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진: 서울신문
격렬하고 끔찍한 공격성
지난 19일 극우 대중이 서부지방법원을 습격하고 폭동을 일으켰다. 그들은 아주 격렬하고 끔찍한 공격성을 보여줬다. 경찰을 구타하고 건물을 파괴했으며 서버까지 탈취했다. 이번 습격은 내란을 둘러싼 계급투쟁의 연장선에 있다. 윤석열과 국민의힘은 끊임없이 극우 대중의 행동을 조직했다. 윤석열은 한남동 관저 앞에 모인 대중을 ‘애국시민’이라 부르며 “여러분과 함께 끝까지 싸우겠다”라고 선동했다. 국민의힘은 줄기차게 쿠데타를 옹호하고 감싸 왔으며 전 최고위원 김재원은 "아스팔트 십자군들의 창대한 거병“이라고 칭송했다.
이번 폭동은 우발적으로 일어난 게 아니다. 극우세력은 물리적으로도 상당한 힘을 보여줄 수 있는 수준으로 성장했다. 극우세력 내에서 물리력을 행사하려는 집단이 영향력을 넓혀가고 있다. 북벌의병단을 이끌고 있는 극우유투버 유동규는 최근 북벌의병단이 1,300여 명에서 5,000여 명으로 늘었다면서 만 명만 되면 아주 큰 물리전을 만들 수 있다고 호언장담하기도 했다.
2030 남성들이 전면에 서다
폭동의 중심에는 2030 남성들이 있다. 최근 극우 집회에도 젊은 남성들이 많이 참가했고, 그들이 이번 습격도 주도했다.
이들은 왜 극우 정치에 매료되고 있는가? 쇠퇴하는 한국 자본주의 체제에서 길을 잃어버렸기 때문이다. 잘못된 대안에 사로잡혀 있기 때문이다. 이명박 정부는 7-4-7 성장 공약을 내걸었지만, 그 이후 어떤 자본가 정부도 그런 공약은 내걸 수 없을 정도로 자본주의 ‘성장 엔진’은 꺼졌다. 높아지는 무역 장벽과 이윤율 하락 속에서 자본가들은 노동자에 대한 강력한 공격을 끊임없이 시도하고 있다. 안정적 일자리의 지속적인 축소, 자영업자의 몰락 등이 초래하는 거대한 불안감은 이미 만성화되어 있다.
다시 말해 쇠퇴하는 자본주의는 실업과 불평등, 생활의 불안정성, 미래에 대한 두려움을 계속 낳고 있고 바로 이것이 극우 준동의 뿌리다. 이런 상황 앞에 놓인 젊은이들은 안정적인 일자리를 찾지 못하고 절대적·상대적 빈곤에 시달리며 대안을 찾고 있다. 절망적인 상황에 놓여 있는 수많은 노인도 마찬가지다.
극우세력은 이런 정치적 흐름을 적극적으로 활용하고 있다. 그들은 희생양을 만들며, 그들을 공격해야 가난에 빠져 있고 불안정에 허덕이는 삶을 바꿀 수 있다고 주장한다. 그들이 불러온 희생양은 여성, 이주노동자, 성소수자, 장애인들이다.
나아가 허울뿐인 공정과 복지를 얘기하는 민주당도 공격해서 자신의 지지기반을 넓히려 한다. 자유주의 세력일 뿐인 민주당을 ‘빨갱이들’, ‘사회주의’로 색칠하고 공격하는 일도 단골 전략이다. 노동자들의 요구를 실현하기 위해 싸울 수 있는 진정한 노동자정당이 없는 정치지형, 오른쪽으로 완전히 기울어져 있는 한국의 정치지형 아래서 손쉽게 먹힐 수 있는 전략이다.
예고편
지금 이들에게 중요한 것은 윤석열의 친위쿠데타가 합법이냐, 불법이냐가 아니다. 부정선거가 실제로 이루어졌느냐, 아니냐도 아니다. 그들의 심리는 윤석열 구속과 탄핵에 절대 승복하지 않겠다는 것이고, 자신들의 요구를 대변하는 정부를 어떻게든 만들겠다는 것이다. 이러한 심리에 기반해, 불복종할 수 있는 온갖 명분을 끌어모으고 있다.
