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성, 성소수자, 노동자의 이름으로 하나 되자!”
지난 6월 13일 저녁, 세종호텔 농성장에서 변혁적여성운동네트워크 빵과장미(이하 빵과장미) 주관으로 ‘빵과장미 제4차 할말많’이 열렸다. ‘빵과장미 할말많’은 여성과 성소수자, 노동을 둘러싼 여러 문제를 함께 토론하는 자리로 지금껏 ‘왜 여성은 더 가난한가?’, ‘콜센터 여성 노동’ 등을 주제로 이야기를 이어왔다.
13일에 열린 ‘빵과장미 제4차 할말많’은 ‘여성-성소수자 차별과 혐오깨기 할말많’이라는 제목으로 진행됐다. 1부는 ‘여성과 성소수자를 향한 차별과 혐오 할말많’이라는 제목으로 사례 발표, 현장 발표, 발제 순으로 이어졌다. 2부는 ‘차별과 혐오를 깨기 노동자 투쟁 할말많’이라는 제목으로 현장 발표, 사례 발표, 발제 순으로 진행됐다.
“성차별 타파하고 인간다운 삶 쟁취하자”
1부의 사례 발표는 조선소, 저축은행중앙회 통합콜센터, 전국교육공무직본부, 보건의료노동조합, 성소수자 노동자, 장애여성 노동자, 사회복지시설, 한국 이주여성 노동자 등 7개 현장의 이야기로 꾸며졌다.
특히 남초 직장인 조선소에서는 여성 노동자가 입사 시작부터 차별을 겪은 것으로 드러났다. 현대중공업사내하청지회 변주현 동지는 울산 현대중공업 하청업체에 입사할 당시 거주지가 부산이었다. 그래서 기숙사를 사용할 수 있는지 사측에 물었더니 여성 기숙사는 아예 없다고 했다. 또 생각이 맞는 동료와 같이 몇 번 다니기라도 하면 '둘이 사귀냐?'는 추궁을 받기가 일쑤였다고 했다. 같은 일을 하는데도 여성 노동자는 남성 노동자보다 더 낮은 임금을 받고 더 열악한 노동조건에서 일하는 경우가 다반사라고 전했다.
여성 노동자가 다수인 저축은행중앙회 통합콜센터와 전국교육공무직본부 노동자들은 여성 일자리라는 이유로 여전히 저임금과 열악한 환경에 시달리고 있다고 했다. 통합콜센터 노동자들의 경우 최근 AI도입으로 일자리를 뺏기고 있는가 하면 AI도입으로 고객 불만이 커지면서 그 민원을 최전선에서 오롯이 감당하느라 더 큰 어려움을 겪고 있다고 했다. 병원에서 일하는 여성 노동자들 가운데 대다수는 여전히 ‘아가씨’로 불리고 있었다.
성소수자 노동자들은 “성소수자라는 이유로 다른 사람들로부터 폭력이나 위협, 괴롭힘을 당할까 봐 걱정돼서” 정체성을 드러내기를 꺼리고 있었다. 장애여성 노동자들은 성별과 장애로 이중 차별을 경험하고 있었다. 같은 일을 하더라도 다른 임금을 받았고, 성폭력에 무방비 상태로 있어야 하는가 하면 채용과 승진에서 기회조차 박탈당하기 일쑤라고 했다.
사회복지시설에서 일하는 여성 노동자들도 마찬가지로 저임금과 열악한 노동환경에 시달렸다. 한 여성 노동자는 시설에서 장애인에게 이루어진 폭력 사실을 상급자에게 보고했다가 오히려 직장 내 괴롭힘을 당하고 과도한 징계를 받기까지 했다.
한국의 체류비자 제도는 인종차별에 기인하고 있어 한국 이주여성 노동자들은 이중, 삼중의 차별을 겪고 있다고 했다. 각종 행정과 지원체계가 미비하고 언어서비스도 제대로 제공받지 못해 정보 접근에 어려움을 겪기도 했다. 가부장적 자본주의가 가진 여성, 이주민, 노동자 차별이데올로기와 배타성으로 인해 이주여성 노동자는 ‘저숙련 노동자’ 또는 ‘결혼이민자’라는 고정관념으로 차별받기 일쑤고, 존재 자체가 종종 배제되고 있는 것으로 드러났다.
이와 같은 현장의 이야기들은 빵과장미 회원 동지들이 ‘빵과장미 제4차 할말많’ 토론회 당일 이전에 조사하거나 직접 겪은 경험을 쓴 내용을 바탕으로 했다.
이어서 현장발표 순서에서는 ‘빵과장미 제4차 할말많’ 토론회가 열린 세종호텔 농성장에서 투쟁을 이어가고 있는 세종호텔 해고 노동자 김란희 동지의 이야기로 꾸며졌다. 1993년에 세종호텔에 입사한 김란희 동지는 그동안 일하며 겪은 성희롱과 남녀차별을 진솔하게 이야기했다.
