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익을 제보하니 투쟁에 나서야 하는 기막힌 현실
개학을 맞은 지난 3월 4일, 지혜복 선생님은 학교가 아닌 서울시교육청(이하 교육청)으로 향했다. 교육청 앞에서 연좌시위를 해야 했기 때문이다. 지난해 5월, 지혜복 선생님이 일하던 A학교에서 여학생들의 성폭력 피해 사실이 드러났다.
지혜복 선생님은 학교폭력심의위원회의(이하 학폭 심의) 조사를 요구했다. 하지만 가해와 피해에 대한 올바른 해결로 나아가지 못했다. 오히려 피해 사실을 진술한 학생들의 신원이 알려지고 그 학생들은 2차 피해에 시달려야 했다. 학폭 심의 결과 가해 학생들은 서면 사과를 하는 데 그쳤다. 이에 지혜복 선생님은 지난해 6월 말, 이 사실을 교육청에 제보했다. 학교 측이 사안 자체를 은폐, 축소한 점도 교육청에 알렸다.
교육청 학생인권옹호관은 이에 대한 조사를 실시하고 지난해 12월 “피해 학생들에 대한 2차 피해와 학교 내 갈등이 발생한 정황이 확인된다”며 권고 결정을 내렸다. 그러나 학교 측은 이러한 권고 조치를 온전히 이행하지 않고 있다. 오히려 공익제보를 한 지혜복 선생님을 다른 학교로 전보하기로 결정했다.
명백한 부당전보
사회교과 담당인 지혜복 선생님의 전보는 A학교 성폭력 사안 축소 은폐에 맞선 교육노동자에 대한 명백한 부당전보다. 역사교과 선생님이 3명이었던 A학교는 2024년 교원 정원 감축지침으로 역사교과 선생님을 2명으로 줄여야 했다. 그런데 A학교와 서울중부교육지원청은 “역사교과와 사회교과는 통합교과”라며 정작 사회교과 담당 지혜복 선생님을 올해 2월 초 전보 대상자로 지정했다. 이에 지혜복 선생님은 교육청 앞에서 피케팅과 연좌시위를 이어가고 있다. 3월 14일 현재 부당전보 철회 투쟁 52일 차, 전보 거부 2주 차를 맞고 있다.
‘공익신고자 보호법’, ‘서울교육청 공익제보 지원 및 보호 조례’ 등에 따르면 공익제보자가 인사 불이익을 받으면 안 된다. 이에 지혜복 선생님은 “이번 조치는 공익제보자의 의사에 반해 이루어졌으며 교과 정원 감축 과정에서 부당하게 전보 대상자로 결정됐다”며 교육청이 공익제보자 보호에 나서 줄 것을 요구하고 있다.
노동자로서 선생님의 권리와 교육과정 파행을 막기 위한 투쟁
투쟁을 이어가는 지혜복 선생님은 주변에서 “B학교에 가서 새롭게 시작하라”는 말을 적지 않게 듣는다. 하지만 지혜복 선생님은 성폭력 사건이 제대로 해결되지 않은 A학교 학생들을 내버려 둔 채 새로운 학교로 발걸음을 떼기가 교사로서, 여성으로서, 인간으로서 너무나 힘들다. 또한 이번 부당전보를 받아들일 경우 또 하나의 나쁜 선례를 남기게 될까 봐 두렵기도 하다.
지혜복 선생님에 대한 전보는 명백한 인사보복이다. A학교에서 사회교과를 담당하던 지혜복 선생님이 B학교로 옮길 경우, A학교에서는 사회교과 선생님이 부족해지는 것은 물론 성폭력 피해자들의 곁을 지킨 교사가 사라진다. 가르치며 곁을 지켜야 할 학생이 있고, 있어야 할 자리가 있는 곳의 선생님을 전보시키는 건 그렇지 않아도 부족한 교사 정원을 축소하는 일이며 노동자로서 선생님의 삶을 짓밟는 것이다. 성폭력 피해 학생들의 곁을 지키며 2차 피해를 막기 위해 싸운 교육노동자에 대한 부당징계임은 물론, 그 자체로 교과과정 파행이다.
지혜복 선생님이 투쟁을 시작한 지 50여 일이 지났지만 아직 널리 알려지지 않은 탓에 외롭게 싸움을 이어가고 있다. 지혜복 선생님은 이번 성폭력 사건이 해결되는 것은 물론이고 “전체 학교의 성폭력 실태조사가 실시되고 그에 따라 철저하고 실효성 있는 성폭력 예방교육이 시행되어 청소년들의 성인지 감수성을 한 단계 성장시켜 성평등문화가 학교 내 정착되는 중요한 계기가 되어야 할 것”이라고 바라고 있다.
한편, 이번 주부터 매주 수요일 저녁 17시 30분부터 18시 30분까지 교육청 앞에서 A학교 성폭력 사건 해결과 재발방지, 지혜복 선생님의 부당전보 철회를 위한 집중 피케팅이 진행된다.
[참조]
A학교 성폭력 사안·교육과정파행 공익제보교사 부당전보철회를 위한 공동대책위원회(준) 기자회견문 및 공대위 참여신청