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달 12일부터 13일까지 주말 이틀간 경향신문사 건물에서 사회주의를 향한 전진의 2024 정치캠프가 진행되었다. 진보정치 몰락 시대의 과제, 노동자 단결 전략, 프랑스 신인민전선 고찰, 여성주의 노동운동, 노동자 중심 반제/반전투쟁 등의 다양한 주제로 전체 및 선택세션이 구성되었는데, 그중 대학생인 필자의 관심을 사로잡은 것은 바로 "왜사회주의 학생운동인가"라는 선택세션이었다. "현재의 학생운동을 진단하고, 학생운동이 나아가야 할 방향과 전망을 함께 토론해봅시다"라는 설명과, 토론자들이 대표하는 다양한 학내 단체들의 이름을 읽고 가슴이 뛰기 시작했다. 인권운동 전반에 대한 백래시와 중립에의 환상이 만연한 현재의 대학에서 과연 사회주의 학생운동이 설 자리가 있는지, 대학교를 처음 입학한 순간부터 계속 고민해왔기 때문이다.
지난 6월, 필자가 속했던 고려대학교 문과대학 성평등위원회(이하 문성평위)가 자진 해단하였다. 표면적인 이유는 신입위원 가입 저조로 인한 기존 위원들의 소진이지만, 사실 해단의 더욱 근본적인 이유는 정치적 활동 자체를 하기 어려운 학내 문화에 있다. 학내 분위기를 잘 보여주는 일례로는, 페미니즘적 기조를 띤 대자보를 발행했다는 이유로 문성평위가 학생회 산하 특별기구임에도 불구하고 문과대학 새내기 새로 배움터 평등 세미나 준비 과정에서 완전히 배제되었던 것을 들 수 있다. 학생사회의 우경화에 지친 위원들은 점차 학내 활동보다는 규모가 있는 교외 단체에서 활동하는 데 주력하거나, 교지 제작이나 세미나 참여와 같이 ‘운동’이 주가 아닌 방향으로 활동 양상을 바꾸기 시작했다. 이 같은 존속의 어려움은 비단 한 단체에만 해당되는 문제가 아니고, 현재 학내의 다양한 운동 단체들이 직면하고 있는 큰 위협이다. 이러한 맥락에서, 과연 학생사회의 위기를 돌파할 활로가 사회주의 운동에게 있을까, 간절한 마음에 세션을 듣게 된 것이다.
발제문은 우선 학생과 노동자를 계급적으로 구분하며 시작된다. 대학생은 전통적인 마르크스주의적 자본가-노동자의 도식 속에서 그 어느 쪽에도 속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하지만 레닌이 천명한 바 "학생은 인텔리 중 가장 민감한 부분"이므로, 단순히 자신이 노동자가 아니라고 하더라도 한 사회의 노동문제에 있어 정치적으로 주요한 역할을 수행한다고 발제문은 설명한다. 물론 실상은 이상과 다른데, 현재 숱한 학생 단위들은 대(對)사회적인 정치성의 마련은 커녕 단체의 존속 여부와 씨름하며 다음 단계로 이동하지 못한 채 정체되어 있기 때문이다. 발제문은 이렇게 학생운동이 위축된 것에 대해, 원인으로 자주 지목되는 코로나 바이러스나 20대의 보수화와 같은 외부적 요인보다도, 계급적 당파성의 부족이라는 학생운동의 내부적 요인을 문제의 핵심으로 지적한다. 노동자계급과의 연대를 통해 자본주의에 격렬히 대항했을 때 학생운동은 가장 융성했고, 노동자계급 또한 사회주의 혁명을 향해 다른 피억압 민중과의 연대로 헤게모니를 형성하기 위해서는 학생운동과 함께해야 한다는 것이다.
발제문은 이러한 노동자계급과 학생운동의 연대가 필수적임에도 불구하고 잘 성사되지 못하는 이유로 크게 두 가지 흐름을 언급한다. 민주노조 운동에서 실천적 투쟁을 저해하는 조합주의/관료주의적 성격과, 체제전환 운동과 같이 ‘공동체의 윤리’나 ‘보편적 권리’라는 평이한 기조로 노학연대를 구성하고자 하는 움직임 모두 문제적이라는 것이다. 전자는 사회주의 학생운동이 물러난 자리를, "허술하고 모호"하고 "노동자계급의 삶과 맞닿은 지점에서 불가피하게" 허점을 드러내는 의제를 선택한 정치적 공동체들에게 내어줬다는 점을 지적받았다(자료집 186). 후자는 착취 대상으로서 노동자와 이데올로기 재생산 기관으로서 학교, 양측에 지대한 영향을 미치는 자본주의 체제를 의도적으로 외면하며 현재의 부조리한 체제를 향한 투쟁을 등한시한다는 점에서 비판받았다. 즉, 발제문은 학생운동과 사회주의 운동의 정치적 부활을 위해, 각각에 노동자계급 투쟁의 이념적 성격을 뚜렷이 부여하고, 자본주의 억압이 기후, 성소수자, 여성, 장애인 등 다양한 의제에 작용하는 방식을 기반으로 혁명적 사회주의를 좌파 헤게모니로서 세워야 한다고 주장한다. "서로 안티 테제인 양 굴고 있는"(자료집 191) 자본가계급 보수양당과, 자본경제 중심의 무분별한 발전으로 인한 기후위기, 여성을 이중으로 억압하는 가부장적 자본주의, 자본의 이윤을 위한 전쟁위기 등에 대항하기 위해서는 ‘사회운동’과 같은 모호한 태도보다는 예리하고 선명한 사회주의 이데올로기가 좌파의 중심이 되어야 한다는 것이 핵심 골자다.
