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벽배송 제한 논쟁 - 왜 이토록 막중한 노동이 이윤 논리에 따라 움직여야 하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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온라인신문

새벽배송 제한 논쟁 - 왜 이토록 막중한 노동이 이윤 논리에 따라 움직여야 하는가?

  • 이용덕
  • 등록 2025.11.13 20:11
  • 조회수 7,659

 

소비자와 노동자의 갈등도, 노동자와 노동자의 갈등도 아니다

 

“새벽배송 못 하면 야채가 쓰레기 돼요”, “소상공인들 다 망하라는 얘기에요”, “퇴근하고 집에 오면 오후 10시, 모든 마트가 문을 닫는데 장은 누가 보냐?”, “맞벌이 부부로 어린이집 준비물 준비를 퇴근 후에 해야 하는데, 새벽배송까지 없어지면 아이를 키우지 말라는 소리냐”, 새벽배송 제한에 반대하는 언론들이 쏟아내는 말이다.

 

민주노총 택배노조는 자정부터 오전 5시까지의 초심야시간대 배송을 제한하고 오전 5시에 출근하는 근무조가 새벽배송 물품을 배송하는 방식을 제안했는데, 많은 언론은 이를 ‘새벽배송 전면금지’ 주장처럼 보도했고, 소비자와 노동자 혹은 노·노 갈등으로 프레임을 잡아 민주노총을 공격하고 있다.

 

‘택배 공화국’이란 말이 보여주듯 택배는 노동자 민중의 삶 깊숙이 들어와 있다. 코로나가 유행하던 시기에 택배는 사회 유지에 더 필수적인 노동이 됐다. 물론 심야·새벽배송까지 그렇게 볼 순 없다. 새벽배송 이용자가 2,000만 명 (중복 가입 포함) 이나 되었다고 하지만, 소비자들의 자발적 선택이라기보다 자본이 소비자들의 편리를 앞세워 돈을 벌려는 시스템, 노동자들을 무한대로 갈아 넣어 돈을 벌려는 시스템을 만들어왔기에 일어난 일이다. 또한 ‘새벽 장보기’를 강요하는 사회 구조, 즉 저임금 장시간 노동, 공공 돌봄의 부재, 살인적 노동강도를 그대로 두고 택배 이용자 증가를 얘기할 수 없다.

 

4년 전 택배 노동자로 일할 때 이렇게 얘기하는 고객을 만났다. “내가 미국과 유럽 등에서 15년을 살다가 왔는데 낮이고 밤이고, 주중이고 주말이고 쉬지 않고 배송하는 나라는 한국밖에 없다. 이렇게 빨리 배송이 되는 나라가 없다. 그런데도 당일배송 안 되면 기사 탓을 한다. 우리 집은 당일배송 신경 쓰지 말라. 갖다주는 것만으로는 고맙다.”

 

이토록 중요한 택배, 노동자의 건강과 생명에 대한 보호 없이 유지될 수 없다

 

그 노동이 없다면 소상공인이 망하고, 장도 못 보고, 아이도 키우지 못하는 노동이라면, 그 노동의 중요성은 무시할 수가 없다. 공공적 가치가 아주 크다. 그렇다면 이 노동이 지속 가능할 수 있게 만들어야 한다.

 

그 첫째 조건은 노동자의 건강과 생명 보호다. 건강과 생명의 보호 없이 안전하고 빠른 배송은 지속될 수도 없고 지속되어서도 안 된다.

 

최근 택배 노동자에게 일어난 중요한 변화는 2020년 이른바 ‘사회적 합의’에 따른 분류인력 투입이었다. ‘까대기’라 부르는 분류 작업을 3~5시간 하다 보면 배송을 나가기도 전에 초주검이 됐다. 애초부터 택배 자본의 책임이었지만 자본들은 아랑곳하지 않고 택배 노동자에게 공짜 노동을 강요해 왔다. 택배 자본들은 끝까지 기를 쓰고 반대했지만, 택배 노동자들의 끈질긴 투쟁과 연이은 과로사가 미친 사회적 압력 때문에, 분류인력이 투입됐다. 택배 노동자들의 노동강도는 대폭 낮아졌다.

