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체기사 목록
-
[기본강령] 1. 자본주의 사회와 노동자계급의 해방기본 강령 -제정 2024년 2월 17일 [목차] (※Ctrl키를 누르고 링크를 클릭하면 새 창에서 보실 수 있습니다.) 1. 자본주의 사회와 노동자계급의 해방 1) 자본주의 사회와 노동자계급 2) 자본주의 사회의 필연적인 발전경향과 노동자계급의 잠재력과 독립성 3) 노동자계급의 해방 2. 사회주의 혁명으로 나아가는 이행의 시대 1) 다시 전면화한 자본주의 쇠퇴와 제국주의, 그리고 이행의 시대 2) 자본주의 체제위기에 맞서 부활하는 세계 노동자투쟁 3) 세계노동자혁명과 한국노동자계급의 과제 3. 사회주의 노동자당 건설 1) 개량주의·의회주의 반대하고 혁명적 사회주의 수호 2) 노동자 스스로의 해방노선 3) 노동자 국제주의와 혁명적 사회주의 인터내셔널 건설 4) 현장에 뿌리내리고 민주적 집중주의를 실현하는 조직 5) 노동자 공동전선과 노동자계급의 총단결 선도 6) 사회적 헤게모니 7) 사회주의 노동자권력과 대중투쟁강령 1. 자본주의 사회와 노동자계급의 해방 1) 자본주의 사회와 노동자계급 자본주의는 생산수단의 사적소유와 노동력 상품화에 기반한 잉여노동 착취체제다. 소수 자본가는 생산수단을 독점하며, 노동자는 자신의 노동력을 자본가에게 판매해야 생존할 수 있는바 자본을 위한 생산과정에 종속되어 잉여가치 생산의 도구로서 소비된다. 자본축적 확대에 따라 상품생산과 시장교환은 사회 모든 영역을 장악하고, 이에 따라 인구 절대다수가 계급관계 속으로 편입된다. 소생산자와 독립생산자 비중은 절대적으로 감소하며, 인구는 소수 자본가계급과 다수 노동자계급으로 분해된다. 자본축적은 대규모 기계장비 도입을 통한 노동력의 대체를 수반하며, 이는 항시적 산업예비군의 존재로 이어진다. 이에 따라 노동자는 고용상태와 실업상태를 오가야하는 운명에 놓인다. 상대적 과잉인구로서의 취업노동자는 언제건 다른 노동자에게 대체되어 실업상태로 떨어질 수 있다는 불안에 시달리며, 이는 임금과 노동조건 하락을 감내하게 하는 구조적 요인이자 노동자계급을 자본에 종속시키는 효과적 규율로 작용한다. 노동의 소외는 자본주의적 생산의 필연적 결과다. 노동자는 자신의 생산물과 자신이 속한 노동과정, 자기 동료와 스스로의 인간본성으로부터 소외된 채 하루하루 소모될 수 있을 뿐이다. 더 많은 이윤을 위한 생산과정의 도구가 되어서야 비로소 생존할 수 있는 노동자계급의 삶은 육체와 정신의 마모에서 비롯되는 고통, 실업의 공포, 동료 노동자와의 경쟁, 자기계발이라는 이름의 자기 학대로 채워진다. 노동자는 자기 노동에 대한 모든 통제권을 상실하며, 노동은 순전히 생존을 위한 도구적 수단으로 전락한다. 이렇듯 자본축적의 확대 과정은 착취와 소외의 확대 과정이다. 이 고통이 계급투쟁의 근원이다. 노동자가 자본가에게 판매하는 노동력이라는 상품은 노동자라는 인격체와 분리할 수 없으며, 이에 노동자는 생존과 존엄을 지키기 위해 자본과 싸울 수밖에 없다. 이렇듯 더 많은 축적을 위한 자본의 운동은 노동자계급을, 그리고 계급투쟁을 생산활동의 모든 공간으로 확대한다. 2) 자본주의 사회의 필연적인 발전경향과 노동자계급의 잠재력과 독립성 자본의 목적은 더 많은 자본축적 그 자체다. 더 많은 집적을 향한 자본의 운동은 모든 공간으로 자본-임금노동 관계를 확장하고, 임금과 노동조건을 떨어뜨려 착취율을 높이고, 노동력을 기계로 대체하며, 이윤을 재투자해 생산을 확대하는 제반 조치로 드러난다. 더 많은 집중을 향한 자본의 운동은 경쟁자를 패퇴시키고 독점자본으로 서고자하는 자본 사이의 투쟁을 격화한다. 이는 더 저렴한 생산 기지, 더 많은 상품 판매시장과 원자재 수급처 확보를 위한 자본간 경쟁으로 이어지는바 자유경쟁 자본주의 시대의 종말과 제국주의 패권국 간 사활적 투쟁, 나아가 제국주의 전쟁이 그 결과다. 지난 세기 식민지 재분할과 대공황 극복을 둘러싸고 벌어진 두 차례 세계대전은 자본주의가 인류를 절멸할 수 있음을 드러냈다. 2008년 위기 이후 열강의 갈등은 갈수록 격화하는바, 제국주의 전쟁위기가 다시 심화하고 있다.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 대만과 남중국해를 둘러싼 미·중 대결은 또 다른 세계대전의 전조다. 자유시장 안에서의 호혜와 번영이라는 약속을 보호주의와 군비경쟁, 애국주의 선동이 대체하고 있다. 전면화하는 위기와 함께, 자본주의 국가들은 형식적으로나마 내걸어온 민주적 외양마저 폐기하고 있다. 노동권 억압이 심화하고 있고, 노동악법이 확대되고 있으며, 사회보장제도가 유명무실해지고 있다. 민주적 기본권에 대한 공격도 강화되고 있다. 대중에 대한 감시와 통제가 강화되고 있고, 여성과 성소수자, 이주민과 장애인 등 사회적 소수자에 대한 차별과 배제가 심화하고 있다. 바로 지금, 위기로 치닫는 자본주의체제는 임금과 노동조건을 개선하고 복지를 확장할 능력도, 노동자 민중에게 민주적 기본권을 확대할 능력도 없다. 이 모든 것은 착취체제의 위기에 대응하는 자본의 계급투쟁이자, 최소한의 진보성마저 상실한 채 노동자 민중에 대한 공격으로 연명하는 자본주의, 즉 쇠퇴하는 자본주의의 단면이다. 적대계급으로 나뉜 사회에서, 착취계급의 위기는 피착취계급 해방의 계기이기도 하다. 그간 자본주의는 자신의 발전 과정에서 노동자계급 해방의 조건도 창출했다. 더 많은 축적을 위한 자본의 운동은 모든 인구를 계급관계 속으로 편입시키고, 인구 대다수를 노동자계급으로 만들었으며, 생산의 공간을 전례 없이 확장하고 국경을 가로지르는 망으로 연결했다. 오늘날 단 하나의 상품도 전체 사회의 분업과 협력 없이 만들어질 수 없다. 이렇듯 더 많은 축적을 향한 자본의 운동은 노동자계급의 능력을 확대했다. 사회화된 생산은 노동자계급을 확대하고 집단화했으며, 생산과 유통망 안에서 연결했다. 이는 노동의 성격을 사회적으로 만들며, 또한 계급투쟁을 사회적인 것으로 만든다. 오늘날 계급투쟁은 자본주의가 세운 생산과 유통의 망을 타고 파급된다. 이는 자신의 임금과 노동조건을 지키는 투쟁에 다른 노동자의 연대를, 또한 다른 노동자의 임금과 노동조건을 지키는 투쟁에 자신의 연대를 필수적인 것으로 만든다. 결국, 자본주의는 전체 노동자계급의 단결과 연대를 필요할 뿐 아니라 가능한 것으로 만들었다. 이렇듯 생산의 사회화는 체제 자체에 맞선 계급투쟁을 가능케 하는 물질적 토대다. 계급투쟁을 통해, 노동자는 고립된 개체가 아니라 전체 사회와 연결된 주체 집단이 된다. 노동자계급은 계급투쟁 속에서 자신을 독립적인 실체로 세우고, 독자적 세계관을 형성해 자본주의체제 자체를 재편하는 투쟁에 착수한다. 노동자계급의 독자 정치세력화와 사회주의 혁명이 그 실천적 결론이다. 모든 혁명은 억압받는 민중의 혁명이다. 그러나 사회주의자는 어떤 계급이 피억압 민중을 이끌어 권력을 장악하느냐가 혁명의 성격을 결정한다는 것을 잊지 않는다. 계급으로 나뉜 사회의 대립축은 착취계급과 피착취계급의 적대다. 자본주의체제의 대립축은 자본가계급과 노동자계급의 적대다. 중간계급은 투쟁하는 양 계급 사이에서 끝없이 동요하는 한편, 생산력 발전과 임노동관계 확장에 따라 몰락하고 분해되어 다수가 임금노동자로 편입된다. 노동자계급은 몰락하고 동요하는 중간계급을 노동자계급의 입장으로 이끌며 착취체제의 종식을 위한 투쟁을 확대한다. 3) 노동자계급의 해방 (1) 사회주의란 노동자계급의 완전한 해방을 뜻한다 사회주의는 국가권력을 장악한 노동자계급이 경제와 사회를 재조직하고 스스로 운영함으로써 자본주의적 사적소유를 폐지하고 인간에 의한 인간의 착취와 억압을 끝장내는 체제다. 노동자계급의 해방은 노동자계급 자신의 힘으로 쟁취해야 한다. 공정하고 자유로운 계약의 형태를 띠는 임금노동제도 속에서 노동자는 경제적으로 착취당한다. 자본가계급은 민주주의라는 가면을 쓰고 노동자의 정치적 권리를 짓누른다. 더 나아가 사회적, 문화적으로 형성된 지배구조를 활용해 노동자의 의식과 행동을 옭아맨다. 이 모든 착취와 억압을 깨고 모든 노동자의 해방을 추구하는 것이 곧 사회주의다. 따라서 이는 자본가계급이 내려주는 혜택이나 그들과의 타협으로 이뤄질 수 없다. 선의를 가진 중간계급이 노동자계급의 역할을 대신 수행하는 방식으로 이뤄질 수도 없다. 이 본질에서 벗어난 관점과 사회는 어떻게 포장하더라도 사회주의라고 부를 수 없다. 일부 노동자만의 이익을 앞세우는 태도, 의회 질서 안에서 지배계급의 허락을 구하는 정책 대안론, 혁명의 성과를 파괴하고 노동자를 착취와 억압의 대상으로 전락시킨 스탈린 관료집단의 독재체제, 스탈린 체제를 이식해 수립된 위성 국가, 사회주의를 표방하며 급진적 민족해방혁명을 수행한 뒤 관료적 국가자본주의로 귀결된 나라 등이 그런 사례다. 자본가계급의 착취와 억압을 분쇄하기 위해서는 자본주의적 사적소유의 폐지가 필수적이다. 자본주의적 사적소유는 생산수단에 대한 자본가들의 개별적 소유에서 주식회사나 국유기업 같은 집단적 소유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형식을 취하지만, 생산수단과 노동과정에 대한 통제권을 자본가계급이 배타적으로 독점한다는 동일한 속성을 지닌다. 이러한 자본주의적 사적소유의 폐지, 즉 사회적으로 연합한 노동자들이 생산수단을 공동으로 소유하고 통제하며, 따라서 무엇을 얼마나 어떻게 생산하고 분배할 것인지 스스로 결정하는 힘을 쟁취하는 것은 착취와 억압을 끝장내고 새로운 사회를 건설하는 데에서 핵심적인 토대가 될 것이다. 이 토대는 개별 기업이나 특정 산업부문, 일부 지역 차원에서 마련될 수 없다. 전 산업에 걸쳐 전국적이고 전면적인 변혁이 이뤄져야 사적소유의 폐지를 확립할 수 있다. 이 과정을 일관되게 추진하기 위한 수단으로서 노동자계급의 권력 장악이 필요하다. 자본주의적 사적소유를 폐지하고 노동자계급의 공동체적 소유를 전면적으로 확립하기 위해, 그 과정에서 필연적으로 부딪힐 자본가계급의 공공연한 물리적 저항과 은밀한 사보타주를 분쇄하기 위해, 여전히 남아 있을 노동자계급 내의 의식 편차를 극복하고 다른 피억압 민중과의 동맹을 성공적으로 이끌어가기 위해 노동자계급은 국가권력을 활용해야 한다. 그러나 자본주의적 선거와 의회를 바탕으로 노동자 권력을 세울 수는 없으며, 기존 지배계급의 억압적, 관료적 국가기구를 그대로 물려받아 사용할 수도 없다. 기존의 국가 질서는 자본가계급의 착취와 억압을 유지하고 혁명을 차단하기 위한 용도로 만들어졌기 때문이다. 사회혁명에 나선 노동자들은 낡은 억압적, 관료적 국가기구를 해체하고, 작업장에 바탕을 둔 대중적, 민주적 평의회 권력 기구를 새롭게 창조해내야 한다. 즉 사회주의는 통상적인 선거와 의회 내 정책 협의가 아니라 혁명으로만 가능하다. 사회주의를 향한 노동자혁명은 지배계급 내 분파가 권력을 찬탈하기 위해 일으키는 쿠데타와는 완전히 다르다. 