리얼미터가 지난 16~17일 이틀간 진행한 정당 지지도 조사에 따르면 국민의힘은 46.5%, 민주당은 39%로 집계됐다. '정권 연장론'이 48.6%, '정권 교체론'이 46.2%로 나타났다. 보수층 응답자가 많다는 것을 감안하더라도 정세가 얼마나 요동치고 있는지를 보여주는 결과다.
이런 보수의 결집에 힘입어 극우세력은 격렬한 전투적 대중운동으로 나아갈 수 있다. 서부지법 습격은 그 예고편에 불과하다. 이 극우 대중운동은, 더 강력한 힘으로 제압되지 않는다면, 노동자운동을 비롯해 여성운동, 장애인운동, 성소수자운동, 이주노동자운동 등 모든 급진적 대중운동을 해체하기 위해 더욱 날뛸 것이다. 이들의 직접적인 대중행동은 노동자 조직들에 대한 전면적인 공격으로까지 이어질 수 있다.
극우세력이 의회 안과 바깥에서 거리낌 없이 행동하는 상황은 극우 정부의 등장으로 귀결될 수 있다. 그런 일이 몇 달 뒤에 일어날 수도 있지만, 몇 년 뒤에 일어날 수도 있다. 그렇게 극우 정부가 등장하게 되면 무슨 일이 벌어질까? 극우 정부의 공격은 여성, 장애인, 성소수자, 이주노동자들에게도 끔찍한 일들을 만들어내겠지만, 노동자들에게도 재앙을 만들어 낼 것이다. 한마디로 말해서, 민주노조도 파업도 불가능한 세상, 따라서 임금 단체협약 등 1987년 이후 획득해 온 모든 경제적 성과를 상실하는 세상이 올 수도 있다.
국가기구에 맡기면 해결될 수 있는가?
그렇다면 어떻게 막을 수 있겠는가? 국가기구에 맡기면 해결될 수 있는가? 그동안 경찰, 검찰, 법원 등 국가기구는 ‘법’의 이름으로 노동자투쟁을 잔인하게 진압해 왔다. 손해배상·가압류, 영업비밀 수호 등에서 볼 수 있듯 법은 자본가계급의 이해를 철저하게 옹호한다.
지금 그들은 극우들의 습격이 자신들이 계속 외쳐왔던 부르주아 민주주의 질서, 형식마저 파괴하자 엄중 처리 방침을 내세우고 있다. 하지만, 그들이 극우세력과 정면 대결할 수 있을 것이라는 기대는 아주 위험한 환상일 뿐이다.
검찰(공수처)과 경찰은 윤석열 체포를 방해한 국민의힘 국회의원들을 털끝만큼도 건드리지 않았으며, 윤석열 체포도 1차 시도 때는 쇼만 하고 극우 결집의 기회를 주다가 체포를 촉구하는 노동자민중의 압력에 밀려 뒤늦게 집행했다.
오히려 이들은 이번 기회를 활용해, 노동자운동과 민중운동을 더 강하게 탄압할 것이다. 똑같이 ‘법’의 이름으로 노동자들의 손발을 묶을 것이다. 우리는 극우 폭동에 대한 강경 대응을 빙자해 노동자민중을 공격하려는 그 어떤 시도에 대해서도 묵과하지 말아야 한다.
노동자민중에게는 다른 길이 있다. 극우세력을 제압할 수 있는 압도적 다수의 힘이 있다. 이미 노동자민중은 그런 역량을 분명히 보여줬다. 수백만이 윤석열 탄핵과 구속을 위해 거리로 나왔고 남태령, 한강진에서 중요한 투쟁을 해냈다.
