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고] 법은 달라도, 부품 취급은 똑같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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온라인신문

[기고] 법은 달라도, 부품 취급은 똑같네

  • 이훈
  • 등록 2024.11.14 11:31
  • 조회수 136

[편집자 주] 일본자본 닛토덴코의 먹튀폐업에 맞서 고공농성을 300일 넘게 전개하고 있는 옵티칼하이테크 노동자들이 일본 본사에 책임을 묻기 위해 원정투쟁을 떠난다. 수많은 외투자본이 한국에 들어와 노동자를 착취하다가 민주노조가 결성되면 공장을 일방적으로 청산하고 먹튀한 역사를 반복해왔다. 일국을 넘어선 공장폐쇄 결정 앞에 많은 민주노조가 무너져왔다. 그래서 외투자본의 먹튀에 맞선 투쟁은 국제적일 수밖에 없다. 기고자는 먹튀폐업에 맞서는 옵티칼하이테크지회의 일본원정투쟁을 기록해 전하려 한다.

 

 

일본원정투쟁 이틀 차, 첫날은 비행기, 기차, 지하철을 타고 꽤 먼 길을 오느라 하루를 다 썼다. 지난밤, 자려는데 느낌이 왔다. ‘내일 재밌는 일이 생길 거 같아.’ 조금 신이 난 채 잠들었다. 아침에 일어나 다같이 아침 먹고, 비타민과 홍삼까지 야무지게 챙겨 먹고 나왔다.

 

종이비행기로 날린 항의

오늘은 ‘수도권지역 유니온네트워크 일일 행동’의 날이다. 일본의 일반노조 동지들이 닛토덴코의 도쿄 본사 방문을 시작으로, 수도권 투쟁 사업장들을 돌며 연대하는 날이다. 일정표를 보니까, 민주노총 서울본부에서 하는 ‘차별 없는 서울 대행진’이랑 비슷했다.

 

(이지영 사무장이 보안에게 '항의서한 받을 사람을 데려와'라며 따지고 있다.)

 

시나가와역에서 약 70명의 동지를 만나 닛토덴코 영업 본사로 갔다. 도쿄 시나가와역에서 약 5분 거리였다. 아주 높은 빌딩의 26층이었다. 밖에서 간단히 상황 설명 후 약 20명이 26층으로 올라갔다. 가보니, ‘아! 여기구나’ 싶었다. 옵티칼 조합원들이 본사를 찾아갔다가 항상 보안에게 막히는 곳이었다. 이번에도 보안 셋이서 로봇같은 얼굴로 막고 있었다. 이지영 사무장님은 “이번에 우리가 온 게 10번째에요! 해결될 때까지 계속 올 거라고요!”라며 소리를 질렀다. 그러자 일본 동지들이 순식간에 이곳저곳에서 크게 소리를 지르며 분위기가 거세졌다. “동지들이 ‘비켜라!’, ‘담당자 나와라!’라고 말하고 있어요” 통역을 담당해준 사코다상이 설명해주었다. 우린 다같이 “다카사키 히데오 나와라!”를 외쳤다. 약 20분간 소리를 지르며 싸웠지만, 아무도 나오지 않았다. 우리 앞엔 닛토덴코가 고용한 것도 아닌, 건물 경비 용역이 3명에서 4명으로 바뀌었을 뿐이었다. 닛토덴코 직원은 코빼기도 보이지 않았다. 결국 항의서한을 그 자리에서 지원모임 대표 동지가 읽었고, 이지영 동지가 그걸 종이비행기로 접었다. 슝- 종이비행기를 던지고 나왔다. 일본 동지들은 닛토덴코는 다른 일본 기업에 비교해도 노동자를 대하는 태도가 너무 나쁘다고 했다.

 

일본 동지들은 이지영 동지에게 종이비행기가 너무 좋았다며, 다음엔 항의서한을 훨씬 더 많이 뽑아서 가져오자고, 다같이 비행기를 던지자고 했다. 우린 닛토덴코가 전향적인 태도를 보이기 전까진 한국으로 돌아가지 않는다. 매일 찾아갈 거다. 필요하다면 26층 전체가 종이비행기로 가득 찰 만큼 잔뜩 접어갈 거다.

 

(닛토덴코 항의행동 후 나와서 지회 깃발을 몸에 두른 이지영 사무장)

 

와, 일본은 법이 좋네

이제부터 우리가 연대할 차례였다. 처음 간 곳은 ‘가이치 학원’이란 사학재단이었다. 초/중/고/대학교를 모두 가진 사립재단은 선생님의 임금을 떼어먹고 있었다. 일본은 법적으로 한 달에 최대 60시간까지 야근을 할 수 있는데, 투쟁 당사자는 60시간 야근을 하고도 수당을 전혀 받지 못한 상태였다. 또한 수업 준비를 위해 사용하는 시간도 수당이 나오지 않고 있었다. 사코다상은 우리에게 상황 설명을 해주었다.

