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동운동 역사의 한 페이지를 쓴 노동자들 - 아사히 투쟁을 함께 한 노동자들의 빛나는 연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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온라인신문

노동운동 역사의 한 페이지를 쓴 노동자들 - 아사히 투쟁을 함께 한 노동자들의 빛나는 연대

  • 이용덕
  • 등록 2024.12.31 12:17
  • 조회수 261

지난 12월 20일 사회주의를 향한 전진과 아사히 정규직지회가 함께 “아사히비정규직투쟁 이야기마당”을 열었다. 아사히비정규직지회 22명의 노동자는 지난 2015년 노조를 만든 후 문자 한 통 해고 탄압을 겪은 후 현장에서 밀려났다. 포기하지 않고 9년 동안 싸워 지난 7월 11일 불법파견 대법원 확정판결을 끌어내고 정규직으로 복직했다.

 

아사히 투쟁은 최근 민주노조운동이 오른 봉우리 중 가장 높은 봉우리로 손꼽힌다. 치열하게 싸우고, 치열하게 연대하면서 수많은 노동자의 마음을 움직였다. 이야기마당은 이 투쟁의 의미와 한계를 돌아보고 아사히 투쟁이 가리키는 민주노조운동의 방향을 고민하는 자리였다.

 

 

태초에 KEC지회가 있었다.

구미공단 최초의 비정규직노조인 아사히비정규직지회가 자리를 잡고 9년 동안 싸울 수 있었던 가장 큰 힘은 금속노조 구미지부 KEC지회였다. KEC지회는 이명박 정부의 노조파괴 시나리오에 따른 악랄한 탄압을 받은 대표적인 사업장으로 2010년 용역깡패 투입, 직장폐쇄, 복수노조 설립을 통한 민주노조 와해 시도를 겪으며 연대하는 진짜 민주노조로 거듭났다. 그 이후로도 계속된 노조파괴에 맞서 줄기차게 싸웠는데 조합원 200명이 안 되는 중소규모의 지회지만 이 지회가 구미지역 노동운동을 지탱했다. 나아가 민주노조운동 전체를 지탱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KEC지회는 구미지역의 한국합섬(스타케미칼), 옵티칼지회에 최선을 다해 연대했다. 간부들만이 연대한 게 아니라 전체 조합원이 부분파업, 전면파업을 하고 한걸음에 달려갔다. 한두 번 달려간 것도 아니다. 이야기마당 패널로 참여한 KEC지회 김성훈 전 지회장은 한창 연대파업을 많이 했을 때 간부들의 월급이 백만 원 정도였는데, 그걸 확인할 때마다 수많은 감정이 교차했다고 했다. 투쟁기금을 모으고 방송차와 사무실을 제공하며 매일 아사히 공장으로 달려온 KEC지회 조합원들의 희생과 헌신이 없었다면 아사히 비정규직 노동자들의 도전은 불가능했을지 모른다.

 

작은 밀알이 모여 거대한 숲을 이룬다. KEC지회는 소중한 밀알이었다. 아사히 투쟁이 노동운동 역사의 한 페이지를 썼다고 말하기 전에 KEC지회가 노동운동 역사의 한 페이지를 썼다고 말할 수 있다. 민주성, 계급성, 연대성을 가진 노조, 제대로 된 민주노조의 역할이 얼마나 얼마나 소중한지 알 수 있다. 노동자운동은 이런 민주노조가 너무나 부족해 고통받고 있다.

 

김성훈 전 지회장은 KEC지회가 10년 가까이 연대할 수 있었던 이유로 ‘관계성’을 이야기했는데, 그 관계성은 특별한 의식이 있어서가 아니라 투쟁을 처음부터 끝까지 같이 준비하고 논의하며 같이 책임지겠다는 자세에서 만들어진다고 했다. 지속적인 연대의 탄생, 훌륭한 간부와 활동가들의 탄생도 자신만의 투쟁이 아니라 다른 투쟁에 직접 가서 보고 느끼며 배울 때 가능하다고 했다.

