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실 연대자의 입장에서 순회투쟁 참여를 꽤 오래 고민했었다. 나는 이 투쟁의 직접적인 당사자도 아니었고, 현대자동차 노동자도, 해고자도 아니었다. 하지만 이수기업 해고 노동자들과 함께하는, 연대하는 명예조합원(말벌 동지)으로서 함께하고 싶었다.
그런데 지금, 이렇게 글을 쓰며 되돌아보니 함께하길 정말 잘했다는 생각뿐이다. 7월 14일부터 18일까지 5일간의 순회투쟁은 잊을 수 없는 순간들의 연속이었다. 내 나이 20살, 누군가 내 인생에서 청춘이 무엇이었냐고 묻는다면, 나는 순회투쟁 5일간의 이야기들을 하며 그 순간들이 내 인생 20년 푸르던 봄의 한 장면이라고 말할 것이다.
7월 14일 순회투쟁 1일 차 : 정문 앞을 채운 강고한 연대투쟁
우리는 울산에서 현대자동차 전주공장으로 향했다. 마음속엔 설렘과 떨림도 있었지만, 솔직히 말하자면 걱정이 더 컸다. 아무리 같은 사업장이라고 해도 지역이 다르면 거리감이 있지 않을까? 하는 의문이 들어서였다. 혹시 우리끼리 외롭게 싸우게 되는 건 아닐까, 하는 불안감이 떠나지 않았다.
그런데 전주공장 앞에 도착하여 선전전을 준비하자 나의 불안은 모두 사라졌다. 현대자동차 전주공장 정문 앞을 가득 메운 지역 대오. 수많은 연대 동지가 서 있는 모습에 순간 벅차올랐다. 피켓을 들고, 현수막을 들고 강고하게 구호를 외치는 모두의 목소리에 순간 눈물이 핑 돌았었다.
현대차 전주공장 출근선전전
내 눈앞에 보인 장면은 이수기업 해고 노동자 동지들이, 그리고 연대 동지인 내가 그토록 바라던 꿈같은 한 장면이었다. 울산공장에서는 보거나 느끼지 못했던, 늘 마음속으로 그려왔던 장면이 눈앞에 펼쳐지니, 마치 기적이 일어난 장면 같았다.
정규직이든 비정규직이든, 원청이든 하청이든 그 모든 것들을 떠나 한마음으로 뭉친 우리들이었다. 고용형태의 경계와 지역의 차이 등 모든 것을 뛰어넘은 우리들의 강한 연대를 누가 막을 수 있겠는가? 푸르던 7월의 여름. 내 눈앞의 장면은 마치 여름밤의 꿈 같았다. 이 순간이 영원했으면 좋겠다고 생각하며 전주공장 앞에서 본 동지들의 눈빛을 하나하나 가슴속에 새겼다.
현대차 전주공장 출근선전전
순회투쟁 2일 차 : 탄압에도 꺾이지 않는 연대의 함성
현대자동차 전주공장이 같은 사업장이지만 지역이 다른 이야기라면, 순회투쟁 2일 차에 찾은 현대자동차 아산공장을 빼놓을 수 없다.
아산공장에 도착하여 투쟁가를 틀고, 선전전을 준비하는데 사측은 데시벨 측정기를 가지고 나오고, 아산서 정보과 경찰은 불법 촬영을 옹호하는 발언을 했다. 이런 상황들이 연대하는 입장에서는 꽤 긴장되는 순간이었지만, 이 상황이 나의 강고한 연대투쟁을 위축시킬 수는 없었다.
현대차 아산공장 출근선전전
사실 이날은 현대자동차지부가 아산공장 교섭과 출정식이 있던 날이었다고 한다. 그 때문에 현대자동차지부 활동가와 조합원은 참여하지 못하였다. 하지만 아산공장 사내하청지회 박정식 열사 추모제에 참여했던 현대자동차 열사회 이도한 동지가 함께해서 너무나 반가웠다.
