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벽배송 제한 논쟁 2 - 천현우 작가의 전제는 쿠팡과 중소기업 노동 현실 둘 다를 바꿀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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온라인신문

새벽배송 제한 논쟁 2 - 천현우 작가의 전제는 쿠팡과 중소기업 노동 현실 둘 다를 바꿀 수 없다.

  • 이용덕
  • 등록 2025.12.01 15:10
  • 조회수 6,268

좀 뒷북이다 싶지만 얼마 전 온라인에서 논쟁이 된 천현우 작가(이하, 천현우)의 얘기를 소재로 새벽 배송에 제한 논쟁을 다시 짚어보자. [쇳밥일지(청년공 펜을 들다)]를 쓴 천현우 얘기는 이렇다. “쿠팡은 평균적 중소기업보다 좋은 일자리다…나도 새벽 배송을 없애고 싶지만, 전제가 있다. 노동자가 여타 중소기업에서 쿠팡보다 나은 대우를 받을 수 있어야 한다.”

 

뱀처럼 교활한 조선일보는 “키보드 진보, 진짜 노동자에게 당했다” 운운하며 천현우의 글을 새벽 배송 제한 반대 여론 형성을 위해 활용했다.

 

천현우는 ‘쿠팡 배송 일자리가 좋다는 얘기가 아니라 상당수 중소기업 일자리가 열악하다’는 뜻에서 얘기했을 거로 짐작한다. 그런데 쿠팡 배송 분야도 일자리의 종류가 다양하다. 다단계 하청구조로 이루어져 있고, 퀵플렉스라 불리는 단기 알바도 있다. 중소기업 일자리와 단순히 비교할 수는 없다. 그리고 정규직 배송 기사라 하더라도 산업재해, 노동강도를 생각하면 평균적 중소기업보다 좋은 일자리라고 쉬이 단정하기 어렵다.

 

물론 쿠팡보다 열악한 중소기업 일자리는 엄청 많다. 수많은 택배 노동자들은 다른 나은 선택지를 찾을 수 없어 택배에서 일한다. 내가 작년까지 택배하면서 만난 20~30대 젊은 택배 노동자들은 “어딜 가나 최저임금”이란 말로 택배를 선택한 이유를 설명했다. 바닥을 향한 경쟁은 노동자들의 선택지를 계속 좁힌다.

 

내가 비판하고자 하는 핵심 지점은 “노동자가 여타 중소기업에서 쿠팡보다 나은 대우를 받을 수 있어야 하는 것이, 새벽 배송 제한의 전제”라는 주장이다. 쿠팡이라는 거대 자본, 거대 플랫폼이 먼저 양질의 일자리가 될 수는 없는가? 중소기업 현실이 나아지지 않으면 새벽 배송 제한은 이뤄질 수 없는 꿈인가? 그렇다면 중소기업 현실이 얼마나 나아져야 새벽 배송 제한도 가능하다 말할 수 있는가?

 

혁명적 변화

 

지난 글에서 얘기했듯, 최근 택배 노동자들에게 일어난 혁명적 변화는 2020년 이른바 ‘사회적 합의’에 따른 분류 인력 투입이었다. 택배 노동자들이 ‘까대기’라 부르는 분류 작업의 부담을 덜었기에 노동시간이 줄고 노동강도가 약화했다. 쿠팡을 제외한 CJ대한통운, 한진, 롯데 등에서 과로사가 감소한 이유는 바로 분류인력 투입 때문이었다. 택배 자본들은 이윤 감소를 이유로 반대했지만, 택배 노동자들의 끈질긴 투쟁과 과로사를 막으려는 노동자 민중의 지지로 분류인력 투입이 이뤄졌다. 분류 노동자들의 노동조건은 여전히 풀어야 할 과제지만, 분류 인력 투입으로 택배 기사들의 이직률은 대폭 감소했다. 택배 노동자의 일자리 감소도 당연히 없었다.

 

이 원리가 새벽 배송 제한에도 적용되어야 하고, 적용될 수 있다. 민주노총 택배노조는 ‘자정부터 오전 5시까지의 초심야시간대 배송을 제한하고 오전 5시에 출근하는 근무조가 새벽배송 물품을 배송하는 방식’을 제안했다.

 

2020~2021년 코로나가 유행하여 물량이 산더미처럼 쌓일 때도 노동자들은 ‘코로나 관련 긴급 물품’이라 표시된 물품은 다 당일 배송했다. 이때는 물량이 너무 많아 생수나 휴지, 쌀 등까지 당일 배송하라는 압력은 지금처럼 세지 않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물량이 너무 많아, 대부분의 택배 기사가 허덕일 수밖에 없었는데, 그래도 코로나 긴급 물품은 다 당일 배송했다.

