거리에서 만나는 반갑지 않은 극우집회

사진=연합뉴스
금은방, 청계천, 관광객들이 밀집된 번화가...명동하면 먼저 떠오르는 이미지들이다. 그런데 요즘 명동에 가면 이전에 보기 힘들었던 광경이 새로 보인다. 바로 활발한 집회다. 거리에서 투쟁하는 노동자 민중을 만나는 일은 동지로서 반가운 일이다.
그러나 반갑지 않은 집회가 요즘 자주 보인다. 근래 명동을 포함한 서울 각지에서 ‘자유대학’ 등 극우 유투버들이 주축이 되어 혐중시위를 열고 있다. 2022년 20건, 2023년 15건, 2024년 13건 수준에서, 2025년은 10월 기준 65건으로 그 빈도수가 폭증하였다. 200여 명의 참가 인원이 행진까지 하는 극우집회 현장에서는 육성이나 피켓을 통한 혐오 표현과 비속어가 난무한다. 이주민과 외국인의 인권을 위협하는 명백한 혐오발언 행위다.
지난 겨울 윤석열의 계엄령 선포와 이어진 탄핵 국면은 수많은 노동자 민중이 광장으로 나오는 계기가 되었지만, 극우 세력이 거리에 나서는 계기로도 작용했다. 당시 광화문 등지에서 “Yoon Again” 구호를 외치던 ‘자유대학’이나 ‘민초결사대’ 등의 단체는 이제 명동과 대림동에 가서 “China Out”, “CCP(Chinese Communist Party, 중국공산당) Out“이라는 구호를 외친다.
히틀러의 배후중상설과 닮은 극우의 부정선거 음모론
윤석열 내란옹호 집회와 혐중 집회 사이에는 어떤 관련이 있는 걸까? 언뜻 보기에 서로 다른 요구를 내건 두 집회에 “Stop the Steal”(직역하면 “도둑질을 멈춰라”, 선거 때 표를 ‘도둑질’했다는 의미로, 부정선거론을 믿는 미국의 트럼프 지지자들이 외치는 구호다.) 구호가 연결고리 역할을 한다. 2020년 대선에서 도널드 트럼프가 패배에 불복하자 미국 극우 세력이 외치던 구호를 한국 극우 세력이 수입한 것이다.
극우 세력의 세계관에서 ‘좌파’ 정당의 선거 승리는 같은 ‘좌파’인 중국 공산당의 개입 아래 이루어진 부정선거 덕이라는 논리다. 집회 현장에는 부정선거뿐 아니라 ‘자국민 역차별’을 이유로 집회에 참가했다고 밝히는 청년도 있었다. 중국인들이 사회 곳곳에 침투해 사회적 특권을 형성하고 있다는 이들의 세계관은 탄핵당한 전 대통령이 노조를 겨냥하고 쓴 ‘카르텔’ 등의 표현, 그리고 한 세기 전 독일에서 파시즘 정권을 탄생시킨 배후중상설 등의 음모론과 놀랍도록 겹쳐 보인다.
배후중상설이란 당시 독일의 제1차 세계대전 패전과 대공황 속 경제불황이 금융업 등으로 ‘기득권’을 형성한 유대인과, 반국가적인 사회주의자 등 좌파의 음모로 야기된 문제라는 공상적인 믿음이다. 100년 전 독일의 배후중상설부터 오늘날 한국의 부정선거론까지, 항상 왜곡과 거짓에 기반을 둔 극우 세력의 선전선동은 사회 내부에 표적을 만들어 혐오를 통해 노동자 민중의 정세 인식을 좀먹는다.
이주민 혐오는 체제가 낳은 구조적 문제
이주민 혐오는 길거리 외에도 사회 곳곳에서 표출되고 있다. 지난 4월 23일 이주 배경을 지닌 김 모 일병이 병영 건물 2층에서 뛰어내렸다. 김 모 일병은 평소 부대원들로부터 중국인 비하 표현으로 불리는 등 지속적으로 괴롭힘을 당했다. 목숨을 건질 수는 있었지만 심각한 부상을 입어 계속 입원 치료를 받고 있다고 군인권센터는 전했다.