노동자혁명은 단순한 정권 탈취를 위한 것이 아니라 사회의 전면적인 변혁을 위한 것이며, 소수의 독단적 행위가 아니라 다수 대중의 집단적 행위로서 이뤄진다. 개량을 위한 투쟁, 부분적 요구를 위한 투쟁을 거부하지 않는 노동자계급은 선거와 의회를 활용한 투쟁 역시 거부하지 않는다. 하지만 우리는 선거와 의회 활동을 노동자 정치의 모든 것으로 간주하는 의회주의에 반대하며, 혁명적 계급투쟁 역량을 성장시키는 과정으로 선거 및 의회 활동에 찬성한다. (2) 노동자계급은 모든 사회적 억압과 불의에 맞선 투쟁에 앞장선다 사회주의 사회 건설로 나아가는 노동자 권력 수립을 위해서는 노동자계급의 정치역량을 전면적으로 발전시켜야 한다. 노동자계급 모든 부문의 단결을 추동하며 각각의 요구와 투쟁을 단일한 계급투쟁으로 끌어올려야 한다. 계급투쟁을 강조하는 것은, 노동자의 계급의식과 자기해방 능력이 폭발적으로 성장할 수 있는 유일한 통로가 바로 거기에 있기 때문이다. 직접적인 계급투쟁 속에서 노동자들은 자본가계급이 착취와 억압의 질서를 보존하기 위해 얼마나 냉혹한 또는 기만적인 수단을 쓰는지, 얼마나 단호하고 비타협적인지, 따라서 노동자들 또한 얼마나 단호하고 철저하게 투쟁해야 하는지 배울 수 있다. 그런데 현실에서 임금인상 투쟁이 임금제도 철폐를 위한 혁명적 계급투쟁으로 곧장 나아가는 것 같은 일은 일어나지 않는다. 일상 시기에 노동자는 균등한 계급의식으로 무장한 균질적인 집단으로 존재하지 않는다. 오히려 고용 형태, 성별, 나이, 인종, 국적, 성 정체성, 장애 등 다양한 잣대에 따라 분열돼 있다. 자본가계급이 노동자의 단결을 가로막고 서로 경쟁시키기 위해 이와 같은 분열을 의식적으로 조장하며, 다양한 사회적 차별이 마치 원래부터 자연스럽게 존재했던 것처럼 환상을 부추기고 이용한다. 이를 통해 그들은 노동자가 자본주의적 착취에 직접 대항하는 투쟁으로 나아가는 것을 방해한다. 다양한 차별과 억압을 방치한 채 노동자가 혁명적 계급투쟁으로 나아가는 것은 불가능하다. 분열해 있는 노동자들이 하나의 계급으로 단결하고 계급투쟁으로 전진하기 위해서는 다양한 차별과 억압에 맞선 투쟁에 의식적으로 앞장서야 한다. 특히 노동자계급의 절반을 차지하는 여성에 대한 구조적인 차별과 억압은 자본주의적 착취와 긴밀하게 결합해 있다. 자본주의적 생산을 지탱하고 이윤을 창출하는 데에서 노동력 재생산은 필수적이다. 그러나 자본주의는 이 노동력 재생산을 사회적 생산에서 분리하고 개별 가정의 사적인 가사노동, 돌봄노동의 몫으로 떠넘겼다. 출산, 육아를 비롯해 가사와 돌봄은 원래부터 여성에게 부합하는 일이라는 가부장제 이데올로기가 차별적인 성별 노동 분업을 정당화하는 수단으로 활용된다. 즉 사회적 생산에서 분리된 채 개별화돼 있다는 물질적 속성과 더불어, 당연히 여성이 해야 할 몫이라는 이데올로기가 결합해 가사와 돌봄은 자연스럽게 사회적 가치를 인정받지 못하는 무급 노동으로 전락했다. 그렇다고 여성이 집안에만 묶여있는 것도 아니다. 자본주의는 역사상 그 어느 때보다 많은 여성을 사회적 생산으로 불러들인다. 그러나 이때 여성은 한편으로 여전히 가사노동, 돌봄노동 책임을 져야 하므로, 주로 고용이 불안정한 저임금 노동으로 떠밀린다. 임금노동자로서 직장에 출근해 이윤 창출의 도구로 사용되고, 그다음에는 다시 집으로 출근해 가사와 돌봄 노동에 종사하며 자본가계급 전체의 필요에 따라 산아 도구로 살아야 하는 이중의 굴레가 여성 노동자의 삶을 짓누른다. 이런 혹독한 이중의 굴레가 언제까지나 안정적으로 유지될 수는 없다. 그 결과 자본의 착취 질서를 흔들거나 사회의 지속 가능성을 위협할 정도의 재생산 위기가 발생한다. 이 위기를 타개하기 위해 자본주의는 또다시 여성에게 산아 도구 역할을 감당하라고 압박하며, 여성에 대한 가부장적 억압과 통제는 개별 가정에서 국가 수준으로 확대된다. 이처럼 현실에서 자본주의적 착취와 가부장적 억압이 뗄 수 없는 결합체로 작동하고 있다. 이 착취와 억압의 결합 구조를 우리는 가부장적 자본주의라고 부른다. 이와 같은 물질적 토대 위에서 일상적인 성차별, 여성의 성 상품화, 성폭력에서 여성 살해에 이르는 기나긴 여성 억압의 쇠사슬이 형성된다. 가부장적 자본주의가 하나의 체제로서 작동하는 이상, 이 체제 전체에 맞서 싸우지 않은 채 얻은 여성의 권리는 일시적이고 불안정하며 다시 체제에 의해 무력화되기 쉽다. 자본주의 착취구조, 즉 계급 체제에 맞서지 않은 채 오직 가부장제만을 문제 삼는 경향이 우리의 대안이 될 수 없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초역사적 가부장제 관점에 기대어 계급 경계선을 넘나드는 여성 연대를 지향하는 흐름은 쉽사리 일부 자본가 정당과의 유착관계에 빠져들며, 체제를 변혁할 수 있는 노동자계급 단결의 힘이 탄생하지 못하게 가로막는다. 모든 사회적 억압과 불의에 맞선다는 폭넓은 관점을 견지하되, 그 전망을 실현할 힘은 가부장적 자본주의라는 체제 자체를 겨냥한 계급투쟁에서 비로소 등장할 수 있다는 점을 분명히 해야 한다. 다양한 차별과 억압에 맞선 투쟁에서 노동자들이 적극적인 역할을 하려면 노동조합 간부라는 시각을 뛰어넘어 민중의 호민관으로서 노동자계급이라는 관점을 분명히 세워야 한다. 노동조합은 노동자의 단결과 투쟁으로 나아가는 첫 발걸음으로서 소중한 의미가 있지만, 거기에 멈춘다면 노동조합에 가입한 일부 노동자만의 협소한 이익에 얽매이기 쉽다. 그 결과 다양한 차별과 억압에 맞선 민중의 보편적 권리를 위한 투쟁에 소극적인 태도를 취하게 되며, 자신과 관계가 없다고 여기거나 노동자투쟁에 방해된다고 여기기까지 하게 된다. 이는 곧 노동자 운동의 계급적, 정치적 발전이 가로막힌다는 것을 뜻한다. 사회 전체의 변혁을 위한 노동자혁명에 다수 대중의 지지를 끌어모으는 데서도 실패하게 된다. 노동자계급은 혁명적 계급투쟁에서 헤게모니를 쥐어야 한다. 차별과 억압에 맞선 투쟁은 그 출발점이다. 더 나아가 자본주의가 초래한 파국적인 위협에 맞서 인류 전체의 해방을 내걸고 투쟁함으로써 노동자계급의 해방을 위한 투쟁은 역사적 정당성을 실현할 수 있다. 임금노동자를 착취해 이윤을 쌓아 올리는 자본주의의 본성 탓에 민주주의는 기만적인 껍데기로 전락하기 일쑤이고, 자본주의 경제위기가 심화할수록 대중의 민주적 권리는 심각하게 박탈되며 정치체제는 반동적으로 타락한다. 오직 이윤만을 위해 무정부적 생산을 지속해온 자본주의는 생태계 질서를 교란하며 기후 위기를 재촉했다. 이는 그 자체로 인류의 공멸 위기로 이어진다. 곳곳에서 식량난이 발생하고, 야만적인 혼란과 내전, 전쟁 위협이 확산하고 있다. 이 위기에서 벗어나기 위한 탈출구가 필요하다. 노동자계급의 해방을 위한 사회주의 혁명이 그 길이다. (3) 노동자계급의 해방은 세계혁명으로 이뤄진다 노동자계급의 해방을 위한 사회주의 혁명은 근본적으로 세계혁명의 성격을 지닌다. 자본주의 자체가 생산과 분배를 국제적으로 실행하는 세계체제인 한, 이로부터 단절한 채 한 나라에서 노동자계급의 해방을 달성하는 것은 불가능하다. 어느 한 곳에서 혁명을 불러일으킬 정도로 사회 위기가 표면화한다는 것은 곧 지구적인 차원에서 위기가 누적됐다는 것을 의미한다. 경제위기만이 아니라 기후 위기 같은 재난 상황 역시 일국의 경계를 넘어 전 지구적 범위에서 다가오고 있다. 또한 어느 나라에서 노동자혁명이 일어나든, 반드시 세계 자본가계급이 연합해 이 혁명을 진압하려 정치적, 군사적으로 간섭할 것이다. 궁극적으로 사회주의는 자본주의의 무정부적 경쟁이 초래하는 낭비와 자연 파괴를 막기 위해 전 지구 차원에서 의식적, 계획적으로 생산과 분배를 조직해야 실현할 수 있다. 따라서 노동자혁명의 시작은 일국적일지라도, 세계혁명의 전망 아래 여러 나라로 확산하며 노동자계급의 국제적 협력을 성취했을 때 비로소 완전한 승리를 기대할 수 있다. 그 점에서 노동자 국제주의를 구현하는 것은 단지 고귀한 이상에 그치는 것이 아니라 노동자계급의 해방을 실현하기 위한 현실적이고 필수적인 과제다. 한국의 노동자계급은 세력권 재분할을 위한 열강의 제국주의 경쟁에 편승하기를 거부하고, 민중의 생명을 담보로 진행되는 전쟁 책동에 맞서 독립적인 세계 노동자 단결을 제기해야 한다. 국내 이주 노동자의 동등한 권리를 위해, 그리고 해외로 진출한 한국 독점자본의 착취 시도에 맞서 세계 노동자계급 전체의 이익을 대변해야 한다. -
평등을 위한 약속[평등을 위한 약속] 우리는 나이, 성별, 성적 지향과 성별 정체성, 장애, 신체조건, 병력, 건강상태, 식이요법(식이지향), 가족형태, 결혼/연애 여부, 육아/돌봄, 인종, 출신/거주지역, 언어, 사회적 지위, 경제적 상황, 종교, 학력, 활동 연차, 역할, 직책, 친밀도 등을 이유로 차별하거나 배제하지 않는다. 이를 통해 우리는 서로 존중하며 평등하고 안전한 공동체를 만들기 위해 노력한다. 1. 모든 활동에서 서로를 존중하며, 모두에게 참여의 기회가 보장되도록 노력한다. 1. 폄하, 비하, 차별 표현, 상호 동의 없는 반말을 하지 않는다. 1. 성역할에 근거한 활동배분을 하지 않는다. 1. 원치 않는 신체접촉과 성적 언행을 하지 않는다. 1. 권위적이거나 위계적 태도를 취하지 않는다. -
[현장대자보 2호] 가자 330! 가자 태안으로! 충남노동자행진으로 노동자 기후정의운동을 시작합시다.Instagram에서 이 게시물 보기 사회주의를 향한 전진(@marchtosocialism)님의 공유 게시물 가자 330! 가자 태안으로! 충남노동자행진으로 노동자 기후정의운동을 시작합시다. 3월 30일 태안에서 정의로운 전환을 위한 충남노동자행진이 열립니다. 정부는 2036년까지 석탄발전소 28기를 폐쇄한다면서도 발전노동자의 고용 문제는 내팽개치고 있습니다. 산자부 보고서에 따르면 최대 7,935명의 노동자 해고가 예상되지만 정부는 ‘취업 알선 프로그램’만을 제공할 뿐입니다. 기후파괴의 주범은 자본과 정부임에도 일자리를 잃는 것은 노동자들입니다. 발전노동자들은 여기에 맞서 총고용 보장과 비정규직 철폐, 그리고 에너지산업 국유화와 민주적 통제를 요구합니다. 충남노동자행진은 바로 이 발전노동자들이 제안한 노동자 기후정의운동입니다. 그리하여, ‘석탄발전은 멈춰도 우리의 삶은 멈출 수 없다’는 발전노동자들이 우리들에게 330 충남노동자행진 참여를 호소하고 있습니다. 자본과 정부의 기후위기 책임전가는 발전소에서만 일어나지 않습니다. 자동차 산업을 보십시오. 문재인 정부의 기후위기 해결책은 전기차·수소차 전환을 위해 현대차 등 재벌에 20조를 지원하는 것이었습니다. 윤석열 역시 현대차·한화 등 재벌의 탄소중립 사업에 61조원을 지원합니다. 그 덕분에 기후악당 현대차 재벌이 순식간에 기후위기 해결사로 둔갑했습니다. 반면 산업전환으로 해고가 예상되는 비정규직과 부품사·하청업체 노동자들에겐 ‘알아서 살아남으라’는 덕담을 건넬 뿐입니다. 이는 제철소, 철강 등 여타 금속산업 비정규직, 하청노동자도 마찬가지입니다. 싸워야 합니다. 기후파괴 주범인 자본을 징벌하는 것이, 노동자의 기후정의운동입니다. 자본은 저임금·비정규직 일자리를 양산한 주범인 동시에 가장 많은 탄소를 배출한 기후악당입니다. 심지어 산업전환 비용을 가장 열악한 노동자에게 전가하기까지 합니다. 그 힘은 자본이 생산수단을 소유하고 생산을 통제한다는 데서 비롯합니다. 노동자의 기후정의운동은 자본의 생산수단 소유권과 통제권을 빼앗는 방향으로 나아가야 합니다. 노동자 산업통제로 필요에 따른 생산과 분배를 실현해야 합니다. 그 경로는 현장과 산업을 넘나드는 계급투쟁입니다. 자본에 맞서 자본의 통제권을 문제 삼을 수 있는 투쟁, 그것이 노동자 기후정의운동입니다. 3월 30일 충남노동자행진은 발전과 금속을 포함한 모든 노동자의 기후정의운동을 결의하는 자리가 되어야 합니다. 태안에서 열릴 1차 충남노동자행진을 시작으로, 당진·보령 등 금속노동자와 만날 수 있는 곳에서 2차, 3차 행진을 준비하고 있습니다. 사회주의를향한전진은 3월 30일 1시, [기후정의 계급투쟁, 노동자 산업통제운동의 확산을 위한 사전결의대회]를 진행하고, 2시 본대회에 함께 참여합니다. 여기계신 여러분들도 사전결의대회에 함께해 주십시오. 더 넓고 깊은 노동자 기후정의운동으로, 기후악당 자본을 응징하고 노동자 산업통제를 실현합시다. 투쟁! -
