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낙태죄 헌법불합치 결정 4년 논평] 임신중지는 범죄가 아니었듯 상품도 아니다! 임신중지에 건강보험 적용하고 유산유도제 도입하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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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지/성명/논평

[낙태죄 헌법불합치 결정 4년 논평] 임신중지는 범죄가 아니었듯 상품도 아니다! 임신중지에 건강보험 적용하고 유산유도제 도입하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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낙태죄 헌법불합치 결정이 난 지 4년이 됐다. 2019년 4월 11일 헌법재판소는 임신중지한 여성과 이에 조력한 의사를 처벌하는 형법 제269조 제1항과 270조 제1항이 모두 임신한 여성의 자기결정권을 과잉 침해한다는 이유로 헌법에 합치되지 않는다고 결정했다. 아울러 이 조항들에 대하여 입법자가 2020년 12월 31일까지 개정하라고 주문했다. 이러한 헌법재판소의 결정은 국내 성과 재생산 권리 운동이 일군 역사적 성과이자 낙태죄로 고통받던 수많은 여성의 목소리가 반영된 첫 출발점이었다.


그러나 지난 4년간 정부나 국회가 이 같은 헌법재판소의 결정을 외면하면서 임신중지는 여전히 사회적 차별과 편견 속에서 비밀리에 이뤄지고 있다. 또한 임신중지에는 건강보험이 적용되지 않아 그 비용을 개인이 모두 부담해야 할뿐더러 유산유도제 역시 여전히 가로막혀 있다. 우생학적이며 협소한 기준으로 임신중지 허용 사유를 정했던 모자보건법 14조는 낙태죄 헌법불합치 결정에 법적 효력을 상실했지만, 여전히 건강보험 지원 조건을 정하는 근거로 효력을 발휘하고 있다. 더구나 근로기준법 역시 이를 근거로 유사산휴가를 제한하여 여성 노동자들의 자발적 임신중지의 권리를 배제하고 있다. 심지어 정부는 약사법에 저촉된다는 이유로 여성들에게 유산유도제를 지원해온 위민온웹 접속마저 2019년 차단해 여성들의 접근권을 봉쇄하고 있다. 지난 연말에는 세계보건기구(WHO)도 안전하다고 인정한 유산유도제 제품 수입을 타진해오던 제약회사가 1년 반 가까이나 식품의약품안전처의 심사를 받다 결국 수입을 포기하는 일까지 벌어졌다.


이러한 조건에서 임신중지에 가장 큰 어려움을 겪고 있는 계층은 여성 노동계급이다. 여성 노동자의 2분의 1이 비정규직이고, 5명 중 2명은 최저임금의 영향을 받으며, 근로기준법도 적용되지 않는 5인 미만 사업장 노동자의 다수 역시 여성이라는 현실을 감안하면 여성 노동자들에게 낙태죄는 사실상 존치하고 있다고 할 수 있다. 불안정한 노동조건과 저임금에 하루하루를 버둥거리는 여성 노동자가 노동조건이나 경제적 문제로 자유롭게 임신중지하기는 극히 어려울 것이기 때문이다. 뿐만 아니라 윤석열 정부는 헌법재판소의 결정에 따라 성과 재생산 건강과 권리 보장을 위한 법제도를 만들기는커녕 여성가족부 폐지를 밀어붙이는 한편, 장시간 노동을 강제하는 노동개악을 강행해 여성 노동자들의 권리를 더욱 후퇴시키고자 한다. 이 같은 조건에서 여성 노동자의 성과 재생산 권리는 더욱 뒷걸음질 칠 수밖에 없다. 


이 같은 정권의 태도는 여성이 누려야 할 보편적인 건강권보다는 이윤 추구에 사로잡힌 민간 의료자본의 이해를 우선하기 때문이다. 또 노동력 유지를 위해 ‘저출산’만을 운운하며 여성의 실질적인 임신중지 권리에는 아무런 관심도 없기 때문이다. 장애여성과 논바이너리, 트랜스남성을 비롯한 성소수자의 실질적인 임신중지 권리를 외면하는 것 역시 이 국가가 여전히 가부장적 자본주의의 성적 규범을 강요하고 인구를 서열화하여 자본주의에 생산력 있는 노동인구만을 원하고 있다는 사실을 방증한다. 그러나 이처럼 노동자를 이윤 창출의 도구이자 인구정책의 도구로 삼으며 극한의 생존조건으로 밀어붙이는 저들의 정책은 노동자 가족을 허물어뜨리며 재생산 위기를 부추길 뿐이다. 결국 임신중지 서비스 접근권은 노동자계급 전체의 재생산 권리를 지키는 문제이며, 여성, 남성, 장애여성, 논바이너리, 트랜스젠더 등 다양한 모습으로 살아가는 노동자들이 자기 계급 전체의 힘을 끌어모아 투쟁할 때 그 권리를 온전하게 쟁취할 수 있다.


임신중지는 세계보건기구가 코로나19 팬데믹 상황에서도 각국이 유지해야 한다고 지정한 필수적인 보건의료 서비스다. 유산유도제 역시 세계보건기구가 정한 필수의약품이다. 여성의 성적 실천과 재생산 권리가 보장되기 위해서는 안전하고 자유로운 임신중지 권리부터 보장돼야 한다. 우리는 이 같은 권리를 쟁취할 수 있도록 노동계급을 조직하고 이들의 안전한 임신중지 권리가 보장될 때까지 싸울 것이다. 여성의 자발적 임신중지는 범죄가 아니었듯, 상품도 아니다. 임신중지에 건강보험 적용하고 유산유도제 도입하라!


2023년 4월 11일

사회주의를향한전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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