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고] 반도체 찬가 뒤에 숨겨진 하청노동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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온라인신문

[기고] 반도체 찬가 뒤에 숨겨진 하청노동자

사진: 민주노총 경기도본부

 

‘10만 전자’ 뒤에 감춰진 반도체 노동자

 

지금 한국 사회는 반도체 찬가를 부르고 있다. 반도체산업은 한국 전체 수출액의 1/4인 25.6%를 차지하며 한국 경제의 많은 부분을 담당하고 있기 때문이다. 그리고 이 찬가의 중심에는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 같은 재벌 대기업이 있다.

 

그러나 많은 반도체 노동자에게 반도체산업은 신화가 아니라 괴담이었다. 수많은 노동자가 주야 교대근무를 하며 고강도 노동에 시달렸고 유해한 작업 환경에서 일을 하다가 병에 걸리거나 사망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많은 직업병 피해자가 제대로 된 보상을 받지도 못했다. 그간 반도체산업 성공 신화는 노동자를 착취해서 쌓아 올린 핏빛 금자탑이었다.

 

특히 2007년 3월, 故 황유미씨의 사망은 삼성전자의 열악한 노동 환경과 비인간적인 경영을 세상에 알렸다. 이후 수많은 투쟁으로 삼성전자의 사과와 피해보상 약속을 이끌어냈다. 그러나 여전히 삼성전자에는 장시간 노동, 유해 화학물질 노출, 살인적 경쟁을 부추기며 회사에 대한 절대적 복종을 요구하는 인사고과 제도 등 문제가 산적해 있다.

 

삼성전자 비정규직 노동자는 정규직 노동자보다 훨씬 더 열악한 처지에 놓여 있다. 하청노동자들은 고강도·저임금·장시간 노동을 감내하며 여러 산업재해에 시달린다. 그럼에도 원청 사업주는 책임을 회피한다. 원청 자본에 맞선 투쟁을 확대하지 않는 한, 반도체 노동자는 또다시 죽고, 다치고, 병든다.

 

투쟁하는 반도체 하청노동자들

 

삼성전자에서 근무하는 하청노동자의 규모 및 현황은 자세히 공개된 바가 없다. 다만 삼성전자옴부즈만위원회에서 발간한 <종합진단보고서>에서는 2018년 8월에 삼성전자 사내하청업체가 150여 개에 달하며, 삼성전자가 진행하는 사내하청 노동자 대상 교육프로그램 수료인원이 36,000여 명에 달하는 것을 확인할 수 있다. 이를 고려하면 현재도 거대한 규모의 하청노동자가 삼성전자 사업장에서 근무하고 있을 것으로 추정된다.

 

거대한 규모에 비해서 직접 투쟁에 나서고 목소리 내는 노동자는 아직 소수이다. 금속노조 경기지부 이앤에스지회와 서비스일반노조 명일지회가 대표적이다. 두 곳 모두 삼성전자의 사내 하청 노동자들이 만든 노동조합이다. 이들은 ‘10만 전자’ 뒤에 숨겨진 하청노동자 착취와 탄압의 실태를 알리며 투쟁하고 있다.

 

금속노조 경기지부 이앤에스지회가 이앤에스 사측을 상대로 거둔 승리로, 다른 사내하청 노동자들이 이앤에스지회의 투쟁을 주목한 바가 있다. 노조는 통상임금 확대를 요구했으나, 사측은 이를 거부하고 단체협약 합의를 거부해 왔다. 이는 이앤에스 사측 혼자만의 결정이 아니라 인건비를 줄이기 위해 사내하청 업체들에 기존 3조 2교대제의 4조 3교대 전환을 지시한 원청 삼성전자의 압력이 만든 결정이었다. 즉 삼성전자가 사내하청 노동자의 임금과 노동조건을 결정하는 것이다.

 

이앤에스지회는 이에 맞서기 위해 2025년 2월부터 금속노조 경기지부와 함께 출근선전전을 진행했으며, 6월 18일에는 삼성전자 기흥캠퍼스 앞에서 천막농성에 돌입했다. 하청노동자와 원청노동자를 통틀어, 기흥 캠퍼스 앞 천막농성은 이앤에스지회가 처음이었다. 이엔에스지회는 같은 해 7월 8일 사측과 단체협약을 맺어 승리를 거뒀다. 당시 이앤에스지회의 최창섭 지회장은 “노조법 2᛫3조 개정은 이앤에스지회의 여정뿐만 아니라 삼성전자 사내 협력회사 노동자, 모든 비정규직 노동자의 노동권 확대에 필수”라고 강조하기도 했다.