 

물론 택배 자본은 건당 수수료 삭감, 당일배송 강요로 계속 배를 불리고 있고, 장시간 노동, 과중한 업무 등 노동조건은 근본적으로 개선되지 않았다. 하지만, 분류인력 투입은 택배 노동자의 건강과 생명 보호에 상당한 영향을 미쳤다. 아직도 분류인력이 투입되지 않는 곳이 있기는 하지만 전체적으로 봤을 때 많은 곳에 적용되었다. 분명한 예외가 쿠팡이다. 쿠팡은 아직도 분류 작업을 노동자들에게 떠넘긴다. 그뿐인가? 다회전 배송, 프레시백 수거 등 살인적인 노동조건을 강요한다.

 

심야배송 제한은 분류인력 투입과 마찬가지로 택배 노동자의 건강과 생명 보호를 위해 꼭 필요한 조치다. 한국노총은 ‘주5일 근무제 보장, 주 최대 야간작업시간 50시간 이내’를 요구하지만, 연속적·고정적 심야노동을 그대로 두고 노동자의 건강권을 제대로 보호할 순 없다. 필수적인 야간노동이라 하더라도 건강과 생명을 지키려면 노동시간을 4시간 이내로 줄이고, 힘든 노동에 걸맞은 존중과 보상이 있어야 한다. 택배는 수만 보를 걸으며 쉴 새 없이 물건을 들고 오르내리는 작업을 반복하는 고강도 노동이다. 이런 노동을 주 5일 이상 시킨다면 몸이 망가지지 않을 도리가 없다. 특히나 오전 7시까지 물량을 다 배송하지 못하면 구역을 회수하는 ‘클렌징’ 제도 아래서, 노동자들은 자신의 몸이 망가지는 걸 감수할 수밖에 없다. 쿠팡은 클렌징 제도를 폐지했다고 했지만, 사실상 클렌징 제도와 크게 다르지 않은 SLA(소비자 평가) 제도를 만들었다. 0시부터 5시까지의 노동이 기본으로 있는 한 야간작업 50시간 한도 제한도 사실상 불가능하다.

 

로켓배송 기사로 일하다 과로사한 고 정슬기님이 남긴 카톡 화면 출처: 택배노조

 

다른 선택은 필요하고 가능하다!

 

쿠팡이 불 붙인 ‘당일배송’ 경쟁은 전체 택배 노동자를 옥죄고 있다. 예를 들어 CJ대한통운이나 한진, 롯데 역시 휴지와 생수조차 무조건 당일배송을 강조한다. 원청의 지시를 따르는 소장 한마디에 일자리가 위태로워지는 택배 노동자 처지에서는 당일배송을 거부하기 어렵다. 그렇지 않아도 물량이 많은 화요일, 수요일에도 모든 물건을 가득가득 싣고 나가야 한다.

 

당일에 꼭 배송해야 하는 물건도 있지만, 그렇지 않은 물건도 있다. 물량을 조절할 권한이 있어야만 노동자는 무리하지 않을 수 있다. ‘무조건 모든 물량을 당일에 또는 아침 7시 안에 배송해야 한다’는 압박은 자본가들의 이윤과 통제를 위한 기준일뿐, 고정불변의 것이 아니다.

 

택배노조는 오전 5시 출근조를 운영해 긴급한 품목을 중심으로 배송하는 방식을 제안했다. 이것이 왜 불가능한가?

