애국주의 물결에 휩쓸리는 금속노조 - 지배자들과 한배를 타고 노동자의 생존권을 지킬 순 없다!
  • 해당된 기사를 공유합니다

온라인신문

애국주의 물결에 휩쓸리는 금속노조 - 지배자들과 한배를 타고 노동자의 생존권을 지킬 순 없다!

  • 이용덕
  • 등록 2025.07.25 10:51
  • 조회수 200

사진: 금속노조

 

지난 7월 초 전미자동차노조(UAW) 간부들이 금속노조 초청으로 한국에 왔다. 전미자동차노조는 2007년 기존 노동자에게 적용되는 임금협약은 그대로 두되, 신규 채용 노동자에게는 기존 노동자의 절반 정도만 받도록 하는 '이중임금제'를 합의한 노조로 오랫동안 어용적 행보로 비판받아 왔다. 2023년 이른바 민주파 집행부가 등장해 차별임금제를 상당히 완화하는 단체협약을 체결하기도 했지만, 최근 그 한계를 여지없이 드러내고 있다.

 

전미자동차노조는 대대적인 이민자 추방, 공무원 대량 해고 등 노동자 민중을 향해 야수적인 공격을 퍼붓고 있는 트럼프 정부의 관세정책을 지지하고 있다. 그러거나말거나(?) 금속노조는 아무런 비판도 없이 이들을 초청하고 함께 기자회견과 토론회를 개최했다.

 

양 노조는 자동차산업 공급망 위협에 공동 대응하기로 약속했다. 자본의 의도에 따라 분열하고 반목하지 않고 함께 협력해 싸우며 미래를 만들어 나가겠다고 얘기했다. 그러나 이는 양 노조의 실제 행보와는 다른 포장에 불과하다. 

 

관세전쟁이 자동차산업 노동자의 승리?

 

전미자동차노조는 트럼프의 관세전쟁을 ‘자동차산업 노동자의 승리’라 치켜세웠다. 전미자동차노조 위원장 숀 페인은 3월 26일 트럼프가 미국 시장에 들어오는 승용차와 트럭에 대한 주요 관세를 발표하자 이렇게 말했다.

 

“우리는 수십 년간 노동자 공동체를 파괴해 온 자유무역 재앙을 끝내기 위해 행동에 나선 트럼프 행정부를 환영한다.”

 

전미자동차노조는 자동차 관세가 ‘미국 내 생산 회귀를 이끄는 가운데, 일자리를 해외로 이전하고 지역 경제를 황폐화한 정책으로부터 손해 입은 블루칼라 지역사회를 회복시키는 조치’라 주장한다. 숀 페인은 북미에서 판매되는 폭스바겐 자동차의 75%가 멕시코에서 생산된다며 고율 관세로 매우 짧은 시간에 이 생산을 다시 미국으로 가져올 수 있다고 강조했다.

 

노동자의 생존과 고용은 오직 자본의 생존, 국제적 승리에 따라 결정된다는 노사협조주의적 관점이 깔려 있다. 미국 자동차산업 노동자에게 일자리가 생길 수만 있다면, 다른 산업, 다른 나라 노동자들이 어떻게 되든 말든 신경 쓰지 않겠다는 조합주의적 태도, 이기주의적 태도의 표본이다. 이런데도 '전미자동차노조는 자동차산업 노동자의 승리'를 말한다. 누구에 대한 승리인가?

 

"자동차산업 노동자들의 승리" - 트럼프 정부의 자동차산업 관세 부과 조치를 환영하는 UAW성명

 

자본가들의 장단대로?