이날 출근 선전전에는 우리가 외롭지 않도록 아산공장 사내하청지회 지회장과 동지들이 함께 연대해 주었다. 그 마음이 얼마나 고맙고 따뜻한지... 이수기업 해고 노동자들의 투쟁에, 지역을 넘어 마음을 모아주는 이 연대가 너무 감사했다. 그날 아산공장 앞에서 연대의 힘을 다시금 크게 느꼈다.
현대차 아산공장 출근선전전
순회투쟁 3일 차 : 그럼에도 우리는 결코 멈출 수 없다.
순회투쟁 3일 차 아침, 아산공장 출근 선전전을 진행했다. 선전전에는 아산공장 사내하청지회 동지들과 정규직 현장조직 새길 동지들이 함께해 주었다.
아산공장 동지들과 선전전을 마친 뒤 우리는 서울특별시교육청 앞 천막농성장에서 투쟁을 이어가고 있는 지혜복 동지를 만나러 출발했다. 전주와 아산에서 받은 따뜻한 마음을 이번에는 우리가 돌려줄 차례라는 생각으로 고속도로 위를 달렸다.
서울시교육청 점심시간에 지혜복 동지의 선전전에 함께한 후 간담회를 했는데, 지혜복 동지가 얼마나 외롭고 고된 싸움을 이어오고 있는지, 그 투쟁이 얼마나 정당한지를 직접 들으며 다시금 이수기업 해고 노동자들의 투쟁이 떠올랐다. 우리가 옳지만, 세상은 왜 등을 돌리는 걸까. 사측도, 서울특별시교육청도, 그 외면이 너무나도 화났다. 속에서 피가 거꾸로 솟는 기분이었다.
서울시교육청 앞. A학교 성폭력 사안 축소·은폐 규탄한다! 지혜복 교사 부당해임 철회하라!
간담회를 마치고 곧바로 여의도 국회의사당 앞 민주노총 총파업 대회로 이동했는데, 마침 하늘도 내 마음을 아는 것인지 비가 억수같이 쏟아졌다. 하지만 비에도 우리는 멈출 수 없었다. 차에서 피켓을 내려 꺼내 들고 빗속에서도 꿋꿋이 서서 싸움을 이어갔다. 우리는 승리 없이 후퇴할 수 없기 때문이었다.
민주노총 총파업 결의대회
민주노총 총파업 결의대회를 마친 뒤 ‘비정규노동자의집 꿀잠’으로 향했다. 이름 그대로, 꿀잠은 따뜻하고 포근한 공간이었다. 모두의 화장실을 시작으로 동지들의 따뜻한 환영, 그리고 내가 나로 있어도 여기서만큼은 괜찮다는 기분이 드는 곳. 이곳을 지나간 모든 동지가 참 행복했을 것 같았고, 나 역시 꿀잠에 올 수 있어서 다행이었다고 느꼈다.
순회투쟁 4일 차 : 비 속에서 피어난 연대의 꽃
꿀잠에서 한여름 밤의 편안한 잠을 청한 뒤, 순회투쟁 4일 차 아침이 밝았다. 꿀잠에서 동지들과 함께 서울고용노동청 기자회견장으로 향하려던 순간, 창밖으로 억수같이 내리는 비가 보였다. 전날 순회투쟁 중에 웹자보를 만들어 연대 동지들에게 급히 연락하며 미안한 마음으로 기자회견이 있다는 걸 알렸지만, 이런 날씨에 정말 누가 와줄 수 있을까 싶었다. 하지만 서울고용노동청 앞에 도착하자, 믿기지 않게도 동지들이 그 비를 뚫고 와 있었다. 흐린 하늘 아래 피어난 꽃들, 꽃들이 피어나 연대해 준 장면을 평생 고맙게 생각하며 살아야겠다고 다짐했다.