 

지금 윤석열 퇴진 투쟁에서도 민주노총으로 조직된 노동자들의 역할이 정말로 절실한데, 조직적적으로 광장 투쟁에 달려가야 한다. 더 많이 달려가 노동자들의 요구를 제기할 뿐 아니라 수많은 미조직 노동자, 2030년 여성·청년들의 행동과 요구를 직접 보고 느끼고 배워야 한다. 그럴 때 조직 노동자들은 자신들의 역할을 더 많이 고민할 수 있을 것이다.

 

 

감동적인 장면들

아사히 오수일 부지회장은 2015년 노조를 만들고 처음 현장 투쟁을 시작했을 때 조합원들이 머리띠를 매기로 했는데, 낯설기도 하고 두렵기도 해서 화장실에서 한참을 고민했다고 했다. 용기를 내어 머리띠를 매고 일했는데, 점심시간에도 이 머리띠를 풀어야 하는지 고민이 많았다고 했다. 그런데 점심시간이 지나 다시 현장으로 돌아왔을 때 조합원들이 하나 둘 다 머리띠를 매고 일하기 시작했고 지회의 지침을 다 잘 이행했다고 했다. 객석에서 박수가 쏟아졌다. 모두 머릿속에 그 그림이 그려졌을 것이다.

 

오수일 부지회장에게 아사히 자본이 차헌호 지회장을 제외하고 다 복직시키겠다고 회유했을 때 조합원 토론 과정을 물었다. 정말 단호하게 결정했냐고 물었다. 오수일 부지회장은 조합원들의 토론 시간은 오래 걸리지 않았고 단 한 명의 이견도 없이 단호하게 거부했다고 했다. 생계팀으로 일하고 있는 조합원들에게서도 바로 만장일치로 거부했다는 연락이 왔다.

 

차헌호 지회장은 우리가 무너지지 않는 한, 우리의 단결이 깨지지 않는 한 절대 지지 않는다는 확신을 수차례 강조했다. 그 확신이 있었기 때문에 9년 동안 한 번도 자본에 먼저 교섭을 요구하지 않았다고 했다. 아사히지회만큼 전국의 수많은 열악한 현장을 다니며 연대한 노조가 없는데, 아사히지회는 그 연대를 위한 노력만큼 내부의 단결을 위해 노력했다. 민주적 토론, 서로에 대한 존중이라는 튼튼한 기반이 있었다. 차헌호 지회장은 조합원에 대한 신뢰를 잃지 않는다면 지지 않는다고 여러차례 강조했다.

 

아사히 투쟁의 잊힐 수 없는 의의 중 하나는 노동자 국제연대다. AGC화인테크노코리아(아사히글라스) 본사가 일본에 있다. 아사히글라스지회를 지원하기 위해 도로치바(국철치바동력차) 노조 노동자들을 비롯한 여러 활동가가 모여 아사히투쟁지원공투를 만들어 물심양면으로 연대했다. 여러 차례 한국에 와서 아사히지회를 방문했다. 아사히지회도 6차례 일본을 방문했다. 일본 동지들은 한 달에 한 번 꼬박꼬박 아사히 본사와 아사히 계열사를 압박하는 선전전을 진행했다. 무려 9년의 세월 동안 쉬지 않고 연대했다. 나도 2019년 아사히지회 조합원들과 함께 일본 원정투쟁을 다녀왔는데, 일본 노동자들과 활동가들의 의지는 정말 대단했다.

 

차헌호 지회장은 아사히지회가 2019년 톨게이트 투쟁 때 톨게이트 노동자들이 김천 본사에 없을 때도 김천 본사 선전전을 하긴 했지만, 고작 몇 개월이었을 뿐이었는데, 일본 동지들은 9년을 연대했으니 어떻게 본받지 않을 수 있냐고 했다. 아사히지회가 최선을 다해 연대했던 힘도 일본 동지들에게서 나왔다고 했다.

 

나도 2019년 아사히 동지들과 함께 일본 원정투쟁을 다녀왔는데 오수일 동지의 말처럼 연대투쟁에 온 모든 참가자가 다 돌아가며 열정적으로 발언하는 모습을 인상 깊게 봤다. 일본 동지들은 한국 아사히글라스 노동자들의 승리가 일본 노동자에게도 희망이 된다고 생각했다. 그들은 일본 노동운동이 오랫동안 침체기를 벗어나고 있지 못하고 있지만, 좌절하지 않고 현장을 조직하고 국제연대를 실천했다.