 

나라마다, 산업마다, 기업마다 관세전쟁이 미치는 영향이 다르다. 미국 안에서도 수입 물가 상승, 글로벌 공급망 불안정성을 우려하며 ‘제 발등 찍기’란 목소리가 계속 나오고 있다. 클라이슬러, 지프, 램 등의 브랜드를 보유하고 있는 스텔란티스(피아트와 PSA가 합병해서 만든 그룹) 회장 존 엘칸은 “멕시코와 캐나다에서 생산된 제품은 (미국산 부품이 다수 탑재돼 있으므로) 무관세를 유지해야 한다”라고 말했으며, 포드의 최고 경영자 짐 팔리는 “멕시코와 캐나다에서 수입되는 차량에 25% 관세를 부과하면 미국 자동차산업에 전례 없는 타격을 줄 것”이라고 말했다.

 

트럼프가 관세전쟁을 밀어붙이는 대표적 산업인 철강·알루미늄 산업의 자본가들도 모두 관세전쟁을 환영하는 것이 아니다. 캐나다에 공장을 둔 기업들은 트럼프의 관세전쟁에 직격탄을 맞을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미국 알루미늄협회 회장 찰스 존슨은 트럼프 행정부의 관세를 지지하면서도 “미국은 신뢰할 수 있는 금속 공급원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정부와 자본가들은 그들의 필요에 따라 자유무역과 보호무역을 취사선택한다. 자유무역과 보호무역의 범위와 속도도 조절한다. 예전에 한국 자동차산업 자본가들은 한칠레 FTA에 대해서는 아무런 반대 의사를 표명하지 않았지만, 한일 FTA에 대해서는 적극 반대했다. 내수시장을 빼앗길 염려가 없었고 칠레 시장을 적극 공략할 수 있기에 한칠레 FTA는 찬성했지만, 일본 기업 자동차들의 대대적으로 상륙하는 건 부담스러웠기 때문에 한일 FTA는 반대했다.

 

이런 자본가들의 장단에 발을 맞추면 어떤 일이 일어날까? 노동자들이 자기가 고용된 자본의 입장에 따라, 태도 변화에 따라 그때마다 노선을 바꾼다면 어떤 일이 일어날까?

 

첫째, 노동자들은 나라별로, 산업별로, 회사별로 갈가리 찢길 수밖에 없다. 둘째, 정부와 자본가들이 퍼붓는 산업 살리기, 회사 살리기를 논리에 맞서지 못하고 임금 삭감, 정리해고 공격을 허용하면서 생존의 벼랑 끝으로 내몰린다. 자본가들은 회사와 한 몸이 되어 투쟁과 단결의 정신이 희미해지는 노동자들을 쉽게 절벽 밑으로 내몰 수 있다. 노동자들은 자본가들의 경쟁 도구로 활용되며, 들러리가 된다.

 

노동자의 대안은 보호무역이냐, 자유무역이냐가 아니라 이윤경쟁체제 자체에 대한 투쟁이며, 자국 시장보호를 위한 자국 자본가들과 연합이 아니라 전 세계 자본가들에 맞선 노동자들의 국제연대 강화다.

 

피장파장

 

전미자동차노조가 국제연대의 대의를 파괴하고 있다는 점은 너무나 분명하다. 그래서인지 제이슨 웨이든 전미자동차노조 위원장 수석보좌관은 그럴듯한 변명을 늘어놓았다.

 

7월 10일 열린 ‘전환기 글로벌 자동차산업과 노동자 권리 확대 방안 모색 토론회’에서 웨이든은 “자유무역은 미국에서 가장 강력한 반노조 정책으로 작용했다”며, “노동조건 개선을 요구하면 기업은 일자리를 해외로 옮기겠다고 위협하는 것이 현실”이라고 했다. 그러면서 “(자유무역으로) 기업들이 한국에서 철수해서 동남아 국가로 이전하면 한국 노동자도 미국과 같은 고통을 받는다”라며 “UAW가 미국 조합원의 이익만을 챙긴다는 시각도 있는데 전 세계 모든 노동자는 우리의 적이 아니다”라고 했다.

 

 

트럼프의 관세정책을 지지하며 오직 자국 일부 노동자들에게만 이로운 보호무역을 주장하면서, 전 세계 모든 노동자는 우리의 적이 아니라는 황당한 얘기를 할 수 있는 뻔뻔함은 어디서 나오는가?