[온라인 집담회] 정체된 기후운동, 어떻게 돌파할 것인가?- 충남노동자행진으로 기후정의 노동자투쟁을 시작합시다.2024년 3월 30일, 태안에서 정의로운 전환을 위한 충남노동자행진이 예정되어 있습니다. 노동자가 제안하는 기후정의운동이 시작된 것입니다. 노동자 기후정의운동은 왜 중요할까요? 발전소를 넘어 다양한 산업과 현장으로 기후정의 계급투쟁을 확장하기 위해 무엇을 준비해야 할까요? 기후정의를 위한 노동자계급의 요구는 무엇일까요? 온라인 집담회를 통해 함께 고민해봅시다. -
[기후위기, 대안은 노동자 기후파업3] 기후정의 계급투쟁: 충남노동자행진과 노동자 산업통제운동Ⅰ. 그린래시의 확대와 기후정의의 위기, 돌파구가 필요하다 Ⅱ. 기후정의운동의 돌파구: 세계 속 노동자 기후파업 Ⅲ. 기후정의 계급투쟁: 충남노동자행진과 노동자 산업통제운동 들어가며: 3월 30일 충남노동자행진을 앞두고, 전진은 기후정의 계급투쟁의 의미와 필요성을 정리한 이슈페이퍼(기후위기, 노동자민중의 대안: 노동자 기후파업을 시작하자)를 발행했다. 세 차례의 기사를 통해 해당 이슈페이퍼의 내용을 소개하고자 한다. 1. 한국 노동자 기후파업을 위하여 현장투쟁과 기후정의운동을 연결하자 메가스트라이크 등의 사례에서 보듯, 자본을 압도할 힘은 노동자계급의 조직된 힘이다. 지금 기후정의운동에 필요한 것은 각 산업 현장에서 자기 요구를 바탕으로 끈질기게 싸움을 만들어 나갈 노동자계급이다. 멀리 갈 것 없이 정태모(정의로운 에너지전환을 위한 태안화력발전소 노동자모임)는 한국에서 정의로운 에너지전환 운동이 지금까지 발전할 수 있었던 가장 큰 동력이었다고 평가할 수 있다. 정태모는 총고용보장-비정규직 철폐-노동권보장이라는 요구를 에너지산업 국유화-재생에너지 전환이라는 기후정의운동의 요구와 접목했고, 2022년부터 발전소 안팎에서 끊임없이 활동을 전개했다. 이런 활동의 결과로 정태모는 충남노동자행진을 제안하는 등 기후정의운동의 주요 주체로 자리 잡고 있다. 정태모 같은 사례가 여러 업종과 현장으로 확산돼야 한다. 물론 여전히 한국의 대다수 노동자계급에게 기후정의는 낯설다. 그러하기에 노동운동과 기후정의운동 모두 노동 현장의 투쟁을 기후정의운동과 연결시키기 위한 노력을 기울여야 한다. 산업과 현장에서 노동자 통제를 지향하는 투쟁이라면 거기서부터 노동자 기후정의운동을 시작할 수 있다. 이를테면 노동안전보건 투쟁 영역에서 노동자 현장통제권이 중요한 의제로 등장하고 있다. 위험 상황 시의 노동자 작업중지권이나 휴게시간 보장, 노동강도 완화와 노동시간 단축 등이 그것이다. 기후재난 상황에서 현장통제권 투쟁은 그 자체로 기후정의운동이 될 수 있다. 기후정의는 당분간 지속될 기후재난에서 인간이 존엄하게 살 권리를 포함하기 때문이다. 폭염, 혹한과 같은 기후재난에서 노동자가 죽지 않고 일하기 위해서는 극한기후 시 작업중지권 보장, 실내 냉난방기-옥외 노동시간 단축 및 조정이 가능해야 한다. 자본이 아니라 노동자가 노동시간과 노동환경을 자주적으로 통제할 수 있어야 기후재난에서 살아남을 수 있다. 그러하기에 현장통제권 쟁취 운동은 동시에 기후정의운동일 수밖에 없다. 기후재난, 죽지 않고 일하기 위한 노동자 현장통제권이 기후정의다. 정의로운 산업전환을 위해, 업종을 뛰어넘는 계급투쟁을 준비하자 발전 등 일부 사업장을 제외하면 총노동 차원의 산업전환 대응은 무기력하다. 민주노총은 아직 기후정의운동에서 자기 역할을 찾지 못하고 있으며, 특히 금속노조의 경우 산업전환 과정에서 제대로 된 요구조차 만들지 못하고 있다. 물론 ‘산업전환법’ 통과를 위한 활동을 벌여 오기는 했다. 그러나 이는 계급투쟁 대신 ‘사회적 대화’로 정의로운 산업전환이 가능하다는 환상일 뿐만 아니라, 그조차 상층기구의 논의일 뿐 현장을 조직하는 요구는 아니다. 사회적 대화기구든, 산업전환 일자리 심의위원회든, 이윤에 균열을 내지 않는 수준의 노동자 참여라면 정부와 자본이 굳이 마다할 이유도 없다. 노동자는 기후위기 주범, 국가와 자본의 책임을 계급투쟁으로 물어야 한다. 금속노동자들은 산업전환 계급투쟁을 위한 자기 요구부터 세워야 한다. 전기차-수소차 전환으로 인해 내연기관 부품사 하청-비정규직 노동자 구조조정이 예고된 지 오래다. 이는 단지 자동차 산업뿐 아니라 친환경 전환을 요구받는 조선-철강도 마찬가지다. 자본은 산업전환 비용을 가장 열악한 노동자에게 전가하고자 한다. 지금 노동자에게 필요한 건 자본가와의 대화와 거버넌스가 아니다. 자본에 맞서 자기 요구를 관철할 힘, 계급투쟁이다. 금속노동자의 기후정의, 기후위기-비정규직양산 주범 금속산업 자본에 대한 징벌이다 금속산업 재벌은 기후위기 주범이다. 그것도 다단계 하청 비정규직 노동자의 피땀으로 이윤을 쌓아올린 기후악당이다. 금속노동자의 기후정의는 바로 금속산업 재벌을 징벌하는 것이다. 금속노동자의 요구는 △금속산업 재벌이윤 환수 △물량과 무관한 생활임금 보장 △금속산업 노동자 총고용 보장과 비정규직의 정규직 전환 △파산부품사 공영화 △다단계 하도급 생산구조 철폐 △노조파괴-비정규직양산 총수 일가 구속처벌과 경영권 박탈 등이 되어야 한다. 물론 위 요구는 개별 사업장에서의 싸움으로 실현할 수 있는 것이 아니다. 이를 실현하기 위한 완성차 원청노동자, 하청노동자, 부품사 노동자의 연대체계를 구축해야 한다. 사업장 단위, 업종 단위를 뛰어넘는 투쟁을 준비하지 않을 때, 산업전환 대응은 자칫 ‘우리 작업장 물량 확보하기’로 전락하기 쉽다. 비정규직 노동자의 일감을 정규직이 빼앗는 아귀다툼은 민주노조운동도 아니고 기후정의운동도 아니다. 충남노동자행진의 의미: 기후정의 계급투쟁을 확산하자 충남노동자행진은 한국 최초로 노동자가 제안한 기후정의운동이다. 2019년 9·21 기후위기비상행동부터 2023년 9·23 기후정의행진까지, 그간 한국의 대규모 기후시위에서 노동자의 역할은 대개 집회에 하루 참여하는 것에 그쳤다. 예컨대 9·23 기후정의행진에서 민주노총 부스는 참여자들에게 대나무 칫솔과 비누 등을 나누어주었다. ‘기후위기에 맞서는 계급투쟁’이라는 노동운동의 과제를 인식하지 못하고 있음을 드러내는 단면이었다. 변화는 현장에서 시작됐다. 9·24 기후정의행진을 준비하며 탄생한 ‘정의로운 에너지전환을 위한 태안화력발전소 노동자모임’은 기후정의운동을 현장 투쟁으로 발전시켜 왔다. 아무리 기후정의가 중요하다고 한들 자신의 일터를 폐쇄하라는 것은 결코 쉽게 동의할 수 있는 일이 아니다. 적지 않은 발전 노동자들이 노조가 ‘발전소 폐쇄’에 동의해도 되겠냐며 문제를 제기했으나, 정태모는 ‘정의로운 에너지 전환’과 ‘노동자의 총고용 보장’이 상호 대립하는 문제가 아님을 명백히 했다. 그 결과 이들이 제안한 충남노동자행진에 전국의 노동자와 기후활동가들이 화답하고 있다. 충남노동자행진은 여러 업종의 노동자들이 모여 기후정의 계급투쟁을 자기 현장으로 확산하는 계기가 돼야 한다. 1차 충남노동자행진은 발전노동자들이 제안하고 주도한 기후정의운동이다. 그러나 노동자 기후정의운동이 발전노동자들만의 것은 아니다. 산업전환을 앞둔 금속노동자, 사모펀드에 장악당한 준공영제 버스노동자, 노동자 현장통제권 쟁취를 요구하는 모든 노동자가 기후정의운동의 주인공이 되어야 한다. 이들 모두가 충남노동자행진에 모여 기후정의 계급투쟁을 자기 현장으로 가져갈 준비에 착수해야 한다. 충남노동자행진을 통해 사업장-업종을 넘나드는 노동자 기후정의운동을 만들어 나가자. 2. 노동자 민중의 대안 – 기간산업 국유화와 노동자 통제 그렇다면 기후정의 계급투쟁은 무엇을 지향해야 할까. 계급투쟁은 기후위기를 끝내기 위한 노동자민중의 대안을 향해야 한다. 사회주의를향한전진은 기후위기 극복을 위한 노동자 민중의 대안으로 기간산업 국유화와 노동자 통제를 제안한다. 기간산업 산업국유화: 자본의 소유를 그대로 둔 채 기후위기를 해결할 수 없다 이윤생산 체제인 자본주의에서 ‘무엇을, 얼마나, 어떻게 생산할 것인가’는 모두 개별자본이 결정한다. 개별자본은 경쟁자를 제치고 이윤만 획득할 수 있다면 어떤 일도 서슴지 않는다. 기후재앙을 앞두고 화석연료 사용을 중단하지 않는 일, 기후위기의 비용을 노동자들에게 전가하며 폭력적인 해고를 서슴지 않는 일, 에너지 가격을 인상해 폭리를 취하는 일 등이 그래서 벌어진다. ‘무엇을, 얼마나, 어떻게 생산할 것인가’를 개별자본이 결정할 수 있는 권력의 근원은 단 하나다. 자본이 생산수단의 소유권을 가지고 있으므로, 이를 자기 마음대로 써먹어도 된다는 것이다. 그러나 현대 자본주의의 거대한 생산수단은 개별 자본가들이 땀 흘려 만든 것이 아니다. 노동자들의 피땀 어린 노동이야말로 저들이 가진 거대한 부의 진정한 원천이었다. 더구나 대자본가들은 정경유착, 불법 탈세 등 온갖 부정한 방법으로 사회적 부를 사유화해 왔으며, 경제위기를 맞을 때면 막대한 공적자금을 수혈받기도 했다. 왜 한 줌 대자본가들의 소유권을 지키기 위해 전체 사회가 희생해야 하는가? 정작 공적자금을 댄 노동자들은 정리해고되고 비정규직으로 전락했는데도 말이다. 기후재앙 시대에 인류의 생존을 위해서는 기간산업에서 즉각적으로 자본의 소유권을 몰수하고 이를 국유화하는 조치가 필요하다. 우선 에너지산업을 국유화해 재생에너지 전환을 전면화하고 노동자 민중의 필요와 계획에 따른 에너지 생산으로 대체해야 한다. 자본주의는 노동자 민중의 기본권인 에너지의 생산마저 이윤 창출의 수단으로 악용한다. 한국에서 전체 발전의 30%는 민간자본 발전사가 담당한다. 천연가스 직수입을 악용해서 엄청난 돈을 버는 SK, GS 등 재벌 발전사도 그중 일부다. 