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니 약점을 알고 있다!” 노동자를 노예로 만드는 고용허가제 - 미봉책으로 생색만 내려는 이재명 정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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온라인신문

“니 약점을 알고 있다!” 노동자를 노예로 만드는 고용허가제 - 미봉책으로 생색만 내려는 이재명 정부

  • 이용덕
  • 등록 2025.07.30 09:41
  • 조회수 365

스리랑카 이주노동자 지게차 학대 사건 사진: 전남이주노동자네트워크

 

“니 약점을 알고 있다. 베트남으로 가든지, 불법으로 일하든지. 알아서 해라. 사업장 변경은 해줄 수 없다.”

 

최근 내가 일하고 있는 이주노동법률지원센터 소금꽃나무에 사업장 변경 상담을 하러 온 한 베트남 노동자가 사장의 말을 녹취해서 들려줬다. 이 노동자는 사업장 변경 횟수 세 번을 다 썼다. 임금이 한두 달씩 밀리고, 이 노동자에게만 지문인식기를 못 쓰게 하는 괴롭힘도 있어 노동자 책임이 아닌 사유로 사업장 변경을 허가해 달라고 했다. 내가 직접 사장과 통화도 했는데 사장은 이 노동자가 일을 잘 못하는 데다 자기가 키우는 텃밭에 음식물 쓰레기를 잘못 버렸다고 했다.

 

이 사장의 말이 너무 노골적이어서 놀라긴 했지만, 이 사례는 심각한 사례 축에 끼지도 못한다. 신발로 맞다 사업장 변경을 요구했더니 사장이 뜨거운 커피를 얼굴에 부어 충격을 받은 네팔 노동자의 사건도 진행하고 있는데, 이 사장은 이주노동자를 업무 방해로 고소하기까지 했다. (관련 기사 링크)

 

현대판 노예제도

 

최근 전남 나주의 벽돌 공장에서 스리랑카 이주노동자가 지게차 화물에 묶인 채 학대를 당한 사건이 사회적 파장을 일으키자, 정부가 고용허가제를 개선하겠다는 의지를 내비쳤다. 이 스리랑카 노동자가 몇 개월 동안 신고를 못 한 이유는 나쁜 일터를 떠날 자유가 없기 때문이었다. 직장을 옮기려면 사장의 허락이 있어야 한다는 고용허가제는 수많은 노동자의 삶을 파괴했다.

 

“다른 공장에 가고 싶어도 안 되고, 네팔 가서 치료를 받고 싶어도 안 되었습니다. 제 계좌에 320만 원이 있습니다. 이 돈은 제 아내와 여동생에게 주시기 바랍니다.”

 

2017년 충북 충주의 한 공장에서 일했던 네팔 이주노동자 케샤브 슈레스터는 이런 말을 남기며 목숨을 끊었다. 그는 12시간 맞교대 근무하면서 불면증, 우울증을 겪었다. 회사를 옮겨달라고 요청했고, 그게 어려우면 네팔에서 치료를 받고 올 수 있게 해달라고 요청했다. 모두 거부당했다.

 

고용허가제(E-9) 노동자는 입국 후 3년 동안 최대 3회만 허용된다. 이후 사업주의 재고용 허가 요청이 있는 경우 1년 10개월간 그 기간을 연장받을 수 있는데 이 기간에는 2회까지 사업장을 변경할 수 있다.

 

변경 사유는 근로계약 종료나 사업장 휴·폐업, 사용자에 의한 부당 처우, 성폭력, 임금체불 등 아주 일부의 경우에만 인정된다. 이마저도 대부분 노동자 스스로 입증해야 한다. 이렇게 해서 사업장 변경 승인을 받아도 90일 안에 새 일자리를 구하지 못하면 강제 출국 대상이 된다. 현대판 노예제도라 부르지 않으려야 않을 수 없다.

 

케샤브 슈레스타가 남긴 유서 사진: 청주청년이주민인권모임 이주민들레

 

미봉책으로 생색내기

 

최근 이재명 정부가 언론을 통해 흘리고 있는 개선안은 고용 기간 3년 이후 혹은 4년 10개월 이후에야 사업장 변경 제약을 완화하는 것이다. 3년 동안 죽으라 착취당하다 사장에게 1년 10개월 동안 재고용 허가를 받은 노동자 또는 그렇게 해서 총 4년 10개월(3년+1년 10개월)을 일하다가 귀국한 후, 소위 '성실 근로자'로 재입국한 노동자에게만 사업장 변경의 자유를 주겠다는 생각이다.