 

“녹색소비자연대 대표님은 명절을 예로 들면서, 각 플랫폼에 배송 스케줄을 미리 공지하면 소비자들이 그 스케줄에 맞춰 소비 계획을 짤 수 있지 않겠냐고 얘기하더라”라며 “그런데 쿠팡은 오늘 밤 12시까지 주문하면 내일 아침에 온다, 오늘 오후 늦게 주문해도 내일 새벽에 온다는 스케줄을 플랫폼에서 짠 게 아닌가. 그걸 좀 변화시켜서 오전 5~7시에 받아야 하는 물품이 있다면 상당수의 소비자는 회사가 제공하는 스케줄에 맞춰서 구매할 것이다. 그런데 그런 시도조차 안 해보고, 새벽배송이 없어지면 2천만 명의 고객이 피해를 입는다는 논리만 얘기하는 것”

- 「택배노조 위원장 “새벽배송 제한, 돌 맞을 각오로 말한 것…누군가는 했어야”」, 11월 11일 민중의 소리

 

이런 시스템을 도입하면 초심야노동 폐지와 소비자의 필요충족은 충분히 함께 이루어질 수 있는 일이다. 기존 자정에서 5시 사이에 배송했던 물건이 쌓인다고 하더라도 인력이 충원된다면, 노동자들에게 물량을 조절할 수 있는 권리가 생긴다면, 시간제한을 일방적으로 강요당하지 않는다면 노동자의 권리와 소비자의 필요 모두 함께 충족할 수 있다.

 

지난 11일 MBC 100분 토론에 나온 백운섭 한국플랫폼입점사업자협회장은 “살려달라”라고 하며 “새벽배송 금지는 하지 말고 처우개선, 복지 개선하고, 한 사람 더 뽑고, 두 사람이 함께 배송하고, 인건비 올리고” 등의 얘기를 했다. 그런데 바로 이것이 쿠팡을 비롯한 택배 자본이 하지 않는 일들이다.

 

©안진이

 

노동자들의 힘과 통제

 

택배산업의 공공적 가치는 노동자들의 힘과 통제에 의해서만 제대로 실현될 수 있다. 택배 자본은 걸핏하면 마음대로 택배 단가를 올리고 택배 노동자가 받는 건당 수수료(임금)는 후려친다. 전국택배노조와 택배노동자과로사대책위원회가 최근 발표한 쿠팡 배송기사 노동실태를 보면, 아파트 배송 건당 수수료 중위값은 주간이 655원, 야간은 850원이고, 일반 지번은 주간이 730원, 야간이 940원이다. 2년 전만 해도 야간은 1,200원이 넘는 곳이 많았다. 이렇게 노동자를 쥐어짠 쿠팡은 천문학적인 이윤을 거둬들이고 있다. 쿠팡의 2025년 3분기 매출은 12조 8,455억 원으로 전년 동기 10조 6,901억 원 대비 20% 상승했다. 3분기 영업이익은 2,245억 원으로, 전년 동기 1,481억 원과 비교해 51.5% 늘어났다.

 

쿠팡-쿠팡CLS-대리점-노동자로 이어지는 다단계 하청구조 아래 이중 삼중으로 억압 받는 노동자들은 단가와 물량, 시설 개선과 투자에 대한 목소리는커녕 자신의 임금과 노동조건에 대한 목소리도 내기 어렵다. 다른 택배사 노동자도 마찬가지다. 정부는 다단계 착취 구조와 자본의 일방적 횡포는 건드리지 않는다. 공공의 이익을 위해 굴러가야 할 택배산업이 자본의 이익을 위해 굴러간다.

 

일부에서는 “소비자는 젖혀두고 자기들끼리만, 즉 노동자와 자본가들끼리만 결정하려 한다”라고 비판한다. 그러나 지금까지 택배 자본의 속도, 물량 경쟁에서 노동자들의 결정권은 존재하지 않았다. 택배 자본은 택배 노동자들이 하청업체와 위수탁 계약을 맺은 특수고용노동자라는 이유로 노조와의 교섭도 거부했다. 쿠팡은 사회적 대화조차도 참여하지 않았다.

 

주 7일 배송 문제에서도 노동자들은 인력충원, 임금인상 등 자기방어를 위한 목소리를 냈다. 그것이 소비자들에게 필요한 안전 배송을 위해 필요하기 때문이다. 하지만 자본가들은 수용하지 않았고 부족한 인력과 인프라을 방치한 채 주 7일제를 강행했다. 자본의 이윤 논리에 브레이크를 걸지 않으면 노동자의 건강권도, 소비자의 이익도 지킬 수 없다.