혐중시위와 김 모 일병 사건이 단지 소수의 유별난 개인이 이주민을 대상으로 위협하거나 괴롭힘을 가하는 일탈행위일까? 인권감수성과 시민으로서의 덕성을 함양하면 한국 사회에서 이주민 혐오를 뿌리 뽑을 수 있는 것일까?
이주민 혐오는 몇몇 부도덕한 개인들에 의한 우발적 사건이 아니다. 이주민 혐오는 자본주의 체제 내부에 깊숙이 심어진 구조적 문제이다. 이는 노동 현장에서 이주노동자가 겪는 위험 사례에서 명확히 드러난다. 나주 벽돌 공장에서 있었던 ‘지게차 가혹행위’ 사건, 폭염 속 작업으로 유명을 달리했던 네팔 이주노동자 사망 사건, 화성 아리셀 중대재해 참사 등 최근에도 수많은 사건이 있었다. 중간관리자의 폭언 및 갑질, 온열질환 산재 인정 및 작업중지권, 불법파견 및 산업현장 안전 미비 등 이주노동자가 겪는 위험은 정주민 노동자도 겪을 수 있는 우리 사회의 노동 문제와 깊이 얽혀 있다.
이중삼중의 구조적 억압에 시달리는 이주노동자
이주노동자가 겪는 문제는 한국 사회의 정주민 노동자가 겪는 노동 문제와 동일한 구조에서 비롯하는 측면도 있다. 하지만 동시에 이주노동의 현실을 반영하는 특수성도 지니고 있다.
『이주노동자 사망에 대한 원인 분석 및 지원체계 구축을 위한 연구』(2024)와 이를 다룬 기사 「기록되지 않는 죽음, 이주노동자 산재···93.6%는 원인불명」(뉴스민)에 따르면 2022년 한 해 신고된 이주노동자 사망자 수는 3,340명이다. 이중 산업재해로 인정받은 사망자는 137명, 산재 사망을 신청했으나 인정받지 못한 사망자 32명, 산재가 아닌 이유로 사망한 사망자가 45명이었다.
3,340명의 전체 사망자 중 214명만 사인이 파악되었다. 즉 2022년 사망한 이주노동자의 93.6%는 원인조차 불명인 상황이다. 또한 이주노동자 산재 사망자는 업무상 사고 사망자 비율이 업무상 질병 사망자 비율보다 월등히 높은데, 해당 보고서의 대표 저자 김승섭 교수는 이 통계 또한 문제적이라고 지적한다. 이주노동자의 특성상 업무상 질병 사망을 추적하기 어려운 현실이 반영된 것이라는 추정이다.
질병 사망은 사고 사망보다 산재 사망으로 인정받기 어려워 이주노동자에게 그 장벽이 더 높게 작용할 것이며, 질병을 얻고 본국으로 돌아가 사망하는 경우처럼 사망 통계에 잡히지 않은 업무상 질병 사망자 수도 많을 것이다.
김승섭 교수는 한국의 산업재해 사망자 수가 줄어들고 있다는 통계 해석에도 의구심을 표한다. 산업 현장의 안전이 개선되기보다는 더 위험한 노동이 이주노동자에게 전가되고 그들의 사망이 지워지고 있기 때문에 통계로 봤을 때 상황이 호전되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는 설명이다.
이주노동자 사망이 제대로 파악되지도, 기록으로 남겨지지도 않는 현실이 이주노동 문제의 구조성과 특수성을 여실히 보여준다.
APEC 위해 이주노동자를 ‘치워버린’ 이재명 정부
10월 28일 대구 성서공단에서 한 명의 이주노동자가 국가 폭력에 의해 사망하였다. 이재명 정부는 지난 9월 29일부터 12월 5일까지 ‘2025 아시아태평양경제협력체(APEC) 정상회의의 성공적인 개최를 위해 대대적인 2차 정부합동단속을 실시한다’고 발표했다. 대구출입국사무소에 의해 10월 28일 오후 성서공단 내 자동차 부품 공장에서 기습적으로 단속이 이뤄졌다. 단속 과정을 피해 공장 시설에 몸을 숨긴 베트남 출신 이주노동자는 현장에서 사망한 채 발견되었다. 민주노총 대구본부는 29일 성명을 발표해 정부합동단속의 즉각적인 중단을 요구했다.