 

한편, 서비스일반노조 명일지회 노동자들은 삼성전자 서초사옥 앞에서 여러 차례 선전전을 진행했다. 그리고 지난 2025년 12월 18일에는 다가오는 2026년 투쟁을 다짐하는 결의대회를 열었다. 이들은 ‘하청노동자의 노조할 권리’, ‘고강도᛫저임금 노동 철폐’를 들고 선전전에 나섰다. 이처럼 삼성전자의 하청노동자가 사옥 앞에서 정기적으로 선전전을 진행한 것은 이례적이다.

 

많은 명일 노동자는 3조 2교대로 하루 12시간 무거운 웨이퍼 박스를 드는 반복작업으로 근골격계 산재에 시달렸다. 이에 노조는 4조 2교대 전환을 요구했다. 명일 노동자들의 요구에 대한 사측의 답변은 노조 탄압으로 돌아왔다. 사측은 이유 없는 전환배치, 징계해고, 계약갱신 거부로 노조 사무국장을 표적 삼아 탄압했다.

 

또한 원청 삼성전자의 탄압도 있다. 삼성전자는 ‘하도급 돌려막기’로 명일 노동자 126명의 해고를 강행했다. 다른 업체와 계약을 하면서도 해고된 명일 노동자 고용 승계는 거부했다. 이처럼 원청 삼성전자의 탄압으로 인해 하청노동자의 노동기본권은 박탈당하고 있다. 이러한 탄압에도, 지난 2025년 12월 18일 삼성전자 서초사옥 앞 결의대회에서 이재범 명일 지회장은 ‘2026년에도 삼성전자를 상대로 강하고 새로운 투쟁을 전개해야 한다’고 외치며 ‘반도체 하청노동자의 힘을 모아야 한다’고 강조했다.

 

사진: 명일지회

 

모든 반도체 하청노동자의 단결과 연대 해답

 

반도체산업은 자본주의의 작동원리를 잘 보여준다. 반도체 신화 뒤에는 숱한 비정규직 노동자에 대한 초과착취가 있다. 국가는 반도체특별법으로 반도체 자본에 노골적인 특혜를 제공하면서도 반도체산업 다단계 하청구조와 그 안에서 벌어지는 노동탄압에 대해서는 단 한마디도 하지 않는다. 반도체산업 시장경쟁 심화로 반도체 자본의 노동자 민중에 대한 착취와 수탈 더욱 심화할 전망이다. 반도체를 생산하는 모든 노동자의 단결과 투쟁으로 거대 자본의 공격에 맞서야 한다.

 

물론 아직 모든 반도체 노동자가 투쟁에 나설 수 있는 것은 아니다. 150여 개에 달하는 사내하청업체 중 노동조합이 있는 업체는 4개밖에 없다. ‘반도체 하청노동자의 힘을 모아야 한다’고 강조했던 이재범 지회장의 말처럼, 투쟁을 경험한 하청노동자들은 전체 반도체 하청노동자의 단결을 요구하고 있다. 명일지회가 당한 노조 탄압에서 드러나듯, 개별 업체의 투쟁만으로는 거대 자본 원청의 탄압을 극복하는 데에 한계가 있다. 또한 거대 자본의 탄압은 개별 기업 노동자에게만 향하는 것이 아니라, 공급망 내 전체 노동자를 향하기에 하청노동자의 단결은 더욱 중요하다. 삼성전자는 인건비를 줄이기 위해 하청 업체들에 기존 3조 2교대를 4조 3교대로 전환하라고 지시했다. 이로 인해 많은 하청노동자가 실질임금 하락을 겪어야 했으며, 반도체산업의 고강도᛫저임금 노동체제는 더욱 심화되었다. 이처럼 원청 삼성전자는 전체 하청노동자에게 실질적인 지배력을 행사한다. 개별 업체의 투쟁을 넘어 삼성전자라는 거대 자본에 맞선 전체 하청노동자의 단결을 추동해야 한다.

 

온전한 원청 교섭을 위해서도 하청노동자의 단결과 투쟁이 중요하다. 올해 3월 10일부터 노란봉투법이 시행된다. 그러나 자본가와 결탁한 이재명 정부는, △교섭창구 단일화로 하청노동자의 교섭을 봉쇄하고 △대 원청 교섭의제를 제한하는 시행령으로 온전한 원청 교섭의 길을 가로막고 있다. 법이 온전히 존재해도 자본은 노동자의 요구에 쉽사리 응하지 않는다. 하물며 현 상황에서 삼성전자와 같은 거대 자본과의 직접 교섭은 개별 하청업체 노동자들만의 단결로 가능한 일이 아니다. 이미 투쟁에 나선 노동자들이 왜 싸우는지를 사업장 경계를 넘어 알리자. 그렇게 모든 반도체산업 노동자의 노동조합 건설과 단결을 추동하자. 또한 원청 자본에 맞서 싸우는 모든 노동자의 연대를 확대하자. 비정규직 노동자의 피와 땀과 눈물로 돌아가는 반도체산업, 이제는 바꿔야 한다.

 

사진: 명일지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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