서울고용노동청 기자회견
기자회견을 마친 뒤 동지들이 노동부 장관 후보(현 노동부 장관)에게 면담 요청서를 제출하고 곧바로 국정기획위원회로 이동했다. 이수기업 해고 노동자와 세종호텔 공대위 동지가 국정기획위원회 담당자와 안에서 이야기를 나누는 동안, 바리케이드 바깥에 남은 동지들이 이수기업 피켓을 머리 위로 들어 올렸다. 서울고용노동청 앞에서 피어난 연대의 꽃들이 이곳에도 또다시 싹을 틔운 것이다.
국정기획위원회 요구안 전달
국정기획위원회에 요구안 전달을 마친 우리는 다시 서울고용노동청으로 향했다. 이번에는 투쟁 중인 금속노조 주얼리분회와 서비스연맹 이랜드 노동조합 동지들을 만나기 위해서였다. 주얼리 분회 동지들과 대화를 나누며, 이곳에도 나처럼 명예조합원(말벌 동지)들이 함께하고 있다는 사실에 가슴이 뭉클했다. 이곳에도 또 다른 청춘의 한순간이 피어나고 있다는 게 감동적이었다.
금속노조 주얼리분회 연대방문
간담회에서 들은 이야기들은, 단어 하나하나가 가슴에 비수처럼 날아왔다. 금세공 일을 28년 했지만, 이력서에는 노동조합을 만들고 고용보험에 가입한 단 5년의 경력만 남았다는 말. 23년의 세월이 유령처럼 사라진 것이다. 그 이야기를 듣는 순간, 이수기업 해고 노동자 박태성 동지의 “청춘을 바쳐 20년을 일했지만, 헌신짝처럼 버려졌다”라는 외침이 다시 귀를 스쳤기 때문이다. 유령이 된 23년의 경력, 헌신 끝에 버려진 20년의 청춘. 그 만남 앞에서 나는 노동운동의 의미를, 연대의 의미를 다시금 생각하게 된다.
간담회를 마친 우리는 세종호텔지부 농성장이 있는 명동 세종호텔로 향했다. 차량에서 내리자마자 눈에 들어온 것은, 지하차도 위 철골 구조물에 서 있는 세종호텔지부 고진수 지부장의 모습이었다. 20년 경력의 요리사인 그가 손에 든 것은 요리도구가 아닌 확성기였고, 그가 서 있는 곳은 주방이 아닌 지하차도 위 철골 구조물이었다. 고공 위에 내몰린 노동자, 모두의 내일을 위해 잠시 땅과 이별한 동지를 보며 나는 다시금 연대하여 싸울 힘을 얻고 투쟁의 의미를 다시 되새겼다.
세종호텔지부 연대방문
그날 마지막 일정은 고 김충현 노동자의 49재 추모제였는데, 비정규직 구조 속에서 끝내 죽음으로 내몰린 노동자를 생각하며 “산 자여 투쟁하라”라는 외침이 나를 다시 움직이게 하였다. 더 이상 어떤 노동자도 죽지 않는 세상을 반드시 우리가, 우리들이, 우리 모두가 만들어야 한다는 다짐으로 그날 일정을 마무리했다.
고 김충현 노동자 49재 추모제
순회투쟁 5일 차 : 승리 없이 후퇴 없다
우리는 서울에서 남양으로 이동해 순회투쟁의 마지막 밤을 보냈다. 마침내 순회투쟁 5일차, 마지막 날 아침을 맞았다.
남양연구소로 향하는 길, 기쁘지만 마음속에는 작은 걱정이 있었다. 과연 연대 동지들이 오늘도 함께해 주실까? 우리만 외롭게 선전전을 진행하는 것은 아닐까? 하는 걱정이 있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도착하자마자 마주한 것은 사측 관리자와 화성시 정보과 경찰의 격렬하고 기분 나쁜 환영이었다.