 

명절 때처럼 각 플랫폼에 배송 스케줄을 미리 공지해, 소비자들의 계획에 차질이 없도록 만들고, 긴급 물품과 아닌 물품을 구분한다면, 노동자들이 물량과 배송 시간을 조절·통제할 수 있다면, 새벽에 소비자들이 꼭 받아야 하는 물품은 충분히 배송할 수 있다. 택배 노동자들은 택배 자본가들보다 몇십 배 더 소비자들의 편리를 생각하며, 고객에 대한 책임감으로 일한다.

 

이 고귀한 마음을 착취에 이용하는 게 바로 자본가들이다. 1인 배송을 2인 배송으로 바꾸는 것, 노동자들에게 물량을 조절하고 통제할 수 있는 권한을 주는 것, 그렇게 해 초심야시간 노동이 아니더라도 배송을 유지할 수 있는 길을 만들어내는 것 등, 노동자를 위한 대안을 거들떠보지도 않으면서 오직 더 강한 착취 방안만 모색하는 게 바로 자본가들이다.

 

현장에서는 일자리 감소, 물량 감소 때문에 새벽 배송 제한을 꺼리는 노동자들도 많다. 그런데 일자리를 충분히 늘릴 수 있는데도 늘리지 않는 건 쿠팡을 비롯한 택배 자본가들이다. 건당 수수료 방식으로 임금을 지급하기에 노동자들이 물량에 목맬 수밖에 없는 구조를 만든 것도 자본가들이다. 만약, 일자리가 지켜질 수 있다면, 건당 수수료가 아닌 안정적이고 고정적인 임금체계를 가질 수 있다면, 새벽 배송을 제한하고서도 기존의 임금을 보전할 수 있다면, 생명을 위협하는 새벽 배송을 자발적으로 선택할 노동자들이 얼마나 되겠는가? 결국 복잡한 문제를 풀 수 있는 열쇠는 노동시간 단축, 대대적인 인력 투입 등 노동자 건강과 생명을 위해 조치를 하려는 의지다.

 

버티기는 대안이 될 수 없다

 

작년 가을 봉천동에서 밤늦게까지 배송할 때 같은 구역에서 자주 마주치는 쿠팡 기사에게 쿠팡의 배송 수수료 삭감 얘기를 들었다. 쿠팡이 120원을 삭감했다고 해서 “그런데도 한 마디 못 하냐?”라고 물었더니 씁쓸한 표정으로 “불만 있으면 나가, 일할 사람 줄 서 있으니”라는 짧은 말을 남기고 배송을 위해 골목을 뛰어 올라갔다.

 

제주 쿠팡 새벽배송 택배노동자 故 오승용씨가 지난 4월 대리점 관계자와 나눈 카카오톡 대화 내용. 사진=유족 제공. ©제주의소리

 

천현우는 이렇게 일자리 경쟁에 내몰릴 수밖에 없는 노동자들의 현실을 얘기했을 수 있다. 그런데 천현우의 논리를 따라가면 “쿠팡보다 열악한 현장이 있다”는 결론만 나올 뿐, 쿠팡과 중소기업 노동 현실 둘 다를 낫게 할 방도는 보이지 않는다.

 

천현우의 전제(“중소기업에서 쿠팡보다 나은 대우를 받을 수 있어야 한다”)는 자본주의 구조를 유지하고선 결코 이루어질 수 없는 전제다. 재벌 대기업들은 하청·비정규직 구조를 활용해 천문학적 이윤을 긁어모아 왔다. 이것이 한국 대기업들이 국제 경쟁에서 경쟁력을 유지할 수 있었던 중요한 이유였다. 재벌과의 수직계열화·종속성은 수많은 중소기업의 생존조건이었다. 납품단가 인하 등 대기업의 압력은 중소자본의 이윤 하락으로 이어졌다. 중소자본가들은 비정규직 확대, 착취강화로 이윤을 확보하려 했다. 한국 자본주의는 단 한 번도 이 길에서 벗어난 적이 없다. 위기에 빠진 자본주의는 자본가들에게 더더욱 이 길을 강요한다.

 

쿠팡을 비롯한 플랫폼 산업의 고강도 착취는 마치 플랫폼 산업 노동자들의 저임금과 열악한 노동 현실이 바뀔 수 없는 운명처럼 여겨지게 만든다. 열에 아홉은 망하는 경쟁의 정글이 우거지고, 위장된 실업자들이나 마찬가지인 수많은 영세 자영업자가 몰락한 후, 무산자들은 흐르고 흐르다 플랫폼 산업으로 집적되었다. 플랫폼 산업의 성장은 이런 불행한 상황을 배경으로 이뤄졌다. 이런 불행한 상황을 이용해 플랫폼 자본들은 이 산업의 임금을 최저 수준으로 묶어둘 수 있었다. 일반적인 산업의 평균임금을 주지 않고, 정규직으로 고용해서 노동기본권을 보장하지도 않으면서도, 택배, 라이더, 대리운전, 가사서비스, 간병, 학습지 등 플랫폼 산업을 확장시킬 수 있었다. 크고 작은 자본이 플랫폼 산업에 뛰어들었고 경쟁은 더 치열해지고 있다.