발제 순서에서는 여성들이 겪는 이러한 여러 차별과 혐오의 원인을 짚었다. 발제를 맡은 홍희자 동지는 ‘여성과 성소수자 차별과 혐오, 가부장적 자본주의가 원인제공자이자 주범이다’라는 제목의 발제문을 준비했다. 홍희자 동지는 “자본주의 사회는 생산수단의 소유 여부에 따른 계급사회로, 노동자는 노동력을 판매해야만 살 수 있고 자본가계급은 이 이윤체제 유지를 위해 노동계급을 착취, 억압함과 동시에 노동력 재생산을 위해서도 여성과 성소수자에 대한 차별을 절대적으로 필요로 한다”라고 지적했다. 그리고 자본주의가 태생적으로 착취와 억압, 차별, 혐오, 갈라치기를 본성으로 하지만 자본주의체제의 위기가 심화되면서 억압과 차별, 불평등과 저임금, 불안정성, 혐오와 폭력이 더욱 심해지고 있다고 진단했다. 이에 그는 “노동자계급은, 여성 노동자와 성소수자는 단결이라는 무기를 더욱 강하게 움켜쥐어야 한다. 그것만이 자본주의 폭력으로부터 우리의 일상을 지키고 생존을 유지할 수 있는 유일한 길”이라고 말했다.
“성차별 구조와 착취를 철폐할 때까지 함께 싸우자”
2부 첫 순서 현장 발표 시간은 실제로 힘을 모아 투쟁에 나선 노동자들의 이야기로 꾸며졌다. 저축은행중앙회 통합콜센터 이하나 동지와 함께 일하던 상담사 9명은 용역업체 변경을 이유로 계약종료 3일을 남겨두고 해고를 당했다. 이하나 동지와 서금호, 정순금 동지는 이러한 부당해고에 맞서 복직을 요구하며 투쟁을 벌였다. 투쟁 중에는 단식농성도 벌였는데 700여 명에 이르는 노동자와 시민들이 동조 단식을 이었다. 8개월의 투쟁 끝에 해고 노동자들은 복직을 이뤄냈다. 하지만 복직 후 마주한 콜센터의 노동환경은 여전히 열악했고, 저임금에 시달려야 하는 노동자들의 상황은 변하지 않았다. 이에 이하나 동지는 또다시 동료 노동자들과 함께 노동자의 권리를 지킬 노동조합을 건설하기 위해 오늘도 분투하고 있다.
이하나 동지에 이어 지혜복 동지도 현장 발표에 참여했다. 지혜복 동지는 젠더차별(폭력)에 맞서 온 교육노동자들이 이야기를 들려줬는데 그는 지금도 젠더차별(폭력)에 맞서 투쟁하는 당사자이기도 하다. 지혜복 동지는 A학교 내에서 학생들 사이에 벌어진 성폭력 사건을 해결하려다 이를 무마하려는 학교 측에 의해 부당하게 전보발령을 받았다. 그리고 이에 맞서다 해임되었고 A학교 성폭력 사안 해결과 부당전보‧부당해임‧형사고발 철회를 위해 520일이 넘게 서울시교육청 앞에서 투쟁을 이어가고 있다.
이어서 사례 발표 시간은 KEC지회의 투쟁 사례, 톨게이트 노동자들의 투쟁 사례, 덕성 청소노동자들의 투쟁 사례, 성소수자 차별에 맞선 국내외 노동자들의 투쟁 사례로 꾸며졌다. 그리고 발제 순서는 ‘젠더평등을 위해 투쟁하는 노동자운동을 위하여’라는 제목으로 배예주 동지가 준비했다. 배예주 동지는 “먹고살기도 어렵다고 요구를 낮추고 투쟁을 축소하거나 조합주의적 노동운동의 상태에 낙담해 투쟁의 가능성을 접어버린다면 저들의 공격 고삐만 당겨질 게 뻔하다. 노동자 일부 층위 또는 일부 문제점만 개선하려는 협소한 시각과 타협적 투쟁이 아닌 아래로부터 젠더평등과 노동의 권리, 사회변혁을 위해 싸우는 노동자투쟁의 실천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그는 “노동자운동과 여성·성소수자 운동은 병렬적 목표가 아니라, 가부장적 자본주의 구조를 타파하기 위한 하나의 운동이어야 한다”고 전했고, “여성·성소수자 노동자가 주체로 나서서 실천가 연대로 운동을 확장하면서 노동자계급의 새로운 힘을 창출하자”고 말했다.
이어서 국제네트워크 빵과장미를 소개하는 영상을 함께 시청했다. 그리고 토론회가 열린 세종호텔 농성장에서 지금은 농성을 마무리한 거통고 농성장까지 행진을 하며 ‘빵과장미 제4차 할말많’ 토론회는 막을 내렸다.
30여 명으로 이루어진 행진 대오는 비를 맞으면서도 “가부장적 자본주의 철폐하고 여성해방, 노동해방 이루자!”, “너희는 갈라치지만 우리는 단결한다!”, “하나 된 힘으로 억압을 벗어던지자” 등의 구호를 쩌렁쩌렁한 목소리로 힘차게 외쳤다.
‘빵과장미 제4차 할말많’ 토론회를 함께한 참여자들은 생각처럼 현실이 쉽게 혹은 빠르게 변화하지 않는 데에 씁쓸함을 느끼기도 했지만 서로의 경험과 생각을 나누며 다시 힘을 모을 수 있었다. 다양한 문제와 고민, 실천 방법을 나누는 ‘빵과장미 할말많’은 앞으로도 계속될 예정이다.
‘빵과장미 제4차 할말많’ 토론회 자료집은 빵과장미 다음카페 자료집 코너에서 볼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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