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는 지지 않았어! 지워지지 않았어! 앞으로도 지(워지)지 않는 대구퀴어문화축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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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의 투쟁

우리는 지지 않았어! 지워지지 않았어! 앞으로도 지(워지)지 않는 대구퀴어문화축제

  • 배예주
  • 등록 2025.09.26 13:53
  • 조회수 7,450

 

지난 9월 20일 대구퀴어문화축제가 열리는 날, 새벽 비가 그치고 날이 갰다. 축제를 여는 것조차 투쟁인 현실과 닮은 날씨였다. 벌써 17회를 맞는 대구퀴어문화축제는 올해도 보수적 상인회, 법원, 경찰의 ‘집회 제한 통고’ 등 방해를 뚫어내는 투쟁을 거치며 장소를 옮겨 열렸다. 축제 장소가 가까워지자 ‘다만세(다시만난세계, 윤석열 탄핵광장의 대표곡과 같은 노래)’가 울려 퍼졌다. 마치 탄핵광장에서 휘날리던 무지개빛 깃발들이 어른거리는 듯했다.

 

축제 장소는 예상대로 무지개로 빛났다. 이번 축제의 슬로건은 ‘우리는 지(워지)지 않아!’ 성소수자의 존재와 존엄, 평등한 권리를 자랑스럽게 드러냈다. 4천여 명이 참여한 가운데 90여 개의 부스부터 무대행사, 퍼레이드, 퍼포먼스와 마무리까지 인종과 젠더를 넘어 성소수자의 인권을 강조하는 장이었다.

 

 

사람들의 표정이 매우 밝았다. 부산대학교에서 처음으로 공식 동아리로 등록된 성소수자 동아리 ‘케세라’는 부스에서 ‘퀴어고사’를 치를 수 있는 행사를 마련했다. 민주일반노조 부산본부 외국어교육지회는 타투 스티커를 붙여주었고, 비상 플리마켓은 “A학교 성폭력 사안 해결과 지혜복 교사 부당전보 철회를 위한 투쟁도 제17회 대구퀴어문화축제를 응원합니다”라는 선전물을 배포하고 카라노조 연대 서명운동도 벌였다. 전교조는 ‘모두에게 안전한 교실’스티커와 여러 퀴어한 핀버튼을 나눠주었다. 팔레스타인 부스에서는 팔레스타인 성소수자에게 보내는 메시지를 적을 수 있었다.

 

준비과정부터 적극적으로 참여한 민주노총 대구지역본부는 ‘민주노총 무지개동지’ 깃발을 걸고 노동자 권리수첩과 노동권에 관한 팜플렛 등을 배포하며 무지개 리본을 서비스로 주는 다양한 무지개 굿즈를 판매했다. 대구지역본부 이길우 본부장은 무대 발언에서 “사회에는 곳곳에서 일상적으로 차별이 자행되고 있다”면서 “노동, 여성, 장애, 성소수자를 비롯해 일상적으로 벌어지고 있는 차별이 아닌 비록 소수의 사람이지만 다양성이 존중되는 세상을 만들어가자”고 강조했다.

 

이번 축제에서 단연 돋보인 곳은 탄핵광장에서 조직된 민주노총 대구지역본부 달곰이지부였다. 달곰이지부는 조직적으로 축제에 참여했다. 광장에서 가시화된 성소수자와의 연대를 위한 ‘앨라이설명서’ 책자를 제작해 배포하기도 했다. 이날 페이스페인팅을 맡았던 두두동지는 “이전에도 부스든 뭐든 퀴퍼 많이 갔었는데, 언제나 믿음직한 동료들과 함께였다. 다만 이번에는 조금 달랐다. 달곰이들과 대구본부 동지들의 듬직함은 그 느낌이 완전 달랐다. 준비부터 진행까지 온전히 즐거움뿐이었다. 힘든 건 그닥 걸림돌이 되지 못했다. 사진도 찍고 여기저기 올라가기도 했지만, 이전처럼 두려워지진 않았다. 원가족이 볼 수 있다는 걱정은 새로운 가족, 동지들이 덮어주었다”는 감회를 전했다.

 

달곰이인형들과 함께 안내해주신 넴동지는 “퀴어문화축제에 처음 참가하게 되었는데 이번 슬로건이었던 ‘우리는 지(워지)지 않아’라고 외치던 순간이 아직도 기억에 선명하다. 여기에 모인 사람들은 가장 먼저, 그리고 많이 지워졌으니까”라고 소회를 말했다.

 

빨간 조끼를 입고 앨라이설명서를 권하신 조은 동지는 어느 때보다 밝고 활기찬 모습이었다. “대구퀴어문화축제에서 달곰이부스로 참여했지요. 지부에서 오픈된 퀴어 중 한 명이라 종이동지와 함께 앨라이설명서 제작을 맡았습니다. 많은 우여곡절이 있었지만, 결과물을 보니, 하길 잘했다는 생각이 들어요. 우리가 평등수칙이나 다른 동지들이 말하는 걸로 대충은 성소수자들이 있는 걸 알고 차별하면 안 된다는 것을 단순하게 인식은 하고 있지만 접근하기 어려운 동지들이 많아 종종 동지들 사이에서도 소통에서 애로사항이 생길 수 있음을 압니다. 그래서 이 작업이 더 큰 연대와 공동체문화의 다리 역할을 할 수 있길 바랍니다. 부스 참여는 처음이었는데 처음엔 제 얼굴이 찍히는 걸 약간 피했지만, 어느 순간부터 ‘그래 찍어라 찍어. 내 주변에 동지들이 있다’ 하는 마음이 들어서 더 자신감 있게 나설 수 있었던 것 같아요”

 

축제 당일에도 분주했던 종이동지 목소리에는 힘이 실려 있었다. “올해 대구 퀴퍼에는 달곰이지부가 조직위원회에 참가했고, 저는 달곰이지부의 파견위원으로 대구 퀴퍼의 집행위에도 참여했습니다. 이번 슬로건인 ‘우리는 지(워지)지 않아’는 제가 썼어요. 우리를 지우려는 시도가 거듭될수록, ‘우리는 지지 않아’로 더 강하게 선명해지는 의지와 연대를 담고 싶었습니다. 지난 광장으로 무지개가 쏟아져 나가 우리를 더는 세상에서 감출 수 없게 되었듯이, 이번 퀴퍼에는 반대로 광장의 깃발들을 불러들여 우리가 여전히 함께하고 있다고 보여주고 싶었어요. 축제가 끝나고 나니 과연 우리는 얼마나 연결되어 있는가? 누구에게 보여줄 수 있었나? 무엇에 지지 않았는가? 그런 반성이 남습니다. 퀴어퍼레이드는 언제나 축제인 동시에 투쟁이니까요.”

 

그렇다. 가부장적 자본주의에서 성소수자의 퀴어퍼레이드는 축제인 동시에 투쟁이다. 착취당하는 노동자계급이 더 큰 차별과 억압 속에 있는 성소수자의 권리 보장에 누구보다 앞장서며 단결하는 것은 가부장적 자본주의의 계급 분열에 맞서 전체 노동자민중의 단결을 강화하는 지름길이다. 노동자가 앞장서서 일터에서 성소수자의 권리를 말하고 차별금지법 제정을 포함해 불평등을 깨뜨리는 투쟁을 곳곳에서 벌이자. 현장과 지역을 연결하며 법 문구에 갇히지 않고 모든 차별과 억압에 맞서는 실천적 투쟁으로 지(워지)지 않는 평등으로 나가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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