한국전력공사는 재벌 발전사의 이윤을 보장하기 위해 비싼 값에 전기를 구매하고, 여기서 발생한 적자를 노동자 민중의 전기요금 인상으로 해결한다. 더욱이 저들은 안정적 이윤생산을 위해서라면 위험천만한 핵발전도 마다하지 않는다. 이들의 무분별한 행태를 제어하자면 에너지산업의 각종 소유권을 몰수하고 국유화해야만 한다. 더 나아가 제철, 조선 등의 제조 분야, 철도, 버스 등 대중교통 분야 등 탄소 배출량이 높은 각종 기간산업 역시 국유화해야 한다. 이들 기간산업에서도 경쟁의 압력에 놓인 개별자본은 사회 전체의 이익보다는 자신의 이윤 획득을 우선시하기 때문이다. 더구나 기간산업의 재벌은 그동안 비정규직·사내하청 확대 등으로 노동자들을 가혹하게 착취한 것을 넘어, 중소기업, 소상인 등 광범위한 노동자 민중을 수탈하며 천문학적인 이윤을 벌어왔다. 기간산업의 국유화는 해당 분야에 고용된 노동자들의 생활 조건을 방어하는 것은 물론 사회에 대한 재벌의 문어발식 수탈을 막기 위해서도 필수적이다. 기간산업을 국유화함으로써 이윤이 아니라 노동자 민중의 필요에 맞춘 계획적 생산을 도모할 수 있다. 이것이 바로 사회가 기후재앙에 대응하기 위한 기본 전제다. 노동자 산업통제를 넘어 민주적 계획경제로! 국유화된 기간산업에 대한 노동자들의 실질적 통제가 있을 때만, 해당 산업은 노동자 민중의 필요를 충족하는 계획적 생산의 도구가 될 수 있다. 우리는 자본주의 체제 속의 공기업들이 사기업과 마찬가지로 비정규직 해고 등 악랄한 착취와 억압을 자행하는 것을 수차례 목격해 왔다. 기간산업을 국유화하더라도 이것이 단지 기업의 경영권을 민간 자본가에서 국가 관료의 탈을 쓴 자본가에게 양도하는 것에 불과하다면, 국유화는 아무런 의미도 지닐 수 없게 된다. 국유화된 기간산업은 철저하게 노동자들이 자주적·민주적으로 통제해 나가야 한다. 그동안 기간산업을 실질적으로 운영해 온 노동자들은 자신들의 역량을 넘치게 발휘해 해당 산업의 생산체계를 사회 전체의 필요를 위해 합리적으로 재편할 것이다. 기간산업 노동자들로 구성된 산업통제위원회는 이윤 생산에만 도움이 될 뿐 기후위기 대응에는 무의미한 낭비적 생산분야를 즉각 폐지할 것이며, 노동자 민중의 요구를 수렴하여 전기, 대중교통 등 필수 공공서비스 요금을 체계적으로 낮출 수 있을 것이다. 기후위기에 대응하기 위한 기간산업의 국유화 및 노동자 통제의 경험은 노동자계급의 거대한 잠재력을 현실화하는 수단이다. 노동자 통제를 통해 노동자계급은 민주적 계획경제를 운영할 수 있는 능력을 체계적으로 습득하게 된다. 이것은 기생충에 불과한 한 줌 자본가계급을 완전히 청산하고, 이윤 대신 사회적 필요를 위한 합리적 경제체제를 건설하기 위해 꼭 필요한 과정이다. 이 과정에서 노동자계급은 손에 쥔 것을 결단코 놓지 않으려는 자본가계급의 저항에 맞서 국가권력을 장악하는 단호한 정치적 조치도 서슴지 않을 것이다. 330 충남노동자행진 사전집회 참여하기: bit.ly/330기후정의계급투쟁 -
[기후위기, 대안은 노동자 기후파업2] 기후정의운동의 돌파구: 세계 속 노동자 기후파업Ⅰ. 그린래시의 확대와 기후정의의 위기, 돌파구가 필요하다 Ⅱ. 기후정의운동의 돌파구: 세계 속 노동자 기후파업 Ⅲ. 기후정의 계급투쟁: 충남노동자행진과 노동자 산업통제운동 들어가며: 3월 30일 충남노동자행진을 앞두고, 전진은 기후정의 계급투쟁의 의미와 필요성을 정리한 이슈페이퍼(기후위기, 노동자민중의 대안: 노동자 기후파업을 시작하자)를 발행했다. 세 차례의 기사를 통해 해당 이슈페이퍼의 내용을 소개하고자 한다. 독일 메가스트라이크에 참여한 시위자들(출처: LeftVoice) 1. 독일의 메가스트라이크: 자본이 두려워한 노동자 기후파업 기후운동과 노동운동의 만남 2020년 독일의 기후운동가들은 중대한 고민에 봉착했다. 2018년부터 시작된 ‘미래를 위한 금요일(Fridays For Future, FFF)’ 운동이 전략적 공백과 퇴조를 맞이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한때 ‘금요일 기후파업’ 등을 중심으로 한 기후 운동 내에서 ‘체제전환(System change)’이라는 슬로건이 유행했다. 그러나 이 운동은 실제로는 시민 불복종이라는 상징적인 행동, 혹은 정치 결정권자를 향한 몇 차례 집회 이상으로 나아가지 못하고 있었다. 이러한 상황에서 기후운동에 대한 대중적 관심과 호응 역시 줄어들던 추세였다. 기후운동이 쇠퇴하던 중에 독일 사회민주당, 자유민주당, 녹색당이 연합한 소위 ‘신호등’ 연방정부가 2021년 출범해 전형적인 녹색자본주의 정책을 추진했다. 연방정부는 기후운동의 상승기에 기후위기 해결을 위한 적극적이고 즉각적인 조치를 약속했지만, 그 대신 기후위기의 비용을 노동자민중에게 전가하는 ‘긴축 생태’ 정책을 펼쳤다. 2022년 우크라이나-러시아 전쟁 전후 에너지 위기가 증폭되며 재생에너지 전환은 동력을 상실했다. 오히려 화석연료 사용과이 늘어나고 군수산업 생산이 확대되는 등 퇴보가 이어졌다. 기후정의운동이 짧은 시간이나마 쌓아온 성과들이 모두 무너지고 있었다. 기후활동가들이 새롭게 시선을 향한 곳은 바로 노동운동이었다. 이들은 기후정의운동에 더 많은 노동계급을 적극적으로 참여시키고, 기후 문제를 노동자들의 일터로 가져가는 것을 고려하기 시작했다. 그 첫 시도로 기후활동가들은 대중교통 노동자들을 조직하기 시작했다. 버스, 철도 등 대중교통 부문의 노동자들은 장시간 교대 근무를 하며 최저임금을 약간 상회하는 급여로 간신히 생계를 유지하고 있었다. 청년층의 유입은 줄어들고 퇴직률이 높아 이미 수만 명의 운전자가 부족한 가운데, 교통요금은 꾸준히 상승하고 있었으며, 특히 농촌 지역의 여객 운송 시스템은 점점 더 축소되고 있었다. 이는 1990년 이래 지속된 공공부문 민영화의 결과다. 1990년대 이후 연방정부는 공공부문을 민영화하고 자유화하면서 인력 감축, 업무강도 강화, 불안정한 고용, 소득 감소, 노동조합 약화 등 각종 긴축 조치를 시행했다. 이 과정에서 철도 공기업이었던 ‘도이체반’도 1994년에 민간 기업으로 전환되고, 철도 여객 서비스의 상당 부분도 1996년 이후 대부분 민간 공급업체로 넘어갔다. 민영화의 여파 속에서 조직노동자들은 서로 다른 단체와 소속으로 분열되는 등 투쟁의 구심점을 모아내지 못한 채 결속력을 상실한 상태였다. 기후운동과 노동운동의 결합은 침체하던 두 운동에 생기를 불어넣는 계기가 되었다. '미래를 위한 금요일'은 2020년 지역 대중교통 단체교섭에 연대하며, 파업 당일 30개 이상의 도시에서 공공서비스노조(Ver.di)의 투쟁을 방문하고 지원했다. FFF는 교통노동자들의 파업을 지지하고자 “#wirfahrenzusammen (#WeDriveTogether) 2020”라는 캠페인을 추진하였다. 이 캠페인을 통해 ‘미래를 위한 금요일’ 활동가들은 파업 중인 노동자들을 위한 구체적인 연대를 조직하는 것부터 시작하여 승객들로부터 연대 성명서를 수집하고, 정치인들을 만나 노동자들의 요구를 전달했으며, 시민들과 노동자들의 노동조건에 대해 이야기하는 모임을 조직했다. 심지어 활동가들이 직접 노동자들에게 파업에 나서도록 설득하기도 했다. 물론 초창기에 기후 파업은 대다수 대중교통 노동자들에게 현실적이지 않았다. 공동의 행동을 논의하기 위한 조직이나 연대체에 참여하는 사람은 소수였고, 대중교통 노동자들 다수는 기후 의제에 회의적이었다. 파업에 연대하는 기후활동가들은 때때로 자신들을 소위 ‘기후 끈끈이(Klimaklebern)*’ 와 동일시하는 왜곡된 시선과도 마주해야 했다. 그러나 여러 지역에서 헌신적으로 이루어진 연대의 결실로 일부 운송노동자들이 기후정의운동을 자신들의 운동으로 생각하기 시작했다. 2020년 파업을 계기로 여러 도시에서 노동운동과 기후운동의 동맹을 목적으로 하는 공동의 단체들이 설립되었고, 2024년 현재 60개 이상의 도시에서 약 1,000명의 활동가들이 #wirfahrenzusammen 캠페인에 참여하여 대중교통 노동자들의 투쟁을 적극적으로 지원하고 있다. * 몸에 접착제를 바르고 도로를 점거하거나 미술품을 훼손하는 등의 직접행동 전술을 취하는 기후운동가들을 향한 멸칭. 주로 이러한 방식의 직접행동을 주도해온 환경단체 ‘마지막 세대(Letzte Generation)’를 가리킴. 독일 메가 스트라이크: “운송노동자 생활임금이 기후정의다” 2023년 3월 3일, 그간의 성과를 바탕으로 전 세계 기후파업에 맞춰 대중교통 노동자들이 함께 파업에 돌입했다. 이날 공공서비스노조는 전국적으로 지역 대중교통 노동자들이 하루 동안 행동할 것을 촉구하고 6개 연방 주에서 경고 파업을 벌였다. 그 결과 최소 30개 도시의 20만 명 이상이 파업에 참여했다. 독일 고용주 연맹(BDA)의 CEO 슈테펜 캄페터는 “노조가 정치파업의 영역으로 진입하고 있다”며 파업을 비난했다. 이는 역설적으로 자본가들이 노동자들의 파업을 두려워한다는 것을 드러낸다. 이것은 기후정의운동과 노동운동이 유기적으로 결합된 결과다. 노동조합은 운송노동자 생활임금 보장 등 경제적 요구를 기후정의운동의 요구로 제시함으로써 폭넓은 사회적 지지와 정당성을 확보할 수 있었다. 기후정의운동은 노동자들의 참여를 통해 실제 파업이라는 물리적 힘을 확보하고 자본가들을 압박할 수 있었던 것이다. 3월 27일, 파업은 이제 전체 운송부문으로 확대됐다. 대중교통 종사자뿐만 아니라 항공, 철도, 수상 운송 종사자들도 파업에 참여했다. 이날 독일 최대 공항인 프랑크푸르트 공항 등 전국 공항에서 항공편 운항이 중단됐다. 전국에서 장거리 열차 운행이 멈췄고, 베를린에서는 도시고속철도 운행이 끊기고, 독일 최대 항구인 함부르크 항도 마비됐다. 한 언론의 표현처럼 독일 안의 “모든 바퀴가 멈췄다(All wheels stand still!).” 대규모 파업에 놀란 사측은 27개월 동안 5% 임금인상과 일시금 2,500 유로(약 350만 원) 지급을 제안했다. 독일 내무장관 낸시 패저는 “노조의 요구를 들어주려면 매년 14억 유로(약 1조 9천억 원)가 추가로 든다”며 난색을 표했다. 당시 독일 정부는 자가용 중심 정책의 일환으로 고속도로 건설 등 대규모 토건사업을 벌이고 있었다. 그러하기에 운송노동자들의 파업은 기후활동가와 민중으로부터 더 큰 지지를 받을 수 있었다. “월요일에는 독일의 여러 도시에서 버스, 트램, 지하철이 멈춰 서게 됩니다. 대중교통 노동자의 높은 임금은 새로운 노동자를 고용하고 절박한 인력 부족을 극복하는 데 필수적입니다. 이는 결국 운송 부문의 탄소 배출량을 줄이는 데 필수적입니다. 따라서 이것은 기후 파업이기도 합니다. 그래서 미래를 위한 금요일과 다른 기후 운동가들이 이 파업에 대한 지지를 선언한 것입니다. (그러나) 녹색당을 포함한 독일 정부는 고속도로 건설과 자동차 산업에 대한 보조금에만 관심이 있습니다.” 2. 