사측 관리자들은 집회 신고된 구역이 현대자동차 사유지라나 뭐라나 선전전 할 수 없느니 밖으로 나가라고 소리쳤다. 사측과 실랑이를 하는데 정보과 경찰이 끼어들면서 집회는 신고제가 아니라 허가제라나 뭐라나 황당한 소리를 늘어놓았다. 참 어이없는 순간이었지만, 우리는 그 어떤 걸림돌이 있더라도 멈추지 않았다.
그렇게 우리는 현대자동차 남양연구소 비정규직지회 동지들과 힘차게 선전전을 이어갔다. 같은 사업장이지만, 다른 지역에서 묵묵히 연대를 위해 나와준 동지들의 결의에 찬 눈빛은 다시금 나를 뛰게 하였다. 함께 구호를 외치던 남양연구소 앞의 공기, 그 시간의 온도, 그리고 우리의 목소리가 쉽게 잊지 못할 기억으로 가슴에 남았다.
현대자동차 남양연구소 출근선전전
선전전을 마치고 남양연구소 비정규직지회 동지들과 근처 편의점에서 간담회를 진행한 후, 우리는 강고한 연대의 마음을 담아 인사를 나눈 뒤 구미로 향했다.
구미에 도착하자마자 맞이한 건 살을 태우는 듯한 땡볕이었다. 숨이 막히는 그 뜨거운 열기 속에서 가장 먼저 떠오른 사람은 바로, 불탄 공장 위에서 550일 넘게 고공농성을 이어온 한국옵티칼하이테크지회의 수석부지회장 박정혜 동지였다.
박정혜 동지를 생각하며 한국옵티칼하이테크지회 사무실에 도착하니, 동지들이 따뜻하고 환한 웃음으로 우리를 반겨주었다. 그 순간 깨달았다. ‘이곳 동지들도 강고한 연대의 힘을 사랑하는구나’, 그리고 ‘우리의 발걸음이 이들에게 힘이 되어주는구나’ 느낄 수 있었다. 짧게 인사를 나눈 뒤 우리는 박정혜 동지를 만나러 고공농성장으로 이동하였다.
우리가 미리 준비해 온 “니토는 교섭에 나와라!”라는 슬로건을 머리 위로 높이 들자, 그 모습을 본 박정혜 동지가 불탄 공장 위에서 환하게 웃으며 사진을 찍는 모습에 가슴이 벅차올랐다. 나의 연대, 우리의 연대가 누군가에게 다시 살아갈, 투쟁할, 내일로 나아갈 힘이 되고 있다는 사실이 너무나도 기뻤다.
옵티칼하이테크지회 연대방문
나는 박정혜 동지를 향해 목청껏 외쳤다.
“승리 없이 후퇴 없다! 고공에서 땅으로! 비정규직 철폐 투쟁! 결사 투쟁!”
그 외침에 박정혜 동지도 불탄 공장 위에서 주먹을 쥐고 함께 구호를 외쳤다. 그 장면을 두 눈으로 담자, 나는 다시금 이 땅의 모든 노동자, 그리고 이수기업 해고 노동자들과 연대할 힘이 피어올랐다.
순회투쟁의 마지막 종착역인 울산으로 향하는 길, 전주부터 아산, 서울, 남양, 구미까지 우리가 걸어온 길 위에 피어난 연대의 꽃들이 하나둘 떠올랐다. 그래, 연대란 이런 것이구나. 승리 없이 결코 물러설 수 없는 우리기에 오늘의 내가 내일의 나를 다시금 뛰게 만드는구나.
울산에 도착해 동지들과 서로의 노고와 투쟁을 격려하고 손을 흔들며 각자의 집으로 돌아설 때, 문득 이런 생각이 들었다. 순회투쟁 5일간의 기억들이 마치 한여름 밤의 꿈을 꾼 것 같다고.
내 인생 20년 가장 푸르던 여름, 가장 뜨겁고 가장 진심이었던 청춘의 한 장면이 이렇게 막을 내리고, 내일부터 새로운 막이 올라가는 순간이었다.
“승리 없이 후퇴 없다! 고용승계 쟁취하자!”
옵티칼하이테크지회 연대방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