 

바로 금속노조도 전 세계적인 물량 경쟁과 공장 이전 앞에서 다른 모습을 보이지 못하고 있다는 점, 다른 대답을 못 한다는 점을 꿰뚫고 있기 때문이다. 피장파장이니 금속노조나 한국 노동자들은 자신들을 비판할 자격이 없다고 큰소리치고 있는 셈이다.

 

트럼프의 변덕?

 

안타깝게도 제임스 웨이든의 진단은 틀리지 않는다. 금속노조 장창열 위원장은 7월 10일 총파업 담화문에서 이렇게 말했다.

 

“전쟁으로, 기후위기로, 트럼프의 변덕질로 전 세계 무역과 생산 공급망이 엉망이 되고 있습니다. 특히 트럼프의 관세전쟁은 우리의 일자리를 직접 위협하고 있습니다. 위기를 방어하는 정부의 현명한 대책만큼이나 자국 산업을 보호하는 단호한 태도가 필요합니다. 우리의 투쟁은 내 자신의 일자리에서 시작해 한국 산업의 미래를 지키는 정의로운 투쟁입니다.”

 

‘자국 산업을 보호하는 단호한 태도’, ‘한국 산업을 지키는 정의로운 투쟁’이라는 말에서 알 수 있듯 모든 나라 노동자가 단결해 모든 나라 지배자와 싸우는 전망은 전혀 찾아볼 수 없다. 계급의 대립을 지우고 국가를 위해 단결하고 희생해야 한다는 애국주의까지 들이밀고 있다. 결국, 이 논리대로라면 금속노조도 UAW처럼 이렇게 변명할 수밖에 없을 것이다.

 

"금속노조가 한국 조합원의 이익만을 챙긴다는 시각도 있는데 전 세계 모든 노동자는 우리의 적이 아니다."

 

먼저, 트럼프가 촉발한 관세전쟁의 원인은 금속노조 위원장 담화문의 진단과 달리 트럼프의 변덕이 아니다. 트럼프 정부가 지난 4월 2일 대대적인 고율 관세 조치를 발표한 후. 4월 9일 중국을 제외한 국가들에 대해 90일간 관세부과 유예를 발표한 이유도 트럼프의 변덕 때문이 아니라 주식 폭락, 물가 상승과 소비 감소, 생산량·고용 감소 등 부메랑이 심상치 않았기 때문이다.

 

관세전쟁은 미국 자본주의의 위기와 불안정성을 완화할 수 없는 트럼프 정부의 절박함을 말해준다. 트럼프 정부는 감당하기 어려워지고 있는 무역적자를 줄이기 위한 주요한 수단으로 관세를 내세웠다. 물론, 관세전쟁은 단지 미국 세수를 늘리고 미국산업을 보호하는 수단에 그치지 않는다. 무역과 안보를 직결시키고 세계자본주의 자체를 미국의 이해관계에 따라 재구축하려는 지렛대다. 관세전쟁에는 실제 전쟁의 그림자가 짙게 드리워져 있다.

 

“이러한 체계는 국가 안보와 무역이 하나로 통합되어야 한다는 인식을 구현할 수 있다. … 미국의 방위 우산 안에 들어오고자 한다면, 공정무역 체계 안에도 들어와야 한다는 것이다”, <미란(백악관 경제자문위원회 의장) 보고서 23p>

 

트럼프 정부의 전략은 필연적으로 더 큰 전쟁 위협과 더 격렬한 세계적 경쟁을 낳을 것이다. 어떤 나라, 어떤 자본이 경쟁의 파고에 휘청거리며 몰락할지 알 수 없지만, 한쪽에서의 부분적 몰락도 세계 전반의 극심한 경제위기로 빠르게 퍼질 수 있다. 그럴수록 정부와 자본은 노동자들을 더 강하게 경쟁시키려 할 것이며, 노동자 민중의 더 많은 희생을 강요할 것이다.