 

“한국은 근로기준법이죠? 일본은 노동기준법이에요. 일본은 국적이나 사업장 규모와 상관없이 모두 노동기준법을 적용받아요. 만약 ‘불법체류자’라도 법적 권리가 있어요. 그런데도 일본에도 ‘빨갱이’가 노조를 한다는 인식이 있어서 사업장에 노조를 만들기 어려워요. 그래서 저 선생님은 혼자서도 가입할 수 있는 지역 일반노조에 들어온 거에요. 이런 식으로 사업장에서 혼자 투쟁하는 경우가 일본에 많아요. 일본은 일반노조가 아주 중요해요.”

 

(한 동지가 가마치 사학재단의 부교장에게 항의서한을 주며, 수당을 지급하라고 말하고 있다.)

 

흥미로웠다. 5인 미만 사업장에도 법적으로 ‘노동’기준법이 전부 적용된다니. 일본은 법이 잘 되어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또한, 당사자가 주장하는 수업 준비 시간과 야근에 대한 수당은 모두 법적으로 주어야 하는 것인데, 사립재단이 대놓고 위법을 하고 있는 상태였다. 내가 부러워하는 표정을 지으니까 사코다상이 다시 입을 열었다.

 

“한국이랑 비교하니까 재밌죠? 근데 한국보다 못한 것도 많아요. 그래서 국제연대가 중요해요. 서로가 서로한테 도움이 되는 게 국제연대에요.”

 

화려한 표현은 아니지만, 와닿는 말이었다. 이지영 사무장님은 여기선 내가 발언하는 게 좋겠다고 했다.

 

 

“안녕하세요. 한국에서 온 이훈입니다. 한국에도 여기와 같은 곳이 있습니다. 강원대학교입니다. 강원대학교는 한국어 교원(외국인 학생에게 한국어를 가르치는 교육노동자)에게 수업 준비 시간에 대한 수당을 지급하지 않고 있습니다. 대법원까지 판결이 났는데도 여전히 수당을 주지 않고 있습니다. 우린 돈도 중요하지만, ‘그보단 이런 돈을 줘도 너는 일할 수밖에 없잖아’라며 우릴 무시하는 그 태도가 분노스러운 겁니다.”

 

일본 동지들이 굉장히 기뻐하며 발언을 들어주었다. 끝나고 우린 당사자에게 가서 “We support your fight”라며 약간 틀렸을지도 모를 문법으로 응원의 마음을 전했다.

 

(가마치 학교 앞에서 일반노조의 이주노동자 조합원들이 인터내셔널가를 부르고 있다.)

 

부품 취급하는 건 똑같네

 

다음으로 간 곳은 JA라는 일본농업협회중앙회였다. 외국인 파견노동자가 포크레인을 운전하다가 산재를 당했다고 했다. 당시 포크레인으로 1톤 정도의 쌀을 옮기고 있었는데, 포크레인이 무게를 버티지 못하고 쌀이 쏟아지면서 노동자를 덮쳤다. 해당 노동자는 어깨를 다쳐서 산업재해 10급을 인정받았다. 그러나 파견업체는 산재를 인정하지 않았고, 오히려 노동자를 탓하며 그를 해고했다. 배/보상금도 없었다. 원청인 농협중앙회는 아예 교섭에 나오지도 않았다고 했다. 사람들은 “원래 무거운 걸 들라고 만들어진 게 포크레인인데, 그게 어떻게 1톤에 무너질 수가 있나. 노동환경이 너무 안 좋았던 게 분명한 상황”이라며 화를 냈다. 또한, 외국인 노동자의 기여 성과는 이미 수치로 드러났는데도 전국 곳곳에서 비슷한 상황이 계속 발생하고 있다고 원통함을 표현했다.

 

한국제강 생각이 났다. 1톤이 넘는 철판을 들어 올려서 불순물을 제거하는 일을 하던 하청노동자였다. 들어 올린 끈이 끊어지면서 철판이 노동자의 다리를 덮쳤고 과다출혈로 운명을 달리했다. 원청 한국제강의 사장은 판결로 1년 징역형이 나오자, 형량이 과도하게 크다며 항소했었다. 비슷하다.

 

(한 일본 동지가, 파견노동자의 상황과 전반적인 일본 노동 상황을 설명하고 있다.) 

 

우린 모두 다르고, 전부 똑같다

국제연대란 뭘까. 고작 하루 일본을 돌아다닌 내가 무얼 알겠나 싶지만, 그럼에도 생각해본다. 아마도 국제연대의 시작은 ‘아, 여기도 이래?’라는 공감과 놀라움의 시작이 아닐까. 일본과 한국은 법, 언어, 분위기가 모두 다르지만, 핵심은 같다. 노동자는 무시당하고 있었다. 법적으로 권리가 있음에도 무시당하고 있었다. 가만히 생각해보면 법, 언어, 분위기는 하나도 중요하지 않은 거 같다. 우리 모두가 무시당하고 있고, 우리는 그걸 참지 않기로 결정했다는 사실이 국제연대의 중요한 시작점이 아닐까.

 

(닛토덴코 본사 건물 앞에서 이지영 사무장, 이훈, 배태선 교육국장이 지회 깃발을 들고 서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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