진정으로 대변하는 투쟁정당이라면, 먼저 투쟁하는 당사자들과 이주노동자들의 목소리를 들으려 했을 것이다. 그들과 함께 국회 안팎에서 이 기만적인 개정안의 본질을 폭로하고 크고 작은 투쟁을 만들어 나갔을 것이다. 하지만 진보당은 그렇게 하는 대신 부르주아 법률에 순응했다. 민주당만 바라보는 태도도 한몫했다. 민주당이 반대하지 않았기 때문에 다른 목소리를 낼 필요를 못 느꼈을 것이다.

 

말로는 투쟁을 외치고 광장을 강조하지만, 결정적인 순간에는 투쟁과 광장을 비껴가는 선거주의 정당의 특성은 진보당에서도 여실히 드러난다. 선거주의 정당은 거리와 현장의 투쟁을 조직하는 어려운 방법보다는, 성명서로 때우는 손쉬운 방법을 선택하며 의석수 늘리기에 골몰한다.

 

건널 수 없는 강

 

출입국관리법 개정 표결을 두고 드러난 진보당의 민주당 추종  행보는 이번만이 아니다. 2023년 10월 6일, 진보당 강성희 의원은 가덕도신공항 조기 개항을 위한 건설 전담 공단 설립근거를 담은 '가덕도 신공항 건설공단법'에 찬성표를 던졌다. '생태계 파괴와 신공항 건설 중단'을 기조와 요구로 담은 923 기후정의행진이 끝난 지 2주도 채 되지 않았음에도, 진보당이 923 기후정의행진 조직위원회 참여 단체 중 하나였음에도 불구하고 벌어진 일이었다.

 

초유의 사태에 강성희 의원은 개인 SNS에 "법안을 깊이있게 들여다보지 못한 채 찬성 표결했다. 진보당은 가덕도신공항 반대 입장이 분명하다"는 사과문을 올렸고, 진보당 기후특위는 '신공항 반대'가 진보당의 당론'이라는 해명을 남겼다.

 

 

이런 흐름은 분명한 맥락이 있다. 진보당은 2024년 총선에서 민주당과 함께 '위성정당'을 창당하며 민주당과의 노골적인 연합에 나섰다. 최근에도 진보당은 더불어민주당, 조국혁신당과 함께 '내란종식 민주헌정수호 새로운 대한민국 원탁회의'를 꾸리면서 민주당의 정치에 종속되는 모습을 보이고 있다. 반도체특별법을 통과시키려 했고, 부자 감세를 추진하면서 자본가들과 부자들의 이해를 앞세우고 있는 민주당과 날카로운 대립각을 세우지 않는다.

 

또 다른 자본가정당인 민주당과 연합하면서 노동자들의 이해도 대변할 수 있다고 말하는 것은 그야말로 위선이다. 노동자운동의 독립성을 파괴하는 정치행위와 노동자운동을 대변하는 정치행위 사이에는, 결코 건널 수 없는 강이 흐르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이 전술을 계속 내세운다면, 그것은 '정치적 사기'일 뿐이다.

 

민주당은 '선거 득표에 도움이 되냐, 되지 않느냐'를 중심으로 노동자민중의 절박한 요구를 계산할 텐데, 득표에 큰 도움이 되지 않을 성소수자들과 이주노동자들의 요구에 대한 진정성은 더욱더 기대할 수 없다. 최근 민주당 인권위원장 출신 국회의원 주철현은 "민주당은 차별금지법을 추진한 적이 없고, 추진하고 있지도 않다"라고 명확히 밝혔다.

 

노동자계급의 독립성을 지켜내지 못하고 민주당에 끌려다니고 그들의 도구로 전락한다면 토사구팽 신세가 될 뿐이다. 민주당 혀끝만 바라보다 그 혀가 노동자의 말을 다 삼켜버리면, 무기력해지는 비극을 언제까지 반복해야 할까?

 

2.19. 야5당 원탁회의 출범 사진: 한겨레

 

출입국관리법의 또 다른 문제

 

최근 극우들은 중국인에 대한 혐오와 차별을 노골적으로 조장하고 있다. 이주민, 이주노동자에 대한 적대 의식을 퍼뜨리고 있다. 그들은 손쉽게 공격할 수 있는 누군가를 고통과 불안의 원흉으로 지목해 없애버림으로써 안도감을 얻으려 한다. 전쟁, 기근, 패스트 같은 전염병이 유발한 고통과 불안에서 벗어나기 위해 마녀사냥에 빠져들었던 유럽인들처럼 말이다.

 

그들은 이 문제에서도 출입국관리법을 활용한다. 출입국관리법 17조 ②항은 이렇다. "대한민국에 체류하는 외국인은 이 법 또는 다른 법률에서 정하는 경우를 제외하고는 정치활동을 하여서는 아니 된다."

 

그들의 주장은 이렇다. "외국인은 정치활동을 할 수 없는데, 탄핵 집회에는 중국인들이 많이 보인다. 이 중국인들을 추방해야 한다." 이들은 사실관계조차 왜곡하고 있다. 그런데 법 자체가 수많은 외국인의 기본권을 억누른다. 외국인(이주민)의 정치활동을 금지하는 이 법 때문에 이주노동자들은 집회, 시위 참여는 물론이고 노동조합 활동까지 봉쇄당한다.

 

실제로 수많은 이주노동자는 이번 윤석열 퇴진투쟁 국면에서 ‘외국인 정치활동 금지’ 조항 때문에 거리로 나서지 못했다. 거리로 나서 윤석열 퇴진과 이주노동자의 노동권 실현을 외치고 싶어도 법을 위반하게 될까봐, 그래서 외국인보호소에 갇힌 후 강제로 쫓겨날까봐 나오지 못했다. 유엔인종차별철폐위원회조차 여러 차례 이러한 문제를 지적했지만, 한국 정부의 태도는 바뀌지 않았다.

 

다른 전망

 

만약 노동자들이 이런 일에 계속 침묵하면, 내국인과 외국인을 가르고, 정주노동자와 이주노동자를 가르고 차별하는 일에 침묵한다면 어떤 일이 벌어질까? 사업장 이동의 자유가 막혀 있는 고용허가제 아래에서 계속 불법 노동자로 내몰리고, 그래서 외국인보호소에 영장도 없이 갇혔다가 쫓겨나고, 그런데 외국인 정치활동 금지 때문에, 저항에 나서기 어려운 열악한 현실이 계속되면 어떤 일이 벌어질까? '외부의 적'을 만들어 내고, 그들을 처단함으로써 살길을 찾으려는 사회의 퇴행적 정서가 기승을 부릴 것이다.

 

노동자를 갈라놓는 모든 경계선을 넘어 노동자의 이름으로 단결해야만 이 체제가 강요하는 온갖 불안과 고통에서 우리를 지킬 수 있다. 그 길을 열기 위해선 노동자의 정치적 독립성을 상실시키고 자본가 정부와 뒤섞이게 만드는 야권연대 전망과 민족주의 전망이 아니라, 노동자계급의 독립적 투쟁 전망, 노동자계급의 국제적 단결을 지향하는 국제주의 전망을 움켜쥐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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