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7살 반올림
추운 겨울밤이지만 모두의 희망을 위해 뜨거운 밤을 보내고 계신 여러분 모두 반갑습니다. 저는 반도체노동자의 건강과 인권지킴이 반올림 상임활동가 이종란입니다. 저희는 17살 된 반올림입니다. 첫 시작은 황유미의 죽음을 알며 시작되었습니다. 2007년 삼성반도체 공장에서 일했던 23살 여성노동자 황유미씨가 백혈병으로 사망하면서 진상규명, 산재인정을 위한 싸움을 해왔습니다. 당시 황유미의 백혈병 문제를 세상에 알리자 또다른 삼성반도체 피해자들이 줄줄이 제보해 왔습니다. 암에 걸려 투병하거나 죽은 이들이 너무도 많았습니다.
다리가 마비되고 시력을 잃는 장애를 입은 피해자, 생전 처음 들어봤던 병명으로 투병하는 노동자를 참 많이 만났습니다. 고작 20대, 30대의 나이에 병들고 죽어갔습니다.
또 다른 아픔들도 있었습니다. 반도체를 만드는 곳에서 많은 여성노동자가 일합니다. 주간야간으로 교대근무를 하면서 화장실에 갈 시간도 없어 방광염을 앓는 것은 기본이고, 생식독성이 있는 물질들을 취급하며 생리불순을 겪고 유산을 하거나 아이를 갖지 못하거나 태어난 자녀가 발달장애나 신체기형을 겪는 아픔들이 있었습니다.
빛나는 응원봉에 들어있는
왜 이런 아픔들이 생긴 것일까? 피해를 입은 당사자들과 가족들은 지난날 진상규명을 호소하면서 정부와 기업을 상대로 진상규명과 책임을 호소해왔지만 삼성은 반도체를 생산하는 데 사용되는 수백 종의 유해화학물질 이 모두 기업의 영업비밀이라며 그 성분을 공개하지 않고, 산재를 은폐해 왔습니다
반도체를 만드는 데 수백 종의 독성화학물질이 사용되고 밤낮으로 장시간 고강도의 노동이 더해지면서 노동자들은 건강과 생명을 심각하게 위협받았던 것입니다. 지금도 아직 많은 노동자가 산재인정을 받고자 싸움중에 있습니다.
사실 여러분이 흔드는 빛나는 응원봉에 들어있는 LED 전구도 빛 반도체의 일종인데요, 그런 LED를 생산한 노동자들도 암과 자녀질환, 파킨슨병 등으로 산재신청을 한 바 있습니다.
다단계 하청구조라는 사슬
또 문제가 있습니다. 반도체 공장에는 수많은 현장실습생이 일하고 있습니다. 비정규직 중에서도 가장 열악한 처지의 현장실습생들도 일하다 병이 들고 있습니다.
구미에는 케이엠텍이라는 삼성 하청기업이 있는데 갤럭시 핸드폰을 만들던 현장실습노동자가 백혈병에 걸려 투병중에 있습니다. 또 있습니다. 오늘 반올림은 낮에 인천 영종도에 있는 중국계 반도체 회사인 스태츠칩팩코리아라는 회사 앞에서 집회와 선전전을 했습니다. 스태프칩팩코리아에서 일하던 현장실습생 노동자가 고작 19살의 나이에 간이 다 녹아내리는 독성 간질환으로 사경을 해메고 간이식을 받아야 했습니다.
독한 세정제를 막아줄 아무런 보호장비가 없었는데도 회사는 세정약품 대신 물만을 사용했다고 거짓말을 하고 산재를 은폐하고 있습니다. 아픈 노동자가 산재임을 입증해야 하는데 증명하려야 할 수도 없게 사용물질들의 이름도, 성분도 노동자들은 알지 못했습니다.
반도체 산업은 다단계 하청구조를 이루고 있습니다. 하청의, 재하청의, 재하청의 재하청 제일 말단에는 이주노동자들이 더욱 열악한 회사에서 무방비로 유해약품들을 취급하며 일합니다. 반올림엔 최근 반도체 4차 하청에서 일한 베트남 이주노동자의 백혈병 상담 문의도 들어와 있습니다.
누구를 위한 반도체 특별법입니까?
이렇게 유해한 반도체 산업에 하청, 여성, 이주노동자, 현장실습 노동자들이 직업병에 걸려 신음하는데도 이놈의 자본가 정부는 반도체가 '미래산업의 먹거리'라고 하면서 경기도 용인에 무려 600조 규모의 거대한 반도체 클러스터 산업단지를 짓기 위해 혈안이 되어 있습니다.
이를 위해 "반도체 특별법"을 여야 국회의원 할 것 없이 앞다퉈 입법 발의를 하고 있습니다. 자연환경을 훼손시키며 땅을 파고 원주민을 쫓아내고 인허가 규제를 풀고 억지로 물과 전력을 끌어다 쓰며 반도체 생산을 위해 자본과 정부는 전력 질주 중입니다.
내란으로 국회에서 법안 논의가 거의 중단된 상황에서도 삼성, SK하이닉스 등 대기업의 이해관계 때문에 반도체 특별법은 논의가 계속 이어졌습니다.
반도체 특별법 중에서도 이철규, 권성동, 나경원 등 내란공범이 만들고 입법발의한 반도체 특별법에는 근로기준법에서 정한 노동시간 상한제인 주52시간을 뛰어넘어 무한대로 일하게 할 수 있다는 내용이 포함되어 있습니다.
그런데 국민의힘만의 문제도 아니었습니다. 민주주의를 외치던 더불어민주당은 반도체 특별법으로 52시간 상한제를 무너뜨릴 수 없다는 입장을 가지고 있다가 최근 이재명 대표가 반도체 기업들을 만나면서 특별법으로 52시간 상한제 면제를 고려해 볼 수 있다는 입장을 피력했습니다. 저희는 뒤통수를 세게 얻어맞고 있습니다. 윤석열 이후 차기 대통령을 노리고 있는 야당 대표가 노동시간 상한제 규제 적용제외를 고려해 보겠다고 할 수 있는지요?
광장의 시민들이 힘을 모아주십시오!
그동안 17년간 정말 많은 죽음의 행렬을 보아왔습니다. 유해물질 가득한 공장에서 전쟁터에서처럼 수많은 노동자가 병들고 죽어갔습니다. 노동자들은 기업의 총알받이도 아니고 이윤창출의 도구도 아닙니다. 노동자들은 소모품이 아닙니다. 자본의 이해가 더 중요한 정치권력과 반도체 산업에 우리의 미래가 달려 있는 게 아니라 노동자의 권리를 지키고 확보하는 데 우리의 미래가 달려 있습니다. 반도체 특별법 저지를 위해서도 광장 시민들이 함께 목소리 모아주시면 고맙겠습니다. 함께 투쟁합시다. 투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