프랑스 토탈(Total) 정유공장 파업 토탈의 그린워싱: 노동자 민중의 피눈물로 만든 “석유 제로” 2021년 1월 4일, 프랑스 그랑퓌 정유공장 노동자들은 석유·가스부문 거대 다국적기업인 토탈(Total)의 정유공장 폐쇄에 맞서 파업에 들어갔다. 파업위원회를 통해 아래로부터 자주적으로 조직된 파업은 45일 이상 전개됐다. 정유공장 노동자들의 파업에 연대하며 철도, 경제, 원자력발전소 노동자, 교사, 학생 등 사회 각계각층으로 이루어진 계급적 동맹이 건설됐고, 정리해고 반대 투쟁에 강렬한 연대 메시지를 보냈다. 일부 기후·환경운동 단체들도 토탈 정유공장 파업을 지지하는 데 앞장섰다. 그랑퓌 정유공장 파업의 배경에는 토탈의 “석유 제로” 전략이 있었다. 지난 수년간 토탈은 정유공장 여러 곳을 폐쇄하면서 그랑퓌에서 200개, 관련 하청업체에서 500개의 일자리 감축 계획을 제시했다. 그랑퓌 지역의 고용 대부분은 토탈 정유공장에 의존하고 있었다. 일자리가 없는 농촌 지역에서 정유공장 폐쇄는 노동자들을 실업과 노동조건이 훨씬 열악한 최저임금 일자리로 내모는 일이었다. 한편 토탈이 자국의 정유공장을 폐쇄하는 진정한 목적은 다른 국가로 정유공장을 옮기는 것이었다. 공장 이전 예정지들은 원유매장지에서 가깝고 노동조건이 열악하며 환경기준이 느슨한 아프리카 국가 등이었다. 실제로 토탈이 추진하고 있는 우간다 틸렝가 석유 시추 프로젝트와 동아프리카 원유 송유관(EACOP) 건설 사업은 해당 지역의 자연환경과 주민들에게 재앙적인 결과를 불러왔다. 1,443㎞ 길이의 송유관이 우간다와 탄자니아의 주요 생태계 보전지역을 가로지르면서 국립공원이 파괴되고, 10만 명이 넘는 주민들이 토지를 빼앗긴 채 강제 이주를 당할 위기에 처했다. 토탈의 ‘석유 제로’ 전략은 기후위기의 고통을 가장 열약한 지역과 사람들에게 전가하는 전형적인 그린워싱 정책이었다. 그린워싱에 맞선 동맹과 토론: 노동자 통제만이 친환경 전환의 유일한 경로다 토탈 그랑퓌 노동자들은 토탈의 그린워싱에 맞서 일자리를 위한 투쟁과 환경을 위한 투쟁을 묶어내는 광범한 공동전선을 형성했다. 토탈 정유공장 노동자들은 수년 전 정리해고가 관철됐던 라메드 정유공장 노동자들과 만나 소통하고, ‘지구의 친구들’, ‘그린피스’ 등 기후·환경운동 단체와 10월에 접촉했다. 기후·환경운동가들은 화석연료 자본과 맞서는 투쟁에 매우 흥분했고, 이를 계기로 형성된 노동자와 기후운동의 결합은 파업의 큰 동력이 되었다. 노동자들은 투쟁 속에서도 에너지·산업 전환에 관한 토론을 이어 나가며 생각을 발전시켜 나갔다. “다국적기업의 손으로 친환경 전환이 이루어질 수 있는가?”라는 질문에 이들은 “노동자들이 공장의 통제권을 장악하면 오염을 덜 일으킬 것”이라는 결론을 도출했다. 이윤 본위의 생산이 아니라 사회적 필요를 위한 생산이라면 생태적 한계를 유지하고 공동체를 존속시킬 수 있다는 것이다. “일자리 문제와 환경 문제 두 가지 모두, 그 해답은 우리 노동자들에게 있습니다. 우리가 다른 이들보다 더 똑똑해서가 아니에요. 우리에겐 노하우, 즉 실질적인 경험과 지식이 있기 때문이죠. 우리는 우리 손으로 장비들이 작동하게 만들죠. 그래서 만일 우리가 통제권을 쥔다면, 우리는 이윤을 뽑아내기 위해서가 아니라, 사회의 필요를 충족하고 환경을 보호하려는 목적을 갖고 운영할 거예요. 환경은 바로 우리에게, 우리 가족에게, 우리 아이들에게 영향을 미치니까요. 그건 토탈의 CEO, 패트릭 푸야네와 정반대 편에 있는 거죠. 그는 오로지 자신의 이윤 기계가 멈추지 않아야 한다는 생각만 하고 있으니까요.” 3. 계급투쟁이 기후정의운동을 구원했다 노동운동과의 결합을 통한 기후운동의 반등 세계 기후정의운동은 자본을 강제할 힘과 실제 변화까지는 만들지 못하고 있었다. 몇 차례의 대규모 시위와 직접행동에 대한 회의가 확산하며 기후정의운동은 서서히 정체했다. 한국의 기후정의운동도 마찬가지다. 앞서 소개했듯, 기후위기 주범인 SK가 오히려 9월 기후행진 참여를 독려하는 상황은 미약한 한국 기후정의운동의 현주소를 드러낸다. 독일 메가스트라이크와 프랑스 토탈 노동자투쟁의 사례는 노동운동과 결합하는 것이 기후운동이 반등하는 방법임을 시사한다. 특히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기후위기 주범인 자본과 맞서 싸울 힘이다. 노동자계급은 자본과 직접 대립하는 유일한 계급이자, 이윤 창출을 중단시킬 능력을 갖춘 유일한 계급이다. 자본가들이 대중교통 노동자들의 파업을 ‘정치파업’이라며 경계한 이유다. 기후위기를 끝내기 위해서라도 우리는 노동자 기후정의운동이 갖는 잠재력을 주목해야 한다. 노동자계급과의 만남을 기후운동의 과제로 메가스트라이크 사례에서 기후활동가들은 노동조합 조직을 자기 과제로 삼고 파업을 준비했다. 예컨대 이들은 대중교통 노동자의 생활임금 보장과 노동시간 단축을 기후정의운동의 요구로 채택하고 노동자를 조직했다. 특히 노동자들의 생존권 요구에 기후정의라는 정당성과 사회적 지지를 부여함으로써, 기후운동을 낯설어하던 노동자들의 태도를 적극적으로 바꿔냈다. 이는 기후정의파업이 실제 노동자파업이 되도록 하는 주요한 동력이다. 한국의 노동자 기후파업을 현실화하기 위해 기후정의운동 역시 노동자계급을 조직하기 위한 노력이 필요하다. FFF 독일지부 역시 일회성 행사가 아니라 다년간의 조직 과정을 통해 노동운동과 기후정의운동의 유기적 결합을 만들었음을 기억하자. 330 충남노동자행진 사전집회 참여하기: bit.ly/330기후정의계급투쟁 -
[주간 여성뉴스 브리핑] 비정규직 여성 출산율, 대기업 정규직보다 4배 낮아1. 여성 출산율, 비정규직이 대기업 정규직보다 4배 낮아 지난 15일 오후, 부산에서 개최된 <노동정책포럼 주제 발표>에서 비정규직 여성 노동자의 출산율이 대기업 정규직 여성 노동자의 출산율보다 4배 낮다는 연구 결과가 나왔다. 이날 발표를 맡은 문영만 지역노동사회연구소장은 연구 결과를 통해 저출생 개선 대책은 비정규직 위주의 노동시장 구조 완화여야 한다는 결론을 내렸다고 밝혔다. 문 소장은 “지난 14년간 15세에서 49세까지의 여성 노동자 출산율 차이를 분석한 결과 일용직 여성의 출산율이 정규직 여성의 출산율보다 4배 낮았다”며 “고용 불안정성과 소득 격차가 출산에 큰 영향을 끼친 것으로 보인다”고 덧붙였다. 그는 “가구별 자녀 수 차이를 분석한 결과에서도 지난 17년간 임시‧일용직 여성 출산율 감소 폭은 0.42명으로 대기업 여성 노동자의 출산율 감소폭(0.18명)과 중소기업 정규직 여성 노동자의 감소폭(0.29명)보다 훨씬 컸다”고 설명했다. 또한 “자가 주택 보유자나 고학력자일수록 출산율이 높고 저소득, 신혼 가구일수록 출산율이 낮았다”고 지적했다. 이와 같은 연구 결과는 여성 출산에 대한 구조적 문제 진단이 없는 정책 남발 속에서 진정 집중해야 할 문제점이 어디인지를 명확히 해석하는 것으로 보인다. 여성 노동자의 고용 불안정과 저임금, 장시간 노동 문제가 격화되는 지금, 저출생 현상을 해결하기 위해서는 무엇보다 비정규직 철폐와 최저임금 인상을 통한 여성 노동자의 생존권 보장, 노동권 보장이 시급하다. <참조 기사> https://www.yna.co.kr/view/AKR20240315123300051?input=1195m 2. 삼성반도체 노동자 ‘태아산재’ 첫 인정 … 근로복지공단 업무상 질병판정 임신 중 유해 환경에 노출된 반도체 공장 노동자 자녀의 선천성 질환이 산업재해로 인정됐다. 태아산재법(개정 산업재해보상보험법)이 지난해 1월 시행된 후, 전자산업에서 나온 첫 인정 사례다. 기나긴 역학조사, 까다로운 인정 요건 탓에 그동안 ‘희망고문법’이란 평가도 받았지만, 조금씩 인정 사례가 쌓이는 분위기다. 22일 고용노동부 산하 근로복지공단에 따르면 공단은 삼성전자 반도체 공장에서 일했던 여성 노동자 3명의 자녀에게 발생한 선천성 질환을 같은 날 업무상 재해로 승인했다. 공단은 “자녀의 질환과 여성 노동자가 수행했던 업무의 인과관계를 인정해 업무상 재해로 판정한다”고 했다. 노동자들이 2021년 5월 시민단체 반도체노동자의건강과인권지킴이 반올림(약칭 ‘반올림’)을 통해 태아산재를 신청한 지 1,037일 만이다. 이번에 태아산재가 인정된 3명의 여성 노동자는 출산 전까지 10여 년간 삼성반도체 생산라인에서 일하다 벤젠, 아세트알데히드, 전리방사선 등의 유해 물질에 노출됐다. 이들의 자녀는 선천성 거대결장증, 무신장증, 발달장애 등의 질병을 안고 태어났다. 질병판정위원회는 여성 노동자들이 △여러 유해 물질에 노출됐을 것으로 추정되는 점 △반도체 업종 여성 근로자에게서 유산의 증거가 확인된 점 등을 산재 인정 배경으로 꼽았다. 반올림은 “이번 산재 인정은 별다른 이름 없이 반복되는 반도체 노동자들의 생식독성 피해에 대해 ‘업무상 재해’라는 이름을 붙였다는 데 의미가 있다”고 환영했다. 그러면서 “이미 업무상 질병이 인정된 간호사, 전자산업 분야 노동자뿐만 아니라 생식독성 피해를 겪고 있는 다양한 노동자들을 확인하고 안전한 사업장을 만들고자 하는 노력이 전 산업에 걸쳐 진행돼야 한다”고 덧붙였다. <참조 기사> https://www.hankookilbo.com/News/Read/A2024032217060003791?did=NA 3. 뉴욕시 재가 요양보호사, 24시간 노동제 중단을 위해 시청 앞 단식농성 미국 뉴욕에서 재가 요양 돌봄노동자들이 뉴욕만 허용하고 있는 하루 24시간 노동제 폐지를 위해 수백 명 규모의 집회를 열고 25명이 넘게 단식하는 파업에 돌입했다. 집회 참가자들은 “No more 24!”를 힘차게 외쳤다. 환자의 집에서 24시간 온종일 일하는 이들은 대부분 유색인종 여성이다. 이들은 시의회가 24시간 노동제 폐지와 2교대를 도입하는 법안(No More 24법안, 인트로615)을 여전히 거부하는 행태는 성차별적이고 인종차별적인 살인적 노동착취라 규탄했고 관련 법안의 조속한 통과를 요구하고 있다. 뉴욕은 미국에서 24시간 살인적 노동착취가 허용되는 유일한 곳이다. 노동자가 24시간 재가 돌봄을 해도 임금은 13시간에 대해서만 받을 수 있다. 단식에 참여한 중국 이주 노동자 송귀하는 “오랜 시간 하루 24시간 일하면서 우리 몸은 혹사당하고, 망가지고 아픔과 통증으로 가득 찼다. 자녀와 가족을 돌볼 수 없다. 많은 자매의 건강이 나빠져 우리 역시 환자가 되었다”고 발언했다. 단식 중인 루즈 에스트렐라는 “지난 12년 동안 24시간 교대근무를 했고 때로는 14시간 연속해서 일하기도 했다”며 “가족과 함께 크리스마스나 새해를 보낸 적이 한 번도 없다. 저들은 임금뿐 아니라 건강과 삶까지 훔쳐갔다”고 단식 투쟁의 결의를 밝혔다. 노동착취 반대 청년 단체(Youth Against Sweatshops)의 릴리 랜달은 “내가 아는 가장 용감하고 결단력 있는 여성들과 함께 싸울 수 있어 자랑스럽다. 지금이 우리의 미래를 위해 싸울 때다. 더 이상 24시간은 없다!”고 외치며 동조단식 소감을 밝혔다. 