 

누가 일자리를 빼앗는가?

 

택배 노동의 사회적 가치가 존중받고, 택배 노동이 사회를 계속 지탱하려면 양질의 일자리가 확대되어야 한다. 한국노총 택배산업본부는 쿠팡 야간택배기사 설문조사 결과 ‘대다수가 새벽배송 제한을 반대했다’는 이유로 민주노총을 비판했다. 일부 언론은 수많은 일자리가 사라진다며, 민주노총 택배노조의 제안을 이기적인 제안이라 비난했다. 택배노조의 제안이 일자리를 줄이자는 게 아니라 오전 5시 출근조, 오후 3시 출근조로 개편해 노동시간을 줄이자는 주장인데도 말이다.

 

노동자들은 일자리 감소와 임금 보전을 걱정할 수밖에 없다. 저항하면 해고를 감수해야 한다. 그런데 누가 일자리를 빼앗고 임금을 삭감했는가? 인력충원은 거부하고, 건당 수수료를 후려쳐 더 많은 물량을 감당하게 만들고, 몸이 망가지는 걸 뻔히 알면서도 심야·새벽배송을 선택하게 만들고, ‘새벽배송도 택배노동자들의 선택’이라고 우기는 것은 얼마나 비열한 논리인가? 특수고용노동자의 노동자성을 부정해 근로기준법도 적용받지 못하게 만들고 저항을 봉쇄한 게 누구인가?

 

이 체제는 노동자를 바닥 향한 경쟁으로 내몬다. 그 상황을 교묘히 이용하는 자본가들은 뻔뻔하게 이렇게 얘기한다. “쿠팡 새벽배송에 종사하는 배송직의 근로 여건이 그렇게 열악하다고 보지 않는다.” (2023년 국정감사 증인으로 나온 쿠팡CLS대표 홍용준)

 

2013년 현대·기아차에서 심야노동을 폐지하고 주간연속 2교대제를 도입할 때도 자본가들은 비슷한 소리를 했다. “다른 노동자의 일자리가 사라진다”, “임금은 보전할 수 없다”, “인력감축은 불가피하다” 이러한 자본의 논리에 굴복했더라면, 노동자들의 삶의 질은 나아지지 않았을 것이다.

 

물론 새벽배송 제한이 미치는 영향은 여러모로 검토되어야 한다. 배송은 집하, 운송, 분류와 떼려야 뗄 수 없이 연결되어 있다. 노동자들의 협동 없이는 택배는 단 하루도 유지될 수 없다. 따라서 배송 전 단계의 노동 역시 새롭게 재편되어야 한다. 임금삭감 없는 노동시간 단축, 대대적인 인력충원, 양질의 일자리 확대, 다단계 하도급 철폐, 노동강도 완화, 건강권 보장의 방향에서 재조직되어야 한다.

 

여기에서도 원리는 똑같다. 목숨을 담보로 한 배송을 원하지 않는 것처럼, 목숨을 담보로 한 운송도, 목숨을 담보로 한 분류도 원하지 않는다. 자본가들의 이윤보다 노동자의 목숨이 천만 배 소중하다.

 

이 일이 하루아침에 이뤄질 수 없지만 불가능한 일이 절대 아니다. 분류인력 투입처럼 대자본의 곳간을 열어내면 된다. 그 돈을 노동자들을 위해, 공공의 이익을 위해 사용하면 된다.

 

택배 노동자들은 택배 노동의 소중함을 안다. 그 누구보다 소비자의 편리를 위해, 공공의 이익을 위해 일할 수 있기를 원한다. 그렇다면, 택배 노동자들의 힘이 세져야 한다. 노동자가 택배산업의 주인공이 되어야 하고, 택배산업을 통제할 수 있어야 한다. 우리는 민주노총 소속 택배노동자들의 제안과 투쟁을 지지하며, 이 근본 대안을 향해 함께 뚜벅뚜벅 전진하자고 제안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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