 

우리는 이런 논리에서 벗어나야 한다. 1997년 IMF 위기, 2008년 금융위기는 협조주의, 애국주의에 빠져들어 노동자 민중이 무장해제 되었을 때, 얼마나 쓰디쓴 대가를 치르게 되는지 보여줬다. 정부와 자본가들은 산업 살리기, 회사 살리기란 명분으로 노동자들을 가차 없이 공격했다.

 

사진: 한국경제신문

 

다른 전망

 

10일 토론회에서 이익재 금속노조 현대차지부 미래변화대응 태스크포스(TF) 위원은 “한국 (자동차) 노조 입장에서는 UAW가 우리를 죽이고, 혼자 살겠다고 한다는 측면이 있다”라고 했다. 그렇다면 묻지 않을 수 없다. 현대차지부는 다른 태도를 보이고 있는가? 혼자 살겠다는 태도가 아니라 전 세계 노동자가 함께 살겠다는 태도를 가지고 실천하고 있는가? 기업들이 한국에서 철수해서 동남아 국가로, 다른 나라로 이전한다고 할 때 어떤 태도를 실천해 왔는가? 누구도 긍정적 대답을 할 수 없을 것이다.

 

원청 대기업들은 부품사 노동자들의 저항을 통제하기 위해 생산 물량을 이원화·삼원화하곤 한다. 노조가 없는 다른 부품사에서도 동일한 아이템(부품)을 생산하도록 만들어, 노동조합 파업의 효과를 봉쇄하고 생산 차질을 막는다. 이런 공격에 맞서는 노동자의 대안은, 다른 부품사가 아니라 ‘우리 회사’에서 생산하기 위해 아이템을 빼앗아 오는 것이 아니다. 다른 부품사에서도 민주노조를 건설해, 물량 이원화·삼원화 효과를 차단하는 것이며, 같은 아이템을 생산하는 다른 부품사가 파업에 들어갈 경우, 대체 물량 생산을 거부하는 것이다.

 

국제적 차원의 공장 이동과 물량 경쟁에 대한 기본적인 대응 원리도 마찬가지다. 한국에서 생산되는 물량을 인도와 태국으로 이전한다면 인도와 태국의 노동자들이 스스로 조직화와 투쟁을 전개할 수 있도록 도와야 하며, 그 노동자들이 파업을 벌였을 때는 대체 생산을 거부해야 한다.

 

물량이 이전되더라도 노동자들의 생존권을 지키기 위해, 비정규직을 포함한 전체 노동자들의 총고용보장, 임금 삭감 없는 노동시간 단축과 완전 월급제 쟁취를 위해 싸워야 한다. 사업장을 넘어, 국경을 넘어 단결할 수 있는 길을 찾아야 한다. 다른 나라 노동자들이 겪는 고통에 민감하게 반응하며, 여러 곳에서 일국적 전망을 넘어선 공동의 네트워크와 공동의 활동을 만들어가야 한다.

 

물론, 이런 전망이 지금 당장 한국 대공장 노조의 손에 잡히는 전망이 될 수는 없다. 지도부의 관료화와 현장 활동가들의 후퇴만이 문제가 아니라, 수많은 평조합원의 의식도 바뀌어야 하기 때문이다. 하지만 변화는 저절로 만들어지지 않는다. 새로운 전망, 올바른 전망의 씨앗을 계속 뿌려야 한다.

 

관세전쟁의 충격은 금속노조만이 아니라 모든 노조 앞에 회피할 수 없는 문제를 다시 정면으로 던지고 있다. 관세전쟁을 이유로 노동자의 양보와 희생을 강요하는 모든 공격에 제대로 맞서기 위해서는, 자본과 노동의 정확한 대치선을 그어야 한다. 민족주의, 애국주의의 포로가 될 것이냐, 국경이 아니라 계급으로 단결해서 전 세계를 바꿀 것이냐? 그 누구도 이 근본적 질문을 회피할 수 없다.

 






모바일 버전으로 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