이 투쟁에는 중국노동자협회(the Chinese Staff and Workers’ Association), 여성단체 나는여자가아닌가(the Ain’t I a Woman), 가브리엘라 뉴욕(GABRIELA New York), 노동착취 반대 청년(Youth Against Sweatshops), 뉴욕택시노동자연합(NY Taxi Workers’ Alliance), 뉴욕법률서비스지회(LSSA 2320), 쉬울프베어커리노조(She Wolf Bakery Union), 아마존노조(Amazon Labor Union), 뉴욕대학연구재단교직원지회(Professional Staff Congress), 레드카나리송(Red Canary Song), 아파르트헤이트에는 기술이 없다(No Tech for Apartheid), 비영리법률단체 정의를 위한 동원(MFJ)의 파업 노동자, 자유의길 사회주의조직(Freedom Road Socialist Organization) 등이 함께했다. 자신의 투쟁과 연결해 공동투쟁의 필요성을 밝히는 노동자들의 연대사도 가득했다. <참조 기사> https://www.harlemworldmagazine.com/stop-the-24-hour-work-day-nyc-home-attendants-support-hundreds-at-city-hall-hunger-strike-seeking-end-to-24-hour-workday/ 4. 정부, 첫해 ‘성평등지수’ 산출 끝내고도 석 달째 비공개 정부가 윤석열 대통령 취임 첫해인 2022년 한국 성평등 수준을 보여주는 ‘국가성평등지수’ 산출을 지난해 말 끝내고도 석 달여가 지난 현재까지도 공개하지 않고 있다. 그간 정부가 해마다 국가성평등지수 산출을 위한 연구를 진행해 그해 연말 또는 이듬해 초 그 결과를 발표한 일에 비춰보면 매우 이례적이다. 여성가족부(이하 여가부)는 2022년 국가성평등지수 산출을 위해 지난해 한국여성정책연구원을 통해 <2023년 국가성평등보고서> 연구용역을 진행했다. 2022년 기준 각 분야 통계를 활용한 이 연구는 지난해 12월 20일 종료됐다. 그러나 여가부는 지난해 1월 ‘2021년 국가성평등지수’(75.4점)를 공표한 이후 지금껏 2022년 국가성평등지수를 발표하지 않고 있다. 국가성평등지수란 2009년에 국가의 성평등 수준을 계량적으로 측정할 수 있도록 개발된 지수로, 양성평등기본법에 따라 여가부는 성불평등이 심각한 분야를 진단하고 개선하기 위해 해마다 국가성평등지수를 조사·공표해야 한다. 경제활동(성별임금격차, 경제활동참가율 등), 의사결정(국회의원, 4급 이상 공무원 비율 등), 교육·직업훈련(고등교육기관 진학률 등), 안전(강력범죄 피해자 비율 등), 가족(가사노동시간, 육아휴직자 등) 등 8개 분야를 살펴 점수를 매긴다. 사회 각 분야 성불평등 실태를 드러내는 성평등지수는 국가 차원의 정책을 평가하는 근거가 되는 만큼 지수 발표가 이례적으로 늦어지는 건 그만큼 윤석열 정부가 성평등 정책에 무관심한 결과라는 비판으로 이어지고 있다. <참조 기사> https://www.hani.co.kr/arti/society/women/1132933.html 5. 경제문제로 비혼을 선택하는 중국 여성들 중국에서 젊은 여성이 결혼과 출산을 기피하는 현상이 강화되고 있다. 프리랜서 카피라이터 차이 완러우는 많은 청년 여성과 마찬가지로 결혼이 불공평한 제도라고 생각한다. “이전 세대에 결혼한 많은 사람, 특히 여성들은 자신과 경력 개발을 위해 희생하고 약속된 행복한 삶을 얻지 못했다. 요즘은 내 삶을 사는 것도 충분히 어렵다”고 말한다. 중국은 경기침체로 일자리가 줄어들며 낮은 임금에 청년실업률은 20%대를 기록하고 있다. 그런데 실제 청년실업률은 40% 전후라고 한다. 이런 상황에서 많은 청년 여성은 결혼을 미루고 있다. 2021년 공산청년동맹이 약 2,900명의 미혼 도시 청년을 대상으로 한 조사에서는 여성의 44%가 결혼 계획이 없다고 답했고, 평균 초혼연령도 10년 만에 4세 정도 높아졌다. 2020년 출산율은 1.28명으로 2년 연속 감소세를 보이며 저출생이 심각한 사회문제가 되었다. 하지만 정부는 최근 양회(전국인민대표대회·전국인민정치협상회의)에서 의무교육을 단축시키고 혼인 가능 연령을 만 18세로 낮추는 등 현실에 맞지 않는 대책들을 제안하며 가부장적 통제를 강화하고 있다. 미국에 사는 중국 페미니스트 활동가 루 핀은 이러한 상황에 대해 “페미니스트 활동은 중국에서 허용되지 않지만, 결혼과 출산을 거부하는 것은 가부장적 국가에 대한 비폭력적 불복종의 한 형태”라고 말했다. <참조 기사> https://www.japantimes.co.jp/news/2024/03/07/asia-pacific/society/china-economy-women-singledom/ https://www.etnews.com/20240307000250 6. 일본 고법, 동성결혼 불인정은 위헌 일본 삿포로고등법원이 최근 3월 14일 동성결혼을 인정하지 않는 것은 위헌이라고 판결했다. 일본 고등법원의 동성결혼 금지에 대한 위헌 판결은 이번이 처음이다. 이는 모두의 혼인평등을 위해 활동하는 시민단체 ‘메리지포재팬(marriage for all japan)’ 소속의 동성커플들이 2019년 2월부터 삿포로와 도쿄, 나고야, 오사카, 후쿠오카 등 5곳 지방재판소에 제소한 동성혼 불인정 위헌소송 중 가장 앞선 판결이다. 삿포로고등법원은 판결문에서 “동성커플에게 결혼을 불허하는 것은 합리성이 결여된 차별”이라고 밝히며 동성결혼을 허용한다고 해서 누구에게도 불이익이나 피해가 발생하지는 않는다고 했다. 원고 중 한 명인 타카시는 “꿈을 꾸는 줄 알았다”며 판결 결과에 정말 기쁘다고 말했다. 같은 날 1심 법원인 도쿄지방재판소는 헌법 제14조(평등권), 제24조(결혼의 자유) 등을 근거로 동성혼을 인정하지 않는 민법 등의 법률 규정을 ‘위헌 상태’라고 했다. 그러나 두 법원은 국가가 법률을 개정하지 않은 데 따른 손해배상 청구는 기각했다. 한편 오사카지방법원은 ‘합헌’이라고 판정했다. 일본은 G7국가 중 동성결혼을 인정하지 않는 유일한 국가다. 가시다 총리가 이끄는 일본 정부는 헌법이 이성애자 부부간의 결혼만 인정한다고 주장하면서 혼인법을 개정하지 않고 있다. 하지만 동성결혼에 대한 대중적 지지는 꾸준히 상승해 지난해 여론조사에서 72%가 동성결혼 합법화에 찬성했다. <참조 기사> https://www.womennews.co.kr/news/articleView.html?idxno=246458 https://www.japantimes.co.jp/news/2024/03/14/japan/crime-legal/same-sex-marriage-ruling/ 7. 뉴욕 나소 카운티 공화당, 트랜스젠더 운동선수를 표적으로 삼아 우위를 노리다 나소 카운티의 집행관인 브루스 블레이크먼이 나소 카운티 소유의 공공 스포츠 시설에서는 트랜스젠더 여성(MTF)과 여성 청소년이 소속된 스포츠팀의 시설 이용을 금지한다는 행정 명령을 내려 논란이다. 나소 카운티는 뉴욕주에 포함된 지역으로 미국 내 민주당 권력의 중심지였으나, 블레이크먼이 문화 정치(culture war issues) 측면에서 선동을 거듭하며 지역 공화당원을 빠르게 양성해왔다. 2021년 COVID 유행 당시 마스크 의무에 대한 반대 담론을 부상시킨 것은 블레이크먼 식 정치의 일례다. 지난 18일 블레이크먼은 트랜스젠더 올림픽 선수로 큰 인기를 얻었던 케이틀린 제너와 함께 대중 앞에 나섰다. 이날 케이틀린 제너는 트랜스젠더 스포츠 선수의 공공 스포츠 시설 이용을 금한다는 제한적 정책에 대한 지지를 표방했다. 이어 그는 “블레이크와 함께 여성과 여성 청소년들을 보호할 것이며, ‘깨어 있는 의제’를 전면적으로 물리치겠다”면서도 LGBTQ 커뮤니티에 대한 여전한 연대를 언급하기도 했다. 과거 올림픽 선수이자 현 방송 노동자로서 잘 알려진 케이틀린 제너를 대동한 것은 트랜스젠더 혐오 이슈에서 젊은 지지층을 모으려는 공화당의 정치적 선택으로 보인다. 실제 미국 내 여론조사에 따르면 공화당의 이러한 정치적 행보는 미 대중들에게 일정한 영향을 미치고 있다. 조사에 의하면 2021년에는 ‘트랜스젠더’라는 개념을 이해하는 사람들을 대상으로 한 설문에서 응답자 중 40%가 트랜스젠더가 원하는 스포츠팀에서 뛰도록 허용해야 한다고 답했지만, 2023년에는 그 수치가 10%p 하락한 30%에 불과했다. 심지어 트랜스젠더를 알지 못하는 응답자 중 트랜스젠더 운동선수에 대한 지지도는 같은 기간 8%p 하락한 23%로 나타났다. LGBTQ 인권 단체들의 비판이 예상되는 가운데, 블레이크의 행정 명령이 이대로 실시될 경우 앞으로 공공 시설을 사용하는 모든 스포츠 단체는 회원의 법적 성별에 따라 팀을 남성/여성 또는 혼성으로 명시적 기재해야 한다. 한편 레티샤 제임스 주 법무장관은 이러한 움직임이 “트랜스 혐오적인 모습이고, 매우 위험하다”고 공식 비판했다. 그러나 분리주의에 기반한 우파적 여성 정책이 유럽에서 대두되는 흐름을 고려할 때, 나소군에서 시작된 트랜스젠더 혐오 정치의 불씨는 쉽게 꺼지지 않을 것으로 보인다. <참조 기사> https://www.nytimes.com/2024/03/20/nyregion/nassau-trans-women-sports.html -
[기후위기, 대안은 노동자 기후파업1] 그린래시 확대와 기후정의의 위기, 돌파구가 필요하다Ⅰ. 그린래시의 확대와 기후정의의 위기, 돌파구가 필요하다 Ⅱ. 기후정의운동의 돌파구: 세계 속 노동자 기후파업 Ⅲ. 기후정의 계급투쟁: 충남노동자행진과 노동자 산업통제운동 들어가며: 3월 30일 충남노동자행진을 앞두고, 전진은 기후정의 계급투쟁의 의미와 필요성을 정리한 이슈페이퍼(기후위기, 노동자민중의 대안: 노동자 기후파업을 시작하자)를 발행했다. 세 차례의 기사를 통해 해당 이슈페이퍼의 내용을 소개하고자 한다. 지난해 8월 29일, 영국 런던에서 초저배출구역(ULEZ) 확대에 반대하는 시위가 열리고 있다(출처: 연합뉴스) 기후정의운동의 급격한 성장과 정체 우리는 2018년의 그레타 툰베리를 기억한다. 기후위기를 걱정하던 툰베리가 시작한 결석시위는 1년 만에 152개국 1,600개 지역의 동맹휴학으로 확산했다. 현실이 된 기후재난을 세계 각지의 청소년들은 피부로 느꼈고, 툰베리는 그들의 슬픔과 분노에 불을 지폈다. 툰베리와 청소년들의 결석시위는 양식 있는 자유주의자들을 자극하기 충분했다. 갈수록 파괴적이고 빈번해지는 폭염, 홍수, 산불 등의 기후재난 역시 사람들을 움직였다. 2010년대 말, 기후위기를 경고하는 시위는 ‘대세’로 자리잡았다. 2020년과 함께 시작한 코로나19 위기는 기후시위를 더욱 발전시켰다. 사람들은 기후위기가 더 심각한 보건위기를 초래한다는 점을 이해하기 시작했다. 나아가 기후위기는 단순한 생태파괴가 아니라, 자본주의가 초래한 총체적 위기의 한 축임을 받아들이기 시작했다. 