국제행사의 성공적인 개최를 위해 이주노동자를 단속하겠다는 정부의 발상은 이주민 혐오의 제도적 반영이자 재생산이다. 정부의 이주민 혐오가 또 다시 한 생명을 죽음으로 내모는 참극을 불러왔다.
미국 조지아 주에서 벌어진 한국인 노동자 단속 사건에는 열을 올리던 이재명 정부가, 미국에서 국빈이 오자 한국의 이주노동자들을 ‘치워버리기 위해’ 국가 폭력을 행사했다. 이렇듯 국가는 고용허가제 같은 구조적인 방법으로도, 이주노동자 단속이라는 직접적이고 야만적인 방법으로도 이주노동자를 억압한다.
소수자 혐오를 먹고 자라는 극우세력
자본주의는 억눌린 분노를 조작한다. 지배계급과 체제를 향해야 할 민중의 분노가 표적이 되기 쉬운 소수자를 향할 때, 혐오가 발생한다. 자본주의는 그 혐오를 동력 삼아 구조적 모순과 억압을 유지하고 강화하고자 한다. 마치 100년 전 파시즘이 유럽을 휩쓸던 때 거리에서 공포정치를 행하던 돌격대처럼 극우세력은 이주민을 포함한 소수자에 대한 혐오를 행동으로 옮기고 있다.
‘자국민보호연대’ 같이 이주노동자를 대상으로 직접적으로 폭력을 휘두르는 단체의 출현은 한국식 파시즘의 출현이라는 비극의 예고편이다. 동시에 자본주의 체제는 고용허가제나 산업재해 비가시화와 같은 구조적 억압을 끊임없이 반복하고, 국가폭력을 동원해 억압을 강화한다.
극우에 맞서, 이주노동자와 단결하자
혐중시위 등 이주민 혐오와 결부해 준동하고 있는 극우세력의 선동과, 제도적으로 뿌리 박혀 있는 구조적 모순을 일시에 해소하기에는 그 길이 요원해 보일지 모른다. 그러나 지난 3월 16일에 있었던 ‘2025 세계 인종차별 철폐의 날 기념대회’와 9월 21일에 있었던 ‘2025 민주노총 전국이주노동자대회’는 그 길의 방향을 명확히 보여준다.
다양한 이주민과 이주노동자들이 주체로 구성되어 발언하고 서울 시내를 행진하며 스스로의 요구를 가시화하는 모습, 그리고 이에 연대하는 정주노동자들이 대오를 이뤄 거리로 나서는 모습이 우리가 가야 할 길의 명확한 방향이다. 파멸의 길을 걸을 것인지 다가올 재난을 막고 근본적인 변혁을 통해 현실을 바꿔낼지는 노동자민중의 손에 달려 있다. 물리적 국경을 넘어 노동자 국제주의를 달성하는 일이 중요하듯, 한국 사회 내부의 국경을 넘는 연대도 그 어느 때보다도 요구되는 시점이다.
[참고기사]
“혐중 아니라며 “중국으로 가!”…SNS 소문이 갈등으로”, SBS 뉴스
“명동 일대 제한·금지 집회 40%가 ‘혐중’…올해만 5배 늘어”, 한겨레
“군대서, 공장서, 거리서…폭력으로 진화한 이주민 혐오”, 한겨레
“오늘도 명동 인근서 ‘혐중 시위’…200명 행진 신고”, 연합뉴스
“트럼프와 윤석열의 ‘스톱 더 스틸’”, 한겨레
“병영 내 괴롭힘으로 투신한 일병…육군 ”엄중히 인식, 엄정 처리할 것“”, 연합뉴스
“아리셀 참사의 교훈…산재 키우고 은폐시킨 근본 원인은 ‘불법파견’”, 한겨레
“기록되지 않는 죽음, 이주노동자 산재···93.6%는 원인불명”, 뉴스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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