 

애초 당연히 보장되어야 할 권리를 3년 혹은 4년 10개월 후로 미루며, 3년 혹은 4년 10개월 후를 위해 자본가에게 더 철저히 순응하게 될 수밖에 없는 안을 마치 그럴듯한 개선안으로 포장하려 한다. 2021년 한국노동연구원이 내놓은 연구용역 보고서도 ‘1년 이후 사업장 변경 자유화 안’을 제시했는데, 그에도 훨씬 못 미친다. 또한 이 개선안은 여전히 이주노동자들을 고용 기간에 따라 갈가리 찢어 놓는다.

 

또한 정부는 예외적으로 인정되는 사업장 변경 사유를 확대하는 방안도 검토하고 있다고 한다. 정주 노동자들의 권리도 수없이 짓밟는 노동부와 법원을 상대로 이주노동자가 예외 사유를 스스로 입증하기란 어렵다. 노동자가 아니라 사업주에게 사업장 변경 제한 사유에 대해 입증 책임을 부여해야 한다.

 

횟수 문제도 중요하다. 앞에서 베트남 노동자에게 “니 약점을 알고 있다”고 얘기한 사장은 이주노동자에게 사업장 변경 횟수가 남아 있지 않다는 걸 잘 알고 있었다. 횟수 제한이 남아 있는 한 이주노동자들은 자신의 권리 주장이 카운트(변경 횟수)에 포함되느냐, 안 되냐를 신경 쓰게 되어 권리를 주장하기 힘들다. 아직 정부의 개선안이 확정되지 않았기 때문에 섣불리 얘기할 수 없지만, 지금까지 정부가 제시하고 있는 개선안은 일시적 미봉책으로 생색내기에 다름없다.

 

변경 사유와 변경 횟수를 말하기 전에 사업장 변경을 가로막는 제도 자체가 문제임을 명확히 해야 한다. 고용허가제는 평소에도 생산수단의 사적 소유를 바탕으로 노동자들을 억누르는 자본가들에게 막강한 힘을 실어준다. 이주노동자는 먼저 사표를 제출할 수 없으니, 사업장을 박차고 나올 자유가 없으니, 자본가들은 사업장의 노동 현실을 바꾸지 않아도 된다.

 

동정의 대상이 아니라 권리의 주체로

 

이주노동자에 대한 야만적 인권 침해는 새로운 일이 전혀 아니다. 2004년 8월 고용허가제 시행된 이래 이주노동자들은 살려 달라는 외침을 한 번도 멈춘 적이 없다. 그럼에도 이주노동자들의 고통은 당연한 것처럼, 어쩔 수 없는 것처럼 받아들여지고 있다. 이주노동자들은 여전히 동정의 대상으로 남아 있고, 다른 한편으로 이주노동자에 대한 차별과 혐오는 나날이 확산하고 있다. 극심한 경제위기 앞에서 ‘외부의 적’을 만들어 자기 살길을 찾으려는 퇴행적인 정서가 기승을 부리고 있다.

 

일시적인 미봉책은 이주노동자들을 지옥 같은 현실에 다시 매이게 할 뿐이다. 고용허가제는 국제노동기구(ILO)에서도 엄격히 금지하는 '강제노동'인데, 지금까지 수많은 정부는 고용허가제 자체는 그대로 두고 사유나 횟수만 조금씩 건드려왔다. 윤석열 정부는 이주노동자들에게 ‘권역 이동 금지’라는 억압까지 추가했다. 매일 이주노동자의 열악한 현실이 폭로되었지만, 현실은 바뀌지 않았다.

 

다른 한편으로 이주노동자들과 단결해 투쟁에 나서는 노동자들의 힘이 아직 너무나 부족하고, 이중 삼중의 억압 아래 놓여 있는 이주노동자들의 주체적 조직화도 너무나 더뎠기에 현실이 바뀌지 않았다.

 

어떻게 바꿀 수 있을까? 이주노동자들의 요구를 낮춘다고 투쟁 동력이 만들어지거나 이주노동자들의 주체적 조직화가 빨라지는 것도 아니다. 이주노동자들도 고용허가제 자체가 고통의 뿌리라는 것을 잘 알고 있다. 다시 한번 고용허가제가 회피할 수 없는 사회적 쟁점으로 떠오른 지금, 이제는 미봉책이 아니라 근본 대안을 위해 나아가야 한다.

 

고용허가제 완전 철폐, 사업장 이동의 자유 쟁취, 이주노동자 포함한 모든 노동자에게 근로기준법 적용을 소리 높여 외치자. 9월 21일 서울에서 열리는 전국이주노동자대회에 참여자를 조직하자. 현장에서부터 정주노동자와 이주노동자의 단결을 위해 노력하고, 이주노동자들이 권리의 주체로 일어설 수 있도록 있는 힘껏 지원과 연대를 조직하자. 계급적 연대, 사회적 연대의 깃발 아래 고용허가제 철폐 투쟁을 확산시키자.

 

"강제노동 철폐! 사업장 이동의 자유 보장!" - 2024년 전국이주노동자대회 사진: 이주노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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