기후정의를 요구하는 목소리가 높아졌고, 거리의 기후시위는 더욱 커져갔다. 26차 유엔기후변화협약 당사국총회(COP26)가 열린 2021년 11월, 100여 개 나라에서 ‘기후정의 세계 행동의 날’ 시위가 열렸다. 특히 COP26 회의장 앞에만 10만 명이 넘는 군중이 모여 탈석탄과 기후정의 실현을 요구했다. 갈수록 불어나는 기후시위 앞에 국가와 자본도 ‘그린뉴딜’, ‘탄소중립’, ESG를 언급하기 시작했다. 거리의 시위가 변화를 만들어 내는 듯 보였다. 그러나 지금 각국 정부는 노골적으로 기후정의에 역행하고 있다. 지난해 12월 열린 COP28은 화석연료의 ‘단계적 퇴출’을 거부했고, 폐막 이틀 뒤 의장은 “화석연료에 계속 투자할 것”이라고 밝혔다. 같은 시간 한미일 등 22개국은 원자력 에너지 3배 확대 선언을 발표했고, 작년 4월 모든 핵발전소 가동을 중단한 독일에서도 핵발전 회귀 여론이 확산하고 있다. 영국은 기업 100곳에 북해 석유·가스 시추를 신규 허용했다. 프랑스는 환경규제가 유럽의 산업경쟁력을 떨어뜨리고 중국과 미국에 유리하게 작용한다며, 유럽연합 환경규제의 일시 중단을 촉구하기도 했다. <주요국 그린래시(greenlash) 사례> 국가 내용 그린 래시 확대 스웨덴 2030년 내연기관 판매금지에 대한 반대 여론 우세(찬성 42% 반대 47%) 독일 2024년부터 가정용 화석연료 보일러 사용금지법안 채택 후 과도한 기후대응 정책에 반대하는 독일을위한대안당(AfD) 지지율 상승(2위, 22%) 네덜란드 2019년 도입된 가축농가질소규제배출 비판 정당인 농민시민운동(BBB) 지지율 10%대로 상승 미국 바이든 행정부의 기후 아젠다를 반대하는 트럼프 전 대통령 지지율 상승 탄소 중립 후퇴 EU ‘기업 지속가능성 주의 지침’ 대상에서 금융기업 제외 논의 시작 신규 배기가스 규제안인 ‘유로 7’을 현행 ‘유로 6’으로 유지 스웨덴 2024년 기후 대책 관련 예산(약 2.6억 크로나) 삭감, 유류세 감면 등을 통한 내연기관 자동차 이용자 부담 경감, 신규 원자로 10기 건설 계획 발표 등 탈원전 기조 철회 영국 휘발유 및 경유차 신차 판매 금지 시기 연기(2030년→2035년) 기타 독일, 오스트리아, 네덜란드, 그리스, 이탈리아 등의 국가는 석탄화력발전 규제 등 에너지전환조치 완화 2024년 「글로벌 트렌드」, 현대경제연구소, 2023.12.29. 자본의 행보 역시 마찬가지다. 이를 보여주는 것이 바로 ESG의 퇴조다. 블룸버그는 지난해 4분기 미국의 ESG 펀드에서 50억 달러(약 6조 6,700억 원) 이상의 자금이 빠져나가며 전례 없는 적자를 기록했다고 보도했다. 아울러 최근 기업 경영진의 ESG 언급이 전반적으로 줄었다고도 전했다. 블룸버그가 집계한 데이터에 따르면 분기별 실적 발표에서 ‘ESG’가 언급된 횟수는 2020년 말 이후 최저 수준으로 떨어졌다. 불과 몇 년 전만 해도 우리는 자본의 ‘그린워싱’을 비판했으나, 자본은 이제 거추장스러운 ‘워싱’조차 하지 않는다. 거리의 기후시위 역시 빠르게 퇴조하고 있다. 화석연료 퇴출을 거부한 지난해 COP28 회의장 앞에서도 시위가 열렸다. 그러나 그 규모와 위세는 불과 2년 전의 COP26과 비교해도 현저히 줄어들었다. 초창기 대규모 시위는 기후위기에 분노를 표출하며 성장했다. 그러나 분노의 표출만으로는 국가와 자본의 변화를 강제하지 못했다. 시위의 효능감과 동원력은 급격히 감소했다. 새로운 운동으로 떠올랐던 기후시위가 어느덧 낡고 진부한 것이 된 것이다. 그 빈틈으로 극우의 기후·환경운동에 대한 반발, 이른바 ‘그린래시(greenlash, green+backlash의 신조어)’가 확산하고 있다. 2023년은 관측 이래 지구가 가장 더웠던 해로 기록됐다. 지구는 뜨거워지는데 기후정의운동은 식어가고 있다. 그 덕분에 국가와 자본의 그린래시는 더 빨라지고 있다. 이 악순환을 어떻게 풀어야 할까. 이 문제를 풀기 위해서는 2010년대 후반 이후 성장한 기후시위에 자본이 어떻게 반응했는지를 우선 진단해야 한다. 이제 관점을 바꿔 전지적 ‘자본’의 시점에서 기후운동의 성장을 돌이켜 보자. 기후위기와 함께 성장한 녹색자본 2018년 이후 급속도로 성장한 기후시위에 대해 국가와 자본은 ‘녹색자본 축적 전략’으로 대응했다. 단적인 예가 ‘그린뉴딜’이다. 한국, 미국 등에서 자본은 재생에너지, 전기차·수소차 전환을 내세우며 기후위기 해결사로 등장했다. 심지어 ‘좌파적’ 버전의 그린뉴딜도 마찬가지다. 미국 민주사회주의자그룹(DSA) 소속 하원의원이던 오카시오-코르테스는 2019년 2월 7일 “그린뉴딜을 위한 연방정부의 의무를 인식한다”라는 제목의 결의안을 제출했다. 이 결의안의 골자는 “지속가능한 환경을 만드는 과정에서 수백만의 고임금 일자리를 창출”한다는 것이다. 그린뉴딜의 주창자들은 재생에너지 산업이 화석연료 산업보다 많은 일자리를 만들 수 있다고 보았다. 물론 그 근거는 부실했고, 녹색자본은 일자리를 보장하지 않았다. 그린뉴딜의 공동발의자 중 한 명인 엘리자베스 워렌을 보자. 워렌은 그린뉴딜 참여 기업에 대한 연방정부의 직접투자와 전략적 지원으로 수출을 확대하자고 주장한다. 이를 통해 첫째, 타국의 녹색전환을 지원하고, 둘째, 자국 녹색산업의 해외시장을 확대한다는 것이다. 정리하자면 공적자금으로 녹색자본을 육성해 해외시장 장악에 나서자는 것으로, 이는 일종의 ‘녹색제국주의’다. 심지어 버니 샌더스조차 화석연료 기업에 대해선 몰수 수준의 강력한 제재를 주장하지만, 재생에너지 등 녹색자본에는 별다른 제재를 언급하지 않았다. 이른바 그린워싱과 ESG 열풍은 녹색전환이 새로운 이윤 창출의 수단이 될 수 있다는 자본의 판단이 작용한 결과였다. 거리의 기후시위가 성장할수록 녹색자본이 함께 성장했고 국가는 이들을 지원했다. 한국도 마찬가지다. 문재인 정부의 ‘한국판 뉴딜’은 전기·수소차 확산을 위해 5년간 20조 3천억 원 지원을 계획했다. 물론 그 수혜자는 내연기관 자동차를 가장 많이 만든 현대차 그룹이다. 윤석열 정부 역시 ‘온실가스 감축’과 ‘탄소중립 기술지원’을 명목으로 삼성전자, 현대차, 한화 등 재벌에게 61조 1천억 원 지원을 약속했다. 전쟁과 에너지 위기의 교훈: 녹색은 비싸고 탄소는 싸다 그러나 녹색이윤의 꿈은 일장춘몽(一場春夢)에 그쳤다. 2022년 발발한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이 주요한 계기다. 가뜩이나 코로나19 이후 자본은 공급망 위기에 시달리고 있었다. 전쟁 이후 러시아는 유럽-미국에 천연가스 공급을 중단했다. 그 결과 2022년 유럽과 미국에 ‘에너지 위기’라는 공포가 휩쓸었다. 2021년 12월 1kJ당 3.63 달러이던 천연가스 선물 가격이 2022년 8월엔 9.33 달러로 세 배 가까이 급등했다. 에너지 가격 상승은 대중에겐 빈곤으로 나타나고, 자본에겐 생산원가 상승, 즉 이윤율 저하로 나타난다. 마침 코로나19 이후 본격적인 인플레이션과 고금리가 시작됐다. 이제 자본은 ‘그린워싱’을 할 여력조차 없다. 이윤을 회복할 수만 있다면 핵과 석탄은 대수가 아니다. 비싸고 간헐적인 재생에너지 대신 값싸고 항구적인 석탄발전으로 전 세계가 회귀하기 시작했다. 가스 공급의 15%를 러시아에 의존하던 네덜란드는 이미 2022년에 석탄발전 생산 상한선을 해제했고 이탈리아도 석탄발전 확대를 선언했다. COP28의 화석연료 퇴출 거부는 그 연장선이다. 핵발전 역시 증가 추세다. 지난 1월 31일 국제에너지기구(IAEA)에서 각국 에너지 장관들은 “원자력 에너지 사용을 선택하거나 그 사용을 지원하는 국가들은 청정 에너지원으로서 (원전의) 잠재력을 인정한다”고 밝혔다. 심지어 “에너지 위기에 대비해 석유와 가스의 비축이 중요하다”고 덧붙였다. ESG가 퇴조하는 이유 역시 ESG 펀드의 수익률이 저조하기 때문이다. 지난해 미국 시가총액 상위 500개 기업(S&P500)의 주식이 20% 증가하는 동안, 글로벌 청정에너지 관련 주식은 20% 감소했다. 핀란드의 한 자산운용사 매니저는 “코로나19 이후 인플레이션과 고금리 여파, 그리고 우크라이나 전쟁으로 인해 기후 테마 펀드들이 수익률을 유지하는 데 어려움을 겪었다”고 분석했다. 심지어 국가와 자본은 전쟁과 인플레이션으로 인한 생존권 위기의 책임을 기후·환경운동에 돌리고 있다. “생태 광신주의가 경제를 위협하고 있다.” 2023년 7월 스페인 극우정당 복스(Vox) 정치집회에 대한 이탈리아 총리 조르자 멜로니의 연대사다. 지배자들은 에너지 가격 상승에 신음하는 대중에게 “이건 값비싼 재생에너지를 요구하는 기후활동가들 때문”이라고 호도한다. “기후위기 책임을 함께 분담하자”며 대중에게 에너지 절약을 강요하는 일부 시장주의적 환경운동의 행위는 여기에 기름을 붓는다. 그 결과 세계 각지에서 극우파는 기후·환경운동을 비난하며 성장하고 있다. 이렇듯 자본은 경제적, 정치적 이유로 그린래시에 나서고 있다. 안타깝지만, 지금 자본과 국가에게 거리에서 열리는 기후시위는 대수롭지 않다. 한국 기후정의운동이 마주한 갈림길 한국 역시 세계 기후정의운동과 궤를 같이 한다. 그레타 툰베리의 등장은 한국에서도 기후위기를 걱정하는 학생 등 다양한 계층의 민중에게 큰 자극이었다. 2019년 고등학생들의 금요 결석시위에 뒤이어 같은 해 9월, 최초의 대규모 기후시위인 기후위기 비상행동이 시작됐다. 이 흐름은 2022년 9·24 기후정의행진으로 발전했으며, 그 내용 역시 ‘자본주의 성장체제’를 기후위기의 원인으로 지목하는 등 문제의식이 깊어졌다. 이는 2023년 4·14 기후정의파업에서 정부의 전기·가스요금 인상 반대를 내걸게 한 동력이었다. 그러나 기후정의행진이 자리를 잡은 것과는 대조적으로 한국의 기후정의운동은 세계 기후정의운동과 비슷한 정체 내지 하강을 겪고 있다. 이는 단순히 참가자 수의 정체를 의미하지 않는다. 2023년 9·23 기후정의행진을 앞두고 SK에코플랜트(건설)는 ESG 경영의 일환으로 9·23 기후정의행진을 홍보했다. 이는 기후정의행진이 정부와 자본에 전혀 위협이 되지 않는다는 것을 드러낸다. 2019년 기후정의행동 이후 만 4년이 흐른 지금, 단순히 9월 하루 거리에 모여 요구를 밝히는 것만으로는 운동이 발전할 수 없다. 거리 행진을 단순히 반복하는 것을 넘어, 자본과 정권에 두려움을 줄 수 있는 돌파구를 찾아야 한다. 330 충남노동자행진 사전집회 참여하기: bit.ly/330기후정의계급투쟁 -