아사히지회가 승리 후에 일본 동지들을 초대해 함께 공장을 둘러봤다. 아사히 동지들과 일본 동지들의 가슴이 벅차올랐다.

 

 

민주노조운동의 한계를 돌아봐야

아사히 조합원들의 삶을 기록한 <들꽃, 공단에 피다>를 펴낸 ‘싸우는 노동자를 기록하는 사람들’의 손소희 동지도 패널로 참여했다. 손소희 동지는 노동조합을 결심하기 전 아사히 조합원들의 상황과 고민을 들려줬다. 아사히지회 여러 조합원은 이전에 수시로 공장 폐업에 시달려 왔다. 구미공단의 수많은 대공장에서 밀려난 후 비정규직 일자리를 찾아 떠돌아다녀야 했다. 한 조합원은 직장을 옮길 때마다 주거 공간을 새로 마련해야 하는 게 엄청난 스트레스였는데, 계속 그럴 바에야 노조를 만들어 내 환경을 바꿔보자고 결심했다고 한다.

 

이런 작은 결심이 모여 만들어진 아사히비정규직지회는 9년 동안 누구도 예상하지 못한 투쟁을 했다.

 

차헌호 지회장은 대구지방검찰청 로비 점거 농성을 잊힐 수 없는 투쟁으로 얘기했다. 검찰이 아사히 자본의 불법파견에 대해 불기소 결정을 내리자, 조합원들은 로비를 점거했고 전원 연행을 당했다. 끈질긴 투쟁으로 검찰의 판단을 바꿔 냈다. 노동청을 찾아가 들어 엎는 일은 투쟁 축에도 끼지 못했다.

 

검찰, 법원을 신성시하고 검찰, 법원의 판단에 별다른 의문을 제기하지 않는 민주노조운동의 잘못된 기풍을 떠올려 보면 의미가 아주 크다. 오수일 부지회장은 대법원에서 졌으면 아마 대법원을 엎어버렸을 것이라고 했다. 차헌호 지회장은 검찰과 법원은 무소불위의 권력이 아니라 노동자들의 투쟁에 따라 바꿀 수 있고 바꿔내야만 하는 권력이라고 얘기했다. 문제는 검찰과 법원이 아니라 검찰과 법원의 결정을 따르지 않고 세력 관계를 변화시킬 수 있는 우리의 힘이라고 얘기했다. 이 정신이 민주노조운동 내에 많이 퍼졌으면 좋겠는데 그렇지 않은 게 안타깝다고 했다.

 

아사히 조합원들은 최종적으로 대법원 판결이 나서 복직하게 됐다. 이렇게 길게 버티며 싸우는 방법밖에 없는지 아쉽다고 얘기한 조합원도 있었다. 오수일 부지회장도 똑같은 얘기를 했다. 손소희 동지는 아사히지회의 한계가 아니라 전체 운동의 한계로 받아들여야 한다고 했다. 법원 판결이 나기 전에 흩어지거나 깨지는 노동조합도 많고 후퇴하는 노동조합도 많은데, 아사히지회는 9년을 싸워서 법원 판결을 끌어냈다고 했다. 부끄러운 일이 전혀 아니라고 했다. 불법파견을 없애는 것은 사회구조를 바꾸는 정치투쟁인데, 이런 정치투쟁으로 나아가지 못하고 있다는 점을 돌아봐야 한다고 했다. 한 단위 사업장에 많은 짐을 맡기기보다 함께 뭉쳐 정치투쟁으로 바꿔 내야 한다고 했다.

 

 

전체 노동자의 이해와 권리를 위해

사회주의를향한전진은 최선을 다해 아사히 투쟁에 연대하고 결합하려 했다. 2015년은 비정규직 투쟁의 중요한 축이었던 현대차 비정규직 투쟁이 완전히 내리막길을 걷기 시작할 때였다. 강력한 투쟁을 했고, 불법파견 문제를 사회에 널리 알렸지만, 조합원만의 정규직화에 갇히면서 투쟁의 동력을 잃어버렸을 때였다. 아사히투쟁이 계급적 단결, 전체 노동자의 권리 쟁취라는 비정규직 운동의 대의를 곧추세울 수 있기를 바랐다.