이후 진행된 토론에서, 네 명의 토론자를 통해 각각 소속된 학교와 단체의 개성을 바탕으로 한 보완적이고 비판적인 시각을 제공받을 수 있었다. 고려대학교 생활도서관 박민상 운영위원은 캠퍼스를 사회주의로 활성화하기 위해서는 캠퍼스를 사회로 활성화하는 것이 선행되어야 한다고 강조했다. 학교의 공공성과 학생의 정치성을 일깨우는 것을 통해, 중립성이라는 환상에서 벗어나 학교와 학생은 각각 공론장과 정치적 주체로 거듭날 수 있다는 것이다. 이화여대 노학연대모임 바위 박서진 활동가는 학생사회 속 다원화된 진보적 의제 사이의 공통분모로서 반자본주의를 다양한 학내운동 단체들 간의 연대의 고리로 기획할 수 있다고 설명했다. 그는 사회주의라는 단호한 이념이 정론적 비판의 목소리로서, "어느 한 노선뿐 아니라 운동 전체의 동력을 유지하는 데" 큰 역할을 할 수 있다고 보았다(자료집 211). 홍익대 미대의외침 이시온 활동가는 발제문에서 진단하는 학생운동의 문제적인 측면들을 사회주의적으로 개혁하기에 앞서, 현재 각 캠퍼스에서 전개되고 있는 학생운동의 현주소를 파악하는 일이 필요하다고 역설했다. 또한 그는 사회주의가 좌파 헤게모니가 되어야 한다는 발제문의 결론에 반박하며, 교차적 억압에 대해서는 여러 의제가 평등하게 연대해야함을 주장했다. 서강대 인권실천모임 노고지리 김한울 활동가는 구체적인 설득 전략의 중요성을 언급하며, 노학연대의 패러다임 자체를 바꿔야 할 필요성을 논의했다. 시혜를 베푸는 식의 연대가 아니라, 학생과 노동자가 일상적 차원에서부터 긴밀하게 교류해야 한다는 것이다.
이어진 토론과 전체 질의응답 시간에 제기된 의견들을 종합했을 때, 해당 세션의 쟁점은 크게 발제문의 내용에 대한 이의와 내용의 현실성에 대한 의문의 두 가지로 정리될 수 있었다.
우선 내용에 대한 측면에서는, 대학생이 현 사회에서 여전히 지식인적 존재라는 발제문의 전제와, 사회주의 노동운동이 좌파 운동에서 반드시 헤게모니적 중심에 위치해야 한다는 발제문의 결론이 과연 유효한지에 대한 논의가 주를 이루었다. 먼저 전제에 대해서는, 진학률이 70%를 넘어서며 점차 대학이 학문의 장이 아닌 취업의 발판으로서 기능한 지가 20년이 넘어선 현재의 한국 사회에서 대학생은 더이상 지식인(인텔리)이 아니라는 의견이 제시되었다. 이에 대해 발제자는 2024년 한국사회에서도 여전히 청년학생의 여론이 시대를 반영하는 중요한 지표로 여겨진다는 점을 들며, 인텔리가 "가장 의식적으로, 가장 결정적으로, 가장 정확하게 전사회의 계급적 이해와 정치적 조직화의 발전을 반영하고 표현"한다는 레닌의 기술은 여전히 유효하다고 답변했다. 결론에 대해서는 거대담론만이 능사가 아니며 미시적 신뢰를 구축하는 것이 중요하다는 입장, 좌파 내 각 진영별로 견지하는 비전이 다른 것은 존중해야 한다는 견해, 최대한 다원화된 의제에 대해 교차성을 토대로 단결하는 것이 중요하다는 의견 등, 다양한 관점에서 이의가 제기되었다. 특히 다원화된 의제와 관련하여, 한 토론자는 예컨대 ‘소수적 몸의 언어가 홀로 있을 때 흘러나온다면 반(反)자본 운동의 언어는 함께 있을 때 흘러나온다’는 소견을 밝히며, 개별 담론들이 출발점은 다를 수 있지만 그럼에도 서로를 규탄하기보다는 각각이 존중되는 제3의 도착점으로 나아가야 함을 주장하기도 했다. 발제자는 앞서 언급된 여러 문제들을 근본적으로 해결하는 데 결국 자본주의가 커다란 방해물이 되기에, 사회주의 헤게모니를 세우는 것을 통해서 더 많은 의제를 포섭하고 연결할 수 있다고 답했다.
