광장의 트랜스젠더와 괴리된 SNS상의 혐오정서
윤석열의 비상계엄 이후 열린 퇴진광장에는 하나의 특별한 문화가 생겼다. 바로 ‘광장식 소개’였다. 발언의 서두에 자신의 ‘정체성’을 밝히는 이 소개는, 남태령에서 시작된 철야 농성 중 많은 트랜스젠더-퀴어 자유 발언자가 자신의 성정체성 및 성지향성을 밝히는 데에 사용하며 입소문을 탔다. SNS를 통해 화제가 된 수많은 ‘광장식 소개’ 발언과 발언에 담긴 성소수자 발언자들의 진솔한 경험은 이전과 사뭇 다른 방식으로 성소수자들의 삶을 가시화해냈다. SNS에서는 한 성소수자 참여자의 소개에 “그렇구나, 알아두겠다”며 반응을 표한 한 중년 남성 집회 참여자의 발언이 크게 인기를 얻기도 했고, 남태령을 기점으로 자신의 정체성을 담은 깃발을 직접 만들어 집회 현장에 지참하는 참여자들이 대폭 늘기도 했다. 최근 전국농민회총연맹(이하 전농)에서는 ‘남태령 대첩’에 대한 보답으로 LGBT를 의미하는 무지개색의 떡을 만들어 나누기도 했다. 차별금지법 및 생활동반자법 논의에서 부르주아 정치 세력이 언제나 핑계처럼 언급해오던 ‘사회적 합의’가 마침내 광장을 통해 이루어진 셈이었다.
사진: 전국농민회총연맹
그러나 실제 광장의 분위기와 달리, SNS상에서의 트랜스 혐오는 꾸준히 심화되었다. X(구 트위터)에서는 전농의 무지개떡이 “트랜스젠더를 포함한 성소수자와의 연대를 상징하지 않는다(트랜스젠더를 제외한 성소수자와의 연대만 표명한다)”는 주장이 있었다. 이 논의에서 발전해 기존의 ‘LGBT’를 트랜스젠더를 배제한 ‘LGBA’로 명명해야 한다는 주장이 등장하기도 했다. 한편 거제통영고성 조선하청지회가 마련한 성중립 숙소를 두고, ‘성중립 숙소가 여성 배제적’이라는 의견도 화두에 올랐다. 실제로는 여성 참여자의 수를 고려해 여성 숙소 2개 중 인원에 비해 남는 숙소 하나를 성중립 숙소로 전환한 것임에도 불구하고, 하나뿐이었던 여성 숙소를 성중립 숙소로 전환해 ‘트랜스젠더가 여성 공간을 빼앗은 것’처럼 거짓을 사실로 둔갑시킨 루머가 일파만파 퍼진 것이다. 이처럼 성소수자 의제에 대해 개방적으로 진전하고 있는 대중적 정서와는 대비되는 SNS상의 반응은, 트랜스젠더를 향한 혐오 정서가 특히 SNS를 통해 얼마나 빨리 심화/확산되고 있는지를 잘 드러낸다.
미국 성소수자 인권단체 ‘GLAAD’가 발표한 ‘LGBTQ 사용자 안전 지수 (SMSI)’에 따르면, 주요 SNS 플랫폼 안전지수는 틱톡 67%, 페이스북 58%, 인스타그램 58%, 유튜브 58%, 스레드 51%, X(구 트위터) 44%로 LGBTQ 사용자 보호정책에서 심각한 부진을 보였다. 심지어 과반수 플랫폼은 지난해보다 점수가 더 하락한 것으로 나타났다. GLAAD는 해당 플랫폼들이 “특히 트랜스젠더, 논바이너리, 젠더비관행을 표적으로 삼지 않도록 보호하기 위한 정책과 의지를 표명하지 못하고 있다”고 밝혔다.
분리주의 페미니즘의 문제
SNS 플랫폼에서 성소수자의 권리가 제대로 지켜지지 않는 가운데 SNS에서의 반트랜스 정서는 심각하게 확산되고 있다. 혐오발언을 제재하지 않기 때문이기도 하지만, 혹자는 이러한 반트랜스적 분위기의 배경에 분리주의 세력이 있다고 분석하기도 한다. 실제로 트랜스젠더 혐오 성향을 띤 급진 페미니즘 조류인 TERF(Trans-Exclusionary Radical Feminism, 트랜스젠더를 배제하는 급진적 여성주의)의 젠더이분법적 주장은 SNS상에서 더욱 가시화된다. 퇴진국면 이전부터 성중립 화장실은 분리주의 세력을 비롯한 반트랜스 세력의 주된 논란거리였다. 지난 2022년 성공회대학교에 설치된 성중립 화장실인 ‘모두의 화장실’은 여전히 논란의 잣대로 존재한다. 약 2년이 지난 지금까지도 분리주의 세력이 차별금지법에 반대하며 내세운 “차별금지법이 통과되면 여성 전용 화장실에 남성이 들어올 것이다”는 주장과 해당 논란은 유사한 선상에 놓여있다.