 

우리의 예상은 틀리지 않았다. 아사히지회는 전체 노동자들의 이해를 위해 움직였다. 자신의 이해와 자신의 투쟁을 넘어서려고 노력했다. 소성리 사드 반대 투쟁에 연대했고, 전국의 수많은 투쟁사업장에 달려갔고, 여성, 장애인, 이주노동자 투쟁에도 연대했다. 구미공단의 미조직노동자들을 조직하기 위해 수도 없이 선전전을 진행했다. 구미 반도체 공장 케이엠텍에서 일하다 백혈병에 걸린 20대 노동자의 해고 문제도 앞장서 싸워 성과를 거뒀다.

 

형식적인 연대도 아니었다. 이청우 동지는 2020년 LG트윈타워 청소노동자 해고 투쟁을 떠올렸다. 차헌호 지회장만이 아니라 LG트윈타워로 달려간 아사히지회 조합원 전체가 LG트윈타워 조합원들과 함께 투쟁 방향을 토론했다. 톨게이트 투쟁, 대우조선하청 파업 때도 마찬가지였다. 아사히지회는 조합주의, 관료주의로 길을 잃어가고 있는 민주노조운동의 등대였다는 찬사가 조금도 과하지 않을 것이다.

 

아사히지회는 박근혜 퇴진 투쟁 때 광장에서 투쟁사업장들과 함께 싸웠다. 오수일 부지회장은 세종호텔 고진수 동지 등과 함께 고공농성을 하기도 했다. 노동악법 철폐, 노동기본권 쟁취, 민중생존권 쟁취를 목표로 전선을 열고자 했다. 탄핵에 반대했던 민주당이 퇴진 투쟁의 주도권을 쥐면서 노동자민중의 요구가 전면적으로 드러나지 않을 때였다.

 

지금도 민주노총을 비롯한 조직된 노동자들의 해 내야 할 역할과 임무는 분명하다. 노동자계급은 극우세력을 철저히 뿌리 뽑고 노동자·민중의 광범한 요구들을 제기하며 함께 쟁취해야 한다. 노동자계급은 위력적인 총파업을 펼쳐내면서 민중항쟁을 끌어내야 한다.

 

당장에 즉각적인 총파업은 어렵다. 차헌호, 김성훈 동지도 당장에 총파업만 얘기해선 민주노총을 일으켜 세울 수 없다고 했다. 다만 민주노총이나 산별노조를 비판만 해서는 안 되고 답답하고 가슴 터지는 노동자들이 먼저 나서야 한다고 했다. 그것은 무엇이어야 할까? 투쟁하는 동지들이 모여 긴급한 토론을 조직해야 한다. 민주노총과 산별노조, 지역본부에 공식 기구에 전면적인 토론을 제기하고 조합원들에게 총파업의 절실한 필요성을 호소하고 설득해 나가야 한다. 이 기회를 헛되이 날려 버린다면 노동자민중의 요구 실현은 점점 더 멀어지고 오히려 극우세력에게 반격의 기회만을 줄 뿐이다.

 

끝으로 차헌호 지회장은 사회주의를향한전진에게 사회주의 정치활동에 대한 정부와 자본의 탄압을 두려워하지 말고 더 정치적으로 날카롭게 활동해 달라고 부탁했다. 민주노총, 산별노조 관료들이 두려워할 수 있는 과감한 투쟁을 제안하고 투쟁하는 노동자들과 함께 해 달라고 요청했다. 사회주의를 향한 전진은 이 호소에 응답하기 위해 최선을 다할 것이다.

 

아사히 투쟁을 함께 한 노동자들의 빛나는 연대를 기억하며 자본주의 철폐, 노동해방을 향해 힘차게 나아가자.

 

※아래 유튜브를 통해 이야기 한마당 전체 기록을 볼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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