다음으로 발제문의 현실성에 대한 측면에서는, 사회주의 혁명이 좌파 진영의 최종 목적지가 되어야 한다는 원론적인 이상에는 동의하지만, 그것을 구체적으로 어떻게 실현해 나가야 할지에 대해서는 발제문이 충분히 대답하지 못했다는 아쉬움의 목소리도 있었다. 사회주의 학생운동이라는 기치하 실제 학생들의 필요와 요구에 부응하는 교육권/공간권에 대해 관심을 기울여야 한다는 것, 외국인 학생의 정치세력화나 유입구로서 페미니즘의 적극적 활용 등을 통해 투쟁 전략을 구체화해야 한다는 것, 에브리타임(익명 커뮤니티)과 같은 학생사회 내 특수성을 고려해야 한다는 것 등이 이야기되었다. 이러한 논의에 더해 발제자는 그럼에도 불구하고 학생운동이 마르크스주의적 이념성을 잃고 학생사회 내로만 한정되면 안 된다는 우려의 말도 첨언했다. 한편 이미 신자유주의와 능력주의를 내면화하고 자본가계급에 이입하는 대학생들에게 사회주의 정치성을 강조한 학생운동이 대중적 호소력을 갖는지에 대한 질문도 있었다. 이에 대해 발제자는 그러한 내면화를 가능케 하는 대학의 자본주의 이데올로기 재생산을 막기 위해서라도 사회주의 정치성은 필수라고 대답했다. 이어서 대학생들 사이에서 자신을 표현하기 위한 기호로 채택된 신자유주의적 성공과 그러한 성공이 구조적으로 어려운 현실 사이의 낙차를 비집고 들어갈 저급이론1)을 사회주의 학생운동이 최대한 많이 공급해야 한다는 토론자의 제안도 이어졌다.
1) 이때 "저급이론"이란 『실패의 기술과 퀴어 예술』의 작가 잭 핼버스탬이 그람시의 유기적 지식인론을 독해하며 사용한 개념으로, 사회정치적 개념을 일상이나 하위문화에 적용 가능하도록 문턱을 낮추는 지적실천을 뜻한다.
발제자와 토론자, 참여자 모두의 열정적인 참여 덕분에 세션은 유익한 정보와 유의미한 시사점을 남기고 성황리에 종료되었다. 학내 활동을 위주로 하는 대학생 활동가로서, 친숙하면서도 낯선 주제인 사회주의에 대해 넓고 깊게 이야기할 수 있어서 기뻤다. 특히 평소 다른 학교에서 학생운동에 참여하고 있는 활동가들과 교류할 수 있는 기회가 적은 필자에게는 더욱 소중한 경험이 된 것 같다. 다만, 세션이 끝나고 적지 않은 시간이 흐른 지금까지도 명쾌하게 해결되지 않은 의문점들이 몇 가지 남아있기도 하다. 세션을 통해 충분히 다뤄진 ‘왜 사회주의인지’의 측면에는 전반적으로 공감할 수 있었지만, ‘왜 학생운동인지’의 측면에 대해서는 더 알고 싶고 궁금한 점들이 여전히 많기 때문이다. 사회주의 ‘학생운동’의 대상은 결국 전체 대중인지, 혹은 학내 구성원인지, 우선은 학내 여타 좌파 진영 활동가들인지, 학내 활동가로서 자문하게 되었다. 더 나아가 ‘학생운동’이라는 범주 자체도, 주체가 학생일 때 성립하는 것인지, 공간이 학교일 때 가능한 것인지, 대상이 학내 구성원일 때로 한정되는 것인지 고민이 필요해 보인다. 무엇보다 소진이 되지 않고 즐거운 학생운동을 하기 위해서는, 여러 학교의 활동가들 간의 활발한 교류를 통해 어떠한 현실적인 대응이 가능한지 모색해보는 과정이 필요하다고 느꼈다. 따라서 이번 세션이 짧은 시간이었음에도 사회주의 학생운동에 대한 논의의 수준을 크게 향상시킨 것으로 미루어 보아, 사회주의 학생운동의 이름으로 이번 기회와 같은 담론장이 꾸준히 열린다면 학생사회에도 실질적인 변화가 생기지 않을까 기대해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