성공회대 '모두의 화장실' 사진: 여성신문
분리주의 세력의 반트랜스적 행보는 이뿐이 아니다. 지난 2020년 트랜스젠더 입학 거부 사태 당시, 분리주의적 언사가 SNS에 우후죽순 게시되기도 했다. 숙명여대 사태부터 지금까지, 4년간 사회는 젠더이분법적 사고에서 한 발자국도 벗어나지 못한 것일까. 2030 여성을 상징하는 <'응원봉 연대와 성소수자 연대를 연결시키지 말라'>는 주장 또한 등장하고 있는 요즘, 응원봉을 들고 계급적 연대를 널리 확산하는 모습과 SNS를 통해 반트랜스 여론을 강화하는 모습 모두가 2030 여성이라는 세대 안에 존재함은 더 이상 부정하기 어렵다. 분리주의 페미니즘이 특히 2030 여성을 상대로 일정 부분 세력을 확대해 온 것도 사실이다. 분리주의 페미니즘 논리 안에서 특히 대두되는 성중립 화장실 – 숙소의 문제, 트랜스젠더를 가장한 젠더폭력 범죄의 문제는 그 이면에 가부장적 자본주의 사회가 야기한 구조적 성차별과 젠더폭력의 공포를 관통하고 있기 때문이다. 분리주의 페미니즘은 당장 눈에 보이고, 타격하기 가장 쉬운 집단인 MTF(지정성별 남성 트랜스젠더가 성전환을 통해 여성으로 성별을 정정한 경우) 트랜스젠더를 공격함으로써 젠더폭력의 위기로부터 탈출하기를 여성들에게 권장한다. 마치 ‘여성’의 정의를 시스젠더 여성으로 국한하면 모든 여성혐오와 혐오범죄의 표적에서 벗어날 수 있는 것처럼 말이다.
이는 윤석열 정부가 2030 남성에게 내세웠던 ‘혐오정치’의 방식과도 무척 유사하다. 지난 대선 당시 윤석열 정부가 주요 공약으로 부각했던 ‘여성가족부 폐지’ 등 여성혐오적인 정책은 자본주의 체제가 필연적으로 청년층에게 부과할 수밖에 없는 구조적 억압의 책임을 2030 여성에게 전가함으로써 ‘역차별’이라는 환상을 덧씌웠다. 일상적으로 벌어지는 젠더폭력, 구조적 성차별과 같은 실제 가부장적 자본주의 체제의 문제를 두고, 'MTF 트랜스젠더의 존재가 여성의 삶을 파괴하고 있다'는 분리주의 페미니즘 정치가 2030 여성들을 매료시켰듯, '징병제, 일자리 문제, 저임금 등의 구조적 불안은 모두 페미니즘으로 인한 것'이라는 논리 또한 손쉽게 2030 남성을 잠식했다. 청년층의 삶을 압도하는 자본주의 체제의 억압 속에서 간결하고 명료한 혐오정치가 전례 없이 빠른 속도로 양측을 갉아먹기 시작한 것이다.
만연한 반트랜스 정서와 위기
한편, 이러한 반트랜스 정서는 국내 사례에만 국한되지 않았다. 실제로 작년 8월, 알제리 국적의 권투 선수 이마네 칼리프의 ‘성별’에 대한 논란이 도마에 올랐다. 여러 매체가 이마네 칼리프에게 ‘남성’, ‘XY염색체’라는 수식어를 붙였고, 이 과정에서 이마네 칼리프가 성별정정을 마친 트랜스젠더이며 지정성별은 남성이라는 왜곡된 정보가 널리 퍼졌다. 여러 언론과 분리주의 세력이 의도적으로 이마네 칼리프 선수를 공격했고, 이 과정에서는 셀 수 없는 트랜스혐오 논리가 수반되었다. 더불어 ‘반 트랜스젠더(anti-transgender)’를 캐치 프레이즈 중 하나로 내세운 도널드 트럼프의 재선 성공도 트랜스젠더와 성소수자에게 큰 위협으로 다가온다. 대선에서 반트랜스 선전을 쏟아냈던 트럼프는 1기 트럼프 정부와 같이 ‘트랜스젠더 군복무 금지’ 정책을 내놓았다. 약 1만4천 명의 트랜스젠더 군인이 추방될 예정이며, 연방교도소의 트랜스 여성 또한 남성 수감시설로 이감될 처지에 놓여있다. 일각에서는 트럼프의 당선 요인이 ‘노골적인 트랜스젠더 혐오’라고 분석하기도 했다. 강화되는 가부장적 자본주의 체제의 위기 속에서 트랜스 혐오를 대안으로 제시한 트럼프의 전략이 실제로 유효했다는 분석이다.
이마네 칼리프 사진: AP
트럼프의 반 트랜스 캠페인을 통해 확인할 수 있는 사실은 트랜스 혐오정치가 청년 여성층을 공략하기 위한 극우 자본주의 정치 세력의 도구로 급부상하기 시작했다는 점이다. SNS상에서 만연해진 트랜스젠더 혐오가 이제는 접근성 좋은 ‘놀이’로까지 치닫는 현재, 분리주의 페미니즘은 여성해방의 열쇠가 될 수 없다. 오히려 노동자계급이 서로에게 칼을 돌리게 하려는 자본의 전략이 될 뿐이다. 결국 궁극적인 해결책은 단결과 연대다. 순수한 여성이 아닌 존재를 솎아내는 분리주의 페미니즘은 어떠한 힘도 만들 수 없다. 노동자계급의 단결된 정치투쟁만이, 여성해방과 성소수자의 해방을 이끌어 낼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