 

출처: 슬로우뉴스

 

택배 산업에서도 자본가들의 경쟁 격화는 노동자들의 경쟁 격화로 뒤바뀌어 더 치열해지고 있다. 택배 노동자들의 노동조건은 구역에 따라 매우 다르다. 사실상 터미널이 아니라 구역이 가장 중요한 ‘일터’다. 예를 들어 한 시간에 50~60개를 배송할 수 있는 아파트 단지와 한 시간에 30개 배송하기도 힘든 빌라 밀집 지역, 심지어 엘리베이터도 없는 지역은 노동조건이 확연히 다르다. 평지인가, 교통 혼잡지역인가도 중요하다.

 

이 때문에, 좋은 구역을 둘러싼 경쟁이 존재한다. 아파트와 지번을 섞어 구역을 배정하면 되지 않느냐고 할 수 있다. 하지만, 구역과 물량에 대한 결정권은 자본가들이 틀어쥐고 있고, 노동자 사이의 경쟁도 영향을 미치기에 공평한 배정은 쉽지 않다. 열악한 구역에서 계속 일하는 노동자들은 노동강도를 견디지 못해 그만두고, 수시로 담당자가 바뀐다. 여기에 쿠팡이 불붙인 당일 배송 경쟁, 배송 속도 경쟁은 노동자들을 더 극한 경쟁으로 몰아붙이고 있고, 그만큼 노동자들의 단결은 더 어려워지고 있다.

 

그렇다고 해서 버티기만 해야 하는가? 경쟁에서 살아남기 위해 심야 배송도 어쩔 수 없이 받아들여야 하는가? 플랫폼 산업의 저임금과 열악한 노동 현실을 운명처럼 받아들여야 하는가? 단연코 아니며, 노동자들은 저항의 길을 찾아왔다. 노란봉투법이 제정된 이유도 학습지, 택배, 라이더 등 수많은 특수고용노동자의 끈질긴 투쟁이 있었기 때문이다. 만약 이 노동자들이 다른 기업, 다른 산업의 현실을 이유로 생존권을 보호하기 위한 요구를 미뤘다면 플랫폼 산업의 저임금, 과로사는 조금도 개선되지 않았을 것이다. 전체 노동자의 노동 조건 상향은 치열한 계급투쟁 없이는 절대 이뤄질 수 없다.

 

노동자가 여타 중소기업에서 쿠팡보다 좋은 대우를 받을 수 없다고 해서 새벽 배송이 계속 유지되어야 한다면, 새벽 배송은 평생 제한될 수 없다. 그리고 쿠팡의 노동자들이 싸우지 않고 기다린다고, 누군가 중소기업 노동자의 현실을 개선해주지 않는다. 중소기업 노동자의 현실을 개선하는 건 쿠팡 택배노동자와 중소기업 노동자가 계급적 요구를 내걸고 함께 총자본에 맞서 투쟁할 때에만 가능하다.

 

중소기업과 쿠팡 노동자 모두의 현실을 개선하는 투쟁

 

먼저, 새벽 배송을 전기, 수도, 통신, 교통, 응급의료 등과 똑같이 볼 수 없다. 전기, 수도, 통신, 교통, 응급의료 등 분야에서 지금도 수많은 야간노동이 존재한다. 사회를 위해 필요하고 긴급한 야간노동을 없앨 순 없다. 대신 이러한 필수 야간노동의 표준노동시간은 노동자의 건강과 생명을 위해 4시간 이하로 단축되어야 하며, 인력이 대폭 충원되어야 한다.

 

그런데 심야 배송까지 필수노동이라 볼 수는 없다. 노동시간 단축, 그리고 기후정의라는 관점에서 볼 때 노동자의 모든 시간이 과잉생산과 이윤 축적, 속도 경쟁을 위해 조직되는 건 전혀 바람직하지 않다. 전체 노동자들의 노동조건 향상을 위해서라도 심야 배송은 없어져야 한다. 그리고 새벽배송 논쟁은 다른 산업의 야간노동 단축과 노동자의 건강과 생명 보호라는 논쟁으로 확대되어야 한다.