하지만 그것으론 부족하다는 것 또한 분명히 드러났다. 극우들 역시 거리로 나섰고 과감해졌다. 광장의 힘이 멈춘다면, 헌법재판소의 탄핵만 지켜보고 있는다면, 불붙어 오르고 있는 저들의 기세를 꺾을 수 없다. 역으로 노동자들이 저들보다 더 과감하게 행동하고, 총파업을 비롯한 집단적 힘을 발휘하면서 거리로 쏟아져 나온다면 상황은 다시 바뀐다. 100만이 넘는 민주노총 조합원의 5분의 1만이라도 적극적으로 투쟁에 나선다면, 거기에 수많은 미조직 노동자, 2030 청년들의 에너지만 결합해도 저들의 물리력은 충분히 넘어설 수 있다.
민주당에 표를 던지면 극우세력은 뿌리가 뽑힐 수 있는가?
윤석열 체포 이후 민주당 이재명은 ”안타까운 일, 이제 민생과 경제에 집중해야 할 때“라고 했다. 민생과 경제가 중요하지 않아서가 아니라, 마치 극우의 준동이 끝난 상황인 것처럼 인식하는 너무나 한가로운 얘기였다.
수많은 노동자와 가난한 민중이 진정한 변화를 희망할 때, 민주당은 온건을 얘기한다. 여야정협의체를 비롯해 국민의힘과의 공존을 얘기한다. 하지만 가난과 실업, 전쟁 위협에 맞서는 투쟁, 공공성 확대와 복지를 위한 투쟁, 여성, 성소수자, 장애인, 이주노동자의 권리를 위한 투쟁 필요성은 더욱 절실해지고 있다. 남성 노동자들과 여성 노동자들을 단결시키고, 비정규직 정규직화, 비정규직 철폐, 노동시간 단축 등 젊은이들에게 안정적인 일자리를 마련하기 위한 투쟁의 필요성은 더욱더 긴급해지고 있다. 이 모든 것은 자본가들의 당인 민주당에 의지해서는 결코 온전히 획득할 수 없다. 온건과 공조로는 결코 이뤄질 수 없다.
반동적인 극우세력과 맞서기 위해서라도, 노동자 민중의 요구를 실현하기 위해서라도, 자유주의 정치세력을 지지하는 게 아니라 그들과 철저하게 단절하고 독립적인 노동자운동을 조직해야 한다.
이재명의 한가로운 얘기보다 몇백 배 더 위험한 것은, 지금의 상황을 안일하게 바라보면서, “민주노총이 길을 열었다” 자기만족에 머무르면서 노동자계급에게 요구되는 역사적 역할을 포기하는 것이다.
그 어느 때보다 조직된 노동자들의 결단과 분투가 필요한 때다. 극우세력을 분쇄하고 노동자민중의 요구를 실현하기 위한 전면적인 투쟁과 총파업을 조직해야 한다. 더 큰 힘과 힘이 격돌할 수밖에 없는 결정적 국면이 다가는 흐름 속에서, 총파업 조직화는 절체절명의 과제다.
많은 사람이 이번 습격을 2021년 1월 6일 미국 트럼프 지지자들과 극우 시위대의 국회의사당 습격과 비교하곤 한다. 세계는 경악했다. 트럼프가 폭력과 파괴를 부추겨 미국 민주주의를 훼손했다고 했다. 하지만 그 트럼프가 다시 집권했다. 민주당이 노동자민중의 요구를 배신하면서 극우세력에게 다시 길을 열어줬기 때문이다. 노동자계급의 정치적 진출이 지체되고 노동자계급의 대중적인 투쟁에 기반한 노동자정당, 노동자계급의 이해를 대변하는 진실한 노동자정당이 탄생하지 않았기 때문에 발생한 거대한 비극이다.
윤석열의 친위쿠데타는 지금까지 볼 수 없는 극우들의 준동을 낳았다. 이들은 다시 사회를 장악하고 사회를 이끌어가기 위해 움직이기 시작했다. 이에 맞서 노동자민중도 이미 행동에 나섰다. 거대한 저항의 에너지가 솟구치고 있다. 누가 사회를 이끌어야 하는가? 이 질문에 노동자계급이 응답하지 않는다면, 미국의 비극은 한국에서 똑같이 되풀이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