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편집자 주] 2월 14일 <백기완 추모·비정규직 철폐 내 삶을 바꾸는 민주주의 2차 대행진>, 전국삼성전자노동조합 한기박 동지의 반도체특별법 규탄 발언을 본인 동의를 얻어 게재합니다.
먼저, 이 땅의 민주화와 노동자들의 투쟁, 그리고 통일을 위해 평생을 바치신 백기완 선생님을 추모합니다. "딱 한 발 떼기"를 강조하신 선생님을 저는 사실 이제야 알게 되었습니다.
안녕하세요. 저는 2012년에 입사하여 지금까지 삼성전자에서 반도체 칩 개발업무를 하고 있는 한기박입니다. 여러분 혹시 최근 이슈화된 반도체 특별법을 알고 계십니까? 저는 이 문제를 알리고자 이 자리에 섰습니다. 반도체 특별법에는 연구개발 노동자들의 노동시간을 무제한으로 푸는 조항이 들어있습니다.
우리는 회사의 부품이 아닙니다. 우리도 사람입니다. 회사의 개발을 위해 쉼 없이 일만 해야 하는 것이 과연 맞는 일일까요? 현재도 제 동료들은 "죽을 것 같다"며 호소를 합니다. 저 또한 프로젝트 완수를 위해 석달 야근 끝에 3일 동안 못 자고 일하다 4일째 심장이 엇박자로 뛰며 위험해질 뻔한 경험이 있습니다. 야근을 함께하시던 선배님께서 화장실에 가시다가 쓰러졌지만 저는 몽롱한 정신에 선배에게 달려갈 생각도 못 했습니다.
워낙 장시간 근로가 만연한 사회이다 보니 다들 몰아치기로 일해본 경험을 가지고 있을 것 같습니다. 그렇지 않나요? 몰아치기 노동이 매우 위험하단 것을 어떻게 모를 수가 있을까요? 그럼에도 민주당 이재명 대표는 몰아치기가 왜 위험한지 모르겠다고 시치미를 뗍니다. 사회적 대화를 하자고 하면서도 재계의 입장만 대변하고 있습니다.
사실 반도체 동종업계인 SK하이닉스는 안 하고 있는 초과근무를, 삼성은 특별연장근로 제도를 통해 초과노동을 시켜왔습니다. 이뿐만 아니라, 집에서는 RBS라는 원격지원 시스템으로 재택근무를 평일, 주말 가리지 않고 공짜 노동을 하고 있습니다. 우리는 돈을 더 받고자 하는 것이 아닙니다. 그저 우리는 사람임을 알리고 싶습니다. 우리는 일하는 기계가 아닙니다. 우리는 과로하며, 건강을 해치기 위해 일하는 것이 아닌, 보다 나은 삶을 살기 위해 일하는 것입니다.
또 삼성반도체 사업장에서는 방사선 피폭 중대재해, 유해 화학물질로 인한 화상 사고, 가스 누출 등으로 많은 노동자들이 건강을 위협받고 있습니다. 산재 승인을 받아야 마땅하지만, 노출된 유해 화학물질에 대해 회사는 '국가 핵심 기술'이라는 명목 아래 정보를 공개하지 않은 채 책임을 회피하고 있습니다.
이런 상황에서 노동시간 최소 규제인 52시간 상한제마저 없애는 반도체 특별법이 과연 온당한 일입니까? 반도체 노동자들은 언제까지 이 고통을 감내해야 합니까? 장시간 노동이 연구개발 성과를 낸다는 과학적 근거도 전혀 없고, 오히려 장시간 노동은 생산성 저하, 각종 산재 발생을 높인다는 연구결과가 많이 있음에도 여야 의원들은 모른 체합니다. 오로지 삼성 등 재벌만을 위해 반도체 특별법을 만들려고 심혈을 기울이고 있습니다. 언제까지 우리는 과로와 질병으로 병들어야 합니까. 왜 노동자의 피와 눈물로 반도체 산업이 유지되어야 합니까?
저와 제 동료들은 이런 잘못된 현실을 바로잡고 싶습니다. 아직은 이러한 광장에서 반도체 노동자들의 목소리는 잘 들리지 않습니다. 이제부터 시작입니다. 우리 반도체 노동자들도 이 민주주의의 광장에서 함께 싸워 함께 이기고 싶습니다. 많이 배우고도 싶습니다. 전쟁 같은 일터에서 인간답게 살고자 하는 목소리를 더욱 키우고 동료들과 함께 잘못된 세상을! 재벌만을 위한 정책을! 바꾸기 위해 투쟁하겠습니다. 그것이 한평생 세상을 바꾸고자 투쟁한 고 백기완 님을 제대로 추모하는 길인 것 같습니다. 들어주셔서 감사힙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