[현장대자보] 2호: 가자 330! 가자 태안으로! 충남노동자행진으로 노동자 기후정의운동을 시작하자가자 330! 가자 태안으로! 충남노동자행진으로 노동자 기후정의운동을 시작하자 3월 30일 태안에서 정의로운 전환을 위한 충남노동자행진이 열린다. 정부는 2036년까지 석탄발전소 28기를 폐쇄한다면서도 발전노동자의 고용 문제는 내팽개치고 있다. 산자부 보고서에 따르면 최대 7,935명의 노동자 해고가 예상되지만 정부는 ‘취업 알선 프로그램’만을 제공할 뿐이다. 기후파괴의 주범은 자본과 정부임에도 일자리를 잃는 것은 노동자계급이다. 발전노동자들은 여기에 맞서 총고용 보장, 비정규직 철폐는 물론 에너지산업 국유화와 민주적 통제를 요구한다. 충남노동자행진은 발전노동자들이 제안한 노동자 기후정의운동이다. 그리하여, ‘석탄발전은 멈춰도 우리의 삶은 멈출 수 없다’는 발전노동자들이 동지들에게 330 충남노동자행진 참여를 호소하고 있다. 자본과 정부의 기후위기 책임전가는 발전소에서만 일어나지 않는다. 자동차 산업을 보자. 문재인 정부의 기후위기 해결책은 전기차·수소차 전환을 위해 현대차 등 재벌에 20조를 지원하는 것이었다. 윤석열 역시 현대차·한화 등 재벌의 탄소중립 사업에 61조원을 지원한다. 그 덕분에 기후악당 현대차 재벌이 순식간에 기후위기 해결사로 둔갑했다. 반면 산업전환으로 해고가 예상되는 비정규직과 부품사·하청업체 노동자들에겐 ‘알아서 살아남으라’는 덕담을 건넬 뿐이다. 이는 제철소, 철강 등 여타 금속산업 비정규직, 하청노동자도 마찬가지다. 싸워야 한다. 지금 노동자의 기후정의운동은 기후파괴 주범인 자본을 징벌하는 것이다. 자본은 저임금·비정규직 일자리를 양산한 주범인 동시에 가장 많은 탄소를 배출한 기후악당이다. 심지어 산업전환 비용을 가장 열악한 노동자에게 전가하기까지 한다. 그 힘은 자본이 생산수단을 소유하고 생산을 통제한다는 데서 비롯한다. 노동자의 기후정의운동은 자본의 생산수단 소유권과 통제권을 빼앗는 것을 향해야 한다. 노동자 산업통제로 필요에 따른 생산과 분배를 실현해야 한다. 그 경로는 현장과 산업을 넘나드는 계급투쟁이다. 자본에 맞서 자본의 통제권을 문제 삼을 수 있는 투쟁이라면 그것이 노동자 기후정의운동이다. 3월 30일 충남노동자행진은 발전과 금속을 포함한 모든 노동자의 기후정의운동을 결의하는 자리가 되어야 한다. 태안에서 열릴 1차 충남노동자행진을 시작으로, 당진·보령 등 금속노동자와 만날 수 있는 곳에서 2, 3차 행진을 준비하고 있다. 사회주의를향한전진은 30일 13시 기후정의 계급투쟁, 노동자 산업통제운동의 확산을 위한 사전결의대회를 진행하고, 14시 본대회에 함께 참여한다. 더 넓고 깊은 노동자 기후정의운동으로, 기후악당 자본을 응징하고 노동자 산업통제를 실현하자. <노동자 산업통제를 위한 충남노동자행진 사전결의대회 참가신청> : bit.ly/330기후정의계급투쟁 2024년 3월 21일 사회주의를향한전진 -
숫자 대결 멈추고 공공의료를 말하라민중의 건강을 볼모로 한 의정 대립 정부의 2,000명 의대 정원 확대 발표와 이에 반발한 전공의들의 집단사직으로 시작된 의료대란이 벌써 한 달째에 접어들고 있다. 정부와 의사들의 강 대 강 대립은 치킨게임 양상으로 치닫고 있고 그 피해는 고스란히 노동자 민중에게 전가되고 있다. 제때 진료나 치료를 받지 못하는 것은 물론이고 예정된 수술조차 기약 없이 연기되고 있다. 사태가 길어지면 중증 또는 응급질환 환자들에게 언제 심각한 상황이 일어날지 모르고 제때 치료받지 못한 후유증이 어떤 파장을 일으킬지 알 수 없다. 의정 대립이 파국으로 치달으면 보건의료 체계 자체가 붕괴할 가능성조차 배제할 수 없다. 의사들은 의사 수가 부족하지 않다고 한다. 그러나 의사 한 명이 진료하는 환자 수가 다른 나라에 비해 압도적으로 높은 점, 의사들의 장시간 노동 및 현격히 높은 노동강도, 보건의료 노동자들에 대한 가혹한 착취에 의존하는 의료기관의 현실 등은 의사 수가 부족하다는 분명한 징후다. 한국이 자랑하는 높은 의료접근성이나 짧은 진료 대기 시간도, 본인 부담 의료비 비중이 높고 지방의 응급 및 필수의료 역량이 상당히 취약하다는 점 등과 함께 살펴보아야 한다. 의사들은 필수의료의 붕괴나 지방의 의료공백이 의사 수가 아니라 의료인력 배분의 문제라고 주장한다. 그러나 시장 경쟁 질서를 유지한다는 전제에서 의료인력 배분이 문제라고 주장하는 것은 결국 ‘건강보험 의료수가(醫療酬價)를 인상하자’는 말에 지나지 않는다. 예컨대 필수의료 분야에 더 많은 수가를 지급함으로써 해당 의사 수를 늘릴 수 있다는 것이다. 그러나 수가 인상을 통한 유인책은 이미 실패한 정책이다. 흉부외과 수가를 2배로 늘렸어도 흉부외과 지원율은 올라가기는커녕 오히려 더 감소했다. 수익성과 경쟁이 지배하는 시장 질서에서 의료인력이 수익성이 높은 곳으로 쏠리는 것은 필연적이다. 더구나 얼마나 의료수가를 올려야 필수의료와 지역의료가 살아날지도 알 수 없다. 수가 인상은 필수의료 파탄과 지역의료 붕괴를 해결하지도 못하면서 거대 의료자본의 이윤만 증대시킬 것이고 건강보험 재정을 위태롭게 할 것이다. 제대로 된 해결책을 내놓지 못하는 의사들의 맹목적 반대는 대다수 노동자 민중에게 자기 밥그릇을 챙기는 집단이기주의로 비칠 뿐이다. 공공의대 설립 반대 등 한국 사회에서 의사들이 그릇된 특권의식을 내비쳐 온 것도 엄연한 현실이다. 의대 정원 확대라는 포퓰리즘 물론 이 사태의 일차적 책임은 정부에 있다. 정부는 현재 3,000여 명인 의대 정원을 2,000명 늘린다면서도 확대 규모에 대한 과학적 근거도, 확대된 의료인력의 배치에 관한 구체적 로드맵도 내놓지 않았다. 정부는 한국 보건의료 문제의 핵심이 의사 수 부족이며 의사 수만 늘리면 모든 문제가 해결될 것처럼 굴고 있다. ‘어떤 의사’가 ‘어디에’ ‘어떻게’ 존재하느냐는 사라지고, ‘얼마나’ 존재하느냐만 남은 것이다. 국민 대다수가 찬성한다는 이유로 구체적인 로드맵도 없이 오직 ‘기승전 의사 수 확대’로 몰아가는 정책은 포퓰리즘일 뿐이다. 증원 발표 전 내놓은 ‘필수의료 패키지’ 역시 예산이나 구체적 계획 없이 희망 사항만 적어놓은 것에 불과하며, 심지어는 기존에 실패했거나 실현 가능성 없는 정책들을 나열해 놓았을 뿐이다. 갑작스러운 대규모 의대 증원 발표가 불러올 파장을 정부가 몰랐을 리 없다. 누구나 짐작하듯이 이것은 선거용 기획이다. 마치 의사들의 집단행동을 유도한 것처럼 보이는 정부의 일방적 발표와 밀어붙이기식 행태가 이를 드러낸다. 2022년 화물연대 파업을 탄압하면서 재미를 본 정부가 이번에도 ‘이권 카르텔’로 의사들을 악마화하면서 지지율 상승이라는 재미를 보고 있는 것이다. 어떤 이들은 이 사태가 결국 일종의 정치적 쇼로 끝나지 않겠냐는 의견도 내놓고 있다. 도저히 실현 불가능한 정책을 내지르고, 긴장이 극대화된 시점에서 타협안을 제시하는 영웅을 만들어냄으로써 정치적 효과를 극대화하는 게 아니냐는 추측이다. 만약 정부가 정말 정치적 쇼로 이 사태를 기획했다면 이는 민중의 건강을 볼모로 지지율 장사를 하는, 정말 치졸하고 간악한 정권이 아닐 수 없다. 보건의료 산업화를 위한 의사 수 증원? 한편 정부의 의대 증원 확대 정책이 소위 ‘의료민영화’, 즉 보건의료 산업화를 위한 의료인력 확충이라는 분석도 있다. 윤석열 정부 집권 후 보건의료 부문에서는 ‘공공’이란 단어 자체가 사라졌다. 코로나19 유행 기간 감염병 전담병원으로 역할했던 지방 의료원들에 정부는 6개월의 회복기 손실보상금 외에 아무런 지원 조치도 취하지 않았다. 또 경제성이 없다는 이유로 울산의료원과 광주의료원 설립을 무산시키기도 했다. 반면 건강보험 보장성 약화와 실손보험의 확대를 야기하는 ‘건강보험 개편안’, 의료영리 플랫폼을 허용하는 비대면 진료의 제도화 추진, 건강관리를 산업화하는 ‘서비스산업발전기본법’과 '비의료 건강관리서비스 시범사업', 개인 건강정보와 보건의료 데이터에 민간 보험회사들이 손쉽게 접근할 수 있도록 하는 ‘건강정보 고속도로 플랫폼’, 디지털 헬스케어와 바이오헬스 산업 육성을 위한 각종 규제 폐지 등 보건의료 산업화를 위한 정책은 꾸준히 진행되고 있다. 이런 측면에서 의대 증원을 보건의료 산업화 정책의 일부로 보는 것이다. 수도권에서만 8~9개 대학병원이 2027년~2028년 개원을 목표로 500~1,000병상 규모의 총 10개소 분원을 설립할 계획이라고 한다. 수도권 이외 지역에서도 대학병원들이 500~1,500병상 규모의 분원 설립을 추진하고 있다. 또한 한국과학기술원(KAIST), 포항공대, 울산과기대 등에서 바이오·헬스산업에 필요한 의과학자들을 위한 의대 신설을 추진하고 있다고 한다. 이러한 사실들은 정부의 의대 증원이 정부가 주장하는 ‘필수의료’, ‘지역의료’를 위한 것이 아니라, 대형병원을 중심으로 하는 보건의료 시장화, 바이오·헬스산업 등의 이윤 증대를 위한 인력 공급이라는 의심을 가지게 한다. 문제는 공공의료다 의대 증원을 둘러싼 의정 대립은 한국 보건의료의 진정한 문제를 오로지 의사 수 논쟁으로만 몰아가고 있다. 그러나 필수의료와 지역의료의 붕괴, 수도권 대형병원으로의 환자 쏠림과 의료전달체계의 붕괴, 과잉 진료, 낮은 건강보험 보장률 등 한국 보건의료가 드러내는 심각한 문제의 본질은 다른 데 있다. 한국의 보건의료 체계의 특징은 공적 재원으로 마련된 건강보험 제도와 시장 질서에 근거한 민간 의료자본 중심의 의료공급체계 간의 모순이다. 현재 한국 사회에서 벌어지는 필수의료 붕괴, 의료전달체계의 파탄은 ‘의료 시장 매커니즘’ 자체가 붕괴했다는 징조이고 한국의 의료공급체계가 더 이상 지속 불가능한 임계점에 다다랐다는 것을 의미한다. 그렇다면 진정한 해결책은 보건의료 부문에서 영리추구 행위를 근절하고 무상 공공의료체계를 확립하는 데 있는 것이지, 단순히 의사 수를 늘리는 데 있지 않다. 시장주의에 기반한 의료공급체계에서 의사 수를 늘리는 것은 의료자본의 이윤을 늘릴 뿐이다. 의사 수가 아무리 늘어나도 시장 경쟁 질서, 의료산업에서의 영리 추구 행위를 그대로 두고서는 의료인력의 합리적·계획적 배치란 불가능하다. 이제는 의사 수를 둘러싼 정부와 의사의 치킨게임에 가려진 한국 보건의료체계의 진정한 문제를 드러내야 한다. 전면적 무상 공공의료체계로 나아가지 않고서는 저출생으로 지방 소멸이 현실화된 한국에서 각종 의료공백은 절대 해결할 수 없는 문제다. 이 문제에 노동자들이 직접 나서야 한다. 의료자본을 포함해 자본의 이윤 증식을 자기 사명으로 하는 자본가 정부나, 자신들의 특권을 한 치도 내놓을 생각이 없는 의사들이 무상 공공의료체계를 도입할 리 만무하다. 아플 때 돈 걱정 없이 당당히 치료받을 수 있는 권리는 모든 민중의 기본권이다. 노동자들이 앞장서 공공의료체계로의 전환을 쟁취해야 한다. 1977년 의료보험 도입은 박정희 정권이 국민의 건강을 생각해 시행한 시혜적 정책이 아니다. 1970년대 자본주의 경제위기와 노동자 민중의 불만 고조, 전태일 열사의 분신으로 시작된 노동자들의 투쟁 증가라는 배경이 있었다. 1989년 전국민 의료보험 확대 시행에는 1987년 6월 민주항쟁과 7~9월 노동자 대투쟁이, 2000년 국민의료보험의 통합에는 1996~97년 총파업과 1994년부터 시작된 ‘의료보험통합일원화와 보험적용확대를 위한 범국민연대회의’를 통한 노동자 투쟁이 있었다. 민간자본 중심의 의료공급체계를 전면적 무상공공의료체계로 개편하는 것도 오로지 노동자들의 강력한 투쟁을 통해서만 가능할 것이다.