 

국민의힘 한동훈은 새벽 배송 제한이 “목숨을 각오하고서라도 새벽 배송에 뛰어들 수밖에 없는 사람들의 일자리를 빼앗는다”라고 주장한다. 극도로 위험하고 불안정한 일자리라도, 노동기본권도 보장되지 않는 자리라도 받아들일 수밖에 없는 수많은 실업자, 가난한 노동자를 진심으로 걱정하는 척하면서 말이다.

 

그런데 한동훈의 말대로 새벽 배송을 유지하면 노동자들의 실업과 가난이 사라지는가? 결코, 아니다. 노동생산성의 발전, 사회적 수요의 변동, 경기 상승과 하강으로 취업 노동자들이 하루아침에 실업자로 전락하는 건 자본주의 역사 내내 끊이지 않았던 일이다. 개별 자본, 개별 산업 부문 간의 무정부적 생산을 특징으로 하는 자본주의는, 노동인구를 노동생산성의 발전과 사회적 필요에 따라 합리적으로 재배치할 능력이 없다. 실업은 한 줌 자본가들이 사회적 생산수단을 독점하고 이윤 획득을 위해 무정부적 경쟁을 일삼는 자본주의 체제의 산물이다.

 

새벽 배송 제한이 기존 노동자의 일자리 박탈로 이어지지 않고 일자리 유지·확대로 이어질 수 있는 방법은 충분히 있다. “임금삭감 없는 노동시간 단축을 통한 일자리 나누기”를 통해 말이다. 노동시간을 단축하고 0시 이전, 오전 5시 이후로 기존인력을 재배치(충원)하면 된다. 노동자 동의 아래 구역과 업무를 조정하는 방식을 쓸 수도 있다. 장시간 노동의 대명사인 택배 산업은 노동시간 단축이 꼭 필요하다. 노동시간을 획기적으로 단축하면 자본은 기존 배송량을 유지하기 위해 더 많은 노동자를 고용해야만 한다. 택배만이 아니라 화물, 물류 산업에서도 “임금삭감 없는 노동시간 단축을 통한 일자리 나누기” 요구로 뭉쳐 투쟁을 전개해야 한다.

 

이 요구가 희생해야 하는 건 단 하나, 자본가들의 무제한적인 이윤축적의 욕망이다. 이 요구는 취업 노동자들과 실업 노동자들, 예비 노동자들을 아우르는 노동자계급의 단결 요구라는 결정적 의미가 있다. 물론 이 요구를 쟁취하기 위한 거대한 투쟁은 하루아침에 만들어지지 않는다. 하지만, 이 전망을 향해 나아가야 한다. 전체 노동자의 노동조건을 방어하고 향상할 다른 전망은 없기 때문이다.

 

자본의 이윤을 침해하는 과감한 투쟁 없이는 질 좋은 일자리와 노동조건 개선은 불가능하다. 분류 인력 투입을 택배 자본이 기를 쓰고 막은 이유는 단 하나, 자신의 이윤이 침해당하기 때문이었다. 지금도 쿠팡을 비롯한 자본가들은 소비자들의 편리를 앞세우고 부추기며, 더 많은 이윤을 거둬들이기 위해 당일 배송, 주 7일 배송, 새벽 배송을 마구잡이로 밀어붙이고 있다. 노동자와 노동자 간의 갈등, 노동자와 소비자 사이의 갈등을 유도하면서 말이다.


수많은 노동자가 과로로 죽었고, 지금 이 순간에도 죽어가고 있다. 새벽 배송 제한 논의는 늦어도 한참 늦었다. 다른 요구도 중요하다. 노동자들의 요구는 새벽 배송 제한만이 아니기 때문이다. 택배노조는 △과도한 속도경쟁 규제 △노동강도 완화 △노동시간 단축 △택배기사 휴식권·건강권 보장 △적정 수입 보전을 위해, 쿠팡에 △일요일 및 법정공휴일 의무휴업 실시 △휴일배송과 새벽배송은 꼭 필요한 경우로 한정하고 이에 대한 추가 수수료 보장 △분류작업(통소분)은 택배사가 책임지고 담당 △프레시백 회수·처리 별도 인력 운영 △다회전 배송 폐지 △클렌징(임의 계약 해지)제도 폐지 △배송마감시간 완화 등 배송마감시간(PDD) 제도 개선 △주간 근무시간을 주간 60시간, 야간 46시간으로 제한 △주 5일근무 제도화 △부피와 무게에 따른 표준 수수료 도입 △최저수수료제 도입 등을 요구하고 있다. 이 모든 요구는 꼭 필요하고 실현가능하다. 자본의 이윤 논리에 갇히지 않고, 단결과 투쟁을 조직하기 위해 모든 힘을 쏟아붓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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